재미난 이야기
문화

재미난 이야기

보명의 이왕지사 반려동물 이야기가 나온김에 개이야기를 더 보내드리겠습니다.

'개팔자 상팔자'

도라지 뿌리는 절대로 산삼이 되지 못합니다. 걸레는 아무리 빨아도 행주가 못되듯 쥐수염을 아무리 연하게 숙성해도 황모붓이 안되듯 이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지만, 이제는 도라지가 산삼이 될 수도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걸레도 행주가되는 그런 세상입니다.

개천에서 용(龍)이 나오는 세상이 아니라고 하지만, ‘개(犬)’라는 동물은 지금이야말로 ‘개천에서 용 나는 세상’을 누리고 있습니다.

사람이 키우는 개는 분명 네발짐승인데 사람이 받들어주는 대접을 받으니 이놈은 용이 된 게 분명합니다.

걷기 싫다는 시늉을 하면, 달랑 안아 가슴에 품고 걷기는 커녕 할매가 그놈을 태워가 밀고다니듯 이놈을 대접합니다.

이놈을 발로 찼다간 ‘학대했다’는 죄목으로, 벌을 받거나 벌금을 내야 합니다.

옛날에 이놈은 섬돌까지만 올라올 수 있었지, 마루까지 올랐다간 빗자루로 사정없이 얻어맞고, 마루 밑이나 마당으로 내쫓겼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놈이 사람보다 먼저 방으로 들어가고, 사람 자는 침대를 자기 잠자리로 차지하고, 안아주지 않으면 안달을 합니다.

이놈은 이제 반려동물이라고 하여 인권에 버금가는 법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이놈은 무엇인가? 뽕밭이 상전벽해가 된다 한들, 개라는 짐승은 분명 ‘네발 짐승’입니다.

닭은 고기와 달걀을 얻기 위해서 키웠고, 돼지는 시장에 내다 팔거나 돼지고기를 먹기 위해서 키웠으며, 소는 논밭갈이 시키려고 키웠고, 그리고 개는 집을 지키라고 키웠지만, 사실 놀고먹는 놈이었습니다.

그래서 개를 두고 지금은 ‘개 팔자 상팔자’라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유난스레 대접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네발짐승이었고, 사람이 먹다 남긴 음식찌꺼기나 애기똥을 얻어먹었습니다.

오죽하면, ‘개밥신세’라는 말이 생겼을까요?

이처럼 집짐승이었던 개가 언제부터인가 사람의 대접을 한 몸에 받는 견공(犬公)이 되어, 그야말로 ‘개 팔자 상팔자’라는 말이 현실화되었습니다.

사람은 인권을 얻기 위하여 수백 년간 투쟁해 왔지만, 개는 네발 하나 까딱 않고 견권(犬權)을 확보한 셈이니, 그야말로 ‘개 팔자 상팔자’라는 옛말이 결코 틀린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개 같은 놈’이니, ‘개자식’이니, 이런 욕지거리는 성립될 수가 없습니다.

옛날은 낱말 앞에 ‘개’가 붙으면 나쁜 말이 되었습니다.

먹는 꽃이 참꽃이고, 못 먹는 꽃이면 개꽃이었습니다.

열매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살구는 못 먹는 살구였고, 못 먹는 버섯이면 개버섯이라 불렀습니다.

망신 중에도 제일가는 망신을 두고 ‘개망신’이라 했습니다.

제일 못나고 나쁜 사람을 ‘개자식’이라 했고, 못된 짓거리를 하면 ‘개 같은 놈’이라는 욕을 먹었습니다.

이제는 개의 신분이 높을 대로 높아져 ‘사람이 개를 모시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개똑똑’ ‘개이뻐’ ‘개쩔어’처럼, ‘개’ 자(字)마저도 좋은 뜻을 얻었으니, 노인의 귀를 어리둥절케 합니다.

아무튼, ‘개 팔자 상팔자’ 옛말이 맞아떨어진 셈입니다.

원래 개라는 짐승은!! 의사가 수술환자에게 권하는 제일 좋은 영양식 고기입니다. 그리고 개는 도둑과 집을 지키는 짐승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개가 사람의 상전이 되었습니다. 개호텔ㆍ개미용실ㆍ개병원 ㆍ개장례식장ㆍ개식품점 등 가관(可觀) 지랄풍년도 아닙니다.

이대로 가면 대한민국은 개하고 살기 때문에 남녀가 홀로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장차 이로 인한~ 인구소멸로 인한~ 나라가 망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걱정이 태산입니다. 젊은이 들은 그것들 키운다고 시집장가 가서 애기놓을 생각은 없고 그런 못된 짐승들 키우는데 혈안이니.. 참으로 큰일입니다. 어찌하오리까? 휴~~~

팔공산 개똥철학자 보명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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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부설거사의 도력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부설거사의 도력

신라 선덕여왕 때 부설거사라는 분이 있었는데, 원래는 어려서 출가한 스님이었습니다.

부설거사에게는 출가시절에 영조, 영희라는 두 도반이 있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지리산, 천관산 등 여러 곳을 다니며 수행을 했었는데,

하루는 오대산으로 수행하러 갈 때였습니다.

가는 길에 날이 저물어 지금의 전북 김제에 있는 어느 집에서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 집에는 묘화라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벙어리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딸이 부설의 법문을 듣고 드디어 말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묘화라는 여인은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이제는 스님을 사모하고 있으니,

자기와 혼인하지 않으면 목숨을 끊겠다고 위협하는 것입니다.

부설은 자신이 승려임을 내세워 거절했으나,

그 부모도 딸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부설스님은 생명을 함부로 버릴 수 없는

보살의 자비심으로 그 여인과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환속한 부설을 뒤로 하고 두 스님은 다시 수행을 떠났습니다.

세월이 흘러 두 스님은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옛 도반과 헤어졌던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두 스님은 이제 거사가 된 부설의 집에서 하루 밤을 묵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밤새도록 두 스님은 그동안 여기저기를 다니며 공부한 자랑을 하는지라,

부설거사는 물병을 꺼내 도력을 시험해 보자고 합니다.

병에는 물을 가득 담아 처마에 매달아 두었습니다.

그리고 병을 깨서 물이 흘러내리는지 아닌지로 서로의 도력을 겨뤄보기로 한 것입니다.

두 스님이 먼저 작대기로 병을 때리자 병이 깨지면서 물이 그대로 땅에 쏟아졌습니다.

이번엔 부설거사가 물병을 힘껏 내리치자 병은 깨졌지만

물은 허공에 그대로 매달려 있는 것입니다.

비록 환속하였으나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탓에 도력이 두 스님을 능가하는 것이었습니다.

부설거사가 물병으로 시험하고자 한 것도, 병이 깨지는 것으로 공空의 이치를 알려준 것입니다.

병이 깨지면서 물이 땅에 쏟아졌으니,

아직 두 스님은 공을 이치로만 헤아릴 뿐 생사의 경계를 뛰어 넘지 못했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부설거사의 가르침에 두 스님은 매우 크게 느끼는 바가 있었습니다.

수행을 자랑하던 스스로의 잘못을 뉘우치고

둘은 부설거사에게 지지 않을 각오로 더욱 열심히 정진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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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설화 - 옷 속에 숨겨진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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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벽화이야기 설화 - 옷 속에 숨겨진 보물

옛날에 가난한 한 사람이 부자 친구 집에서 환대한 저녁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저녁을 먹은 후 몰려든 포만감에 그민 깊은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마침 급한 용무가 생긴 부자는 외출하면서,

자신을 찾아 온 가난한 친구를 위해 앞으로 먹고 살만큼 넉넉한 보물을 쥐어 주었습니다.

'이보게나. 자네가 이렇게 사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안타깝네.

그래서 이 보물을 줄 터이니 돈으로 바꿔 유용하게 쓰시게.

가정도 꾸리고 자식도 많이 낳아서 행복하게 살게나.'

그렇게 잠든 친구의 속주머니에 넣어 주며,

행여나 잊어버리지 않도록 잘 꿰매어 주고는 용무때문에 급히 외출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뒤 가난한 친구가 눈을 떠 보니 친구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대접을 잘 받았다고 고맙다는 인사도 못했는데 .....'

이 사람은 주머니 속에 친구가 보물을 넣어둔 것도 까맣게 모르고

다시 전과 같이 궁색한 몰골로 떠돌아 다니게 되었습니다.

몇 년 후, 두 친구는 우연히 길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준 큰 돈은 어쩌고 예전 모습 그대로인 가난한 친구의 행색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하며, 그 친구의 옷을 살펴보니 자기가 넣어준 보물이

그냥 그대로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법화경』 <오백제자수기품>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법화칠유​(法華七喩 :법화경에서 설하는 일곱 가지 비유) 가운데

옷 속 보물이라는 뜻의 의주유衣珠喩로 불리며,

중생이 부처님의 성품을 갖고 있으면서도 모르고 지낸다는 것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옷 속에 보물이 있는 줄 알았더라면, 그렇게 궁핍한 생활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중생들은 이미 제 마음속에 부처의 성품을 갖고 있으나,

깨닫지 못하고 또 꺼내어 사용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마치 옷 속에 있는 보배을 모르고 빈궁한 생활을 하는 가난한 사람과 다를 바 없다는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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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내 깊은 뜻 누가 알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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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벽화이야기 - 내 깊은 뜻 누가 알리오

[내 깊은 뜻 누가 알리오]
<br>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br> 부처님께서 계실 당시에는 부처님의 말씀을 문자나 어떤 다른 방법으로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원래 인도에서는 외워서 전하는 형태의 암송이 전통적인 지혜의 전달 방식이었습니다. 불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부처님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에 부처님의 말씀을 별도로 기록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궁금한 내용이 있으면 찾아뵙고 여쭈면 쉽게 해결될 일이었습니다.
<br>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라는 뜻의 여시아문如是我聞은 경전의 첫 머리에 붙는 말입니다. 부처님께서 하셨던 법문이 암송되어 시대의 변화에 따라 경전으로 옮겨졌습니다.
<br> 따라서 모든 경전이 시작될 때 여시아문이라고 하면 '이렇게 들었다'라는 뜻인데, 결국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언제 말씀을 하셨는지, 그 곳이 어디였으며 누가 참석을 했는지 등 설법하신 배경을 마치 증명처럼 경의 첫머리에 적게 됩니다.
<br> 부처님의 설법에는 많은 대중이 법문을 듣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여러 보살님들이 참석하였고, 덕 높은 스님들과 수 많은 하늘의 천신, 왕족, 평민 누구든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은 가르침을 배우고 싶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법을 전했습니다. 마치 대낮의 환한 태양이 모든 곳을 밝혀주는 것과 같은 평등입니다. 하늘에서 큰 비가 내리면 차별없이 모든 곳을 적셔주는 것과도 같습니다. 두 손모아 합장한 모든 이들에게 우리의 부처님은 언제나 한 말씀으로 법을 설하고 계십니다.
<br>

단양 구인사 광명전 벽화에는 부처님께서 설법하시고, 대중들이 법문을 듣고 있는 모습이 벽화로 그려져 있습니다. 두 손 모아 우러러 보는 청중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이 마치 꽃비처럼 내려오고 있습니다.
<br> [내 깊은 뜻 누가 알리오]

<br> 노사나불로 화하시어 화엄경을 설하시다 - 단양 구인사 광명전 벽화로 그려진 불화 <br> "신기하고 신기하여라! <br> 어찌 이 모든 중생들이 여래의 지혜를 모두 갖추고 있는가! <br> 그런데 어리석고 미혹하여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구나." <br> 부처님께서 진리의 세계를 보셨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끼셨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무엇을 보셨는지, 진리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 감히 우리가 알고자 한다면, 그것은 욕심이지 않을까요. 부처님께서도 해탈의 세계를 보신 후, 중생들에게 전하는 것을 망설이셨다고 합니다. '과연 누가 큰 가르침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때 하늘의 천신, 범천이 나타났습니다. 이대로 진리의 말씀이 전해지지 않는다면, 중생을 제도할 방법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br> "부처님이시여, 법을 설해 주소서. 비록 이 세상은 먼지로 가렸지만, 사람들이 법을 듣지 못한다면 더욱 타락해 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법을 이해하는 자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br> 부처님께서는 천신의 거듭된 간청을 들어 지혜의 눈으로 세상을 두루 살펴보셨습니다. 사람들의 수준은 참으로 다양했습니다. 마치 호숫가의 연꽃과도 같았습니다. 어떤 연꽃은 진흙 속에 잠겨 꽃을 피우지 못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연꽃은 물 속에 뿌리를 두었지만 물 위로 올라와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심하셨습니다. 진흙 속만 벗어난다면 본래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저 연꽃들처럼, 중생들을 어리석고 악한 마음에서 구제해 주리라 다짐하신 것입니다. <br> ​『화엄경』은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가르친 경전으로 심오한 부처님의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심오한 탓인지 중생들의 마음속에 분명 참된 성품을 모두 갖추고 있지만, 아직까지 진리의 내용을 듣고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마치 진흙이 너무 두꺼워 빛을 보지 못하는 연꽃처럼 말입니다. <br> **하지만 어려운 법문이라도 듣고 또 듣게 되면 반드시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진흙이 아무리 두껍더라도, 걷고 또 걷어내면 그 아래 맑고 투명한 샘물이 드러나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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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한산과 습득 (寒山과拾得)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한산과 습득 (寒山과拾得)

<오어사원효암- 경북포항>

누더기 차림의 두 남자가 크게 웃고 있는 그림이다.

서로 절친한 친구 사이인 두 남자, 한 남자는 그가 살고 있는 동네이름을 따서 한산(寒山)이라 부르며, 다른 한명은 버려진 아이를 절에서 주워 길렀다하여 습득(拾得)이라 불렀다.

한산과 습득은 사찰벽화 중에서도 가장 다양한 이야기로 그려지는데 한편의 코미디프로 ‘웃찻사’를 보는 듯한 두 남자들의 엉뚱한 사건의 연속이지만, 이들 이야기를 가볍게 지나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엉뚱한 사건을 통해 깊은 내용을 전달하고자 하는 ‘선시(禪詩)’의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다음 그들의 이야기에서는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엿보게 된다.

▮ 한산이 습득에게 물었다

“만약 세상 사람들이 나를 비웃고, 모욕하고, 무시하여서 나를 엄청 화나게 한다면 나는 그때 당장 어떻게 해야 할까?”

습득이 답했다.

“그들이 주는 모욕에 바로 신경 쓰지 말고, 100년 뒤 그들 모습 상상 해 볼까나.”

습득은 한산에게 주는 답에서는 ‘인욕(忍辱)’을 제시 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주로 인내(忍耐)라는 단어보다 인욕(忍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많은 사람은 거기에서 나의 욕망이나 욕구를 참으라는 말로 알고 있지만, 실은 상대로부터 오는 모욕을 참으라는 의미라고 한다.

불교 대표경전 ‘금강경’에서도 부처님이 자신의 과거 생에 수행하던 시절, 악인에게 팔다리가 잘리는 고통과 모욕을 당하면서도 화를 내거나 원한의 마음을 품지 않았음을 이야기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결국, 거기에도 참아내는 마음이 한 평범한 인간을 부처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모욕이라는 불편한 감정에 사로잡혀 금쪽같은 내 삶을 소진하지 않기 위해. 지금의 모욕을 지혜롭게 견디어 내는 마음이, 장차 다가올 내 삶에 진정한 행복으로 보상됨을 확신시켜 주고 있다.

지혜로운 당신이여.

한산과 습득의 우스꽝스럽고 엉뚱해 보이는 선시에 나타나는 일화처럼, 남들과 몸 비비며 살아 가야할 어쩔 수 없는 삶의 현실에서 필요악처럼 감당해야 할 지금의 괴로움도 이처럼 한바탕 웃음으로 떨쳐 버려라한다.

신체의 변화가 감정을 좌우한다는 가설을 통해보면, 울면 슬퍼지고, 웃으면 기뻐진다는 것 아닌가.

그러기에. 기쁘기 때문에 웃을 수 있지만, 기쁘지 않아도 웃으면 기뻐진다는 것이다.

‘한산과 습득’에서는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거라는 말도

우스갯소리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뭔가 생각해 볼 여지가 많은 이야기다.

▮ 한산과 습득의 이야기

:: 개구리와 놀기/ 관음사-울산중구

사람들은 한산(寒山)을 보고 미친 사람이라고 말한다.

얼굴은 그저 그런데다 몸에 걸치고 있는 것은 허름한 누더기 한불

내 말에 신경 쓰는 남은 아무도 없고, 남의 말 또한 나도 관심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한산은 이절 저 절을 편하게 왕래 하고····.

오늘은 이 절에서 내일은 저 절에서 절간 수채 구멍에 흘러나온 나물가지 한 조각, 밥그릇에 붙은 밥풀 한 덩이로 연명하면서도 부족함 없고 항상 즐겁기만 하다.

그래도 습득은 오늘도 박수치고 노래하며 세상 떠나가라 웃는다.

개구리를 만나면 놀려 주고 호랑이를 만나도 겁도 없이 때려 줄 것 같다.

무상도 잊고 열반도 잊고 사는 한산과 습득!

그렇게 그들의 웃음엔 아름다운 보리꽃이 함께 핀다.

:: 빗자루 / 삼성사-경북경산

重岩我卜居 鳥道絶人跡-겹겹의 바위틈이 내 사는 곳이고, 새만 다니는 길 인적도 끊겼네.

庭際何所有 白雲抱幽石-뜨락 가에는 무엇이 있는가, 흰 구름만 바위를 안고 있네

住此凡幾年 屢見春冬易-여기에 머문 것이 몇 년인가, 봄 겨울 바뀐 것 누차 보았네.

寄語鐘鼎家 虛名定無益-권문세가에 한마디 부치노니, 헛된 이름은 바로 무익하다네.

:: 시를 읽다/ 은하사-경남김해

한산과 습득을 그린 선종화는 산발하고 누더기 차림인 두 인물이 파안대소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시권(詩卷)을 펴고 읊조리는 자세의 습득과, 붓을 들고 시권 두루마리나 파초잎에 시를 쓰는 한산을 표현한 예이다

한산이 대표 격인 시인으로서 세상 풍자가 심하고 인과응보의 내용을 담은 특이한 형태의 시들이 전해 온다.

그의 시는 흥에 겨워 나뭇잎이나 촌가의 벽에 써놓은 것을 모은 것이라 한다.

그의 시집에는 314수가 들어 있으며, 습득의 시 60수, 풍간의 시 6수도 포함되어 있다.

:: 소에게 법문을 하다/ 해인사-경남합천

어느 날 주지스님이 멀리 가셨다가 산 아래 목장을 지나 돌아오시는데, 한산과 습득은 소 떼와 더불어 놀고 있었다.

한산이 먼저 소 떼를 향하여 말을 했다.

“이 스님들아, 소 노릇하는 기분이 어떠한가, 공짜 밥 먹고 놀기만 하더니 기어코 이 모양이 되었구나.

오늘은 여러 스님들과 함께 법문을 펼칠까 하여 왔으니, 이름을 부르는 대로 이쪽으로 나오시게.

첫 번째, 동화사 경진 스님!”

그 소리에 검은 소 한 마리가 ‘음메~’하며 앞으로 나오더니, 앞발을 꿇고 머리를 땅에 대고 나서는 한산이 가리키는 위치로 가는 것이다.

“다음은 천관사 현관스님!”

이번에는 누런 소가 ‘음메~’하고 대답하더니 절을 하고는 첫 번째 소를 따라 갔다.

이렇게 서른 몇 번을 되풀이하였다. 백여 마리의 소 가운데 서른 마리나 스님들의 환생(還生)인 것이 아닌가.

그들은 시주한 밥만 축내며 공부를 게을리 한 과보로 소가 된 것이다.

몰래 이 광경을 지켜 본 주지 스님은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끼고

그재서야 미치광이 인줄만 알았던 한산과 습득이 성인의 화신임을 알았다고 한다.

:: 사천왕을 때리는 습득/ 적천사-경북청도

습득이 공양간에서 잔심부름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주지스님으로 부터 고두밥을 쪄서 멍석에 말리라는 일을 받았는데,

고두밥을 지키다가 잠시 졸았는데 그사이 새들이 날아와서 다 먹어버리고 빈 멍석이 아닌 가.

그러자 습득은 절을 지키고 세상을 있다는 사천왕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하찮은 새들로 부터 고두밥도 못 지키는 주제에 어찌 감히 절을 지킨다고 할 수 있겠는가!” 라고 하면서 막대기로 사천왕을 마구 때렸다

마침 낮잠을 즐기던 주지스님의 꿈에 사천왕들이 나타나서

“주지스님 주지스님 습득이가 저희들을 마구 때립니다.” 좀 말려 주세요 라며 다급하게 애원하지 않는가

깜짝 놀란 주지스님이 일어나 사천왕에게 가 보았더니

습득이가 사천왕을 한창 때리고 있었다.

어이는 없었지만 습득을 용서할 수밖에

:: 부처님에게 공양 올리는 습득/ 백련사-전남강진

습득이 법당 불상에 공양을 올리는 일을 맡고 있던 어느 날.

스님이 법당 앞을 지나가는데 법당 안에서 말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습득의 목소리였다.

“부처님, 밥 잡수시오. 안 잡수셔? 그럼, 내가 먹지롱.”

“부처님, 반찬 잡수시오. 안 잡수셔? 그럼, 내가 먹지롱.”

스님이 이상히 여겨 법당 문을 열어보았더니 습득이 불상 턱 밑에 앉아 공양 올린 밥을 숟가락으로 퍼서 불상 입에 갖다 대고는

자기가 먹으면서 연신, “부처님 밥 잡수시오. 안 잡수셔? 그럼. 내가 먹지롱.” 그러고 있는 것 아닌가.

화가 난 스님은 그때부터 공양 올리는 일을 못하게 하고 부엌에서 궂은 설거지나 하도록 하였다.

▮ 회향

한산의 시집에는

靑山見我無言以生(청산견아무언이생)-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見我無塵以生(창공견아무진이생)-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解脫貪愛解脫塵埃(해탈탐애해탈진애)-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如水如風生涯以去(여수여풍생애이거)-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어떠한 상황에도 생활을 웃음으로 녹여내는 ‘한산과 습득’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그들의 웃음 속에는 언제나 보제(菩提)의 꽃이 핍니다.

그들의 화사한 미소를 닮은 행복 가득한 오늘 만들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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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법당 안 구조 - 상단,중단,하단 = 영단(靈壇)
문화

불교문화 - 법당 안 구조 - 상단,중단,하단 = 영단(靈壇)

법당 안은 통상 상단, 중단, 하단(영단)의 구조로 되어 있다. 부처님상과 보살상을 모신 상단,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장을 모신 중단, 그리고 영가를 모신 하단(영단)이 그것이다.

(1) 상단(上壇)

상단은 법당의 앞쪽 정면에 설치한 단으로, 중앙에 불상을 모신다. 또한 불상과 보살상을 모신다. 하여 불보살단이라고 하는데 , 줄여서 불단(佛壇)이라고 한다. 상단에는 그 절의 주불과 후불탱화를 모신다.

(2) 중단(中壇)

중단은 호법신장을 모신 단으로, 신장단(神將壇) 또는 신중단(神衆壇)이라고도 부른다. 중단에는 제석천이나 사천왕, 대범천 등의 천상의 성중과 천, 용, 야차, 건달바, 아수라, 긴나라, 가루라, 마후라가 등 팔부신장을 모신다. 우리 토속 신앙의 대상인 칠성신과 산신을 모시기도 한다.

(3) 하단(下壇) = 영단(靈壇)

연단은 영가의 위패를 모신 단상을 말한다. 아미타여래래영도와 감로탱화를 후불탱화로 모시며, 하단(下壇)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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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신묘장구 대다라니 (5일차)
문화

불교문화 - 신묘장구 대다라니 (5일차)

****보명법사의 신묘장구대다라니 3×7=21일 기도 5일째. ** **

(5) 로계 새바라 라아미사미 나사야 나베 사미사미 나사야 모하자라 미사미 나사야 호로호로 마라호로 하례 바나마나바 사라사라 시리시리 소로소로 못쟈못쟈 모다야 모다야

<로계 새바라 라아미사미 나사야>에서 <로계>는 '**세간(世間), 세계'**의 뜻이며, **<새바라>는 '주인'**이란 뜻입니다.

또 <라아미사미 나사야>는 <라아 미사 미나사야>라고 띄어 읽어야 뜻이 통합니다. <라아>는 '탐심(貪心)', <미사>는 '독(毒)'이란 뜻이며, <미나사야>는 '멸망, 소멸'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로계 새바라 라아미사미 나사야>는 '세계의 주인이시여, 탐독을 소멸케 하옵소서'가 됩니다.

<나베 사미사미 나사야>도 앞과 마찬가지로 <나베사 미사 미나사야>라고 띄어 읽어야 그 뜻이 통합니다. <나베사>는 '진심(瞋心)'즉 '성내는 마음'이 됩니다. <미사>는 '독', <미나사야>는 '소멸, 멸망'의 뜻이니 연결해서 해석해 보면 '성냄의 독을 소멸케 하옵소서'가 됩니다.

<모호자라 미사미 나사야>는 <모하 자라 미사 미나사야>라고 해야 합니다. <모하>는 '우심(憂心)', 다시 말해서 '어리석은 마음'이란 뜻입니다. <자라>는 '동요', ㅡ'어리석음에 의한 행동'이란 뜻입니다. <미사>는 '독', <미나사야>는 '소멸'의 뜻이니 각 단어들을 연결해서 해석해 보면 '치독(癡毒:어리석음의 독)을 소멸케 하옵소서'가 됩니다.

<호로호로>의 <호로>는 '취(取)해 가지다'라는 뜻입니다. 즉 '뿌리채 가져가다'는 말입니다.

<로계 새바라>에서 <호로호로>까지를 다시 연결해서 해석해 보면, ‘세간의 주인이신 자재존이시여, 탐욕의 독을 소멸케 하소서, 성냄의 독을 소멸케 하소서, 어리석음의 독을 소멸케 하소서, 어서 빨리 가져가십시오, 취(取)해 가십시오’가 됩니다.

<마라호로>의 <마라>는 앞에서도 나왔듯이 '더러움'이란 뜻이며, <호로>는 '거두어가다'는 뜻이니 <마라호로>는 '진구(때)를 취거하옵소서'가 됩니다.

계속해서 <하례 바나마 나바>에서 <하례>는 '신의 이름' 혹은 '운재(運載)' 즉 '실어나르다'의 뜻이 됩니다. 또 <바나마>는 <파드마>, <반메>, <빠드마>라고도 하는데 '연꽃'이란 뜻이 있으며, <나바>는 '마음, 중심, 배꼽, 중앙'의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례 바나마 나바>는 '연꽃의 마음을 간직한 이여'가 됩니다. 연꽃은 불교를 상징하는 꽃으로 성자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바로 관세음보살을 나타냅니다.

<사라사라>는 물이 흐르는 모습을 나타낸 의성어로서, 여기서는 '감로법수(甘露法水)를 흐르게 하소서, 흐르게 하소서' 라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또 <시리시리> 역시 물이 흐르는 모습을 형용한 의성어인데, 여기서는 '감로의 지혜 광명을 흐르게 하소서, 흐르게 하소서'의 뜻이 됩니다.

<소로소로>도 마찬가지로 물이 흐르는 모습을 나타낸 의성어로, 여기서는 '감로의 덕(德)을 흐르게 하소서, 흐르게 하소서'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못쟈못쟈>의 <못쟈>는 <붓다>, <못다>, <불타> 등과 같은 말인데 ‘붓다, 깨달음, 도(道)’등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여기서는 '깨달음으로, 깨달음으로'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모다야 모다야>의 <모다야>는 원래 <보다야>인데, ‘보리(菩提)’라는 뜻입니다. 여기서는 ‘깨닫게 하소서, 깨닫게 하소서’라는 뜻이 됩니다.

여기까지 <신묘장구대다라니>의 내용을 살펴본 것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결국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을 여러 가지 의미로 강조함으로써 우리의 서원을 성취케 하려는 데 그 뜻이 있는 것입니다.

불기 2570년 4월 15일 팔공산 감고사지기 보명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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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미술여행 - 고구려의 비천상
문화

사찰미술여행 - 고구려의 비천상

망자 공간을 천상음악 흐르는 불국토로 승화

▲ 안악 2호분 동벽 비천상.

불교미술에서 하늘을 나는 천인상을 흔히 비천이라고 부른다. 인간은 스스로 하늘을 날 수 없기에 천상에 살면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천인(天人)은 동경의 대상이자 이상적인 모습으로 생각되었고 오랜 옛날부터 미술의 주제로 사랑받아 왔다. 비천의 기원은 고대 인도신화에서 유래하며 긴나라, 건달바, 아프사라스와 같이 신의 단계는 이르지 못하나 천계에 사는 유정(有精)을 말한다. 원래 브라만교의 신이었으나 불교에 흡수되면서 여래와 보살, 명왕의 하위에 있으면서 불교를 수호하는 수호신이 되었다. 인도 불교미술에서 비천은 불상의 출현보다 이른 기원전 2세기에서 1세기 중엽부터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부처님을 의미하는 상징물을 숭배하고 공양하는 자세로 묘사되다가 이후 1세기 무렵이 되면 불상의 광배에서 부처님을 찬탄하는 형태로 조성된다. 인도 비천상 가운데 하반신이 새와 같은 형상은 팔부중의 하나인 건달바 혹은 긴나라를 표현한 것으로 제석천의 악신(樂神)이었다. 이들은 미묘한 음성으로 노래하고 춤추며 보살과 중생을 감동시키는 음악의 신으로 흔히 주악비천이라고 부르는 비천형태의 원류에 속한다.

고대 인도신화에서 유래한 불교수호신 역동적이며 율동성 강한 것이 큰 특징 무덤 주인 극락 이끄는 놀라운 미의식

과학적 사고에 중점을 두는 서양의 천사는 날개를 가지고 하늘을 날지만 동양적 사고에서 비천은 날개 없이 하늘을 난다. 간혹 1841년 그려진 대구 동화사 염불암 관경변상도처럼 날개가 그려진 비천이 있기도 하지만 고구려 시대부터 우리나라 비천은 날개가 없이 하늘을 날았다. 비천은 표대(飄帶) 혹은 박대(博帶)라 불리는 팔에 감긴 긴 띠, 즉 천의를 이용해 하늘을 날기 때문에 비천의 형상에 천의의 표현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흔히 비천은 여성으로 인식되어 있지만 인도 고대 조각에서는 남성형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여성형의 비천은 시대가 내려오면서 서서히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비천의 모습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찾을 수 있다. 5세기 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장천 1호분 벽화에는 다양한 자세로 하늘을 나는 비천들이 있다. 화반을 들고 연화 공양하기도 하고 피리와 나팔, 오현금 등의 악기를 연주하기도 하는 비천 가운데는 얼굴에 수염이 그려진 남성형 비천도 모습을 보인다. 천의는 바람에 날려 한껏 부풀어져 있으며 요가 자세처럼 다리는 머리에 닿을 듯하고 손에는 꽃을 담은 공양구를 들고 있는데 이들이 뿌린 듯 화면 가득 봉우리 진 연화가 흩어져 있다.

▲ 삼실총 주악비천.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상으로 평가받는 비천상은 안악2호분 벽화에 그려진 비천이다. 비천은 하늘을 나는 존재이기 때문에 대부분 고분의 묘실 천정부에 그려지지만 안악 2호분의 비천은 묘실 벽면의 상부에 있다. 묘실벽화에 주인공으로 그려진 인물이 여성이고 시신을 두는 관대가 하나만 있어 무덤의 주인공은 여성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인지 이 무덤 벽면에 그려진 비천은 남성은 없고 모두 여성형으로만 채워져 있다. 묘실 동벽에 그려진 여성형의 비천은 수평비행 형태로 두 손에는 연꽃이 담긴 화반을 들고 후방에는 신체보다 더 기다란 날개옷이 물결에 흔들리는 해초와 같이 흔들리고 있으며 화반에서 뻗어나간 줄기 끝에는 연꽃봉우리가 바람에 날린다. 뒤를 이어 또 한 구의 비천이 같은 형태로 연꽃화반을 들고 비행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꽃을 공양하는 모습을 그린 모양이다. 세월의 흔적으로 모습이 많이 희미해져 있지만 머리에 보관을 쓴 고운 자태로 반달 같은 눈썹에 오뚝한 콧날, 갸름한 눈매는 소리 없이 눈으로만 웃고 입가는 잔잔한 미소를 띠었는데 한눈에 보아도 우리나라 전통 미인의 형상이다. 날렵한 몸매로 부처님이 설법하시는 공간을 날며 꽃을 뿌려 장엄하는 자연스러운 모습은 지금 보아도 부드럽고 우아하여 세련미가 있다.

크기가 비슷한 방이 세 개 있어 삼실총이라 불리는 무덤에는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 완함(阮咸)을 연주하는 주악비천이 있다. 완함은 ‘악학궤범’에 의하면 둥근 몸통에 긴 목을 지녔고 네 줄로 구성되었다고 하는데 벽화의 완함형태도 그와 유사하다. 월금이라고도 불리는 완함은 고구려에서 독주 악기 혹은 거문고, 퉁수와 함께 반주악기로 쓰였다고 추정된다. 그런데 그림에서 편안하게 바닥에 앉아서 다리를 뻗고 연주하는 모습은 반주보다는 독주하는 형상에 더 가깝다. 벽화를 그린 작가는 단 한 번의 붓질로 형상을 그려낸 듯 인물을 표현한 선들은 속도감과 생동감이 넘쳐난다. 머리의 상투는 열정적인 연주에 못 이겨 앞으로 쏠려 있고 고개를 숙여 현을 바라보는 시선은 마치 자신의 연주에 심취된 듯 그윽하고 깊다. 바람에 천의를 날리며 왼손으로 완함의 현을 쥐고 오른 손으로 퉁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천상의 대가가 연주하는 완함의 소리가 은은히 창공에서 들릴 것 같다.

▲ 오회분 4호묘 널방 북쪽 천장고임 주악비천상.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상의를 입지 않고 천의만을 걸친 인도식 비천 이외에도 도교 신선과 같이 도포 같은 옷을 입고 있는 비천도 있다. 중국으로 전래된 인도의 비천이 남북조 시대를 지나며 중국 문화에 영향을 받아 도교의 선인과 융합이 되면서 이런 모습의 비천상이 등장하게 되었다. 상의를 탈의하고 있는 비천상은 모두 천의를 날리며 창공을 날지만 선인 모습의 비천상은 신선과 선녀가 봉황과 난새를 타고 날듯이 성스러운 동물을 이용해 창공을 비행하기도 한다.

다섯 개의 고분이 밀집해 있어 오괴분으로도 불리는 오회분의 벽화에는 신선과 같은 모습으로 주악비천이 그려져 있다. 오회분 4호묘 널방에는 구름 위에서 천의를 휘날리며 두 손을 벌려 허리에 매고 북을 연주하는 남성형 비천상을 중심으로 하여 피리를 부는 형상과 거문고를 타는 형상으로 북쪽 천정의 고임돌에 3구의 주악비천이 모습을 보인다. 이들은 탈 것이 아닌 천으로만 공중을 날고 있지만 군의라 불리는 바지만 착용한 인도식 비천이 아니라 도포와 같은 한족복장을 하고 있어 인도식 비천에 신선의 모습이 융화된 중국식 비천이라고 할 수 있다.

▲ 오회분 5호묘 널방 천장고임의 주악비천상.

5호묘에서 탈것을 이용해 나는 주악비천은 도포의 끝자락이 새의 깃털과 같이 그려진 우의(羽衣)를 입고 있는 신선과는 달리 천의를 날리는 모습이다. 머리를 힘껏 위로 제치고 두 다리를 앞으로 뻗은 용은 생동감과 위력이 넘치고 그 위에 올라앉은 비천의 상투와 천의는 꺾어 질 듯 휘날리고 있어 비행의 속도감이 생생히 느껴진다. 용은 금방이라도 화면을 뚫고 하늘을 날듯 격동적이지만 그 위에 앉아 배소(排簫)와 나팔을 불고 있는 비천은 안정된 자세로 연주에 심취된 듯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힘차고 역동적이며 율동성이 강하다는 고구려 미술의 특징을 잘 보여주면서 천상의 음을 전하는 비천의 모습은 고요하고 기품이 있어 하나의 화면에서 보이는 동세가 다양함을 보인다.

우리나라 비천상 가운데 고구려 고분벽화처럼 죽음의 공간에 비천이 조성된 예는 흔치 않다. 우리네 선조님들은 고분의 벽면에 불보살님을 공양하고 찬탄하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생동감 있는 비천상을 그려 어둡고 추운 망자의 공간을 천상의 음악이 흐르고 꽃비가 날리는 불국토로 바꾸었고 그 공간에 머무는 묘주를 극락정토로 인도하는 놀라운 미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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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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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 - 광배(光背)와 대좌(臺座)
문화

불교문화 - 광배(光背)와 대좌(臺座)

광배는 부처님이 몸에서 나는 신령스럽고 밝은 빛을 상징화한 것이다. 불신의 뒤쪽에 둥그렇게 표현 되며, 형태는 시대와 지역, 혹은 불보살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빛이 머리에만 비추는 두광과 몸 전체에 두루 비추는 신광(身光)이 있다. 대좌는 불 . 보살상이나 조사상이 앉은 자리를 말한다.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사자좌(獅子座)와 연화좌(蓮花座)가 보편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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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반야용선 (般若龍船) - 지혜의 배를 띄우다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반야용선 (般若龍船) - 지혜의 배를 띄우다

용(龍)의 모습을 한 반야용선(般若龍船)이라고 부르는 배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인로왕보살들의 보호를 받으며 서쪽 극락세계로 항해하고 있는 그림이다.

바다 한 가운데 들어선 배 주위에는 온통 분노로 일렁이는 파도들이다.

파도가 심하게 배를 흔들어도 용선에 오른 사람들의 얼굴에는 두려움이라고는 일도 찾아볼 수 없고. 마냥 행복한 모습이다,

그러나, 배를 못 타고 뒤에 남겨진 사람들의 한탄스러워 하는 모습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반야’란 완전한 큰 지혜란 뜻으로 살아가면서 어쩔수 없이 격어야할 격랑의 파도와 같은 험난한 인생세파를 지혜롭게 헤쳐 나갈 힘을 상징하고 있다.

그래서 지혜의 세계를 향해가는 반야용선은 아무나 탈수 있는 배는 아니라고 한다.

사바세계의 집착과 번뇌를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자들만이 반야용선의 승선(乘船)을 허락 할 것이다.

▮ 바다의 상징성

내가 사는 이곳 세상은,

끊임없이 고통이 밀려온다는 ‘사바세계’이고.

우리 모두가 가고자 하는 곳,

바다 저 건너에는 지극한 행복이 있는 땅, 이름하여 극락(極樂)이라 부르는 세계다.

두 세계 사이는 걸어서는 건널 수 없는 바다로 가로 막혀 있기에 반야용선의 배를 띄운다.

사람이면 격어야 하는 현실 자체가 바로 격랑의 바다를 건너는 항해다.

우리는 어떻게 이 바다를 건너 저곳 지극한 행복의 세계 극락에 도달할 수 있을까.

바다란 고통의 과정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바다를 건너다’함이란 지혜를 성취함을 나타낸다.

바다에 일렁이는 파도란 우리 앞에 끊임없이 닥칠 험난한 인생살이와 닮아 있다.

인생이란 배가 격랑의 바다 한가운데서 요동치고 있더라도 지혜의 상징 반야용선의 깃발을 높이 올리면

이 또한 지나감을 알고 있기에 그리도 행복하게 웃고 있는가 보다.

▮ 극락은 왜 서쪽 일까

반야용선이 향하는 극락을 서방정토(西方淨土-서쪽세계)라 따로 부르고 있다

왜 서쪽인가 ??

한 해가 봄으로 시작되어 가을로 마무리 되어 수확으로 풍족해 지듯, 하루는 서쪽으로 해가 지면서 마무리 되어 휴식에 들어가듯이, 서쪽 그 곳이야 말로 우리가 그토록 간절하게 찾고 있는 완전하게 모든 것이 갖추어진 결실結實의 장소라고 믿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서쪽으로 마무리 된다고 보아

아마도 서쪽 그곳이, 바로 영원의 안식처 ‘유토피아 세상’일 것이라고 반야용선이 서쪽으로 가는게 너무도 당연해 보인다.

‘반야용선’은 이쪽과 저쪽 사이에 있는 바다를 가로지르는 배를 통해 성취 해 가는 간절한 극락의 마음을 느끼게 하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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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법화경 핵심 3대 품 연속 독송 (방편품·여래수량품·관세음보살보문품) | 마음이 평온해지는 명상 기도 독경 (2시간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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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 핵심 3대 품 연속 독송 (방편품·여래수량품·관세음보살보문품) | 마음이 평온해지는 명상 기도 독경 (2시간 46분)

!법화경 핵심 3대 품 연속 독송 (방편품·여래수량품·관세음보살보문품) | 마음이 평온해지는 명상 기도 독경 (2시간 46분) 아미타불(또는 관세음보살), 반갑습니다. 불교 신자들이 가장 지극하게 공경하고 매일 독송하는 법화경의 핵심 3대 품(방편품, 여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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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0일
사찰 벽화이야기 설화 - 구멍 뚫린 나무를 만난 눈 먼 거북이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설화 - 구멍 뚫린 나무를 만난 눈 먼 거북이

사찰법당에는 부처님께서 경전을 통해 들려준 이야기나 전래되는 설화들을 벽화의 소재로 삼은 것이 많습니다.

특히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를 모은 경전인 『자타카jātaka』에는 수 많은 설화와 비유가 등장하는데,

과거 어느 때에는 부처님께서 코끼리나 토끼로도 태어나셨고,

비둘기를 구하려고 두 눈을 보시한 왕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무수한 설화 속에는 마치 < 이솝이야기 >나 < 그림동화 >와도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러나 불교설화는 재미와 더불어 불자들에게 교훈이 되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겨있는 것이 특별합니다. 각 장면마다 부처님과 보살님들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등장하시며, 보살행菩薩行으로 가르침을 직접 실천하고 계십니다. 벽화는 설화 속 가르침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림으로 풀어놓은 것입니다.

벽화를 보면 해학적인 요소 또한 많습니다. 때문에 전래되는 동화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황금백조의 전생이야기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었고, 용왕의 꾐에서 자신의 염통을 지켜낸 원숭이이야기는 별주부전으로 거듭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불전문학을 뛰어 넘어 오랜 시간 세계 각국의 문화에 영향을 주며 전해지는 불교설화인 까닭에 그림에서 듣게 되는 이야기가 전혀 낯설지 않은 이유입니다.

수 많은 설화가 전해집니다. 짧은 시간 많은 내용을 소개할 수는 없겠지만, 과연 벽화에 등장하는 요소들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또한 부처님께서 무엇을 가르치고 계신지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1. 구멍 뚫린 나무를 만난 눈 먼 거북이

사찰 벽화이야기 설화이야기 1.

사찰법당에는 부처님께서 경전을 통해 들려준 이야기나 전래되는 설화들을 벽화의 소재로 삼은 것이 많습니다.

특히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를 모은 경전인 『자타카jātaka』에는 수 많은 설화와 비유가 등장하는데,

과거 어느 때에는 부처님께서 코끼리나 토끼로도 태어나셨고,

비둘기를 구하려고 두 눈을 보시한 왕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무수한 설화 속에는 마치 < 이솝이야기 >나 < 그림동화 >와도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러나 불교설화는 재미와 더불어 불자들에게 교훈이 되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겨있는 것이 특별합니다. 각 장면마다 부처님과 보살님들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등장하시며, 보살행菩薩行으로 가르침을 직접 실천하고 계십니다. 벽화는 설화 속 가르침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림으로 풀어놓은 것입니다.

벽화를 보면 해학적인 요소 또한 많습니다. 때문에 전래되는 동화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황금백조의 전생이야기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었고, 용왕의 꾐에서 자신의 염통을 지켜낸 원숭이이야기는 별주부전으로 거듭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불전문학을 뛰어 넘어 오랜 시간 세계 각국의 문화에 영향을 주며 전해지는 불교설화인 까닭에 그림에서 듣게 되는 이야기가 전혀 낯설지 않은 이유입니다.

수 많은 설화가 전해집니다. 짧은 시간 많은 내용을 소개할 수는 없겠지만, 과연 벽화에 등장하는 요소들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또한 부처님께서 무엇을 가르치고 계신지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1. 구멍 뚫린 나무를 만난 눈 먼 거북이

어느 때 부처님께서 비사리성毗舍離城에 있는 미후獼猴 연못가 2층 강당에 계실 때였습니다. 하루는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비유하면, 이 큰 대지가 모두 큰 바다로 변할 때, 한량없는 겁을 살아 온 어떤 눈 먼 거북이 있는데, 그 거북은 백 년에 한 번씩 머리를 바닷물 밖으로 내민다.

그런데 바다 한 가운데에는 구멍이 하나 뚫린 나무가 떠돌아 다니고 있는데, 파도에 밀려 표류하고 바람을 따라 동서로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마침 눈 먼 거북이 백 년에 한 번 머리를 내밀 때가 되었는데, 과연 거북이 머리를 내밀었을 때 그 나무의 구멍과 만날 수 있겠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습니다.

"불가능합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눈 먼 거북이 혹 바다 동쪽으로 가면 뜬 나무는 바람을 따라 바다 서쪽에 가 있을 것이고, 혹은 남쪽이나 북쪽, 이렇게 네 방향을 두루 떠도는 것도 또한 그와 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서로 만나지는 못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눈 먼 거북과 뜬 나무는 비록 서로 어긋나다가도 혹 서로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고 미련한 범부중생이 육도를 윤회하다가 잠깐이나마 사람의 몸을 받는 것은 그것보다 더 어려우니랴.

왜냐하면 저 모든 중생들은 이치를 따르지 않고 법을 행하지 않으며, 선善을 행하지 않고 진실하게 행동하지 않으며, 서로서로 죽이고 해치며,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업신여기며 한량없는 악惡을 짓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사성제 四聖諦]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쓰고 왕성한 의욕을 일으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랴." ☞ 『잡아함경』 「맹구경盲龜經」

범부중생은 육도를 윤회합니다. 육도는 위로는 천상天上, 아래로는 수라修羅, 축생畜生, 아귀餓鬼, 지옥地獄을 지은 바 업에 따라 태어나는 세상입니다. 그 가운데, 인신난득人身難得이라 하여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정말 힘들다고 하였습니다. 하물며 인간의 몸을 받고 게다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운다는 것은 마치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일이라는 속담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육도윤회도六道輪廻圖 / 육도六道는 삶의 업業에 따라 사후에 환생하게 되는 6갈래길로 천상계, 인간계, 수라계, 축생계, 아귀계, 지옥계 6개의 세상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천수경』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 아금문견득수지我今聞見得受持 원해여래진실의願解如來眞實意 부처님의 심히 깊고 미묘한 법문은 백천만겁을 지나도 만나기 어려운 것인데, 내 이제 보고 듣고 얻어서 닦아 지니게 되었습니다. 원컨대 부처님이시여. 진실한 가르침을 깨우치기를 바라옵니다."

눈먼 거북이 숨을 쉬기 위해 백년에 한 번 물위에 올라오는 일 자체가 희귀한데, 마침 구멍 뚫린 나무가 떠다니다가 물위로 올라오는 찰나의 거북머리가 그 구멍 속으로 쏙하니 들어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확률입니다. 하지만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그보다 더 어려운 일입니다. 더욱이 부처님의 법문을 배우는 일은 더욱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결코 게으름을 피울 겨를이 없습니다. 항상 법다운 행동으로 바르고 선하게 노력하여, 공덕이 되는 행동을 닦아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 불가에서는 잡아함경(雜阿含經)에 맹구우목(盲龜遇木)이라 한다. 인간이 죽은 후 다시 태어날 때 인간의 몸을 받을 확률은, 눈먼 거북이가 바다 밑을 헤엄치다가 숨을 쉬기 위해서 100년에 한 번씩 물 위로 올라오는데 우연히 그곳을 떠다니던 나무판자에 뚫린 구멍에 목이 낄 확률보다 더 작다는 말이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들어가기가 더 쉽다. 수미산 정상에서 겨자씨 한 알을 던지고 이어서 바늘을 던져 겨자씨에 바늘이 꽂히는 확률이나 갠지스강 모래알 중 한 톨이 우리 손톱에 오르는 확률도 비교가 안 된다. 모든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우연의 일치. 이 우연의 일치가 수천만 번 반복 되어야 한 생명이 만들어지는 역겁난우(歷劫難遇 : 수없는 세월동안 우연히 만나기 어렵다는 뜻)의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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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포발엄니 (布髮掩泥) - 배려의 마음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포발엄니 (布髮掩泥) - 배려의 마음

<북지장사- 대구 동구>

아함경(阿含經)에 나오는 이야기로 아득한 옛날 석가의 전생시절 수메다라는 수행자로 있을 때 마침 그곳으로 지나가는 연등(디팡카라)부처 일행이 진흙탕 길에 발을 더럽히며 지나가게 되는 것을 보고 그곳에 자신의 옷과 머리카락까지 풀어 헤쳐 놓고 그 위로 지나가도록 배려하는 그림이다.

진흙탕 길에 자신의 모두를 내려놓은 모습에 감동한 연등부처는 환한 미소를 보이며 ‘장하다 수메다여! 너는 무량수겁을 지나 ’석가모니‘라 부르는 부처가 되리다’ 라며 예언 한다

▮ 참 보시

머리를 풀어 진흙을 덮다. (포발엄니 布髮掩泥)

진흙탕 길에 미련 없이 내려놓은 입고 있던 옷과 머리카락의 의미는 무엇일까.

옷과 머리칼의 본질은 타인에게 나를 돋보이게 보이려는 상징으로, 이를 진흙땅에 미련 없이 내림으로 ‘참 보시란, 바로 타인에게 돋보이려는 마음부터 내리는 것‘이라는 가르침으로 볼 수 있다.

▮ 머리칼의 의미

오늘날 불교의 ‘율장'에서는 '머리카락은 출가자라면 반드시 깎아야 한다’고 돼있고

이런 머리카락을 깎는 삭발 의식은 세속인과 출가자를 구분 짓는 계기며, 출가자로서 거듭나는 과정 중에 하나라 하니.

승려가 되기 위해 출가한다는 것을 흔히 ‘머리 깎는다’라고 할 정도로 승려와 삭발은 불가분의 관계로 인식한다.

또한 머리칼을 깎는 행위는 ‘집착과 교만을 부수는 방법‘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나아가 수행을 방해하는 근원인 ‘아집과 온갖 유혹의 감정까지 모두 끊겠다.는 결의를 보여주는 행위다.

불교는 나를 내린다면서 나 자신을 못살게 괴롭히는 하심(下心) 의 종교가 아니다

‘포발엄니’는 배려를 통해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그래서 하루하루 나를 완성해 가는 마음을 느끼게 하는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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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섬에 버려진 형제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섬에 버려진 형제

아미타부처님의 왼쪽과 오른쪽에는 각각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계십니다.

두 보살님이 아미타부처님의 좌우에 계신 것은 전생에 형제였기 때문입니다. ​ 옛날 인도의 어느 작은 나라에 한 부유한 장자가 살았는데, 그에게는 조리와 속리라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행복했던 일상은 두 형제의 엄마가 병에 걸려 쓰러지면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병을 고치려고 사방으로 약을 구해도 병에 전혀 차도가 없었습니다. ​ "조리야! 속리야! 엄마는 아무래도 병이 나을 것 같지 않구나. 만약 엄마가 죽더라도 너희들은 형제끼리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착하게 살아야 한다." ​ 결국 조리와 속리의 엄마는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손에 길러지며 아버지가 일을 하는 이곳 저곳을 함께 다니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얼마 후 아버지는 아이들이 자신을 따라 떠돌이처럼 다니는 것이 안쓰러워, 두 형제의 장래들 위해서라도 재혼을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새엄마의 손에 맡겨졌습니다. ​ 새엄마는 두 아이를 불쌍하게 여기고 친자식 이상으로 사랑하며 키워줬습니다. 그러다 마을에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마을에 먹을 것이 남아있지 않게 되자, 아버지는 이웃나라로 식량을 구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올 때가 한참이 지나도 어버지는 소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자 혼자 남게 된 부인은 갑자기 불안해졌습니다. ​ "만일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저 아이들은 장차 어떻게 키우지? 이 많은 재산을 아이들에게 물려줘야 하나?" ​ 그러면서, 이런 고약한 생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결국 부인은 아이들을 없애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부인은 어느 뱃사공을 매수하여 두 아이들을 저 멀리 외딴 섬에 갖다 버리고 오라고 부탁했습니다. ​ 그렇게 새엄마는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조리와 속리에게 예쁜 섬이 있으니 함께 구경 가자면서 매수된 뱃사공과 같이 먼 섬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섬에 도착하여 맛있는 음식도 먹고, 바닷가에서 한참을 신나게 놀고 있을 떄 새엄마는 몰래 섬을 빠져나가 버렸습니다.

이렇게 조리와 속리는 외딴 무인도에 버려지게 되었습니다. 형제는 무인도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떨며, 돌아가신 친엄마를 그리워하며 서서히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 "속리야, 나도 지금까지 새어머니를 원망했지만, 이제 새엄마는 우리를 데리려 오지 않을 거야. 그러니 어찌할 도리가 없어. 차라리 모든 것을 용서하고 다음 세상에서는 부디 우리처럼 슬픔에 빠진 많은 사람들을 구원해 주는 보살로 태어나도록 빌자구나." ​ 동생도 형의 깊은 속내를 알아차리고 둘은 두 손을 맞잡은 채 웃으면서 죽음을 맞이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큰 서원을 세웠습니다. ​ "우리는 여기서 굶어 죽더라고, 죽더라도, 내생에는 보살이 되어 우리와 같이 어려운 처지에 놓인 불쌍한 사람들을 구원하리라, 구원하리라!" ​ 그 순간 하늘에서 아미타부처님께서 조리와 속리를 향해 두 손을 내미셨습니다. 두 형제는 아미타부처님의 손에 인도되면서 큰 깨달음을 얻고 극락에 도착했습니다. ​ "장하구나. 조리, 속리야! 너희들은 이미 깨달음을 얻었으니 앞으로도 더욱 정진하여 참된 보살이 되어야 한다." ​ 둘은 아미타부처님의 격려에 힘입어 더욱 열심히 수행한 끝에 조리는 곧 관세음보살이 되고, 속리는 대세지보살이 되었습니다. 보살이 된 조리와 속리는 세상의 중생들이 고통 받을 때 나타나 중생을 제도해 주셨습니다. 두 보살님의 명호를 열심히 부르고, 선업을 널리 쌓으면 우리도 조리와 속리 형제를 따라 극락으로 왕생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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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열반2. 곽시쌍부 (槨示雙趺涅槃)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열반2. 곽시쌍부 (槨示雙趺涅槃)

<신흥사- 경북 김천>
두 발이 나온 석가모니의 관 앞에서 제자들이 모여 슬퍼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찰에 다루어지는 대표적인 벽화로, 부처일대기를 8장면으로 압축하여 묘사한 팔상도(八相圖) 중에서 마지막인 불교의 교주인 석가의 임종을 다루고 있는 그림이다.

▮ 곽시쌍부(槨示雙趺)의 가르침

곽시쌍부(槨示雙趺)의 사전적 의미는 관 곽, 보일 시, 둘 쌍, 다리 부 로 관 밖으로 두 발을 내밀어 보이다라는 뜻이 된다. 수제자 가섭이 석가의 장지에 도착하자 관 밖으로 두 발이 나온 그 사건이 말해주는 뜻은 무엇인가. 평생 대중 교화를 위해, 온 세상의 험난한 길을 밟고 다닌 그의 맨발은. 모든 것을 버리고 집을 떠나온 출가자의 단적인 표상이었다. 출가자에게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것이 가죽으로 만든 신이오.
이 땅을 맨발로 밟고 다닌다는 것은 중생들과 더불어 기쁨과 슬픔과 괴로움과 아픔을 함께 나눈다는 것이다. 발가락과 발톱들은 돌부리에 차이고, 삐죽한 자갈과 가시에 찔리고 긁히는 상처를 입었다가 아물고, 또 상처를 입었다가 아물기를 거듭 하였으니 곳곳에 암갈색 굳은살이 박히어, 마치 짐승의 낡은 가죽을 덮어씌운 것처럼 너덜너덜 하였다. 험한 길을 걸어 다닌 당신의 그 거친 맨발을 수제자 가섭에게 보임으로, 교단을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를 가리키는 싸인 일 것이다 석가모니의 무기는 칼과 창이 아니라 맨발과 진리였다. 그런 까닭에 석가모니의 가르침의 길은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감으로써 가장 높은 진리에 오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곽시쌍부’에서는 관 밖으로 내민 맨발을 통해 출가자의 마음을 기억 하는 가르침을 느끼게 한다.

▮ 모아보는 곽시쌍부

<경흥사-경북 경산>

<법주사-경북 군위>

<법천사-전남 무안>

<심복사-경기 평택>

<칠불사-경남 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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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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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의 문(門) - 천왕문(天王門)
문화

사찰의 문(門) - 천왕문(天王門)

천왕문은 불법을 지켜주는 외호신(外護神)인 사천왕(四天王)을 봉안한 건물이다. 사천왕은 고대인도인들이 숭앙하던 세상을 지켜주는 신들로, 석모니부처님게 귀의하여 부처님과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 이들은 수미산 중턱에서 네방향을 지키면서 불법을 수호한다고 한다.

천왕문은 일주문과 불이문(不二門)사이에 서 있다. 이는 부처님이 계신 법당으로 오르는 중턱에서 불보살의 세계를 옹호하고 사찰에 들어서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또 다른 의미는 일주문을 통과하면서 가졌던 구도자의 일심이 숱한 역경을 만나 한풀 꺾일 때쯤, 수미산 중턱의 사천왕이 나타나 다시 한번 힘을 내서 수미산 정상까지 오르도록 독려하기 위해서이다.

동쪽을 수호하는 지국천왕은 온몸에 푸른색을 띠고 있고, 오른손에는 칼을 쥐고 왼손은 주먹을 쥐어 허리에 대고 있거나, 보석을 손바닥에 위에 올려놓은 모습이다.

남쪽을 지키는 증장천왕은 붉은색 몸에 노한 눈빛을 하고 있다. 오른손에는 용을 움켜쥐고 있고 왼손은 위로 들어 엄지와 중지로 여의주를 살짝 쥐고 있다.

서쪽을 지키는 광목천왕의 몸은 흰색이며, 웅변으로 온갖 나쁜 이야기를 물리치려 입을 벌리고 눈을 부릅뜨고 있다. 손에는 삼지창과 보탑을 들고 있다.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의 몸은 흑색이며, 비파를 들고 비파줄을 튕기는 모습이다.

천왕문의 좌우는 금강역사가 지키고 있다.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천왕문 대문에 금강역사를 그려 놓은 경우가 많다. 금강문이라는 별도의 문을 갖춘 사찰도 있는데, 여기에는 금강역사가 조각으로 조성되어있다. 보통 금강문은 천왕문에 들어서기 이전에 자리 잡고 있다. 천왕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평면 형태이며, 좌우 1칸에는 천왕을 2구씩 봉안하고, 중앙에는 출입로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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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 이곳은 어디일까요 ?  , #가족여행추천  , #가족여행 , #가족여행지 , #주말여행 , #강화도여행🛠️&qu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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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 이곳은 어디일까요 ? , #가족여행추천 , #가족여행 , #가족여행지 , #주말여행 , #강화도여행🛠️&quot;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 이곳은 어디일까요 ? , #가족여행추천 , #가족여행 , #가족여행지 , #주말여행 , #강화도여행🛠️"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정족산 근처에 위치한 사찰인 #전등사 이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대한불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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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0일
사찰미술여행 - 탑 속에 모신 부처님
문화

사찰미술여행 - 탑 속에 모신 부처님

부처님 입멸 이후 성스러운 구조물로 변모

▲ 1919년 익산미륵사지 석탑, 조선고적도보.

백제 미륵사는 서동요의 주인공이었던 무왕(600~641) 때 만들어진 절로 백제 최대의 사찰이었다. 이 절 금당 앞에는 동서로 세워진 2개의 석탑과 그 사이 목탑이 하나 있었는데 150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가면서 목탑과 동편의 탑은 무너져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서편의 탑은 반파된 상태로 힘겹게 세월을 지탱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된 석탑인 미륵사지 석탑은 639년 만들어졌는데 일반적으로 나무로 탑을 세우는 것이 돌로 탑을 쌓은 것보다 시대가 앞서기 때문에 초기의 석탑은 나무 탑과 같은 모양을 따르고 있어 미륵사지 석탑도 나무 탑의 형태를 본떠 만들었다. 이 탑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지붕의 곡선은 마치 나무를 깎아 놓은 듯 부드럽고 유연해 석탑을 만든 백제 석공의 뛰어난 기량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기나긴 세월의 풍파를 보여주듯 탑의 부재들이 여기저기 빠져나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했던 서 탑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에 의해 콘크리트가 덧씌워지는 무지막지한 보수가 있었고 그 흉한 모습으로 또 짧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이후 탑의 안전을 위해 2001년 10월부터 이루어진 해체보수 작업이 진행되었고 이 과정 중 탑의 1층 심주석(心柱石)에 있는 사리를 넣어두는 사리공(舍利孔)속에서 사리장엄구와 사리봉영기를 비롯한 백제시대 유물이 다량으로 발견되었다.

석가모니 육신서 나온 사리들 일곱 부족에 배분돼 탑에 봉안 이후 아소카왕 8만4000탑 세워 불탑 숭배·부처님 숭배 동일시

석가모니 부처님이 인도 쿠시나가라에서 열반에 드신 후 육신을 다비하여 나온 사리는 쿠시나가라의 말라를 비롯하여 일곱 부족에 배분되어 탑(stupa)을 만들어 사리를 모셨는데 이를 근본팔탑이라고 한다. 이후 인도를 최초로 통일한 아쇼카왕에 의해 8기의 석탑 속에 있던 사리는 다시 인도 여러 지역으로 분배되어 8만4000기의 탑을 세우게 된다.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기 이전 인도의 전통적인 무덤이었던 스투파는 이후 성스러운 구조물로 변모하였고 석가모니 부처님과 같은 의미를 담게 되어 탑을 쌓는 것은 공덕을 쌓는 것이요 불탑을 숭배하는 것은 부처님을 숭배하는 것과 동일시되었다. 따라서 부처님의 사리는 탑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요건이며 사리의 봉안은 탑이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에 탑 속에는 부처님의 사리가 들어 있어야 원리에 맞다.

▲ 미륵사지 석탑 사리공 내부.

하지만 부처님 입멸 이후 삼천대천세계를 이익 되게 할 만큼 많은 사리가 나왔다 해도 모든 탑 속에 다 봉안되는 것은 현실 속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리를 대신하여 탑 속에 넣을 대용품을 찾게 되었고 부처님의 말씀을 새긴 경전을 법신사리라 하고 작은 구슬이나 반짝이는 광물질 등을 넣어 변신사리라 부르며 이것들을 탑의 중심에 넣어 탑을 쌓게 된다. 더불어 우리나라 황복사지 탑이나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수종사 오층석탑처럼 아예 불상을 만들어 봉안한 예도 있는데 이는 부처 속에 부처가 있는 독특한 구성방식을 보여준다.

▲ 금동제 사리 외호와 그 내부. 익산 미륵사지 석탑.

‘금광명경’에 의하면 사리는 계율과 선정과 지혜를 닦아 익혀야만 생겨나기 때문에 매우 만나기 어려운 가장 으뜸가는 복밭(福田)이라서 7보로 만든 함에 넣어 탑 속에 모신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 사리공 내부는 바닥에 유리판을 깔고 그 위에 청동합을 6개 넣고 그 사이를 일명 변신사리라고 부르는 금과 유리로 만든 구슬로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 위 금동으로 만든 외호 속에 푸른 구슬을 채우고 다시 순금으로 제작된 내호를 넣고 그 속에 또 구슬이 들어 있는 유리로 만든 사리병을 넣었다. 지금은 흔하디흔한 유리는 당시 7세기 전반에는 최고의 기술을 요하는 귀하디귀한 보석과 같은 것이었다. 중국의 ‘삼국지’를 보면 구슬은 귀하게 여겨 옷에 꿰매어 장식하기도 하고 목이나 귀에 달기도 하지만 금과 은은 보배로 여기지 않았고 우리나라 삼한시대에도 금은 장신구로 그리 선호되지 않았다. 그래서 옛날 그 옛날의 유리는 금과 은보다 귀한 것이었기에 부처님의 사리를 대신하는 임무를 띠고 탑 속에 모셔지고 있는 것이다. 삼국시대 유리제품은 신라의 무덤에서 나온 것처럼 외국에서 수입된 것도 많이 있지만 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구에 출토된 구슬들은 우리나라에서 만든 것들이다. 거의 대부분의 탑 중심에 있는 사리공은 부처님을 의미하는 귀한 보물들을 모시는 공간이기도 하였지만 이를 탐내는 도굴범들의 표적이 되었기에 탑이 훼손되는 원인이기도 하니 세상일은 참 아이러니하다.

▲ 익산 미륵사지 석탑 출토 금제 족집게, 폭 0.8㎝, 길이 5㎝. 출처

익산 미륵사지 석탑의 사리장엄구 가운데는 금으로 만든 족집게가 있다. 사리공 속에 귀한 보석들과 함께 족집게를 넣은 까닭을 학계에서는 구슬을 담기 위한 용구로 사용한 후 같이 봉안한 것이라 보기도 하고 황룡사의 목탑이 있던 터에서 사악한 기운을 막는다는 의미로 가위와 칼, 거울 등이 발굴된 것처럼 벽사의 의미를 담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필자의 단순한 생각으로는 부처님을 모신 공간에 사악한 기운이 범접을 할 가능성은 없을 듯싶어 혹시 번뇌를 가위로 싹둑 잘라내고 족집게로 꼭 집어 뽑아내라는 고집멸도를 이루는 방편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한 번에 모든 번뇌를 끊을 수 없다면 끊임없이 일어나는 고통을 한 가닥, 한 가닥씩 매일 매일 뿌리 채 뽑아버리는 성실함만 있다면 범부인 우리도 언젠가는 도를 이루는 그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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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전통사찰의 구조 - 대장전(大藏殿)
문화

전통사찰의 구조 - 대장전(大藏殿)

대장전은 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해 축조한 건물이다. 대장전이란 편액을 건물로는 경북 예천의 용문사 대장전과 전북 김제의 금산사 대장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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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1. 원효대사의 해골물.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1. 원효대사의 해골물.

사찰 벽화이야기 고승이야기 1. 원효대사의 해골물.

인류의 스승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지도 약 2,600여 년이 흘렀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불기佛紀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시작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것만으로도 매우 위대한 역사적 사실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불교가 보편적 진리인 종교로서 자리매김 해 온 것을 그 기원으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법을 이은 제자들, 즉 뛰어난 고승들이 쉼 없이 출현했기에 지금의 불교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고승高僧이란, 높은 학덕과 수행을 바탕으로 중생을 제도하셨던 스님을 일컫습니다. 불법과 교학을 발전시켜 제자들에게 귀감이 되며 한 종파를 이끄시는 스승이었고, 백성들에게는 참된 수행의 실천으로 자비를 베풀어 정신적 귀의처가 되었습니다. 때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몸소 구국의 정신으로 수 많은 생명을 구제하시는 등 고승들은 모두가 부처님의 화신이셨던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에게 참된 진리가 면면히 전해질 수 있는 것이 바로 부처님이래 각 종宗의 조사祖師께서 계셨고, 수 많은 고승들의 법력이 도도하게 펼쳐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승이야기를 들으면, 우리가 알고 있는 스님들의 면모를 엿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가르침을 얻기 위해 필요한 노력과 바른 마음가짐을 배울 수 있게 됩니다.

  1. 원효대사가 마신 해골물

원효대사는 신라 말기의 고승입니다. 그는 많은 저술과 중생제도의 보살행으로 한국 불교사를 넘어 세계적으로 이름을 남긴 인물입니다. 스님이 34세 때 가장 친한 벗인 의상스님과 함께 불교의 참된 가르침을 얻기 위해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길을 떠난 지 얼마되지 않은 어느 날 저녁이었습니다.

넓은 들을 지나가는데 갑자기 억수 같은 소낙비가 내렸습니다.또한 해는 저물어 사방이 캄캄해 주위에는 비바람을 피할 만한 곳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온몸이 비에 젖은 채 지쳐갈 무렵 간신히 비를 피할 만한 조그만 굴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두 스님은 굴에서 쉬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날 밤, 잠을 자던 원효스님은 심한 갈증에 눈을 떴습니다. 옆에 있는 의상스님은 여전히 깊은 잠이 들어 있었습니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 이리 저리 물을 찾던 스님은 마침 낡은 바가지에 빗물이 한 가득 고여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물을 마시니 목이 심하게 말랐던 탓인지 정말 꿀맛보다 달았습니다. 그렇게 갈증을 해결하고는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의상스님이 눈을 떠보니, 간밤에 두 스님이 동굴이라고 들어와 잠을 잔 곳이 사실은 묘지에 난 큰 구덩이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스님들 곁에는 뼈 무더기와 해골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습니다.

깜짝 놀라 원효스님을 깨웠습니다. 원효스님은 그제야 간밤에 본인이 마신 물이 낡은 바가지가 아니라 해골에 고였던 빗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심한 구역질이 일어나며 뱃속의 모든 것을 다 토해내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원효스님은 깨달았습니다.

'아, 마음이 일어나면 여러 가지 법이 생겨나고, 마음이 사라지면 해골과 바가지가 둘이 아니구나.'

원효스님은 의상스님에게 말했습니다.

"부처님 말씀에 삼계三界가 오직 마음 뿐이라 하였는데, 내 마음이야 당나라에 가나 고국으로 돌아가나 항상 그 마음이 그 마음인 것을!"

이 깨달음을 통해 원효스님은 당나라 유학을 그만두고 본국으로 돌아갔으며, 의상스님 혼자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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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의 문(門) - 일주문(一柱門)
문화

사찰의 문(門) - 일주문(一柱門)

사찰에 들어갈 때 제일 처음 만나는 문으로, 기둥이 한 줄로 늘어서 있다고 하여 '일주문'이라고 부른다. 한 줄의 기둥은 세속의 번뇌로 흐트러진 마음을 사찰에 들어서면서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상징한다. 즉 일심을 뜻한다. 바꾸어 말하면 사바세계에서 정토세계로,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가는 첫째 관문인 것이다. 이 문을 경계로 문 밖을 속계(俗界)라 하고 문안을 진계(眞界)라 하며, 일주문을 들어설 때 일심에 귀의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일주문에는 사찰 현판을 걸어놓는데, ‘영축산 통도사(靈鷲山 通度寺)’라는 식으로 산과 사찰 이름을 나란히 표기하고 있다. 또 좌우의 기둥에는 불지종가(佛之宗家), 국지대찰(國之大刹)등의 주련을 붙여서 사찰의 성격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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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포대화상의 주머니 ​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포대화상의 주머니 ​

포대화상布袋和尙은 원래 법명이 계차스님인데, 커다란 포대布袋자루를 짊어지고 다니며 복을 나눠주시기에 사람들은 스님을 포대布袋화상으로 불렀습니다.

불교의 수행가운데 자비심으로 조건 없이 베풀어 주는 수행을 보시행布施行이라 합니다. 그런데 보시라고 읽지만 한문을 보면 '베풀 포布'자를 씁니다. 따라서 스님에게는 보시를 하는 자루, 포대를 멘 포대스님이라는 별칭이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화상和尙이라는 말은 덕이 높은 스승을 높여 부를때 쓰는 호칭입니다.

포대화상은 중국 당나라 때 스님으로, 뚱뚱한 몸집에 항상 웃는 얼굴을 하고 계십니다. 배는 풍선처럼 늘어져 괴상한 모습으로 지팡이 끝에다 커다란 자루를 둘러메고 다녔습니다. 그 자루 속에는 장난감, 과자, 엿 등을 가득히 넣고는 마을을 돌면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포대화상은 행동은 기인과 같았습니다. 무엇이든 주는 대로 받아먹고, 아무데서나 잠을 자면서 자연을 벗 삼아 살았고,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세속 사람들과 차별없이 잘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사람들에게 미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으며, 짓궃은 아이들은 스님 위로 올라타기도 하고 큰 배를 만지거나 커다란 귀를 잡아 당기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스님은 항상 웃음으로 받아넘기고, 아이들과 장난치며 바보처럼 행동하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포대화상에게 물었습니다.

"스님! 스님께서는 매우 높은 깨달음을 얻은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스님의 장난스러운 행동을 저희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찌하여 귀중한 시간을 아이들과 놀고만 계십니까? 정말 스님께서 도를 통달하신 것이 맞습니까?"

그러자 포대화상은 커다란 포대를 땅바닥에다 쿵 소리가 들릴 정도로 집어 던져버렸습니다. 사람들은 스님의 행동에 어안이 벙벙하여 서로 얼굴만 쳐다 보았습니다.

"내가 짐을 내려놓았듯, 그대들도 자신의 짐을 벗도록 하라."

이 말은 사람들이 쉽게 불교수행의 이치를 알아차릴 수 있도록 행동으로 보이신 것입니다. 사실 스님은 미륵불의 화신이었다고 합니다. 누구에게나 격의 없이 대했던 모습은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 "나에게 한 포대가 있으니 허공에 걸림이 없어, 열어 펼치면 우주에 두루하고 호므리면 관자재로다.

천백 억의 몸으로 나투어도 미륵은 미륵일 뿐 언제나 세속 사람들에게 보여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네.">

  • 관자재 觀自在 : 관자재란 자비(慈悲)의 화신(化身)으로 온갖 것을 자유 자재로 함을 말하는 것임

포대화상은 이 게송을 남기고 큰 바위에 앉은 채 그대로 입적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느 사찰에서나 포대화상을 모신 곳을 보면, 큰 바위 위에서 커다란 배를 내놓고 앉아 중생을 향해 큰 웃음 지으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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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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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의 문(門) - 불이문(不二門)
문화

사찰의 문(門) - 불이문(不二門)

천왕문을 지나면 불이의 경지를 상징하는 불이문를 만난다. 곧 해탈문이다.

불교 우주관에 따르면 수미산 정상에는 제석천왕의 도리천이 있다. 이 도리천의 본래 의미는 33천이다. 바로 그곳에 해탈의 경지를 상징하는 불이문이 서 있는 것이다. 도리천은 불교의 28천 가운데 욕계 6천이 제2천에 해당된다. 그 위계는 지상에서 가장 높으며, 하늘세계로는 아래에서 두 번째이다.

경주 불국사를 살펴보면 불이문의 사상적 의미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불국사의 경우 불이문에 해당하는 자하문에 도달하려면 청운교와 백운교의 33계단을 거쳐야 하는데, 이 다리들은 도리천의 33천을 상징적으로 조형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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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미술여행 - 지장보살도.
문화

사찰미술여행 - 지장보살도.

어머니 찾고자 한 소녀 땅속에 몸을 감추다

▲ 지장보살도, 14세기 전반, 견본채색, 239.4×130.0㎝, 일본 원각사(圓覺寺).

생각하는 동물인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는 명백한 사실을 우리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죽음이 두려운 중생인 까닭에 영원을 꿈꾸며 생명이 유한하다는 것을 애써 잊으려 한다. 종교는 언제 어디서 맞이할지 모를 죽음의 공포와 그로 인한 인생의 허무함을 견디기 위해 생겨났다. 불교에서도 생전에 열심히 수행한 영혼은 아미타부처가 주재하시는 극락정토에 태어나 왕생을 하지만 그렇지 못한 인연들은 생전의 행보에 따라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으로 나누어진 여섯 세계를 돌고 또 돌며 환생을 거듭한다고 가르친다. 여섯으로 나누어진 세상 가운데 지옥은 해탈의 원인이 되는 공덕이 없고 행복도 없는 곳으로 죽어서 심판을 받는 도중에도 각 관문마다 지옥이 구비되어 있다. 모든 지옥은 대철위산이라는 산 속에 있으며 그 중 큰 지옥이 열여덟이요 다음 것이 오백, 그 다음 것이 천배나 되며 그 중 가장 큰 무간지옥의 둘레는 만팔천리요 아래위로 불이 치솟아 내리고 쇠로된 개와 뱀이 불을 토하며 담장을 달린다. 저승에서 마지막으로 행하는 팔열팔한(八熱八寒) 지옥 가운데 최고로 무서운 지옥이 무간지옥이다. 예전에 ‘무간도’라는 홍콩 누아르 영화를 보면서 무간지옥을 처음 알았는데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하는 무간지옥에서는 고통은 간극(間隙)없이 끝없이 계속되기 때문에 아픔이 가장 극심하다. 죽지도 못한 채 끊임없는 고통을 받는 한마디로 말해 지옥의 끝이다. 생전에 지은 악업에 따라 치루게 되는 대가는 억겁의 세월동안 밤과 낮을 구분 않고 거듭하여도 끊어지지 않고 항상 가득차 있으며 나쁜 업이 다 삭아져야 비로소 다른 곳으로 태어나는 기회를 갖게 된다.

지장보살, 무간지옥에 희망 돌아가신 어머니 찾아나선 소녀가 모든 것 보신한 뒤 몸을 땅속에 감춘데서 유래

이렇게 무시무시한 지옥에서 고통받는 영혼들에게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가 바로 지장보살님이다. “땅속에 감추었다”는 지장(地藏)이라는 보살 이름은 돌아가신 어머니를 찾아 멀고도 먼 길을 떠난 18세 소녀가 가진 것을 모두 보시하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입고 있던 옷마저 모두 벗어 주고 몸을 구덩이 속에 가렸다는 지장보살 전생 설화에서 유래되었다. 지장보살은 “미래세가 다하도록 무량겁 동안 고통 받는 육도중생을 갖가지 방편으로 다 해탈시킨 후에야 나 자신이 불도를 이루리라”고 하는 가히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통큰 서원을 세웠다. 때문에 진즉 부처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백천만억 나유타의 무량겁 동안 미륵부처가 출현할 때까지 일체의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로 있으면서 그 서원을 이루기 위해 지금도 노력 중이시고 그 가운데서 특히 지옥의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을 위해 자비를 베풀고 있다.

지장보살은 우리에게 익숙한 보관을 쓰고 영락으로 몸을 장식한 보살형태가 아니라 삭발 혹은 두건을 쓴 성문비구(聲聞比丘)로 묘사된다. 이 가운데 두건 지장은 일본에는 그 예가 드물고 중앙아시아와 돈황 그리고, 고려에서 그려지는 독특한 모습이다. 지장보살이 들고 있는 6개의 고리가 달린 지팡이는 지옥문을 깨뜨리는 도구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손에 든 투명구슬은 어두운 지옥을 밝히기 위해 등불의 역할을 하는 장상명주(掌上明珠)이다. 지장보살의 지팡이는 여섯 개의 고리가 걸려 있다고 하여 육환장(六環杖), 혹은 고리가 서로 부딪힐 때 주석朱錫 같은 소리를 내기 때문에 석장(錫杖)이라 하기도 한다. 밀교에서 석장의 소리는 잡귀를 쫓아내는 기운이 있고 중국에서는 조상 천도의식에 사용되어 죽은 자가 갇혀 있는 방문을 여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하니 지장보살의 지물로 안성맞춤인 것 같다. 석장의 머리 부분에 모셔진 부처님은 어떤 이는 석가모니 부처라 하고 어떤 이는 지장보살 전생에 등장하는 각화정자재왕여래(覺華定自在王如來)라고 하는데 이론적으로 생각하면 후자가 맞을 듯 싶은데 아마도 대중에게 너무 난해한 부처님이라 석가모니부처로 바꾸어 생각했나보다.

778년 중국 개원사 승려인 도명존자가 죽다가 다시 살아난 이야기를 다룬 ‘환혼기(還魂記)’를 보면 열 명의 대왕이 영혼들을 심판하고 있는 지옥에는 현세의 스님처럼 노정(露頂)의 모습은 아니지만 얼굴이 보름달 같은 선승(禪僧)이 있는데 그 몸은 보석으로 치장되었고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있다 하였다. 그리고 그의 발은 보배로운 연꽃이 받들고 있으며 항상 그 옆에는 사자(獅子)가 함께 있더란다. 이 사자는 문수보살이 변신한 모습으로 죽은 자를 심판 할 때 항상 지장보살의 옆에서 보좌하기에 가끔 지장보살은 사자좌에 앉은 형태로 그려지기도 한다. ‘환혼기’에 의거하여 지장보살을 충실히 그려낸 작품이 14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고려 지장보살도이다. 두건을 착용하고 바위에 앉은 지장보살의 손에는 장명보주가 들려 있고 그의 왼쪽 발은 연꽃이 피어 받치고 있으며 그 앞은 사자가 지키고 앉았다. 지장보살의 육환장을 쥐고 서 있는 노승은 저승사자의 착각으로 염라대왕에게 끌려갔다 살아나온 도명(道明) 존자이고 그 맞은편 두 손으로 경전이 든 함을 받쳐 든 관료는 앞서 지장보살의 전생이었던 18세 소녀에게 지옥을 안내한 무독귀왕(無毒鬼王)이다.

현재 사찰의 명부전에 모셔지는 지장보살도는 무독귀왕과 도명존자가 협시하고 그 주위를 10명의 지옥대왕이 함께 있는 지장시왕도가 일반적인 모습이다. 이 구성은 중국에서 시작되었는데 인도 야마왕, 즉 염라대왕이 중국에 들어와 전통신앙과 결합, 분파되어 생겨난 지옥의 시왕들은 ‘불설예수시왕생칠경(佛說預修十王生七經)’이 편찬되면서 지장보살과 결합하게 되었다. 죽은 뒤 지옥행을 면하기 위해서 살아 있을 때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불사를 미리 행하는 공덕을 부처님이 말씀하신 이 경전의 내용에 의거해 명부와 관련된 지장신앙과 시왕신앙은 결합하게 되어 9세기 이후부터 한 화면에 같이 그려지게 되었고 우리나라 불화도 그 전통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 통도사 지장시왕도, 조선후기, 견본채색, 163×155㎝. 악독한 짐승들과 악한 사람이, 악한 신과 악귀들과 악풍들이 여러 가지 재난으로 괴롭힐 때 안온하신 지장보살 형상 앞에서 지심으로 공양하고 예를 올리면 이 모든 어려움이 모두 사라진다고 하니 독자님들은 마음에 새겼다가 절에가 지장보살님을 뵐 기회가 닿으면 실천해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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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입문 - 정토란?
문화

불교입문 - 정토란?

부처님이 계시는 국토를 말한다. 아미타 부처님의 정토는 극락세계이며, 석가 여래 부처님의 정토는 이땅이 되고 미륵불의 정토는 용화세계가 된다.

※ 이 자료는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 알아두면 좋은 불자상식 작성자 민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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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입문 - 아미타불은?
문화

불교입문 - 아미타불은?

가득한 옛 경전에 법장 비구로서 48원을 발하여 서방 극락세계의 부처님이되시어 고통중생을 극락으로 인도 하시는 부처님이시다.

※ 이 자료는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 알아두면 좋은 불자상식 작성자 민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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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신륵사와 나옹선사 이야기
불교문화

신륵사와 나옹선사 이야기

조사당(祖師堂)을 거쳐 절 뒤편 보제존자(菩提尊者_ 나옹선사) 석종부도(石鐘浮屠)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에 다른 부도 둘을 만났다.

여주 신륵사 원구형석조부도(圓球形石造浮屠)와 팔각원당형석조부도(八角圓堂形石造浮屠)이다.

보물 제180호 - 신륵사 조사당 (神勒寺 組師堂)

신륵사의 서북편에 위치한 조사당은 신륵사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물로 지공(指空), 나옹(懶翁), 무학(無學) 3화상의 덕을 기리고 법력을 숭모하기 위해 영정을 모셔놓은 곳이다. 세 사람은 서로간에 관계가 돈독 했던 스승과 제자로 고려말 기울어 가는 불교계에 한 가닥 빛이 되었던 스님들이다.

신륵사 조사당은 낮은 돌기단 위에 세운 정면 1칸, 측면 2칸의 특이한 구조를 지닌 건물이다. 겹처마에 팔작지붕이며 전면을 제외한 3면이 벽으로 마감되었다. 건물의 평면은 정면과 측면의 비례를 1.07:1로 구성하여 거의 정방형에 가깝고 건물내부에 기둥없이 천정을 모두 우물천정으로 짜서 조선초기 다포집 계통의 특징이 잘 나타나고 있다.

1963년보물 제180호로 지정된 지금의 건물은 양식면에서 조선 초기의 건물로 추정되며, 그 이후 많은 보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목은 이색이 지은 <보제존자진당시병서>에 의하면 고려 우왕5년(1397)에 진영당을 지었다는 기록이 있어 고려시대에도 조사당이 신륵사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조사당 내부에는 중앙에 나옹, 그리고 좌우에 지공과 무학대사의 영정을 봉안해두고 있으며, 중앙 나옹화상의 영정 앞에는 목조로 된 나옹스님의 독존(獨尊)을 안치했다.

보제존자 석종부도.(普濟尊者 石鐘浮屠).****

나옹화상의 승탑은 절의 서북쪽 언덕 위에 있었다. 보제존자(普濟尊者)는 1371년(공민왕 18)에 왕사(王師)가 되어 왕으로부터 받은 호이다.

보제존자 석종.(보물 제228호).****

나옹선사(懶翁禪師)의 부도는 규모가 작고 화려함이 덜하지만 통도사나 금산사의 금강계단을 연상시킨다. 선종과 교종을 통합하여 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 노력한 나옹의 업적이 반영된 것이리라. 널찍하게 마련된 단층 기단(基壇) 위에 2단의 받침을 둔 후 종(鐘) 모양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돌을 쌓아 넓게 만들고 앞쪽과 양 옆으로 계단을 두었다. 탑신은 아무런 꾸밈이 없고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불꽃무늬를 새긴 큼직한 보주(寶珠)가 솟아 있다.

이색과 나옹, 두분이 태어난 곳은 경북 영덕이고 죽은 곳은 여주 여강이다.

보제존자 석종비.(石鐘碑, 보물 제229호).

탑비는 3단의 받침 위에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얹은 모습이다. 받침부분의 윗면에는 연꽃무늬를 새겨 두었다.

대리석으로 다듬은 비몸은 양옆에 화강암 기둥을 세웠으며 지붕돌은 목조건물의 기와지붕처럼 막새기와와 기왓골이 표현되어 있다.

비의 앞면에는 끝부분에 글을 지은 사람과 쓴 사람의 직함 및 이름에 대해 적고 있는데, 글의 맨 앞에 적지 않는 것은 드문 예이라 한다. 우왕 5년(1379)에 세워진 비로 비문은 당대의 문장가인 이색이 짓고, 서예가인 한수(韓脩)가 글씨를 썼는데, 부드러운 필치의 해서체이다.

나옹과 이색은 서로 특별한 인연이었던 모양이다. 두 사람은 원나라 유학을 다녀왔다는 공통점이 있을 뿐만 아니라 공민왕과의 돈독한 친분을 가졌으며 당대의 선각자로 촉망 받았다
그러나 생전에 교류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옹의 명성이 하늘을 찌를 때에도 이색은 나옹을 찾지 않았다. 입적했을 때도 왕명에 따라 그의 사리석종기(舍利石鐘記)를 썼을 뿐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길이 다르면 서로 꾀하지 않는다’는 공자의 가르침에 따랐던 것이다. 불가와 유가는 확연히 다른 길이었다.

나옹은 우왕과 집권세력의 견제로 먼 길을 떠나다 병을 얻어 신륵사 강월헌에서 세상을 떠났고, 나옹의 사리석종기를 쓴 이색은 강월헌에서 멀지 않은 연자탄(燕子灘_ 제비여울)에서 뱃놀이를 하다가 태조가 보낸 독배를 마시고 배안에서 생을 마감했다. 나옹이 죽은 지 20년 뒤이다.

둘이 태어난 곳도 영덕이고 죽은 곳도 여주 여강(驪江)이다. 그래서 영덕 장육사에 가면 나옹선사의 기념관이 있고 이색의 기념관은 영해 괴시리 마을 뒷산에 있다.

※ 여강(驪江)_ 여주를 지나는 남한강.

보제존자 석등(보물 제231호).

보제존자석종 바로 앞에 있는 석등은 석종부도를 장엄하기 위한 공양구(供養具)이다. 사찰에서 석등을 밝히는 이유는 중생들의 어두운 마음(無明)을 밝히는 의미가 있다.

화강암이 주재료로 사용되었고 화사석(火舍石)은 대리석재를 사용하여 조각이 용이하도록 하였다. 단순화되고 남성적인 느낌을 주는 석종형 부도에 비해 이 석등은 섬세하고 화려한 느낌을 풍기고 있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석등은 전형적인 8각형 석등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세부적으로는 다양한 변형을 모색하여 화려하고 장식적인 면이 강조된 고려말기의 대표적 작품으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다층 전탑, **

신륵사에 새로운 이름을 신륵사 다층석탑 신륵사는 ‘벽절’이라고도 불렸다고 하였던 것은 벽돌로 만들어진 저 탑이 있기 때문이다.
이 전탑(塼塔)은 점토로 벽돌 모양을 만든 다음 뜨거운 가마에 구워낸 후 한층 한층 쌓아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석탑이 전국적으로 분포하는 반면 전탑은 일부지역에만 세워졌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만드는 것도 복잡하고 어려웠기 때문이다.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려시대의 전탑이 신륵사에 있는 이 다층전탑이다. 이 탑은 풍수지리설에 따라 일부러 절의 중심에서 떨어진 곳에 세웠다고 하는데, 고려시대 유일의 전탑으로 높이 9.4m이며 보물 제225호로 지정되어 있다. 탑의 기단부는 화강암을 사용해 7개의 층단을 만들고, 탑신부는 여러 단의 벽돌을 쌓아서 만들었는데 몸돌에 비해 지붕돌은 매우 간략하게 꾸몄다.

대장각기비 (보물 제230호).

다층전탑 근처에 비각 하나가 있다. 비석은 크게 파손되어 겨우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라 전문의 판독은 불가하다고 한다.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는 장방형 복련대석(覆蓮臺石)과 옥개석(屋蓋石)으로 간단하게 변화된 모양인데, 비신(碑身)의 보호를 위하여 양쪽에 돌기둥을 붙여 단단히 지탱하고 있는 모습이 특징적이다. 이 같은 모양은 이후 조선시대 석비 조형의 한 형식이 되었다는데, 전에 합천 삼가에서 살펴 보았던 남명 선생의 부친 조언형(曺彦亨)의 묘갈이 떠오르게 한다.

원래 신륵사에는 극락보전(極樂寶殿)서쪽 언덕에 대장각(大藏閣)이 있었는데, 그것은 고려 말의 이색(李穡)과 승려 나옹(懶翁)의 문도들이 발원하여 대장경(大藏經)을 인출(印出)하여·수장하던 곳이었고, 이 비는 대장각의 조성에 따른 여러 가지를 기록한 석비이다.

이색은 선왕 공민왕과 돌아가신 부모님의 명복을 빌고자 나옹의 문도와 함께 발원하였다. 비문은 해서(楷書)로서, 직제학 권주(權鑄)의 글씨이다. 달은 부처이고 강은 중생이다.

신륵사 강월헌(江月軒).****

강월헌(江月軒)이 삼층석탑과 함께 남한강변의 가파른 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 있다. 동대(東臺)라고 불려지는 거대한 암반이다. 문객들이 달밤에 동대에 올라 여강에 비친 달을 보며 시를 읊으며 풍유를 즐기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했을 정도로 명승지였던 모양이다.

이색(李穡)이 시를 썼고, 권근(權近) 역시 이곳을 찾아 시를 남겼다.

이식(李植), 김창협(金昌協), 정두경(鄭斗卿) 외에도 다산 정약용도 동대에 올라 시를 썼다고 한다. 현재의 강월헌이 있는 자리는 신륵사에서 입적한 나옹선사 혜근(惠勤)의 다비 장소였는데, 그의 문도들이 정자를 세우고 그의 호를 따서 강월헌이라고 당호를 붙인 것이다. 그리고 그가 깨달음을 얻고 주지로 있었던 양주 회암사(檜巖寺)의 처소이기도 하다.

본래의 누각은 혜근의 다비를 기념하여 세운 3층석탑과 거의 붙어 있었으나 1972년 홍수로 옛 건물이 떠내려가자 1974년 3층석탑보다 조금 더 아래쪽에 철근과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다시 지었다고 한다.

나옹화상이 신륵사에 입적하게 된 이유가 특별하다. 나옹은 공민왕과 우왕으로부터 왕사로 추대됐다가 밀성군(密城郡_ 현 경남 밀양)으로 내쳐졌다. 그때 나옹은 회암사(檜巖寺)의 주지가 되어 절을 크게 중수하고 문수회(文隨會)를 베풀었다. 중앙과 지방의 남녀 노소, 귀한 사람 천한 사람 가릴 것 없이 구름 같이 몰려 포백과 과실 떡을 보시했다.

하늘을 찌르는 인기는 우왕과 우왕을 둘러싼 집권세력에게 위협이 됐다. 유생들은 과도한 토목공사라며 나옹을 탄핵했다. 왕은 선사를 밀양의 영원사(瑩源寺)로 내쳤다. 그가 떠나면 신도들이 잠잠해질 것이라 기대햐였을 것이다. 그러나 쫓겨나는 나옹을 보면서 백성들은 통곡했다.

나옹은 길에서 병을 얻었고, 한강에 이르러자 병세는 더욱 심해졌다. 배를 타고 이레만에 신륵사에 도착했으나, 1376년 5월 15일 열반하였다. 세속 57세, 법납으로 37세였다.

강월헌에 오르니 남한강의 청량한 물줄기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고,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은 서로 어루러져 절로 감회에 젖어 만든다. 여주 사람들은 신륵사 앞을 가로 질러 여주를 관통하는 저 남한강을 여강(驪江)이라 부른다고 한다.

첫 구절이 입에 맴도는 나옹선사의 시 한 편을 옮겨 본다.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愛而無憎兮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靑山兮要我以無語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蒼空兮要我以無垢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聊無怒而無惜兮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如水如風而終我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로타리 불자회 지도법사 보명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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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0일
사찰미술여행 - 소재도량과 치성광여래
문화

사찰미술여행 - 소재도량과 치성광여래

부처님과 성신 가호로 온갖 재앙이 소멸

▲ ‘소재회’ 경천사지 10층 석탑 3층 남면, 67.7×58.6 cm, 1348년

불교에서 법석을 마련하여 기도드리는 도량 가운데 소재도량이라는 법회가 있다. 고려 문종 즉위년(1046) 10월 처음 봉행한 밀교의식인 소재도량(消災道場)은 불교도량 가운데 재난에서의 구원은 물론이고 이를 예방하기 위한 예방법회의 성격을 갖는 유일한 도량이다. 세종 당시 불교개혁에 관한 양봉래의 상소문을 보면 “어떠한 변괴든지 있게 되면 열었던 불사가 바로 소재도량”이라고 하였을 정도로 고려의 비정기적 불교의례 가운데 가장 많이 개설된 법회이다. 인간의 능력으로 피할 수 없는 하늘과 땅의 불길한 징후를 소멸시켜 앞으로 다가올지도 모르는 어려움을 미리 예방하려는 소재도량에서 모셨던 부처님은 ‘금륜불정치성광여래’이다. 고려시대 팔만대장경에 실린 ‘불설대위덕금륜불정치성광여래소제일체재난다라니경(佛說大威德金輪佛頂熾盛光如來消除一切災難陀羅尼經)’을 보면 온갖 재앙과 환란이 있을 때 도량을 세워 다라니를 외우며 치성광여래에게 기도를 드리면 재난이 사라지고 8만 가지 상서로운 일을 성취할 뿐만 아니라 8만 가지 나쁜 일을 없앨 수 있다고 한다. 소재도량에서 기도드리며 암송했던 치성광다라니는 불자님들이 사찰에서 한 번은 들어 보았을 소재길상다라니이다.

서역의 점성 신앙에서 유래 닥쳐올 재앙 소멸시키기 위해 북극성인 치성광여래에 기도

천재지변 피하기 위한 소재신앙서 장수와 구복 위한 기복 신앙으로 북두칠성 숭배하는 민족정서 반영 신앙의 전면에 북두칠성 대두돼

치성광여래는 밤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들의 황제인 북극성을 의미하는 부처님으로 손에 세상을 평정하는 금륜을 가지고 있어 금륜불정치성광여래라고도 한다. 치성광여래 신앙은 점성을 통해 얻은 점괘에 의거하여 닥쳐올 재앙을 미리 소멸하기 위해 기도하는 신앙이기 때문에 소재도량 개설의 본래 목적은 하늘의 별이 궤도를 벗어남에 따라 발생하는 천변(天變)을 물리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점차 ‘천인감응’이라는 의미로 확대되어 땅에서 발생하는 자연재해도 기양(祈禳)하는 대상이 되어 고려시대 원종은 개경에 지진이 발생하자 궁궐에서 소재도량을 열어 재앙소멸을 기원하였고 공민왕 역시 소재도량을 열어 지진이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 ‘북두칠성’ 태안사 칠성각부도 세부, 마본채색, 1739년, 호암 미술관.

독자들에게는 생소한 소재도량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경천사지 10층 석탑의 탑신부에 새겨진 ‘소재회’라는 미술작품을 통해 살 필 수 있다. 문헌 사료만으로 확인되던 고려의 소재도량은 이 탑의 ‘소재회’ 도상을 통해 치성광여래를 법회의 주존불로 모시고 별들에게 기원을 드렸던 성수신앙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재회 중앙 소가 끄는 수레의 연화대좌에 앉아 왼손에 커다란 금륜을 가진 부처님이 바로 치성광여래이다. 치성광여래 그 좌우에 보살님 두 분은 소재와 식재보살님으로 조선시대가 되면 일광과 월광보살이 더해져서 이 보살님들의 명호는 일광편조 소재보살, 월광편조 식재보살로 바뀐다.

치성광여래 신앙은 본디 하늘의 별에게 소원을 비는 점성신앙에 그 기원을 두고 있어 별점에 이용되는 움직이는 행성들이 주요한 도상의 구성요소가 된다. 그래서 치성광여래 신앙을 표현한 미술품에 등장하는 인물 대부분은 밤하늘의 별을 의인화하여 나타낸 것이다.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지구를 도는 행성이 신앙의 주요대상이었기 때문에 치성광여래 좌우와 대좌 아래에는 지구 주위를 도는 아홉 개의 행성을 나타낸 구요(九曜, 일월화수목금토성 일곱별, 라후와 계도라는 보이지 않는 두 개의 별)가 두 손을 모아 홀을 가진 형태로 서 있다. 그리고 치성광여래 삼존의 위에 있는 일곱명의 인물은 우리나라 치성광여래 도상에서만 보이는 북두칠성이다. 칠성의 옛 모습은 머리를 풀어 헤친 형상이라서 성현은 ‘용재총화’에서 소격서 태일전에 모셔진 칠성들이 모두 여자의 모습이라 하였다. 1739년 당시 최고의 화승이었던 의겸 스님이 그린 태안사의 치성광여래도에 그려진 칠성 역시 머리를 곱게 빗어 넘긴 모습들이다.

▲ ‘치성광여래강림도’, 마본황선묘, 84.8×66.1㎝, 1569년, 일본 교토 고려미술관.

조선이 건국되고 유교가 통치이념이 되면서 불교의 의례, 특히 밤하늘의 별과 관련을 갖는 치성광여래 신앙은 미신으로 터부시 되어 국가적 차원의 소재도량 개설은 조선 초기 몇 번을 제외하고는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병들어 늙고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공포는 유교적 교리로는 해소될 수 없는 신앙적 차원의 문제였기에 뿌리 깊은 성수신앙에 기반을 두고 있는 치성광여래 신앙은 백성들의 호응이 높아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제작 연대가 명확한 치성광여래도 가운데 시대가 가장 앞서는 작품은 현재 일본 교토 고려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치성광여래 강림도이다. 이 그림은 보스턴 미술관에 소장된 고려 치성광여래 강림도의 구성을 그대로 따른 것으로 화면에 그려진 작은 인물들은 모두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을 나타낸 것이다.

치성광여래가 그려진 불화는 현재 흔히들 칠성도라 알고 있지만 불화의 명칭은 주존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따지자면 치성광여래도라 부르는 것이 맞다. 현재 치성광여래도는 북두칠성이 칠원성군과 칠성여래로 혹은 동자형 칠원성군 등 칠성의 모티프가 중첩된 구성으로옛 그림에 비해 화면에서 칠성의 비중이 높다. 이는 시대가 변하면서 신앙의 목적이 천재지변의 소재보다는 개인의 구복에 맞추어지면서 인간의 생사를 주관하는 북두칠성에 신앙의 초점이 모아졌기 때문이다. 소를 타고 하늘에서 강림하는 치성광여래를 그린 19세기 치성광여래도는 특이하게 서울과 경기지역에서 주로 제작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보기만 해도 수명장수하고 만사형통한다는 남극노인성을 의미하는 수성노인이 처음 그려진 가평 현등사 치성광여래 강림도는 서울 화계사에서 그려 현등사로 옮겨서 모신 작품이다. 불화가 제작된 곳과 봉안되는 장소는 대게 같은 사찰일 경우가 많지만 이처럼 제작과 봉안처가 다른 작품도 드물지 않다.

조선이 건국되고 유교가 통치이념이 되면서 불교의 의례, 특히 밤하늘의 별과 관련을 갖는 치성광여래 신앙은 미신으로 터부시 되어 국가적 차원의 소재도량 개설은 조선 초기 몇 번을 제외하고는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병들어 늙고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공포는 유교적 교리로는 해소될 수 없는 신앙적 차원의 문제였기에 뿌리 깊은 성수신앙에 기반을 두고 있는 치성광여래 신앙은 백성들의 호응이 높아 그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제작 연대가 명확한 치성광여래도 가운데 시대가 가장 앞서는 작품은 현재 일본 교토 고려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치성광여래 강림도이다. 이 그림은 보스턴 미술관에 소장된 고려 치성광여래 강림도의 구성을 그대로 따른 것으로 화면에 그려진 작은 인물들은 모두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을 나타낸 것이다.

치성광여래가 그려진 불화는 현재 흔히들 칠성도라 알고 있지만 불화의 명칭은 주존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따지자면 치성광여래도라 부르는 것이 맞다. 현재 치성광여래도는 북두칠성이 칠원성군과 칠성여래로 혹은 동자형 칠원성군 등 칠성의 모티프가 중첩된 구성으로옛 그림에 비해 화면에서 칠성의 비중이 높다. 이는 시대가 변하면서 신앙의 목적이 천재지변의 소재보다는 개인의 구복에 맞추어지면서 인간의 생사를 주관하는 북두칠성에 신앙의 초점이 모아졌기 때문이다. 소를 타고 하늘에서 강림하는 치성광여래를 그린 19세기 치성광여래도는 특이하게 서울과 경기지역에서 주로 제작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보기만 해도 수명장수하고 만사형통한다는 남극노인성을 의미하는 수성노인이 처음 그려진 가평 현등사 치성광여래 강림도는 서울 화계사에서 그려 현등사로 옮겨서 모신 작품이다. 불화가 제작된 곳과 봉안되는 장소는 대게 같은 사찰일 경우가 많지만 이처럼 제작과 봉안처가 다른 작품도 드물지 않다.

▲ 화계사 ‘치성광여래 강림도’, 견본채색, 168.5×188.5㎝, 1861년, 가평 현등사.

온 나라가 숨죽이며 주시하는 수학능력시험을 일주일 연기시키는 사상초유의 현상을 만들었던 포항의 지진 피해가 예상보다 더 크다는 기사를 보았다. 연이은 초겨울 한파가 기승을 부리는 요즈음, 지진 이재민들에게 평생을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을 땅이 흔들리고 살던 집이 무너지는 재난의 공포는 쉽게 잊히지 않을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매서운 바람과 함께 몰아닥친 때 이른 동장군의 기세가 그분들에게는 더 춥게 느껴질 것 같아 미신이든, 비과학적이든 밤하늘의 별들에게 마음만이라도 편안케 해 달라고 기도라도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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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불설비유경과 안수정등도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불설비유경과 안수정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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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설비유경))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세존께서는 쉬라바스티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이 때에 세존께서 대중 가운데서 승광왕(勝光王)에게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나는 지금 대왕을 위하여 한 가지 비유로써 생사의 맛과 그 근심스러움을 말하리니,

잘 듣고 잘 기억하시오. 한량없이 먼 겁 전에 어떤 사람이 광야에 놀다가

사나운 코끼리에게 쫓겨 황급히 달아나면서 의지할 데가 없었소.

그러다가 그는 어떤 우물이 있고 그 곁에 나무뿌리 하나가 있는 것을 보았소.

그는 곧 그 나무뿌리를 잡고 내려가 우물 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소.

그 때 마침 검은 쥐와 흰 쥐 두 마리가 그 나무뿌리를 번갈아 갉고 있었고,

그 우물 사방에는 네 마리 독사가 그를 물려하였으며,

우물 밑에는 독룡(毒龍)이 있었소. 그는 그 독사가 몹시 두려웠고 나무뿌리가 끊어질까 걱정이었소.

그런데 그 나무에는 벌꿀이 있어서 다섯 방울씩 입에 떨어지고

나무가 흔들리자 벌이 흩어져 내려와 그를 쏘았으며,

또 들에서는 불이 일어나 그 나무를 태우고 있었소.”

왕은 말하였다.

"그 사람은 어떻게 한량없는 고통을 받으면서 그 보잘 것 없는 맛을 탐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 때에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대왕이여, 그 광야란 끝없는 무명(無明)의 긴 밤에 비유한 것이요,

그 사람은 중생에 비유한 것이며 코끼리는 무상(無常)에, 우물은 생사에,

그 험한 언덕의 나무뿌리는 목숨에 비유한 것이요,

검은 쥐와 흰 쥐 두 마리는 밤과 낮에, 나무뿌리를 갉는 것은 찰나찰나 목숨이 줄어드는 데,

네 마리 독사는 4대(大)에 비유한 것이며,

벌꿀은 5욕(欲)에, 벌은 삿된 소견에, 불은 늙음과 병에, 독룡은 죽음에 비유한 것이오.

그러므로 대왕은 알아야 하오. 생ㆍ노ㆍ병ㆍ사는 참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이니,

언제나 그것을 명심하고 5욕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하오.”

그리고 세존께서는 다시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넓은 들판은 무명의 길이요.

달리는 사람은 범부의 비유이며,

큰 코끼리는 무상의 비유요.

그 우물은 생사의 비유이니라.

나무의 뿌리는 목숨의 비유요.

두 마리의 쥐는 낮과 밤의 비유며,

뿌리를 갉는 것은 찰나찰나로 줄어드는 것이요.

네 마리의 뱀은 네가지 요소이다.

떨어지는 꿀은 오욕(五欲)의 비유요.

벌이 쏘는 것은 삿된 생각의 비유며,

그 불은 늙음과 병의 비유요.

사나운 용은 죽는 고통의 비유이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이것을 관찰하여

생(生)의 재미를 곧 싫어하라.

오욕에 집착없어야

비로소 해탈한 사람이라 하나니

무명의 바다에 편한듯 있으면서

죽음의 왕에게 휘몰리고 있나니

소리와 빛깔을 즐기지 않으면

범부의 자리를 떠나는 줄 알라."

그 때에 승광대왕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생사의 근심스러움을 듣자 일찍이 알지 못했던 일이라

생사를 아주 싫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합장하고 공경하며 한마음으로 우러러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큰 자비로 저를 위해 이처럼 미묘한 법의 이치를 말씀하였사오니,

저는 지금부터 우러러 받들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장하오. 대왕이여, 그 말대로 실행하고 방일하지 마시오.”

이때에 승광대왕과 대중들은 모두 다 환희하여 믿고 받들어 행하였다.


윗글은 불설비유경 전문으로, 불설비유경은 게송을 빼면 가장 짧은 경전이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불설비유경'에서 중생의 삶을 위와 같이 짧은 촌철살인의 비유로 표현하셨습니다.

삶의 실상이 이런 지경임에도 떨어지는 다섯 방울의 꿀을 받아 먹고 오욕락에 취해

자신이 처한 상황과 생사고를 잊고 살아가는 중생을 깨어나게 하셔서

해탈의 길로 이끌어주시기 위한 말씀입니다.

불설비유경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안수정등도 岸樹井藤圖]입니다.

언덕 안, 나무 수, 우물 정, 등나무 등, 그림 도입니다.

절에 벽화로 많이 그리는 그림이라고 합니다.

선사들은 이 비유에 대하여 "만약 내가 저 사람이라면 어떻게 했으면 살아나가겠느냐?"는 물음에

각자 답을 하시는데, "꿈이니라."고 하신 선사도 있고 여러 답이 있습니다.

전강선사께서는 그냥 "달다." - 이 한마디를 하셨고

"이 답 외 뭐가 더 있냐."고 하셨습니다.

이 답에 당대 우리나라 선지식들이 모두 감탄했다고 하십니다. 이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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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열두띠이야기] - 한국의 동물민속
문화

[열두띠이야기] - 한국의 동물민속

인류는 선사시대부터 삶을 지키기 위한 원초적 본능으로 신앙미술을 창조했다. 바위그림 등이 그 초보적인 신앙미술이다. 신앙미술을 곧 여러 가지 의미가 부여된 동물상징으로 발전함으로써 생활문화와 사상, 관념, 종교 등을 표현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동물들은 원시시대 이래 인간에게 때로는 공포의 대상이 되는가 하면 먹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 힘은 노동력으로도 이용되어 인간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었다. 한반도에서도 바위그림이나 동굴벽화를 비롯해 토우, 토기, 고분벽화 등 에 수많은 종류의 동물들이 등장한다. 이 동물들에도 제각기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와 상징이 숨겨져 있는 것은 물론이다. 청동기시대의 반구대 바위그림에는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들의 모습과 사냥 장면은 물론 사슴, 호랑이, 멧돼지, 소, 토끼, 족제비, 도마뱀, 고래, 물개, 바다거북, 새 등이 묘사되어 있다. 이 바위그림은 당시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생산 활동인 고기잡이와 사냥 그리고 그 대상이 된 동물들을 표현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동물과 새 그림이 선사시대 바위그림 못지않게 자주 나타난다. 좌(左) 청룡(靑龍), 우(右) 백호(白虎), 남(南) 주작(朱雀), 북(北) 현무(玄武)의 사신(四神)이 제 모습을 갖추게 된다. 또한 상상의 동물인 봉황, 기린, 거북의 사령수(四靈獸) 모습도 나타나기 시작한다. 고구려는 북방에 위치한 까닭에 물짐승보다 날짐승과 뭍짐승이 많이 보인다. 새는 학, 꿩, 공작, 갈매기, 부엉이, 봉황, 닭 등으로 현실의 새도 있고 상상 속의 새도 등장한다. 동물로는 호랑이와 사슴, 멧돼지, 토끼, 여우, 곰 등 산짐승과 소, 말, 개 등 집짐승이 그려져 있다. 신라의 동물상징은 주로 토우(土偶)라 불리는 흙 인형에서 나타난다. 얼핏 살펴보아도 개, 말, 소, 물소, 돼지, 양, 사슴, 원숭이, 토끼, 호랑이, 거북, 용, 닭, 물고기, 게, 뱀, 개구리 등이 눈에 띈다. 십이지상(十二支像)은 통일신라 이래 근대까지 연면히 이어 온 우리 민족의 끈질긴 신앙과 사상의 산물이다. 중국의 영향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불교 조각과 교섭하면서, 강력한 호국(護國)의 방위신(方位神)으로 채택되어 우리나라의 왕과 귀족의 능묘(陵墓)에 조각 장식된 십이지상(十二支像)은 세계에서 독보적 존재로,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독자적인 양식과 형식을 전개해왔다. 백제 금동대향로에는 용과 봉황을 비롯하여 상상의 날짐승과 길짐승, 현실 세계에 실재하는 호랑이, 사슴, 코끼리, 원숭이 등 39마리의 동물상이 표현되어 있다. 또 연꽃 사이에는 두 신선과 수중 생물인 듯한 26마리의 동물이 보인다. 이 대향로에 등장하는 다양한 동물 가운데 특히 백제와 관련이 많은 곰, 남방계 동물인 원숭이와 코끼리, 백제 미술품에 처음 나타나는 기마상, 영매로서 영생과 재생의 상징인 사슴 등에 주목할 만하다.

고려시대에는 북방의 사신(四神)과 중국의 십이지가 무덤의 호석, 현실벽화(玄室壁畵), 석관(石棺) 등에 각각 배치되어 신라때 보다 매우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민화에서 많은 동물을 만날 수 있다. 민화는 일상적인 생활과 밀착되어 세시풍속과 같은 행사용으로 제작하거나, 집안 곳곳의 문, 벽장, 병풍, 벽 등을 장식하거나(치레그림), 여러 가지 나쁜 귀신을 막는 주술적인 성격의 액막이 그림[門排]으로도 그려졌다. 민화(民畵]의 소재로는 새, 동물, 물고기 등이 있다. 특히 늙지 않고 오래도록 장수하고자 하는 염원을 담은 십장생도(十長生圖)에도 거북, 사슴, 학 등의 동물이 들어 있다.

이처럼 우리는 바위그림, 고구려 벽화고분, 백제 금동대향로, 신라 토우, 통일신라 십이지상, 조선의 민화 십장생 등에서 여러 동물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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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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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 - 법구(法具)
문화

불교문화 - 법구(法具)

법구는 불교 의식 등에 쓰이는 모든 도구를 가리키며, 불구(佛具)라고도 한다. 법구는 법답게 소중히 다루어야 하며 필요할 때만 법식에 맞취 사용해야 한다.

  1. 불전 사물(四物) 조석 예불 때 치는 법고, 운판, 목어, 범종을 불교의 사물이라고 한다.

법고(法鼓)는 법을 전하는 북이라는 뜻이다. 쇠가죽으로 만들며, 짐승을 비롯한 중생을 깨우치기 위하여 울린다.

운판(雲版)은 청동이나 철로 만든 넓은 판으로, 원래 중국의 선종 사찰에서 부엌에 달아놓고 대중들에게 끼니때를 알리기 위해 쳤다고 한다. 운판은 공중을 날아다니는 중생과 허공을 떠도는 영혼을 제도하기 위해서 친다.

목어(木魚)는 나무를 물고기 모양으로 깎아 배 부분을 파낸 것으로, 두 개의 나무 막대기로 두드려서 소리를 낸다. 목어를 치는 까닭은 물에 사는 모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이다. 늘 눈을 뜨고 있는 물고기는 처럼, 수행자는 늘 깨어 있는 채로 정진해야 한다는 뜻이다.

범종(梵鐘)은 조석 예불과 사찰의 큰 행사 때 사용한다. 아침에는 28번, 저녁에는 33번을 친다. 범종을 치는 근본 뜻은 천상과 지옥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함이다.

  1. 목탁(木鐸)

의식을 집전할 때 가장 많이 쓰이는 법구로, 대중을 모을 때 신호용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1. 죽비(竹箄)

선방 등에서 수행자를 지도할 때 사용한다. 중국의 선원에서 처음 사용했으며, 통대나무나 그 뿌리로 만든다. 선방에서 입선과 방선, 그리고 공양할 때 신호하는 도구로 쓴다.

  1. 발우(鉢盂)

발우는 부처님 당시부터 출가수행자들이 공양할 때 쓰던 밥그릇으로, 오늘날에도 소중한 법구이다.

  1. 요령(搖鈴) - 금강령

요령은 법요식 등을 할 때 사용된다. 본래 밀교계통에서 사용했는데, 북방계통의 사찰로 전해져 지금은 모든 의식 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법구로 자리 잡았다.

  1. 염주(念珠)

염주는 부처님께 기도하거나 절을 하면서 참회할 때 그 수를 세기 위해서 사용한다. 보통 108개로 되어 있다. 본래 부처님의 깨달음을 상징하는 보리수 열매로 만들었으나, 지역에 따라 독특한 나무나 그 밖에 재료(율무. 열매. 용안주. 금강주. 다양한 보석 등)로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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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신묘장구 대다라니 (1일차)
문화

불교문화 - 신묘장구 대다라니 (1일차)

보명법사의 신묘장구대다라니 3×7=21일의 기도 첫날.

자ㅡ 오랜기간 동안 가장많이 염송하신 천수경의 가장 핵심이 되는 <신묘장구대다라니>의 내용 설명을 시작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설명을 들으시고 나면 염불제일의 영인스님의 독경 염불의 1독을 보내드릴테니 염송도 해보십시요.

**<신묘장구대다라니>**는 관세음보살의 위신력, 지혜, 자비, 과거의 행적 등 여러가지 모습이 담긴 『천수경』심장부에 해당됩니다. 즉 『천수경』의 핵심이며 안목을 나타 낸 부분이 바로 <신묘장구대다라니>인 것입니다. 말하자면 관세음보살의 온갖 숨겨진 비밀과 내력을 하나하나 들추어내는 것입니다.

결국『천수경』이란 경전은 다라니로 집약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라니의 내용을 잘 이해한다면 관세음보살이 과연 어떤 분인가를 가장 잘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다라니 속에는 관세음보살에 대한 모든 것들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다라니를 자꾸 외우면 '불망염지(不忘念智)'의 지혜를 얻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어떤 것이든 한번 들으면 잊어버리지 않는 지혜를 증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의 고승이신 경허 큰스님의 제자로 수월(水月) 스님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수월 스님은 일자 무식꾼으로 글자도 제대로 읽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열심히 외운 결과 불망염지의 영험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수월 스님은 정초에 절을 찾아오는 신도들의 가족사항을 말하면 축원카드도 적지 않고 그냥 외워버렸다고 합니다.

이처럼 다라니를 자꾸 염불하면, 무엇이든 한 번 들으면 기억하는 신비한 힘을 얻을 수도 있다고 전해집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를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중생들의 소견으로는 측량하기 힘든 신기하고 미묘하며 불가사의한 내용을 담고 있는 큰 다라니'라는 뜻입니다. 다라니 속에는 그러한 힘과 신비와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다라니란 앞에서도 설명 했듯이 그 속에 모든 것을 다 감추고 있고 모든 뜻을 다 지녔다고 해서 '총지(摠持)'라고도 번역되는 범어입니다.

그런데 이 범어로 된 다라니를 한문으로 음사(音寫)하는 과정에서 중국식 발음으로 변형되었고, 그것이 다시 우리말화 되는 과정에서 처음 범어와는 차이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다라니는 변형된 범어입니다. 예를 들면 똑같은 영어를 두고서도 중국, 일본, 한국, 사람의 발음이 조금씩 다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읽고 외우고 있는 이 다라니는 발음에서 뿐만 아니라 띄어쓰기에서도 잘못 표기된 곳이 많이있습니다. 그래서 보명은 산스크리티어문과 팔리어의 원문 경전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내려온 습관을 하루아침에 고치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므로 여기서는 그 차이점을 조금씩 짚어가면서 그 뜻을 새겨 보도록 하겠습니다.

또 한 가지 언급하고 싶은 것은 다라니의 뜻을 완벽하게 해석하기란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가 다라니나 진언을 풀이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는 잘못 해석해 버리면 오히려 본래의 뜻과는 영 멀어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명법사와 이런 공부방의 기회를 통해 다라니의 뜻을 어느 정도라도 이해하고 『천수경』을 대한다면 오히려 깊은 신심을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라니의 구절구절을 낱낱이 짚어가면서 그 뜻을 새겨 보도록 하겠습니다.

불기 2570년 4월 11일 2월의 관음재일날에. 팔공산 감고사지기 보명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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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불교 조형물
문화

불교문화 - 불교 조형물

  1. 당간과 당간지주(幢竿支柱)

예전에는 사찰에서 기도나 법회 때 기를 내걸었다. 이 기를 당이라 고 하는데, 당을 걸어두는 기둥이 당간이다. 당간지주는 당간을 지탱하기위해 세우는 지주로서, 대개 사찰 입구에 세운다. 당간은 금동, 철 등 금속재를 사용하며, 당간지주는 거의가 돌로 만들어졌다. 현재 당간은 대부분 사라지고 당간지주만 남아 있다. 당간은 그곳이 신성한 곳임을 알리는 구실을 한다.

  1. 업경대(業鏡臺)

지옥의 염라대왕이 갖고 있다는 거울로, 죽은 이가 생전에 지은 선악의 행적이 그대로 비친다고 한다. 업경대는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지만 가끔 금속으로 된 것도 있다.

  1. 윤장대(輪藏臺)

경전을 넣은 책장에 축을 달아 회전하도록 만든 책장이다. 이것을 돌리면 경전을 읽은 것과 똑같이 공덕이 쌍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고려(1173년 명종3년)에 자엄대사가 세운 경북 예천의 용문사에 윤장대 2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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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제43차 한일불교문화교류대회 개막..양국 천태종 정신 공유

〔앵커〕 제43차 한일불교문화교류대회가 일본 천태종 총본산 교토 엔랴쿠지에서 개막했습니다. 양국... 인정하고 법우로서 존중하는 자세로 교류를 이어갈 것을 다짐하는 공동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BTN 뉴스 윤호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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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19
사찰 벽화이야기 - 부모은중 (父母恩重) - 흰뼈 검은뼈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부모은중 (父母恩重) - 흰뼈 검은뼈

<북지장사- 대구 동구> <br><br>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에 나오는 이야기로, 어느날 석가모니가 제자들과 길을 가다 흩어진 뼈 무더기를 발견하고 정중히 업드려 절하는 그림이다. 석가모니는 보잘것없는 뼈무더기에 예를 갖춘후 제자들에게 인연(因緣)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흔히 우리는 사람을 만날 때 ‘인연’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인연이란 말은 좋은 뜻으로 쓰는 경우가 많으나, 사실 인연은 좋고 나쁨의 관계는 없다. 좋은 만남도 인연이며 나쁨 만남도 인연이기 때문이다. 인(因)은 원인을 말하며, 연(緣)은 원인에 따라 가는 것이니. 즉, 인이 씨앗이라면 연은 밭이다. 그러므로 '인'만 있어서는 결과가 있을 수 없으며, '연'만 있어서도 그 결실은 없는 것이다. <br><br> ▮ 참으로 소중한 인연 사람은 제 혼자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그렇다고 땅에서 쑥 솟아난 것도 아니라 했다. 그러면 나는 어디서 왔을까? 사람은 자기의 업을 씨줄로 부모를 날줄로 하여 나서, 이 세상의 모든 것 들과 서로 인연지어지면서, 지금의 내가 만들어 졌다고 했다. 말하자면 한 알의 씨앗이 밭의 매체에 뭍혀 있다가 주위 환경의 영향을 받아가면서 조금씩 생장하듯
우리도 부모님을 매체로 이 세상에 태어나, 주위 사람들과 인연지어 가면서 살아온 것이 지금의 나의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 마음으로 부모의 은혜를 생각하기보다는 도리어 부모를 원망하고 저주하기도 한다. 못난 부모를 두었다는 사람은 부모덕을 못 받았다 하며 제 처지를 한탄하고 잘난 부모를 두었다는 사람은 부모의 그늘에 가리어 주눅 들었다며 제 처지를 한탄한다, 나의 근본을 가르쳐 주기 위하여 석가모니는 스스로를 해골더미에 절하고 있다. 만일 사람의 생이 지금 한번으로 그치는 것은 아니라. 불교의 가르침대로 다생겁(多生劫)으로 윤회한다면 모든 중생이 나의 부모요 나의 형제 아니라고 그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저 해골이 그 어느 전날에 나와 인연 맺어진 이 아니면 무어란 말인가 지금 이 뼈는 나의 그 옛날 나의 아버지의 뼈 일수도, 어머니의 뼈 일수도, 어쩌면 나와 인연 맺어졌던 이들의 뼈라고. 말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참으로 소중한 인연이다. ‘부모은중’은 우리 모두는 서로서로 인더라망 그물처럼 엮여진 인연을 느끼게 하는 그림이다. <br><br> ▮ 연기

연기란 인생이 서로 그물처럼 엮여진 인연이기에 일어난다고 했다. 연기란 모든 것은 원인과 조건이 있어서 생겨나 원인과 조건이 없어지면 소멸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此有故彼有)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 (此生故彼生)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고, (此無故彼無)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 (此滅故彼滅) 불교의 가장 근본적인 가르침은 ‘연기법’이라 할 수 있다. 불교 교리가 한없이 복잡한 듯하지만,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연기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다. 결국 연기법이란 존재의 ‘생성과 소멸의 관계성(關係性)’을 뜻하는 것인데. 생성과 소멸의 과정에서 항상 서로 의지하여 관계를 맺고 있어, 모든 존재는 그 존재를 성립시키는 여러 가지 원인이나 조건에 의해서 생겨나게 되어, 서로는 서로에게 원인이 되기도 하고 조건이 되기도 하면서 함께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즉 모든 존재는 전적으로 상대적이고 상호의존적이다. 요컨대 연기법은 “모든 괴로움은 절대적. 운명적인 것이 아니라 연기되어 있으므로, 그 조건과 원인을 파악하여 괴로움을 극복하라."라는 메시지를 함께 전해주고 있으며, 그 괴로움의 근본 원인은 인간 스스로의 ‘진리에 대한 무지[無明]’이며 ‘끝없이 타오르는 욕망의 불꽃[貪愛]’임을 밝혀주고 있는 것으로 설명되어진다.

<br><br> ▮ 모아보는 부모은중 <br><br> <고운사-경북 의성>

<br><br> <보광사-전남 담양>

<br><br> <성주사-경남 창원>

<br><br> <직지사-경북 김천>

<br><br> <청량사-경북 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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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병쇄수현 (甁碎水懸) - 물병깨기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병쇄수현 (甁碎水懸) - 물병깨기

<금산사- 전북 김제>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오는 이야기로 두 스님 앞에서 한 남자가 줄에 메 달린 물병을 깨트리고 있는 그림이다.

그들은 왜 그러고 있는 것일까 ?

7세기 우리나라에서 불교계 큰 인물 3명을 꼽는다면 당연히 의상(義湘). 원효(元曉). 그리고 부설(浮雪)을 꼽는데

그들 중, ‘부설’은 스님이었지만, 중도에 결혼하게 되어서 ‘거사’로 불리고 있다.

불국사 스님이었던 부설스님은 잘 알고 지내던 두 스님들과 의견이 모아 높은 공부를 위해 득도(得道)에 좋다는 오대산으로 가기위한 여정에 오르게 된다.

그렇게 가던 중 부설스님은 사정이 생겨 중도(中途)에 포기하려 하고, 일행의 만류에도 뜻을 굽히지 않아 결국 부설스님만 남겨 두고 다른 두 스님은 목표로 했던 데로 오대산으로 떠나게 된다.

동료와 떨어진 부설스님은 동료 스님들과는 길은 달랐지만, 가정을 이루고. 아들딸을 낳아 살면서 틈틈이 재가불자로 열심히 수행에 매진하며 하루하루를 보네고 있었다.

10여년이 지난 어느 날,

드디어 오대산에 만족스런 공부를 마친 두 스님은 의기양양 경주로 돌아오게 되는데, 재가 불자로 살고 있는 부설거사가 궁금해 찾아오게 된다.

내 한 몸 던져 집중해도 이루기 힘든 도의 길인데, 처자식을 거느리고 도를 닦는다니, 수행이 제대로 될 리가 있겠는가.

그렇게 부설의 득도는 물 건너 가버렸겠구먼!”

하면서, 출가자의 본분을 외면한 채 가족을 봉양하며 참선한다는 부설거사 앞에 나타나 멋지게 차려입은 스님옷 가사장삼을 바람결에 휘날리며 훈계하며 의시대고 있다.

그런 두 도반스님들 에게 부설거사는 서로의 도력을 증명하자면서, 마당에 걸려있는 줄에 물병을 매달고 물병 깨기를 해 보기로 의견이 모았다.

찾아 온 두 스님은 줄에 달린 물병을 깨트리자 병속의 물도 바로 쏟아 내렸지만,

부설거사가 깨트린 병속의 물은 신기 하게도 흘러내리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런 부설거사의 이야기 에서 불교의 신통력을 자랑함이 아니라면, 부설거사의 물병 깨기를 통해 과연 우리에게 어떤 뜻을 전하기 위함일까?

물병은 내가 담아두고 있는 내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의 모습이며,

깨진 물병에서 물이 순식간에 땅바닥으로 쏟아져 내린다는 것은, 공한 충격에서 가치를 지켜내지 못하고 깨진 병과 함께 그렇게도 쉽게 무너지는 ‘허상의 가치’라 설명하고 있다.

반하여

부설거사의 깨진 물병에서도 쏟아져 내리지 않는 물방울은 어던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수행의 높은 경지를 나타내고 있음을 전하고 있다.

▮ 부설거사의 재가 수행

남들이 장에 간다고 거름지고 따라간다는 말이 있지만.

부설거사는 오대산으로 공부하러 가는 동료를 따라 붙지 않고 자기 길을 선택하여 재가자로 남게 된다.

자신을 한없이 초라하게 만드는 것은 항상 나를 남과 비교하는 원인에서 생긴다고 하는데.

우리는 서로 다른 곳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잇듯, 삶에서도 더함 도 못함도 따로 정해진 것 없는 것이다.

멀리 있기에 아름다워 보일 수 있는 상대의 부러운 그 모습이 허상이라면. 지금 내 앞에 주어진 참 현실이 실상임을 인정하고,

현실을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마주 할 때.

바야흐로, 헛된 망상을 쫓는 집착의 늪으로 부터 단멸(斷滅)로 벗어나게 될 것이다.

부설거사가 물병을 깨트리는 소리에는

부처님가르침의 길은 하나의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너의 삶도 법, 지금 내 삶도 법, 이 모두가 법이다’ 라는 소리로 들리는 듯하다.

‘병쇄수현’에서는 몸은 비록 팍팍한 속가에 의탁해 살고 있지만 이런 나의 삶 또한 수행의 기쁨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는 교훈을 그려내고 있다.

▮ 회향

요즘 젊은이들이 쓰는 말에는,

변화하는 현실을 바로보지 못한 체, 된장 냄새나는 과거 지식이나 붙들고 자아도취에 빠져 교만 부리며, 과거 영웅담을 들먹거리며 있는 모습을 ‘라떼족’이라 부르는데

그 뜻을 알아차리지 못한 체. 알량한 자존심 높임에만 열중하는 모습을 주위에서 쉽게 봅니다.

"어릴 적에는 꿈을 먹고 살고 나이 먹으면 추억을 먹고 산다"했습니다.

나 때는 말이야~ 로 시작하는 어른들의 끝도 없는 옛날 타령

그도 그럴 것이, 팍팍하고 험하디 험한(?)세월을 살아오면서 보고 느꼈던 지혜이며 경험했던 것이기에...

젊은이에게도 한 동안은 그게 먹혔겠지만

급변하게 변하는 디지털세계

남을 이해 할 엄두도 못 낸 채로 그렇게 내가 지키고자 하는 소중한 패러다임은

깨진 물병처럼 이제 더 이상 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무시될 것임을 직시

세상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하고 있는 것임을 우리 어른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젊은 이들에게 라떼족이라는 말을 안 듣겠지요.^^

항상 무었이든 열씸하여 순간순간 행복 하시길요

▮ 모아보는 병쇄수현

:: 각화사-경북 봉화

사찰벽화이야기 36- 병쇄수현 <s>(</s>甁碎水懸) --- 물병깨기

<금산사- 전북 김제>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오는 이야기로 두 스님 앞에서 한 남자가 줄에 메 달린 물병을 깨트리고 있는 그림이다.

그들은 왜 그러고 있는 것일까 ?

7세기 우리나라에서 불교계 큰 인물 3명을 꼽는다면 당연히 의상(義湘). 원효(元曉). 그리고 부설(浮雪)을 꼽는데

그들 중, ‘부설’은 스님이었지만, 중도에 결혼하게 되어서 ‘거사’로 불리고 있다.

불국사 스님이었던 부설스님은 잘 알고 지내던 두 스님들과 의견이 모아 높은 공부를 위해 득도(得道)에 좋다는 오대산으로 가기위한 여정에 오르게 된다.

그렇게 가던 중 부설스님은 사정이 생겨 중도(中途)에 포기하려 하고, 일행의 만류에도 뜻을 굽히지 않아 결국 부설스님만 남겨 두고 다른 두 스님은 목표로 했던 데로 오대산으로 떠나게 된다.

동료와 떨어진 부설스님은 동료 스님들과는 길은 달랐지만, 가정을 이루고. 아들딸을 낳아 살면서 틈틈이 재가불자로 열심히 수행에 매진하며 하루하루를 보네고 있었다.

10여년이 지난 어느 날,

드디어 오대산에 만족스런 공부를 마친 두 스님은 의기양양 경주로 돌아오게 되는데, 재가 불자로 살고 있는 부설거사가 궁금해 찾아오게 된다.

내 한 몸 던져 집중해도 이루기 힘든 도의 길인데, 처자식을 거느리고 도를 닦는다니, 수행이 제대로 될 리가 있겠는가.

그렇게 부설의 득도는 물 건너 가버렸겠구먼!”

하면서, 출가자의 본분을 외면한 채 가족을 봉양하며 참선한다는 부설거사 앞에 나타나 멋지게 차려입은 스님옷 가사장삼을 바람결에 휘날리며 훈계하며 의시대고 있다.

그런 두 도반스님들 에게 부설거사는 서로의 도력을 증명하자면서, 마당에 걸려있는 줄에 물병을 매달고 물병 깨기를 해 보기로 의견이 모았다.

찾아 온 두 스님은 줄에 달린 물병을 깨트리자 병속의 물도 바로 쏟아 내렸지만,

부설거사가 깨트린 병속의 물은 신기 하게도 흘러내리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런 부설거사의 이야기 에서 불교의 신통력을 자랑함이 아니라면, 부설거사의 물병 깨기를 통해 과연 우리에게 어떤 뜻을 전하기 위함일까?

물병은 내가 담아두고 있는 내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의 모습이며,

깨진 물병에서 물이 순식간에 땅바닥으로 쏟아져 내린다는 것은, 공한 충격에서 가치를 지켜내지 못하고 깨진 병과 함께 그렇게도 쉽게 무너지는 ‘허상의 가치’라 설명하고 있다.

반하여

부설거사의 깨진 물병에서도 쏟아져 내리지 않는 물방울은 어던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수행의 높은 경지를 나타내고 있음을 전하고 있다.

▮ 부설거사의 재가 수행

남들이 장에 간다고 거름지고 따라간다는 말이 있지만.

부설거사는 오대산으로 공부하러 가는 동료를 따라 붙지 않고 자기 길을 선택하여 재가자로 남게 된다.

자신을 한없이 초라하게 만드는 것은 항상 나를 남과 비교하는 원인에서 생긴다고 하는데.

우리는 서로 다른 곳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잇듯, 삶에서도 더함 도 못함도 따로 정해진 것 없는 것이다.

멀리 있기에 아름다워 보일 수 있는 상대의 부러운 그 모습이 허상이라면. 지금 내 앞에 주어진 참 현실이 실상임을 인정하고,

현실을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마주 할 때.

바야흐로, 헛된 망상을 쫓는 집착의 늪으로 부터 단멸(斷滅)로 벗어나게 될 것이다.

부설거사가 물병을 깨트리는 소리에는

부처님가르침의 길은 하나의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너의 삶도 법, 지금 내 삶도 법, 이 모두가 법이다’ 라는 소리로 들리는 듯하다.

‘병쇄수현’에서는 몸은 비록 팍팍한 속가에 의탁해 살고 있지만 이런 나의 삶 또한 수행의 기쁨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는 교훈을 그려내고 있다.

▮ 회향

요즘 젊은이들이 쓰는 말에는,

변화하는 현실을 바로보지 못한 체, 된장 냄새나는 과거 지식이나 붙들고 자아도취에 빠져 교만 부리며, 과거 영웅담을 들먹거리며 있는 모습을 ‘라떼족’이라 부르는데

그 뜻을 알아차리지 못한 체. 알량한 자존심 높임에만 열중하는 모습을 주위에서 쉽게 봅니다.

"어릴 적에는 꿈을 먹고 살고 나이 먹으면 추억을 먹고 산다"했습니다.

나 때는 말이야~ 로 시작하는 어른들의 끝도 없는 옛날 타령

그도 그럴 것이, 팍팍하고 험하디 험한(?)세월을 살아오면서 보고 느꼈던 지혜이며 경험했던 것이기에...

젊은이에게도 한 동안은 그게 먹혔겠지만

급변하게 변하는 디지털세계

남을 이해 할 엄두도 못 낸 채로 그렇게 내가 지키고자 하는 소중한 패러다임은

깨진 물병처럼 이제 더 이상 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무시될 것임을 직시

세상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하고 있는 것임을 우리 어른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젊은 이들에게 라떼족이라는 말을 안 듣겠지요.^^

항상 무었이든 열씸하여 순간순간 행복 하시길요

▮ 모아보는 병쇄수현

:: 각화사-경북 봉화

:: 동림사- 경남 김해

:: 반룡사- 경북 고령

:: 선암사- 부산 진구

:: 직지사- 경북 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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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49재동안 8일째 날
문화

불교문화 - 49재동안 8일째 날

분노부제존(忿怒部諸尊)의 자기구제법…살아 생전에 화를 낸 업력이 나타남 죽은뒤 둘째 7일 동안에 성낸 모습 짓는 불보살을 만나게 된다. 자비의 모습으로 인도받지 못한 중음신은 분노의 모습을 통해 이끌림을 받게 된다. 악업을 지은 중음신은 분노하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친근감이 일어나 고향에 돌아 온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불보살은 중생의 악한 성품을 잘 알고 있기에 가지가지 성내는 모습을 나투어 그 중생을 제도한다. 이것은 중생을 괴로움에서 건지려는 불보살의 자비이자 스스로의 깨달음의 성품이 스스로를 회복하려는 자연스런 움직임이다. 이때 중음신은 이런 현상이 불보살의 자비이고 스스로의 의식이 지어낸 현상임을 알아 겁내거나 달아 나서는 안된다.

이와 같은 제도법을 한번 보게 되면 의식이 아홉배나 맑아진 중유기에서 바르고 두려움없이 윤회를 벗어 날 수 있다. 이것은 중유기에서 자기를 제도할 수 있는 오직 한 가지 방법이니 종교와 상관없이 다른 방법으로 자기를 구할 수 없다.

죽은뒤 8일째 되는날. 피를 빨아 먹는 성난 모습의 존자가 나타난다.

짙은 홍갈색의 몸을 하고 얼굴 셋에 손이 여섯이고, 발은 넷이다. 오른쪽 얼굴은 흰색, 왼쪽얼굴은 붉은색, 가운데 얼굴은 흙갈색으로 온 몸이 불꽃에 휩싸여 있고 아홉개의 눈으로 빛을 쏘아 내고 있다. 날카로운 이빨과 눈썹에서는 번개 같은 빛을 내고 산이 무너지는 큰소리로 ‘아라하,하하!’하고 소리친다.이는 비로자나부처님께서 중음신을 건져주려고 나타낸 모습이다. 절대 겁내지 말고 한 마음으로 염불하면 정토에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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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되살아난 물고기, 원효와 혜공대사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되살아난 물고기, 원효와 혜공대사

원효와 혜공스님은 서로 아주 친한 사이였습니다.

그래서 두 분이 만나면 언제나 서로 농담을 하면서 담소를 나누곤 했습니다.

두 분 모두 도통한 스님이셨습니다.

원효스님은 여러 경책을 집필하다가 의문점이 생기면

혜공스님이 계신 항사사라는 절을 찾아가 묻고 답하며

서로 토론으로 답을 찾았다고 전합니다.

그날도 원효스님과 혜공스님은 이런 저런 법담을 나누며 냇가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마침 냇가에는 동네 사람들이 물고기를 많이 낚아, 거하게 잔치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두 스님을 발견하자 함께 먹을 것을 권했습니다.

딱 봐도 덕이 높아 보이는 스님들이라 고기나 생선을 안 먹겠거니 생각하고

일부러 골탕을 먹이려고 심술을 부린 것입니다.

"스님, 이 물고기 좀 잡수세요. 여기 이 새우도 참으로 맛나답니다."

그러자 두 스님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냥 음식을 받아 드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본 동네 사람들은 아니 스님이 생선을 잘도 먹는다면서 인상을 찌푸리며

마음속으로 욕하거나 자기들만 들리는 작은 소리로 흉을 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뒤 두 스님이 냇가에 변을 보았더니,

두 사람 몸에서 배출된 대변이 모두 물고기로 되살아나면서

개울로 헤엄쳐 가는 것이었습니다.

두 스님은 헤엄쳐 가는 물고기를 보면서 껄껄 웃으며 소리쳤습니다.

"저게 내 물고기다. 이게 내 고기구나. 허허허"

두 고승의 신통은 먹어버린 물고기마저 되살려 놓았습니다.

원래의 것을 있던 자리로 되돌려 놓는다는 것은 이미 도를 깨우쳤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두 고승의 신통을 본 마을 사람들은 스님들에게 큰 절을 하며 잘못을 뉘우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 절의 이름이 '내 물고기'라는 뜻의 오어사吾魚寺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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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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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미술여행 - 범종
문화

사찰미술여행 - 범종

지극한 음률로서 중생들에 불법 전하다

▲ 국보 제29호 성덕대왕 신종, 높이 333㎝·입지름 227㎝, 771년, 국립경주박물관.

섣달 그믐날 종을 33번 울리는 의식을 통해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제야의 종은 1953년부터 시작되어 이제는 연말이면 꼭 거쳐야하는 행사가 되었다. 종을 타종하며 옛 것을 보내고 새해를 맞는 이 전통은 원래 사찰에서 음력으로 섣달 그믐날 밤 108번뇌를 떨쳐내는 의미로 범종을 108번 타종하는 법식을 본 딴 것이다. 사찰에서 종을 울리는 법식은 ‘증일아함경’에 나오는 7월 보름 부처님 말씀을 받들어 대중을 모으는 신호음으로 간타(GHANTA)를 울리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범종을 치는 횟수는 법식에 따라 다른데 저녁에는 욕계, 색계, 무색계의 28처 하늘에 종소리가 닿기를 염원하며 28번을 타종하고 새벽에는 선견천을 포함한 33천에 울려 퍼지라는 기원을 담아 33번 종을 친다.

모든 면서 세계 제일은 한국 종 천지 진동하는 부처되는 가르침

항상 비어 있어 울릴 수 있으니 울림은 끊임없고 영원히 이어져 무거워서 돌지 않고 항상 올곧아

조선시대 백성들에게 통행금지를 알렸던 타종의 횟수도 사찰과 같아서 저녁에는 밤하늘 동서남북의 별자리인 28수를 상징하여 28번치고 새벽에는 28수에 하늘 중앙 다섯 별자리를 합하여 33번 쇠북을 울렸다. 승계와 속계에서 종 치는 의미는 차이를 보이지만 횟수가 동일한 것으로 보면 아마도 통행금지를 알렸던 민가에서 종치는 의식도 사찰의 타종방법을 따와서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의 범종은 ‘한국 종(Korean Bell)’이라는 학명이 붙을 만큼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자적인 양식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같은 문화권인 중국이나 일본의 종과도 다르다. 이 두 나라의 종은 꼭대기에 소리를 깊고 넓게 퍼지게 하는 음통이 없고 종을 매다는 용도의 용뉴도 머리가 두 개 달린 쌍룡이다. 그리고 종의 몸통에 새긴 문양도 전체적으로 여백이 없이 빽빽이 채워 답답한 느낌이 들게 한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 종은 한 마리 용으로 만들어진 용뉴장식 옆에 종의 몸체와 맞뚫려 있는, 만파식적을 형상화했다는 대나무 형태의 음통이 있다. 종의 몸통에 새겨진 문양에 있어서도 일단 종의 어깨부위를 의미하는 상대와 몸통 끝 부분인 구연부에 보상당초문양의 띠를 둘러 가장자리를 정리하였다. 그리고 상대 아래는 9개의 유두가 새겨진 네모난 유곽 4개를 새겨 넣고 그 아래 몸통에 주악비천상을 두는 것이 전부이다. 절제를 통한 정돈된 여백의 미를 살려낸 우리 선조의 미의식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에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 성덕대왕 신종의 비천.

한국 종은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외형적 아름다움뿐 아니라 실질적인 종의 기능이라 할 수 있는 귀로 듣는 웅장한 울림소리에서도 비교할 대상을 찾을 수 없는 최고의 예술품이다.

특히 소리가 길게 울려 퍼지는 맴돌림 현상이라는 긴 떨림 음은 세계 어디의 종도 따라올 수 없다. 성덕대왕 신종에 새긴 명문의 서문(序文) 가운데 ‘비어 있으면서 능히 우니 그 울림은 끊임이 없으며, 무거워서 돌지 아니하니 그 모양이 이지러지지 않는다’라는 글귀는 우리나라 범종의 웅장한 울림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 명문에 따르면 부처님의 교법은 천지 사이 진동하는 인간은 들을 수도 없는 너무나도 큰 일승지원음(一乘之圓音)이기에 이를 깨닫게 하기 위해 신종(神鍾)을 만들었다고 했다.

고로 범종의 울림은 부처의 맑고 고운 음성으로 전달되는 진리의 말씀이기에 사찰에서 아침과 저녁으로 울리는 종소리는 세상으로 퍼지는 천상의 음률이고 사바세계 살고 있는 대중들에게 부처의 진리를 체득하게 하는 법음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동종은 통일신라 성덕왕 24년(725)에 만들어진 상원사 동종이다. 이 종이 원래 소장되었던 사찰은 알 수 없고 1469년 안동의 누문에 걸려 있던 것을 국명에 의해 상원사로 옮긴 것이라 상원사 동종으로 부르고 있다. 상원사 동종의 몸체 중앙에는 천공에서 천의를 날리며 공후와 간(竿), 생황(笙簧) 등을 연주하는 천인이 쌍을 이룬 주악비천 4구가 새겨져 있다.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형상을 생동감 있게 나타내기 위해 솟구쳐 흩날리고 있는 긴 천의 자락을 마주 보고 있노라면 마치 밑에서 바람이라도 부는 듯한 착각이 든다. 생황을 부는 천인의 볼은 바람이 들어가 잔뜩 부풀어있으며 그 옆, 두 눈을 살포시 내려 뜨고 긴 손가락으로 공후의 현을 튕기는 천인의 얼굴에는 거장의 기품이 서려있다. 쇳물을 녹여 주조한 종의 표면에 조각을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마치 살아있는 연주자들을 눈앞에서 보는 듯하다. 우리나라 주악비천 가운데 최고로 평가 받는 이 비천상은 선조들의 우수한 주조기법이 유감없이 발휘되어진 매우 세밀하고도 조형미가 뛰어나 ‘세밀가귀’라는 문구가 딱 맞는 수작이다.

통일신라시대 범종 대부분이 주악 비천상을 몸체에 새기고 있는 것에 반해 771년에 주조된 성덕대왕 신종은 유일하게 한 쌍이 아닌 단독상이면서 악기가 아닌 손에 드는 향로를 쥐고 있는 공양비천이다. 아마도 성덕대왕의 명복을 기원하기 위해 국가적인 발원을 담은 특수한 목적을 가진 종이라는 점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천인보다는 경건하게 공양하는 비천상이라는 이례적인 모습을 택하였을 것이다. 천인의 두 손에 모아 쥔 향로는 꽃잎이 벌어진 활짝 핀 연꽃송이와 같고 연화대좌 위 무릎을 꿇은 모습은 퍼져가는 종소리를 따라 어디라도 날아갈 듯 발등을 땅에 댄 머무는 자세가 아니라 움직임이 용이하게 발등을 접어 엉덩이를 받쳐 올린 형태이다.

▲ 국보 제36호 상원사 동종 몸체와 유곽의 주악비천상, 725년, 강원도 평창군 상원사.

사실적인 표현을 위해 한 곳도 놓치지 않으려했던 작가의 세심함은 마침내 비천의 시선처리에서 극을 달린다.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따라 살포시 고개를 들어 천공을 바라보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진실된 마음으로 성덕대왕의 왕생극락의 기원을 담아 올리는 공양자의 간절함이 느껴져 도취될 정도이다. 임금의 명을 받들어 만든 종이니 당연히 당대 최고의 예술가에 의해 제작되었을 것이지만 표현하고자하는 의도를 정확히 전달할뿐 아니라 궁극의 아름다움까지 갖춘 작가의 기량에는 뭐라고 덧붙일 말이 없다.

올 한해도 여기저기서 많은 소리들이 있었다. 가슴에 담고 싶지 않은 나쁜 소리들을 다 떨쳐 버리라고 아마도 한 해가 저무는 세모의 계절은 성탄절의 종을 비롯해 제야의 종까지 종소리와 함께하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있지 않아 변함없이 들려올 그믐날 밤 종소리가 부처님의 법을 알리는 진실된 울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올해는 꼭 마음속에 새겨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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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구룡토수 (九龍吐水) - 거룩한 탄생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구룡토수 (九龍吐水) - 거룩한 탄생

<br><br> 아기석가가 태어나자 하늘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내려와 5색의 물을 뿜어 목욕을 시켜주고 있는 그림이다.

구룡(九龍)이 가지고 온 5색의 물은 인도 전역에 있는 강(江)이라는 의미로.

비록 카필라라는 작은 나라의 왕자로 태어났지만, 장차 인도전역을 통일시키는 대업을 달성해달라는 선왕이 태자에게 거는 기대의 표출이기도 했다.

<br><br> ▮ 일곱 번째 발걸음....... ‘천상천하유아독존’을 선언하다.

석가모니 탄생 설화에서는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발자국’을 걸은 다음,

오른손과 왼손으로 각각 하늘과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 선언을 하였다고 한다.

사전적 의미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 한 것은 나다’ 라고 해석되는데.

이 선언적 메시지로 우리가 왜 존엄하게 살아야 하는지를 막 이야기 하려는 모습이다.

원하지 않는 나쁜 버릇이 오늘도 어제처럼 습관돼어 쉽게 반복해버리는 것을 업식(까르마)이라 한다.

여섯 발자국이란,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계의 육도윤회의 굴레에 갇힌 중생계라 하는데

어쩌면, 이를 여섯 가지 나쁜 버릇을 쳇바퀴에 갇힌 ‘까르마’로 볼 수 있다.

  • 지옥: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모르고, 항상 불행하다 느끼는 마음이다.

  • 아귀: 욕망의 세계로 어떤 것이건 만족하지 못하는 탐욕의 마음이다

  • 축생: 남을 베려하지 못하고 내 것만 소중하다 생각하고 죽기 살기로 움켜지는 마음이다.

  • 수라: 시기, 질투심으로 항상 싸움을 자처하는 불행한 마음이다.

  • 인간: 앞선 4개의 관문을 통과 하였지만 아직도 완전한 행복을 느끼지 못한 상태이다.

  • 천상: 영원히 살 수 있는 세계이기에 죽지 못하는 고통이 따르는 세계다.

업식(까르마)에 갇혀 육도를 반복하는 타성의 껍질을 깨고나온 위대한 일곱 번째 발자국으로

나의 존엄함을 맞이하는 소중한 걸음이며. 바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지키는 마음이다 <br><br> ▮ 모아보는 구룡토수

<석남사-울산 울주><br><br><br><br>

<신흥사-경북 김천> <br><br><br><br>

<심복사-경기 평택> <br><br><br><br>

<운문사-경북청도> <br><br><br><br>

<칠불사-경남 하동><br><br><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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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미술여행 - 새해 불화가 들려주는 덕담 신중과 성신 통해 무병장수·소원성취 기원
문화

사찰미술여행 - 새해 불화가 들려주는 덕담 신중과 성신 통해 무병장수·소원성취 기원

▲ ‘제석천룡도’, 1750년, 비단채색, 173×204cm, 국립중앙박물관.

정말 다사다난이란 말이 딱 맞았던 한 해가 가고 정유년 새해가 왔다. 새로운 한 해 모든 일이 형통하길 바라는 마음에 만나면 첫인사로 서로 덕담을 건네는데 가장 일반적인 내용은 한마디로 ‘건강히 오래오래 장수무병하시고 부자 되셔서 행복하시길 바란다’는 것이다. 사찰에서도 일반 가정집과 같이 ‘통알’이라는 신년하례인사를 하며 한 해 평안하고 건강하게 보내자는 첫출발의 마음을 다잡는다. 사실 덕담으로 건네는 부자 되고, 오래 살고, 복 많이 받으란 말들은 속세의 탐진치 삼독에 걸리는 물질과 욕심에 기인하는 말들이다. 필자도 납의(衲衣)의 출가수행자처럼 이 세상을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무소의 뿔처럼 멋지게 혼자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다. 하지만 그러한 경지는 까마득히 높은 산꼭대기에 꽂힌 깃발처럼 눈에는 보이지만 부단히 마음을 닦는 노력 없인 이루지 못할 꿈이란 것을 알기에 새해가 되면 불특정 다수의 신에게 올 한해도 복 많이 받아 건강히 행복하게 살게 해달라는 기원을 남발하는 범부의 희망을 품고 산다.

신중은 수승한 능력 신들 조합 신중기도로 재앙 사라지길 염원 염원 성취 신속한 회답 바라며 ‘치성광여래도’ 북두칠성 그려

새해에 기원하는 수많은 소원을 이루어 주는 수승한 능력을 가진 신들이 종합세트로 구성된 조합이 바로 신중(神衆)이다. 때문에 사찰에서는 해가 바뀌면 신중기도를 올려 화엄신중의 옹호 하에 불법공부에 전념하게 해달라는 기원과 함께 모든 재앙은 사라지고 소원성취하기를 바라는 염원을 기도한다.

사찰에 걸린 불화를 불교미술 초발심자들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 필자는 종종 사진에 비유하곤 한다. 석가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영산회상도는 석가부처님을 중심으로 영축산의 야단법석에 참석했던 성중들이 모여 함께 찍은 단체기념사진이고 아미타내영도는 아미타여래와 협시보살님들이 극락왕생을 바라는 영가를 맞이하는 모습을 찍은 스냅사진이다. 같은 방식으로 신중도를 풀이해 보면 우리들 범부가 염원하는 이 모든 꿈들을 들어주는 각각의 신들이 한자리에 모여 단체로 기념촬영한 모습이다.

본래 신중이란 인도의 신화와 종교에서 유래한 신들을 불교에서 수용하여 부처와 그 가르침을 수호하는 호법신중으로, ‘화엄경’에 나오는 39위 화엄신중이 그 시작이지만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전래되면서 거기에 각각의 지역에서 호응이 높은 천신들이 더해져 104위까지 그 수가 늘어나고 있다. 신중화에 등장하는 천신들은 각각 재난을 제거하는 식재(息災), 행복과 장수, 사업의 번창을 비는 연수(延壽)와 증익(增益), 그리고 재앙의 악신이 범접하지 못하게 하는 항마의 역할을 한다. 때문에 신중화를 그려 봉안하는 마음에는 사는 동안 재앙을 물리고 복을 누리며 무병장수하는 기원이 있는 것이다. 신중도에 그려지는 인물들이 천룡팔부중, 사천왕 등 갑옷과 무기류를 손에 들고 있는 무장형의 인물들이 많은 이유는 불교가 국가의 통치이념이었던 시절 신중은 국가를 안위하고 백성들의 평안을 염원하는 호국신앙적인 성격이 강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중화 속의 무장들은 나라를 지켜주는 천신들로 조직된 막강한 군대와 같다. 하지만 신앙의 성격이 타력적 기복신앙으로 변천되면서 신통에 의한 개인적인 염원을 이루는 신비주의 경향이 강조되게 되었고 이에 우리나라 민간신앙을 받아들여 산신(山神), 정신(井神), 칠성(七星)과 같은 토속신들이 더해지게 되었다.

신중도는 제석천도에서 시작되었다. 여신 혹은 보살형으로 그려지는 제석천은 벼락을 무기로 악마를 정복하는 신들의 제왕으로 장수와 복을 주는 천신이다. 일설에서는 신중의 기능이 불법을 수호하는 신장적 기능이 강하기 때문에 따로 전각을 마련하지 않고 사찰의 주전각에 봉안된다고 한다. 하지만 17세기 월저당 도안의 ‘北辰殿記(북신전기)’에 따르면 북두칠성을 모시는 전각에 천궁의 제석과 명왕이 함께 모셔지고 있어 호법신장적 의미와 더불어 각각의 특성에 따른 기원이 있어 주전각과 별도로 따로 모셔지고 있었다.

▲ ‘향림사 치성광여래 설법회도’, 조선후기, 지본채색, 188×187㎝. 국립중앙박물관.

신중도와 같이 새해의 덕담 등의 소원을 들어주는 신들이 그려진 불화가 ‘치성광여래도’이다. 우리에게 ‘칠성도’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이 그림은 밤하늘의 북두칠성을 의미하는 치성광여래를 중심으로 고대로부터 우리민족이 신앙했던 해와 달을 비롯하여 별들의 신을 그린 것이다. 화면의 중앙 치성광여래 아래 보관을 쓰고 앉아 흰 수염이 멋진 위엄 있는 노인은 자미대제를 그린 것이다. 자미대제는 도교에서 북극성을 의미하는 천신으로 일본에 남아 있는 안택(安宅)을 기원하는 부적에는 북극성신인 현무대제가 그려지고 있어 북극성은 새해 첫 달인 정월 한 가정의 안녕과 번영을 비는 성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본래 중국에서 한반도로 전래된 ‘치성광여래도’에는 북두칠성이 아닌 구요(九曜)가 함께 그려져 있었다. 밤하늘의 북두칠성이 인간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성수신앙은 한민족의 뿌리 깊은 민족 신앙이었기에 조선 후기부터 ‘치성광여래도’에는 구요가 아닌 북두칠성이 화면의 주요 구성체가 되고 있다. 북극성신과 함께 그려진 북두칠성 일곱 별은 각각 이루어 주는 소원이 정해져 있다. 북두 제1 천추성(天樞星)은 자손만덕이요, 제2 천신성(天璇星)은 장애와 재난을 없애준다. 제3 천기성(天璣星)은 업장을 소멸해주고, 제4 천권성(天權星)은 바라는 바를 들어준다. 제5 옥형성(玉衡星)은 백 가지 장애를 없애주며, 제6 개양성(開陽星)은 복덕을 고루 갖추게 한다. 마지막으로 요광성(搖光星)은 수명을 길게 해주며, 북두칠성 일곱 별은 약사칠불과 같은 의미를 담아 칠성여래라는 부처님으로 그려지고 있다. ‘치성광여래도’에 그려진 모든 별들은 인간세상의 고뇌와 고통을 없애주는 신성을 지니고 있었기에 이전 조선전기 이 그림은 재앙을 없애준다는 의미에서 ‘소재회도(消災繪圖)’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한 폭의 그림에 안택을 기원하는 불교와 도교의 북극성신이 다 그려졌던 까닭은 염원의 성취에 대한 신속한 회답을 바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나의 화면에 인간의 길흉화복과 수명을 주재하고 자손을 번창하게 해 준다는 북두칠성이 칠성여래와 칠원성군, 동자칠원성군의 3중적 구조로 그려진 이유도 세 배로 빠르게 소원을 들어달라는 기원자의 염원이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이 신중신앙과 권선서(勸善書)의 영향에 의한 것이고 칠성신앙의 분파 확대에 따른 것이란 학술적 연구가 있지만 보는 대로 느끼는 필자의 감상은 그러하다.

‘신중도’와 ‘치성광여래도’에 그려진 신중과 성신(星辰)은 ‘그대에게 닥쳐올 재앙은 모두 사라져 복 많이 받고 무병장수하시고 모든 소원성취 하시오’라는 덕담을 사시사철 사부대중에게 건네고 있다. 새해 새로운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하고픈 마음에서 인간의 의지대로 풀 수 없는 마법과 같은 기적을 바라는 소원을 담아 정초 사찰을 찾은 도반님들은 마음을 열어 천신들이 건네는 덕담을 잘 들으셔서 새해 소원성취 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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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열반1. 쌍림열반상 (雙林涅槃相) -자등명법등명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열반1. 쌍림열반상 (雙林涅槃相) -자등명법등명

<은해사- 경북 영천>

식중독과 심한 설사로 기력이 다한 석가모니는 죽음의 시기가 가까이 왔음을 느낀다. 간신히 구시나가라 라는 마을에 이르러 나무 아래 오른팔을 고인’ 자세로 비스듬히 누우며 눈을 감으니 그날이 2월15일, 그의 나이 80세였다. 영원한 것은 없다, 이 세상에 온(生) 것은 누구든 반드시 떠나게(滅) 된다. 아무리 큰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라도 예외는 없다.

▮ 죽음의 기록 수많은 종교들이 교주의 죽음을 신비화해 온 것과 달리 불교에서는 교주 석가모니의 죽음을 음식에 의한 급성식중독을 죽음의 원인으로 기록하고 있어 놀랄 만큼 평범하다. 왜? 보통의 인간으로 겪을 수 있는 아주 평범한 죽음의 원인으로 교주의 죽음을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 불교는 사후세계를 내건, 허망한 기대를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자신을 통한 삶의 변화(지혜)를 통해 현실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 석가의 마지막 큰 가르침 ‘자등명법등명’ 깨달은 후 처음으로 중도를 설한 후 45년간의 수많은 말을 남겼지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무엇인가 기력이 다한 석가모니가 몸을 가누지 못해 비스듬히 누운 채 열반에 들려하자 그의 곁에서 시중을 들고 있는 제자 아난[阿難]이 흐느끼면서 석가모니에게 마지막 설법을 간청하게된다. ‘아난’의 청을 받아들여 그를 기억하게 하는 유명한 가르침 자등명법등명(自燈明法燈明) 을 남기게 된다. ‘자등명법등명이란 뜻은 ’자신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의지하라‘ 이다. ‘쌍림열반상’에서는 석가가 이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유지를 통해 인간 사이에서 생기는 갈등을 항상 남 탓으로 돌리는 행동은 상대의 생각에 따라 이리 저리 마음이 움직이는 그 사람의 종從이 되어있는 모습으로 보며. 나(我) 라는 것은, 내 생각 이상으로 강하고, 아름답고, 존엄하다. 함을 믿고 나를 믿고, 나의 소리를 내며, 나의 행동 할 때 비로소 나의 삶은 주도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동력을 갖게 된다는 가르침을 깨닫게 한다..

▮ 모아보는 쌍림열반상

<관암사-대구동구>

<내원사-경남양산>

<약사사-경기평택>

<영원사-경기이천>

<용궁사-부산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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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부처님 제자 Ⅰ. 십대제자 이야기 1.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부처님 제자 Ⅰ. 십대제자 이야기 1.

사찰 벽화로 배우는 부처님의 지혜

Ⅰ. 십대제자 이야기

  1. 바라문 스승을 버린 출가인연, 사리불존자

  1. 천상과 지옥을 다녀오다, 목련존자

  1. 연꽃을 전한 부처님 마음, 가섭존자

  1. 바느질로 만든 공, 수보리존자

  1. 법을 전하는 마음가짐, 부루나존자

  1. 마음의 눈으로 본 세상, 아나율존자

  1. 말이 아닌 지혜로 논의, 가전연존자

  1. 내 마음 속이지 않는 것이 계율정신, 우바리존자

  1. 부처님의 훈계, 라훌라존자

  1. 벼랑 끝에 올라선 아난존자

부처님에게는 뛰어난 제자들이 많았습니다. 『유마경維摩經』에서는 그 가운데 각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한 열 분을 십대제자라고 불렀습니다. '부처님은 어떤 분이셨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긴다면, 바로 이 분들의 모습을 모두 합하면 중생들의 눈에 비친 부처님의 모습이 보일 것입니다.

가장 뛰어난 지혜를 갖춘 지혜제일智慧第一 사리불

제자 가운데 신통력이 가장 높으신 신통제일神通第一 목건련

출가자의 수행에 엄격한 본보기가 되셨던 두타제일頭陀第一 가섭

공空의 이치를 가장 잘 깨우친 해공제일解空第一 수보리

뛰어난 설법으로 가르침을 잘 전하신 설법제일說法第一 부루나

깊은 통찰로 세상을 두루 잘 살피던 천안제일天眼第一 아나율

넓은 학식으로 토론에 뛰어났던 논의제일論議第一가전연

계율을 철저히 지켜내신 지계제일持戒第一 우바리

누가 보지 않더라도 행동과 마음가짐이 올바른 밀행제일密行第一 라훌라

부처님의 법문을 가장 많이 듣고 익힌 다문제일多聞第一 아난

십대제자는 각각 부처님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부처님의 모습을 본 받아 수행이 뛰어나셨던 분들입니다. 십대제자의 행동 하나하나를 배우게 되면, 우리도 부처님의 모습에 점차 가까워 질 수 있습니다.

  1. 바라문 스승을 버린 출가인연, 사리불존자

부처님의 첫 번째 제자는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받아들인 오비구五比丘입니다. 그들은 한 때 수행자 시절의 부처님과 같이 수행했던 도반이었는데,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후 제자가 되었습니다. 다섯 비구 가운데에는 마승(馬勝, Assaji 앗사지)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마승비구가 탁발을 갔다가 사리불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사리불은 육사외도六師外道 가운데 산자야라는 분을 스승으로 모시는 제자였습니다. 사리불은 그때까지 부처님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백 명의 후배들이 있을 만큼, 산자야 아래에서도 높은 지위의 수행자였습니다.

마승비구는 이미 녹야원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아라한이 되신 분입니다. 그의 기품은 남달랐습니다. 훌륭한 몸가짐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습니다. 사리불도 마승비구를 보는 순간 성자다운 그의 기품에 탄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세상에 아라한의 도를 갖춘 자가 있다면, 바로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그는 누구에게 출가했으며, 누구를 스승으로 모시고 어떤 가르침을 따르고 있을까 ...'

사리불은 마승비구에게 솔직한 마음 그대로 질문을 했습니다.

"저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입니다. 그 분은 저희들에게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승비구는 그 동안 배웠던 부처님의 가르침들을 사리불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마승비구의 눈동자는 밤하늘의 별빛처럼 밝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사리불은 마승비구의 말을 듣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순간 눈 앞이 밝아지며, 그 동안 자기가 찾던 모든 해답을 부처님께서 알려 주실 것이라는 기쁨이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아 그 동안 나는 부질없는 시간을 보냈구나. 나도 부처님을 찾아뵙고, 그 분의 제자가 되어야겠다.'

그 당시 사리불은 산자야 문하에서 절친한 친구인 목건련(목련존자木連尊者)과 함께 수행중이었습니다. 사리불은 목건련에게 낮에 있었던 일을 들려주며, 이 곳을 떠나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가겠다는 심정을 털어 놓았습니다.

"친구여, 드디어 나는 진정한 스승을 찾은 것 같네. 그 동안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헛되지는 않았으나, 나는 아직 진리를 찾지 못하였네, 이제 부처님을 만나 세상의 참된 진리를 얻으려 하네."

하지만 목건련은 사리불을 막아서지 않았습니다. 누구보다 사리불의 됨됨이를 잘 알고 있었고, 그의 생각이 잘못되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목건련도 친구인 사리불을 따라 함께 부처님의 제자가 되기로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곳을 떠나기로 정했습니다. 세상에 부처님이 출현하셨다고 합니다. 그 분에게 진리의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여러분도 이제 스스로의 길을 걷기 바랍니다."

스승과도 같았던 사리불과 목건련의 선언에 오히려 두 사형을 신뢰했던 다른 수행자들은 그들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이로써 사리불과 목건련은 250여 명의 수행자를 데리고 부처님께서 계신 죽림정사로 찾아갔습니다.

"길을 열어주어라. 저기 훌륭한 두 제자가 찾아오고 있구나."

사리불과 목건련 두 제자는 모두가 신통력이 뛰어난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리불은 지혜 또한 뛰어나 신통의 힘을 지혜롭게 잘 사용하셨기에 부처님의 인정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쓸데없는 신통력은 사람들을 현혹시키므로, 함부로 보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한 번은 기원정사를 건립했던 수닷타장자가 이 나라에서 절을 지으려면 왕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면서, 그러려면 부처님 제자의 도움이 필요하니 누구를 좀 보내달라고 부탁을 하자, 부처님께선 사리불을 보냈습니다.

사위성에 도착한 사리불은 왕이 내세운 외도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노도차勞度差 도인과 신통을 겨루었습니다. 왕은 자신의 뛰어난 도인들과 신통대결에서 이기면 절을 짓도록 허락하겠다는 것입니다.

둘의 신통대결이 시작되자, 먼저 노도차가 신통을 부려 온갖 보석으로 장식된 큰 연못을 만들어 보였습니다. 그러자 사리불은 커다란 코끼리를 만들어 연못의 물을 모두 마셔버리게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노도차가 다시 거대한 산을 만들자 사리불은 금강력사를 불러와 산을 가루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또 노도차가 무시무시한 용을 만들자 사리불이 금시조라는 새를 만들어 용을 잡아 먹어버리게 하였습니다.

결국 화가 난 노도차는 스스로 야차로 변해 사리불을 해치려고 하는데 사리불은 거대한 신장으로 변하여 야차로 변한 노도차를 밟아 버렸습니다. 그러자 노도차는 사리불에게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며 용서를 빌었고, 이렇게 사리불은 외도들을 신통력으로 제압해 버리자, 왕은 부처님의 제자들에게 감복하여 기원정사의 건립을 허락하게 되었습니다.

사리불과 목건련은 출가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될 당시 이미 부처님보다 나이가 더 많았습니다. 이후 부처님 제자들 중에서 다른 비구들을 잘 이끌어 주던 사리불존자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몇 달 전 부처님보다 먼저 열반에 들었습니다. 수행이든 공부든 한 우물을 파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애초에 잘못된 방법이라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성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길을 잘못 들었다면 돌아 나와야 합니다. 헤매는 것은 시간과 노력이 아까울 뿐입니다. 불교의 수행에서도 택법각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혜로써 바른 가르침만을 선택하고 그릇된 가르침은 버리는 것입니다.

사리불과 목건련은 비록 잘못된 스승을 만났으나, 진리의 부처님을 알게 되는 순간 그동안의 인연과 지위에 연연하지 않고, 그릇된 가르침을 버리는 결단을 보였습니다. 항상 바른 마음으로 생활하면, 반드시 좋은 인연이 찾아옵니다. 그 순간 사리불처럼 현명하게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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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신묘장구 대다라니 (12일차)
문화

불교문화 - 신묘장구 대다라니 (12일차)

**보명법사의 신묘장구대다라니 3×7=21일 기도 12일째. **

천수천안 관자재보살 광대원만 무애대비심 대다라니 계청 (5) 千手千眼 觀自在菩薩 廣大圓滿 無碍大悲心 大陀羅尼 啓請

계속해서 이어지는 게송의 내용을 풀이해 보겠습니다.

세척진로원제해 (洗滌塵勞願濟海) 초증보리방편문 (超證菩提方便門) 아금칭송서귀의 (我今稱誦誓歸依) 소원종심실원만 (所願從心悉圓滿)

처음의 <세척진로원제해>는 '온갖 번뇌와 망상' 갈등, 무명, 어둠을 씻어내고 소원하는 바를 모두 성취한다'는 뜻으로 해석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소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던 것은 결국 안 된다고 하는 부정적인 생각 때문입니다. 여기서 <진로>라고 하는 것은 온갖 고통, 눈물, 불안, 수고로운 것, 부정적인 것 즉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무명, 어둠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러한 어둠을 내 속에 있는 광명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내 속에 있는 광명을 깨닫게 되면 모든 고통과 번뇌에서 해방되어 바라는 바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초증보리방편문>은 '깨달음의 방편문을 한꺼번에 성취한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곧 관음 대비주의 지혜를 잘 실천하면 궁극적인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흔히 불교를 깨달음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아금칭송서귀의>는 '지금 내가 관음의 대비주를 칭송하고 맹세하고 귀이한다'는 말입니다.

결국 관세음보살의 대비주를 마음속에 늘 지니고 관세음보살의 자비에 귀의하는 일만이 자신의 존재를 바로 깨달을 수 있고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소원종심실원만>은 '원하는 바가 자신이 뜻하는 마음대로 전부 원만하게 된다'고 해석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확신해 찬 마음으로 한다면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고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단순히 희망적인 차원을 넘어서 뚜렷한 믿음이 담긴 확신을 갖고 있다면 우리가 원하는 바를 반드시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천수경』에는 우리가 잘 수지 독송하기만 하면 그 속에 문제 해결의 지혜가 가득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앞에서도 여러 번 이야기 했듯이 『천수경』은 관세음보살의 대자대비한 모습과 신통력, 그에 대한 서원을 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느 종교든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막연히 믿는다는 표현 대신에 '신심(信心)'이라는 말로써 실천을 통하여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수행과정을 귀중하게 생각합니다. 이처럼 『천수경』은 특히 믿음과 깊은 경전입니다.

불기 2570년 4월 22일 팔공산 감고사지기 보명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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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2일
불교문화 - 목탁을 치는 이유
문화

불교문화 - 목탁을 치는 이유

목탁을 치는 이유는 역사적인 유래로 2가지를 보통 들고 있습니다. 그외에 현실적인 이유도 두어가지 있습니다.

  • 목탁인 이유

목탁(목어)는 원래 물고기 모양입니다. 목어를 간단히 한 것이 목탁이죠. 하필 물고기 형상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물고기는 잘 때도 눈을 감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어는 수도자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1.목탁을 치는 역사적 유래 -(1)

목탁은 중국의 선종사찰들에서 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는 중국의 백장스님이 지은 백장청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백장스님은 백장청규라는 우리나라의 선원에서도 유명한, 선원규율을 세운 분입니다. 선종사찰에서 친 이유는 주로 전달의 목적(각종 공지나 모임등)으로 친 것입니다.

2.목탁을 치는 역사적 유래 - (2)

옛날 어느 절에 덕 높은 스님이 몇 사람의 제자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어기고 제멋대로 생활하며, 계율에 어긋난 속된 생활을 일삼다가 그만 몹쓸 병이 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죽은 뒤에는 물고기 몸을 받아 태어났는데 등 위에 큰 나무가 솟아나서 여간 큰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하루는 스승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는데 등 위에 커다란 나무가 달린 고기가 뱃전에 머리를 들이대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스승이 깊은 선정(禪定)에 잠겨 고기의 전생을 살펴보니, 이는 바로 병들어 일찍 죽은 자기 제자가 방탕한 생활의 과보(果報)로 물고기로 태어나 고통받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를 알고 가엾은 생각이 들어 수륙천도재(水陸薦度齋)를 베풀어 고기의 몸을 벗게 하여 주었습니다. 그날 밤 스승의 꿈에 제자가 나타나서 스승의 큰 은혜를 감사해하며 다음생에는 참으로 발심하여 공부할 것을 다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등에 있는 나무를 베어 고기 모양을 만들어 부처님 앞에 두고 쳐주기를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면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교훈이 될 것이고, 강이나 바다의 물고기들은 해탈할 좋은 인연이 될 것이란 말입니다. 이렇게 해서 고기 등에 자라난 나무를 베어 고기 모양의 목어(木漁)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차츰 쓰기에 편리한 목탁(木鐸)으로 변형되어, 예불이나 독경을 할 때 혹은 때를 알릴 때에도 사용하며, 그밖의 여러 행사에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일설에는 고기는 잠을 잘 때도 눈을 뜨고 자므로 수행자도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해야 불도(佛道)를 성취한다는 뜻에서 고기 모양의 목어를 만들어 아침 저녁으로 치게 하였다고 합니다.

3.목어와 목탁

설화에 따르면, 2에서 살펴보았듯이, 처음엔 목어라는 것이 절에 있었습니다. 물론 이 목어는 지금도 절에 가면 볼 수 있습니다. 길다란 물고기 모양의 나무를 깍아서 속을 파낸 모양이며, 절에서는 이 목어의 배속에 막대기를 넣어서 두드리기도 합니다. 이 목어를 간단히 디자인 것이 목탁입니다. 즉 목탁과 목어는 같은 목적의 것이며, 목어가 크고 번거로우므로, 목탁처럼 변형한 것이지요.

4.목탁(목어)을 치는 이유

불교는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중생(짐승, 미물을 포함)을 제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므로, 짐승이 알아듣는 소리로 중생을 제도(중생구제)할 필요가 있죠. 절에서 목어를 치는 이유는, 수중생물이 듣고 제도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즉 수중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물이라고 하여 큰절에 가면 범종, 법고, 운판, 목어가 있습니다. 범종은 유명계, 즉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그런 영들을 제도하기 위해 치는 것이고, 법고, 즉 큰 북은 육지의 동물을 위하여 두드리고, 운판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날짐승을 위해 치고, 목어는 수중동물을 위하여 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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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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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입문 - 출가자의 목적은?
문화

불교입문 - 출가자의 목적은?

견성해서 중생을 제도하는데 있습니다. -천하총림이 무너져도 눈하나 까닥하지 않고 공부만 하는게 정법(正法)이다. -오직 공행(空行)을 닦아야 합니다. -상을 가지고 집착하면 죄입니다. -어려운일은 만나는 것은 불행이 아닙니다. -괴로운 일이 지나면 좋은 일이 옵니다. -어려운 일이 올때는 좋은 기회가 왔다고 달게 받아서 극복해 나가면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립니다. -실수가 주먹만하면 주먹만한 성공이 있고, 실수가 태산만 하면 태산만한 성공을 거두고 실수가 허공만하면 허공만한 성공이 있습니다.(있다고 했습니다.)

※ 이 자료는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 알아두면 좋은 불자상식 작성자 민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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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공부 - 사념처란?
문화

불교공부 - 사념처란?

신·수·심·법 네 가지를 관찰하여 마음을 바르게 세우는 수행으로 마음챙김의 근본입니다.\n자료출처 :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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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단비구도 (斷臂求道) - 달마와 혜가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단비구도 (斷臂求道) - 달마와 혜가

<금산사- 전북 김제>

달마가 중국 숭림산 동굴에 들어와 나홀로 정진한지 9년째 , 흰 눈이 펑펑 내리는 어느 날 신광이라는 한 젊은이가 찾아와 제자로 받아주길 간청하며 자신의 팔을 잘라 결의를 증명 받았다는 유명한 달마대사 일화중의 하나인 그림이다.

▮ 달마의 첫 제자 ‘신광’

먼 길 찾아와 가르침을 달라는 신광의 간곡한 간청에도 달마는 눈길한번 주지 않은 채 한마디로 거절해 버린다. 신광역시 달마의 토굴 앞에서 필사적으로 제자로 받아주길 간청 해 보지만 달마 역시 요지부동이다. 두 사람이 긴장스런 대치가 이어지고 있던 그날 밤은 유난히도 많은 눈이 내리고 있다, 날이 밝아 올 때가 되니 눈이 허리 넘게 차 오를 때 까지 돌장승처럼 밤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신광을 보고 달마는 꾸짖고 있다. 법을 구한다며 다들 그런 오만한 마음으로 도전들 해 보지만 한갓 헛수고로만 끝날 뿐이다. 라며 다시 고개를 돌리자 이 말을 들은 신광은 홀연히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꺼내들어 자기의 왼팔을 자르니 사방 하얀 눈밭위로 붉은 선혈이 낭자하다. 신광은 이때 떨어진 자신의 팔을 때가 아니게 피어난 파초 한 잎에 받아들며 “모든 부처님이 최초에 도를 구할 때에도 법을 위해 몸을 던졌듯이, 지금 팔을 끊어 앞에 내놓고 법을 구합니다. ”라고 답 하자 달마는 그에게 묻고 있다. "네가 그토록 구하려 하는 것이 무엇이냐?" "제 마음이 왜 이리도 괴롭습니까." 그럼 "너의 마음을 내 앞에다 내놓아 보아라, 그러면 내가 해결 해 주겠다." 신광은 그 말을 듣고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 마음을 달마 앞에 내 보일 수 없었다. 달마는 말했다. "그럼 이재, 내가 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 것이다." 순간, 혜가는 깨달음이 일어났다. 마음이란 본디 평화로운 것이다. 거기엔 어떤 괴로움이나 동요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먼지를 쓸어낸다고 비질을 하면 할수록 먼지는 더 일어나듯 마음역시 진정시키려고 하면 할수록 더더욱 먼지처럼 동요가 일어난 것이다. 그처럼, 동요가 일어난 그때의 마음이 마음의 본모습이 아니라 마음의 그림자(혹은 번뇌망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결국, 달마가 혜가의 괴로운 마음을 신통력으로 편안하게 해결 해준 것이 아니라, 단지, 마음의 본래 모습을 보게 해준 것일 뿐이다. 망상을 끊어야만 비로소 참된 마음이 앞에 드러날 수 있었던 것이다. 걸림도 없고 얽매임도 없이 몸을 벗어나 기댐이 없어야 큰 해탈에 이르게 된다.

▮ 달마, 토굴에서 나오다.

조용하던 달마의 토굴에서 한동안 벌어진 신광의 소동을 계기로 요지부동인 달마의 마음도 움직여 9년 면벽 수행을 풀고 토굴에서 나오게 되고 팔을 잘라 외팔이가 된 신광은 달마의 제자로 받아들여 ‘지혜를 얻을 만하다' 는 뜻의 혜가(慧可)라는 법명을 받고 달마에 이어 2대 조사의 법맥을 이어받게 된다, 구도의 길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혜가의 단비구법(斷臂求法)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선종의 맥은 달마로 끊겼을 터인데. 어쩌면 달마는 9년 면벽수행 동안 간절히 혜가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서슴없이 왼쪽 팔을 잘랐던 혜가의 믿음을 갖고 살아간다면 못 이룰 소망이 무엇이 있겠는가. 어떤 사람을 막론하고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자신의 육신이다. 불법의 진리를 구하기 위해서도 확실한 믿음이 중요하였기에. 자기육신마저도 과감히 던진 수 있는 용맹심을 발휘로 믿음은 완성 될 것이다.

▮ 한손의 서원.

두 손을 모아 합장하는 불교식 인사와 달리 소림사 승려들은 한 손만 들어 합장하는 자세를 취는데, 이 인사의 유례는 한쪽 팔이 없는 상태로 달마의 법을 이어받은 혜가의 구도처럼 그렇게 치열하게 정진하겠다는 의지가 소림사 스님들의 인사 속에 숨어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런 전통은 지금의 사찰의 수계식 때에도 불법에 대한 믿음과 일체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서원의 상징적 의미로 팔에 고통을 느끼게 하는 연비의식을 하고 있다. ‘단비구도’에서는 불교의 맥을 이어가는 스님들의 불법의 진리를 구하기 위해서 자기육신마저도 바칠 수 있는 용맹심을 발휘하게 되는 철저한 수행 모습을 느끼게 하는 그림이다.

▮ 모아보는 단비구도

<광덕사-충남 천안>

<법주사-경북 군위>

<용화사-충북 진천>

<운문사-경북 청도>

<팔달사-경기 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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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구산팔해, 하늘과 인간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구산팔해, 하늘과 인간

사찰 벽화이야기 9. 구산팔해, 하늘과 인간

산 아래 칼과 창의 무기를 들고 있는 사람들은 수라입니다. 아수라라고도 하며, 평생 서로 싸우고 다투며 피를 흘리는 전쟁의 참혹한 환경속에 살아가야 하는 중생입니다.

벽화의 가장 아래, 수미산 남쪽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남섬부주입니다.

선업의 결과로 가장 좋은 판결을 받아, 천상에 태어난 중생은 33천이라 불리는 도리천으로 올라갑니다. 이곳은 제석천이 다스리는 하늘 세상으로 동서남북으로 뻗어있는 하늘이 모두 33곳이기에 33천이라고 부릅니다. 예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제석천을 옥황상제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림에서 처럼 늘 꽃비가 내리는 하늘에서 좋은 옷과 좋은 음식을 먹으며 하루하루 즐겁게 보낼 수 있지만,다만 이곳도 중생이 윤회하는 곳 가운데 하나인지라 수명이 다하면 다시금 윤회의 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천상의 수명은 우리와 다릅니다. 천상의 하루는 지상의 100년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영원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긴 시간을 즐거움으로 보낼 수 있는 곳이 천상세계입니다.

육도윤회의 가르침은 우리가 모르는 인과의 모습을 자세히 보여줍니다. 그래서 스스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윤회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과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 왔는지 스스로에게 반성과 나아갈 방향을 제시합니다.<br> 그것이 바로 불교에서 육도윤회를 가르치는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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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49재 동안의 겪는 일.(1)
문화

불교문화 - 49재 동안의 겪는 일.(1)

사람이 죽어서 49동안에 겪는일들과 저승에서 자기를 구원하는 방법

임종중음(臨終中陰)...죽은 직후 영혼의 상태

죽음을 맞는 이의 숨길이 끊어진지 20시간이나 30여시간이 되면 죽은이의 심령(心靈)은밝은 빛속에 있으면서 잠깐이나마 더 없는 편안함과 만족을 느낀다. 가족들은 죽은이의 이런 상태가 깨뜨려지지 않도록 잘 살펴주고 정토염불법을 닦는 벗들이나 스님들을 불러 염불로 중음신의 의식을 더욱 밝혀주어야 한다.

염불을 해주면 중음신은 의식이 어두워지지 않고 바로 눈부신 빛속에서 해탈에 이를 수 있으니 이것이 중음신에 해탈할 수 있는 첫 번째 기회이다.

잠깐 동안 밝은 빛이 터졌다 사라지는 경계가 계속이어진는데 이때 중음신은 스스로가 이미죽었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살아 있을 때 처럼 이곳 저곳을 돌아다닌다. 그러면서 좋아하는 이들을 보고 그들이 나누는 말을 듣는다. 이 때는 무서운 업력(業力)에서 나오는 갖가지 환영(幻影)이 나타나기 전으로 중음신은 아주 밝은 빛속에 있다. 만약 중음신이 살아 있을 때 이가르침을 보거나 들었다면 바른 생각을 일으켜 계속터지는 빛속으로 해탈할 수 있다. 그러나 친척이나 친구들이 부르거나 그밖에 무서운 모습들을 보게 되면 이는 중음신을 삼악도로 이끌려는 현상임을 알아야 한다. 또 아름다운 하늘여인이 맞이하려 해도 결코 마음이 흔들려 따라가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윤회하는 괴로움 바다에 빠지게 된다.살았을 때 움켜쥐었던 그 모든 것을 다 놓아 버려야 한다. 꿈 같고 물거품 같은 그것들에 끄달리고 그것들을 잊지 못하는 것은 중음신에게 큰 괴로움을 줄 뿐이다. 다 놓아버리지 않으면 끝내 해탈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고 다시 육도윤회에 빠지게 된다. 모든 생각을 다 버리고 아미타부처님께서 정토로 이끌어 주시어 나고 죽는 괴로움에서 건져 주시기를 마음다해 기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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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살던 절을 옮겨 오다. 보덕화상의 신통.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살던 절을 옮겨 오다. 보덕화상의 신통.

<br/> **살던 절을 옮겨 오다. 보덕화상의 신통.**

보덕 화상의 신통
<br/> 보덕 화상은 고구려 보장왕 때의 고승이다. 고구려는 소수림왕 2년에 처음 불교를 받아들인 이후로 대대로 불법을 만들어 왔으나, 27대 임금인 영유왕 때에 이르러 도교를 받아들이면서 차츰 불교를 멀리하기 시작하였다. 그 뒤를 이은 28대 보장왕은 본격적으로 도교를 숭상하더니 불교를 아예 배척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자 도교의 경전만을 배워 강설하는 것이 사회의 풍조가 되었다. 심지어 불교 사원을 폐지하여 도교의 도관을 만들고, 도교의 도사들만 우대하며 불교 승려들은 박해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못이겨 혜편, 혜자, 승륭, 혜관 같은 고승들은 그들이 사람들의 교화에 힘쓰면서 수행하던 절을 도교에 빼앗기고 일본으로 건너가고 맡았다. 그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에게는 쌀을 다섯 말 바치게 하는 오두미교를 시행하여 백성들의 원망이 점차 커졌다.

보덕 화상은 이런 현실을 안타까와하던 끝에 결심을 굳게 하고 왕에게 나아가 말하였다.

“이 나라는 처음부터 불교를 받아들여 부처님의 자비와 화합정신으로 모든 사람들이 화목하고 복되게 지내 왔읍니다. 그런데 임금께서는 도교만을 숭앙하며 불교를 박해하시니. 백성들로부터 존경받던 고승들은 나라 밖으로 떠나고 백성들의 원망은 자꾸 높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민심이 분열된 것이니 나라의 앞날이 참으로 걱정입니다.”

“듣기 싫소. 음식도 바꾸어 먹어야 구미가 당기는 법이고, 옷도 새 것으로 같아입어야 산뜻한 기분이 드는 법이오. 그러니 화상은 내가 행하는 일이 정녕 못마땅하다면 이곳을 떠나시오.”

‘나라가 어지러우니 임금의 눈도 흐리지는구나, 이것 역시 천문이다. 아무리 간하여도 소용이 없으니, 내가 떠나는 것이 낫겠다.’

보덕화상은 이렇게 생각하며 절로 돌아와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내일 아침 일찍 이곳을 떠나야겠으니 준비를 하도록 해라. 혹시 너희들 중에 수도하기에 알맞은 좋은 도량을 보아둔 사람이 있느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대답하였다.

“몇해 전에 남쪽의 완산주 고달산을 찾았는데, 수도 도량으로 마땅한 곳이라고 생각했읍니다.”

“그러면 내일부터 그곳으로 옮겨가 수도를 할 터이니 그렇게 알고 있거라.”

이튿른날 새벽, 제자들이 일찍 일어나 도량석을 하며 주변을 살펴보니, 살던 절은 그대로인데 산천의 풍경이 낯설어 보였다. 이상하게 생각하여 자세히 살펴보니 이제까지 살던 곳과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깜짝 놀라 스승에게 달려가 말씀드렸더니 보덕 화상이 대답하였다.

“간밤에 내가 우리들이 수행하던 평양의 반룡사를 이곳 완산주 고달산으로 옮겨온 것이니 이상하게 생각할 것 없다.”

이것은 고구려 보장왕 9년(650년)의 일이다. 수행과 학식이 높았던 보덕 화상은 특히 열반경에 능통하여 열반종의 종조가 되었으며, 원효 대사도 보덕 화상에게 열반경을 배웠다고 전해진다.

이렇듯 보덕 화상의 수행과 학식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듣고 스님이 머무는 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는데, 보덕 화상은 그때마다 ‘내 고향에서 손님이 오셨으니 잘 대접해 보내라’고 일렀다. 제자들은 스님의 말대로 잘 대접해서 보냈는데, 사람들이 찾아올 때마다 고향 사람이라고 하는 스님의 말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손님들에게 물어보면 고향이 같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한 제자가 투정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스님, 다음부터는 고향 사람인지 아닌지를 똑똑히 분간하여 저희들에게 일러주십시오. 그래야 진짜 고향 사람들에게 좀 더 잘 대접하지 않겠읍니까?”

“모르는 소리를 하지 말아라. 우리의 인생은 알 수 없는 곳에서부터 나온 것이 같고 죽어 돌아갈 때에도 알 수 없는 곳으로 가는 것이 같으니, 어찌 모두 같은 고향 사람이 아니겠느냐. 또한 모든 생명은 부처님을 어진 어버이로 모시는 자식과도 같지 않으냐. 어찌 형제를 차별하여 대접할 수 있겠느냐? 내 절에 찾아오는 사람은 누구든지 빈부귀천을 가리지 말고 평등하게 정성껏 대접하도록 하여라.”

이 말씀에 제자들은 감동하여 그 뒤로는 ‘모두 다 고향 사람’이라는 데에 아무런 의문을 갖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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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삼장(三藏)이란?
문화

불교문화 - 삼장(三藏)이란?

경장(經藏) : 부처님이 말씀하신 교리의 가르침. 논장(論藏) : 부처님의 열반후 부처님의 경전과 율전을 해석해 놓은 책을 말한다. 율장(律藏) : 부처님이 가르치신 교단의 계율

※ 이 자료는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 알아두면 좋은 불자상식 작성자 민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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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보명법사 - 염불 공부
문화

보명법사 - 염불 공부

염불 공부.

우리 인간의 대사(大事)라 하면 부처님께서 금생에 나오신 것은 일대사인연 (一大事因緣)이라. 가장 큰 일을 위해서 나오셨습니다.

가장 큰 일이란 것은 무엇인가.? 가장 큰 일은 우리가 부처님이 되는 일입니다.

부처님의 견해를 우리 견해로 하는 것이 가장 큰 일입니다. 일대사불출세(一大事佛出世),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이라.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오신 것은 무엇인고 하면은 우리 중생들이 잘못 보고 무지무명에 가리어서 자기 스스로도 모르고 우주를 바로 볼 줄도 모른단 말입니다.

바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때는 나라는 것이 원래 허망(虛妄)한 것인데 꼭 나만이 최고다. 그런 아상(我相)이 나온단 말입니다.

우리 번뇌(煩惱)가운데서 우리 무명 가운데서 무지무명 가운데서 가장 독스러운 것이 무엇인고 하면은 나라는 것을 내 몸뚱이만을 나라고 생각한단 말입니다.

이러면 저번에 보명이 말씀드린 바와 같이 즉시에 나한테 좋은 것은 탐심(貪心)을 내고 나한테 싫은 것은 진심(嗔心)을 내고 삼독심(三毒心)을 낸단 말입니다.

삼독심을 못 끊으면 이것은 참다운 인간이 아닙니다. 과거전생에 삼독심을 제대로 끊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가 인간 밖에는 못 됐습니다.

조금 많이 끊었더라면ㅈ천상(天上)으로 태어날 것이고 온전히 끊었으면 영생해탈(永生解脫)의극락(極樂)에 태어날 것인데 우리가 조금 밖에 못 끊고 말아버렸단 말입니다.

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참선이라는 것은 참 쉬운 것입니다. 생긴대로 우리가 공부한단 말입니다.

마음이 끝도 갓도 없이 광대무변(廣大無邊)하게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두루 해 있으니까 그렇게 마음을 관찰하면 되는 것이고 화두를 의심하고 싶으면 화두를 의심한다 하더라도 그냥 덮어 놓고 의심하면 그때는 참선이 못됩니다.

끝도 갓도 없는 마음의 본 바탕자리, 그 바탕자리에다가 마음을 두고 의심도 해야지 그냥 덮어놓고 의심하면 상기(上氣)만 되어 가지고서 마음이 혼란스럽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활짝 열어서 마음이 본래 열리는 것인데 우리가 지금 닫고 있단 말입니다. 마음은 본래 열린 것입니다.

부처님공부 가운데서 제일 쉬운 공부를, 여러분도 기왕이면 제일 쉬운 방법으로 공부하고 싶으시겠지요?

용수보살(龍壽菩薩), 용수 보살은 제2의 석가(釋迦)랄 정도로 위대한 분 아닙니까.? 용수보살은 14대 조사입니다. 부처님 때부터서 정통(正統)14대 조사입니다.

그러면서도 대승불교(大乘佛敎), 대승불교는 마명(馬鳴)대사, 마명대사는 12대조사인데 주로 마명대사하고 용수보살 때 대승불교의 체계가 확립이 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마명대사 용수보살을 정말로 제2의 부처님같이 숭상하는 것입니다.

그 용수보살이 성불(成佛)하기 제일 쉬운 것이 어떤 것인가.?

성불하는 공부 가운데 어려운 면과 쉬운 면을 말씀하는데 용수보살이 내놓으신 책 가운데서 대비바사론, 대비바사론 가운데 다섯째 품이 이행품(易行品) 이라. 쉬울이(易)자, 행할 행(行)자 이행품이란 말입니다.

이행품이라. 용수보살이 또 중생 (衆生)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든가 말입니다.

가지가지로 난행고행(難行苦行)해 가지고서 도(道)를 성취한 뒤에 어떻게 중생들이 빠르게 성불 할것인가?

어느 누구나가 다 조금도 저항이 없이 무리 없이 쉽게 공부할것인가?

그래서 쉬울 이(易)자, 행할 행(行)자 이행품(易行品)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대비바사론 이행품에 보면은 부처님을 생각하고 부처님 명호(名號)를 왼단 말입니다. 우리가 본래 부처라고 할지언정 너무나 업을 많이 지었단 말입니다.

전생도 많이 짓고 금생도 태어나서 부터서 별로 필요 없는 것을 많이 배우고 필요있는 참다운 진리는 별로 배우지를 않았습니다.

그래놔서 우리 마음은 그런 업(業)의 습관성(習慣性)으로 해서 꽉 차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마음을 하나로 모아서 마음을 통일을 시켜라. 이렇게 해도 쉽지가 않습니다.

참선 방에 앉아서 한 3개월 동안 또는 몇 년 동안 공부를 해본다 하더라도 그냥 쉽게 마음이 통일이 되고 마음이 이른바 정화(淨化)가 되고 이렇게 되기가 그렇게 어렵단 말입니다.

저 같은 보명은 3년 결사(結社)를 수십번이나 했습니다. 몇 번했어도 지금도 부처님 공부할라면 천리만리입니다. 그 회한(悔恨)과 한탄(恨歎)만 남습니다. 부처님 공부는 절대로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보명은 어렵다고 생각한적 한 번도 없습니다. 제일 재미지고 제일 쉬운 것인데 내 스스로가 제대로 부지런히 공부를 못했단 말입니다.

가장 쉬운 것이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부처님을 생각하고, 부처님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우리 자신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우리 자신의 주인공(主人公)을 생각한단 말입니다. 부처님과 우리 자신과 불심(佛心)과 절대로 둘이 아니고 셋도 아닙니다.

화엄경(華嚴經)에 심불급중생 시삼무차별 (心佛 及衆生 是三無差別)이라. 우리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것이 셋이 조금도 차이가 없단 말입니다. 천지우주(天地宇宙)가 모두가 다 하나의 진리로 됐습니다. 그래놔서 어느 것이나 모두가 다 우리 중생이 잘못 봐서 그런 것이지 근본 성품을 본다고 생각할 때는 다 하나의 생명이란 말입니다. 미운사람, 고운사람 다 그렇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공부하는, 공부 가운데 가장 쉬운 법이 무엇인고 하면은요 우리 생긴대로 내 본래 주인공 자리인 부처를 생각하고 부처를 생각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하도 쓸데없는 것을 많이 배워놔서 마음을 통일을 시키기가 쉽지 않겠지요.

그래서 부처님 명호(名號)를 외웁니다. 부처님 이름을 외웁니다. 정토경(淨土經)에 보면은 부처님 이름을 무생청정보주명호(無生淸淨寶珠名號)라. 무생청정보주명호라. 그것은 무엇인고 하면은 부처님 이름은 석가모니불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나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다 같은 뜻입니다. 같은 뜻인데 부처님 이름은 무생청정(無生淸 淨)이라. 무생은 이것은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 낳지 않고 죽지 않고 그러면서 청정(淸淨)하고 또는 우주에 다시없는 보배란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무생청정보주명호라. 정말로 영원한, 그 빛나고 보배 같은 그런 이름이란 말입니다. 우리 인간 이름은 그때그때 부모라든가 작명가가 이름을 짓겠지요. 그러나 부처님 명호, 부처님 이름은 명호라고 합니다.

부처님 이름은 우리 사람이 아무렇게나 적당히 그때그때 지은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한도 끝도 없는 영생(永生)하고 영원히 모든 성품공덕(性品功德)을 다 갖춘 보배의 이름이란 말입니다.

따라서 그런 이름은 우리가 한 번 외이면 외인만치 우리 본래면목으로 돌아갑니다. 무생청정보주명호라. 영생의 보배 같은 청정한 이름이란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본래로 부처가 아니면 모르거니와 본래가 부처인지라 본래 부처의 자리, 우주의 근본 생명자리, 그런 자리를 우리가 그런 이름을 외인다고 생각할 때는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우리 마음이 한 번 듣고서도 업장이 가벼우면 그냥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금생에 부처님 가르침을 믿는다 하더라도 그렁저렁 살다가 어언간에 임종에 다다를 수가 있겠지요. 어언간에 죽음이 온다. 죽음이라 하는 것은 언제 올지를 모릅니다.

헌데 죽음에 다다라서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 정말로 지옥(地獄)이 있고 극락(極樂)이 있는가는 우리가 모르겠지만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이 거짓말이 아닌 바에는 틀림없이 극락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극락에 가야지 않겠는가. 이런 사무친 마음으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한 가지만 불러도 좋습니다.

그 사무친 마음으로 절실한 마음으로 외인다고 생각할 때는 한 생각, 한 생각으로 해서 능히 우리 모든 업장이 녹아져서 생명(生命)의 본고향(本故鄕)인 극락세계(極樂世界)로 태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보명과 함께 이제까지와 꼬박 보름이상을 공부하시는 우리 불자님들, 용수보살, 제2의 석가란 용수보살이 말씀한 가장 쉬운 법문이 무엇인가?. 가장 쉽고도 빨리 성불할 수 있는 그런 법이 무엇인가?. 이것이 이른바 염불(念佛) 공부란 말입니다.

팔공산 로타리 불자회 지도법사 청정수월지 감고사지기 보명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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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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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벽화이야기 - 설산동자(해인사)
불교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설산동자(해인사)

한 수행자가 히말라야의 깊은 산속에서 홀로 고행하면서 많은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제석천(帝釋天: 범천과 함께 불교를 수호한다는 천신)은

그가 과연 부처를 이룰 수 있는 굳은 믿음이 있는가를 시험하기 위하여,

나찰(羅利: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악한 귀신)로 변해 히말라야로 내려왔다.

나찰은 수행자가 사는 근처에 와서 과거 부처님이 말씀하신 시의 앞 귀절을 외웠다.

<꽃은 피면 곧 지고 사람은 나면 이윽고 죽는다.

 이 허무한 법칙은 생명있는 것들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로다.

 (諸行無常 是生滅法) >

이 시를 듣고 무한한 기쁨을 느낀 수행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방을 둘러 보았으나 험상궂게 생긴 나찰 이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저처럼 추악하고 무서운 얼굴을 가진 것이 어떻게 그런 시를 읊을 수 있을까?

그것은 마치 불속에서 연꽃이 피는 것을 바라는 격이리라.

그러나 혹 저것이 과거에 부처님을 뵙고 그 시를 들었는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하고 생각한 그는 나찰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디서 과거 부처님이 말씀하신 시를 들었습니까?

나는 그것을 듣고 마치 망울진 연꽃이 피는 것처럼 마음이 열렸습니다”

“나는 그런 것은 모르오. 여러 날 굶어 허기가 져서 헛소리를 했을 뿐이오”

“그런 말씀 마십시오. 당신이 만일 그 시 전부를 내게 일러 주신다면,

나는 평생토록 당신의 제자가 되겠습니다.

물질의 보시(布旅)는 없어질 때가 있지마는 법(法)의 보시는 다함이 없는 것이니까요”

“당신은 지혜는 있어도 자비심이 없소.

자기 욕심만 채우려 하고 남의 사정은 모르니 말이오.

나는 지금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란 말이오”

“당신은 대체 어떤 음식을 먹습니까?”

“놀라지 마시오. 내가 먹는 것은 사람의 살덩이이고 마시는 것은 사람의 따뜻한 피이지요.

그러나 나는 그것을 구하지 못해 괴로와하고 있소”

“그렇다면 나머지 반의 시를 들려 주십시오.

그것을 다 듣는다면 내 몸을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누가 당신의 말을 믿겠소? 겨우 시 한 귀절을 듣기 위해 소중한 목숨을 버리겠다니….”

“어떤 사람이 질그릇을 주고 보배로 된 그릇을 얻듯이,

나도 이 무상한 몸을 버려 금강석처럼 굳센 몸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시방삼세(十方三世)의 모든 부처님께서 그것을 증명해 주실 것입니다?

“좋소. 그러면 똑똑히 들으시오. 나머지 반을 말할테니”

하고 나찰은 시의 뒷 귀절을 외웠다.

<살고 죽는데 대한 생각을 없애버리면,

쓸데없는 욕심이나 두려움이 사라진다네

(生滅滅已 寂滅爲樂) >

그는 이 시를 듣고 더욱 환희심이 솟았다.

시의 뜻을 깊이 생각하고 음미한 뒤에, 벼랑과 나무와 돌에 새겼다.

그리고 나무 위에 올라가 나찰에게 몸을 던지려 하였다.

그 때 나무의 신(樹神)이 그에게 물었다.

“그 시에는 어떤 공덕이 있습니까?”

“이 시는 과거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이 시를 들으려고 몸을 버리는 것은 나 하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렇게 말을 마친 수행자는, 이윽고 몸을 날려 나무에서 떨어졌다.

그런데, 그 몸이 땅에 닿기도 전에 나찰은 곧 제석천의 모양을 나타내어,

그를 받아 땅에 내려놓았다.

이를 지켜 본 모든 천신(天神)들이 그의 발에 예배하고

그 지극한 구도의 정신을 찬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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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미술여행 - 나무 물고기, 목어
문화

사찰미술여행 - 나무 물고기, 목어

물고기로 환생한 과보 경각심 일깨우려 조성

▲토어도, 19세기, 70*510mm, 제천 신륵사 극락전 박공 널판.

어디선가 바람이 꽃 내음과 함께 살랑이며 불어오더니 고요한 수면에 반짝이는 윤슬을 만들고 건너간다. 겨우내 오가며 물이 꽁꽁 언 연못을 보고 물고기가 있을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었는데 어디서 어떻게 나왔는지 떼 지어 다니는 새끼 물고기들이 봄맞이를 하고 있다. 미술품으로 모습을 나타낸 물고기는 다양한 의미를 갖는데 한 번에 수많은 알을 산란하여 종족을 퍼트리기에 다산하여 자손이 번창되라는 뜻이 있고, 눈을 뜨고 밤을 지새우는 습성 때문에 문이나 가구의 잠금 장식으로도 애용된다. 한자로 궁궐과 음이 같은 쏘가리(?, 궐)는 대궐에 들어가 출세하라는 뜻을 가지는데 이는 물결무늬와 함께 그려진 잉어와 같은 등용의 의미가 있다. 그리고 ‘금이 많다’라는 뜻의 중국어와 발음이 비슷한 금붕어는 부귀영화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화폭에 그려진다.

울림용 도구인 나무판서 시작

흐트러진 마음 다잡는 의미로

물고기형상 소리 공양구 발전

물고기 몸·용 머리 주전자도

살아있는 동물의 사육을 피하는 사찰에서도 물고기만은 예외로 취급하여 연꽃이 곱게 핀 못에 울긋불긋한 잉어와 금붕어를 놓아기르는 곳이 많다. 사실 부처님이 계신 법당 곳곳에도 물고기는 있다. 성불을 상징하는 용이 중생을 의미하는 물고기를 입에 물고 승천하는 모습은 사찰 전각의 천정 장식으로 심심찮게 등장한다. 불국사와 문경 대승사 금당의 공포에는 물고기를 입에 문 용이 금방이라도 밖으로 튀어 나올 듯이 조각되어 있고 부안 내소사 금당에는 한 마리 용이 입에 물고기를 물고 대들보를 휘감고 올라가 있다. 서방 극락 정토의 연못을 조각으로 표현한 불단에는 연화화생하는 인물들 사이로 물고기가 노닐고 법당의 창살문에도 연꽃 사이로 물고기가 헤엄치며 추녀 끝 풍경을 지나는 바람은 물고기를 움직여 소리를 낸다.

제천 신륵사 극락전 박공의 널판에는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입에서 토해내고 그 작은 물고기 입에서 더 작은 물고기가 나오는 토어도(吐魚圖)가 그려져 있다. 사찰의 물고기 그림 가운데 크기 면에서 아마 첫 손가락에 꼽힐 것 같은 이 그림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부처님의 전생설화를 그린 것이다. 부처님이 전생에 보살행을 닦을 때 큰 물고기에게 잡아먹히는 작은 물고기를 가엾이 여겨 가장 큰 물고기를 잡아 멀리 보내어 작은 물고기들의 걱정을 덜게 하였다고 한다. 이후 작은 물고기가 자라서 경어(鯨魚)의 왕으로 태어나게 되었는데 바닷가에 기근이 들어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처지에 다다르자 경어는 자신의 몸을 물 밖으로 드러내어 기근을 구해주었다는 내용이다. 고개를 들어야만 보이는 곳에 자기의 몸을 희생하는 최상의 보시를 그려 대중에게 보여주는 까닭은 그 가치가 한없이 높고 커서 고개를 들어 우러러 봐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 파주 보광사 만세루 목어.

사찰 미술품으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물고기는 단연 범종각에 걸려 있는 목어이다. 스님들이 기도 드릴 때 손에 들고 치는 목탁과 구분하기 위해 목어라고 구별하여 부르지만 애초에 사용되는 의미가 서로 비슷하였기에 일본과 중국에서 목탁은 목어라 부른다. 나무로 만든 물고기형 법구는 어판(魚板)이라고도 하는데 흔치 않지만 교토 오바쿠산(黃檗山) 만푸쿠지(萬福寺) 회랑에 걸린 어판처럼 배에 구멍을 뚫지 않고 몸통을 쳐서 소리를 내는 것도 있다. 목어의 유래는 다양하다. 1695년 성총 스님이 주해를 붙인 ‘치문경훈주’에 따르면 옛날 절을 가진 한 비구가 시주물을 탐내 아무 곳에 써버린 죄로 마갈타국(摩竭?國)의 큰 물고기가 되었다. 물고기 몸을 받고도 계속해서 작은 물고기를 탐내고 같은 동료를 많이 죽여서 그 죄로 무량의 고통이 따르는 지옥에 떨어지게 되었다. 이후 승가에서는 나무로 물고기형태를 만들어 그것을 두드리면서 모든 승려들에게 경계심을 갖게 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설에 의하면 옛날 한 스님이 부처의 가르침을 전하는 스승의 말씀은 전혀 듣지 않고 맘대로 뜻대로 살다 죽었다. 죽은 뒤 곧 저승으로 끄려간 그 승려는 물고기로 환생하는 과보를 받는데, 태어나 보니 등에 나무가 한 그루 나서 풍랑이 일 때마다 흔들려 등이 갈라지고 피가 흐르는 고통을 당하게 되었다. 어느 날 스승이 배를 타고 건너다 물고기로 변하여 고통받고 있는 제자의 모습을 보고 가엾이 여겨 수륙재를 베풀어 해탈성불하게 하였다. 이에 제자는 지난 날 자신의 잘못을 깊게 뉘우치고 등에 난 나무로 물고기 형상을 만들어 자신과 같은 길을 가지 않도록 수행자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달라고 하였다. 교훈적 내용이 담긴 이 이야기는 유아들이 읽는 동화책으로도 만들어질 만큼 극적인 요소도 있어 사찰의 벽화 주제로 애용되어 그려지기도 한다.

옛 기록들을 보면 목어는 특정한 시각을 알리기 위한 울림용 도구로 사용하였던 나무판에서 시작됐으며 시대가 흐르면서 수행자의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는 의미가 더해져 물고기형상을 하게 되고 더 나아가 수중중생을 구제하는 소리 공양구로 발전되고 있다. 물고기의 몸통을 파서 소리를 내게 만든 목어는 ‘목어가 속을 비운 이유는 가질게 무엇 있냐는 것이다’라던 시인의 말처럼 욕심을 비우라는 뜻을 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선시대 후기 유행하였던 민화 가운데 입신양명을 기원하며 그려졌던 어변성룡도(魚變成龍圖)처럼 사찰의 목어 가운데도 물고기의 머리를 입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으로(龍頭魚身形) 나타낸 예가 많다. 절집에 걸린 어변성룡을 표현한 목어의 뜻은 중생을 의미하는 물고기가 불도를 열심히 닦아서 해탈성불을 상징하는 용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불교가 국교였던 고려시대 만들어진 국보 61호인 청자 어룡형 주자도 물고기 몸에 용의 머리를 하고 있다.

▲ 마갈어문동경, 고려(조선고적도보).

필자는 용의 머리에 물고기 몸을 한 목어를 볼 때마다 앞서 부처님의 전생 설화에 나왔던 큰물고기를 의미하는 마카라(MAKARA)가 떠오른다. ‘현우경’에서는 가뭄으로 인한 기근에 자신의 몸을 보시하여 사람의 생명을 구한 큰 물고기를 마카라라고 하는데 힌두신화에서 악어, 코끼리, 물고기가 합성되어 표현된 상상의 동물인 마키라는 동남아시아 사찰장식으로 주로 이용되는 모티프이다. 물과 풍요를 의미하고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는 마카라는 대게 상서로운 기운을 뿜어내기에 크게 입을 벌린 형태로 표현되는 특징을 보이는데 고려 동경에 새겨진 마카라 역시 크게 입을 벌리고 있다. 구름이 표현된 창공으로 날아오른 두 마리의 마카라가 좌우대칭으로 마주보며 동경의 손잡이를 향해 입을 벌린 모습은 마치 하나의 여의주를 두고 겨루는 모습 같기도 하다.

‘잡보장경’에서 마카라는 뇌수에 금강견(金剛堅)이라 부르는 여의주를 품고 있는 큰 물고기로 풀이하고 금강견은 모든 독기를 사라지게 하고 병을 낫게 하며 원수와도 친교를 나눌 수 있는 능력을 갖는 보물로 기록하고 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척을 지고 살 수밖에 없는 이 사바세계에 사는 필자는 종각에 걸려있는 여의주를 입에 문 목어가 정말 세상의 모든 병과 마음에 맺힌 원수까지 친선(親善)의 관계로 맺어주는 금강견을 물고 있는 마카라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부질없이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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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심우도 尋牛圖 1.2편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심우도 尋牛圖 1.2편

  • 우리가 사찰에서 벽화에서 자주 접하는' 소그림'을 보시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을 심우도라 하는데 그에 담긴 이야기를 풀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심우 (尋牛)

  1. 견적 (見跡)

  1. 견우 (見牛)

  1. 득우 (得牛)

  1. 목우 (牧牛)

  1. 기우귀가 (騎牛歸家)

  1. 망우존인 (忘牛存人)

  1. 인우구망 (人牛俱忘)

  1. 반본환원 (返本還源)

  1. 입전수수 (入廛垂手)

심우도尋牛圖는 우리의 마음을 자유로운 들판의 야생 소에 비유해, 바른 마음을 찾아 수행하는 과정을 마치 소를 찾는 여행으로 표현한 그림입니다.

요즘은 '소'라는 동물이 그리 친숙하게 느껴지지 않을지 모르지만, 대대로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에서 소는 생활 그 자체였습니다. 따라서 심우도는 생활과 종교의 삶이 하나로 묶여, 언제 어디서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웠던 상황을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림의 제목은 '찾을 심尋'과 '소牛'자를 써서 '심우도'라고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본래성품인 불성佛性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본연의 모습을 회복해 가는 과정을 열 장면의 그림으로 표현했기에 십우도十牛圖라고도 불립니다. 검은 소가 조련되어 점차로 흰 소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마치 우리의 마음도 본래의 순백처럼 깨끗이 다듬어 지는 것 같습니다.

  1. 심우 (尋牛)

< 아득히 펼쳐진 수풀을 헤치고 소를 찾아 나서니 물은 넓고 산 먼데 길은 더욱 깊구나.

지치고 피로해서 찾은 길이 없는데 오로지 저녁 나뭇가지 매미 울음만이 들리네.>

첫 번째 장면은 소를 찾아서 집을 나선 상황입니다. 그림 속 동자의 손에는 고삐와 밧줄이 쥐어져 있습니다. 소를 찾아서 잡겠다는 궁리로, 숲속을 이리 저리 살피고 있는 동자의 마음이 잘 느껴집니다.

누구나 무엇을 처음 시작할 때는 그 방법을 잘 알지 못해도 열정만은 뜨겁습니다. 공부도 그렇고 수행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교에서는 그 처음을 발심수행發心修行이라고 합니다. 마음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심우는 이 발심의 단계입니다. 바른 마음을 찾고자 정진을 시작했지만,아직 본성이 무엇인지 모르더라도 반드시 찾아내겠다는 마음을 일으킨 것입니다. 다만, 동자는 마음 밖에서 마음을 찾아 헤매는 것임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도 알 수 없는 것인데, 아직 동자는 그런 이치를 모르고 있습니다.

심우도에서 소는 우리의 마음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동자는 소를 찾으려 마을을 나섰습니다. 따라서 심우란 외양간 문을 열어 젖힌 채 까맣게 잊어버리고, 뒤늦게야 사라진 소를 찾아 숲으로 들어가는 어리석은 중생을 비유하는 것입니다.

왜 소가 사라졌는지도 모르고 방황하는 상황, 나약하고 어리석은 인간이 소를 찾아 먼 산을 바라보는 모습을 통해 수행의 출발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1. 견적 (見跡)

< 물가 나무 아래 발자국 어지러우니 방초芳草 헤치고서 보는가, 못 보는가.

깊은 산 깊은 곳에 있을지라도 하늘 향한 그 콧구멍 어찌 숨기리.>

소를 찾아 숲을 헤매던 동자가 드디어 소의 발자취를 찾았습니다. 깊은 산 수풀에 숨어 있더라도 발자국을 남긴 이상 온전히 모습을 감출 수 없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수학문제도 공식만 이해하면, 응용문제도 곧 풀어낼 수 있습니다. 수행도 이와 같이 그 방법이 제시되면 믿고 그대로 실천할 때 그 끝에 진리가 드러나게 됩니다. 아직 진리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 수 없지만, 진리를 얻겠다는 일념으로 꾸준히 정진한 끝에 동자는 어럼풋이 길을 찾게 됩니다.

우리 속담에 '우물을 파도 한 우물만 파라'고 했습니다. 나무 아래 어지러히 놓인 발자국처럼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방초를 헤치고, 풀숲 속에서도 제대로 잘 찾아보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수행의 첫 걸음에서 바른 견해인 정견正見을 의미합니다. 바른 견해를 가져야 나아갈 방향이 명확해지고, 바른 생각과 바른 수행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급한 마음에 아무 곳에나 땅을 판다고 우물이 샘 솟지 않습니다. 제대도 된 곳에 우믈을 파야 맑고 청량한 샘이 솟아오릅니다. 잘못된 곳에서 아무리 노력해본들 돌덩이만 계속 나올 뿐입니다.

소가 남긴 발자국을 찾았으니 놓치지 않고 잘만 따라간다면 소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가야할 방향이 정해졌다면 방황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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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예절
문화

사찰예절

1. 도량예절

복장은 너무 화려하거나 지나치게 노출되지 않는 옷으로 깨끗하고 단정하게 입습니다. 조용히 말하고 행동하도록 하며, 큰 소리로 떠들지 않도록 합니다. 경내에서는 급하다고 뛰어다니거나 신발을 끌고 다녀서는 안 됩니다. 사찰은 공동생활 공간이므로 사용한 물건은 반드시 제자리에 놓으며, 항상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2. 법당예절

법당을 출입할 때는 가운데 문으로 다니지 말고 옆문으로 출입합니다. 신발은 언제나 가지런히 벗어서 놓습니다. 문을 열고 닫을 때 조심스럽게 하여 요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합니다. 부처님의 정면은 스님 자리이므로 중앙을 피하여 좌우에 앉습니다.

3. 스님에 대한 예절

스님은 불자들의 귀의처인 삼보 중 하나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어가고 불자들에게 올바른 신행 생활을 이끄시는 분입니다. 스님은 중생의 복전이 되므로 공경스러운 마음으로 예배합니다.

4. 생활예절

기상, 취침, 공양은 해당 사찰이 정하는 일정에 따라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해야 합니다. 공양할 때는 음식을 남겨서는 안 되며, 자기가 먹을 만큼만 적당히 덜어서 먹습니다. 세면과 칫솔질은 정해진 장소에서 하고, 세면이 끝난 후에는 정돈되지 않은 복장으로 도량을 돌아다니지 않습니다.

5. 합장 예배하는 경우

일주문을 넘어서 부처님 도량에 들어서거나 나올 때 법당에 첫발을 들여놓거나 나올 때 절을 시작하기 전이나 끝날 때 경내에서 스님이나 불자님과 인사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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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8일
불교입문 - 우리나라의 삼보사찰은?
문화

불교입문 - 우리나라의 삼보사찰은?

통도사를 불보사찰이라 하며 해인사를 법보사찰이라 한고, 송광사를 승보사찰이라 합니다.

※ 이 자료는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 알아두면 좋은 불자상식 작성자 민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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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목탁의 유래
불교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목탁의 유래

물고기 참회서 유래, 깨어 있는 정신의 표상

▲ 부산 삼광사 대웅보전에 그려진‘목탁의 유래’를 표현한 벽화.

푸른 물결이 일렁거리는 바다 위 작은 배에 스님이 합장을 하고 앉아 있다. 스님 앞에는 커다란 물고기가 있는데 등에 나무가 솟아있다. 그런데 물고기는 눈물을 흘리며 스님을 향해 있고 나무 위에는 목탁 하나가 구름 속에 비치고 있다.

부산 삼광사 대웅보전 왼쪽 외벽에 그려진 벽화다. 삼광사 뿐 아니라 많은 절의 벽화에 이러한 도상이 등장한다. 어지간한 불자들은 이 그림이 목어(木魚)가 만들어지게 된 유래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임을 알 것이다. 목어는 법고·범종·운판과 더불어 절에서 의식이나 법회 등을 할 때 사용하는 불전사물(佛殿四物) 중의 하나다. 오래전부터 절에는 목어가 만들어진 배경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옛날 어느 절에 나이 어린 행자가 있었다. 그 행자는 수행은 하지 않고 온갖 엉뚱한 일만 저지르고 다녔다. 그러다가 젊은 나이에 그만 요절을 하고 말았다.

몇 해가 지난 후 그 절의 큰스님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데, 등에 나무가 난 큰 물고기가 다가와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큰스님이 숙명통으로 관해보니 바로 말썽장이 행자가 물고기의 몸을 받았는데, 그나마 등에 나무가 나서 바람이 불 때 마다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람 몸을 벗고 물고기로 환생한 것도 안타까운데 등에 커다란 나무가 솟아 있으니 움직이기에 얼마나 불편할까. 노스님은 물고기의 업보를 다 녹여 주어야겠다는 일심으로 수륙재를 지내 주었다. 그러자 홀연히 물고기가 스님께 나타나 “스님의 법력으로 중생의 몸을 벗었다”며 “저의 등에 났던 나무로 물고기 모양을 만들어 걸어두고 두드릴 때 마다 잘못을 각성하는 도구로 삼게 해 달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그리하여 스님은 물고기 등의 나무를 깎아 물고기 모양을 만들어 절에 걸었다. 물론 그 나무를 치면서 늘 부지런하게 수행하라는 가르침을 펼쳤다.

이것이 목어가 만들어진 유래다. 불전사물로서의 목어는 대체적으로 물고기의 모양이고 뱃속이 비어 있다. 이를 축소하여 의식을 할 때 두드리는 것이 목탁(木鐸)이다. 그러니까 목어와 목탁은 같은 개념이고 쓰임에 따라 크기가 다를 뿐이다.

절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불구가 목탁이고, 조석 예불이나 각종 법회 및 의식에서 가장 흔하게 쓰는 불구 또한 목탁이다. 목탁 소리에 맞춰서 염불을 하고 절을 하기도 한다. 목탁은 정신을 일깨우는 불구인 동시에 의례를 일률적으로 진행하게 하는 신호용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물고기는 잠을 잘 때 눈을 감지 않는다. 그래서 목탁은 항상 깨어 있는 정신의 표상이 되기도 한다.

질서를 잡아 나가는 ‘선도적 역할’을 하는 경우를 목탁에 빗대기도 한다. ‘언론은 사회의 목탁’이라는 말이 그런 예다. 세상을 향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잘못을 반성하게 하는 역할이 목탁의 본분이라는 것이다.

유학의 가르침인 〈논어〉에도 목탁이 나온다. ‘팔일(八佾)’ 편에 위나라에 속하는 의(儀)라는 곳의 묘지기가 공자를 만난 뒤에 한 말이 소개되고 있다. 묘지기는 “제자 되는 이들아. 노나라에서 관직을 잃어버린 것을 무얼 걱정하시는가. 천하에 도가 없어진지 오래이니 하늘에선 장차 선생님으로 목탁을 삼으시려 하시는 것을”이라고 경탄한다. 한낱 묘지기지만 여러 성인군자들을 만난 사람이라 한 눈에 공자의 위대함을 알아보고 공자가 곧 천하의 목탁이 될 것이라고 장담하는 말이다.

불자들에게 목탁은 그저 절에서 쓰는 불구가 아니다. 끝없는 자기반성과 새로워지려는 노력의 지침이 되어야 한다. 필자는 누구나 가슴에 목탁 하나를 품고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태해지려는 순간마다, 유혹이 다가오는 순간마다 스스로 마음속의 목탁을 힘껏 두드려 보라. 그렇지 않으면 숙세의 악연들이 치성하여 악업을 지어가게 될 뿐이다.

오늘 나는 마음속 목탁을 몇 번이나 두드리고 살았는가? 잠들기 전에 꼭 따져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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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상의 종류 - 천부신장상
문화

불상의 종류 - 천부신장상

본래 인도 재래의 신들로서, 불교에 귀의하여 부처님과 불교를 지켜주는 호법신장(護法神將)이 된 신들을 천부신장(天部神將)이라고 한다. 귀족 또는 장군, 온화한 모습 진노하는 모습 등 갖가지 형상을 하고 있다. 유명한 상으로는 인왕상, 사천왕상, 제석천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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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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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벽화이야기 - 안수정등 (岸樹井藤) -흰쥐 검은쥐
문화

사찰벽화이야기 - 안수정등 (岸樹井藤) -흰쥐 검은쥐

<유하사- 경북 안동>

불설비유경(佛說比喩經)에 나오는 이야기로

코끼리에 쫒긴 어떤 남자가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해진 그림이다,

안수(岸樹)는 언덕 위의 나무, 정등(井藤)은 우물에 있는 등나무라는 뜻으로

어떤 남자가 광야를 가다가 사나운 코끼리를 피해 나무에 걸린 등나무 줄기를 잡고

우물 속으로 피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살았구나 하며 잠시 안정을 취해보지만

우물 밑을 내려다보니 그 속에는 4마리의 독사(지수화풍)가

입을 벌리고 혀를 날름거리고 있고 아니다 싶어 다시 위를 올려다보니

흰 쥐 검은 쥐(낯과 밤)가 번갈아 가며 그 남자가 매달린

등나무 줄기마저 갉아먹고 있는 게 아닌 가

남자는 처한 상황에 그만 망연자실하게 된다.

그런데, 때마침 등나무 줄기 덤불 속에 있는 벌집에서

꿀이 흘러내려 그 남자의 얼굴에 똑똑 떨어지자

그 꿀맛에 취해 금세 자신이 처한 엄청난 상황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다.

▮ 안수정등의 상징

결국 이 그림이 시사 하고 있는 것은 절체절명의 현실을 망각한 체

욕망에 취해 의식 없이 하루하루 살고 있는 우리 인생을 꼬집고 있다.

내 눈앞에 펼쳐있는 모든 것은 곧 내 마음이 그려낸 것 이라 했다

마음이란 모든 것을 감쌀 정도로 크기도 하지만 바늘구멍하나

찔러 넣을 수 없이 옹졸하기에 극락과 지옥이 모두 이 맘속에 있다고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하루의 시간을 부초처럼 떠밀려 다니며

의식 없이 보네고 있는 현대인에게,

‘어떤 마음을 가져야 좀 더 가치 있게 살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네 인생은 무엇을 향해 가고 있으며,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영원해 보이는 달콤함도 한때였는데, 혹, 지금도 집착에 빠진 채

망상에 빠져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혜안(慧眼)으로 살피라는 가르침으로 보인다.

‘안수정등’은 살벌한 현실에 내몰린 한 남자를 통해 내일 앞 어찌 될지도 모르는

인생의 시간을 망각 한 채 작은 것을 탐하며 사는 어리석음을 벗어나

순간순간 최선으로 살아라 함을 느끼게 하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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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여래의 씨앗을 갈무리해 둔 곳간
문화

여래의 씨앗을 갈무리해 둔 곳간

**[여래의 씨앗을 갈무리해 둔 곳간] **

아난존자에게 능엄경을 설하시다 - 단양 구인사 광명전 벽화로 그려진 불화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누구나 한번쯤 떠 올리는 의문입니다. 만약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면, 나를 괴롭히는 마음의 아픈 상처를 깨끗이 지워 버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병원 진료나 수술을 통해 상처를 치료하는 것 처럼, 마음만 찾아 꺼내어 의사에게 고쳐 달라고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마음속에는 여래의 성품이 들어 있습니다. 그 성품을 불성佛性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의 목적입니다. 그런데 불성을 찾으려면 어디에 담겨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마치 연못 속에 잠긴 연꽃줄기를 물 밖으로 꺼내는 일과 같다고 했습니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캄캄한 물 속에서 연꽃줄기가 뿌리내리고 있는 곳, 그 곳을 찾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더듬더듬 흔적을 따라간다면, 반드시 연꽃줄기를 두 손으로 움켜잡을 수 있게 됩니다.

『능엄경』은 부처님께서 제자 아난존자와 함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물음과 답변으로 이어지는 경전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부처의 성품이 되는 그 마음을 찾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 다정한 표정을 지으시며 세심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여래의 씨앗을 갈무리해 둔 곳간"이라고. ​그 곳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었을 때 과연 내 마음이 어디서 울리고 있는지 귀 기울여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보이는 것들에 현혹되지 말라]

수보리에게 반야경을 설하시다 - 단양 구인사 광명전 벽화로 그려진 불화

마음을 찾는 여행의 도착지에 어마어마한 보물이 들어 있을까요? 아니면 텅 빈 곳간만 덩그러니 남아 있을까요? 하지만 혼자만 들어갈 수 있는 내 마음속 창고입니다.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나 외에는 가 본 사람도 없으며, 나 외에는 갈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가 내 마음에 도착한다면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몹시 궁금합니다.

『반야심경』은 불자라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외우게 됩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 지혜를 닦는 수행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해 놓은 경전입니다. 반야심경이라면 대부분의 불자들은 '색즉시공'色即是空이라는 말을 떠 올립니다. 여기서 '색'色은 우리가 받아들이는 모든 '대상'을 대표하는 말입니다. 구체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들, 귀에 들리는 소리, 코로 맡아지는 냄새, 혀에 전해지는 맛, 손이나 신체로 만져지는 것등 우리 감정이나 느낌을 일어나게 하는 모든 대상을 색이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그 색色이 공空하다는 말이 색즉시공色即是空입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 지혜로 바라보니, 모든 대상은 사실 그때 그때 변하는 것이지 항상 그 모습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시간에 따라 다르고, 장소에 따라 다른 것이 색즉시공의 이치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이 있는데, 내 눈에 내 자식은 그렇게 귀하고 예뻐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남의 집 자식이라면 눈에 넣을 생각이라도 할까요? 또 가족끼리 외식으로 고기 집을 갔는데, 고기 굽는 냄새가 배고픈 식당 안에서는 그렇게 행복할 수 없더니, 막상 배부르게 먹고 나오니 옷에 밴 냄새가 좋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단지 상황만 조금 바뀌었을 뿐인데, 전혀 반대의 결과가 되어 버렸습니다. 인연법因緣法이 변한 것입니다. 그 인연을 공空이라 생각해 보면, 색즉시공이란, 같은 대상이라도 그 때의 인연에 따라 내가 갖는 느낌과 생각이 모두 바뀐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 제자 가운데, 공의 이치를 가장 잘 깨우친 해공제일解空第一수보리 존자에게 부처님께서 반야경을 설하고 계십니다. 마음을 찾기만 해서 되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마음이 모두 공空이라고 하십니다. 혹시 우리의 마음 창고도 텅 비어 있는 것일까요?

[바르게 피어나는 하얀 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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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불에게 법화경을 설하시다 - 단양 구인사 광명전 벽화로 그려진 불화

바른 마음가짐으로 심성心性을 바르게 하면 내 마음에도 하얀 연꽃이 피어납니다. 무거운 진흙을 뚫고 흙탕물 속에서도 새하얗게 피어난 연꽃들 처럼, 중생의 마음도 무명無明의 번뇌를 걷어내어야 합니다.

그렇게 여래의 씨앗을 갈무리해 둔 곳간을 찾아 싹을 틔우니, 하얀 연꽃 한 송이가 바르게 피어났습니다. 각각의 연꽃 봉우리에는 한 분 한 분의 불자님들이 앉아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게 됩니다.<br> 아무리 어렵고 힘든 세상, 말법의 시대가 닥치더라도 그 곳에 바른 마음으로 살아가는 한 중생만 있다면, 그 청정한 마음을 연못삼아 연꽃의 미묘한 향기가 부처님 가르침처럼 전해질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세상을 부처님께서 오가시는 도량으로 만들기 위해 『법화경』의 큰 가르침이 중생들에게 전해집니다.
<br>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길]
<br>

경전이운經典移運. 우마차를 이용해서 경전을 옮기는 모습 - 단양 구인사 광명전 벽화로 그려진 불화
<br>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은 경전은 부처님의 육성과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님을 모시듯 예를 갖추어 머리에 이고 두 손으로 떠 받치고서 경전을 옮겨갑니다.

옛날 인도에서 서역을 거쳐 삼장법사께서 모셔오던 불서 행렬이 그림과 같지 않았을까요, 앞선 동자가 받쳐 든 향불을 따라, 스님과 대중의 원력으로 경전이 모셔지고 있습니다.
<br> 경전이운經典移運이란, 부처님의 말씀인 경전을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의미입니다. <br>마치 법륜(法輪: 부처의 敎法)을 굴리 듯 우마차에 가득 실은 부처님의 말씀은 열 개의 살로 이루어진 수레바퀴를 따라 동서남북 시방十方세계 곳곳마다 부처님의 자비광명을 기다리는 곳으로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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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대구 달성군 옥포읍 용연사 벽화 이야기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대구 달성군 옥포읍 용연사 벽화 이야기

사찰 벽화이야기 대구 달성군 옥포읍 용연사 벽화 이야기

용연사龍淵寺 극락전極樂殿

용연사 극락전(龍淵寺極樂殿.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대구광역시 달성군 용연사길 260)

비슬산 용연사는 통일신라 신덕왕 원년(912)에 보양국사가 처음 지었다고 전한다.

조선 세종 1년(1419)에 천일대사가 다시 지었고,

임진왜란으로 불탄 것을 여러 해에 걸쳐 다시 지었다.

이렇게 지어진 건물은 200여 칸이 넘고 승려도 500여 명이나 되는 큰 절이었다고 한다.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은 영조 4년(1728)에 다시 지었다.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간결한 맞배지붕집이다.

지붕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배치된

다포 양식으로 조선 후기 건축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는 건물이다.

극락전 향向 우측 외벽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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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조리와속리 (早離, 束離) - 무인도에 버려진 형제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조리와속리 (早離, 束離) - 무인도에 버려진 형제

<관암사- 대구 동구>

관음본연경(觀音本線經)에 나오는 이야기로 아미타불의 협시보살인 관세음보살과 세지보살이 전생에 조리 속리(早離, 束離)라는 두형제로 살고 있을 때 계모로부터 무인도에 버림을 받고 주위에 애타게 도움을 청하고 있는 그림이다.

▮ 모든 것을 용서하는 마음

무인도에 버려진 두 형제는 애절한 도움의 외침에도 결국 어느 누구의 응답을 기대 할수 없는 현실을 느끼게 되고.

꺼져가는 생명의 순간, 만일 다음생에 다시 태어나면 꼭 지키리라는 다짐을 하나하나 써 내려 가기 시작한다.

우리처럼 의지할곳 없는. 이들에게 사랑의 몸으로 바로 달려와 안아주고,

우리처럼 굶주리는 이들에게 부자의 몸으로 재물 나누어 주고.

우리처럼 망망 바다에 조난당한 이들에게 수호천사되어 구제하리라.


이렇게 써내려간 32가지 다짐을 마친 두 형제는 그렇게 조용히 눈을 감고.

그 뒤 다시 태어난 조리는 관세음보살이 되고, 동생 속리는 대세지보살이 되어,

고통받는 중생들이 부르면, 그 어떠한 이유 달지 않고, 바로 달려와 구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열일 제처두고 바로 달려 와 주는 것을 , 두형제 이름(조리, 속리)의 첫자를 따서 ‘조속’히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언젠가 나도 모르게 내주위 인연들의 마음에 지어놓은 미움으로 아무도 모르는 무인도에 갇히듯이,

나 또한 주위에서 무관심이란 외로운 섬에 던져질 수 있다는 교훈으로 보이는 벽화다.

이처럼

관심속에서 모든 것을 용서하는 힘 생기듯,

미움으로 일어난 가장 힘든 순간에서도 피워낸 연꽃의 마음을

우리는

‘자비(慈悲)심’ -좋은 정, 미운 정 의 마음-이라 부른다.

‘조리와속리’는 외로운 섬을 통해 격조했던 옛 친구를 느끼게 하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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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입문 - 지장보살은?
문화

불교입문 - 지장보살은?

모든 중생을 지옥에서 구제하지 않으면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고 원을 세우고 항상 지옥 문전에서 고통중생을 구제하는 보살로서 중생이 불쌍해서 항상 눈물이 마를 사이 없는 거룩한 보살이시다. 석존이 입멸한 후부터 미륵불의 출현때까지 천상과 지옥의 육도 중생을 교화하시는 대자대비의 보살이시다.

※ 이 자료는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 알아두면 좋은 불자상식 작성자 민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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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설화 - 목탁의 유래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설화 - 목탁의 유래

옛날 어느 덕 높은 스님이 있었는데, 스님의 문하에는 몇 분의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어기고, 제멋대로 계율에 어긋난 속된 생활만 일삼다가 그만 몹쓸 병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죽은 뒤 그 제자는 물고기 몸을 받아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등 위에 커다란 나무가 자라면서 여간 큰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하루는 스승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데, 등 위에 나무가 달린 물고기가 배를 가로 막고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이에 스승이 선정의 힘으로 물고기의 전생을 가만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일전에 병으로 죽은 제자가 수행자의 몸가짐이 바르지 못했던 과보로 물고기로 태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승은 이를 가엾게 생각하여 수륙제를 베풀어 물고기의 몸을 벗도록 천도해 주었습니다.

그날 밤, 스승의 꿈에 옛 제자가 나타나 스승의 큰 은혜를 감사하며 이렇게 말씀을 올렸습니다.

"스승님, 제 등에 있는 나무를 베어 물고기 모양을 만들어, 법당 옆 마루에 걸어두고 때 마다 쳐 주십시오. 그 소리를 듣는 스님들은 저를 교훈삼아 수행에 더욱 정진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불전사물 가운데 하나인 목어木魚가 만들어 졌습니다. 물고기는 눈을 뜬 채 잠을 잡니다. 이처럼 모든 수행자들이 게으르지 말고 열심히 수행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불전사물은 범종, 법고, 목어, 운판을 말합니다. 부처님께 예불을 올릴 때 항상 불전사물을 먼저 울리게 됩니다. 물고기 형상의 목어를 통해 수중의 중생을, 구름모양의 운판을 울려 허공의 여러 중생들을, 땅 위 모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는 법고의 북소리를 울립니다. 그리고 지옥 중생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 범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불전사물이 갖는 의미는 이렇게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온 우주의 모든 중생이 고통을 벗어나고 다 함께 성불로 나아가자는 염원이 담긴 자비의 울림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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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염화미소 (拈花微笑) - 이심전심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염화미소 (拈花微笑) - 이심전심

<심복사- 경기 평택>

대범천왕문불결의경(大梵天王問佛決疑經)에 나오는 이야기로 석가모니가 설법을 하던중 잠시 말을 멈추고 조용히 연꽃 한 송이를 들어 올리고 대중을 둘러 보고 있는데. 대중속에 있던 가섭만이 그 뜻을 알고 혼자 미소지었다는 내용의 그림이다. ▮ 이심전심 (以心傳心) 석가모니는 법회를 하다가 왜 연꽃을 들었고 ‘가섭’은 왜 그 연꽃을 보고 미소를 지었을까?
여기에는 말로 전하는 뜻보다도,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게 된다는 뜻에서, 서로의 뜻이 통함을 나타내고 있다는 모습이다. 때로는 열 마디 말보다 한번 웃어주는 것이 더욱 오랜 여운으로 남는 것이다. ▮ 삼처전심 (三處傳心) 석가와 가섭이 세 곳에서 마음을 전했다는 말을 ‘삼처전심’(三處傳心)이라 한다. 사람은 일생에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세 명만 만나도 성공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 만큼이나 나를 알아주는 사람 만나기가 어렵다고 하지 않는가. 내가 내 자신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데, 평생을 함께 산 배우자도, 열 달 동안 뱃속에서 뼈와 살을 나누었던 자식도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섭섭한 마음은 항상 가까이 있는 가족으로부터 먼저 일어난다 하니, 내 마음을 잘 알거라는 나의 믿음이 앞서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만큼 ‘꽃을 든 석가’의 그림에서 세 번이나 마음을 알아준 석가와 가섭의 ‘삼처전심’의 감동이 그만큼이나 커 보인다.‘염화미소’는 한송이 꽃을 통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깊고 오묘한 가르침의 깊이를 느끼게 되는 그림이다.

▮ 모아보는 염화미소

<북지장사-대구 동구>

<성주사-경남 창원>

<용화사-전남 담양>

<운흥사-대구 달성>

<해인사 원당암-경남 합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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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부모은중경 5편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부모은중경 5편

마른 자리에 눕히고 진자리에 누우신 은혜 (회건취습은)

< 어머니 당신 몸은 젖은 자리 누우시고, 아기는 떠안아서 마른자리 눕히시네. 가슴의 두 젖으로 목마름을 채워주고, 고운 옷 소매로는 찬바람을 가려주네. 아기를 돌보느라 밤잠을 설치셔도, 아기의 재롱으로 큰 기쁨을 삼으시네. 오로지 어린 아기 편안할 것 생각하고, 자비하신 어머니는 불편함도 마다않네. >

곤히 잠이 든 아이의 옆에 어머니께서 항상 따라 다니는 큰 그림자처럼 누워 계십니다. 마른 옷 좋은 이불로 아이를 감싸, 편안한 잠자리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어버이의 날 다함께 부르는 '진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며'라는 가사는 『부모은중경』의 이 구절에서 나온 말입니다.

'등 따시고 배부르니 졸린다'고 했었나요. 자식의 목마르고 배고픔에 어머니는 젖을 먹여 달래주었고, 배부른 포만감 속에 아이는 곤히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새곤새곤 잠든 아이의 표정을 바라보지만 어머니의 얼굴에도 힘든 기색이 역력합니다.

아무리 아픈 통증에 시달리다가도 울다 지치면 잠이 듭니다. 그만큼 잠이 보약이라는 말인데, 억지로 잠을 못자는 것은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잠을 안 재우는 것은 옛날에는 고문으로도 존재했을 만큼 무서운 형벌입니다. 누구나 단 며칠만 잠을 못자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이를 돌보느라 잠을 잊은 지 오래 되었습니다. 제대로 주무신 게 언제인지조차 기억나지가 않습니다. 어느새 깜빡 잠이 들만도 하지만, 어머니는 눈가에 몰려드는 피곤함을 물리치고 잠이 든 아이의 옆에 언제나 지켜주십니다.

그러다 가끔 아이가 옹알 이라도 한다손 치면, 눈가에 떨어지는 고단함은 신기하게도 금방 커다란 웃음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부모님의 보살핌은 오로지 어린 아이가 편안할 것만 생각하시기에, 어떤 불편함도 마다 않으십니다. 어쩌면 중생을 생각하는 자비하신 보살의 마음이 이와 같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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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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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 - 신묘장구 대다라니 (19일차)
문화

불교문화 - 신묘장구 대다라니 (19일차)

**보명법사의 신묘장구대다라니 3×7=21일 기도 19일째. **

  1. 신묘장구대다라니 (神妙章句大陀羅尼)의 뜻④
(16) 제16구.

호로호로 마라호로 하례 hulu hulu malla hulu Hare 훌루 훌루 말라 훌루 하레

<호로>는 '두렵다', <마라>는 때ㆍ부정ㆍ먼지ㆍ번뇌', <하례>는 '없애다ㆍ제거하다' 는 뜻이므로, 이 구절의 전체적인 내용은 '두렵고도 두려운 번뇌를 제거하여 주옵소서!' 입니다.

【다라니 해석】 ☞ Huru huru mala huru Hare Padma-nābha 후루 후루 말라 후루 하레 빠드마 나바 번뇌를 없애 주소서! 연화성존 하리[비쉬누 신]이시여!

⊙ 후루(huru) : 가져가다; 정화하다(hr 흐리)의 명령형. ⊙ 말라(mala) : 번뇌, 때, 더러움. ⊙ 하레(Hare) : 하리(Hari. 觀自在) 비쉬누 신의 별칭. (cf. Hara는 시바 신) ⊙ 빠드마 나바(Padma-nābha) : 배꼽에서 연꽃이 피어나는 분, 연화성존; 비쉬누 신) (Padma 연꽃 + nābha 배꼽. 중심)

※ 연화성존(蓮花聖尊) 비쉬누 신 인도의 고대종교 문헌 푸라나(Purana)에 따르면, 구세주 비쉬누신은 세상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중생을 구원하기 위하여 헌신한다.
그는 세상이 평화로울 때는 자신의 배우자 신 락쉬미(Lakshmi)와 함께 거대한 뱀 쉐시나가(Sheshnaga)를 타고 우주의 바다 위를 떠돌며 휴식을 취한다. 비쉬누 신이 누워 쉬고 있을 때 그의 배꼽에서 연꽃이 피어난다.

그리고 그 연꽃 속에서 창조의 신 브라흐마(Brahma; 불교에서는 범천(梵天)이란 이름으로 수용함)가 태어났다. 이런 연유로 브라흐마 신은 배꼽에서 태어났다는 의미인 나비자(NabhIJa)라고 불리기도 한다.
-민희식ㆍ이진우 엮음 <천수경>에서 옮긴 글-

(17) 제17구.

바나마 나바 사라사라 시리시리 소로소로 못자못자 모다야 모다야 Padma-nābha sara sara siri siri suru-suru budhyā-budhyā bodhaya-bodhaya 빠드마 나바 싸라 싸라 씨리 씨리 쓰루 쓰루 부디야 부디야 보다야 보다야

<바나마>는 '연꽃', <나바>는 '중심ㆍ중앙>, <사라>는 '움직이다ㆍ건지다', <시리>는 '간다ㆍ가게하다', <소로>는 '흘러내리다ㆍ꺼내다, <못자>와 <모다야>는 다같이 '깨달음'입니다.

전체적으로는 '연꽃처럼 거룩하신 분이시여, 건지어 주시고, 건너게 하여 주시고, 깨닫게 하소서!' 하는 뜻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이 연꽃을 타고 계시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연꽃처럼 거룩한 분'이 바로 관세음보살님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라니 해석】 ☞ Sara sara siri siri suru suru 싸라 싸라 씨리 씨리 쓰루 쓰루 감로의 법을 주소서! 지혜의 빛이 모든 곳에 이르게 하소서!

⊙ 싸라(sara) : (감로의 법을) 흘려 보내 주다. ⊙ 씨리(siri) : (지혜의) 빛, 광명. ⊙ 쓰루(suru ←sru) : 흐르다. 모든 곳에 이르다.

☞ budhyā-budhyā bodhaya-bodhaya 부디야 부디야 보다야 보다야 깨달은 분이시여, 깨달은 분이시여, 깨닫게 하소서. 깨닫게 하소서.

⊙ 부디야(budhyā) : 깨달은 존재가 되어, 각자(覺者)가 되어. ⊙ 보다야(bodhaya) : 깨닫게 하다. (budh 깨닫다, 알려 주다, 가르치다 등의 사역형)

(18) 제18구.

매다리야 니라간타 가마사 날사남 바라하라나야마낙 maitreya nilakaṇṭha kamasya dharśanāṁ prahradaya mānaḥ 마이뜨레야 닐라깐타 까마씨야 다르샤남 쁘라흐라다야 마나흐

<매다리야>는 '불쌍히 여기다ㆍ어여삐 여기다', <니라간타>는 전에 설명한 것과 같이 '목이 푸른 성스러운 분'이라는 뜻의 청경성존(靑頸聖尊)으로 관세음보살님을 달리 표현한 말입니다.
<가마사>는 '애욕(愛慾)', <날사남>은 '공격ㆍ보복ㆍ원한'이고, <바라하 라나야마낙>은 '환희ㆍ용약'이므로, 이 구절은 '불쌍히 여기시는 청경성존이시여, 애욕을 파하도록 분기케 하소서'라는 뜻입니다.

【다라니 해석】 ☞ maitrīya nilakaṇṭha kamasya dharśanāṁ prahradaya mānaḥ svāhā 마이뜨리야 닐라깐타 까마씨야 다르샤남 쁘라흐라다야 마나흐 쓰와하 자비심 깊은 청경성존(靑頸聖尊)이시여! 애욕(의 공허한 본질)을 성찰하시고 크게 기뻐하시는 분에게 공경을! 성취케 하소서!)

⊙마이뜨리야(maitrīya) : 자비로운(←mitra 자비; 벗, 우정; 태양신)

◈ Maitrīya (또는 Maitreya)가 고유명사로 쓰일 경우에는 자씨(慈氏; 자비로운 분) 보살, 즉 미래불(未來佛)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을 의미한다.

⊙닐라깐타(nilakaṇṭha) : 푸른 목(=푸른 목을 지닌 시바 신; 청경성존(靑頸聖尊) ⊙까마씨야(kamasya) : 애욕, 욕망 (←kam 사랑하다, 성교하다) ⊙다르샤남(dharśanāṁ) : 성찰(←darsana : view, sight) ⊙쁘라흐라다야(prahradaya) : 크게 기뻐하시는 분께 (pra 큰, 충만한 + hrada 기쁨(←hr 마음) + ya ~에게) ⊙ 마나흐(mānaḥ) : 공경, 경외(man 존경하다 + ah 명사어미) ⊙ 쓰와하(svāhā) : 아아! 성취되기를! 이루어지소서! 비나이다! (성취, 완성의 뜻이 담긴 종결어미)

**(19) 제19구.
**

사바하 싣다야 사바하 마하 싣다야 사바하 Svāhā Siddhāya Svāhā mahāsiddhāya svāhā 쓰와하 씻다야 쓰와하 마하 씻다야 쓰와하

<사바하>는 '서상(瑞相)ㆍ길상(吉相)의 뜻이고, <싣다야>는 '적중ㆍ성취'의 뜻이고, <마하>는 '크다'는 말이므로 '성취를 위하여 길상이 있으라, 큰 성취를 위하여 길상이 있으라'는 뜻입니다.

【다라니 해석】 ☞ siddhāya svāhā mahāsiddhāya svāhā 씻다야 쓰와하 마하 씻다야 쓰와하 성취하신 분께 비나이다! 크게 성취하신 분께 비나이다!

⊙ 씻다야(siddhāya) : 성취하신 분께 siddha 성취한 + ya ~에게(여격어미) ⊙ 마하 씻다야(mahāsiddhāya) : 크게(mahā) 성취하신 분께

**(20) 제20구.
**

싣다 유예 새바라야 사바하 Siddhā-Yogeśvāraya svāhā 씻다 요게스와라야 쓰와하

<싣다>는 앞의 싯다야와 같이 '성취'의 뜻이고, <유예 사바라야>는 마술의 대가(大家)로 요가를 자유자재로 하는 '요가의 자재자'를 의미합니다. 전체적인 뜻은 '요가자재의 성취를 위하여 길상 있으라!' 라는 뜻입니다.

【다라니 해석】 siddhāyogeśvāraya svāhā 씻다요게스와라야 쓰와하 요가를 성취하신 자재자께 비나이다!

⊙씻다요게스와라야(siddhāyogeśvāraya) : 요가(Yoga)를 성취하여 자재(自在)한 경지에 오른 분에게
◈요게스와라(Yogeśvāra) : 고대 인도 시바(Shiva) 신의 별칭으로, 요가 수행자의 왕이라는 뜻이다. (yoga 요가 + isvara 자재자, 왕, 대가 .

**(21) 제21구.
**

니라간타야 사바하 nilakaṇṭhaya svāhā 닐라깐타야 쓰와하

<니라간타야>는 앞서 설명한 대로 '청경존(靑頸存)'이고, <사바하>는 '길상'이므로, '청경존을 위하여 길상이 있으라!'는 말입니다.

【다라니 해석】 ☞ nilakaṇṭhaya svāhā 닐라깐타야 쓰와하 청경성존(靑頸聖尊)이시여, 성취케 하소서!

⊙닐라깐타야(nilakaṇṭhaya) : 푸른 목을 지닌 신(靑頸聖尊); 시바 신)에게

◈ 요가의 왕, 시바신 시바신은 극한의 요가를 수행하는 신으로 요기(yogi; 요가수행자)의 왕이라 불린다. 시바 신은 재를 개어 이마에 수평으로 세 선을 긋고 연화좌로 앉아서 명상을 한다. 이마의 세 선(Thripundraka 트리푼드라카)은 모든 사람은 죽게 마련이며, 따라서 고행을 통해 탐(집착)ㆍ진(분노함)ㆍ치(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음을 상징한다.
-민희식ㆍ이진우 엮음 <천수경>에서 옮긴 글-

(22) 제22구.

바라하 목카 싱하 목카야 사바하 varahamukha siṁhamu Khaya Svāhā 바라하 무카 씽하 무카야 쓰와하

<바라하>는 '돼지', <목카>는 '모습ㆍ형태', <싱하>는 '사자'이므로, '돼지 모습의 성자를 위하여, 사자 모습의 성자를 위하여 길상이 있을지어다' 하는 뜻입니다. 돼지의 모습을 한 성자나 사자의 모습을 한 성자'는 모두 중생제도를 위한 보살님의 여러 가지 화신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다라니 해석】 ☞ Varaha-mukha siṁha mukhaya svāhā 와라하 무카 씽하 무카야 쓰와하 산돼지 얼굴, 사자 얼굴로 현신하시는 분께 경배하옵니다. 성취케 하소서!

⊙ 와라하 무카(varaha-mukha) : 산돼지 얼굴(varaha 산돼지 + mukha 얼굴)
⊙ 씽하 무카야(siṁha mukhaya) : 사자 얼굴(siṁha 사자 + mukha 얼굴 + ya ~에게)

◈신묘장구대다라니에는 왜 갑자기 산돼지 또는 사자의 얼굴을 한 관세음보살이 등장하는가?

인도 고대 종교 브라흐만교에서 비쉬누(Vishnu) 신은 세상이 혼란해지면 그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현신하여 악을 몰아내고 질서를 바로잡는다.

비쉬누 신은 열 가지 화신(化身)으로 나타나는데 그 중에는 산돼지 얼굴이나 사자 얼굴의 화신도 있다. 대다라니는 본래 브라흐만의 신들인 시바 신과 비쉬누 신에 대한 예찬 기도문이었다.

이 다라니가 불교에 수용될 때, 그 속에 들어있던 비쉬누 신의 화신들을 예찬하는 내용조차 수정되지 않은 채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그 결과 산돼지 또는 사자의 얼굴을 한 관세음보살님이 등장한다는 얼토당토하지 않는 내용으로 되어버린 것이다.

○ 바라하(varaha)는 비쉬누 신의 3번째 화신이다.

머리는 멧돼지 형상으로 네 손에는 각기 비쉬누 신의 상징물인 연꽃, 원반, 소라나팔, 곤봉을 들고 있다.
그가 구원하는 대지는 그가 안고 있는 여성으로 묘사되어 있다. 비쉬누 신은 악마 히란약사(Hiranyaksha)가 지구(Prithvi 쁘리트위이)를 우주 깊은 바다로 침몰시키자, 천년에 걸친 끈질긴 싸움 끝에 승리하였다.

그는 지구를 구하기 위하여 멧돼지 바라하의 형상으로 출현하였다.
바라하는 지구를 두 송곳니 사이에 올려 우주의 깊은 바다로부터 건져내 원래의 위치로 회복하여 인류를 구원하였다. 비쉬누 신이 이처럼 대지를 지탱하여 인류를 구원하였다는 데에 연유하여 그는 '대지를 지탱하는 신)이라고도 불린다.

바라하 화신 이야기는 그 기원을 브라흐마나에 두고 있지만 원주민들의 토테미즘에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 푸라나(Purana), 마하바라타Mahabharata), 리그 베다(Rig Veda) 또는 우파니샤드(Upani shads) 등의 인도 고대종교 경전에는 비쉬누가 사람의 몸통에 사자의 얼굴과 발톱을 가진 반인 반사자인 나라씽하의 모습으로 현신한다고 묘사되어 있다.

원문에는 나라-씽하-무카(nara-simha-mukha)로 되어 있으나 불교로 수용되는 과정에서 나라(nara-)는 삭제 되었다.

비쉬누의 또 다른 현신인 바라하가 악마 히란약샤를 죽이자, 그의 동생 히란약시푸 (Hiranyakashipu)는 비쉬누와 그 신도들을 증오하게 된다.
그는 비쉬누를 죽일 목적으로 창조의 신 브라흐마(Brahma)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한다. 마침내 브라흐마 신이 그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자 그는 브라흐마 신이 창조한 어떠한 인간, 신, 동물에 의해서도, 또한 어떠한 생명이 있거나 생명이 없는 무기에 의해서도 낮이나 밤에도, 왕궁 안이나 밖에서도 죽음을 당하지 않게 해달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불사의 운명을 부여받게 되었다.

어느 날 그가 집에 없을 동안 공격을 받아 그의 임신한 아내가 위험하게 되었으나 현명한 신 나라다(Narada)가 그의 아내를 보호하여 데려가서 아들 프라흘라다(Prahlada)를 낳게하고 교육을 시킨다.

히란약시푸는 자기의 아들이 숙적 비쉬누 신의 신봉자가 되자, 몹시 화가 나서 자기의 아들을 죽이려 든다.
그때 비쉬누 신이 반인-반사자인 나라씽하의 모습으로 나타나 히란약시푸를 죽인다. 비쉬누 신이 나라씽하의 형상을 취한 까닭은 악마를 무찌르기 위해서였다.

그는 브라흐마 신이 창조한 인간, 신, 동물에 의해서는 죽일 수 없으므로 그 어느 쪽도 아닌 반인-반사자인 나라씽하의 형상으로, 낮도 밤도 아닌 황혼 무렵에, 왕궁 안도 밖도 아닌 입구에서, 생명이 있는 것도 생명이 없는 것도 아니 무기인 발톱으로 죽인 것이다. 비쉬누 신은 그 악마의 내장을 꺼내 죽이고 그 악마의 아들이지만 현명한 프라흘라다를 왕위에 올린다.

불기 2570년 4월 29일 팔공산 감고사지기 보명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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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30일
사찰미술여행 - 삶에 대한 심판, 명부 시왕.
문화

사찰미술여행 - 삶에 대한 심판, 명부 시왕.

▲ 시왕도 중 제5 염라대왕, 고려후기, 견본채색, 61.2×45.0㎝, 미국 개인.

경칩이 지나고 춘분이 코앞으로 다가오니 체온으로 느끼는 봄은 아직 먼데 마음은 벌써 백화가 만발하다. 어느 시인의 말씀처럼 ‘아직 잔설이 녹지 않은 내 마음의 바위틈에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일어서는 봄’을 느끼고 싶어 나는 무작정 길을 나섰다. 발길 닿는 데로 봄을 찾아 나선 여행이지만 필자의 삶과 불교미술이 맺고 있는 가늘고 긴 인연 때문에 산사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천왕문을 지나 금당의 부처님도 뵙고 법당의 보살님도 만나며 이리 저리 전각들을 둘러보다 마지막으로 발길이 멈춘 곳이 명부전이다.

현왕도·시왕도 지옥 장면 묘사

섬뜩한 장면으로 중생들 교화

절로 두려움 자아내도록 하여

죄 짓지 않겠다는 다짐 이끌어

봄날을 느끼고 싶어 떠난 걸음인지라 어두운 저승의 시왕이 모셔진 명부전은 눈으로만 인사하고 지나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얼마 전 8명의 재판관에 의해 탄핵이 심판되었던 기억 때문인지 인간의 삶을 재판하는 판관이 모셔진 명부전에 대한 감상이 여느 때와는 다르다. 불교적 상례를 시다림이라고도 하는데 말뜻 그대로의 의미는 추운 숲(寒林)이다. 신을 벗고 법당 안으로 한 발을 내디뎠더니 차가운 날씨 때문에 발끝이 오그라들 정도로 바닥이 차 유명계(幽冥界)의 서늘한 분위기를 체온으로 느끼겠다.

▲ 시왕도 중 제2 초강대왕도 염라왕, 조선(17세기 중후반), 견본채색, 155.0×126.5㎝, 동아대 박물관.

명부전 내부의 배치를 보면 전각 중앙의 불단에는 지장보살을 모시고 좌측에 스님 모습의 도명존자와 우측에 판관복장을 하고 있는 무독귀왕이 있고 그 좌우로 시왕이 배치되어 있다. ‘불설예수시왕경’에 의하면 사람이 죽으면 3일간 이승에서 머물다 저승사자에 이끌려 명부로 가게 되는데 이곳에서 망자는 7일마다 7명의 대왕에게 순서대로 생전의 죄업에 대하여 심판을 받는다. 그리고 죗값을 혹독히 치르는 7개의 관문을 통과하고도 아직 남은 죄가 있으면 세 대왕에게 심판을 더 받아야 하기에 지옥을 다스리는 대왕은 모두 열 명이다. 시왕은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하여 대개는 양을 나타내는 홀수에 해당하는 제1 진관대왕, 제3 송제대왕, 제5 염라대왕, 제7 태산대왕, 제9 도시대왕은 지장보살 왼편으로, 음을 나타내는 짝수인 제2 초강대왕과 제4 오관대왕, 제6 변성대왕, 제8 평등대왕, 제10 오도전륜대왕은 지장보살 오른편에 배치한다. 그리고 시왕의 업무를 보좌하는 판관과 녹사, 동자 등의 권속과 수호신격인 인왕상이 전각 좌우에 문 양옆으로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시왕을 그린 불화는 두 가지 형식으로 나뉘는데 먼저 지장보살과 도명존자, 무독귀왕 뒤에 지장과 시왕을 함께 그린 지장시왕도를 둔다. 이 그림의 내용을 쉽게 풀이하자면 인간의 사후세계를 관장하는 업무를 맡아보는 지장보살과 시왕, 판관, 녹사, 시동 등이 함께 모여 찍은 기념사진이다. 화면에 그려진 짐승형태의 인물들은 망자의 영혼을 각각의 대왕 앞으로 인도하고 길을 재촉하는 옥졸과 귀졸들이다. 이 형식의 그림에서 주존은 지장보살로 시왕은 지장을 따르는 권속과 같은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또 다른 형식은 시왕상 뒤편에 걸리는 그림으로 시왕 각자가 자신 임무에 충실히 임하고 있는 모습을 찍은 스냅사진을 회화로 표현한 것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10폭으로 구성된 시왕도는 보통 그림의 윗부분은 망자의 죄를 판결하는 시왕의 모습이 그려지고 그 아래는 지옥에서 죗값으로 혹독한 고통 받는 혼령들의 처참한 광경이 묘사된다. 화면에서 시왕의 옆 관복 입은 인물은 망자의 죄목을 시왕에게 아뢰고 판결을 기록하는 역할을 하는 판관들로 조선시대 시왕도에는 아예 두루마리를 펼쳐들고 죄를 기록하고 있는 사실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망자의 죄업은 생전의 선업과 악업을 그날그날 충실히 명부에 보고하는 선악동자와 같은 감찰 신들에 의해 기록된 것이기에 시왕의 법정에서는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다.

지장보살과 시왕도 이외에 불교 명부신앙을 표현한 불화인 현왕도는 사람이 죽은 뒤 3일 후 받는 최초의 심판을 주재하는 현왕을 그린 것으로 주로 명부전이 아닌 다른 전각 특히 주불전에 봉안된 예가 많다. 현왕은 석가모니의 수기에 따라서 미래에 보현왕여래로 성불할 염라대왕을 말하기 때문에 죽은 사람들은 죽은 뒤 3일, 그리고 5번째 7일 이렇게 두 번씩이나 염라대왕을 만나야 했다. 염라대왕이 다스리는 발설지옥(拔舌地獄)을 그린 고려 시왕도에는 자신의 억울한 죽음을 기록한 문서를 입에 물고 대왕에게 호소하는 가축들의 모습이 있어 그림에서 벌을 받는 망자의 악행이 생전에 가축을 도살한 죄라는 것을 시각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 그림에는 망자의 생전 죄상을 관찰 카메라로 찍어 활동사진으로 생생히 보여주는 업경대가 있어 세상에 이름 난 달변의 변호사를 항아사 모래만큼 동원하여도 망자의 죄 값을 줄일 수는 없다. 망자의 머리칼을 잡고 끌어가 업경대에 비친 생전의 죄업을 보여주는 지옥의 옥졸 모습은 마치 ‘네 죄를 네가 알렸다!’라고 외치는 듯하다.

▲지장시왕도, 고려(14세기 중반), 견본채색, 115.0×58.8㎝, 일본 게조인(華藏院).

지옥 가운데 가장 고통이 극심하다는 무간지옥을 ‘지장보살본원경’에서는 ‘쇠 독수리가 죄인의 눈을 쪼아 내고 쇠 뱀이 목을 조이며 몸의 마디마디 긴 못을 내려 박고, 혀를 뽑아서 쟁기로 간다’고 하였다. 시왕도에 그려지는 지옥의 장면도 이 못지않게 섬뜩하여 보는 이들에게 그 순간만이라도 죄를 짓지 말고 살아야지라는 다짐이 절로 나오게 하여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죄를 반성하고 선업을 지으라는 교화의 뜻을 명확히 알겠다. 죽어서 지옥을 헤매며 그림에 그려진 이러저런 죗값을 치르지 말고 살아서 선업을 짓고 복을 쌓아 극락왕생하라는 것이 시왕도를 조성하는 목적이다.

시왕도에는 지옥고에 고통받는 망자를 측은지심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지장보살을 그려 이런 지옥에도 구원의 빛이 함께 함을 제시하고 있다. 지장보살이 저승세계의 망자와 함께 있는 이유는 ‘모든 중생을 제도한 뒤에 깨달음을 이룰 것이며 지옥이 텅 비기 전에는 결코 성불하지 않으리라’고 서원하였기 때문이다. 지옥의 고통을 생생히 묘사한 그림을 보고난 두려움 뒤에 망자의 고통을 함께하는 지장보살의 등장은 어둠 속의 빛이요 광명이었을 것이다.

말과 행동뿐만 아니라 생각으로 지은 죄까지 판결을 받는 명부의 모습들을 뒤로 하고 나오며 필자 자신도 알게 모르게 지은 죄들을 반성하는 마음이 생기는 걸 보면 시왕도가 주는 교화적 효과는 분명하다. 돌아오는 길에 지는 해를 바라보며 탄핵에 대한 이런 저런 일들을 떠올려 본다. 국민의 신임을 배반하였다는 탄핵 판결문은 학창시절 내내 사람이 지켜야할 도덕적 도리를 수없이 듣고 자란 필자로서 공감되는 부분이 없지 않다. 매 순간 깨어있어 탐진치 삼독을 경계하라는 부처님 말씀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진심으로 촛불과 태극기를 들었던 모두에게 서글펐던 이런 사건은 우리민족에게 다시는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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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요사(寮舍)
문화

불교문화 - 요사(寮舍)

요사는 사찰 경내의 전각과 문을 제외한, 스님들이 생활하는 건물을 통칭하는 말이다. 흔히 요사채라고 부른다. 큰방, 선방, 강당, 사무실, 후원(부엌), 창고, 수각(水閣), 해우소(解憂所 화장실)까지 포함한다.

요사는 기능에 따라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다. 생활공간과 선방 기능을 함께 갖고 있는 요사는, 지혜의 칼을 찾아 무명의 풀을 벤다는 뜻의 심검당(尋劍堂), 말없이 명상한다는 뜻의 적묵당(寂黙堂), 올바른 행과 참선하는 장소임을 뜻하는 해행당(解行堂).수선당(修禪堂) 등으로 불린다. 생활공간과 강당 기능을 함께 갖고 있는 요사는 참선과 강설의 의미가 복합된 설선당(設禪堂) 등으로 불린다.

의식을 집전하는 노전(爐殿)도 요사의 범주에 드는데, 이곳에서 스승들이 향을 피워 예불을 거행하기 때문에 봉향각(奉香閣), 일로향각(一爐香閣) 등으로 부른다. 조실스님이나 노장. 대덕스님의 처소는 염화실 또는 반야실(般若室) 등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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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전통사찰의 구조 - 범종각(梵鐘閣)
문화

전통사찰의 구조 - 범종각(梵鐘閣)

범종각은 범종을 보호하는 건물이다. 규모가 큰 사찰에서는 범종 외에 법고(法鼓), 운판(雲鈑), 목어(木魚) 등 불전사물(佛殿四物)을 함께 놓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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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입문 - 석가 여래는?
문화

불교입문 - 석가 여래는?

지금으로부터 2600 여년전 4월 초파일에 인도의 카필라국 (지금의 네팔)에서 정반왕이 태자로 태어난지 7일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이모의 손에서 자라나고 29세에 출가하시어 8년간 수도 끝에 35세에 성불아시어 녹야원에서 처음 설법 하신 것을 비롯하여 79세에 중생교화 하시다가 쿠시나가라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 이 자료는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 알아두면 좋은 불자상식|작성자 민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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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quot;오늘은 화기 누르는 날&quot;..조계사 화엄신중 단오재 봉행

전통을 계승하고 가장 한국적인 전통문화 속에서 현대 사회 갈등의 치유책을 찾아가는 불교계의 노력은 국민의 마음을 맑고 향기롭게 만드는 마중물이 되고 있습니다. BTN 뉴스 이은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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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0
불교입문 - 문수보살은?
문화

불교입문 - 문수보살은?

법화경이나 화엄경등의 대승 경전에 나오는 보살로서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이며 오대산에 살고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칼을 (정법의 지혜를 상징함) 지니고 사자를 타고 계신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무구청정한 불모의 반야지혜를 상징한다.

※ 이 자료는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 알아두면 좋은 불자상식 작성자 민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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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등에서 자라는 나무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등에서 자라는 나무

사물(四物)에 대하여 <br>

<br> 옛날 어느 절에 덕이 높은 스님이 제자 및몇 사람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한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어기고 제멋대로 생활하며 계율에 어긋난 속된 생활을 일삼았다. <br> 그러다 마침내 몹쓸 병에 걸려 그만 죽었다. 죽은 뒤에 물고기로 다시 태어났는데,등에 커다란 나무가 솟아나서 여간 고통스럽지 않았다. <br> ​하루는 그 스승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려는데, 등에 커다란 나무가 난 물고기가 뱃전에 머리를 들이대고 슬피 우는 것이었다. 스님이 깊은 선정에 들어 물고기의 전생을 살펴보니, 그 물고기는 바로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일찍 병들어 죽은 자신의 제자로 살아서. 행한 생활의 과보로 고통받는 모습이었다. 스승은 가여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제자를 위하여 곧 수륙천도재를 베풀어 물고기의 몸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br> ​그날 밤 그 스승의 꿈에 물고기가 되었던 제자가 나타났다. 제자는 스승의 은혜를 감사드리며 다음 생에는 참으로 발심하여 공부할 것을 다짐하고는, 이어 자신의 등에 난 나무를 베어 물고기 모양으로 만들어. 부처님 앞에 매달아 놓고 쳐 주기를 부탁하였다. 그 소리를 들으면 수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교훈이 될 것이며, 또 강이나 바다에 사는 물고기들에게는 해탈할 수 있는 좋은 인연이 될 것이라 하였다. <br> ​그리하여 스승은 그 부탁을 따라 나무를 베어 물고기의 모양을 딴 목어를 만들었다. 그 뒤로 그것은 차츰 쓰기 편리한 둥근 목탁으로 변형되어. 예불이나 독경을 할 때를 비롯하여 여러 행사에 널리 사용되는 중요한 법구가 되었다. <br> ​우리나라의 큰 사찰에는 대개 종각이 있다. 종각에는 네 가지의 법구가 갖추어져 있는데,쇠로 된 범종과 가죽으로 만든 커다란 법고와 구름 모양의 운판과 물고기 모양의 목어가 바로 그것들이며 이를 일러 사물이라 한다. <br> ​범종을 올리는 것은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지옥 중생들의 해탈을 기원하기 위함이요, 큰 북은 네 발 달린 온갖 짐승의 무리를 제도하기 위함이며, 운판은 날아다니는 날짐승과 모든 곤충의 안락함을 위한 것이며, 목어는 물 속에 사는 생물의 구원을 위하여 두드리는 것이다. <br> ​사물을 치고 듣는 불자들은 그래서 다음과 같이 발원한다. <br> “이 소리를 들으면 생명으로 태어난 사람들과 짐승 미물에 이르기까지. 고르게 깨달음의 길에 올라 괴로움에 서 벗어나게 하소서.” <br> ​이 사물의 올림은 곧 못 중생의 행복과 해탈을 기원하고. 생명의 존엄성을 일깨우는 자비의 소리인 것이다. <br> <br> **팔공산인 감고사지기 보명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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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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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 - 지장재일날 법문
문화

불교문화 - 지장재일날 법문

지장본원경은 어떤책인가?

당나라의 실차란타가 번역한 지장보살이 백천 방편으로 일체 중생들을 교화하기에 노력하고, 죄를 짓고 고통받는 중생들을 평등하게 해탈케 하려는 큰 서원을 세운 것을 13품으로 나누어 설한 것입니다.

지장경(地藏經) 『지장본원경』(地藏本願經)의 약칭으로 당나라의 실차란타가 번역한 것입니다. 지장보살이 백천 방편으로 일체 중생들을 교화하기에 노력하고, 죄를 짓고 고통받는 중생들을 평등하게 해탈케 하려는 큰서원을 세운 것을 13품으로 나누어 설한 것으로, 약칭해서 『지장경』(地藏經)이라고도 합니다.

《지장보살본원경》은 총 13품으로 구성된 경전으로 지장삼부경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경전으로 손꼽히는 경이다.

특히 지장신앙의 핵심이 지장보살님의 큰 원력(大願)이므로 일반적으로 지장경하면 지장보살의 큰 본원을 밝히고 있는《지장보살본원경》을 말한다. 이 경은 당나라 우진국 삼장 실차난타(實叉難陀) 스님이 한문으로 번역했으며, 우리 나라에서는 영조 38년 1762년에 언해본이 처음 나왔다. 이처럼 언해본이 빨리 나온 사실만을 보아도 당시 지장신앙이 얼마나 대중적인 신앙으로 자리잡고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대승대집지장십륜경》은 총 8품으로 구성된 경전으로 당나라 영희 2년 현장법사가 한역했다.

《점찰선악업보경》은 신라시대에 널리 독송된 경전으로 특히 점찰법회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경전이다. 상하 두 권으로 구성된 이 경은 목륜상을 통해서 자신의 업보를 점쳐본 뒤 그 업보를 참회하는 의식인 점찰법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상의 지장 삼부경에서《대승대집지장십륜경》과《지장보살본원경》은 지장신앙의 사상을 체계화시킨 경전이다. 이에 비해서《점찰선악업보경》은 지장신앙을 실천수행화 하고 일반 대중들에게 널리 유포시키는 데 크게 공헌한 경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장경의 핵심적인 내용들은 자업자득(自業自得)의 인과법(因果法), 인과에 따른 지옥의 고통, 지장보살의 광대한 본원(本願), 부모에 대한 효, 선행의 권장, 보시행의 실천, 수지독송의 공덕 등이다. 지장 계통의 경전들은 대부분 인과법과 윤회를 가장 중요한 사상적 근간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지장경의 일반적 내용은 자업자득(自業自得)의 인과법(因果法)을 강조하고 중생들로 하여금 선업(善業)을 닦도록 실천수행을 제시하는데 있다.

흔히 지장신앙하면 영가 천도로만 이해하고 있지만 실제 지장경의 내용은 이렇게 인과법에 따라 선행을 강조하고, 참되고 올바르게 살 것을 가르치고 있다.

"지장보살이여 미래 일체 중생들이 불법 가운데서 털끝만한 선근이라도 있다면 버리지 말고 구원하라. 그대의 원력이면 능히 그들을 보호하고 점점 선근을 불어나게 할 것이며, 다시는 죄악에 빠지지 않게 할 것이다."

이처럼 지장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부촉을 받으시고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서원을 세우신다. 그래서 지장보살은 중생을 구제하시기 위해 인천의 복업을 증진하고 10악의 죄업을 짓지 않게 하고 있다. 또 이미 지은 죄업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참회하여 소멸하게 한다.

그러므로 지장신앙은 단순히 지장보살님이 지옥에 빠진 중생을 구제해 주실 것을 믿는 타력신앙을 넘어 올바른 실천수행을 제시하고 우리 스스로 선업을 닦는 가르침임을 알 수 있다. 이같은 지장신앙의 특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대승대집지장십륜경》이다.

"어떠한 것이 보살마하살의 십륜(十輪)입니까? 선남자여! 이 십륜이란 다른 법이 아니고 바로 십선업도(十善業道)임을 마땅히 알아라. 이와 같이 십종륜(十種輪)을 성취함으로써 보살마하살이라고 이름하느니라." 《대승대집지장십륜경》'업도품'

이처럼 십륜이란 바로 '십선업도'를 말하고 있다. 십선업도란 '열 가지 착한 업을 닦는 길'이라는 뜻이다. 십선업(十善業)이란 몸과 말과 뜻(身口意)으로 짓는 열 가지 선업을 말한다. 이렇게 볼 때 지장신앙은 지장보살님의 위신력에만 의지하는 타력신앙이 아니라 스스로 보살행을 실천해 가는 실천 신앙임을 확인할 수 있다.

다시말해서 극락왕생이란 지장보살님의 서원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열 가지 선업을 닦으면서 극락세계를 향해 가는 것이 지장신앙이다.

불기 2570년 2월5일의 을사년 섣달의 18일은 지장보살님의 재일날에. 팔공산 감고사지기 보명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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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입문 - 극락이란 곳은?
문화

불교입문 - 극락이란 곳은?

이 사바세계에서 10만억 불토(佛土)를 지나, 아미타부처님이 계시는 정토이다. 이곳은 일곱가지 보배로서 땅이 되고 한량없는 보배와 향으로서 꾸며져 있으며 칠보 연꽃에 팔공덕수가 넘쳐 흐르고 연꽃으로 장엄되었고 사람들의 수명은 한량이 없어서 그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이루다 말할 수 없다.

※ 이 자료는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 알아두면 좋은 불자상식 작성자 민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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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2. 소 등에 앉아 집필을 마친 원효대사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2. 소 등에 앉아 집필을 마친 원효대사

소 등에 앉아 집필을 마친 원효대사 소뿔에 경상을 묶고 경서를 집필하다 (단양 구인사) (좌) / 원효대사 (우) 그는 부인 요석공주(瑤石公主)사이에 설총을 낳았다.

신라 시대에는 백고좌百高座라 하는 불교 행사가 있었습니다. 나라 임금이 스님들께서 앉아 법문하는 자리인 사자좌獅子座를 100개를 마련하고, 100명의 고승을 초빙하여 설법을 듣는 큰 법회였습니다.

한편 당시에는 불교 경전들과 가르침이 대부분 중국을 통해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원효스님과 의상스님도 그런 시대적 상황으로 당나라 유학을 떠났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중국에서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이 처음으로 유입되었습니다. 처음이므로 아직 경전의 뜻을 바르게 해석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왕은 백고좌를 열어 원효대사에게 이 경전을 강설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원효스님은 소를 타고 백고좌가 열리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때 소의 두뿔에 책상 다리를 묶어놓고, 걸어가는 소 등위에서 강설하게 될 경전을 해석해 놓은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을 집필했습니다.

불교에 대승과 소승이 있는데, 이 일로 원효스님의 사상은 '뿔 각'자를 써서 각승角僧이라고 불립니다. 달리는 차안에서 책 읽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좌우로 요동치는 소 등 위에서 단숨에 3권의 책을 써내려갔다는 것은 도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바르고 곧은 마음이 잘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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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49재 동안 (2) 본격적인 저승길
문화

불교문화 - 49재 동안 (2) 본격적인 저승길

2.실상중음(實相中陰)..본격적인 저승길에 들어선 영혼

살아 있을 때 바른 가르침이나 스승을 만나지 못한 중음신은 중유기(中有期)에 헤메고 괴로워한다. 죽은뒤 사흘부터 다시 깨어난 중음신은 눈,귀,혀,몸,의식의 기능이 본디대로 살아나 중유기간인 49일 동안 활동한다.장님이나 벙어리 였던 중음신도 이 기간에는 걸림없이 보고 말할 수 있다. 중음신의 몸과 의식은 지극히 섬세하고 맑아 시간과 공간에 걸림이 없다. 중음신은 가족과 벗들이 슬피울고 외쳐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그들은 중음신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래서 중음신은 자신에게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 가족과 벗들에게 마음이 상해 자리를 떠난다. 이 단계에서는 업력에서 나오는 여러가지 환영들이 잠깐씩 나타나기도 한다. 중음신은 해탈의 기회를 7번,육도윤회에 빠질 위기도 7번 맞이한다.만약 중음신이 이가르침을 잘외우지 못하거나 아미타불을 염불할 수 없어 업력에서 흘러나온는 여러가지 여러가지 무서운 현상들에 휘몰려 정신없이 쫒겨다닌다면 지옥,아귀,축생의 삼악도 가운데 떨어져 무서운 괴로움을 받게 될것이다. 중음신은 앞장에서 말한 일반현상 말고도 날마다 여러가지 현상들을 경험하게 된다. 이 같은 현상에 휘말려 들지 않으려면 그 낱낱 현상들을 미리 알아 둘 필요가 있다.

그러면 반드시 나고 죽는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 희락부제존(喜樂部諸尊)자기제도법 죽은뒤 첫이레 동안 자비로운 모습으로 나투는 여러 불보살을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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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심우도 [인우구망 (人牛俱亡)]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심우도 [인우구망 (人牛俱亡)]

인우구망 (人牛俱亡)

< 채찍과 고삐, 사람과 소는 모두 비어 있으니 푸른 허공만이 가득히 펼쳐져 소식 전하기 어렵구나.

붉은 화로의 불꽂이 어찌 눈雪을 용납하리오 이 경지에 이르러야 조사의 마음과 합치게 되리라.>

소와 사람이 모두 보이지 않습니다. 벽화에 텅 빈 원만 있는 것은 사람도 소도 모두 사라진 상태를 묘사한 그림입니다. 하나의 원으로 표현하면서 소식 전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최고의 진리, 모든 것을 초월한 진정한 공空의 이치를 말로써 글로써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 경지를 얻은 사람들끼리 서로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유치원 친구들을 데리다 두고 어려운 수학, 과학이나 철학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이지 않을까요.

소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비록 본래의 마음을 찾아서 하나가 되긴 했지만, 앞선 망우존인의 그림처럼 동자의 모습이 남아있었던 것은 여전히 번뇌가 남아있고, 내 것이라는 집착이 남아있음을 의미합니다.

그 번뇌와 조금의 생각, 집착도 떨쳐 버릴 수 있어야 참된 진리를 얻게 됩니다. 마치 불이 피어있는 붉은 화로 위로 눈이 내리면, 그 눈은 닿기도 전에 사라지게 될 것이고, 행여 그 눈이 불길을 피해 가마솥으로 들어가더라도 녹지않고 수북이 쌓일 수 없습니다. 이처럼 스스로 지혜와 하나가 되어야 온갖 번뇌가 쌓이지 않게 됩니다.

참된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이제 조금의 번뇌라도 남김없이 녹여버리고, 나라는 생각조차 떨쳐버리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 인우구망의 그림입니다. 이 경지가 되어야 비로소 조사​祖師​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을 깨우치게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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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부처님의 훈계, 라훌라존자 ​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부처님의 훈계, 라훌라존자 ​

라훌라는 출가 전 부처님께서 야소다라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입니다.

아난존자와 마찬가지로 고향으로 돌아온 석가모니 부처님을 따라 나서며 출가하게 되었습니다.

역사상 최초의 동진출가자였던 셈입니다.

즉 성인이 되지 않는 어린 나이에 출가한 동자승이라는 말입니다.

라훌라가 출가했을 때, 다른 모든 스님들은 어른이었고,

게다가 나이 많은 장로 비구들 또한 많았습니다.

그러나 철없는 나이에 출가한 라후라는 또래와 다름없는 천방지축 개구쟁이였습니다.

여러 스님들의 입장에서는 라훌라가 부처님의 외아들이고 왕손에다가 나이까지 어려 처음에는 귀엽게 보았지만, 라훌라의 장난이 더해갈수록 나날이 불평만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여러 스님들의 불만을 알게 된 부처님은 라훌라를 다른 곳에서 공부하도록 조치를 했습니다. 그러나 나쁜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라훌라를 찾아왔습니다.

"라훌라야, 발 씻을 물을 가져 오너라."

부처님께서 오시면 발을 씼겨드리는 것은 존경하는 스승에 대한 제자들의 도리였습니다. 라훌라도 정성스레 부처님의 발을 씻겨 드렸습니다.

"라훌라야, 이 물을 보거라. 이 물은 마실 수 있는 물이냐, 아니냐?"

"발을 씻은 더러운 물이기에 마실 수 없습니다."

​ 난데없는 스승의 물음에 라훌라는 마실 수 없는 물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사찰 벽화이야기 9. 부처님의 훈계, 라훌라존자

라훌라는 출가 전 부처님께서 야소다라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입니다.

아난존자와 마찬가지로 고향으로 돌아온 석가모니 부처님을 따라 나서며 출가하게 되었습니다.

역사상 최초의 동진출가자였던 셈입니다.

즉 성인이 되지 않는 어린 나이에 출가한 동자승이라는 말입니다.

라훌라가 출가했을 때, 다른 모든 스님들은 어른이었고,

게다가 나이 많은 장로 비구들 또한 많았습니다.

그러나 철없는 나이에 출가한 라후라는 또래와 다름없는 천방지축 개구쟁이였습니다.

여러 스님들의 입장에서는 라훌라가 부처님의 외아들이고 왕손에다가 나이까지 어려 처음에는 귀엽게 보았지만, 라훌라의 장난이 더해갈수록 나날이 불평만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여러 스님들의 불만을 알게 된 부처님은 라훌라를 다른 곳에서 공부하도록 조치를 했습니다. 그러나 나쁜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라훌라를 찾아왔습니다.

"라훌라야, 발 씻을 물을 가져 오너라."

부처님께서 오시면 발을 씼겨드리는 것은 존경하는 스승에 대한 제자들의 도리였습니다. 라훌라도 정성스레 부처님의 발을 씻겨 드렸습니다.

"라훌라야, 이 물을 보거라. 이 물은 마실 수 있는 물이냐, 아니냐?"

"발을 씻은 더러운 물이기에 마실 수 없습니다."

난데없는 스승의 물음에 라훌라는 마실 수 없는 물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렇다. 더러운 물은 마실 수가 없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

너는 비록 내제자며, 왕자의 신분을 버리고 출가했지만,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삼독三毒의 번뇌로 마음이 가득 차 있으니 이 더러운 물과 같다."

부처님은 울상이 된 라훌라에게 온화한 얼굴로 안심시키며,

대야의 물을 비우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물으셨습니다.

"이제 이 대야가 비었으니, 이 대야에 음식을 담을 수 있겠느냐?"

"부처님, 대야에 음식을 담을 수 없습니다. 이미 발을 씻어서 더러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너는 비록 출가자의 신분이 되고도, 마음이 거칠고 진실한 말이 없으며, 정진을 게을리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발 씻은 대야에 음식을 담지 못하는 것처럼, 너에게 참다운 법을 담을 수 없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갑자기 대야를 발로 힘껏 소리나게 차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휘둥그레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는 라훌라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라훌라야, 혹시 저 대야가 깨질까 놀랬느냐?"

"아닙니다, 부처님. 발 씻는데 쓰이는 대야는 값이 싼 물건이기에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단호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라훌라야, 네 말이 맞다. 지금 너는 이 대야와 같다.

함부로 행동하고, 입으로는 아무렇게나 욕설과 험한 말들을 하고 있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너를 좋아하지 않는다.

만약 네가 그 버릇을 고치지 않고 계속 지금처럼 행동한다면,

커서도 훌륭한 스님이 되지 못할 뿐더러 아귀나 축생에 태어나는 과보를 받게 될 수도 있느니라."

이 일로 마음을 고쳐먹은 라훌라는 열심히 수행하여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누가 보지 않는 곳에서도 항상 몸과 마음가짐을 바르게 갖추어,

행동 하나하나가 진실하게 되자 모두들 그를 칭찬하며 밀행제일密行第一이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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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전통사찰의 구조 - 적멸보궁(寂滅寶宮)
문화

전통사찰의 구조 - 적멸보궁(寂滅寶宮)

적멸보궁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불전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심으로써 부처님이 항상 그곳에서 적멸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음을 상징한다. 적멸보궁에는 불상을 따로 봉안하지 않고 불단만 있다. 우리나라에는 5대 적멸보궁이 있는데 양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 설악산 봉정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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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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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부처님의 근본5인 - 아미타 구품인(阿彌陀 九品印)
문화

석가모니부처님의 근본5인 - 아미타 구품인(阿彌陀 九品印)

아미타부처님의 수인은 좌선자세에서 양손의 검지를 구부려 손가락끝을 붙이되 검지손가락의 등쪽이 서로 맞닿도록 하는 상품상생인 등 아홉가지가 있다. 아미타부처님의 구품인은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아홉가지 차별을 말하며, 상품.중품.하품을 각각 상.중.하로 세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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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대장경 이운移運
불교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대장경 이운移運

팔만대장경 :

고려 고종 23년(1236) 몽고병의 침입을 국민의 단합된 힘과 부처님의 가호로 물리치기 위해

당시의 천도지(遷都地)인 강화도에 대장도감(大藏都監) 본사(本司)를 두고

진주, 남해에 분사(分司)를 두어 대장경판을 새기는데 전 국력을 쏟아

고종 38년(1251)까지 16년간에 걸쳐 완성하여 강화도에 판당(板堂)을 짓고 봉안하였다.

다시 강화읍 남쪽에 있는 선원사(禪源寺)에 옮겨 모셨던 팔만대장경판을

언제 어떠한 경위를 거쳐서 강화도에서 해인사까지 옮겨 모시게 되었을까?

이 문제는 4가지 정도의 사실로 요약할 수 있는데

첫째, 가야산 해인사는 대장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대각국사 의천이 주석(住錫)하던 인연깊은 곳이라는 사실과

둘째, 고려말과 이조초의 왜구의 극심한 노략질 앞에 강화도는 이미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

셋째, 해인사가 대장경판을 보관하는데 지리적 조건의 우수성과

       가야산이 명산이어서 신령스럽게 믿어진 사실

넷째, 해인사는 교통이 불편한 심산유곡이어서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이 일치되어

조선 태조 7년(1398) 5월에 강화도 선원사(禪源寺)에서 서울의 지천사(支天寺)로 임시로 옮겨 모셨다가 다시 해인사로 옮기게 되었다.

(요즈음 8톤 트럭 35대분이 훨씬 넘는) 대장경판을

사람의 힘만으로 강화도에서 해인사까지 옮기는 일은 온 국민이 힘을 기울였을 것이다.

운반행렬의 맨 앞에는 동자가 향로를 들고 길을 맑히면

많은 스님들이 독경을 하며 길을 인도하고

뒤로 소중하게 포장한 경판을 소달구지에도 싣고 지게에도 졌는가 하면 부녀자들은 머리에 이고

팔만대장경판의 정대(頂戴) 공덕과 부처님의 은혜를 되새기면서

서울에서 해인사까지 팔만대장경판의 운반 행렬은 끝없이 이어졌다.

(일설에는 서울에서 한강에 배를 띄워 대장경판을 싣고 해로(海路)를 통해

낙동강 줄기인 지금의 고령군 개진면 개포마을에 배를 대고 해인사까지 운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개포마을의 예전 이름이 경(經)을 풀었다는 의미에서 개경포(開經浦)라고 했다.)

이조 태조 7년(1398년) 5월에 시작된 경판의 대이동은

이듬해 정종 원년(1399년) 정월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해인사에 옮겨 모셔져,

700여 년이 지난 오늘 날에도 습기나 좀이 생기지 않고 뒤틀리지도 않았는데,

사용한 목재는 강화도에 좋은 나무가 없어

남해지방의 거제도, 완도, 제주도 등지에서 많이 생산되는 자작나무 원목을 베어

바닷물에 3년간 담갔다가 꺼내어 판을 짜서 다시 소금물에 삶아서 그늘에 3년간 말린후

양면에 구양순(歐陽詢)의 해서체로 양각하고 방충을 위하여 옻칠을 하였다.

경판은 모두 81340판인데 양면에 새겨져 있어 162680면으로

한 면에 글자가 322자 씩, 글자 수만 해도 52382960자로 원고지로 치면 30만장쯤의 분량이 된다.

경판 1장당 평균 무게는 약 3.5kg이며, 길이는 67cm, 너비 23 cm, 두께 3cm로

사각이 뒤틀리지 않도록 각목(角木)으로 마구리를 달고 그 이음새는 동제(鋼製)로 장식하였다.

해인사에 봉안되어있는 팔만대장경판은 책으로 엮으면 6815권으로

하루 1권씩 읽는다고 해도 18년이상 걸리는 방대한 양이다.

온 국토가 몽고병에 짓밟히고 강화도에 피난한 상태에서

대장경판을 새기기 위해 원고를 수집하고 사본을 정리하면서 교정하고 조판하는 일도

짧은 시일에 이뤄질 수 없거니와

판목(板木)을 다듬고 경을 쓰고 글자를 새기는 이 모든 일이

16년의 세월에 이루어 졌다는 것은 불가사의라 할 수 있겠다.

또한 팔만대장경판을 새기는 불사에는 조정대신과 전국민의 일심 단합된 협조 아래

몇 백명의 명필과 수천명의 조각사가 동원되었으리라 상상하지만

경판의 글자가 오자(誤字)나 탈자(脫字)없이 정자로 쓰여지고

꼭 한 사람의 필적같이 분담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경탄하는 바이다.

지금까지 세계에 남아 있는 30여종의 대장경판 중에서도 고려대장경만큼 체제가 광범위하고 부수가 완비하며 교정이 엄밀한 것은 그 유를 찾아볼 수 없다.

세계적인 문화유산이요, 우리 조상들의 호국의 얼이 깃든 팔만대장경판은

나라의 보배(國寶)일 뿐만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한 법보(法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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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금강계단, 석등, 부도
문화

불교문화 - 금강계단, 석등, 부도

탑과 조성 의미가 비슷한 조형물로 금강계단, 석등, 부도 등이 있다.

금강계단(金剛戒壇)은 본래 수계의식을 진행하는 장소를 말한다. 계를 지키는 마음이 금강과 같이 굳건하여 자칫 파계하는 일이 없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금강계단이라고 한다. 가운데에 부처님을 상징하는 사리가 모셔져 있다. 통도사의 금강계단이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석등(石燈)은 본래 경내를 밝히는 등의 구실을 하는 시설물이었으나, 후대에 이르러 가람 배치의 기본 건축물로 변천하였다.

부도(浮屠)는 고승의 사리를 모신 묘탑이다. 조사 숭배를 중시하는 선종의 발달과 더불어 성행하였다. 부도와 탑은 둘 다 사리를 봉안하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 모습은 다르다. 위치 또한 탑은 사찰의 중심인 법당 앞에 세우는데 반해, 부도는 사찰 경내 주변이나 외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부도를 모신 곳을 부도전(浮屠田)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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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염불은 왜 할까요.?
문화

불교문화 - 염불은 왜 할까요.?

염불을 왜 할까요?

우리는 무언가를 시작할 때 늘 먼저 “이해”하려고 합니다. 이게 맞는지? 왜 해야 하는지? 완전히 납득이 되어야 움직이죠. 그런데…정말 모든 걸 이해한 다음에야 시작할 수 있을까요?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수영을 배운다고 할 때, 책으로 물의 성질을 다 이해하고 호흡법을 완벽히 공부한 다음에 물에 들어가시겠습니까?

아니지요. 준비체조를 하고 심장에 물을 적셔가며 일단 물에 들어가 보고, 몸으로 부딪히면서 호흡의 잘못으로 물이 콧구녕이나 입으로 갑자기 들어와서 콜록거리면서 눈물흘려가며 조금씩 알게 됩니다.

염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게 어떤 의미일까?” “왜 해야 할까?”

이렇게 머리로만 붙잡고 있으면 한 걸음도 나아가기 어렵습니다.

보명법사는 현재 법화경 강해를 11년째 제8편의 150일을 넘어가면서 매일 강의와 사경중이고, 반야심경 강해를 77일간의 목표로 이제 반을 넘긴 46일째 매일 강의 중입니다. 또 천수경의 핵심인 신묘장구대다라니 강해가 84일간을 목표로 이제 5일째를 지냈습니다.

강의 마다 이렇게 말합니다. “먼저 염불하시라! 이해는 그 다음이다.”

왜냐하면 염불은 생각으로 다 헤아릴 수 없는 깊은 법이기 때문입니다. 이해라는 것은 사실 마음을 설득하기 위한 하나의 설명일 뿐입니다.

물론 설명은 필요합니다. 우리 마음은 단순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만약 굳이 다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면? 차라리 더 시원하게, 그냥 한 번 불러보세요.

“신묘장구대다라니” 이 한마디가 생각보다 훨씬 깊은 곳에서 이미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한 번 직접 해보는 것. 그게 때로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염불은 그렇게 시작하시면서 점점 불교의 공부로 익어가게됩니다.

팔공산인 감고사지기 보명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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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석가모니 부처님의 열반재일에 남기신 마지막 유언
문화

불교문화 - 석가모니 부처님의 열반재일에 남기신 마지막 유언

불교의 4대 명절 중 하나인 열반재일(涅槃齋日)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80세의 일기로 육신의 수명을 다하고 완전한 평온의 상태인 무여열반 (無餘涅槃)에 드신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오늘 음력 2월 15일인 이 날은 단순한 죽음을 슬퍼하는 날이 아니라, 번뇌의 불꽃이 완전히 꺼진 절대 자유의 경지를 되새기며 수행의 의지를 다지는 엄숙한 절기이다.

1. 열반지 쿠시나가라의 최후와 무상(無常)의 가르침.

부처님께서는 인도의 쿠시나가라(Kushinagar)에 있는 두 그루의 살라나무(娑羅樹) 사이에서 북쪽으로 머리를 두시고 서쪽을 향해 누워 마지막 가르침을 남기셨다.

부처님의 열반은 제자들에게 모든 형성된 것은 변한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진리를 몸소 보여주신 마지막 설법이었다.

비구들이여! 너희에게 말하노라! 모든 형성된 것들은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 너희들의 목적을 달성하라.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중에서

이 마지막 유훈(遺訓)은 부처님께서 떠나신 후에도 제자들이 의지해야 할 곳이 오직 자기 자신과 진리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2. 열반(涅槃)의 참된 의미.

열반(涅槃)은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ana)'의 음역어로, '불어 끄다' 또는 '불꽃이 꺼진 상태'를 의미한다. 이는 탐욕(貪), 성냄(瞋), 어리석음(癡)이라는 세 가지 독한 불길(삼독심·三毒心)이 사라져 마음의 괴로움이 완전히 소멸한 상태를 말한다.

불교에서 열반은 육체의 소멸을 넘어선 정신적 완성의 경지이며, 생사의 윤회(輪廻)에서 벗어난 궁극적인 해탈(解脫)을 뜻한다.

3.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부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제자 아난다에게 슬픔을 거두고 진리에 의지할 것을 당부하셨다. 이때 하신 말씀이 바로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이다. 아난다여! 그러므로 여기서 너희는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러라! 남을 귀의처로 삼지 마라! 법(法)을 섬으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러라.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지 마라! 《장아함경(長阿含經)》 중에서

이는 부처님이라는 인격체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이 깨달은 보편적 진리인 법(Dharma)을 등불 삼아 스스로 수행해 나가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열반재일은 부처님이 우리 곁을 떠난 슬픈 날이 아니라, 부처님의 법신(法身)이 우주 전체에 가득하게 되어 누구나 수행을 통해 부처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하는 희망의 날이다.

부처님께서는 육신으로 오셔서 무상함을 가르치셨고, 열반으로 드시어 영원한 생명의 길을 보여주신 것이다.

오늘날 불자들은 열반재일을 맞아 부처님의 생애와 가르침을 되새기며 일주일 전인 출가재일(出家齋日)부터 시작된 수행을 마무리한다.

이 기간에는 탐욕을 경계하고 육식을 멀리하며, 자신의 삶 속에 남아 있는 번뇌를 참회(懺悔)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러나 우리들은 2월 초하룻날부터 오늘까지 그리고 내일의 회향식까지 16일간의 용맹정진 기도를 성만하고자 합니다. 모두가 성불하십시요!

팔공산 감고사지기 보명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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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미술여행 - 정토왕생첩경도
문화

사찰미술여행 - 정토왕생첩경도

지극한 마음 담긴 염불이 왕생극락 지름길

▲ 근수정업왕생첩경도, 목판본, 지리산 영원암 숭정13(1640), 66×39.5㎝, 고양 원각사.

첩경이란 어떤 일을 함에 있어 그렇게 되기가 쉬움을 이르는 말이니 ‘정토왕생첩경도’를 글대로 풀이하자면 왕생극락하기 위한 지름길을 알려주는 그림이다. 비로자나불의 연화장세계, 아미타불의 서방극락정토, 약사유리광여래의 동방정유리세계, 미륵불의 도솔천, 관음보살의 보타락가산 등 청정하지 못한 현실세계를 나타내는 예토(穢土)에 반대되는 불국정토는 그야말로 여러 곳이 있는데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정토는 뭐니뭐니해도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이다. 우리에게 염불이라고 하면 아미타불을 외우는 것을 떠올릴 만큼 아미타신앙은 조선후기 대중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고, 아미타불을 염불하는 것은 정토왕생을 위한 방편으로 크게 유행하였다. 아미타불은 ‘지극한 마음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열 번만 불러도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의해 극락왕생할 수 있게 한다’는 서원을 세웠기 때문에 아미타부처를 염불하는 것은 서방극락정토의 주인이 보증하는 극락왕생 방법이었다.

조선중기 널리 퍼진 정토신앙 그림 목판에 새겨 판화로 보급 극락정토 이동수단 반야용선 조선후기 독립 주제로 그려져

‘근수정업왕생첩경도’는 조선 중기 이후 대중적 호응이 높았던 정토신앙의 일면을 보여준다. 이 그림은 1640년 지리산 영원암에서 판각된 목판으로 인쇄한 것인데 판화의 가장 윗부분에는 ‘권수정업왕생첩경(勸修淨業往生捷經圖)’이라는 여덟 글자가 찍혀 있다. 상하로 긴 직사각형 틀을 두고 그 속의 위에는 극락정토에서 설법하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8대보살을, 아래는 9가지로 나뉜 연화대 속에서 화생하는 왕생자의 모습을 묘사하였다. 이 판화에 그려진 도상들은 염불수행을 통해 왕생할 수 있는 서방의 극락정토를 시각적인 매개체를 통해 보여주면서 좋은 행을 권하고 닦아 극락에 왕생할 것을 권장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림으로 그리지 않고 목판에 그림을 새긴 이유는 집집마다 벽에 붙여 두고 바라보면서 극락왕생할 수 있는 정업을 부지런히 닦을 수 있게 많은 사람이 나누어 가질 요량으로 많은 양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 염불왕생첩경도, 159.8×306.5㎝, 견본채색, 1750년, 영천 은해사, 보물 제1857호.

은해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된 ‘염불왕생첩경도’는 18세기로 전승된 정토신앙의 일면을 보여준다. 아미타불의 명호를 염하고, 극락정토의 장엄을 찬탄하며, 정토왕생을 간절히 발원하는 정토적 귀의사상이 한 화면에 모두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은해사 심검당에 모셔져 있었는데 도난되어 30여년 동안 행방을 알 수 없다가 다시 사찰 품으로 돌아온 성보문화재이다. 1750년에 조성된 이 그림은 현재 남아있는 조선후기 극락왕생도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만들어졌고, 조선 전기와 후기의 극락왕생을 그린 불화의 연결고리와 같은 도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인정되어 2015년 보물 1857호로 지정되었다.

극락으로 왕생하는 방법은 왕생자의 근기에 따라 9개의 등급으로 나뉘는데 ‘관무량수경’에 의하면 상품에 속하는 왕생자들은 관음과 대세지보살을 대동하고 아미타부처가 직접 나타나 큰 광명을 놓아 극락국토로 맞이한다. 중품에 해당되는 왕생자들은 아미타불이 놓은 금색광명을 따라 관음과 대세지보살을 만나게 된다. 하품의 왕생자들은 온갖 악법과 죄업을 짓고도 자신이 옳다고 하다가 숨이 끊어지려 할 때 지극한 마음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열 번 부르던지 선지식에 의해 아미타불의 법문을 듣게 되면 그 순간 죄가 소멸되어 화신불과 화신보살이 그 사람을 영접한다. 이처럼 다양한 극락왕생 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은해사 ‘염불왕생첩경도’는 ‘열반진락 무궁하다 닦는 법이 허다하나 그중 제일 정토법문 간단하고 첩경이다. 서방정토 극락세계 황금으로 땅이 되고 하늘풍류 들리오며 아미타불 주인 되고 관음세지 보처되어 구품연대 벌려놓고 염불중생 데려다가 연꽃 중에 화생하니’라는 왕생가의 가사와도 도상의 내용이 잘 부합된다. 화면의 구도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화면의 하단에는 반야용선과 연화화생을 통해 극락세계에 도착하는 두 부류의 왕생자들이 있다. 화면 상단에는 왕생자를 맞이하는 아미타삼존과 영락으로 장식된 연화대를 운반하며 하늘 풍류를 연주하는 주악천녀들 그리고 칠보조화로 장식된 누각이 보인다.

향 우측 연꽃이 핀 칠보의 연못에는 각각의 근기에 따라 9품으로 연화화생하는 장면이 있는데 연꽃 위 두 손을 모으고 앉아 있는 아홉 인물의 형상은 ‘근수정업왕생첩경도’의 왕생자들과 같이 상품의 인물은 보살형으로, 중품과 하품은 승려의 모습을 하였다. 연못의 위 누각에 앉아 있는 아미타불과 관음, 세지보살의 손에서 나오는 투명한 기운은 왕생자들을 맞이하는 금색광명을 표현한 것으로 그에 대한 설명이 ‘아미타불현전접인염불중생(阿彌陀佛現前接引念佛衆生)’라고 방기로 쓰여 있다. 화면 중앙 구름을 타고 강림하는 아미타불과 권속들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반야용선에 승선한 왕생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지극한 정성으로 아미타불을 염불하여 극락왕생하는 중생을 바라보는 아미타불과 권속들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지고 시선에는 자애로움이 느껴진다.

▲ 반야용선, 그림 2 세부.

화면 향 우측 하단에 그려진 반야용선을 이용해 극락정토로 나아가는 장면은 그와 관련된 신앙과 도상이 정립되면서 ‘반야용선도’라는 독립된 제목으로 그림이 그려질 만큼 조선후기 대중적 인지도가 높았던 그림의 소재였다. 고려시대부터 반야용선이 그려진 예가 있긴 하지만 많은 왕생자들을 극락세계로 이끌어주는 반야용선 특성은 신앙의 저변이 확대되고 대중적 색채가 강해지는 조선후기 신앙과 잘 맞았기 때문에 조선 후기 불화에 더 많이 보인다. 머나먼 천상의 극락정토를 향해 나아가는 반야용선에는 바람에 한껏 부푼 돛이 달려있어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하다. 물살을 헤치고 나아가는 뱃머리에는 인로왕보살이 아닌 관세음보살 서서 왕생자들을 인도하고 있고, 배의 후미에는 대세지보살이 삿대를 손에 쥐고 갈 길을 조종한다. 아미타불의 두 협시보살이 이끄는 배에는 각양각색의 모습을 한 수많은 왕생자들이 탑승하고 있다. 나아가는 곳이 어딘지를 아는 듯 뒤돌아 그들을 바라보는 관음과 눈을 맞추며 웃고 있는 인물도 있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듯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넘실대는 파도를 두 눈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는 인물도 있어 보는 이의 재미를 더한다.

삶을 마감할 때 선업을 많이 짓고 계를 잘 지켜낸 상품상생의 인연들은 관음과 대세지보살을 대동한 아미타부처님이 직접 모습을 나타내 왕생자를 맞이한다. 그렇지만 어리석은 중생과 같은 하품의 인연들은 화신불과 화신보살이라는 아미타부처님의 대리인을 통해 정토로 안내된다. 그림으로 구분 지으면 오로지 한 명의 왕생자를 위해 아미타삼존이 직접 모습을 나타내어 극락정토로 영접하는 고려 아미타내영도와 반야용선에 빽빽이 타고 정토를 향하는 반야용선도와 같은 차이일 것이다.

필자처럼 배 멀미가 심한 사람은 지금이라도 열심히 선업을 닦고 부지런히 아미타부처님을 염불하여야 극락정토를 향한 대중적 이동수단인 반야용선을 벗어나 금빛광명을 따라 순간 이동하여 극락왕생하는 인연을 맺을 수 있을 것인데 본성이 게으르고 총명치 못해 자꾸 잊어버리니 걱정이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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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범패부터 퓨전 국악까지‥서울시민 함께한 '불교문화축제'

무게감은 지키면서도 대중과의 거리를 좁힌 불교문화축제. 범패의 장엄한 울림과 흥겨운 공연이 어우러진 이번 행사는 일상에 지친 시민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흥겨운 치유의 시간을 선물했습니다. BTN뉴스 이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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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0
사찰 벽화이야기 - 심우도 [목우 (牧牛)]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심우도 [목우 (牧牛)]

목우 (牧牛)

< 채찍과 고삐를 늘 몸에서 떼지 말라 멋대로 걸어서 티끌세계에 들어갈까 두렵도다.

잘 길들여서 온순해지면 고삐 잡지 않아도 저절로 사람을 따를 것이다.>

소를 울타리에 가둬두고 키우는 곳이 목장牧場입니다. '칠 목牧'자는 놓아두고 기른다는 의미로, 그래서 소를 기르는 일을 '소를 친다'라고 합니다. 목우는 말 그대로 소를 풀숲에 자연스레 풀어놓고 기르는 일입니다. 거친 소가 이제 도망가지 않을 정도가 된 것이 동자의 자연스러운 모습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더는 밧줄도 보이지 않습니다. 잘 길들인 소가 더 이상 고삐를 잡지 않아도 주인의 걸음을 따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럼에도 방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늘 째찍과 고삐를 몸에서 떼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 이유는 우리 마음이 과거의 습성, 예전의 탐욕과 성냄 그리고 어리석었던 상태로 되돌아가지 않도록 스스로를 채찍질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마음을 정말 마음대로 부릴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어떤 상황에서라도 흔들림이 없게 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소의 몸통이 흰색과 짙은 누런색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또 사찰벽화에 따라서 어떤 소는 머리만 희고 전체 몸통은 누렇거나 검게 물들었고, 또 어떤 소는 절반은 햐얗고 나머지 절반은 검게 그려놓은 경우도 볼 수 있습니다. 어둡게 칠해진 쪽은 여전히 번뇌에 물든 마음이 남아있는 정도를 의미합니다.

반대로 흰색으로 그려진 부분은 마음이 길들여진 정도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수행이 점차로 무르익어, 바른 마음, 본래의 순백한 상태로 되돌아가고 있는 과정을 소가 서서히 흰색으로 바뀌어 가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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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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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만해스님, '도덕문명' 제시&quot;.. &lt;님의 침묵&gt; 100주년 세미나 열려

사람과 자연, 세상 모든 것이 평등하다는 만해의 생각은 동학이나 원불교의 개벽 정신처럼 우리 땅에서... 않고 오늘날 위기를 극복할 주체적인 철학으로 발전시키는 발걸음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BTN뉴스 박성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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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19
사찰미술여행 - 선승의 초상화, 진영(眞影)
문화

사찰미술여행 - 선승의 초상화, 진영(眞影)

깨달음 인가해 내리는 사자상승의 징표

▲ ‘의상대사 진영’, 14~15세기, 견본채색, 102.1×52.6㎝, 일본 고산사 소장.

입춘이 지났지만 꽃샘추위가 매서운 이즈음이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라는 노래가 심심하지 않게 들리는 졸업의 계절이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좋은 계절에 졸업하면 이별하는 슬픔에 너무 깊이 몰입할까 심려하여 추위로 슬픔을 잊게 하려는 의도였는지도 모르겠지만 내 기억 속의 졸업식은 언제나 추웠다. 강당이나 운동장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마음은 이별의 슬픔에 젖기보다는 온통 빨리 의식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다.

선승이 가사·발우·불자와 함께

공부 완성 의미로 받는 졸업장

종파 내 유대관계 증명키 위해

여러 부 제작하여 배포하기도

졸업장을 받았다는 말은 교육기관에서 과정을 마치고 그에 따른 학위를 수여받은 것을 의미한다. 전등(傳燈)을 중시하는 선불교에서 스승의 진영은 제자의 깨달음을 인가하며 내리는 졸업장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정신적 세계의 경험 안에서 깨달음을 추구하였던 선승들에게 사제지간의 직접적인 계보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덕 높은 스승의 수하에서 수련하였던 선승들은 공부가 완성되면 스승으로부터 법을 전해 받았음을 나타내는 증표로 가사나 발우, 불자 등을 받게 되는데 스승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도 전법의 증표로 이용되곤 하였다. 수련이 완성되면 스승은 도가 제자로 이어졌다는 사자상승(師資相承)을 인정하고 그 증표로 본인의 진영에 상징적인 찬문을 써 제자에게 증표로 주었다.

사찰에 모신 스님의 진영은 처음 그 절을 창건하셨거나 이후 크게 중창하신 스님들의 모습을 그린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깨달은 법이 이어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법맥의 증표로 그려 모신 것이기에 불가에서 조사의 진영은 그림으로 그려진 ‘전등록’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목은 이색이 윤필암기에서 ‘(…)지금 나옹 스님은 떠났으나 사리는 온 나라에 퍼졌으며 그림을 그려서 모시는 곳도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라고 한 것처럼 나옹선사 진영은 시대를 달리 만들어진 여러 부가 전국 곳곳의 사찰에 모셔지고 있으며 동화사와 송광사의 지눌선사 진영과 같이 동일한 초본을 사용하여 그린 작품도 존재하고 있다. 이처럼 법통의 확인과 수계를 증명하는 스승의 초상화는 종파 내의 유대관계를 증명하고 돈독히 하기 위해 여러 부가 제작되어 제자들에게 배포되기도 하였다.

▲ ‘의상대사 진영’, 1767년, 견본채색, 124.3×91.3㎝, 범어사 성보박물관 소장, 부산 유형문화재 제55호.

선인들의 문헌이나 기록을 보면 진과 영 모두 그 자체로서 초상화라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불교미술에서 진영이란 단어는 선승의 초상화를 의미한다. 경전의 내용이나 해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조성할 수 있었던 선사의 진영은 조사신앙을 표현한 종교미술이기도 하다. 중국과 일본에서 승려의 초상화는 부처님의 지혜를 의미하는 정상(頂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진영이나 정상 모두 가변적인 형체를 그리고 있지만 전신(傳神)의 개념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승려의 초상화이지만 예배의 대상이 된다.

813년에 제작된 단속사신행선사비(斷俗寺神行禪師碑)에는 선사가 입적하시자 유명한 장인을 불러 선사의 신령스런 영정을 그렸다고 하였고 965년에 세워진 봉암사정진대사원오탑비(鳳巖寺靜眞大師圓悟塔碑)에는 정진대사가 입적하자 당시 왕이었던 광종의 명으로 비단으로 사면에 선을 두르고 금축(金軸)으로 장황을 한 스님의 영정을 만들어 영찬(影讚)을 써서 진영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통일신라시대 박인범이 쓴 범일국사(810~889) 진영의 찬문에서 ‘상(相)은 있었으되 나에게 이제 형(形)은 없네. 무형의 형을 그림으로나마 보리라’고 한 것처럼 고승의 진영은 거의가 승려의 입적 이후 만들어졌으며 흔치는 않지만 진영의 주인공이 직접 자찬을 기록한 작품도 남겨져 있다.

현재 전해져 오는 우리나라 승려를 그린 진영 중에서 가장 오래된 작품은 일본 고산사(高山寺)에서 15세기부터 보관해오던 의상대사 진영이다. 이 그림은 우리나라에 있던 의상대사 진영을 보고 그대로 옮겨 그린 이모본으로 화면 가득 그려진 커다란 등받이가 달린 의자와 신을 곱게 벗어둔 족좌대(足座臺), 의자 위 결가부좌로 앉아 있는 스님의 모습 등이 비슷한 시기의 중국과 일본 승려의 초상화인 정상과 유사성을 보이고 있어 이와 같은 형태가 당시 고승 진영의 시대적인 양식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기록에 보이는 고려시대 진영은 다수가 임금의 명에 따라 왕실의 화원들이나 유명한 화가들이 제작에 참여하였기에 아마 고려불화에서 볼 수 있는 공교함과 필선의 유려함이 고승의 진영에도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진영은 훼손되면 그 모습을 그대로 이모한 뒤 원본은 땅에 묻거나 불태워 없애기 때문에 현재 남겨진 고려시대 진영은 한 점도 없다. 범어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된 의상대사의 진영은 오랜 세월 여러 차례 이모본이 제작되는 과정에서 변모를 거듭하였다. 불자를 쥐고 의자에 결가부좌로 앉아 있는 전체적인 형상은 고산사 소장본과 유사성을 보이고 당시 초상화나 불화의 바닥장식으로 애용되었던 돗자리 문양이 생략된 이유도 전승되는 도상을 계승하여 이모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당시 인물화의 배경으로 유행하던 병풍이 등장하는 것과 같이 화면에는 부분적으로 새롭게 해석된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 사명당대사 진영’, 18세기, 견본채색, 122.9×78.8㎝, 대구 동화사 소장, 보물 제1505호.

우리나라 사찰에 소장하고 있는 진영 가운데 가장 시대가 이른 작품은 대구 동화사에 소장된 사명당대사 진영이다. 손에 불자를 쥐고 가부좌를 틀어 등받이가 높다란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과 족좌대에 고이 벗은 신발 등 전체적인 모습이 고산사 소장 의상대사 진영과 많이 닮아 있다. 흰 장삼을 입고 선홍색 가사를 두르고 단정히 앉아 계신 모습에서는 온화함이 있지만 긴 수염과 날카로운 눈매는 승병장으로 활약하셨던 스님의 기개가 느껴지는 듯하다.

깨달음의 맥을 이은 스님의 모습을 그린 고승의 진영은 계속 옮겨 그려지는 과정에서 실제의 용모와는 멀어지는 경우도 많았지만 우리나라 정신문화의 한 장르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훌륭한 문화유산이다. 의상과 원효대사의 진영이 현재까지도 사찰에서 모셔지고 있다는 것은 스승의 형상을 그려 모심으로 스승의 가르침과 그 뜻을 항상 기억하겠다는 납자의 굳은 결심이 세월을 따라 천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음을 뜻한다. 길고 긴 세월 동안 한결같은 그들의 믿음과 정성이 놀라울 뿐이며 이 글을 쓰는 지금이라도 내 인생에 큰 가르침을 주신 스승의 사진 한 장이라도 찾아서 책상머리에 붙여놓고 그 뜻을 새겨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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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quot;수행자 본연의 자리로&quot;‥정관스님, 20년 복지 소임 회향

불교의 자비 사상을 노인 복지 현장에 온전히 녹여내며 대한민국 불교 사회복지계의 패러다임을 바꾼 스님이... 정관스님이 걸어온 세월 역시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채운 자비의 향기를 남겼습니다. BTN뉴스 이지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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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19
사찰 벽화이야기  - 가르침을 얻고자 팔을 바친 혜가대사 ​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가르침을 얻고자 팔을 바친 혜가대사 ​

혜가慧可스님은 중국 선종의 제2대조입니다. 중국 선종의 법맥은 달마대사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혜가스님은 달마대사가 있던 소림사를 찾아가 가르침을 구했습니다.

달마대사는 스승이던 반야다라 존자가 입적하자, 인도에서의 인연은 제자들에게 맡기고 법을 전하러 중국으로 건너 왔습니다. 먼저 양梁나라의 왕이던 무제武帝를 만났으나, 그는 달마대사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고, 대사는 그 길로 소림사少林寺에서 9년이란 긴 세월 동안 면벽面壁하며, 인연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해 엄동설한이었습니다. 신광神光이라는 스님이 찾아와 가르침을 청했습니다. 그러나 달마대사는 면벽한 채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아무런 답을 듣지 못한 신광스님은 달마대사가 계신 굴 앞에서 꼼짝도 않고, 눈을 맞으며 추운 겨울밤을 지새우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 밖을 내다보니 어제 찾아 온 스님이 눈 속에 그대로 서있는 것입니다. 대사는 크게 소리를 쳤습니다.

"하룻밤의 얄팍한 덕으로 큰 지혜를 얻고자 하느냐. 너의 믿음을 바쳐 보이거라."

이에 신광스님은 칼을 뽑아 왼팔을 잘랐습니다. 팔이 떨어지자 땅에서 파초 잎이 솟아오르며 팔을 받치는 것입니다. 이에 달마대사는 신광스님을 제자로 받아들이며 법명을 혜가慧可로 바꾸었습니다. 혜가스님은 스승에게 고통에 쌓인 자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달라고 법을 청했습니다.

"그럼 너의 그 마음을 가져와 보거라."

"스승님, 마음을 찾아도 괴로움을 떨칠 수는 없습니다."

"내가 이미 네 마음을 편안하게 했구나."

이윽고 혜가스님은 자신의 불안함과 괴로움을 떨쳐냈고, 스승의 지도아래 용맹 정진한 끝에 달마대사에 이어 중국 선종의 제2대 조사가 되었습니다. 가르침을 구하려는 혜가스님의 용기도 배울 점이 많지만, 달마와의 문답을 통해 우리는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마음은 어디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실체가 없는 것이 마음이지만, 항상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 마음이 팔을 잘라내는 어려운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고통 속에 괴로워합니다. 마음을 찾을 수 없으니 비로소 마음이 편해진다고 말하신 그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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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불서를 전해 준 여인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불서를 전해 준 여인

중국 당나라 때 협부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그곳 사람들은 성질이 포악하기로 소문이 났습니다.

살생, 방화, 강도 등 온갖 악행도 스스럼없이 저질렀습니다. ​ 이것을 본 한 스님이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50일 동안 일념으로 관음기도를 올렸습니다.

이에 감복하여 어느 날 관세음보살이 아리따운 미녀의 모습으로 나투어 그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 협부의 청년들은 아름다운 미녀의 모습에 사로잡혀 앞 다투어 그녀에게 청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미녀가 말했습니다. ​ "소녀의 몸은 하나이고, 저를 아내로 맞고자 하는 분들은 이렇게 많으니 참 곤혹스럽습니다.

따라서 제가 한 가지 제안을 하겠으니, 여러분 가운데 제 약속을 가장 잘 지키는 분과 혼인을 하겠습니다." ​ 그 미녀는 청년들에게 『관음경觀音經』을 한 권 씩 나눠 주었습니다. ​ "이것은 관음경이라고 합니다. 이 경전을 하룻밤 사이에 다 외우는 사람과 결혼하겠습니다." ​ 그런데, 다음 날 경전을 외워서 온 이는 모두 스무 명에 달했습니다. 여인은 다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 "여러분들이 제 말대로 관음경을 외우신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그러나 어찌 제 한 몸으로 스무 명의 남편을 섬기겠습니까?" ​ 그러면서 이번에는 『금강경金剛經』을 한 권 씩 나눠주며, 또 외워서 와 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음 날 다섯 명의 청년이 그 자리에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다섯 명과 결혼할 수 없다면서, 일곱 권으로 구성된 『법화경法華經』을 나눠 주는 것입니다. ​ "법화경은 7권 7만자로 이뤄진 경전이지만,

만약 3일 안에 법화경을 모두 외우는 사람이 있으면 그 분의 아내가 되겠습니다" ​ 약속한 3일이 지났습니다.

그러자 청년들 가운데 마랑馬郞이라는 사람만이 『법화경』을 모두 외워서 나타났습니다.

여인은 약속대로 마랑과 혼인하겠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마랑은 들뜬 마음에 결혼식을 서둘렀습니다. 드디어 결혼하기로 한 날이 되었습니다. ​ 화려한 신부의 모습이 마랑의 앞에 나타났습니다.

마치 꿈을 꾸는 듯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신부가 갑자기 몸이 아프다며 쓰러지는 것입니다.

쓰러진 신부는 거친 숨을 내쉬며 일어나지 못하였습니다.

결혼식은 내팽개치고 마랑은 아내가 될 여인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을 넘기지 못하고 여인은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 마랑은 그녀의 장례를 잘 치러주었습니다.

결국 그날 쓰려던 혼례품은 모두 장례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마랑의 슬픔은 너무나 컸습니다.

매일 그녀의 무덤에 가서 비통한 눈물을 흘렸습니다. ​ 마침 일전에 협부사람들을 위해 관음기도를 올렸던 그 스님이 지나가다

우연히 이 장면을 목격하고는 슬피우는 마랑에게 물었습니다. ​ "누구의 묘이기에 그리 슬퍼하시오.

부모님이라면 필시 당신은 효자였겠구려. 어찌겠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 인연에 부질없이 매달리지 마시오." ​ "아닙니다. 내가 사랑했던 여인의 무덤입니다.

협부에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은 없었는데,

결혼식 날 그만 장례를 치르고 말았습니다." ​ "혹시 한 달 전 나타나 경전을 나눠주던 그 여인을 말하는게요?" ​ 마랑이 고개를 끄덕이자 스님이 말을 이어갔습니다. ​ "만약 그녀를 다시 보고 싶다면 무덤을 다시 파내어 관을 열어보시오.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을게요." ​ 마랑은 속으로 미친 중놈이라고 욕을 했지만, 내심 그녀가 너무나 그리웠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스님의 말처럼 묘를 파헤쳐 관을 열어 보았습니다. ​ 그런데 그곳에 여인의 시신은 온데간데 없는 것입니다.

대신 황금덩어리만 덩그러니 쌓여 있는 것입니다.

마랑이 깜짝 놀라 어리둥절 하는데, 순간 황금덩어리가 관세음보살로 변하는 것입니다. ​ 스님이 마랑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 "이 여인은 다른 사람이 아니고 바로 관세음보살님인데,

이 협부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해 내 관음기도를 올려 부탁을 드렸던 것이오.

여러분도 이제 아름다운 육체의 몸이라도 실로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보았을 것이요.

부디 이제라도 관세음보살께 귀의해서 모든 죄를 소멸받고, 복을 받도록 하시오." ​ 이 말을 들은 마을사람들은 크게 뉘우졌습니다.

이후 마랑은 출가하여 협부에 머물면서 평생을 그들을 교화하며 지냈습니다. ​ 「법화영험전」에 나오는 이야기에는 우리는 관세음보살께서

중생을 제도하시기 위해 여러 가지 몸으로 나타나신다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나에게 도움을 주는 수 많은 분들이

어쩌면 관세음보살님의 화신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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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지옥중생 구제하는 지장보살 ​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지옥중생 구제하는 지장보살 ​

지장보살을 다른 보살과 달리 곁으로 화려함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지옥중생을 구제하고자 지옥으로 걸어가시니, 휘황찬란한 보살의 장식이 아닌 평범한 스님의 모습으로 중생들 앞에 나타나서는 것입니다.

머리에는 다른 보살과 달리 보관 대신 아무것도 쓰지 않거나 두건을 두르고, 손에는 큰 지팡이인 석장을 지닌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 다음으로 약 56억 7천만년 후에 나타나신다는 미륵불이 오실 때 까지, 그 기간 동안 일체의 중생을 구제하는 역할이 부여된 보살입니다.

그래서 육도윤회의 굴레에서 헤매는 중생들을 모두 구제하기로 서원하셨기에, 관세음보살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로 몸을 변화하여 중생 앞에 나타나시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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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입문 - 약사 여래는 어떤 부처님일까?
문화

불교입문 - 약사 여래는 어떤 부처님일까?

동방유리광 세계에 계시면서 중생의 병을 치료해 주시며 중생의 수명을 늘여 주시고 모든 재화를 면해주시며 의복과 음식을 풍족하게 해 주시는 부처님이시다.

※ 이 자료는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 알아두면 좋은 불자상식 작성자 민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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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크고 큰 원력의 보현보살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크고 큰 원력의 보현보살

크고 큰 원력의 보현보살.

보현동자는 보현보살이 동자의 모습으로 나타난 분입니다.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은 이렇게 동자의 모습으로도 자주 등장하십니다.

무엇보다도 동자라는 의미가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또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지혜와 수행을 대표하다보니, 초발심으로 상징되는 구도심과 원력을 세워 수행하는 수행자의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 완벽한 보살의 모습이 아닌 수행과정에 있는 동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불자를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보현보살은 흰 코끼리를 타고 다니는데, 코끼리는 행원行願을 상징합니다. 보현보살의 열 가지 행원은 불교수행의 실천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원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항상 부처님을 모시고, 부처님을 찬탄하며, 널리 공양을 쌓고, 늘 참회하며, 서로를 인정하고, 가르침을 즐겨 들으며, 세상에서 부처님의 법을 수호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며, 여러 중생을 잘 따르면서, 지은 바 모든 공덕을 중생들에게 되돌려 주겠습니다."

비록 보현보살께서 부처님 전에 세운 원력이지만, 모든 불자가 당연히 행할 바가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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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의 근본5인 - 지권인 (智拳印)
문화

석가모니부처님의 근본5인 - 지권인 (智拳印)

비로자나 부처님의 인상으로, 오른손으로 왼손의 둘째 손가락 윗부분을 감싸는 모습인데, 손이 바뀌기도 한다. 오른손은 부처님의 세계를 표현하고 왼손은 중생계를 나타내는 수인으로 중생과 부처님이 하나임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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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관세음보살의 위신력
불교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관세음보살의 위신력

“지극한 마음으로 부르면 온갖 고난서 구원”

봉화 보양사는 원래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에 있었습니다.

1970년에 총본산 구인사의 총무원 건물을 해체한 목재들로 재건축하여 나름 의미가 큰 절이었습니다.

그러나 교세 가 신장하고 읍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봉화 읍내에 인접한 내성리로 옮겼습니다.

현재의 보양사는 2012년 10월 9일에 낙성됐는데

2층 법당으로 올라가는 좌우 계단 중 왼쪽 계단 옆 벽면에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을 나타내는 벽화가 있습니다.

이 벽화의 근거는 〈법화경〉의 제25품인 ‘관세음보살보문품’입니다.

보양사 벽화는 화폭이 그리 크지는 않지만 매우 역동적입니다.

먼저 오른쪽에서 흉악한 생김새의 남자가 손에 칼을 들고 눈을 부라리며 여인을 향해 서 있고,

겁에 질린 여인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칼로 위협하는 남자를 피해 낭떠러지로 떨어집니다.

여인의 발이 낭떠러지의 모서리에서 막 떨어지는 장면은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립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몸 아래로 아주 섬세하고 부드럽게 그려진 손이 보입니다.

손의 크기가 여인의 몸집만하여 충분히 여인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손의 색이 금색이니 분명 관세음보살의 ‘천수’일 것입니다.

또 화폭의 왼쪽에는 관세음보살이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여기까지의 도상만으로 이 그림이 설명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위험에 처한 여인을 관세음보살님이 구해 주시는 장면이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테니까요.

그러나 이 그림을 신앙적으로 좀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관세음보살보문품’(이하 보문품)을 알아야 합니다.

무진의 보살과 석가모니 부처님의 대화 형식으로 설해지는 보문품은

관세음보살의 위신력과 33관음의 호응 등 관음신앙의 대의와 공덕을 설하고 있습니다.

관음신앙의 근거인 보문품을 〈법화경〉의 한 ‘품’에서 ‘경’으로 격상하여 따로 ‘관음경’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만큼 우리나라에 관음신앙이 보편화 되어 있으며 신앙적 가치가 두드러지기 때문입니다.

무진의 보살이 부처님께 여쭙습니다.

“부처님이시여. 관세음보살은 무슨 인연으로 관세음이라 합니까?”

이에 부처님의 답은 에둘러 가지 않고 바로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을 설명합니다.

▲ 봉화 보양사 벽화. 도장난(刀杖難)을 당한 여인이 관세음보살의 구원을 받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선남자여. 만일 한량없는 백 천 만 억 중생들이 온갖 괴로움을 받을 적에 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일컬으면 관세음보살이 곧 그 음성을 관찰하고 모두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이렇게 시작되는 부처님의 말씀은 관세음보살을 일심으로 부르면 우선 일곱 가지 재난을 벗어나고, 삼독(三毒)을 여의게 되고, 자녀를 얻게 된다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일곱 가지 재난은 물, 불, 바람, 칼, 몽둥이, 족쇄, 도둑 등으로 곤경에 빠지는 것입니다.

보양사 벽화에서 칼을 든 도적을 만나 위협을 받는 여인은 지극한 마음으로 관음기도를 열심히 하는 불자입니다. 그래서 그 위험한 지경에도 마음속으로 관세음보살님을 부르는 것이며, 그 부름에 응답하여 관세음보살이 자비의 손으로 여인의 몸을 받아 안전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물과 불, 바람 등 자연재해를 비롯한 다른 위험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이 벽화는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보문품의 내용대로라면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것이 중요한데 그 일심이라는 ‘조건’의 의미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무조건 목청을 높여 관세음보살을 부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마음은 지극해야 하고 산란함이 없어야 합니다. 삼매(三昧)에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타력’에 의한 구원만을 바랄 것이 아니라 ‘자력’에 의한 해탈의 실마리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관음정근을 하더라도 입으로만 할 것이 아니라 온 마음을 다하여 삼매에 들었을 때 관세음보살의 진실한 위신력과 공덕을 자기화 할 수 있습니다. 대승불교의 보살사상은 일체중생이 보살의 서원을 세우고 그 성취를 위해 함께 나아가는 것을 기저(基底)로 삼습니다.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른다는 것은 온 마음을 다해 천수천안의 대자대비를 길러 그 대자대비의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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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나한 기도의 공덕과 방법
문화

불교문화 - 나한 기도의 공덕과 방법

나한 기도의 공덕과 방법

나한신앙은 관음신앙과 더불어 대표적인 현세의 문제와 당면 과제를 해결하는 현세신앙이다.

특히 나한들은 신통이 뛰어나고 다수로 구성되기 때문에 기도의 효과가 빠르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기도의 대상이 불보살이 아닌 고승들이므로 개인적인 감정이나 호불호를 드러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일반적으로 나한은 공양물을 좋아하며 장난이 심한 존재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공양물을 많이 올리거나 소원이 성취되면 공양하겠다는 조건을 걸면 가피가 빠르다.

하지만 기도하는 사람이 "소원이 성취되면 무엇을 해드리겠다"고 한 뒤

추후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다소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즉 골탕을 먹이는 일이 발생하는게,

이는 관음기도와는 다른 나한기도만의 특징 중 하나다.

불교에서는 기도의 대상을 상 · 중 · 하로 나누는데,

하로 갈수록 기도영험이 빠른 반면에 세속적인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

즉 일종의 대가를 원하는 경우가 많으며,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심지어 일이 꼬이는 재앙이 생기는 경우마저 있다.

이는 상급의 대상인 불보살님은 무한 자비를 베푸는 분들이지만,

하급으로 가면 이들 역시 사욕이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보다는 높은 깨달음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속된 기운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상태라는 말이다.

마치 덕이 있는 노인들이 가끔씩 부리는 투정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기도 대상의 상중하

· 상 ㅡ 불보살님

· 중 ㅡ 나한, 신중 등

· 하 ㅡ 독성, 산신, 용왕등

한국 불교에선 나한신앙은 고려시대에 지속적으로 살펴지지만,

특히 유행한 것은 원나라의 영향에 따른 것이다.

나한기도와 관련하여 동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영험담은 해주 신광사神光寺의 이적이다.

이곳에는 923년 중국 양나라에서 전해진 오백나한이 모셔져 있었다.

그런데 400여 년 뒤인 1330년 왕위 계승에서 밀린 원나라의 황자가 고려의 대청도로 유배를 오게 된다.

이후 신광사 부처님의 꿈을 꾸고는 신광사에 들러 오백나한에게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하소연한 뒤,

"원나라로 돌아가게 해주시면 사찰을 지어드리겠다"고 발원한다.

그후 이 황자는 원으로 귀국하여 마침내 1340년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분이 바로 고려의 여인 기황후의 남편이기도 한

제11대 혜종順帝(1320~1370)이다.

혜종은 약속을 잊고 있다가 꿈속에서

"왜 황제가 되었으면서도 빨리 실행에 옮기지 않느냐?는 채근을 듣고는

깜짝 놀라 1341년 신광사를 원찰로 지정한 뒤 대대적인 후원을 하게 된다.

혜종의 유배와 고려에 원찰을 지정하는 진기한 사건은 중국의 정사인

『원사元史』 「본기本紀」 '순제順帝'와 『고려사』 「세가世家36」등에서 살펴볼 수 있다.

또 나한의 영험함에 대한 내용은 혜종이 위소에게 짓도록 한

〈고려해주신광사비高麗海州神光寺碑〉를 통해 확인되는데,

이 사건은 고려 후기에 나한신앙이 크게 유행하는 한 배경이 된다.

고려 후기에 나한신앙이 유행했다는 것은

현존하는 고려불화 중에 〈나한도〉가 10여점이나 남아 있는 것을 통해서 파악해볼 수가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가 되면 사찰의 경제력이 줄다 보니,

오백나한처럼 대규모 불사보다는 십육나한같이 축소되는 것이 일반적인 양상으로 자리 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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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입문 - 불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대표적인 점은?
문화

불교입문 - 불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대표적인 점은?

타종교가 대부분 신을 중심으로 하고 인간이 신의 종노릇을 하며 신과 같이 되는 것을 죄악시 하는데 반해 불교는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이며 스스로 자기 마음을 딲아서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을 얻어 영원한 해탈의 자유와 행복을 누리는 종교이다.

이 자료는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 알아두면 좋은 불자상식|작성자 민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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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설산동자 이야기
불교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설산동자 이야기

몸을 던져 진리 구한 설산동자

◇진리를 담은 게송을 듣기 위해 자신의 몸을 나찰에게 주어버리는,

간절하고 지극한 구도심을 표현한 동해 만리사 ‘설산동자 이야기’ 벽화.

수행은 간절하고 지극함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예로부터 공부를 할 때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되 닭이 알을 품듯, 고양이가 쥐를 잡듯, 배고픈 이가 밥을 생각하듯, 목마른 이가 물을 생각하듯, 젖먹이가 엄마를 생각하듯 하라고 했다.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지극하게 공부에 임하면 생각 생각이 공부에 꽂혀 있고 일체 행동이 공부로 이어진다.

부처님도 그렇게 간절하고 지극하게 공부했다. 처음 출가했을 때는 수많은 현인들을 찾아가 묻고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의 가르침은 궁극적인 만족을 주지 못했다. 그래서 혼자 명상을 통해 우주적 질서의 핵을 꿰뚫는 경지를 넘어섰다. 생로병사의 일대사를 해결하겠다는 간절함이 없었다면 니련선하 강가에서 새벽별에 눈 맞추고 깨달음을 얻는 그 환희도 없었을 것이다.

경전 가운데 〈자타카〉는 부처님의 전생담을 묶은 것이다. 부처님도 룸비니 동산에 태어나기 전 여러 생을 거치면서 간절하고 지극하게 수행했음을 드러내는 일련의 이야기들이다. 부처님의 성불은 한 순간의 수행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수행의 공덕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동화 같기도 한 〈자타카〉의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동해 만리사 3층 대불보전 벽화는 화려하고 선명하다. 〈법화경〉의 일곱 가지 비유를 그림으로 묘사한 벽화가 눈길을 끈다. 그 옆의 한 벽면에 그다지 크지 않게 그려진 벽화는 〈자타카〉에 나오는 ‘설산동자 이야기’를 묘사한 것이다. 천태사찰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 벽화다. 절벽 위에서 동자가 몸을 던져 뛰어내리고 나찰귀신이 그 몸을 받으려고 하는 장면이다. 〈자타카〉에 나오는 설산동자는 부처님의 전생이다. 동자는 간절하고 지극한 마음으로 수행을 했다. 일체의 걸림을 초탈하는 위대한 진리를 얻고자 지극하게 공부를 하는 동자의 귀에 이상한 게송이 들려 왔다.

“모든 것은 덧없이 흘러가니, 태어나 죽지 않는 이는 아무도 없다네(諸行無常 是生滅法).”

동자는 귀가 솔깃했다. 뭔가 마음이 열리는 듯했다. 그 게송을 음미해 보니 엄청난 진리를 담은 한 구절의 게송이 아닌가? 동자는 마음이 풍성해 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으로 완전하지는 않은 게송이었다. 다음 구절이 더 있음이 분명 했다.

한참을 귀 기울여 다음 구절이 들리기를 기다렸으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때 나찰귀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게송은 자신이 읊은 것이라 했다. 당연히 동자는 뒷부분이 더 있을 터이니 더 들려달라고 졸랐다. 나찰귀신이 말했다.

“나는 지금 배가 고프다. 먹을 것[고기]을 주면 더 들려 줄 수 있다.”

동자는 서슴없이 “나를 먹으라”며 자신의 육신을 줄 테니 게송의 뒷부분을 들려 달라고 했다.

“나고 죽는 그 일마저 사라져버리면 거기에 고요한 즐거움이 있네(生滅滅已 寂滅爲樂).”

나머지 게송을 들은 동자는 그 게송을 몇 번이고 외우고 음미하며 열반적정에 들었다. 그리고 절벽위에 올라가 나찰을 향해 육신을 던졌다.

한 소절의 게송을 듣고 열반의 환희를 누림으로써 이미 모든 것을 얻은 동자는 더 이상 몸이라는 물질에 얽매이지 않았다. 물론, 〈자타카〉의 이야기는 해피앤딩이다. 동자가 몸을 던지자 나찰이 제석천으로 변해 동자를 살리고 미래 세상에 반드시 성불할 것임을 칭송한다.

설산동자 이야기는 불자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이야기에 담긴 메시지를 간과하는 불자가 많다. 매사에 간절하게 그리고 지극하게 임하면 그것이 기도이고 수행이다. 한 구절의 게송을 듣는 기쁨은 육신보다 귀하다는 것을 쉬 납득할 수 있을까? 공부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는 공부가 최고의 가치다. 공부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 무엇도 기꺼이 던질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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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49재 동안(3)의 날짜별
문화

불교문화 - 49재 동안(3)의 날짜별

그러면 반드시 나고 죽는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 희락부제존(喜樂部諸尊)자기제도법 죽은뒤 첫이레 동안 자비로운 모습으로 나투는 여러 불보살을 만남

첫쨋날: 중음신은 마치 맑고 푸른 가을 하늘처럼 보이는 온통 파란색의 세계를 본다.

그 파란색의 한가운데서 비로자나부처님이 사자좌에 앉아 가슴으로 부터는 눈이 부신 파란빛을 중음신에게 내린다. 이 때 부드럽고 옅은 흰빛도 함께 온다. 중음신이 이 빛이 아니라 반드시 파란빛으로 들어 가야한다.

둘쨋날: 물기운의 맑고 깨끗한 흰빛이 중음신을 향해 쏳아진다.

이는 금강부의 부처님이 상황보좌를 타고 중음신을 이끌려고 내리는 빛으로 부처님 곁에는 지장보살과 미륵보살이 있다. 이때 안개와 같은 검은 빛이 함께 오는데 이빛은 지옥의 빛이니 결코 들어가서는 안된다.

셋째날:

흙기운의 눈이 부신 황금빛이 중음신에게 내려온다. 이는 보생여래(寶生如來)가 보마보좌(寶馬寶座)를 타고 중음신을 건지려고 내린 빛으로, 부처님 곁에는 허공장보살과 지장보살과 보현보살이 있다. 이때 옅은 노란색에 파란색을 띤 빛이 함께 내려온다. 이 빛은 사람세계로 이끄는 빛이다. 해탈을 바라는 중음신은 눈부신 황금빛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넷째날: 불기운에 붉은 보배광명이 중음신에게 내려 온다.

이는 서방극락세계의 아미타부처님이 공작왕(孔雀王)보좌를 타고 중음신을 건지려고 내린 빛으로 부처님곁에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 보살이 있다. 이 때 아귀세계로 이끄는 연붉은 빛도 함께 내려온다. 결코 붉은 보배광명을 피하면 안된다. 아귀세계에 빛은 부드럽지만 욕심이라는 업의 기운에서 나오는 빛이다.

다섯째날: 바람기운의 맑고 깨끗한 초록빛이 중음신에게 내려온다.

이는 불공성취불(佛空成就佛)이 인신조체수왕(人身鳥體獸王)보좌를 타고 중음신을 건져내려고 내린 빛으로 부처님곁에는 금강수 보살과 제개장보살이 있다. 이때 아수라 세계로 이끄는 어두운 어두운 초록빛도 함께 내려온다. 어두운 초록빛은 성내고 탐내는 나쁜 업의 기운에서 나타난 것이니 절대 이빛속으로 들어가서는 안된다.

여섯째날: 이날에는 아직 방황하고 있는 무거운 업의 중음신을 향해 앞에 나타난 다섯 부처님들의 빛이 함께 내려 온다.

이 빛은 본디 맑고 깨끗한 스스로의 깨달음의 빛인 참고향이니 중음신은 이가운데 한 빛을 따라가게 된다. 이때 자신의 업력에 빛인 옅은 빛도 함께 나타난다. 하늘나라는 옅은 흰빛, 사람은 옅은 노란빛, 아수라는 옅은 초록빛, 짐승은 어두운 파란빛, 아귀는 옅은 피빛, 지옥은 뽀얀 검은빛이다.

이 같은 빛들은 깨달음의 빛속에 섞여 내려온다. 결코 맑고 눈부신 빛을 피해 약하고 부드럽고 어두운 빛으로 들어 가서는 안된다.

살았을 때 신을 숭배하고 하늘나라에 태어나기를 소망했던 중음신들은 그런 소망을 비워야 한다.만약 비우지 않고 하늘나라로 가는 흰빛을 따르면 나고 죽는 윤회가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일곱째날: 엿새동안에 기회를 다 놓친 중음신은 다시 7일을 맞이 하게 된다.

이 날은 오부존자(五部尊者)가 동,서,남,북, 중앙에서 오른손으로는 항복수인(降伏手印)을 지으면서 보배칼을 높이 들고 왼손에는 피가 담긴 해골을 들고 흥겹게 춤을 추며 중음신에게 빛을 내린다. 이 때 짐승에 길로 이끄는 파란빛이 내려온다. 존자가 내려 주는 빛속에는 천배로 증폭된 천둥소리가 들린다. 중음신을 결코 두려워 하면서 짙은 파란빛으로 들어 서서는 안된다. 존자들에 내려주는 지혜에 빛은 본래 스스로의 본디 광명에서 오는 것이고 축생도의 빛은 어리석은 업력(業力)에서 나온 것이다. 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을 부르면 정토(淨土)에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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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부모은중경 1부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부모은중경 1부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의 약칭으로 한량없는 부모님의 은혜에 대해 설한 경전이다. 특이점은 유교의 『효경孝經』이 아버지의 은혜를 두드러지게 내세우는 점과 달리 어머니의 은혜를 강조하고 있다. 『부모은경중』은 어머니가 자식을 잉태하여 출산하기까지의 과정을 경이로울 정도로 세밀하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관찰하고 있다.

부모님의 은혜를 높은 산과 넓은 바다에 비유한다. 하지만 우리는 부모님의 은혜가 왜 이처럼 높고 넓은지는 모르고 그저 나를 낳고 기르시다가 고생만 하시기 때문이라는 막연한 고마움만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부모은중경』에는 부모님과 내가 어떤 인연으로 만났으며, 부모님이 어떻게 나를 낳고 길렀는가, 효·불효는 어떤 것인가, 부모님의 은혜가 왜 소중한가 등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이 상세하게 설해져 있다. 따라서 『부모은중경』을 통해서 관념적이었던 부모님의 은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게 될 뿐만 아니라 부모님에 대한 참다운 보은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다.

이러한 『부모은중경』은 불화보다 주로 벽화로 그려지며 사찰 내의 전각 가운데 지장전의 외부 벽화로 그려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까닭으로는 『지장경』으로 불리는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 역시 불가佛家의 효경으로 불리는 경전의 성격 때문이다. 『지장경』은 석존께서 어머니 마야부인을 위하여 도리천에서 설법하시는 내용으로 시작하는 점과 지장보살의 옛 인연은 모두 부모님께 효를 행했던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지장전의 벽화로 그려지고 있다.

벽화의 내용은 경전과 관련하여 어버이의 열 가지 크신 은혜를 각각 그려 다음과 같이 나타낸다.

(1) 회탐수호은懷眈守護恩: 품에 품고 지켜 주는 은혜

오랫동안의 인연이 귀중하여

금생에 와서 어머니 뱃속에 몸을 맡기네.

달이 지나면서 오장이 생기고

일곱 달로 접어들어 육정이 열리네.

몸이 무겁기는 큰 산과 같고

가고 서고 할 때마다 바람조차 겁을 내며

비단옷이라곤 입어 보지도 않고

단장하던 거울에는 먼지만 쌓여 있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아주 오래전에 이 세상에 태어날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인연因緣이라고 한다. 어머니가 아기를 가지게 된 것도 오래전부터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사진 1. 회탐수호은(은해사 지장전 벽화).

아기는 어머니 뱃속에서 날이 지나고 달이 지나는 동안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전한 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된다. 아기가 이처럼 어머니의 뱃속에서 변화, 성장하는 동안 어머니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기에 어머니의 무거운 몸이 큰 산과 같다고 비유하였다. 또한 움직일 때마다 몸을 조심해야 하고, 바람만 불어도 걱정한다. 무서운 것과 좋지 않은 것을 보면 아기에게 영향이 있을까 봐 걱정할 뿐만 아니라 먹는 것과 입는 것 등 모든 일에 주의하고 조심하며 아기를 위해 어머니는 세심한 신경을 쓰게 된다.

첫 번째 벽화 【사진 1】은 일반적으로 탁자에 기대어 웅크린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서 그런 조심스러움을 표현하고 있다.

(2) 임산수고은臨産受苦恩: 해산함에 고통을 이기는 은혜

잉태한 지 열 달이 다가오니

해산의 어려움이 아침저녁으로 임박했네.

나날이 중한 병든 사람 같고

나날이 정신이 혼미해지네.

무섭고 두려운 마음 표현하기 어려워

하염없이 눈물 흘려 옷깃을 적시네.

슬픔을 머금은 채 친척에게 말하기를

이러다가 이 몸 죽을까 겁이 납니다.

사진 2. 임산수고은(은해사 지장전 벽화).

두 번째 벽화 【사진 2】가 담고 있는 것 역시 경에 나오는 위의 내용과 마찬가지다. 아기가 태어날 때쯤 어머니에게는 여러 가지 징후가 나타나는데 이때 어머니가 겪는 고통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태어날 아기는 어떤 모습일까, 몸은 건강할까, 어느 한 가지 모자라거나 이상한 곳은 없을까, 고통스럽지 않고 순조롭게 아기를 낳을 수는 없을까? 하는 여러 가지 근심과 두려움이 쌓이게 된다. 어머니 뱃속의 아기가 태어난다는 것은 위대한 일인 만큼 어려움과 두려움,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기도 하다. 「임산수고은」 벽화는 아기가 태어날 때쯤 아무 탈 없이 아기를 낳을 수 있게 되기를 염려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함축하고 있다.

(3) 생자망우은生子忘憂恩: 자식을 낳고 근심을 잊는 은혜

자비로우신 어머니 그대를 낳을 때에

오장이 모두 터지고 갈라지듯 했고

몸과 마음이 고통으로 혼미해졌네.

흐르는 피는 양을 잡은 듯하지만

낳은 아기 건강하단 말 들으니

반갑고 기쁜 마음 비길 데 없네.

기쁜 마음 가라앉고 슬픈 마음 다시 일어나니

아픔과 괴로움이 온몸에 사무치네.

사진 3. 생자망우은(은해사 지장전 벽화).

(4) 연고토감은咽苦吐甘恩: 쓴 것은 삼키고 단 것은 먹이는 은혜

부모의 은혜 깊고도 중하여

사랑하심을 한시도 잊지 않으시네.

좋은 음식 마다하니 무엇을 잡수시나

쓴 것만을 삼키셔도 그 얼굴 밝으시네.

지중하신 그 사랑에 솟는 정 한이 없고

은혜 더욱 깊으시어 더욱더 애절하네.

어린아이 배부르게 하기 위해서

자비로운 어머니 배고픔도 마다 않네.

사진 4. 연고토감은(은해사 지장전 벽화). 【사진 4】의 「연고토감은」 벽화는 어머니가 사랑과 희생으로 아기를 기르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때와 장소가 따로 없다. 먹는 것도 아기가 배탈이 날까 찬 것은 데워서, 뜨거운 것은 식혀서 먹이며, 좋은 것만을 골라 아기에게 먹인다. 그리고 경문은 달콤한 것은 어머니의 입속에 넣다가도 아기 입에 넣어 주는가 하면, 쓴 것은 아기 대신 어머니가 먹으면서도 눈썹 하나 찡그리지 않음에 이르고 있다.

그래서 다시 『부모은중경』에 “농작물이 잘되지 않아 먹을 것이 부족하여 어려움을 당할 때 어버이를 위하여 자기 몸의 살을 도려내어 저미고 부수어 마치 티끌과 같이 하는 것을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세월 동안 하며 고생하는 사람이 있다 하여도 부모의 깊은 은혜는 다 갚을 수가 없다.”라고 하신 것이다. 그래서 벽화에 표현된 어머니의 표정은 한없이 평화스러운 모습으로 아기를 안고 있다.

(5) 회간취습은廻乾就濕恩: 마른자리 아기 뉘고 젖은 자리에 어머니가 눕는 은혜

어머니의 몸은 모두 젖더라도

아기는 언제나 마른자리에 누이시네.

젖으로 아기의 주린 배를 채워 주시고

비단 옷소매로 찬바람 막아 주시네.

한결같은 사랑으로 잠조차 폐하시고

아기의 재롱에서 기쁨을 찾으시네.

다만 아기를 편케 하려고

자비로운 어머니는 편함을 원치 않네.

사진 5. 회간취습은(은해사 지장전 벽화)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닿도록 고생하시네.” 이는 ‘어머니의 은혜’라는 노래의 가사 중 일부로 그 내용이 『부모은중경』에서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어머니가 아기를 소중히 여긴다는 말로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신다는 말보다 더 정확한 표현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벽화 【사진 5】도 어머니가 포대기로 감싼 아기의 자리를 갈아 누이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아기에게 먹이고 입히며 품에 안아서 아기에게 편안함을 주고 사랑을 전달하는 어머니! 이렇듯 헤아릴 수 없는 정성으로 밤낮없이 애쓰는 어머니의 은혜를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는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아기가 재롱을 떠는 것을 보면 모든 괴로움을 잊고 마는 것이 우리 어버이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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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수하항마-1 (樹下降魔 1) -마왕의 물병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수하항마-1 (樹下降魔 1) -마왕의 물병

<임허사- 경북 포항> <br><br> 물병을 사이에 두고 바위자리에 앉아있는 수행자와 실랑이 하고 있는 마구니들의 그림이다. <br><br>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의 지배자 마왕 파순(波旬)은 석가의 깨달음으로 세상이 행복해지면 자신의 지배력이 약해 질 것을 걱정하여. 자신의 부하 마군들을 석가에게 보내 온갖 행패를 부리기 시작한다.

때로 몰려온 마군들에게 석가는 자신의 자리 앞에 있는 작은 물병을 가리키며.

‘이 물병을 가져가 보아라! 그러면 내 너의 뜻에 따르겠다.

마군은 때로 달려들어 물병에 밧줄을 걸어 놓고 힘을 주었으나 물병은 꼼짝도 않는다.

석가의 도력을 알아차린 마왕의 부하들은 겁이 나서 하나 둘 도망치기 시작 한다. <br><br> ▮ 타화자재천 의 세계 마왕 파순이 살고 있는 곳을, 뭐든 내가 원하는 대로 바라는 대로 다 되는 세상이라고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라 부르고 있다. <br><br> 능력 있는 부모를 두어 아빠찬스 엄마찬스 다 부리며 뭐든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온 자녀들처럼 <br><br> 지금껏 부족함 없이 자기 뜻대로 살아 온 마왕이 석가모니의 보잘것없는 물병하나를 건드려 보지도 못하고 있으니,

그 마음 얼마나 괴로울까.

‘타화자재천’세상처럼 내 마음먹은 대로 다 이루어지면 행복해서 좋으련만, 현실은 어느 것 하나 만만하지 않다고. 석가모니는 인생의 7째 고통으로 ‘구부득고’(求不得苦) 라고 하였다. 지금껏 그토록 모든 걸 희생하며 열쌤 행복마일리지를 쌓아 보았지만, 행복은 아직도 채워지지 않는 항아리와 같다. 그러니, 욕심덩이 가득한 이 마음부터 덜어내고 비워 내라는 구나. 자꾸 자꾸 덜어내고 비워내어 이 맘 부터 가벼이 될 때면 ..... 어디를 가나 나를 따라오는 그림자와 같이 만족감, 행복감, 즐거움도 날 따라온다고. 괴로움은 빼고 즐거움만 취하겠다는 것은 ‘허상을 쫓는 것이라’고 그는 가르치고 있다. 지혜로운 자는 석가의 성도가 물병 때문이 아니라,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수행의 과정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br><br> ‘마왕의 물병’에서는 사소한 ‘물병에 매달려있는 마군 ’의 집착을 통해, 나도 그들처럼 사소한 것에 목숨 걸고 하루하루를 허상을 쫓으며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자신을 살펴보게 하는 그림이다.

▮ 다시 보는 마왕의 물병

<br><br> <도림사-대구 동구>

<br><br> <법주사-경북 군위>

<br><br> <서암정사-경남 함양>

<br><br> <증심사-광주 동구>

<br><br> <해인사-경남 합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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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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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미술여행 - 고려 수월관음도
문화

사찰미술여행 - 고려 수월관음도

조화와 화려함 갖춘 세계서 손꼽히는 걸작

▲ 수월관음도, 고려(1310년), 견본채색, 430×254㎝, 일본 카가미진자(鏡神社).

얼마 전 신문에 관세음보살을 그린 고려불화 1점이 이탈리아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기사가 나온 것을 보았다. 고려는 불교가 융성하였던 시대였으니 분명 불보살님을 그림으로 그린 불화도 다량으로 제작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세월이 흐르면서 강산이 변하고 사회지배 이념이 달라지는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해 현재 남겨진 고려불화의 수량은 겨우 160여점에 지나지 않기에 머나먼 이국땅의 박물관에 소장된 작품이지만 그 존재가 반가운 것이다.

부처님의 법을 믿는 불심에서 발원된 불화는 그 제작과정도 의궤에 의거한 엄격한 절차와 법식에 따라 진행된다. 불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먼저 향을 피우고 향료를 뿌려 그림을 그릴 장소를 청결하게 하고 불보살의 존상을 그리는 화사는 묵언수련에 가까운 절제된 행동으로 엄숙히 작업에 임한다. 불화가 그려지는 동안 송주스님들은 다라니를 외우며 정성을 드리는데 불화의 바탕이 되는 직물의 제작과정에도 경을 외우고 부정을 멀리하는 엄격한 법식을 거쳐야 완성될 수 있다. 불화제작의 절차와 그 과정에 기울이는 많은 정성 못지않게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소용되는 재물의 양도 적지 않다. 특히 세밀함과 색채의 조화 등에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고려시대 불화의 제작비용은 엄청나다.

조선시대 불화는 그림의 바탕이 되는 천도 비단, 면, 삼베 등 다양함을 보이고 제작되는 작품의 크기에 따라 바탕질은 여러 폭을 이어 마련하기도 한다. 하지만 고려불화의 바탕이 되는 천은 모두가 오직 1폭으로만 이루어진 비단이기에 이와 같은 바탕천을 마련하기 위해 불화제작 목적으로 특수한 베틀이 제작되었을 것으로 학계에서는 추정한다. 그리고 그림에 색감을 나타내는 안료는 모두 천연 광물성 안료를 사용하는데 원석을 갈아 가루로 만든 다음 맑은 아교물을 부어 입자의 크기에 따라 분류하여 짙은 색과 옅은색을 내었다. 채색하는 방법도 그림의 뒷면에서 채색을 하는 배채법이기 때문에 그림 앞면에서 바로 채색을 한 작품보다는 안료의 양도 배로 들었을 것이다.

지금은 시절이 좋아 신분계급이 없는 사회가 되어 일반인들도 박물관에만 가면 고려불화를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제작과정에 엄청난 정성과 재물이 소용되었던 고려시대의 불화는 권문세족이나 왕족들이 개인의 원당에 안치하여 그들의 발복을 기원하는 용도로 쓰였기 때문에 아무나 접할 수 없는 귀한 물건이었다. 일본 카가미진자에 소장된 고려 수월관음도는 그림을 보수하고 새롭게 표구하는 과정에서 크기가 줄어들었지만 1827년에 기록된 측량일기를 보면 당시 그림의 가로 높이는 500cm에 넓이는 270cm였다고 한다. 이 불화의 제작에는 8명의 화공이 동원되었는데 커다란 화면에 실로 거대한 보살의 형상을 나타내면서 관음보살이 몸에 걸치고 있는 천의의 투명함을 표현하기 위해 1㎜도 채 안 되는 가는 실선을 붓으로 덧 그려 넣은 섬세함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세밀함을 보인다. 특수 제작된 베틀에서 비단을 짜서 바탕질을 마련하고 그 위에 노련한 화공 여럿이 동원되어 화려하고 섬세한 필치로 그려낸 이 작품 하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재물이 소용되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는 일반 백성들이 엄두도 못 낼 어마어마한 불사였기에 이 그림의 발원자는 일반인이 아닌 당시 왕실가족이었던 충숙왕의 후궁 숙비 김씨였다.

▲ 수월관음도, 중국 서하시대, 견본채색, 101.5×59.5㎝, 러시아 에르미타쥬박물관.

고려시대 관음보살을 그린 작품에는 관음보살이 결가부좌의 형태로 그려진 것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경사가 급하고 험준하다는 보타락가산의 금강보석(金剛寶石) 바위에 한 발을 무릎 위에 올린 반가좌 자세로 부들로 짠 방석 위에 앉아 있고 그 맞은편에는 대부분 선재동자라 불리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두 손을 모아 합장한 선재동자의 얼굴에는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가진 어린아이의 순진함이 가득하지만 신도 신지 않고 수만리 구법의 길을 떠난 모습에는 선지식을 구하고자하는 굳은 의지와 열망을 엿볼 수 있으며 구부린 무릎에서 법을 청하는 공손함이 느껴진다. 선재동자는 남순동자(南巡童子)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두 무릎을 꿇고 법을 청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연잎 하나에 몸을 의지해 험한 바다 위에 떠 있는 형태를 그려내 구도의 험난함을 표현해 낸 작품도 있으며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된 1790년에 그려진 관음도에서처럼 험난한 구도길에 지치듯 야위고 갸날픈 몸매를 보이는 선재동자를 표현한 예도 있다.

고개를 숙이고 아래를 지긋이 내려 보는 관음의 자세는 마치 발아래 선재동자와 눈을 맞추듯이 보이지만 실은 보살의 머리 위에 뜬 달이 물에 비친 모습 바라보는 형상을 나타낸 것으로 이는 인간이 갖는 환상의 허망함을 깨우쳐 주는 의미를 담고 있기에 이 불화의 명칭은 수월관음도이다. 수월관음 도상은 중국 당나라시기에 창안된 새로운 불화도상으로 송과 원대에 특히 유행을 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집중적으로 제작된 그림이다. 같은 주제로 그려진 러시아의 에르미타쥬 박물관에 소장된 서하시기의 수월관음도에도 고려 수월관음도와 같은 등장인물과 배경이 그려져 있지만 전체적으로 그림이 주는 느낌은 성스러움이 충만한 고려 수월관음도와는 차이를 느끼게 된다. 관음보살의 발아래 선재동자의 등장함으로 인해 사람들은 이 그림이 바닷가에 접한 보타락가산에 거주하며 중생을 제도하는 관음을 선재동자가 찾아가 설법을 들었다는 ‘화엄경’의 ‘입법계품’ 내용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라 풀이한다. 따라서 고려의 수월관음도는 법을 찾아 나섰던 선재동자의 구도 여행길에서 28번째 선지식인 관음보살을 만나는 장면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으로 대나무 숲과 바위 산, 청정한 계곡과 산호와 기화요초가 피어 있는 물가 등은 관음이 계시는 곳에 대한 신비감을 증폭시키는 효과를 나타낸다.

수월관음을 그린 고려 시대 불화들은 모두 교묘하고 섬려하며 종교화를 뛰어 넘어 심미적인 아름다움으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사실 불화는 경전과 사상을 그림으로 풀이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그려지는 불보살과 권속, 그리고 존상들이 가지는 지물과 소도구는 정해져 있어 종교 미술의 필연적 특성인 도상의 경직성이 야기될 수 있다. 고려 관세음보살도 역시 경전의 내용을 도해한 것이라 경직된 모습의 형상이 그려질 수도 있었겠지만 두 눈을 아래로 지그시 뜨고 깊은 사색에 잠긴 관음의 얼굴은 속세에서는 찾을 수 없는 성스러운 모습으로 사유에 잠긴 보살의 정신세계를 훌륭히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종교화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표현함에 있어 적절한 색채의 조화를 이용하여 극치의 화려함을 더하는 놀라운 기술로 우리의 선조님들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걸작을 만들어 내셨다. 우리는 탁월한 심미안을 가진 조상님들 덕에 세계 최고라는 불화를 그려낸 민족으로 자부심을 갖게 되었지만 이 그림들을 우리가 간직하지 못하고 다른 나라에서 그 존재를 확인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아쉬움이 크다. 이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는 업무를 직업으로 갖고 있는 필자만의 서글픈 감상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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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석가모니부처님의 근본5인 - 전법륜인(轉法輪印)
문화

석가모니부처님의 근본5인 - 전법륜인(轉法輪印)

부처님이 성도 후 다섯 비구에게 첫 설법을 하며 취한 수인으로, 시대에 따라 약간씩 다른데 우리나라에는 그 예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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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태조와 무학
불교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태조와 무학

조선의 태조는 누구나 다 아는 바와 같이 이성계(李成桂)이다.

그는 날로 부패해 가는 고려왕조를 탄식하여, 청운의 뜻을 품고 팔도강산을 두루 다니며

무예를 연마하고 정신을 단련하는 등 명산과 유서깊은 사찰을 찾아다니며 천지신명과 제불보살님의 가호를 빌기도 하였다.

한때 그가 함경도 안변 땅에 머물적에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혼자서 곰곰히 생각다 못해 답답한 가슴을 안고 그 마을에서 해몽을 잘 한다는 점장이 노파를 찾아가서 묻게 되었다.

  • 다른 게 아니라 내가 간밤에 몇 가지 이상한 꿈을 꾸었기에 해몽을 좀 해 달라고 왔소.

하면서 꿈의 내용을 이야기했더니,

이성계의 얘기를 듣고 깊이 생각하던 점장이 노파가 신중하게 말하기를

  • 대장부가 받은 꿈의 계시를 어쩌 한낱 계집이 말할 수있겠습니까.

여기서 서쪽으로 40리쯤 들어가면 설봉산(雪峯山)이 있고,

그 산의 조그만 토굴에 도인 스님이 한 분 살고 계십니다.

그 어른에게 물어보시면 잘 일러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성계는 노파가 일러준대로 설봉산을 찾아 도인 스님이 계신다는 토굴에 들어가 본즉

한 스님이 선정(禪定)에 들어 있었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 이성계는 스님에게 공경히 절을 하고 찾아 온 사연을 말하였다.

  • 진세(塵世)에 사는 사람이 의심스러운 일이 있어 이렇게 찾아왔아오니 자비로써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 무슨 일인지 말씀을 하여 보십시오.

  • 실은 제가 간밤에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하도 궁금해서 일부러 찾아 왔습니다.

시골마을의 닭들이 일제히 울어대고, 하늘에서는 꽃이 비오듯 떨어지는 것을 봤습니다.

또 저는 헌 곳간에 들어가서 서까래 세 개를 등에 짊어지고 나오다가

거울이 깨어지는소리에 문득 꿈을 깨고 말았습니다.

무슨 불길한 징조는 아닌지요,

  • 정말로 그러한 꿈을 꾸셨다면 남에게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꿈입니다.

    이곳은 아무도 없으니까 가만히 들어보십시오,

마을의 닭들이 일제히 “꼬끼오”하고 울어 댄것은 “꼬뀌위 꼬뀌위”한 것이니

반드시 고귀한 지위에 오른다는 뜻입니다(高貴位) .

헌 곳간에 들어가서 등에 서까래 세 개를 가로 졌으니 그 양이 임금 왕(王)자와 같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이성계는 내심 형용할 수 없는 흥분된 마음을 감추고 다시 묻기를

  • 그러면 하늘에서 꽃이 떨어지고 거울이 깨어진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스님은 말 없이 붓을 들어 시(詩) 한 수를 적어 내 놓았는데 이성계가 보니 이렇게 쓰여 있었다.

< 화락능성실(花落能成實) 꽃이 떨어졌으니 열매가 맺힐 것이요

경파개무성(鏡破豈無聲) 거울이 깨어졌으니 소리가 요란할 징조로다. >

하고 스님은 다시 이성계의 얼굴을 자세히 보더니

  • 장군의 면상을 본즉 군왕의 기상이 얼굴에 가득하지만

아직 겁기(劫氣)가 다 벗어지지를 못 하였으니 성현에게 기도를 올리고 공덕을 지어야 일이 성취되겠소이다.

이 일은 나만 알고 비밀을 지킬터이니 장군께서도 꿈 이야기를 입밖에 내지 말아야 하오.

아직도 3년의 시일을 기다려야 할터이니

그 동안에 이 자리에 절을 세워 오백 라한을 모시고 기도를 잘 드리도록 하시오,

하고 자세히 알려주었다.

이성계는 자리에서 일어나 스님께 스승의 예를 올리고

그 뒤에도 가르침을 청했으니, 이 스님이 바로 무학대사 이다.

이렇게 해서 이성계는 자기의 출생지 안변 땅에 절을 지어〈임금 왕(王)자를 해석했다고 하여〉

석왕사’(釋王寺)라 이름하고, 등극한 후에는 무학대사를 ‘왕사(王師)로 모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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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입문 - 육바라밀은?
문화

불교입문 - 육바라밀은?

중생구도의 행도를 가는 보살의 과업은 중생의 수만큼이나 무수하다. 그 무수한 입들을 크게 여섯으로 묶어 보살이 실천해 나갈 덕목으로 삼은 것이 육발밀이다. 바라밀은 범어(梵語)파라미타(PRAMITA)의 음역이며 그 뜻은 "피안으로 건너 간다"는 말이다.

  1. 보시(布施) 아무런 조건없이 베풀어 주는 것. 즉, 보수 없는 공사를 말한다,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사람에게 입을 것을주며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위안과 용기를 주는 것이 곧 보시이다. 모든 중생에게 이익이 되게 하는 일이다. 이 보시를 하는데 가장 근본적인 자세는 조건없고 바램도 없는 무보수의 행. 즉,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이다.

  2. 지계(持戒) 계율을 지키는 것. 생활의 규범을 갖는 것을 말한다. 언제나 자기 중심이 아니고 중생을 위하는 몸으로 살생을 하지 않고 모든 생명이 있는 자에게 이익과 자비를 베풀며, 부정한 행을 하지 않을뿐 아니라 포악한 말이나 이간시키는 말이나 허망된 말을 하지 않는다. 또 남의 것을 탐내거나 시기 질투하지 않고 올바른 참된 지혜로써 생활의 신조를 삼는다.

  3. 인욕(忍辱) 참기 어려움을 참고 행하기 어려운 일을 능히 행함을 말한다. 어떠한 물질적 빈곤에도 불만없이 또, 어떠한 정신적 핍박에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는 것이 인욕이다.

  4. 정진(精進) "끊임없는 노력을 말한다." 안으로 인격완성을 위하여 끝없는 번뇌를 끊고 보살은 중생구제에 끊임없는 노력을 시작이 없이 없는 과거로부터 끝이 없는 미래에까지 영원히 계속 해나가는 것이다.

  5. 선정(禪定) "생각하여 닦는다." "생각을 고요히 한다." 는 뜻이다. 이는 번뇌망상으로 생겨나는 번거롭고 소란한 마음을 진정시켜 정신을 통일하는 수행방법이다. 정(定)또는 삼매(三昧)라고도 한다. 삼매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경지이며 말로써표현 할 수 없는 경지이다.

  6. 지혜(知慧) "선정에서 얻어진 것이 지혜이다." 이는 듣고 배워서 얻어진 유소득의 지식과는 다르다. 그러므로 보살은 지적(知的)인 면에서는 부처님처럼 열반에 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중생구제를 위하여 혜적(慧的)인 면을 활용하여 중생 제도에 힘쓰는 것이다.

※ 이 자료는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 알아두면 좋은 불자상식 작성자 민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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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신묘장구 대다라니 (10일차)
문화

불교문화 - 신묘장구 대다라니 (10일차)

**보명법사의 신묘장구대다라니 3×7=21일 기도 10일째. **

천수천안 관자재보살 광대원만 무애대비심 대다라니 계청 (3) 千手千眼 觀自在菩薩 廣大圓滿 無碍大悲心 大陀羅尼 啓請

계속해서 관세음보살의 공덕을 칭송하는 게송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진실어중선밀어 (眞實語中宣密語) 무위심내기비심 (無爲心內起悲心) 속령만족제희구 (速令滿足諸希求) 영사멸제제죄업 (永使滅除諸罪業)

여기서 <진실어중선밀어>는 '진실한 말 가운데 비밀스럽고 불가사의 한 말씀을 베푼다'는 뜻입니다.

진실한 말 가운데 비밀스러운 말씀인 밀어는 바로 진언, 즉 다라니를 일컫는 말입니다. 비밀스럽다는 것은 남이 알아서는 안 될 말이 아니라 중요하고 값진 큰 뜻이 담긴 말이라는 뜻입니다.

앞 장에서 이야기 했듯이 진언을 함부로 해석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진언은 너무 깊은 뜻이 담겨 있기 때문에 한 마디로 번역해 버리면 그 값어치가 떨어져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눈으로 말한다'는 표현을 씁니다. 이것은 바로 눈빛은 아주 간단한 언어의 표현이지만 그 진실한 표현 속에는 매우 깊은 마음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음으로 <무위심내기비심>은 '아무 조건 없는 마음 가운데 자비심을 일으킨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놓으면 그것을 자기가 했다는 마음이 항상 앞섭니다. 선행(善行)을 하고서 대가를 바라면 공덕은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대가를 바라는 것은 마치 빌려 주었던 돈을 되돌려 받는 것과 같습니다. <무위심>은 무엇을 베풀어도 베풀었다는 생각이 없는 마음, 다시 말해서 대가도 없고, 조건도 없는 마음을 말하는데 그것은 곧 관세음보살의 자비심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대가 없이 무엇이든 자꾸 해주고 싶은 마음이 바로 <무위심>과 통합니다.

관세음보살의 자비심을 경전에서는 '갓 태어난 어린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의 마음과 같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관세음보살이 이처럼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하듯 우리들도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삶이 되어야겠습니다.

다음으로 <속령만족제희구>는 '속히 모든 바라고 구하는 것을 만족하게 해준다'는 뜻입니다.

<희구>는 중생들의 바라는바, 즉 희망사항인 것입니다. 중생들의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소원을 관세음보살의 자비심으로 하루속히 이루어지도록 해서 만족하게 해주는 게 <속령만족제희구>의 숨은 뜻입니다.

계속 이어지는 <영사멸제제죄업>은 '모든 죄의 업장들을 영원히 소멸시켜 없앤다'는 말입니다.

무엇을 담기 위해서는 그릇을 비우는 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밝음이나 어둠이 실체가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가 지은 죄업은 눈에 보이는 실체는 아니지만 거미줄처럼 얽혀 하나의 영향력으로 나타납니다. 그 영향력은 또 다른 과보를 낳게 되어 업장이 두터워지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의 업장은 참회를 통해서, 여기서는 『천수경』을 읽는 일을 통해서 소멸케 된다는 것입니다.

굳이 밝음을 찾으려고 애쓸 게 아니라 우리 속에 있는 어둠만 제거하면 밝음은 저절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달을 말할 때 같은 달이지만 처음 초승달이었을 때는 밝게 비출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보름달이 되면 온 세상을 환히 비출 수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의 업장도 기도나 정진을 통해서 씻으면 씻을수록 소멸되어 밝음을 되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불교의 업사상과 함께 중요한 것이 바로 인과의 법칙입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내용 중에서 중요한 것의 하나가 인과의 법칙입니다. 그것은 인과응보로 바꾸어 말할 수 있는데 선인선과(善因善果)라 하여 선한 인연을 심으면 선한 과보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를 보면 성실하고 착한 사람인데도 인생이 평탄하지 못한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과에 대해서도 반신반의하는 수도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법구경』에서 말씀하시기를, "선한 사람도 선의 열매를 맺기 전에는 화를 만난다. 그러나 선의 열매가 익은 후에는 선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 악의 열매가 익기 전에는 악한 사람도 복을 받는다. 악의 열매가 익은 후에는 악한 사람은 반드시 화를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하는 데도 어려운 삶을 살게 되고 악한 일을 하는 데도 잘 사는 경우를 봅니다. 그것은 좁고 짧은 안목으로 보아 그렇습니다. 우물에서 숭늉울 찾는 것과 같습니다. 우물물이 숭늉이 되려면 여러 조건을 필요로 합니다. 착한 사람도 어려운 일에 처하게 되는 것은 그 사람이 과거에 지은 업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실업자인데도 과거에 벌어 논 돈이 있으면 그가 현재에는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계속 놀고만 있다면 언젠가는 저축한 돈이 바닥이 날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현재 수 백 만원씩 벌어들이는 사람도 과거에 빚이 있다면 그 사람은 누적된 과거의 빚을 갚기에 급급할 것입니다. 인과의 법칙은 그와 같은 원리입니다.

우리가 보배창고에 공덕을 계속 쌓아둔다면 언젠가는 선한 과보를 받을 수 있습니다. 비록 현재가 어렵고 고통스럽더라도 인과의 법칙에 대한 선한 공덕으로 인해 녹아내리기를 항상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기름진 땅에 씨앗을 뿌린다면 반드시 좋은 열매가 맺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비록 척박한 땅일지라도 정성껏 공들이고 노력을 기울인다면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나 그곳에도 언젠가는 열매와 꽃이 필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의 업의 밭이 어떤 땅인가를 인과의 법칙에 입각하여 비추어 보고 원망만 할 것이 아니라 더한층 정진해야 할 것입니다.

인과의 법칙은 부처님께서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는 단지 진리로 가는 길을 깨달아 터득하신 분이며, 그래서 진리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는 안내자일 뿐입니다. 인생에서 실패 하거나 곤란을 겪더라도 결코 부처님을 비난하거나 가르침을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자기의 업장만 더욱 두텁게 할 뿐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인과법칙의 이치를 깨닫고 매일매일 부처님이라고 하는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을 비추어 보고 몸과 마음을 다시 한 번 추스리는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한 나라에서 시행되는 법은 평등하지 않을 수 있지만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인과의 법칙은 지위고하(地位高下)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평등합니다. 그 법칙은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닌 진리이기 때문에 평등한 것입니다.

불기 2570년 4월 20일 팔공산 감고사지기 보명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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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4일
불교문화 - 신묘장구 대다라니 (7일차)
문화

불교문화 - 신묘장구 대다라니 (7일차)

보명법사의 신묘장구대다라니 3×7=21일 기도 7일.

(7)「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약 바로기제 새바라야 사바한하」(3번)

이 부분은〈신묘장구대다라니〉의 맨 처음에 나왔던 구절인데 맨 마지막에서도 다시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그 뜻은 '삼보께 귀의하며 받드옵니다. 성스러운 관자재보살에게 귀의합니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삼보와 관세음보살에 대한 끝없는 예배와 존경심의 표현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삼보와 관세음보살께 귀의함이 바로 불교를 신앙하는 기본적인 마음가짐인 것입니다.

지금까지〈신묘장구대다라니>의 내용을 하나하나 분석하면서 해석해 보았는데 범서의 원래 이름은〈마하 가로니까야 흐리다야 다라니〉, 즉〈대비심 다라니〉라고 되어 있습니다.〈다라니〉의 완벽한 풀이는 사실 불가능한 것입니다. 〈다라니〉속에 담긴 대강의 뜻이라도 이해함으로써 더욱 분발하는 신심을 갖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관세음보살의 자비심에 보다 더 가까이, 또 깊이 있게 접근하여 관세음보살의 위력이 각 가정과 사회에 널리 퍼지게 함에 있는 것입니다.

불교는 아는 것과 실행하는 것을 조화롭게 갖추고 있는 종교입니다. 근래에 와서 불교의 경향이 옛날의 맹목적인 신앙에서 벗어나서 무엇인가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활발하게 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실천을 통해서 복을 닦는 일이 오른쪽 날개라면 법에 대해 알려고 하는 것은 왼쪽 날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쪽 날개가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새가 날수 있는 것처럼 불교에서는 복과 지혜를 똑같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적으로 기도를 하고 참선을 하고 독경을 하는 밑바탕에는 불교적 이치가 깔려 있어야만 완전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불법 안에는 이러한 두 가지, 즉 아는 것과 실천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이 골고루 갖추어져 있습니다.

불자라면 그 두 가지 원칙을 도외시해서는 안 됩니다. 어느 곳에 처하든지 부처님의 올바른 사상을 실천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올바른 길을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부산을 간다면 우선 가는 길을 정확히 알고 나서야 목적한 곳에 다다를 수 있는 것입니다. 알기만 하고 가지 않거나, 가는 길을 모른다면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없습니다. 부처님의 제자라면 이 두 가지가 원만히 구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라고 할 때 거기에는 절대적인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어느 시대, 어느 곳, 누구에게나 다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은 영원불멸인 것입니다.

현대인은 다양하고 급변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 속에서 심지가 굳은 올바른 견해가 없으면 금방 잘못된 곳으로 휩쓸려 가정과 사회를 병들게 하고 맙니다.

부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자라면 적어도 지행일치 (知行一致)의 안목을 가져야 하는 것은 하나의 의무입니다.

불법을 배우고 불자로서의 의무를 실천할 때 우리가 속한 가정과 이웃은 물론 더 나아가 이 사회가 보다 건전한 방향으로 전환될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입니다.

불기 2570년 4월 17일 병오년 3월 초하룻날에 팔공산 감고사지기 보명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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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백락천과 조과선사
불교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백락천과 조과선사

“욕망 사로잡혀 있는 그대가 더 위험하다”

▲ 구미 금룡사에 있는 도림선사와 백낙천이 만나는 벽화.

아침 햇살과 처마 그늘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의 경지를 구분해 주는 듯 하다.

구미 금룡사는 금오산 정상을 바라보는 산자락에 있습니다.

경사진 길을 올라 진입로 끝에 이르면 관음보전의 오른쪽 측면에 여러 장면의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 중 눈길을 사로잡는 벽화는 한 스님이 나무 위 새둥지에 앉아 참선을 하고

그 아래 관복을 입은 관료가 서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입니다.

이 벽화는 조과 도림(鳥道臨 741~846)선사와 백낙천(白樂天 772~846)이 만나는 장면입니다.

당나라의 백락천은 유명한 시인이요, 뛰어난 경륜을 지닌 정치가로 본명은 거이(居易)입니다.

그에 대한 일화는 많지만 조과도림 선사와의 만남은 그를 불교의 세계로 인도한 계기가 됐습니다.

도림선사는 항주(抗州) 출신으로 9세 때 출가하여 도흠선사(道欽禪師) 등으로부터 심요를 전수받았습니다.

스님은 늘 나무 위에 올라가 참선을 했는데 그 옆에는 까치가 둥치를 틀고 살기도 했다고 하여

작소선사(鵲巢禪師)라고 불렸다는 이야기가 〈전등록〉 등에 전합니다.

백낙천이 도림선사를 만난 것은 당대의 학자이자 문장가로 이름을 날리고

항주 지역 자사(刺史)의 지위에 올라 자못 우월감에 충만해 있던 때였습니다.

그는 고승으로 이름이 높다는 도림선사를 찾아 갔습니다. 속설에는 백낙천이 도림선사의 도력을 시험해보려고 찾아간 것이라 하지만, 아마 관내(官內)의 훌륭한 종교지도자를 참예하는 것이 하나의 예의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아무튼 백락천이 도림선사가 거처하는 절에 이르렀을 때, 역시 도림선사는 나무 위에 올라앉아 참선을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 너무 위태롭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그대가 더 위험 하오.”

“저야 땅에 서 있고 벼슬도 자사에 이르렀는데 무엇이 위험하겠습니까?”

“티끌 같은 세상 지식으로 교만한 마음만 늘어 번뇌가 끝이 없고, 탐욕의 불길이 쉬지 않으니 어찌 위험하지 않은가?”

선사의 어조는 차분했으나 백락천에게는 벽력같은 소리였습니다. 물질의 세계, 유한의 상념을 벗어나지 못했던 그에게 마음의 불길이 타고 있음을 일러주는 도림선사의 법문에 옷깃을 다잡은 백낙천이 다시 여쭙습니다.

“제가 평생에 좌우명을 삼을 만한 법문 한 구절을 듣고 싶습니다.”

“나쁜 짓 하지 말고(諸惡莫作)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라(衆善奉行).”

“그거야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야기 아닙니까?”

“그렇지. 세 살 먹은 애들도 아는 얘기지. 하지만 여든 살 된 노인도 행하기는 어려운 것이 아니오?”

대화는 더 이상 진행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자리에서 백낙천은 자신의 오만과 인간의 통속적인 지식의 허망함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 대화에서 우리가 챙겨 보아야 할 키워드는 3가지입니다.

먼저 마음의 불길로 인해 인생이 위험하다는 도림선사의 충고입니다. 〈법화경〉에서도 중생계를 불타는 집[火宅]으로 비유하고 있듯이 우리의 몸도 어리석음과 욕망과 분노의 불길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마음의 불길을 잡지 못하면 나뭇가지에 올라앉은 것보다 위태로운 삶이라는 겁니다.

그럼 어떻게 마음의 불길을 잡느냐? “나쁜 짓 하지 말고(諸惡莫作)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라(衆善奉行)”는 칠불통게가 정답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칠불통게는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 자정기의(自淨其義) 시제불교(是諸佛敎)’의 네 구절입니다. 일체 악을 그치고 선을 받들어 행하여 마음을 밝히는 것이 부처의 가르침이요, 부처에 이르는 길입니다.

도림 선사의 짧은 대답은 구차한 알음알이에 휘둘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백낙천은 다시 덧에 걸립니다. ‘그거야 애들도 아는 얘기가 아니냐’고 빈정대는 것이지요. 아직도 도림선사의 간절하고 자상한 가르침의 핵심을 못 본 것입니다.

결국 “그러나 여든 살 노인도 실천하기 어렵다”는 소리까지 듣고서야 지행합일(知行合一)의 도가 어떤 것인가를 깨치게 됩니다. 그 후 백낙천은 돈독한 불교신자가 되어 만년에는 자신의 집을 절로 바꾸며 생활과 수행을 일치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생활불교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지식으로 아는 선(善)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머리가 아닌 온 몸으로 살아가는 불자가 진짜 불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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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부모은중경 7편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부모은중경 7편

깨끗하지 못한 것을 씻어 주신 은혜 (세탁부정은)

< 생각건대 그 옛날 고우시던 그 얼굴과, 아리따운 그 몸매는 꽃조차 시샘했네. 두 눈썹은 푸른 버들 가른 듯이 예뻤었고, 두 볼의 붉은 빛은 연꽃을 닮았었네. 은혜가 깊을수록 그 모습 사라지고, 더러운 것 씻느라고 맑은 얼굴 상하셨네. 한결같이 아들딸만 사랑하고 거두더니, 어머니의 얼굴에는 잔주름만 늘어났네. >

사람들은 이성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외모에 신경을 쓰게 됩니다. 단지 거울 앞에서 치장하는 것이 남들에게 잘 보이려는 행동이 아닙니다. 우리는 도덕적 존재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몸가짐 또한 단정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물론 외모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나타내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구겨진 옷을 입거나 헝클어진 머리로 사람들의 놀림을 받을 이유도 없습니다.

어머니의 화장대에서 젊은 시절 가꿀 때 쓰시던 손거울과 화장품들이 수북한 먼지에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옷장에는 이제 맞지 않는 옷가지들이 여전히 걸려 있습니다. 자식 뒷바라지에 어머니의 몸단장은 잊은 지 오래 되었습니다.

젊음이 영원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 꾸밀 생각조차 안하시고 계셨습니다. 꽃들도 시샘하던 고운 얼굴과 몸매는 사라지고, 자식으로 인해 시들고 늘어난 몸매는 애달픔으로 채워만 가셨습니다.

어느 순간 어머님의 늘어난 주름살과 거칠어진 손을 잡아 볼 때면 가슴 한편이 뭉클해지며 눈물이 왈칵 쏟아지지만, 예전에 우리는 왜 미처 알지 못했을까요. 오로지 내가 갖고 싶은 것만 사달라고 조르며, 하고 싶은 것에만 떼를 쓰던 모습이 후회될 따름입니다.

세월을 거슬러 다시 예전의 외모를 찾을 길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슴엔 지금 모습 그대로인 어머님의 모습도 충분히 아름답지 않은가요. 자식 사랑으로 만들어진 잔주름과 거친 손 등을 이제라도 두 손 받쳐 잡아보십시오. 거룩한 사랑의 희생을 따스한 손길로써 어루만지며 부모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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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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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벽화이야기 - 설산동자의 구법 (雪山童子 求法) - 가치를위해 몸을 던지다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설산동자의 구법 (雪山童子 求法) - 가치를위해 몸을 던지다

<태안사- 전남 곡성>

열반경(涅槃經)의 ‘성행품(聖行品)’에 나오는 이야기로

석가모니가 아득한 과거세에 설산에서 법을 구하기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수행하고 있을 때, 마침 그 근처를 지나가는 나찰(羅刹)로부터 극락의 기쁨을 노래하는 게송(偈頌)의 한 구절을 들 은 후 기뻐하게 된다.

나머지 게송을 듣기위해 나찰로부터 자신의 몸을 걸고 8음절까지 마저 들은 후, 기뻐하며 자신의 몸을 나찰에게 던져주는 그림이다.

한 구절

諸行無常(제행무상) -모든 것은 덧없이 흘러가듯

是生滅法(시생멸법) -태어나 죽지 않는 것 하나 없네.

나머지 게송

生滅滅已(생멸멸이) -나고 죽는 일이 사라지니

寂滅爲樂(적멸위락) -고요한 즐거움이 남네.

▮ 삶의 가치

설산동자가 몸을 던진 것은 지나가는 나찰로부터 들은 게송의 가치 얻고자한 몸짓으로.

목숨을 걸 만큼이나 간절했던 동자가 추구 했던 그의 가치란 무엇일까 ?.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의 시간에 직면한다.

매 순간 고민하고, 선택 후에도 또 고민하고, 갈팡질팡.. 늘 모르겠다는 말을 달고 살고 산다.

‘가치’라고 하는 것을 이름 그대로 사전적으로 풀어보면, ‘값어치’로 해석할 수 있는데

개인에게 적용해 보면, 삶에서 내가 값어치 있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생각하는 선택이 선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라면,

그것으로 인해 분명 진정 가치 있는 삶이 되리라.

‘설산동자의 구법’은 깨달음을 구하기위해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나찰에게 던지는 모습을 통해 가치의 위대함을 느끼게 하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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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불을 숭배하던 카사파 삼형제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불을 숭배하던 카사파 삼형제

녹아원에서 오비구를 제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널리 법을 전하러 떠날 것을 당부하시며, 부처님께서도 인근의 우루벨라 마을로 향하시겠다고 했습니다. 그곳에는 당시 마가다국에서 이름을 떨치는 카사파 삼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불을 숭배하는 배화교拜火敎 수행자였습니다. 첫째 우루빈나 카사파에게는 500명의 제자가, 둘째인 나디 카사파에게는 300명의 제자가, 그리고 막내였던 가야 카사파에게는 200명의 제자가 각각 따르고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그 마을에 도착하자 이들 삼형제가 불을 섬기는 장소인 성화당에서 머물게 되었습니다. 사실 부처님의 소문은 이들 귀에 까지 들렸습니다. 그래서 무서운 독룡이 살고 있는 성화당에 머물게 하여, 부처님을 시험해 보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 내일 아침에는 저 사문의 송장을 치우게 되겠군. 쯧쯧'

성화당에 들어간 부처님은 적당한 곳에 풀을 깔고, 그 위에 앉자 결가부좌하신 채 깊은 삼매에 들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성화당의 독룡은 몹시 불쾌하고 화가 났습니다.

'이런, 겁도 없이 성화당에 들어온 것도 화가 나는데, 게다가 저렇게 침착한 모습으로 선정에 들고 있는 이 자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화가 치민 독룡은 불덩이를 뿜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이렇게 생각하셨습니다.

'저 독룡의 피부나 살. 근육. 뼈. 골수를 다치지 않게 하면서, 나의 불로써 이 녀석의 악한 불을 소멸시켜야겠다.'

부처님은 신통력으로 연기를 뿜어냈습니다. 이를 본 독룡은 더욱 분노에 휩싸여 스스로 거대한 불길을 두른 채 큰 불을 뿜었습니다. 부처님 또한 선정의 불을 내비추었습니다. 부처님과 독룡, 이 둘의 불꽂이 크게 휩싸이자 성화당 안은 마치 불타는 집처럼 뜨겁게 빛났고, 밖에서 이를 보던 우루빈나 카사파와 그의 제자들은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저 사문도 결국 이렇게 독룡의 먹이가 되고 마는구나."

다음 날 아침, 해가 뜨자 성화당을 정리하러간 그들은 깜짝 놀라 두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부처님께서 멀쩡히 앉아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손에 든 발우에는 아주 보잘 것 없는 조그만 뱀 한 마리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카사파여, 이것이 그대가 섬기는 독룡이다. 이 독룡의 불꽃은 나의 불꽃에 의해 소멸되었다."

부처님은 지혜의 불꽃으로 독룡이 내뿜던 사악한 불꽃을 꺼 버렸습니다. 이를 계기로 우루빈나 카사파는 부처님의 제자가 되기로 하였습니다. 어떤 힘으로도 부처님의 신통력을 이길 수 없습니다. 부처님의 신통은 지혜의 힘으로 일어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불의 신에게 제사 지내던 모든 도구를 다 던져 버리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두 동생 니디, 가야 카사파 역시 큰 형을 따라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따르던 천 명의 제자들 역시 모두 부처님에게 귀의하였습니다. 이로써, 부처님에게는 하루 아침에 천여 명의 제자가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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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해인사 창건
불교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해인사 창건

중국 양무제 때 지공화상께서 임종에 동국답산기라는 책을 제자들에게 건네주면서

「내가 죽은 얼마 후에 신라에서 두 명승이 찾아와 법을 구할 터이니 이 책을 전하라」 유언하시고 열반하셨다.

그 뒤에 과연 신라에서 순응과 이정 두 스님이 와서 법을 구하거늘

지공화상의 제자들이 반기며 스승의 유언을 말씀드리고 동국답산기를 전했다.

두 스님은 너무나 감격하여 지공화상의 탑묘(塔墓)에 찾아가

「사람에게는 고금(古今)이 있을지언정 진리에서는 멀고 가까움이 없다.」

하는 가르침을 생각하며 일주일을 밤낮으로 기도하며 법문을 청하였더니

탑속에서 지공화상이 모습을 나타내어 두 스님의 구도심을 찬탄하고

의발(衣鉢)을 전해주면서 이르기를

「너희 나라 우두산(지금의 가야산) 서쪽에 불법이 크게 일어날 곳이 있으니

그곳에 대가람을 창건하라」 하시고는 다시 탑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순응, 이정 두 스님은 탑묘를 향하여 다시 한번 예배드리고 고국 신라로 돌아왔다.

두 스님은 바로 우두산을 찾아 나섰다.

맑은 물이 흐르고 산세가 빼어난 곳에 자리를 깔고 풀밭에 앉아 선정(禪定)에 들었더니

문득 이마에서 광명이 발하여 하늘로 뻗쳐 올랐다.

그때 나라에서는 제40대 애장왕의 왕후께서 몹쓸 병을 얻어 백방으로 약을 써 봐도 효험이 없자

신하들을 널리 보내어 도승을 구하게 되었다.

한 신하가 우두산 근처를 지나다가 하늘에 뻗쳐 오르는 신령한 빛을 찾아 숲길을 헤쳐가니

선정삼매 속에서 방광(放光)하는 두 스님을 뵙고 예를 올린 후

여기까지 찾아오게 된 내력을 이야기하자 오색실을 내어주면서

실의 한 끝은 궁전 뜰 앞의 배나무 가지에 매고 한 끝은 병실의 문고리에 매어두라고 일러주었다.

신하가 돌아가서 왕에게 사실을 말하고서 두 스님이 시키는 대로 시행해 보았다.

그랬더니 궁전 뜰 앞의 배나무가 말라 죽으면서 왕후의 오랜 병이 완쾌되고 소생하였다.

애장왕과 왕후 그리고 여러 신하들이 크게 기뻐하고 또한 놀라와 하였다.

왕은 은혜를 크게 느끼고 친히 우두산에 오셔서

두 스님을 찾아 뵙고 그 자리에 대가람을 창건하니

〈신라 40대 애장왕 3년(802년) 임오(王午) 10월 16일〉 가야산 해인사의 시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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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학소도림
불교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학소도림

당나라의 백락천(白樂天) 이라고 하면 유명한 시인이요, 뛰어난 경륜을 지닌 정치가이기도 하다.

그가 본래 학식과 총명이 뛰어난데다 벼슬이 자사(刺史)의 지위에 올라 자뭇 그 우월감에 충만해 있을 때 였다.

한 때 그가 항주(抗州)의 자사로 부임한 후의 이야기이다.

하루는 그리 멀지 않는 사찰에 도림선사(道林禪師; 741~824)라고 하는 이름난 고승이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한 번 직접 시험해보리라 작정하고 선사가 머물고 있다는 절로 찾아갔다.

도림선사는 청명한 날이면 경내에 있는 오래된 소나무 위에 올라가 좌선(坐禪)을 하곤 하였다.

마침 백락천이 도림선사를 찾아온 날도 나무 위에서 좌선하는 중이었다.

백락천이 나무 아래 서서 좌선하는 스님의 모습을 올려다 보니 아슬아슬한 생각이 들어

  • 선사의 거처가 너무 위험합니다.

하고 소리치니, 선사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 자네가 더욱 위험하네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듣고 있던 백락천이 어이없어 하면서

  • 나는 벼슬이 자사에 올라 강산을 진압하고, 이렇게 안전한 땅을 밟고 있거늘 무엇이 위험하단 말이오?” 라고 대꾸하는 것이었다.

선사는 그가 학문과 벼슬에 자만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이 기회에 교만한 마음을 깨우쳐주기 위해 곧 바로 쏘아 부쳤다.

  • 티끌같은 세상 지식으로 교만한 마음만 늘어 번뇌가 끝이 없고, 탐욕의 불길이 쉬지 않으니 어찌 위험하지 않겠는가.

백락천은 자기의 마음을 환하게 꿰뚫어 보는 듯한 눈매와 자기가 자사라는 벼슬에 있음을 알면서도 당당하게 자기 할 말을 다하는 기개에 눌려

  • 제가 평생에 좌우명을 삼을 만한 법문 한 귀절을 듣고 싶습니다.

하고 애초에 선사를 시험하려 했던 불손한 태도를 바꿔 공손한 자세로 가르침을 청했다.

  • 나쁜 짓을 하지말고(諸惡莫作)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라(衆善奉行)

이같은 대답에 대단한 가르침을 기대했던 백락천은

  • 그거야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사실이 아니요.

하고 신통치 않다는 듯이 말하니 선사는 침착한 어조로 다시 말했다.

  •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팔십 노인도 행하기는 어려운 일이네.

이 말을 들은 백락천은 비로소 깨달은 바가 있었다.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아무 쓸모가 없다.

그 가르침을 실천하여 인격화되지 않으면 아만과 번뇌만이 더할 뿐

진리의 길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것을…...

그리하여 당대의 문장가 백락천은 그 자리에서 도림선사에게 귀의하여 불법의 수행을 돈독히 하였다고 한다.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려 주고 있는 백락천의 명문(名文) 시구(詩句)들도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인격에서 울려 나오게 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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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염불과 염주의 관계
문화

불교문화 - 염불과 염주의 관계

염불(念佛)이란 글자 그대로 부처님을 생각하거나

불·보살님의 이름을 염송(念誦)하는 수행입니다.

이것은 부처님과 보살님의 공덕과 그 진리의 가르침을

지심(知心)으로 생각하여 독송함으로써

부처님과 같이 깨달음을 이루려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지극한 정성으로 염불을 하면

그 소리는 우리의 입과 마음을 통해 나가지만

그것은 다시 메아리가 되어 우리의 마음으로 되돌아오게 됩니다.

염주는 우리 인간과 자연의 조화와통일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하나 하나의 낱알이 줄에 꿰어져 만들어진 염주는

비록 알은 하나씩 따로 떨어져 있으나

다른 것들과 한 줄에 연관되어 있는 것처럼

모두들 따로 독립되어 존재해 있는 것 같지만

서로 인연으로 얽혀 상대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염주는 부처님 당시에 처음 생겼는데

《불설목환자경(佛說木丸子經)》에 보면

난국(亂國)의 왕 파유리(波流籬)가

부처님께 사신을 보내 다음과 같이 아뢰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 나라는 해마다 도적과 병과 흉년으로

백성들의 고통이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편할 날이 없습니다.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부처님, 부처님의 가르침은 깊고 넓어서

저와 같이 일이 많은 사람은 닦아 행할 수가 없으니

특별한 자비를 베푸시어 저와 같은 사람들도

쉽게 수행할 수 있는 간편한 방법을 가르쳐 주소서."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번뇌의 장애와 업보의 장애를 없애고자 하거든

무환나무 열매 백여덟개를 꿰어서 항상 지니면서

걷거나 앉거나 눕거나 간에 늘 흩어짐이 없는 자극한 마음으로

불·법·승 삼보의 이름을 부르면서 하나씩 돌려서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계속하라.

그리하여 만약 몸과 마음이 산란함이 없이 20만 번을 채우면

그 목숨을 마친 뒤에 염마천(閻魔天)에 태어나서

의식이 저절로 갖춰지고 언제나 평안과 즐거움을 누리리라.

그리고 다시 백만번을 채운다면 백팔번뇌가 끊어질 것이다.

이때 비로소 생사의 흐름에서 벗어날 것이며

마침내 열반에 나아가서 영원히 번뇌가 없는

최상의 과보를 얻으리라."

《교량수주공덕경(校量數珠功德經)》에 보면

문수보살님이 말씀하시기를

"염주의 재료로는 다른 어떠한 구슬보다도

보리수의 열매로 하는 것이 가장 수승하여서

이 염주로 염불을 하면 그 공덕은 헤아릴 수 없고

다만 지니기만 하는 것으로도 뜻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 염주를 지니는 법 **

염주는

오른손에 가지고 돌리라 하였으며

또 염주를 돌릴 때는 모주알은 넘기지 말고

모주 있는데 와서는 되돌려서 돌리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염주를 머리에다 이면

무간죄를 녹인다 하셨고

목에다 걸면 중죄를 녹인다 하시고

또 손목에 걸면 가벼운 죄를 멸한다고 하셨으니

설사 염불을 하지 않더라도

다만 염주를 몸에 지니기만 해도 이와같이

무량한 공덕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연고로 모든 불자는

반드시 염주를 몸에 지녀야 할 것이며

염주는 항상 깨끗한 손으로 돌릴 것이며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지녀야 할 것입니다.

"생각하는 구슬"로서

부처님을 생각하고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거나 예배할 때에 굴리는 것으로

염불할 때에 다른 잡념을 없애고

오직 전념 몰두할 수 있도록 하며

염불의 횟수를 기억하는 것으로

주로 108염주, 1000주를 사용하며

손에 지니는 합장주 또는 단주도 있습니다.

염주 한 알을 굴릴 때마다

번뇌가 끊어짐을 상징하므로

한마음으로 염주를 굴림에 따라

부처님의 광명이 자신에게 충만해지고

죄업이 소멸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염주를 항상 몸에 지니고

길을 걸을 때나 앉을 때나 염주알을 굴리면서

불, 보살님의 명호를 생각하면

자연히 인간의 108 번뇌가 없어지고

맑고, 깨끗한 정토의 세계에

왕생할 수 있습니다.

보명은 도반들에게 염주드리는것이

참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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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똥 푸는 천민 니디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똥 푸는 천민 니디

어느 날 부처님께서 아난과 함께 어느 마을에 탁발을 나섰을 때 였습니다.

그 때 똥통이 걸린 지게를 매고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요즘이야 재래식 화장실 자체를 보기 어렵지만,

옛날에는 화장실에 똥이 가득차면 일일이 사람 손으로 치워야 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니디Nidhi 尼提'라고 했으며, 신분이 아주 낮은 천민으로 지저분한 몸에 악취가 풍기는 허름한 옷과 얼굴에도 꼬질꼬질 때가 낀 모습으로, 사람들은 그가 근처에 오는 것 조차 싫어했습니다.

뒤 늦게야 부처님 앞에 계신 것을 알아차린 니디는 자신의 허름한 몰골과 더러운 냄새를 풍기지 않으려 몸을 피했습니다. 그런데 급히 다른 곳으로 피하다 그만 옆으로 넘어져 똥물을 뒤집어 쓰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부처님과 아난의 가사에도 오물이 튀고 말았습니다.

겁이 난 니디는 양손을 비비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부처님,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그러나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 니디에게 부처님은 오히려 그의 손을 잡아 일으켜주며 말씀하셨습니다.

"괜찮다. 어서 일어나라, 니디야. 나와 함께 강물에 가서 몸을 씻자꾸나."

"부처님. 어찌 저 처럼 천한 사람이 감히 함께 가겠습니까?"

자신을 부끄러이 여긴 니디는 부처님의 권유를 사양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니디의 손을 끌고 강가로 데려 가셨습니다. 그리고 니디에게 묻은 오물을 씻어주려 하였습니다. 그러자 니디는 놀라 뒷걸음쳤습니다. 부처님은 다시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니디야, 너는 천하지도 더럽지도 고약한 냄새를 풍기지도 않는단다. 네 옷은 더러워졌지만 네 마음은 더할 바 없이 착하구나. 그런 네 몸에선 아름답기 짝이 없는 향기가 나고 있단다. 누구든 스스로를 천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부처님의 자상하신 말씀에 니디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니디야, 출가하여 나의 제자가 되지 않겠느냐?"

"그건 안 됩니다. 미천한 제가 어찌 감히 사문들과 섞일 수 있겠습니까. 그건 안 될 말씀입니다."

부처님은 맑은 물 한 움큼을 정수리에 부어주며 말씀하셨습니다.

"염려마라, 디니야. 나의 법은 청정한 물이니 너의 더러움을 깨끗이 씻어줄 것이다. 넓은 바다가 온갖 강물을 다 받아들여도 여전히 맑고 깨끗한 것처럼, 나의 법은 모두를 받아들여 더러움에서 벗어나게 한다. 나의 법에는 가난한 사람도 부자도, 귀한 사람도 천한 사람도, 남자도 여자도, 피부색의 차이도 없다. 오직 진리를 구하고, 진리를 실천하고, 진리를 얻은 사람만 있을 뿐이란다."

니디는 눈 앞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께 무릎꿇고 합장하며 말씀드렸습니다.

"부처님, 저도 부처님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렇게 부처님은 니디를 기원정사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니디는 출가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술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니디가 출가하여 사문이 되었다며?"

"아니, 부처님께서는 왜 그런 천한 자에게 출가를 허락하셨을까?"

"그럼, 부처님과 제자들을 초청하면 똥 푸던 그 놈도 따라 온다는 말인거야?"

"따라오기만 하겠어? 똥 푸던 그놈에게 머리를 숙여야 할 판이구먼."

부처님께서는 마을 사람들을 잘 타일렀습니다.

"누린내 나는 아주까리도 잘 비벼서 소중한 불을 얻게 되듯이, 마치 더러운 진흙에서도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나듯, 종족과 신분과 직업으로 출가자의 값어치를 정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지혜와 덕행만이 출가자의 값어치를 정할 수 있습니다. 신분이 낮고 천한 직업을 가졌더라도 행위가 훌륭하다면, 마땅히 그 사람을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켜야 합니다."

불교는 모든 중생의 평등을 강조합니다. 특히나 부처님 당시의 인도는 지금보다도 더욱 엄격한 신분제도가 지켜지던 나라였습니다. 인도는 지금도 카스트제도라는 신분제를 관습적으로 지켜오고 있습니다. 사성제四姓制라고도 부르는 신분제도인 카스트는 종교를 관장하는 브라만Brahman, 왕족과 귀족인 크샤트리아Ksatriya, 상인과 평민인 바이샤Vaisya, 노예 및 천민인 수드라Sudra, 그리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며 천민보다 더 낮은 신분으로서 불가촉천민인 달리트Dalit(하리잔과 같은 말)등 태어날 때부터 타고 난 신분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교단에는 신분제도가 없었습니다. 출가자를 신분에 따라 거부하거나 어떠한 혜택도 주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태어남이나 성별과 관계없이 모두가 평등하다는 입장에서 카스드제도를 부정했습니다.

바라문(브라만)이든 수드라든 부처님을 믿고 그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자는 누구라도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부처님의 따뜻한 보호와 가르침 속에서 마치 진흙 속에 감춰진 보석들이 빛을 발하듯 훌륭한 제자들이 수 없이 배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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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용연사 (지리산(智異山) 칠불사(七佛寺) 아자방(亞字房) 불교설화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용연사 (지리산(智異山) 칠불사(七佛寺) 아자방(亞字房) 불교설화

지리산(智異山) 칠불사(七佛寺) 아자방(亞字房) 불교설화

조선 중엽 하동 군수로 온 정여상이 쌍계사에 초도순시차 왔다. 쌍계사에서 점심 요기를 하고 주지스님이 내어 온 녹차를 마시고는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받다가 칠불암의 아자방 얘기가 나왔다. 정여상은 쌍계사 주지에게 물었다.

“이곳에는 칠불암이라는 암자가 있지요? 좀 보고 싶은데요. 참 어째서 칠불암이란 그런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까?”

“예, 그 칠불암은 신라 제5대 바사왕 23년(서기 102년), 김수로왕의 일곱 아들이 출가하여 그곳에서 모두 성불하였기에 붙여진 이름이지요.”

“제가 듣기로는 그 암자에 아자방이 유명하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좀 유명하지요.”

“어떻게 유명합니까?”

“예, 그 아자방은 방 자체도 크지만 방의 형상이 아자형식으로 되어 있어 아자방이라 합니다. 높이가 12자인데 높은데도 참선하는 스님네가 있고, 낮은 데도 참선하는 스님네가 앉아 정진하지요. 불을 때면 높은 곳이나 낮은 곳이나 함께 더우며, 한 번 방이 덥혀지면 석 달 열흘 동안 불을 때지 않더라도 방안이 훈훈하다고 합니다.”

정여상은 내심 놀랐다.

“허, 그렇군요. 이거 호기심이 나는데요.”

쌍계사 주지는 군수 정여상이 반응을 보이자 신이 나서 말했다.

“설계는 신라 효공왕 때(897–912 재위)가 담공선사가 했지요. 참 특이한 온돌식 난방구조입니다. 동양에서는 유일한 대선방이며, 오직 우리 조선에만 있는 유일한 난방구조입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있습니까?”

“웬걸요. 거기는 아무나 들어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습니다. 오로지 참선수도하는 스님네만 입방이 허락됩니다.”

“제가 좀 보려고 하는데 안내해 주시겠소?”

“좀 곤란합니다. 그 아자방은 오로지 참선하는 방으로만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쌍계사는 물론 조선의 모든 사찰들이 아자방만큼은 잘 수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곤란합니다.”

“그래도 스님이 안내를 좀 하시오.”

하동 군수 정여상은 자신의 권력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스님네는 바로 그 점이 아니꼬웠다. 하지만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대답했다.

“말은 유명하다고 했으나 볼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냥 돌아가시지요.”

정여상의 낯빛이 약간 변했다.

“나는 이 고을 군수요. 군수가 안내 좀 해 달라는데 그렇게 뻐길 것까지는 없지 않소. 어서 안내하시오.”

스님네는 군수 정여상을 칠불암으로 안내했다. 정여상의 표정에는 거만이 흐르고 있었다. 그까짓 중들이 뭘 안다고 떠드느냐는 식이었다. 그는 약간의 승리감에 들떠 말했다.

“내 여기까지 왔다가 그 유명하다는 칠불암과 아자방을 보지 않고 간대서야 말이 되는가, 어험.”

칠불암에 도착한 군수 정여상 일행은 법당 안에 들 생각을 하지 않고 이 구석 저 구석 기웃기웃하며 다녔다.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별로 볼 것도 없구먼. 괜스레 야단들이로고.”

군수가 아자방 앞에 이르러 스님들에게 말했다.

“이 방이 그 유명하다는 아자방이오?”

“그렇습니다만…”

“그렇다면 문을 여시오.”

“안 됩니다. 지금은 정진중이라 열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언제 가능하겠소?”

“예, 이제 막 점심 공양을 끝내고 정진에 들어갔으니 적어도 서너 시간은 지나야 할 것 같습니다.”

“참으로 무례한 사람들이로고.”

정여상은 눈을 치켜떴다. 당장이라도 스님네를 징치懲治(사람을 징계하여 다스림)하려는 듯싶었다. 스님네는 하동 군수 정여상의 눈치만 살폈다. 정여상의 호령이 이어졌다.

“어서 문을 열어 않고 뭣들 하는 게요. 내가 이 고을 성주 정여상이오. 성주가 주민을 보기 위해 기다려야 한다?”

정여상은 수행한 나졸들을 항해 소리 질렀다.

“너희들이 문을 열어라.”

그때 한 스님이 정중하게 나서며 만류하였다.

“죄송하오나 조정의 영상대감도 그리하셨고 본도의 관찰사도 그리하셨습니다. 옛날부터 규정이 그러하오니 이 방만은 안 되옵니다.”

정여상은 삼정도를 뽑아들며 나졸들을 돌아보고 소리쳤다.

“뭣들 하고 있느냐, 빨리 문을 열어라.”

나졸들이 달려들어 가로막고 있는 스님을 낚아채 내동댕이쳤다. 스님은 저만치 나동그라지며 얼굴에서 피가 흘렀다. 나졸들은 무자비했다. 그중의 한 나졸이 방문을 열어젖혔다.

때는 마침 늦은 봄이었고, 점심 공양을 끝낸 스님들이 아자방에 들어않아 가부좌는 틀었지만 춘곤증과 식곤증이 겹쳐 모두들 졸고 있었다. 그들 자세는 엉망이었다. 어떤 납자는 천정을 쳐다보고 입을 벌린 채 졸고 있었고, 또 어떤 납자는 머리를 푹 숙이고 방바닥을 내려다보며 졸고 있었다. 또 어떤 납자는 방귀를 뽕뽕 뀌며 졸고 있었다. 군수가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기껏 공부한다는 중들의 자세가 겨우 이런 것들이었냐?”

군수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마치 못 볼 것이라도 본 것처럼 언짢아했다. 그는 나졸들에게 문을 닫게 했다. 처음 문을 열었던 나졸이 문을 슬그머니 닫았다. 군수가 돌아서며 독백하듯 말했다.

“요놈들 한번 혼쭐을 내놓아야지.”

나졸들을 거느리고 아자방을 나서는 정여상은 심사가 뒤틀렸다.

정여상은 고을의 동현으로 돌아왔다. 그 후 사흘이 지난 뒤 하동 군수 정여상은 쌍계사 주지 앞으로 서찰을 보냈다.

“그대의 절에 도인이 많은 듯하오. 목마를 만들어 가지고 와서 우리 마을 고을 동헌에서 타고 한 번 놀아 봄이 어떻소. 만일 목마를 잘 타면 큰 상을 주겠소.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고을의 성주를 희롱한 죄로 엄히 다스리겠소이다.”

군수의 서찰을 받아 본 쌍계사 대중들은 당황했다. 살아 있는 말도 타 본 사람이 없을 터인데, 불도를 닦고 참선하는 스님네가 어떻게 목마를 탈 것인가. 그렇다고 그냥 넘길 게재도 아니었다. 쌍계사 큰방에서는 각 암자의 대중들이 모여 대중공사, 즉 회의를 열었다.

“누가 이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쌍계사 주지가 서두를 꺼냈다. 대중들은 아무도 먼저 입을 여는 자가 없었다. 쌍계사 주지는 답답했다.

“누군가 일단 말을 해 보시지요.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군수영감의 비위를 거스르면 화가 있을 따름입니다. 답답하니 말씀들을 해 보십시오.”

한 스님이 말했다.

“저희들이야 모두 초심납자들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이 산중에서는 쌍계사 주지스님이 가장 도가 높으시고 어른이시니, 이 일을 감당할 분은 오직 큰절 주지스님이시라 생각합니다만…”

대중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렇습니다. 스님 말고 누가 이 일을 감당하겠습니까?”

“군수 영감의 서찰을 받으신 분도 바로 큰절 주지스님이 아니십니까?”

“큰절 주지스님께서 나가셔야 합니다.”

“옳습니다. 그 길밖에 없습니다.”

“찬성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쌍계사 주지는 낭패였다. 동진출가(童眞出家:어린 나이에 출가한 것)하여 아직 말이라곤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다른 스님들이 나서지 않으니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그때였다. 말석에 앉았던 열두서너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사미가 나서더니 말했다.

“맡겨 주신다면 제가 그 일을 하겠습니다. 스님들은 아무 걱정 마시고 싸리채를 엮어 목마를 한 마리 만들어 주십시오.”

대중들은 어이가 없었다. 어른들도 감당할 수 없어서 쌍계사 주지에게 미루고 있는 판인데 어린 사미동자가 감당해 내겠다니.

“자네가 무슨 재주로 그리 할꼬?”

사미가 자신 있게 말했다.

“심려하지 마십시오. 제가 기필코 성스러운 아자방을 환난에서 구하겠습니다. 그러니 제가 말씀드린 대로 어서 목마나 준비해 주십시오.”

스님들은 하는 수 없었다. 사미의 말대로 싸리채로 목마를 만들었다. 어차피 다른 스님들도 감당치 못할 바에야 자처하고 나서는 사미에게라도 한 가락의 희망을 걸고 싶었던 것이다.

사미는 절의 나무하는 일꾼인 부목에게 목마를 운반하게 했다. 하동군청 마당에는 동헌 뜰을 가득 메운 구경꾼들이 이미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사미가 먼저 들어가 동헌 마당에 섰고 부목이 목마를 짊어져다 동헌 마당에 내려놓았다. 군수인 정여상은 사미를 보자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쌍계사에는 그리도 사람이 없더냐? 저 어린 사미가 목마를 탄다고 나왔으니. 그래 사미야, 네가 정녕 목마를 탈 수 있겠느냐?”

사미가 군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 쌍계사 회상에서는 소승이 가장 어리고 또한 도가 가장 낮습니다. 하오나 제가 반드시 군수님의 소원을 풀어 드리지요.”

당당하고 막힘이 없었다. 정여상은 사미의 그 의젓함에 호기심을 느꼈다.

“그렇다면 좋다. 네가 목마를 타기 전에 물어 볼 말이 있는데 대답해 줄 수 있겠느냐?”

“예, 소승이 비록 저희 회상에서 가장 어리고 또한 가장 미약하옵니다만, 말씀만 하신다면 대답해 올리겠습니다. 말씀하시지요.”

“허, 고놈 참 맹랑한 놈이 로고.”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정여상이 정색을 하고 물었다.

“알았다. 내가 며칠 전 쌍계사 칠불암에 갔을 때 들은 말로는 아자방에는 도인들만 있다고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앉아 있는 모양새가 영 도인 같지 않더구나.”

사미가 대답했다.

“원, 군수 영감님도, 도인이라고 뭐 특별한 모습이 있겠습니까? 또 겉모양으로만 사람을 판단할 순 없겠지요.”

“하긴 그렇기도 하구나. 그럼 내 네게 묻겠다. 하늘(천정)을 쳐다보고 졸고만 있는 중은 무슨 공부를 하는 것이더냐.”

“그것은 앙천성수관仰天星宿觀입니다.”

“앙천성수관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냐?”

“네, 하늘을 보고 무량한 별들을 관하는 공부입니다.”

“별은 왜 쳐다보고 관하는고?”

“원, 군수 영감님은 그것도 모르십니까? 위로 천문의 이치를 통하고 아래로는 땅의 이치를 달해야만 천하만사를 다 알게 되고, 따라서 천상에 태어난 중생들을 제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으음! 네 말이 그럴 듯하구나. 그럼, 머리를 숙이고 방바닥을 들여다보며 졸고 있는 중은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지?”

사미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예, 그것은 지하망령관地下亡靈觀이라는 공부법입니다.”

“지하망령관?”

“그렇습니다. 사람이 죄를 짓고 죽으면 지하의 지옥에 떨어져 무량한 고통을 받게 됩니다. 지하망령관이란 지하에 떨어져 고통 받는 중생을 어떻게 하면 제도할 수 있을까를 일심으로 관찰하고 숙련하는 공부법입니다.”

“허, 고놈 제법이구나. 그러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전후좌우로 흔들며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 하며 졸고 있는 중은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냐?”

“예, 그것은 춘풍양류관春風楊柳觀이라는 공부법이지요.”

“그것은 또 무슨 의미더냐?”

“예, 공부하는 도승은 유에 집착해도 안 되고 무에 집착해도 안 됩니다. 고와 낙성과 쇠, 그 어느 것에도 집착해서는 중도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봄바람에 버드나무가 전후좌우 어느 곳으로 흔들려도 마침내 어느 한 쪽에 기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래서?”

“그래서 공과 유, 선과 악, 죄와 복 등 어떠한 보응에도 걸리지 않는 관을 하는 것입니다. 이를 춘풍양류관의 공부법이라 합니다.”

정여상은 사미의 대답이 이치에 딱딱 들어맞는 데 내심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태연하게 다시 물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그러면 방귀를 뽕뽕 뀌어 대고 있는 중은 무슨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인고?”

“예, 그것은 타파칠통관打破漆桶觀이라는 공부법입니다.”

“타파칠통관이라. 거 참 재미있어 보이는구나. 그래 그 뜻은 무엇이지?”

*칠통(漆桶) : 옻칠을 담는 통. 어두운 중생심을 가리키는 말.

“예, 사람이 무식하기만 하고 고집만 세어 남의 말을 듣지 않고, 뭐든지 제 마음대로만 하려는 사또와 같은 칠통의 무리들을 깨닫게 하는 공부법이지요.”

“허허 고놈, 말버릇 한 번 고약하구나. 그래, 잘 들었다.”

사미에게 계속해서 두들겨 맞은 군수 정여상은 앉아 있는 여러 아전과 관료들과 백성들을 돌아보며 무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직 젖비린내도 가시지 않은 너의 식견이 이처럼 논리 정연하고 고매하니 그곳에 있는 도승들이야 더 말할 게 있겠느냐? 이제 더 물어 볼 말이 없구나. 어서 목마나 타보도록 해라.”

사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싸리채로 만든 목마위에 턱 걸터앉더니 고사리 같은 여린 손으로 말의 궁둥이를 후려치며 말했다.

“어서 가자, 목마야. 미련한 우리 하동 군수 정여상 영감님의 칠통 같은 어둔 마음을 확 쓸어버리자. 그리고 그 마음에 태양처럼 밝은 부처님의 반야광명이 비치게 하자꾸나.”

사미가 한 번 발을 구르니 싸리채로 만든 목마가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이를 바라보는 스님네는 마음속에 깊은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목마는 동헌 마당을 대여섯 바퀴 돌더니 둥실둥실 떠서는 공중으로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군수와 육방권속들, 그리고 구경을 나온 온 고을 백성들은 너무나도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스님들은 그 사미가 다름 아닌 문수동자의 화현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사미가 목마를 타고 사라져 간 쪽의 하늘을 향해 무수히 많은 절을 올렸다. 한편 군수 정여상은 그 뒤부터 마음을 고쳐먹고 불심을 발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독실하게 믿게 되었다. 군수는 쌍계사와 아자방의 스님들을 생불처럼 공경하고 공양하였다. 이쯤 되니 육방권속들을 비롯하여 하동군민은 물론 백성들도 부처님을 신봉하게 되었고, 부처님의 교법이 널리 퍼져 마침내 화장장엄세계를 이루게 되었다.

아자방은 지방유형문화재 제144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현존하는 건물은 1982년에 복원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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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불법을 수호하는 하늘 왕 ​(사천왕)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불법을 수호하는 하늘 왕 ​(사천왕)

불교의 우주관 三界(欲界, 色界, 無色界)

하늘나라 천상은 28천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크게 나누면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의 셋으로 구분됩니다. 우리는 욕계의 지상에 살고 있습니다. 욕계란 몸과 마음에 번뇌가 있는 욕망의 세상을 의미합니다.

색계란 마음에 모든 욕망과 번뇌가 사라진 선한 사람들이 태어나는 곳입니다. 그 위로 몸도 마음도 모든 욕망과 번뇌가 사라진, 순수한 정신의 세계인 무색계가 있습니다.

천상세계를 나타낸 그림을 보면, 수미산 중턱에 사왕천이 있으며, 그 위에 도리천을 비롯한 나머지 27곳의 하늘이 있습니다. 즉 사왕천은 28천 가운데 가장 아래에 있으며, 네 분의 천왕이 다스립니다.

인간세상과 맞닿은 하늘이므로, 천왕들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상의 중생들을 내려다봅니다. 그러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키고, 동서남북 사방으로 부처님의 도량을 수호하시는 것입니다.

대개 사찰입구에 천왕문을 세우고 네 분의 천왕을 모두 모시게 되지만, 부처님을 그린 탱화에서도 네 귀퉁이에 부처님을 수호하는 천왕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법당을 수호하기 위해서도 벽화에 직접 그리기도 합니다.

네 분의 천왕은 동방 지국천왕, 서방 광목천왕, 남방 증장천왕, 북방 다문천왕을 말합니다.

< 동방 지국천왕 >

지국천왕은 동방을 수호합니다. 손에는 큰 칼을 쥐고 부처님의 나라, 불국을 지키겠다고 서원하였기에 지국持國천왕이라 부릅니다. 천왕문 앞에 서보면 지국천왕은 발아래로 악귀들을 밟고 서있으며, 두 눈을 무릅뜬 위엄있는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천왕을 처음보는 사람들은 큰 위압감을 느끼게 됩니다.

< 서방 광목천왕 >

두 눈을 크게 부릅뜨고 있다고 하여 광목廣目입니다. 무기로는 주로 한 손에 삼지창을 들고서 온갖 삿됨을 물리치고, 다른 한 손에는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탑을 떠받치고 있습니다.

동서남북의 사방에서 각각 부처님의 도량을 수호하는 천왕들 가운데, 서쪽의 광목천왕은 커다란 두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눈꺼풀 한 번 꿈적이지도 않고 눈을 부릅뜨고 있으니, 삿된 무리들이 특히나 서쪽으로는 함부로 접근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것입니다.

광목천왕은 크게 뜬 두 눈으로 중생의 마음도 낱낱이 살핍니다. 만약 우리의 마음에 삿된 생각이 남아있다면, 들고 계신 삼지창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불자들이 부처님을 뵈러 갈 때는 항상 바른 마음가짐을 지녀야합니다.

< 남방 증장천왕 >

남쪽에 계신 증장천왕은 손에 용을 쥐고 있거나, 여의주를 들고 있습니다. '여의如意'란 모든 것이 뜻대로 이뤄진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여의주란 생각하는 소원을 모두 이루어주는 구슬입니다. 그래서 일까요. 손오공이 등장하는 만화에서는 소원을 얻기 위해 용구슬을 모으려 전 세계를 여행한다는 이야기가 전개되기도 했습니다.

이 천왕의 이름이 '증장增長'입니다. 이 말은 더욱 늘어난다는 의미입니다. 증장천왕의 능력으로 불자의 선한 마음이 더욱 자라게 되고, 수행력도 더 깊어지게 됩니다. 천왕문에 올라 사천왕 앞에 섰을 때, 불법을 수호하는 천왕들에게 정성스럽게 합장인사를 올리고, 자신의 소원을 꼭 들어달라고 진심으로 기원해 본다면 혹시라도 증장천왕의 손에 쥔 여의주가 신비한 힘을 보여줄지도 모릅니다.

< 북방 다문천왕 >

하얗고 긴 두 눈썹과 수염을 날리며, 비파를 연주하시는 분이 다문천왕입니다. 다문多聞이라면 다문제일 아난존자가 떠오릅니다. 아난은 부처님의 말씀을 가장 많이 들었다는 의미로 다문제일이라 불렀던 분입니다.

다문천왕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랫동안 불법을 수호하면서 부처님의 법문을 누구보다 많이 들으신 분입니다. 더구나 중생들이 이해하기 쉽게끔 천상의 소리에 담아 자상한 표정으로 우리들에게 법음을 들려주고 계신 분이 다문천왕입니다.

네 분의 천왕은 그 형상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선한 중생에게는 마치 아버지처럼 자상하시고 인자한 분들이므로 절대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무서운 얼굴로 중생들의 행동과 마음을 바라보는 천왕들이기에 스스로 한 점 부끄럼 없이 당당하다면 전혀 두려울 일이 없습니다. 오히려 천왕문에서 사천왕을 만나면, 스스로에게 참회할 잘못이 남아있는지 알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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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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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 - 신묘장구 대다라니 (2일차)
문화

불교문화 - 신묘장구 대다라니 (2일차)

보명법사의 신묘장구대다라니 3×7=21일의 기도 2일째.

(2)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약 바로기제 새바라야 모지 사다바야 마하 사다바야 마하가로 니가야.

우선 여기까지의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맨 처음에 나오는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는 <나모 라다나 다라야야>라고 띄어 읽어야 뜻이 통합니다. **<나모>는 '귀의하여 받듣다'**는 뜻으로 여러 번 나오는 단어인데 <나무>와 같은 뜻입니다. 간혹 <나막>이라고 표기된 곳도 있습니다.

그 귀의하는 대상으로 <라다나>는 '보배' 라는 뜻이며, <다라야야>의 <다라야>는 '삼(三)'이란 뜻이고 그 끝에 붙은 <야>는 '~에게'라는 위격(爲格)조사입니다.

그래서 이 단어들은 한데 붙여 해석해 보면 '삼보께 귀의합니다'가 됩니다.

우리가 법회를 시작할 때 맨 먼저 삼귀의 (三歸依)를 하듯이 여기서는 삼보에 대한 예경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여 맨 앞에 둔 것입니다. 예경처럼 좋은 일도 이 세상에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에 임하든 삼보께 귀의하여 예경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삼보라고 하여 굳이 절에만 국한시키지 말고 넓은 안목으로 우리가 일상으로 대하는 가족이나 형제, 이웃 등을 모두 삼보의 범주에 넣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을 삼보께 예경하듯 살아간다면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또 해결하지 못할 일도 없을 것이며, 그것보다 더 큰 공덕은 없을 것입니다.

『화엄경』에서도 부처님이 수미산 같은 위대한 공덕을 설명해 놓고 그 공덕을 자기의 것으로 하려면 열 가지 행원을 닦아야 하는데 그 첫 번째로 예경의 행원을 강조했습니다.

서로 불화(不和)의 관계에 놓여 있는 사이라면 더욱더 부처님께 예경하는 마음으로 상대편을 대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것입니다.

우리가 불교를 배우는 목적 가운데 하나는 괴로움에서 벗어나 행복을 얻고자 하는 이고득락 (離苦得樂)에 있습니다. 그래서 보다 발전된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것이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고 불교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괴로움을 떠난다고 하는 사실은 문제해결의 열쇠가 됩니다. 불교를 공부하면서 방편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문제해결의 열쇠를 가지는 게 우선되어야 합니다.

갈등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직접 예경하기가 어렵다면 상대방의 사진이나 이름을 붙여놓고 부처님께 예경하듯 정성스럽게 예경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한번 마음 쓰는 일은 알게 모르게 곳곳에 그 영향력이 미치는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을 닮아가려면 그 첫째 조건이 바로 예경을 생활화 하는 것입니다. 그 누구를 막론하고 부처님을 대하듯 하는 그런 태도와 인품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 가지 예로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라면 늘 대하는 경비원에게 먼저 인사부터 하는 습관을 들여야 할 것입니다. 비록 작은 일이지만 그 일로 인해 우리의 공덕은 쌓여가는 것입니다. 무디어진 자신의 칼을 날카롭게 갈아서 빛낼 수 있는 숫돌은 굳이 절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나막알약 바로기제 새바라야 모지 사다바야>는 <나막 알약 바로기제새바라야 모지 사다바야>로 띄어 읽어야 합니다. 여기서 <나막>은 <나모>와 같은 말로 '귀의하여 받든다'는 뜻입니다. 결국<나모>,<나무>,<나막>은 같은 말인데 표기 과정에서 변형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알약 바로기제새바라야>는 원래는 <아발로키테스와라야>인데 관세음보살의 이름입니다. <알약>은 '성(聖)스럽다'는 뜻이고, <바로기제새바라>는 아발로키테스와, 즉 '관자재'로 번역되는데 관세음보살의 다른 이름입니다. 끝에 붙은 <야>는 '~에게'의 뜻이니 이 문장은 '성스러운 관자재에게'가 됩니다.

계속해서<모지> '보리'라는 뜻이고, <사다바>는 ‘살타’이므로 <모지 사다바>는 ‘보리살타’, 즉 ‘보살’이란 뜻입니다. <야>는 '~에게'라는 뜻의 위격조사입니다. 그러므로 <나막 알약 바로기제새바라야 모지 사다바야>는 ‘성스런 관자재보살에게 귀의 합니다’라는 뜻이 됩니다.

<마하 사다바야>를 풀이해 보면, <마하>는 '크다' 곧 '대(大)'라는 뜻이며, <사다바>는 '보살'의 뜻이며, <야>는 위격조시이니 각각의 단어를 합하여 보면 '대보살에게'가 됩니다.

<마하가로 니가야>는 <마하 가로니가야>로 띄어 읽어야 하며, 원래는 <마하 까로니까야> 입니다. <마하>는 '대(大)'이며 <가로니가>는 '비(悲)'이니, 결국 대자대비한 관세음보살의 마음을 표시한 것입니다. 끝의 <야>는 위격조사이니 <마하 가로니가야>는 '대비존에게'가 됩니다.

그러므로 <나막알약>에서부터 <가로니가야>까지를 붙여서 해석해 보면 '성 관자재보살 마하살 대비존께 귀의합니다.'가 됩니다.

여기까지만 살펴보아도 <신묘장구대다라니>는 관세음보살을 중심으로 하여 관세음보살의 자비사상을 담고 있음을 여실히 알 수 있습니다.

불기 2570년 4월 12일 팔공산 감고사지기 보명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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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입문 - 죄는 무엇으로 짓는 것인가?
문화

불교입문 - 죄는 무엇으로 짓는 것인가?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를 3업이라고 하는데 이 3업으로 세상의 온갖 죄악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 이 자료는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 알아두면 좋은 불자상식 작성자 민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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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49재의 10~12일
문화

불교문화 - 49재의 10~12일

죽은뒤 10일째 되는날:

보부(寶部)의 피를 빨아 먹는 성난 모습의 존자가 나타난다. 짙은 황색으로 얼굴셋에,팔이 여섯,발이 넷이다. 오른쪽 얼굴은 흰빛 , 왼쪽 얼굴은 붉은빛, 가운데 얼굴은 노란빛이다. 이는 업식에 따라 감응해 나타난 보생여래(寶生如來)의 화신(化身)으로 귀의(歸依)하면 정토(淨土)에 태어난다.

죽은뒤 11일째날:

연화부의 피를 빨아 먹는 성난 모습의 존자가 나타난다. 짙은 녹색으로 얼굴셋,팔 여섯, 발은 넷이다.오른쪽 얼굴은 흰빛, 왼쪽 얼굴은 파란빛,가운데 얼굴은 붉은빛이다. 이는 자신의 업력에 따라 감응해 나타난 아미타불의 화신으로 귀의 하면 정토에 태어난다.

죽은뒤 12일째날:

갈마부의 성난모습의 존자가 나타난다.짙은 녹색의 얼굴셋, 팔이 여섯에, 발이 넷이다.오른쪽 얼굴은 흰색, 왼쪽얼굴은 파란빛, 가운데 얼굴은 풀빛이다. 이 또한 자신의 업력에 따라 감응해 나타난 불공성취불(佛空成就佛)의 화신(化身)으로 귀의(歸依)하면 정토(淨土)에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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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부모은중경 2부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부모은중경 2부

(6) 유포양육은乳哺養育恩: 젖을 먹여 길러 주신 은혜

자비로우신 어머니 땅과 같고 근엄하신 아버지 하늘과 같네.

고루고루 펴신 은혜 똑같이 베푸시니

어버이의 아기 사랑 그 역시 한 뜻일세.

눈이 멀다 해도 미워하지 않고 손발이 병신이라도 싫어함 없네.

뱃속에서 길러 친히 낳은 자식이라 온종일 아끼시며 사랑을 베푸시네.

어머니의 젖은 어머니의 살이며 피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어머니는 아기를 위해서 아낌없이 주는 거룩한 자기희생의 실천자다. 여섯 번째인 ‘유포양육은’, 즉 ‘젖을 먹여 길러 주신 은혜’라 하였고, 벽화 【사진 1】 역시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사진 1. 유포양육은.

그러나 게송의 내용은 어머니가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이나 그에 대한 여러 가지 설명 대신 자식에 대한 부모의 한결같은 사랑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즉 어머니의 자비로운 은혜와 함께 아버지의 엄한 사랑이 균형 잡힌 인성을 갖추게 해줌을 설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버이는 비록 아기에게 모자란 데가 있다고 해도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대신 오히려 건강한 아이보다 더욱 정성껏 보살펴 준다. ‘유포양육은’은 이런 차별 없는 사랑을 설하고 있다.

(7) 세탁부정은洗濯不淨恩: 더러운 것 깨끗이 씻어 주신 은혜

생각하니 지난날엔 고왔던 그 얼굴에 맵시 있는 자태는 깊고도 소담해라.

비취빛 두 눈썹은 버들도 부끄럽고 두 뺨은 분홍빛 연꽃보다 뛰어나네.

은혜 깊이 더할수록 고운 빛 바래지고 씻고 닦고 하시느라 손발이 거칠었네.

아들딸을 사랑하는 한마음 쏟는 동안 자비로운 어머니 주름살만 가득하네.

‘세탁부정은’에서는 앞의 ‘어머니 은혜’라는 노래와는 달리 어머니의 곱던 얼굴이 시들어 가는 모습을 먼저 노래했다. 누구나 젊었을 땐 아름다운 모습이었을 것이다. 살결은 희고 윤이 났으며, 붉은 두 뺨은 연분홍 연꽃 같았고 버들가지같이 예쁜 몸과 함께 아름다운 어머니의 모습과 잘 어울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아름다운 어머니의 모습이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자식 뒷바라지에 야위고 시들어 버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기를 훌륭히 키우기 위해서는 그만큼 정성을 쏟아야 했기 때문이다. 젖이나 우유를 토한 아기의 몸을 한 번 씻을 것을 두 번 씻으면 그만큼 어머니의 고생은 늘어나지만 아기는 깨끗하게 자랄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는 이러한 아기에 대한 고생을 전혀 내색하지 않고 다만 아기가 튼튼하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만을 바랄 뿐이다. 이처럼 어머니의 거룩한 사랑의 실천으로 곱던 얼굴이 차츰 거칠어 가는 반면 아기의 얼굴은 차츰 예쁘고 귀엽게 변해가는 것이다.

사진 2. 세탁부정은.

‘세탁부정은’ 벽화 【사진 2】는 이렇게 아기가 자라는 것은 모두가 어머니의 피와 살을 깎아내는 고통과 정성어린 보살핌의 대가로 가능한 것이었음을 일러준다. “뿌리 없는 나무가 없고 물은 근원 없이 흐를 수가 없다.”는 말은 세상에 조상과 부모 없이 태어난 사람이 없음을 일컬어 비유한 말이다.

부모로 인하여 내가 세상에 태어났고, 그 부모로 인하여 길러졌음을 안다면 부모를 받들고 모셔야 할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거기에 조건이 있을 수 없고 이유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부처님 자신마저도 아버지인 정반왕이 별세하자 손수 그 상여를 메었다는 기록이 있듯이, 『부모은중경』은 말 그대로 부모의 은혜가 지중함을 가르쳐 설하고 있으며, 벽화는 이를 아름답게 시각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다.

(8) 원행억념은遠行憶念恩: 멀리 떠나면 걱정하시는 은혜

죽어 헤어짐도 실로 잊기 어렵지만 살아서 못 만남도 또한 가슴 아파하시네.

아들딸이 집을 떠나 먼 길을 가게 되면 어머니의 마음 또한 그곳에 함께 있네.

밤낮으로 자식 쫓아 마음이 따라가니 두 눈에서 흐르는 눈물 천 줄기 만 줄길세.

원숭이가 울며불며 새끼를 그리듯이 자식 생각에 애간장이 다 끊어지네.

‘원행억념은’은 자식이 집을 떠나서 멀리 가 있을 때 걱정하는 어머니의 사랑을 노래한 것이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자녀가 성장하면 부모의 곁을 떠나서 살게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딸의 경우, 부모님의 걱정은 더 심하다. 나이든 딸이 시집을 못 가도 밤낮 걱정이요, 시집을 가면 딸이 시집살이를 잘 하는지, 고생은 안 하는지, 아들딸은 잘 기르고 있는지 등등 걱정이 태산 같다.

자식을 공부나 군대나 직장일 등으로 멀리 떠나보내면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걱정을 하게 된다. 이와 같이 ‘원행억념은’은 역시 외지로 떠나게 되거나 또는 떨어져 있는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간절한 사랑을 그려 놓았다.

(9) 위조악업은爲造惡業恩: 자식 위해 궂은일도 마다않는 은혜

어버이의 크신 은혜 강산과 같사오니 깊고 중한 그 은혜 갚을 길 아득하네.

자식 고생 대신 받기만 원하시니 자식이 고생하면 어머니 마음 편치 않네.

아들딸 먼 길 떠난다는 말을 듣고 다니다 밤이 되어 찬 곳에 눕지 않나

자식들이 잠시라도 고통을 받을세라 어머니는 오래도록 마음을 졸이시네.

사진 3. 위조악업은.

흔히 사랑은 내리사랑이라는 말을 하는데, 이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정도가 더 깊고 자상하다는 의미로 통한다. 그 가운데에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비할 수 없이 깊고 간절하다고 하겠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두 어깨에 아버지, 어머니를 한꺼번에 메고 수미산을 백천 번을 돌아도[周遶須彌] 【사진 3】 부모의 은혜를 다 갚았다고 할 수가 없다고 하신 것이다.

(10) 구경연민은究竟憐憫恩: 끝까지 염려하고 사랑해 주는 은혜

그동안은 부모의 은혜가 지중함을 설한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벽화로 도설된 그림과 함께 보아 왔다. 현존하는(또는 새로이 그려지는) 『부모은중경』 벽화 도상의 유형은 다양하겠으나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화보풍의 중국식 도상이고, 하나는 우리의 장소성과 신체성을 획득하고자 애쓴 한국풍의 도상이다. 또한 근래에 들어 그 사찰의 주위 경관을 벽화 속에 끌어들이는 시도가 간혹 보이는데, 이와 같은 시도는 불교가 벽화라는 형식을 통하여 시대를 드러내는 긍정적인 것으로 더 많은 연구와 적극적인 장려가 필요하다 하겠다.

사진 4. 구경연민은(김홍도 필목판본).

이번에는 『부모은중경』 벽화의 마지막으로 벽화로 제작되는 도상의 본이 된 목판본 【사진 4】을 겸하여 보도록 하겠다. 이 도판은 정조의 발원에 따라 조선조 3대 화가라 일컬어지는 김홍도가 그린 『부모은중경』 변상도를 목판으로 판각한 것이다. 이는 이미 『부모은중경』의 삽도로써 또는 불교 달력으로도 제작, 유포되어서 낯설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어버이의 크신 은혜 깊고도 중하여라. 은혜와 사랑을 끝없이 베푸시네.

앉고 서나 자식 좇아 마음이 따라가니 멀거나 가깝거나 마음은 자식에게 있네.

어머니 연세 높아 백 살에 이르러도 팔십된 자식을 항상 걱정하시네.

이 같은 부모 은혜 언제쯤 끊길런가 목숨이 다한 뒤 그때야 떠나리라.

‘구경연민은’은 어버이의 은혜가 계속해서 베풀어 이어진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달리 끝까지 사랑하는 은혜라고도 하고, 끝까지 불쌍히 여기는 은혜라고도 한다. 끝까지라는 말은 게송처럼 죽을 때까지라는 말이다. 앉거나 서거나, 멀리 있거나 함께 있거나, 언제 어디서나 어버이가 자식을 사랑하고 아끼며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자식들의 나이가 아무리 많다 해도 어버이 앞에서는 늘 어린애일 뿐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은덕에 대한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부모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겠는지를 물었을 때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려거든 부모를 위하여 경전을 거듭 만들어 내면 진실로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될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경전을 펴내는 것은 부처님을 뵙는 것과 다름이 없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순화시키고 발심케 하므로 그 공덕이 무량한 것이다.

사진 5. 상계쾌락.

그래서 다시 부처님께서는 “이와 같이 사람이 경전을 만들어내는 데 힘을 쏟게 된다면 여러 부처님이 항상 보호해 주고 감싸 주셔서 그와 같은 일을 한 사람의 부모를 하늘나라로 오를 수 있게 하여 모든 즐거움과 편안함을 누리게 하고 영원히 지옥의 고통에서 멀어지게 하신다[上界快樂]”【사진 5】고 보은의 궁극적인 방법까지 『부모은중경』을 통해 설해 주 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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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금강경 기도 독송 불교노래🙏듣기만 해도 복덕이 쌓이고 업장소멸 대운개운 재물운 소원성취 | 자면서 듣는 부처님 말씀 # 불교 음악.#금강경 #영상 #오디오북 #시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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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기도 독송 불교노래🙏듣기만 해도 복덕이 쌓이고 업장소멸 대운개운 재물운 소원성취 | 자면서 듣는 부처님 말씀 # 불교 음악.#금강경 #영상 #오디오북 #시니어 금강경의 지혜와 부처님의 자비를 담은 불교 찬불가입니다. 금강경의 가르침인 "응무소주 이생기심"을 바탕으로 업장소멸, 복덕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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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0일
전통사찰의 구조 - 대적광전(大寂光殿)
문화

전통사찰의 구조 - 대적광전(大寂光殿)

대적광전의 본존불은 비로자나불이다. 비로자나불은 연화장세계의 교주이신데, 그분이 계시는 연화장세계는 진리의 빛이 가득한 대적정의 세계라 하여 대적광전이라 부른다. 화엄계통의 사찰에서는 대적광전을 본전으로 삼는다. 대적광전은 화엄세계를 드러내기 때문에 화엄전이라 부르며, 화엄세계의 본불인 비로자나불을 모신다는 뜻에서 비로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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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교족정진 (翹足精進) - 벼랑 끝에 선 아난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교족정진 (翹足精進) - 벼랑 끝에 선 아난

<송광사- 전남 순천>

‘아난’이 절벽 끝에서 까치발을 한 채 불안스럽게 서 있는 그림이다. 사찰의 대표적 벽화 중에서 부처님의 제자 ‘아난’이 절벽 끝에서 위태롭게 서 있는 모습의 ‘교족정진’이라는 벽화를 빼놓을 수는 없다. 교족정진(翹足精進)의 교족이란 ‘발뒤꿈치를 올렸다’라는 뜻으로 아난스님의 굳은 의지를 상징하고 있다. ‘아난’은 석가모니의 4촌 동생이기도 하며, 석가모니 55세 때 시자로 들어와 임종할 때까지 25년간 항상 가깝게 있었을 뿐 아니라 잘생기고 머리까지 뛰어나 그를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 불렀다. 그런 화려한 조건의 그가, 왜 아무도 없는 한적한 절벽 끝에서 홀로 남겨져 있는 걸까? 자만(自慢)이 넘치면 자기세계에 빠져 자신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자아집착에 처하게 된다. 석가모니가 열반에든지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교단의 500의 제자들은 부처의 가르침을 후세에 전할 방법을 상의하기 위해 모였는데, 불행하게도 ‘아난’은 자아집착이 심하여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는 이유로 제자들이 모인 자리에 참석 할 수 없었기에. 이처럼 백척간두에 절벽 끝에 홀로 남겨 있는 모습이다.

▮ 아난, 가섭에게 ‘깨달음’을 묻다.

자신이 500제자 모임에도 들지 못함에 크게 상심한 ‘아난’은 부처의 수제자(首弟子)인 ‘가섭’을 찾아가서 그에게 답을 구하게 된다,

‘가섭’은 문밖을 가르치며 ’저 당간대(幢竿臺)를 꺾어 버려라!’ 라며 말한다. ‘아난’은 그 말뜻을 알아차리기 위해, 홀로 아무도 찾지않는 가파른 절벽에 올라 7일간이나 그가 던진 화두(話頭)를 절박하게 파고들고 결국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깨달음을 성취하기 위한 유혹과 마장을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벼랑 끝으로 자신을 내 몰아 절대 절명의 마음을 걸듯 결연한 의지에서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는 힘이 나온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간대란 집단을 상징하는 기를 올리는 장대로, 그 절을 상징하는 깃발을 높이 올리는 장대로서, 그 절의 얼굴이자 자긍심이다.

나는 너보다 더 높은 곳에 있고, 나는 너보다 더 많이 안다는 자만의 생각이 결국 상대의 생각을 받아들이는데 장애가 되어버린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도 사실은 남으로부터 보고 들었던 과거의 ‘지식’일 뿐인데, 그것으로 인해 지금 내 앞에 있는 상대의 말문을 잘라 놓고 내 말에 열중 하느라 그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으면 나의 지식은 곧 빈곤해 지고 말 것이다.

이처럼, 지혜란 타인으로부터 들었던 말을 앵무새처럼 옮기는 것(지식)이 아니라, 지금의 나로부터 나오는 영원한 향기이기 때문이다.

아난은 벼랑 끝에서 지식과 지혜의 차이를 깨달은 것이다. ‘교족정진’에서는 절벽으로 내몰린 아난을 통해, 지혜의 참 뜻을 느끼게 하는 그림이다.

▮ 거꾸로 보는 교족정진.

부족함 하나 없는 ‘아난’이 깨달음을 위해 자살바위에 올랐다’ ?? 상식적으로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꼬꼬무’다. ‘배경’, ‘실력’, ‘외모’ 모두 가춘 완벽한 상남자가 왜 불교 교단의 행사인 500명이나 모이는 1차 결집에 소외되어 아무도 없는 절벽에 혼자 남아 배회하고 있는 것일까. 사찰의 석가모니 불상의 양쪽 협시로 나타나는 가섭과 아난의 모습에서는 그들의 이질 적인 분위기 만큼이나 서로의 성격도 달랐을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 심원사 불상- 석가모니 협시 >
가섭이 장악 한 초창기 결집행사에 아난이 제외된 이유로, 당시 교단을 둘러싼 두 사람의 갈등이라고 전해지고 있는데. 석가모니가 떠난 후 1대조사(대표)에 등극한 ‘가섭’은 ‘아난’이 아라한과를 얻지 못하였다는 이유 열한가지나 들어가며 아난의 합류를 막았다고 전해 내려오는데. 이유로 열거한 내용을 살펴보면, 아난의 성격은 보수적인 가섭에 비해 상당히 개방적인 성격임을 여러 곳에서 발견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자신을 따돌리는 가섭의 행동에 크게 개의치 않는 아난의 개방적 성격이
결국은 이런 절벽 끝에 몰린 듯 한 위기를 잘 수습했을 것이며 결국 교단으로 복귀 하여 가섭에 이은 제2대 조사로 등극 하는데도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아난이 다시 교단을 장악 하여 세수를 다 할 때 까지 최장수를 누릴 수 있었던 것도, 적극적으로 가섭을 찾아가 그의 이야기를 구하듯, 나와 다른 남의 생각을 귀담아 들을 수 있는 아난의 포용력이 큰 장점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 모아보는 교족정진

<경흥사-경북 경산>

<마하사-부산 연재>

<영화사-서울 광진>

<운문사-경북 청도>

<유하사-경북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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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태전/퇴지
불교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태전/퇴지

당나라 중기 남양 등주 땅에 태어나 뛰어낸 문장으로

후세에 당, 송팔대가의 한사람으로 추앙 받은 한퇴지는 처음에는 불교를 매우 배척하여

자사(지방장판, 주지사) 벼슬에 올라 불법을 비방하는 글을 자주 상소하다가

왕(憲宗)의 미움을 받아 서울(장안)에서 8000리 떨어진 변방의 조주(漸州) 자사로 좌천되었다.

그때 조주땅에는 태전선사라는 고승이 축융봉에서 10년간 수도에만 전념하여

생불(生佛)로 추앙받고 있었다.

한퇴지는 문득 태전선사를 시험해서 불교를 다시 한번 깎아 내리고 싶은 생각에

그 고을에서 유명한 기생 홍련을 불러 계교를 일러 주었다.

만약 백일안에 태전선사를 파계시키면 후한 상을 내리겠거니와 실패하는 날에는 죽음을 각오할 것을 약속했다.

홍련은 자신의 미모나 경력으로 봐서도 자신이 만만했다.

다음 날 몸매를 더욱 아름답게 꾸미고 험한 산 길을 올라 해질녘에야 스님의 암자에 도착하였다.

태전선사를 찾아뵙고 인사를 드린 홍련은

「오래전부터 큰스님의 훌륭한 덕을 흠모해 오던 차

이번에 큰스님 시중도 들면서 백일기도를 올리고 싶어 먼 길을 마다 않고 왔습니다.

자비로 거두어 주십시오.

만일 거절하신다면 소녀는 이 자리에서 목숨을 끊고 말겠습니다」

이렇게 깊은 산골 외딴 암자에서 머물게 된 홍련은 일이 성사된 것처럼 마음 속으로 기뻐하였다.

다음 날부터 건성으로 기도를 하고, 태전선사의 시중을 들면서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지만

한 달이 넘어가도 선사는 좌선에만 전념한 채 홍련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마음이 조급해진 홍련은 온갖 수단방법을 동원하여 선사를 무너뜨리려 했지만 요지부동.

마침내 약속한 백일이 내일로 다가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홍련은

태전선사의 고매한 인품에 감동되어 자신의 행동이 경망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자사 한퇴지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큰 화를 당할 일이 걱정이 되어

약속한 백일이 되는 날 아침 태전선사 앞에 나아가 눈물을 흘리며

「 큰스님 ! 어리석은 소녀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조주자사 한대감의 명으로 스님을 파계시키고 오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사 저는 그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대감님과 약속한 기일이 백일 오늘 저는 내려가면 큰 벌을 받아야 합니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섧게 울기 시작했다.

흐느껴 우는 홍련을 자애로운 미소를 띄우며 지켜 보시더니

「너무 염려말고 이리 가까이 오너라 .

조주자사 한대감에게 벌을 받지 않도록 해 줄 것이다.」

하고는 붓에 먹을 묻혀 치맛자락을 펴게 하여 단숨에 글을 써 내려가니

「축융봉을 내려가지 않기를 10년 (十年不下鷲融峰).

색(色)을 보고 부질없음 알았기에 형체가 곧 물거품이라(觀色觀空郞色空)

어찌 법(法)의 한방울 물을(如何一滴曺浮水)

홍련(紅運)의 잎사귀 가운데 즐겁다 떨어뜨리겠는가(肯隨紅運一葉中).」

홍련의 치맛자락에 적힌 시를 본 한퇴지는 그 후 태전선사를 참방하여

선사로부터 「불교의 어느 경전을 보았습니까?」하는 물음에

「별로 뚜렷하게 본 경전은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 선사가 다그치기를

「그러면 그대가 이제까지 불법을 비방함은 무엇 때문인가?

누가 시켜서 하였는가, 아니면 자신이 스스로 하였는가?

만약 시킴을 받아서 하였다면 주인 시키는대로 따라하는 개(犬)와 다름없고

자신이 스스로 하였다면 이렇다 할 경전 읽음도 없이 어떻게 불법을 비방하는가?

알지 못하고 비방한 것이니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나 다름없다」 하는 꾸짖음과 함께

심오한 가르침을 받아 그 후 한퇴지는 지극한 불자가 되어 마음을 깨치고

불교를 비방하던 그 붓으로 불법을 드날리고 삼보를 찬탄하는 문장을 후세에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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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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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벽화이야기 - 지혜의 화신 문수보살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지혜의 화신 문수보살

지혜의 화신 문수보살

사찰 벽화이야기 2. 크고 큰 원력의 보현보살.

보현동자는 보현보살이 동자의 모습으로 나타난 분입니다.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은 이렇게 동자의 모습으로도 자주 등장하십니다.

무엇보다도 동자라는 의미가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또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지혜와 수행을 대표하다보니, 초발심으로 상징되는 구도심과 원력을 세워 수행하는 수행자의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 완벽한 보살의 모습이 아닌 수행과정에 있는 동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불자를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보현보살은 흰 코끼리를 타고 다니는데, 코끼리는 행원行願을 상징합니다. 보현보살의 열 가지 행원은 불교수행의 실천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원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항상 부처님을 모시고, 부처님을 찬탄하며, 널리 공양을 쌓고, 늘 참회하며, 서로를 인정하고, 가르침을 즐겨 들으며, 세상에서 부처님의 법을 수호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며, 여러 중생을 잘 따르면서, 지은 바 모든 공덕을 중생들에게 되돌려 주겠습니다."

비록 보현보살께서 부처님 전에 세운 원력이지만, 모든 불자가 당연히 행할 바가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1. 지혜의 화신 문수보살

문수보살은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법당에 모셨을 때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셔서 부처님의 위 없는 지혜와 큰 원력을 각각 상징하게 됩니다.

보현보살이 흰 코끼리를 타고 다닌다면, 문수보살은 푸른 청사자를 타고 다닙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시는 진리의 법문을 사자후하고 하는 것처럼, 문수보살의 사자는 곧 부처님의 용맹스런 지혜와 위엄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연화대에 앉아있는 모습일 때는 오른손에는 지혜의 칼을, 왼손에는 푸른 연꽃을 들고 있거나 경전을 들고 계시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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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미술여행 - 감로(甘露)
문화

사찰미술여행 - 감로(甘露)

한 방울 마셔도 괴로움 사라지고 만병 치유

▲보석사 감로왕도, 220×235㎝, 마본채색, 조선(1649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물은 필수적이다. ‘먹는 샘물’이라고 불리는 생수는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있어 마시는 물을 의미한다. 필자도 수돗물에 볶은 보리나 옥수수를 넣어 차를 끓여 마셨던 시절은 이제 생각도 잘 나지 않고 목이 마르면 당연히 정수기에서 물을 찾고 생수병을 들고 목을 적신다. 물론 우리네 정서 속에는 대동강 물을 팔았다던 봉이 김선달이란 어르신도 계시지만 그건 전해오는 이야기일 뿐, 알프스 눈 녹은 물을 돈 주고 사먹는 시절이 올 줄 누가 알았으리요.

조선시대 수륙재 큰 재화 필요

불단 등 포함한 감로왕도 그려

서민까지 봉행 가능하도록 해

조상 영혼 해원으로 마음 달래

불가에서뿐만 아니라 흔히들 깨끗하고 시원하며 맛이 좋은 물을 감로수라 한다. 감로(甘露)는 단 이슬이란 뜻이며, 오래 전 임금이 나라를 훌륭하게 다스리면 하늘에서 감로가 내린다고 하였다. 부처님의 법문이 감로에 비유되는 까닭은 중생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불법을 알게 됨으로써 몸과 마음이 새로워지고 고통의 세상에서 깨달음을 향한 노력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불가에서 사용되는 감로의 의미는 조금 달라져 부처님께 올리는 찻물을 뜻하기도 한다. 원래 감로수는 도리천에서 샘솟아 오르는 달콤하고 신비스러운 힘을 가지고 있는 물이다. 이 물은 천신들이 마시는 천주(天酒)이기에 감로는 한 방울만 마셔도 온갖 괴로움이 사라지고 만병을 치유하며 수명을 늘리고 죽은 이는 부활한다는 불사주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찰에서 목마른 이들의 목을 축여주기 위해 마련된 수조(水槽)에는 감로수라 이름 붙인 예가 많고 이를 찾은 사람들은 그 이름만큼 몸에 좋을까 싶어 약수를 한 사발씩 들이키는 것이리라.

감로는 목이 마를 때 겨우 얻은 귀하디귀한 물을 의미하기도 한다. 죽을듯한 갈증을 해소시켜준 생명수인 감로를 주제로 삼아 시각적으로 표현한 불화가 감로왕도(甘露王圖)이다. 감로왕도의 신앙적 배경이 되는 ‘우란분경(盂蘭盆經)’에 따르면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신통제일이었던 목련존자는 육신통을 얻은 뒤 가장 먼저 돌아가신 어머님을 찾아보았다. 슬프게도 목련존자 어머니의 영혼은 아귀가 되어 굶주리고 목이 타는 고통을 받고 있었다. 목련에게 어머니의 그런 모습은 너무 가슴 아픈 일이었기에 스승인 부처에게 답을 구해 7월15일 시방의 스님들께 공양을 하면 전생과 금생의 부모님 일곱 분을 구제할 수 있다는 답을 듣는다. 목련존자는 부처의 가르침대로 행하여 어머니를 구했는데 이것이 사찰에서 백중날 우란분재를 지내 조상에게 천도재를 올리는 까닭이다.

▲ 일본 약센지 소장 감로왕도 세부, 158×169㎝, 마본채색, 1589년, 일본 나라국립박물관 기탁.

‘우란분경’의 내용을 그린 감로왕도는 조선시대 성행하였던 수륙재와도 관련이 깊다. 17~18세기는 임란과 호란을 겪은 아픔에 대기근과 같은 자연재해로 인한 고충도 극심한 한국의 역사에 있어 변란의 시기였다. 어려운 시대적 상황으로 부모와 가족을 잃은 이 땅의 백성들에게 물과 육지에서 헤매는 무주고혼과 아귀를 달래기 위해 설행되었던 수륙재는 큰 반응을 불러왔다. 하지만 정통 수륙의궤에 따라 의식을 진행하려면 불단을 조성하고 도량을 장엄하는 데 엄청난 재화가 요구되어 일반백성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그런데 불교 의례를 모아 정리한 의식집이 등장하면서 간략화된 수륙의례가 생겨나게 되었고 이에 의거하여 요약된 수륙화인 감로왕도가 만들어지게 되면서 서민들도 천도의식을 행할 수 있는 방편이 마련되었다. 다시 말하면 이 그림 한 장에 수륙의식에 필요했던 거대한 성찬이 차려진 불단과 각종 장엄구와 공양물, 불보살과 선인의 형상을 그린 수많은 그림들을 간추려 모아 그렸기 때문에 일반 백성도 적은 비용으로 가족이나 친지의 영가천도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감로왕도에서 목이 타서 감로를 구하는 아귀는 감로의 혜택을 받아야 할 실체이며 이 그림의 성격을 함축한 결정적 요소이다. 인도의 재래 관념에서 ‘부모의 영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아귀는 그림에서 조상의 죽은 영혼을 나타낸다. 아귀는 현생의 업에 따라 윤회하는 육도 가운데 하나에 속하지만 육도를 헤매는 중간 단계의 영혼들도 아귀에 속한다. 그래서 아귀상태에 있을 때 극락천도를 비는 천도의례를 하는 것이다. 대체로 초기에 조성된 감로왕도에 아귀는 단독인 예가 많고 후대로 갈수록 아귀는 쌍으로 등장한다.

일본 약센지 소장 감로왕도의 화면 중앙에는 무릎을 꿇고 왼손으로 발을 들어 감로를 받는 아귀가 있다. 경전의 내용대로 입에서 불꽃이 일어나고 배는 부풀어 항상 굶주리고 있지만 목은 가늘어 음식을 삼키지 못한다. 아귀가 손을 내밀어 감로를 구하는 형상 위에는 아귀에게 감로를 베푸는 법사승려가 있다. 왼손으로 의식기를 받쳐 들고 오른손으로 감로수를 공중에 튕기는 법사승려의 수인은 수륜관인(水輪觀印)이다. 이 수인을 하고 감로수를 공중에 뿌리면 일체의 아귀와 귀신들이 이를 받아 마시고 타는 갈증을 없앨 수 있으며 더불어 업장도 소멸된다고 한다. 18세기 이후가 되면 더 많은 아귀와 귀신의 갈증을 달래주기 위해 손 대신 끝부분에 술이 달린 막대를 이용하기도 한다. 삼성미술관에 소장된 감로왕도의 법사는 아예 바가지로 감로를 공중에 뿌리고 이를 받는 아귀의 그릇도 구연부가 넓은 그릇을 들어 감로를 받는다.

▲ 감로왕도 세부, 265×294㎝, 견본채색, 18세기, 삼성미술관 소장.

감로왕도에는 지옥과 아귀와 같은 영혼이 되어 받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연꽃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연화화생의 과정도 보여준다. 그림에서 감로수와 불법으로 구원을 받은 영혼은 인로왕보살에 의해 인도되어 극락의 연꽃 만발한 연못에서 새롭게 연화화생으로 태어나게 되는데 그곳에는 극락을 주재하는 아미타부처가 여러 보살과 제자를 거느리고 이 영혼들을 맞이하고 있다. 이처럼 감로왕도는 지옥에서 헤매는 조상의 넋을 구하기 위한 효심에서 시작되어 조상의 영혼이 구제되어 극락왕생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불화는 신앙을 표현한 종교회화이지만 그 속에는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그 시대의 현실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힘든 시기에 우리의 조상들은 어려운 살림살이이지만 영가천도불사를 통해 부지불식간에 저승으로 떠나보냈던 가족과 조상님들의 영혼이 해원(解寃)되어 서럽고 힘든 마음이 달래지길 바랐다. 그리고 그런 간절한 마음이 우리나라에만 보이는 감로왕도라는 불화를 있게 만든 것이다.

근래 매스컴은 우리에게 가슴이 에이는 슬픔을 주고 가라앉았던 배가 수면 위로 모습을 나타냈다는 소식을 연일 전하는데, 자식을 기르는 부모입장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서 피하고 싶고 생각만으로도 눈앞이 흐려진다. 피지도 못한 채 떨어져 버린 꽃송이와 같은 어리고 여린 영혼들에게 아귀의 목구멍을 개통시켜 배고픔과 갈증을 벗어나게 하였던 하늘에서 내리는 감로와 같은 기운이 깃들어 극락왕생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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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quot;법회 공지문도 뚝딱&quot;‥전법에 AI 더한 BTN 설법학교

법회 안내문 작성부터 불교 학술연구까지, 디지털 시대 AI 활용법을 익힌 설법학교 마지막 강의 현장, 이지윤... 말의 전달력부터 디지털 기술까지 배우며 미래 포교의 길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BTN 뉴스 이지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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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19
전통사찰의 구조 - 극락전(極樂殿)
문화

전통사찰의 구조 - 극락전(極樂殿)

극락전은 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신 법당이다. 아미타불은 본래 임금의 지위와 부귀를 버리고 출가한 법장비구로서, 보살이 닦는 온갖 행을 다 닦아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원[48대원]을 세우고 마침내 아미타불이 되었다. 아미타불의 광명은 끝이 없어 백천억 불국토를 비추고, 수명이 한량없이 백천억 겁으로도 셀 수 없다 하여 무량수전(無量壽殿)이라고도 한다. 또한 주불의 이름을 따라 미타전(彌陀殿)이라고도 한다. 경북 영주의 부석사 무량수전이 유명하다.아미타불의 협시보살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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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견우 (見牛)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견우 (見牛)

견우 (見牛)

< 노란 꾀꼬리가 나뭇가지 위에서 지저귀고 따사로운 해와 시원한 바람에 언덕 위 버들은 푸르구나.

더 이상 빠져 나아갈 곳이 다시 없나니 위풍당당한 쇠뿔은 그리기가 어려워라.>

소의 흔적을 쫓아 숲 속 깊숙이 들어간 동자는 드디어 멀리 있는 소의 뒷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그 노력에 보답이라도 하듯 꾀꼬리가 지저귀고 따사로운 햇살과 시원한 바람으로 소를 찾은 동자를 축하해 줍니다. 그러나 아직 웃기에는 이릅니다.

아직 소의 뒷모습만 보일 뿐 본래의 얼굴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뒷모습만으로 뿔이 달렸는지, 찾던 소가 맞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머리를 돌이켜 나를 보게 하든, 한걸음에 소를 붙잡아 두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하든 여기서 걸음을 멈출 수 없습니다. 빠져 나아갈 곳 없는 궁지로 몰았으니 이 기세를 몰아 직접 확인해 보는 편이 확실합니다.

경험보다 더 나은 선택은 없습니다. 겪어봐야 확실하게 알게 됩니다. 불교수행에서 그것을 체득體得이라고 합니다. 스스로 몸소 실천하여 얻게 되는 수행의 결과를 말합니다.

다른 이의 가르침과 법을 가만히 듣고만 있어서는 진리를 얻을 수 없습니다. 더욱이 내 마음을 찾아 떠난 여정이기에, 그 과정의 마침표는 스스로가 찍어야 합니다. 본인 스스로 확인해 볼 수 밖에 없는 문제입니다.

모든 공부에서 남이 대신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내가 노력해서 노력한 만큼 내 성과가 되는 것이 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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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태전스님과 홍련 (太顚)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태전스님과 홍련 (太顚)

대원사- 경북 구미>

태전스님이 아리따운 기생 홍련의 치마에 글을 쓰고 있는 그림이다.

▮ 스님을 파계(破戒)시키려 왔습니다.

중국 당(唐)나라에는 문장가 · 정치가 · 사상가로. 당송 8대가(唐宋八大家)로 당당히 이름 오른 한유(韓愈)라는 대단한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자기주장이 강한 성품 때문에 , 당시의 당나라 왕인 헌종(憲宗)의 미움을 받아 장안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지방으로 좌천되어 오게 된다.

이곳에서도 여전한 성품 때문에 남들과 더블어가는 생각은 없고 자신이 공부한 유교의 도리만이 올바른 것이고

자신과는 다른 부류로 보이는 불교에 대하여는 이유 없이 비방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마침 그 지방에는 존경받는 태전(太顚)스님이 있다는 말을 듣고, 주위 사람들에게 그 스님을 타락시켜 불교가 하찮은 것임을 증명하겠노라 장담하게 된다.

한유는 자신의 장담을 증명하기 위해 지방에서 가장 젊고 예쁜 홍련(紅蓮)이라는 기생에게 100일 기한을 주면서 스님을 유혹하게 하였다.

한 미모 한다며 제 잘난 맛에 도취된 홍련의 생각도, “그까짓 중하나 꾀는데 뭔 100일씩이나 걸리나” 라며

한유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하고 수일 내에 태전스님이 기거하는 곳으로 찾아가. "100일 기도를 하러 왔다"고 수작을 걸어 일단 합숙에 성공하고 스님과의 동거는 시작 된다,

하지만 계획한 100일이 다 가도록 홍련 자신의 목적은 희미해저 가고 오히려 태전스님의 수행에 감화되어 간다.

약속한 마지막 날이 되어 마을로 돌아갈 날이 되자, 홍련은 태전스님에게 삼배를 드리며 자신의 복잡한 심정을 말하니 눈물이 쏟아진다,

“사실은 제가 이 지방으로 새로운 관리로 부임한 한유의 명으로 스님을 파계시키고자 왔는데,

오늘까지 그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마을로 돌아가면 분명 저를 해칠 것 같은데 스님, 저는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그 말을 듣자 태전스님은 홍련에게 속치마를 내어 펼치라 하고는 게송(偈頌)을 써 주면서,

한유가 문장이 뛰어나다고 하니, 이 글을 보여주면 분명 너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마을로 돌아온 홍련은 한유를 만나 태전스님의 게송이 적힌 치마를 펼쳐 보이니,

한유는 그 게송을 한 번 에 읽고 바로 감탄하였다.

十年不下祝靈峰(십년불하축령봉)- 산에 올라 온지 십 년

觀色觀空卽色空(관색관공즉색공)- 색을 보고 공을 보니 색이 곧 공인데

如何一適曹溪水(여하일적조계수)- 어찌 분간 없는 물 한 방울을

肯墮紅達一葉中(긍타홍련일엽중)- 홍련 잎사귀에 떨어뜨리겠는가

▮ 나와 다름에 대한 맹목적 비난...

세상 모든 곳, 그 곳을 지키고 있는 풀 한포기 돌 한조각도 모두가 나름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고 했는데.

무엇이 옳고 또한 무엇이 그르다 할 수 있다는 걸까 ?

태전스님과 홍련의 이야기에서는 믿는 종교가 다르다고 , 출신성분이 다르다고 , 정치성향이 다르다고 , 이래저래 배척하다보면

결국 자기 홀로 남게 됨을 경고 하고 있다.

상대에 대해 문제점을 잘 찾아 낸다고 남들은 나를 우러러 볼 것이라는 생각도

들여다 보면,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도 남들은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아도 속으로는 관심병에 걸려있는 환자로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대화에서 많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보다,

그만큼 그의 이야기를 꼼꼼히 들어주는 사람을 더욱 우러러 보게 되는지도 모른다,

상대도 최소한 나만큼이나마 인정해주는 그 마음이 자신을 더욱 고귀하게 만들게 하는

바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의 마음일 것이다.

▮ 모아보는 태전스님과 홍련

:: 광덕사- 대구 달성

:: 대관음사- 대구 남구

:: 서천사- 경기 평택

:: 용연사- 대구 달성

:: 해인사- 경남 합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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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주다반탁가 (注茶半託迦) - 먼지나는 마당에서 깨닫다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주다반탁가 (注茶半託迦) - 먼지나는 마당에서 깨닫다

<해인사- 경남 합천>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 나오는 이야기로 먼지나 는 마당에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는 그림이다.

부처님 제자 중에 주다반탁가라는 스님이 있었다.

그는 건망증이 너무도 심해 무슨 말이든 듣고 돌아서면 금세 잊어버렸다. 천하의 자타가 공인하는 바보라며 자신에 대해 실망이 많던 한 스님에 관한 이야기다.

▮ 주다반타가를 통한 깨달음의 의미

석가모니 문화생 중에는, 한 지붕 아래 한 스승의 가르침을 받고 있어도 누구는 각별히 재능이 보이는 제자도 있었지만, 반면 '주다반타가'는 석가모니의 가르침 한 구절 이해 하기는 커녕 짧은 구절 하나도 외우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러자 낙담하며 그만둘 마음으로 오늘 내일 하던 그에게 석가모니는 빗자루 하나를 주면서 "주다반탁가여 이 비를 가지고 날마다 마당을 쓸면서 항상 '쓸고 닦는다.'라며 하나만 외워라". 고 하며 소임을 주었다.

그렇게 쓸고 닦기를 하며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나, 어느 날 무념무상의 경지에 깨침을 얻게 된다.

그는 땅바닥의 먼지를 쓸고 닦는 게 아니라 자기의 마음의 번뇌를 쓸고 닦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러한 방법은 지금의 간화선(看話禪)의 방법과 많이 닮아 있다.

마당을 쓸고 있는 스님을 통해 깨달음이란 지능과의 관계가 아닌 깨달음을 통해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 가를 말하고 있다.

사람마다 각자 다른 능력을 하나의 기준을 통해 일률적으로 평가 하는 게 아니라 개별로 맞는 소임으로도 그 사람의 가치가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주다반탁가’ 이야기에서 나타나는 깨달음의 조건은 돈이 많아서, 많이 배워서, 머리가 좋아서가 아니라.

그 누구보다도 내가 나를 끝까지 믿고 사랑하며, 포기하지 않을 때 이를 수 있는 행복의 마음을 느끼게 해주는 그림이다.

▮ 깨달음을 어떻게 알 수는 있는 가

깨달음을 어떻게 알 수 있나 ?

깨달음은 앎과 알아차림의 차이라고 한다,

사과를 두고 가정해 보자, 사과를 한 번도 먹어 본적이 없는 사람이 사과에 대해 연구하고 분석해서 알아내고 논문으로 발표하여 박사가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마침 실재로 사과를 먹어보고 사과를 느낀, 그 알아차림의 순간이 깨달음이라고 했다

깨달음은 어디에 있나 ?

깨달음이란 원래 내 마음에 있었던 것이지, 없던 것을 내게 채우는 것이 아니다.

안경유리를 닦아내듯

속진 이 마음을 갈고 닦으면 내 면에 있던 진리가 드러나는 것이고.

그것이 깨달음이기 때문에, 그걸 얻으려 밖으로 나다닐 필요가 없다.

내가 머물러 있는 이곳에도, 먼지나 는 마당에서도 알아차림은 상주(常住) 할 것이다.

어떻게 깨달아야 하나 ?

깨닫는다는 것은 제대로 느끼는 것이다.

내가 보고 들었기 때문에 “나는 안다”라고 단언 할 수 있을까 ?.

그 정도는 단지 육근(眼耳鼻舌身意)으로 일어나는 마음은 분별 심으로 일어나는 헛된 상이기 때문에.

아직은 제대로 알고 있다고 할 수 없다.

내가 보고 들었는 것을 실천으로 확인 하려는 마음이 먼저 일어나도록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올바른 깨달음을 찾는 길일 것이다.

왜 깨달아야 하나 ?

내가 괴로워지는 모든 사실의 원인이 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 있듯이.

결국 내가 찾고 있는 나의행복은 남의 변화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변화로 일어난다는 것을 먼저 알아차려야 하기 때문이다.

▮ 회향

거울에 비친 나

아직도 조금은 논리적이지 못한 나 이지만, 오늘만큼이라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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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입문 - 불교를 믿는 목적은?
문화

불교입문 - 불교를 믿는 목적은?

자기 수행을 통하여 인생의 모든 괴로움을 깨끗이 소멸하고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을 성취하여 최고의 인격을 완성하고 영원히 행복된 삶을 누리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며 이공덕을 중생에게 희향하여 중생을 구제하는 데에 불교 신앙의 목적이 있다.

※ 이 자료는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 알아두면 좋은 불자상식|작성자 민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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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절하는예법
문화

절하는예법

절의 의미 (오체투지)

삼보(부처님, 법, 스님)에 대한 예경과 상대방에 대한 존경을 의미하며, 스스로를 낮추는 하심의 수행입니다. 대개 참회나 기도의 방법으로 108배, 1080배, 3000배 등을 합니다.

큰절은 신체의 다섯 군데를 땅에 닿게 하는 것으로 이마, 양 팔꿈치, 양 무릎을 말합니다. 이는 자신을 무한히 낮추면서 상대방에게 최대의 존경을 표하는 것입니다.

마무리 절 (고두배)

3배 또는 108배나 3000배 등 절을 할 때, 마지막 절을 한 다음 몸을 일으키지 말고 머리를 들어 이마를 땅에서 뗀 후, 합장하고는 본인의 소원을 간단히 (1~2초간) 기원합니다.

양손을 바닥에 대고 이마를 다시 바닥에 살며시 댄 다음 일어선다.

일어서서 합장 반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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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8일
불교문화 - 사찰의 의미
문화

불교문화 - 사찰의 의미

사찰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불도를 닦는 수행 도량이자 불법을 널리펴서 중생을 제도하는 전법 도량이다. 스님들은 사찰에 거주하면서 수행 정진하며 중생을 교화. 제도하고, 재가자들은 사찰에서 행하는 법회나 예불에 동참하면서 부처님 말씀으로 세속의 때를 씻고 올바른 진리의 삶을 추구한다.

사찰은 많은 대중들 모여 살며 집회와 행사를 하는 곳이라 하여 가람(伽籃)이라고도 하고, 부처님이 상주하며 불법의 도를 선양하고 구현하는 곳이라 하여 도량(道場)이라고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절[寺]이라고 부르는데, 때로는 깨끗한 집이라는 뜻으로 정사(精舍)라고도 한다.

세계최초의 사찰은 인도 마가다국의 빔비사라 왕이 부처님께 기증한 죽림정사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사찰은 고구려 소수림왕 때 지어진 이불란사와 초문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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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입문 - 부처님께서는 돌아가셨는가?
문화

불교입문 - 부처님께서는 돌아가셨는가?

화신불인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돌아가셨지만, 부처님의 법신은 형상이 아닌 진리이기 때문에 언제나 돌아가시지 않습니다.

※ 이 자료는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 알아두면 좋은 불자상식 작성자 민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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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미술여행 - 미륵하생경 변상도
문화

사찰미술여행 - 미륵하생경 변상도

걱정 없고 풍요로운 새로운 세상이 열리다

▲ 미륵하생경변상도, 고려 13세기 전반, 견본채색, 176×91㎝, 일본 치온인(知恩院).

불교에서 새 세상을 열어줄 구원자로 알려진 미륵의 산스크리트어 마이트레야(Maitreya)는 미트라에서 유래한다.

미륵은 미래 세상에 올 부처님 남녀 모두 선업인연으로 탄생 변상도에는 미륵이 내려올 때 나타나는 현상들 압축 표현

어려운 현실을 벗어나게 해줄 구원자에 대한 기대는 하늘과 땅이 생기고 인간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언제나 피통치자들이 바라는 희망사항이었다. 우리네 조상님들은 삶이 팍팍하고 세상이 어지러울 때마다 그들을 구원해줄 미륵부처를 기다렸기에 미륵신앙은 정치적으로 이용된 예가 많다. 견훤은 금산사의 미륵불이 바로 자신이며 자신이 다스리는 후백제야말로 미륵불이 다스리는 용화의 세계라고 주장하였다. 후고구려의 궁예가 미륵불을 자칭하며 미륵관심법을 행해 백성들을 현혹한 이야기는 드라마를 통해서도 잘 알려진 내용이다. 둘 다 후삼국이라는 정치와 사회가 혼란했던 시기에 살던 인물인 것을 보면 당시 민생들의 고된 삶에서 바라던 바는 오직 미륵불이 하생하여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를 바라는 희망, 그 하나였던가 보다.

미륵은 수미산 위 도솔천에 머물면서 중생을 교화하는 보살이지만 석가모니 부처 열반 후 56억7천만년이 지난 이후 세상에 몸을 나투어 중생을 제도하게 되는 미래의 부처님이기에 보살과 부처의 불성을 함께 지니는 특성을 갖고 있다. 미륵보살이 머무는 도솔천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미륵상생경’과 도솔천의 미륵보살이 사바 세상에 내려와 중생을 구원한다는 ‘미륵하생경’ 가운데 후자가 더 인기 있는 경전이었다. 일본 치온인에 소장된 13세기 전반에 그린 고려 불화 ‘미륵하생경변상도’에는 미륵부처가 내려오셔 설법을 하시던 그날의 장면이 마치 눈앞에서 펼쳐지듯 생생한 묘사가 압권이다.

▲ 메인 그림의 하단 향 우측에 묘사된 금은보화를 쓸어 담는 모습.

미륵부처가 앉아 설법하고 계신 곳은 용화수(龍華樹)가 자라나는 숲이었기에 화림원(華林園)이라 불리던 승원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성불을 하셨듯이 미륵부처는 용화수 나무 아래서 부처로서 설법을 시작한다. 용화수는 그 모양이 수많은 보석을 토해내는 용과 같은 형상이라서 붙여진 이름인데 그림 속 미륵 부처의 광배 뒤에 그려진 4그루의 나무가 바로 용화수를 나타낸 것이다. 미륵보살은 도솔천에서의 교화를 마치고 미륵부처로 이 세상의 용화수 아래로 내려오시기 때문에 용화라는 말은 미륵불의 세상인 용화정토, 곧 미륵불 자체를 의미하는 함축적인 단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미륵부처가 오신 용화세계는 모두가 부귀하고 번성하며, 형벌도 없고 재액도 없으며, 그곳의 남녀들은 모두 선업의 인연들로 태어난다. 그 나라의 국민은 수명이 모두 8만세이고 어떤 질병의 고통이나 고뇌도 없으며 모양은 단정하고 건강하다. 수명이 길어지기에 여자는 나이가 500세가 되어야 비로소 겨우 시집을 가는데 100세 인생을 사는 현재로 치면 이건 거의 유아기 때 결혼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 석가모니 부처님의 발우를 미륵불에게 전하는 가섭존자. 메인 그림의 중단 향 우측.

그림에서 미륵부처님이 앉아계신 우측에 서 있는 늙은 노승의 손에는 금빛의 발우와 금란가사가 들려 있다. 선명한 금빛 귀걸이가 인상적인 이 스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인 마하가섭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설법을 하실 때 아무 말씀 없이 연꽃을 들어보이자 오로지 가섭존자만이 그 뜻을 알고 웃었다는 염화미소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다. 본디 인도 마가다왕국의 바라문 출신이라 그런지 귀걸이를 걸고 있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다. ‘중아함경’과 ‘미륵대성불경’에 의하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미륵부처님에게 전하는 소임은 가섭이 맡고 있었는데 이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가섭에게 헤어지고 누덕누덕 기운 가사를 전해 주는 것으로 법을 전하였기 때문이었다.

석가모니 부처님보다 다섯 살 어렸던 가섭존자는 부처님의 열반 뒤 수많은 세월동안 입멸하지 않고 계족산 석실에서 선정에 들어가 미륵불이 태어나기를 기다리며 있었다. 셀 수조차 없는 너무나 오랜 세월을 미륵불이 오시기만을 기다려서인지 얼굴과 목에는 굵은 주름이 파이고 입가는 이가 다 빠져버린 듯 합죽한 모양으로 늘어져 있지만, 앙다문 입술과 눈동자에는 책임 맡은 임무를 기필코 완성하겠다는 의연한 결의가 엿보이고 있다.

‘미륵하생경변상도’의 하단은 미륵부처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 나타나는 현상들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들로 구성되어 있다. 향좌측 하단 동굴에 앉아서 웃고 있는 장자는 미륵불이 하생하신 것을 기뻐하는 가섭존자 혹은 미륵의 부모로 해석된다. 누가 되었든 미륵부처님의 출현은 기쁘고도 기쁜 사건이었을 것이다. 하긴 미륵불이 오신 세상은 ‘비가 때맞추어 내려 곡식이 풍성하게 자라고 한 번 심어 7번 수확한다’고 하니 배고플 일도 없을 것이요.

▲ 미륵부처의 설법을 듣는 성중, 메인 그림의 중단 향우측 부분.

그림에서처럼 금은보화가 길에 널려 있어 마치 낙엽처럼 갈퀴로 쓸어 담는 세상이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미륵부처의 설법을 듣는 성중들의 얼굴은 희망이 가득하다. 미륵부처가 내려와 설법을 하고 있는 화림원이 있는 세상은 전륜성왕이 다스리는 평화로운 낙원이었다.

지상을 무력이 아닌 정법으로 다스리며 군주로서 요구되는 모든 조건을 갖춘 이상적인 지도자였던 전륜성왕의 통치하에 있었던 사람들이라 더 이상 바랄 것도 없을 법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륵부처를 맞이하는 사람들은 벌써 온통 마음을 미륵불에게 빼앗긴 모습들이다. 가늘게 눈웃음 짓는 눈가와 잔잔한 미소가 번지는 입가의 모습은 모든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미륵부처의 서원을 굳게 믿는 흡족함과 지금 이 순간, 이 공간에 딱 맞춰 내가 서 있다는 흐뭇함이 잘 나타나 있다. 전륜성왕의 입장에서 본인이 다스리던 나라의 백성이 새로운 군주에게 이렇게 달달한 눈길을 보내면 마음이 상할 만도 한데 미륵불의 설법은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전륜성왕과 그의 아내는 그 자리에서 머리를 깎고 출가성불을 결심한다.

구원자인 미륵불이 오신 세상에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물질적인 충족뿐이다. 정신적인 수양을 통해 이룰 수 있는 성불은 삭발을 감수하며 불도를 닦겠다는 확고한 결단과 노력이 있어야 이룰 수 있는 과제였다. 지금의 우리들 역시 달라지는 세상의 법도에 만족하지 말고 스스로가 달라져야 한다는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모두가 바라고 원하던 바른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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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화택(火宅)의 비유
불교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화택(火宅)의 비유

불타는 집은 사바세계, 아버지는 부처님 상징

▲ 천안 만수사 관음전의 '화택의 비유' 벽화

큰 기와집에 불이 났다. 아이들은 놀이에 정신이 팔려 불이 난 줄도 모르고 집 안에서 놀고 있다. 밖으로 나온 아버지는 집 안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집에 불이 났으니 어서 나오라”고 소리친다. 그러나 아이들은 놀이에 정신이 팔려 아버지의 고함 소리는 듣지도 못한다. 절박하고 안타까운 상황이다.

마침내 아버지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한 가지 꾀를 냈다.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이 밖에 있으니 나오너라. 양이 끄는 수레와 사슴이 끄는 수레 그리고 소가 끄는 수레가 여기 있다”고 소리를 친다. 그제야 아이들은 장난감이라는 말에 좋아하며 밖으로 나와 불길의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기뻐하며 아이들에게 커다란 흰 소가 끄는 수레를 주었다. 수레는 온갖 보석으로 장식되어 아름다웠다.

〈법화경〉 제3 ‘방편품’에 나오는 이야기다. 불난 집에서 아이들을 구해내는 아버지의 지혜로운 방편이 줄거리다. 〈법화경〉에 나오는 일곱 가지 대표적인 비유 가운데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이 이야기를 ‘화택(火宅)의 비유’라고 한다. 우리가 사는 이 사바 중생계를 불난 집에 비유한 것이기 때문이다. 중생계는 불난 집이고 그 안에서 놀이에 빠져 불이 난 줄도 모르는 아이들은 바로 우리들 중생의 모습이다. 먼저 밖에 나가서 아이들을 구출해 내는 아버지는 부처님이다.

이 비유의 일차적인 줄거리는 중생계를 불난 집에, 놀이에 빠진 아이들을 중생에 그리고 아버지를 부처님에 비유한 것이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아버지(부처님)가 아이들(중생)을 어떻게 불난 집(중생계)에서 구출(해탈)해 내느냐 하는 것이다.

“오라 비구여!”

깨달음을 얻은 뒤 부처님은 귀의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라 비구여!’라는 이 짧은 말 한 마디에는 엄청난 메시지가 담겨 있다. 부처님에게 귀의하면 진리의 실체를 듣고 깨치고 알아 행하는 모든 길이 열려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얘들아. 불난 집에서 나오너라.”

이 역시 부처님이 중생들을 향해 고통의 육도를 벗어나 열반적정의 대자유를 맞이하라는 외침이다. 그러나 중생들의 두꺼운 업식은 집에 불이 났다는 말에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부처님은 선물을 준다고 방편을 쓴다.

양이 끄는 수레와 사슴이 끄는 수레, 그리고 소가 끄는 수레가 선물이다. 양이 끄는 수레는 성문승(聲聞乘)이다. 중생의 근기가 일천하여 듣고 보고 체험하는 인연을 통해 진리를 받아들이는 단계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우리도 어지간한 일은 직접 보고 느끼고 체험하기 전에는 믿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만큼 마음이 닫혀 있고 순결치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소가 끄는 수레는 연각승(緣覺乘)의 상징이다. 어떠한 인연을 통해서 깨우침을 얻을 수 있는 단계이니 달리 벽지불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은 스스로의 정진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 불이 나자 곧바로 불이 난 줄을 알고 집 밖으로 나간 아버지처럼. 그러나 중생은 불길을 보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화상의 위험에서도 집안의 유희를 뿌리치지 못한다. 수레라는 선물이 있기까지는 불난 집을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소가 끄는 수레는 보살승(菩薩乘)의 상징이라 하는데 이는 우주의 연기적 질서를 다 깨치고 그 궁극의 공함을 체득한 단계로 설명된다.

이러한 성문 연각 보살승의 단계는 결국 깨달음으로 가는 방편이라는 것이 〈법화경〉 방편품의 핵심이다. 그래서 ‘화택의 비유’에서는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커다란 흰 소가 끄는 수레를 선물한다. 이 흰 소를 ‘대백우(大白牛)’라 하는데 일불승(一佛乘)의 표현이라고 말한다. 성문 연각 보살승의 다 회통하여 들어가는 깨달음의 자리 말이다.

이 ‘화택의 비유’는 선종의 선사들도 많이 인용했다. 마음의 불길을 잡지 않고는 무애해탈의 대도를 찾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 십 번씩 불길에 갇힌다. 마음을 잘 다스려 불을 내지 않으면 좋겠지만, 불뚝불뚝 솟구치는 불길을 끄는 지혜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여기에 소개한 벽화는 천안 만수사 관음전 왼쪽 벽에 그려진 벽화다. 비유를 알고 보면 화면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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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태조와 라한
불교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태조와 라한

태조 이성계가 등극하기 전에 함경도 함흥에서

그 아버지 환조(桓租)의 상(喪)을 당하고 장지(葬地)를 얻지 못하여 답답하게 여기든 중이었다.

하루는 그 머슴이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다가 스님 두 분이 산 아래를 가리키며

  • 정말 명당자리군 당대에 군왕이 나겠는데 하니까

또 다른 스님이 말하기를

  • 정말 그렇군요. 저 자리는 중국 같으면 틀림없이 천자가 날 자리입니다.

이와 같은 얘기를 엿들은 머슴이 곧 바로 이성계에게 달려가서 그 말을 전하였더니

그는 말을 타고 달려가서 두 스님을 뵙고 그 땅을 가르쳐 달라고 해서

그의 아버지를 장사지내 모시었으니 그곳이 바로 함흥의 정릉(定陵)이라고 한다.

이렇게 하여 이성계는 명당을 얻어 쓰고

그 뒤에 무학대사에게서 이상한 꿈의 해몽해 주는 말씀을 듣고 왕이 될 예시를 받았다.

그리고 공덕을 쌓기 위해 석왕사라는 절을 짓고 오백 나한을 모시기 위해 응진전(應眞殿)을 지었다.

그때 마침 함경도 길주에 있는 광적사가 병화로 말마암아 패사가 되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광적사에 방치된 대장경일부와 오백 나한상을 석왕사로 옮겨 모시기로 작정하였다.

이 오백 나한상을 모셔 올 때에 철주에서 원산포까지는 배로 옮겼으나

원산으로부터 석왕사까지는 이성계가 직접 돌로 된 나한상을 한 분씩 한 분씩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옮겨 모시었다.

오백이나 되는 나한상을 끝까지 한 분씩 잘 옮겨 모시어 498분을 석왕사로 옮겨 모시게 되었다.

그런데 맨 마지막 두 분만이 남게 되자 조금 귀찮은 생각이 들어

두 분의 나한상을 한꺼번에 운반하여 모시게 되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기도 후 살펴보니

맨 나중에 모셔온 존상 한 분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를 않는 것이었다.

이성계가 놀라서 사방을 두루 찾아 보았으나 종시 알 수가 없으므로 단념하고 있었더니

그날 밤 꿈 가운데 없어진 존상이 나타나서 말하되

  • 그대가 그만큼 신심을 발하여 나한상을 하나씩 업어 오다가

    나만은 따로 업어가지 않고 덧붙여 업어가니 그렇게 성의가 부족하여 되겠는가.

    이런 푸대접 받기가 싫어서 나는 묘향산 비로암에 가 있으니 그리 알아라.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다.

곧 사람을 보내어 알아보게 하였더니 과연 그곳에 나한상 한분이 계신다는 것이었다.

이성계가 곧 바로 그곧까지 가서 정중한 마음으로 다시 모시고 와서

참회하고 뉘우쳤으나 이튿날 보니 다시 없어지고 말았다.

할 수 없이 없어진 그 나한존상외 자리에는 명패만을 모시게 되었다.

이와 같은 연유로 해서 석왕사의 오백 나한이 모셔진 응진전에 한 분 성상이 모자라는 것이다.

이성계는 이와 같이 오백 나한을 모시고 3년에 걸려 오백 성재를 정성껏 올리었다.

그 후 조선을 건국하고 등극한 태조 이성계는

무학대사에게 가르침을 얻고자 하여 찾아 봤으나 행방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팔도의 방백으로 하여금 무학대사를 찾아 모셔오게 하라는 영을 내렸다.

팔도의 방백들이 곡산(谷山) 에 이르러 고달산(高達山) 초막에 도승이 살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혹시 그가 무학대사인가 싶어서 그들은 시종하는 사람들을 물리치고

친히 골짜기 윗봉에 올라가서 각각 그 관인(官印) 을 소나무 가지에 걸어놓았다.

방백의 일행이 초암에 이르러 본 즉 과연 눈빛이 빛나는 노장이 호미로 채전을 메고 있었다.

삼도 방백이 그에게 대화를 청하였다.

  • 이 암자는 누가 지었읍니까?

  • 이 절은 내가 지었소만……

  • 이런 험산에 무얼 보고 지었습니까?

  • 예 저 건너 삼인봉(三印峯)을 응하여 지었지요.

  • 어째서 저 봉우리를 삼인봉이라 합니까?

  • 이곳에 절을 짓고 있으면 3도 방백이 와서 저 봉우리 나뭇가지에

인(印)을 걸어놓을 날이 있을것 같아서 그리 했지요.

스님의 대답에 방백들은 깜짝 놀라 일어나서 그 스님에게 예배를 하였으니

그는 과연 무학대사였다.

그들은 임금이 스님을 청한다는 말을 하고 모시고 가게 되었다.

태조는 크게 기뻐하며 곧 대사를 왕사(王師)로 모시고 천도(遷都)의 일을 문의하였다.

무학대사는 여러 번 사양하였으나 끝내 물리치지 못하고 두루 도읍지를 고르다가

마침내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궁궐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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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미술여행 - 법을 구하러 서쪽으로 가다
문화

사찰미술여행 - 법을 구하러 서쪽으로 가다

‘서유기’ 내용 도해로 흥미·포교 함께 추구

▲ 현장병성건대회도, 통도사 용화전 벽화.

‘서유기’와 관련된 예능프로를 보다 문득 통도사 용화전의 벽화가 생각났다. 통도사 용화전의 내부를 장엄한 벽화 가운데는 흥미롭게 손오공과 저팔계가 나오는 ‘서유기’ 장면이 있다. ‘서유기’ 장면은 법당의 동측 면에 3점, 서측 면에 4점이 있는데 사찰벽화 조사 작업이 이루어지기 전에 이 그림들은 막연히 불교 인연설화를 소재로 하여 그린 것 인줄 알고 있었다. 사진으로 소개한 현장병성건대회도(玄藏秉誠建大會圖)는 현장법사가 당 태종의 명을 따라 수륙재를 여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화면 하단 용을 밟고 향 공양을 하는 인물은 수륙재를 발원한 당 태종이고 두광이 그려진 승려가 현장법사이다. 사찰 벽화에 고사 인물이나 ‘삼국지연의’에서 소재를 택하여 작품을 완성한 예는 흔히 있으나 ‘서유기’가 그려진 예는 처음이었기에 2008년 당시 이 사실이 알려 졌을 때 통도사 용화전 ‘서유기도’는 세간의 이목을 받았다.

통도사 ‘현장병성건대회도’는 현장법사가 수륙재 여는 장면 경천사지석탑도 ‘서유기’ 부조 자기극복의 수행자 마음 은유

‘서유기’는 당나라 태종 때(629년)의 승려 현장이 수도 장안을 출발하여 인도 각지를 순회하며 경전과 불상 및 불사리를 모아 645년 다시 장안으로 돌아왔던 역사적 사실을 소설화한 것이다. 현장법사는 경율론 삼장에 모두 밝았기에 흔히 삼장법사라고도 하는데 그의 업적과 명성은 구전되면서 점차 신비화되었고 그의 여행기는 전설적인 모험담이 되어 사찰의 벽화나 석탑에 조형되게 되었다. 현장법사가 인도에 법을 구하러 가는 설화를 그린 작품들을 ‘현장취경도’라고 하며 10세기 중반부터 독립적인 소재로 그려졌다는 기록은 있지만 남겨진 작품이 없기에 구체적인 모습은 알 수가 없다.

어느 해 인가 필자가 찾았던 유림굴의 벽면에는 흰 코끼리를 타고 하늘에서 강림하는 보현보살과 권속의 무리를 향해 벼랑의 끝에 서서 두 손을 모으고 경배를 올리는 현장법사, 털북숭이 행자로 묘사된 손오공이 그려져 있었다. 백마의 등에 올려 진 연화대좌 위에 보자기로 싸서 고이고이 모신 짐 보따리가 있는 걸 보면 아마도 어렵게 불경을 구해서 돌아가는 길에 보현보살일행을 만났었나보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손오공과 저팔계, 사오정이 나오는 ‘서유기’는 16세기 후반에 명나라 시절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소설이 나오기 300여년 전 서하시대(1032~1277) 불교벽화에 이런 그림이 그려져 있는 걸 보면 아마 작가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현장법사와 관련된 불교설화를 바탕으로 상상력을 발휘하여 100회에 이르는 대작을 완성하였던 것 같다.

▲ 현장취경도, 서하, 안서 유림굴 제3굴 서벽 남측 ‘보현보살도’ 부분.

명나라 시대 ‘서유기’가 만들어지기 이전 현장법사가 손오공을 데리고 법을 구하러 간 서사적인 이야기는 1348년 고려시대 후기에 세워진 경천사지 10층 석탑에도 보인다. 석탑을 자세히 보면 ‘서유기’에 나오는 장면들을 부조로 새겨 놓았는데 탑에 ‘서유기’ 내용을 도해한 까닭은 등장인물로 하여금 내부에 안치된 사리를 수호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경천사지 10층 석탑의 중대석 남동측면에는 ‘서유기’에 나오는 ‘홍해아(紅孩兒)’이야기가 새겨져 있다. 구름과 같이 보이는 파도를 타고 중앙에 서 있는 인물은 관음보살이고 그 뒤 말을 잡고 있는 두 명의 행자는 아마도 현장법사의 제자들일 것이다. 관음보살의 맞은편 석장을 쥐고 있는 인물은 현장법사인데 관음보살이 홍해아의 불 공격을 막기 위해 정병에 든 감로수로 세상을 물바다로 만들었기 때문에 술수를 쓸 수 없는 그는 제자 등에 업혀 있는 것이다. 물바다 세상에서 저렇게 현장을 업어 살리는 인물은 십중팔구 손오공이지 싶은데 부처님의 법을 구하기 위해 떠난 십만팔천리 긴 여정의 굽이굽이마다 손오공이 보여주는 스승을 봉양하는 과정이 참으로 힘들어 보여 어릴 때 ‘서유기’를 읽으면서 괜스레 애가 쓰였다.

그들 사이 연화대좌에 앉아 있는 어린아이는 홍해아를 나타낸 것 이다. ‘서유기’에 나오는 요괴들은 모두 불로장생을 위해 삼장법사를 잡아먹고자 변장하여 술수를 쓰는데 순진한 건지 눈치가 없는 건지 삼장법사는 계속 그들을 도와주라고 손오공을 닦달만 한다. 화운동 동굴에 사는 우마왕과 나찰녀의 아들 홍해아를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홍해아는 아버지와 손오공이 의형제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위협하였고 비록 모습은 어린아이였지만 강력한 그의 무력을 손오공 일행은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때 관음보살이 기지를 발휘하여 홍해아를 유인해 연화대에 앉혀 붙잡았고 이후 홍해아는 관음보살의 제자가 돼 선재동자가 되었다 하니 이야기를 기가 막히게 엮어 흥미진진한 줄거리를 만든 작가의 능력이 놀라울 뿐이다.

▲ 홍해아 이야기, 1348년. 경천사지 10층 석탑 기단 중대석 부분.

몰상식한 한 일본인에 의해 불법 반출되어 일본까지 갔다가 부처님의 가호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힘든 과거를 지닌 경천사지 10층 석탑의 부조는 파손이 심해 알아보기가 힘들지만 1465년 이를 그대로 본떠 만든 원각사지 10층 석탑의 ‘서유기’ 부도는 그보다는 보존 상태가 좋다. 탑에는 모두 8장면의 ‘서유기’ 내용을 도해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사진으로 소개한 장면은 당태종설대회이다. 전각 속에 황제로 보이는 한 인물이 앉아 있고 그 옆 승려가 있는 이 장면은 삼장이 기우제를 지내자 큰 비가 3일간 내렸고 이에 대한 보답으로 천자는 현장에게 금란가사와 아홉 고리가 달린 석장을 주고 삼장법사로 봉해 나라의 평화와 국민의 안전을 위해 서천에서 경전을 구해 돌아오라는 명령을 내리는 장면을 도해한 것이다. 역사 속에서 현장법사는 나라의 출국금지를 어기고 몰래 당나라를 벗어나 인도로 향했지만 이야기 속에서는 현장이 황제의 칙령을 받들어 출국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 당태종설대회, 1465년, 원각사지 십층석탑 중대면석 동측 동면.

흥미로운 모험담이 가득한 ‘서유기’에서 요괴들을 물리치는 장면들은 번뇌를 물리쳐 자기 극복과 깨달음을 얻는 수행자의 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기에 구법적인 성격도 강하다. 현명하신 우리의 선조들은 불사리를 품고 있는 석탑의 수호자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현장법사와 손오공 일행을 선택하여 대중의 관심과 불법을 포교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근두운을 불러 타고 가면 찰나에 도착할 거리를 수행하는 마음으로 13년이라는 기나긴 시간을 한 걸음씩 걸어간 손오공이 보여준 구도의 길은 어쩌면 LTE 세상에서 빠름만을 찾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법을 구하는 마음의 자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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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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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사찰의 구조 - 삼성각(三聖閣)
문화

전통사찰의 구조 - 삼성각(三聖閣)

삼성각은 주로 법당의 뒤쪽 한켠에 있다. 삼성각 안에는 우리 고유의 토속신들, 즉 산신. 독성. 칠성 등을 모신다. 모신 신상에 따라, 산신각. 독성각. 칠성각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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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입문 - 보현보살?
문화

불교입문 - 보현보살?

석가여래 곁에서 문수보살과 함께 부처님을 보살피는 보살로서 큰 행원을 발하여 중세를 건지시는 보살이다. 법화경과 화엄경등에 출현하시다. 일반적으로 코끼리를 타고 계신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이 자료는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 알아두면 좋은 불자상식 작성자 민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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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연꽂을 전한 부처님 마음, 가섭존자 ​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연꽂을 전한 부처님 마음, 가섭존자 ​

부처님께서 마가다국 왕사성에 있는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실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하루는 제자들이 부처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 부처님께서 거처하시던 여래향실 앞으로 모여들었습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제자들이 모여들자 가부좌를 하고 앉아 계신 부처님께서 법문을 하시는가 싶었는데, 그 날따라 부처님께서는 아무런 말씀이 없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이며 부처님께서 법문을 하시기만 기다렸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손에 연꽃을 한 송이 쥐고 계셨는데, 그 하얀 연꽃을 조용히 들어서 대중들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모두 어리둥절하여 서로 얼굴만 멀뚱 멀뚱 쳐다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도 영문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때 대중 가운데 가섭존자만이 부처님의 뜻을 알아차리고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고 합니다.

사찰 벽화이야기 3. 연꽂을 전한 부처님 마음, 가섭존자

부처님께서 마가다국 왕사성에 있는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실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하루는 제자들이 부처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 부처님께서 거처하시던 여래향실 앞으로 모여들었습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제자들이 모여들자 가부좌를 하고 앉아 계신 부처님께서 법문을 하시는가 싶었는데, 그 날따라 부처님께서는 아무런 말씀이 없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이며 부처님께서 법문을 하시기만 기다렸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손에 연꽃을 한 송이 쥐고 계셨는데, 그 하얀 연꽃을 조용히 들어서 대중들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모두 어리둥절하여 서로 얼굴만 멀뚱 멀뚱 쳐다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도 영문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때 대중 가운데 가섭존자만이 부처님의 뜻을 알아차리고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고 합니다.

"나의 법은 가섭에게 부촉하노라."

말하자면 가섭이 부처님의 법을 이어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염화미소拈華微笑라고 부르는 말입니다. 염화미소의 '염 (拈)'은 '집을 염'자 입니다. 그래서 '염화'라는 것은 '연꽃을 집어 들었다'는 말이며, 가섭존자가 빙그레 웃었다고 하여 미소, 즉 염화미소라는 말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가섭존자에게 마음을 전한 것은 가섭과 부처님께서 서로 뜻이 통하였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말이 아닌 마음으로 가르침을 전하는 것을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고도 합니다. 가섭존자는 두타제일로서 부처님처럼 출가자의 수행에 엄격하셨기 때문에 부처님의 뜻을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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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원효와 해골물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원효와 해골물

<반룡사- 경북 경산>

사찰벽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장면으로, 원효가 해골을 들고 있는 그림이다

의상과 함께 중국 유학길에 오른 원효는 어느 날 늦은 밤에서야 겨우 노숙 할 곳을 찾아 피곤한 몸을 뉘어 바로 단잠을 이루게 된다.

그날의 긴 여정에 피곤했던지 한방 중 갈증을 느껴 자던 곳 주변을 더듬어 고인 물을 찾아 마시고는 다시 잠이 드는데.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어제 밤 그렇게 달게 마신 물이 해골에 고여 있던 물인걸 알고. 너무 놀라 구역질을 하며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다.

순간 원효는 마음에 따라 세상만사가 달라진다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우리나라 국민이면 다 아는 이야기다.

마신 물은 어제도 오늘도 해골에 담겨진 같은 물인데

같은 장소 같은 물을 보고 어제는 극락이고 오늘은 지옥처럼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자기의 생각 만들고 있기 때문 아닌 가

물 그 자체는 원래 깨끗함도 더러움도 없는데, 생각이 깨끗함 더러움을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깨달음을 얻은 원효는 당나라 유학길을 포기하고 발걸음을 돌린다는. 이야기가 유명한 원효의 ‘해골 물’ 일화다.

▮ 원효의 해골 물은 사실인가 아닌가 ??.

원효는 해골 물을 마시고 깨달았다고 교과서를 보고 자라온 대한민국 온 국민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원효는 해골 물을 마시지 않았다는 말이 한때 회자(膾炙)가 되었던 때가 있었다?.

일본이 국보로 자랑하고 있는 화엄연기라는 두루마리 족자에 나타난 원효의 이야기에서

해골 물 이야기는 없고 다만 무덤에서 잠을 자면서 악몽에 시달리는 상징이 나타나고 있고

<화엄연기-일본>

고승들의 이야기를 다룬 중국에서 전해오는 송고승전(宋高僧傳)에서도 같은 내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원효는 해골 물을 마시지는 않았다는 주장이었다.

내용인 즉,

당나라 유학길에 오른 원효와 의상은 여행길이 늦어진 어느 날 묵을 집을 찾아 다니다가

어둑한 밤 겨우 잡은 잠자리는, 아늑한 토굴인 줄 알고 잠을 편히 잤는데, 일어나 보니 옆에 해골이 있었다. 라고 결말이 된 이야기가

결국 ‘해골 물을 마셔버렸다 라고 소문이 난 것은 후세에 말이 덧붙였을 것이라 하는 이야기를‘ 곱씹어보니 일리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껏 배우고 듣고 알아온 이야기가 비록 사실과는 다르다고 하더라도, 그 목적이 순수할 뿐만 아니라, 효율을 극대화하고 있으니 이야기가 그르다며 시시비비에만 열을 내게 된다면 이야기의 본질을 느낄 수 없음이다.

마셨다, 안 마셨다는 논쟁 보다는 큰 주제는 ‘원효는 공동묘지에서 잠을 잤고, 그곳에서 깨달음을 얻게 되는 특별한 사건은 있었다. 이다.

마음하나 열리니 만법이 생기고, 마음하나 닫히니 만법도 사라지는 구나

깨달음이 멀리 당나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참나 속에 있었네.

▮ 행복의 마음.

나폴레옹은 유럽을 제패한 황제였지만 내 생애에 행복한 날은 6일 밖에 없었다고 고백했고

헬렌 켈러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희망의 아이콘 이었지만 내 생애 행복한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는 고백을 남겼다.

마음먹기에 따라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 선다.

‘원효와 해골물’에서는 일체유심조(一切 唯心造)를 통해 긍정의 힘을 느끼게 하는 그림이다.

원효는 해골에 고인 물을 비유 하며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 회향.

자살'이라는 글자를 반대로 하면 '살자'가 되며

영어의 스트레스(stressed)를 반대로 하면 디저트(desserts)란 말이 됩니다.

어떤 상황이나 조건 때문에 행복하고 불행한 것이 아니다. 내 앞에 닥친 상황을 내가 어떻게 보고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행복도 불행도 결정된다 하지요.

그저 삶은 내 마음 먹기에 달린 것이라 하는 데,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 이렇게 만난 것만으로도 큰 사건인데

그래서 무조건 행복해야한다 입니다.

갑자기 목이 말라 오네요.

▮ 모아보는 원효와 해골

:: 경흥사- 경북 경산

:: 백련사- 전남 강진

:: 범어사- 부산 금정

:: 송림사- 경북 칠곡

:: 오어사- 경북 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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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신묘장구 대다라니 (13일차)
문화

불교문화 - 신묘장구 대다라니 (13일차)

**보명법사의 신묘장구대다라니 3×7=21일 기도 13일째. **

  1. 천수경이 세상에 나온 인연.

이제, 천수경이 이 세상에 나오게 된 인연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어느 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보타락가산(補陀落迦山) 관세음 궁전 보배사자좌(寶貝獅子座)에 앉아 계실 때였습니다.

그 때 그 자리에는 총지왕보살(摠持王菩薩)님을 중심으로 보왕(寶王)ㆍ약왕(藥王)ㆍ약상(藥相)ㆍ관음(觀音)ㆍ세지(勢至)ㆍ화엄(華嚴)ㆍ장엄(莊嚴)ㆍ보장(寶藏)ㆍ덕장(德藏)ㆍ금강장(金剛藏)ㆍ허공장(虛空藏)ㆍ미륵(彌勒)ㆍ보현(普賢)ㆍ문수사리(文殊師利) 등의 대법왕자(大法王子)들과 우루빈나가섭(優樓頻螺迦葉)을 중심으로 한 아라한과를 증득하고 십지(十地)에 오른 수많은 성문승(聲聞乘)과 사천왕(四天王), 한량없는 천(天)ㆍ용(龍)ㆍ야차(夜叉)ㆍ건달바(乾達婆)ㆍ아수라(阿修羅)ㆍ가루라(迦樓羅)ㆍ긴나라(緊那羅)ㆍ마후라가(摩睺羅迦)ㆍ인비인(人非人) 등과 허공ㆍ바다ㆍ강 등의 모든 신들이 함께 법회에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관세음보살이 가만히 신통력을 나타내어 머리에 쓴 화관 정수리 속으로부터 큰 광명을 놓으니, 그 빛은 시방세계와 삼천대천세계를 모두 비추어 금색으로 만들었고,천궁과 용궁의 모든 궁전들이 흔들리며, 큰 바다와 강과 호수ㆍ철위산(鐵圍山)ㆍ수미산(須彌山) 등을 마구 흔들어 해와 달ㆍ별들이 빛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그때 총지왕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어떠한 인연으로 이러한 신통변화가 생겨납니까? 저희들을 위하여 설명하여 주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장하다, 총지보살이여, 모든 중생을 위하여 네가 묻는구나.
지금 이 빛은 옛날 옛적에 이미 대자대비를 성취하고 한량없는 다라니문을 잘 수행한 관세음보살이 모든 중생을 안락하게 하고자 하여 이와 같은 신통력을 나타낸 것이다".

그때에 관세음보살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에게 있는 대비심다라니(大悲心陀羅尼)를 설하고자 합니다. 모든 중생의 안락을 얻게 하기 위하여, 그들의 수명과 풍요를 얻게 하기 위하여, 일체 악업중죄(惡業重罪)와 모든 작난을 여의고 일체 청정한 법과 모든 공덕을 증장시키고 일체 모든 착한 일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모든 두려움을 멀리 여의고 구하는 바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설하고자 하오니 허락하여 주옵소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좋다, 속히 설하라. 여래는 물론 시방의 모든 부처님들도 다 기뻐하리라"

이렇게 하여 천수경이 처음으로 세상에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경은 관세음보살님이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오랜 옛적에 천광왕정주여래 (天光王靜住如來佛)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무량업겁 전에 천광왕정주여래께서 일체중생을 위하여 이 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를 하셨고 그때에 여래께서 관세음보살에게 부탁하시기를,

"선남자아, 너는 마땅히 이 대비심주를 수지하여 악세(惡世)의 번뇌가 중한 일체 중생들을 위하여 널리 큰 이익을 짓도록 하라" 하셨습니다. 그 때 관세음보살님은 너무나도 기뻐서 그 부처님 앞에서 맹세하기를, "만약 제가 오는 세상에 일체 중생을 안락하게 하고 저들이 이익을 능히 감당할 수 있다면 저로 하여금 즉시 내몸에 천수천안(千手千眼)이 갖추어 지도록 해주소서" 하고 발원하는 순간 관세음보살의 몸에는 천수천안이 갖추어졌다고 합니다.

여기서 관세음보살님의 천수천안은 일체중생을 제도하겠다는 대비행의 서원에 의하여 갖추어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관세음보살의 천수천안을 단순히 숫자로 파악할 것이 아니라, 앞서 말한 것처럼 상징적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입니다.

왜냐하면 설사 눈이 천 개요 손이 천 개라 할지라도 그것을 움직이는 마음이 작용하지 않으면 한낱 괴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관세음보살님의 천수천안은 관세음보살님이 중생들의 가지가지 어려운 사정을 속속들이 살피시는 한량없이 지혜로운 마음의 눈 즉, 혜안과 온갖 방편을 걸림없이 구사하여 중생들의 근기에 맞추어 교화시키는 천만 가지 방편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틀림없습니다.

불기 2570년 4월 23일 팔공산 감고사지기 보명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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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3일
사찰 벽화이야기 - 보경당-인생 (안수정등도)
불교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보경당-인생 (안수정등도)

끝없이 황량한 벌판에 한 나그네가 가고 있었다.

가도 가도 인가는 보이지 않고 길도 없는 벌판이었다.

그러한 나그네 앞에 한 마리의 사나운 코끼리가 나타나 달려 오고 있었다.

겁에 질려 죽을 힘을 다해서 도망치던 나그네는 다행히도 한 우물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우물에는 한 줄기의 넝쿨이 우물 안으로 내리 뻗어 있었다.

나그네는 급히 넝쿨을 타고 우물 안으로 들어가 나무뿌리에 매달려 몸을 숨겼다.

당장에라도 밟아 죽일 듯이 뒤쫓아 왔던 코끼리는 좁은 우물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기에 우물 주변을 맴돌 수 밖에 없었다.

코끼리의 위험에서 몸을 피할 수 있게 된 나그네는 나무뿌리에 매달려 우선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잠시 후 우물 속을 휘둘러본 나그네는 소스라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윗쪽으로 쳐다보니 검은 쥐 흰 쥐 두 마리가 나무뿌리의 윗 부분을 갉아 먹고 있었다. 생명처럼 매달려 의지하고 있는 그 나무뿌리를 두 마리의 쥐가 갉아 먹고 있으니 오래지 않아 그 나무뿌리는 끊겨 밑바닥으로 떨어질 판이었다.

그리고 사방의 우물 안 벽에는 네 마리의 독사가 나그네를 향하여 독을 뿜으며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있고, 아랫쪽 우물 밑바닥에는 무서운 독룡이 노려보고 있는 것이었다.

겁에 질린 나그네가 급히 우물 밖으로 나가려고 위를 쳐다보니 코끼리는 보이지 않고 우물 입구쪽에 연기가 자욱하고 불꽃이 튕겨 오르는 것이 보였다. 들불이 일어나 휩쓸고 있는 것이었다.

윗쪽으로도 아랫쪽으로도 또 옆으로도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한 줄기 나무뿌리에만 의지하고 매달려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머리 위에서 두 마리의 쥐가 나무뿌리를 갉아 먹고 있으니 언제 끊겨 독룡이 있는 밑바닥으로 떨어지게 될지 몰라 나그네는 불안에 떨고 있었다.

그때 다섯 방울의 꿀물이 나그네의 입술에 똑 똑 떨어져 입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나그네는 그 달콤한 꿀맛에 지금까지의 모든 두려움과 괴로움을 잊고 꿀물이 떨어진 쪽을 쳐다 보았다. 거기에는 꿀벌집이 있었다. 나그네는 입을 벌리고 꿀물이 벌어지기를 바랐다.

그때 나무가 흔들리는 바람에 꿀벌들이 놀라서 날아다니며 나그네의 얼굴과 머리를 쏘았다.

나무뿌리를 잡고 있는 손을 놓는다면 밑으로 떨어져 독룡에게 먹히고 말 것이며, 벌을 피하여 머리를 휘젓고 몸을 뒤틀다가는 네 마리의 독사에게 물릴 것이다. 성난 코끼리와 들불 때문에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 나그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지경이다.

위의 이야기는 불설비유경(佛說醫輸經)에 나오는 인생에 대한 비유이다.

어리석은 인생은 삶의 참모습을 이해하지 못하고 잘못되고 그릇된 생활에서 헤어나지를 못한다.

이 비유에 나오는 나그네는 바로 우리들 인생이며, 황량한 벌판은 무명의 긴밤(無明長夜)에 비유하고 코끼리는 무상(無常)에, 우물은 생사의 험난한 이 세상에, 한줄기 덩쿨은 생명에, 검은 쥐 흰 쥐 두 마리는 낮과 밤에, 덩쿨을 쥐가 갉아 먹는 것은 순간순간 늙어가는 것에, 네 마리 독사는 우리의 육신을 구성하는 사대(四大; 흙, 물, 불, 바람의 네가지 요소)에, 다섯 방울의 꿀은 오욕(五欲; 재물, 애욕, 음식, 명예, 수면 등의 다섯가지 욕망)에, 벌은 삿된 생각에, 들불은 노병(老病)에, 독룡은 죽음에 각각 비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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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사리장엄과 복장물
문화

불교문화 - 사리장엄과 복장물

사리장엄이란 사리를 봉안하는 갖가지 장엄구다. 사리를 담는 사리구와 이 사리구를 탑 속에 봉안하는 사리 장치를 통틀어 일컫는다. 사리장엄에는 사리를 담는 사리병과 그것을 보호하는 합이 있다. 사리병은 신라시대에는 유리와 수정으로 만들었으나, 고려시대에는 금속재가 많이 쓰였다.

복장물은 불상을 조성하면서 불상 속에 넣는 사리, 불경 등을 말한다. 넓은 의미로는 불상, 보살상, 나한상 등의 여러 존상 내부에 봉안 되는 모든 불교적 상징물을 가리킨다.

처음에는 불상을 조성할 때만 복장을 했지만, 후대에는 불상을 수리하거나 금칠을 다시 입힐 때도 복장을 했다. 그러므로 복장물은 해당 불사의 조성 연혁은 물론, 당시 신앙 형태, 사경미술 수준, 장인과 발원자의 신분 등을 알아내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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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상의 종류 - 보살상
문화

불상의 종류 - 보살상

보살상은 머리에 보관(寶冠)을 쓰고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천의(天衣)를 걸치고, 장신구로 장엄한 온화한 모습이다. 보살은 부처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중생과 함께 있는 분이다. 보살상에는 단독상도 있지만 거의가 협시상이며, 입상과 좌상 등의 형태가 다양하다. 보살은 여래상의 좌우 보처이기 때문에 여래상을 보고 알 수 있으며, 손에 든 물건 즉 지물이나 보관의 형태에 따라서도 구분할 수 있다.

① 관세음보살상

관세음보살은 자비를 상징하는 보살이다. 보관의 중앙에 아미타불의 화현을 모시고 있으며, 연꽃 . 감로수병 등을 손에 들고 있다. 십일면 또는 천수천안의 모습도 있다.

② 문수보살상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로서, 주로 왼손에 연꽃을 들고 사자를 타고 있다.

③ 보현보살상

보현보살은 대자비의 실천행을 상징하는 보살로서, 코끼리를 타거나 연화대에 올라서 있는 모습이다.

④ 지장보살상

지장보살은 대비원력을 상징하는 보살이다. 스님 모습으로 삭발한 머리에 두건을 둘렀으며, 육환장(六環杖)을 들고 있다. 이 육환장 꼭대기에 아미타불의 화현을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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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벽화이야기 - 도솔래의 (兜率來儀) - 아름다운 선물 말보시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도솔래의 (兜率來儀) - 아름다운 선물 말보시

<안일사- 대구 남구>

마야부인이 낮잠을 자던 중 상아가 여섯 개인 흰 코끼리가 날아와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있다.

대부분의 사찰에서 다루어지는 대표적인 벽화로, 부처일대기를 8장면으로 압축하여 묘사한 팔상도(八相圖) 중 첫 번째로 석가의 어머니 마야부인의 태몽을 다룬 그림이다

우리나라의 용꿈과 같이 인도에서는 흰 코끼리 꿈은 태몽으로는 최고로 생각하며 앞으로 태어날 석가의 범상치 않은 인물의 출현을 암시하는 그림이다.

▮ 태몽으로 본 어머니의 지혜

어느 날, 나름대로는 성공한 두 형제가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동생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형 사실 내가 이렇게 성공 한 데에는 남다른 태몽 꿈을 갖고 있어, 어머니가 내게 말하길 나를 잉태한 어느 날, 용 세 마리가 치마 속에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지 뭐야’

그 말을 듣고 형은 깜짝 놀라며, ‘내 이야기도 들어보렴, 어머니가 내 태몽에서는 아홉 마리가 치마 속에 들어와 춤을 추었다 던데 ?...’

두 형제는 박장대소를 하며 어머니의 큰마음에 감동 받았다. 사실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

아들아 넌 남다른 태몽으로 태어났으니 "넌 할 수 있어, 넌 큰 인물이 될 거야, 그리고 난 널 믿어"

힘을 실어주는 말 한마디로도 누구에게는 그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칭찬의 힘이 크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아무리 좋게 봐 주려 하여도 좋은 점을 찾기 힘들 때가 있다.

운동을 잘하려면 많은 운동연습이 필요하고, 부자가 되려면 부자연습 필요하듯 칭찬도 연습이 필요하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명언 중에는 “착한 아들딸을 을 원한다면 내가 먼저 좋은 부모가 되는 거고, 좋은 부모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좋은 아들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남편이나 아내, 상사 부하직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결론적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는 유일한 방법은 나를 먼저 긍정적으로 바꾸어 놓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마야부인은 석가모니를 낳고 7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일찍 엄마를 잃고 좌절감에 빠져있는 어린 석가에게 주위사람들이 태몽으로 들려주는 아름다운 격려는 그에게 얼마나 큰 힘과 큰 용기가 되었을까?

‘도솔래의’는 태몽을 통해 긍정적인 칭찬의 결과가 얼마나 위대한 인물을 만들어내는지를 느끼게 하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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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미술여행 - 닫집
문화

사찰미술여행 - 닫집

부처님 상징하는 법당 속 또 다른 법당

▲ 청양 장곡사 하대웅전 감입형 닫집.

사찰의 큰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을 모신 자리 위를 보면 집 모양의 작은 전각이 천정에 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를 닫집라고 한다. 부처님이 계신 공간을 꾸미는 닫집의 어원에는 지위나 계층이 높은 사람이 머무는 장막이 쳐진 ‘닫힌 집’, 당에서 수입한 ‘당가(唐家)’, 두드러진 집이라는 뜻으로 ‘돋집’, 위에 매달아 놓은 집이라서 ‘달집’이라는 여러 설이 있다. 닫집은 해를 가리는 산개(傘蓋), 보개(寶蓋)에서 발전하여 만들어진 장엄구로서 천개(天蓋)라고도 하지만 사실 천개와 불교 전각과 같은 모양의 닫집은 차이가 있다. 따가운 햇살로부터 존귀한 사람을 보호하는 의미를 담은 천개는 산개라고 해서 인도 스투파의 꼭대기 장식처럼 불교미술에서 부처님의 상징물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법당 속의 또 다른 법당인 닫집 역시 부처님을 상징하는 미술품으로 발전하였다.

부처님공간 장엄하는 특별한 전각 햇빛 가리는 산개·보개에서 발전 착시 현상 활용해 장엄 효과 더해 불교 공예품으로서 가치 극대화

우리가 보는 사찰의 닫집들은 대부분 조선시대 만들어진 것이지만 통일신라시대 닫집은 사리를 보관하였던 사리함에서 그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고려시대는 장곡사 하대웅전 닫집과 봉정사 극락전 닫집 등을 통해 예전의 모습을 떠올려 볼 수 있는데 고려의 닫집들은 불전형이 아닌 감입형이라는 특징을 보여준다. 천장 속으로 닫집의 상부구조를 넣은 형태의 감입형 닫집은 밑에서 보면 닫집의 내부만 보이기 때문에 닫집일 것이라 미처 생각지 못하는데, 궁궐 정전의 천장 중앙부와 같은 형태를 떠 올리면 된다.

장곡사 하대웅전의 닫집은 층층이 쌓아 올린 공포가 매우 소박하고 깔끔한 형태를 보이는 고려시대 건축의 흔적을 많이 간직하고 있어 고려시대 유형으로 평가받는다. 불교가 국교로 대접받던 고려시대 절집의 닫집은 간결함을 보이고 있지만 억불숭유의 정책으로 일관하였던 조선시대 사찰전각의 닫집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화려하다. 사실 불교를 숭상하고 하지 않고의 문제가 아니라 닫집을 만드는 양식은 당시 건축과 밀접한 관련을 보인다. 따라서 기둥 위 여러 개의 포를 얻는 다포양식이 조선시대 건축의 방법이었기 때문에 전각의 닫집도 이를 따라 화려한 공포를 갖게 된 것이다. 닫집은 보통 단층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2층과 3층으로 된 것도 적지 않게 만들었고 당연히 다층형의 닫집은 그 규모가 클 수밖에 없다. 닫집은 기둥을 세워 거는 지지주형(支持柱形)과 기둥 없이 천장에 매다는 현괘형(懸掛形)으로 나뉘는데 더 발전된 건축기술을 요구하는 현괘형의 닫집은 허공에 떠 있는 시각적인 착각을 일으켜 장엄의 효과를 더하기도 한다.

▲ 범어사 대웅전 닫집과 장식.

사찰의 닫집은 부처님의 공간을 장엄한 특별한 전각이라서 시각적으로 화려함을 강조하여 만들기에 그것만으로도 장식적인 효과가 충분하지만 이에 상징적 의미를 갖는 부속 장식물을 더해 그 아름다움과 불교 공예품으로 가치를 극대화한다. 우리나라 사찰의 닫집 가운데 장엄하고 화려하기로 손꼽히는 대웅전 닫집은 정면에서 보면 지붕이 3중으로 아(亞)자형으로 칸칸이 벌어져 장대해 보이고 지붕 아래 공포는 헤아릴 수도 없이 빼곡하여 눈이 어지러울 정도이다. 대체로 허공에 떠 있는 닫집에 부속으로 현괘되는 장식은 신비롭고 환상적인 의미를 담은 하늘을 날 수 있는 형상들로 꾸며지는데 그 가운데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용과 구름, 봉황, 비천 등으로 구성된 범어사 닫집과 주변에서 그 모습들을 찾을 수 있다. 부속 장식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용은 불경에 용왕들이 부처님을 씻겨주고 호위한 것과 같이 불법을 수호하는 상스러운 동물로서 그리고 화재예방을 위한 벽사의 의미를 담고 닫집에 장식으로 이용되었다.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는 말처럼 용이 구름에 둘러싸여 보일 듯 말듯해야 그 신비감이 더해지는데 범어사 대웅전 닫집의 용들은 법당에 들어가면 바로 보인다. 대웅전 닫집의 용은 오색의 구름 속에서 황금 비늘로 반짝이는 몸을 용트림하듯 꼬아있지만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려올 듯 입을 벌리고 아래를 향해 포효한다. 입에 물어야 될 것 같은 여의주는 날카로운 5개의 발톱으로 꽉 움켜쥐었다. 닫집 여기 저기 붉은 서기를 뿜으며 날아다니는 여의주는 그 모양이 전륜왕이 즉위하던 날 하늘에서 날아왔다는, 달 없는 밤에 허공에 달면 온 나라가 낮과 같이 된다는, 칠보 가운데 하나인 여의주보와 같으니 닫집 아래 예닐곱의 여의주가 허공에 떠도는 부처님이 계신 곳은 빛나는 광채로 눈이 부셔 쳐다보기도 어려울 것이다.

▲ 부산 범어사 대웅전 닫집의 주악비천.

구름으로 몸을 가리기에는 너무 덩치가 크고 솜씨 좋은 장인의 손재주는 똬리를 튼 몸을 너무 역동적으로 만들어 놓아 그 존재감을 숨길 수가 없다. 보통 한 마리가 조각되는 것에 비해 범어사 대웅전 닫집에는 닫집의 칸마다 한 마리씩 중앙과 좌우로 불단을 향해 내려오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이다. 부산지역의 불화승과 조각승들이 만든 것이라서 그런지 경상도 사나이 기질을 보여주듯 숨기고 감추고 할 것 없이 말 그대로 화끈하게 보여준다.

닫집의 네 귀퉁이에는 구름을 타고 천의를 날리며 하늘을 나는 여성형의 비천이 매달려 있다. 비천상은 곱디고운 자태로 인해 절집을 꾸미는 장식으로 애용되는 모티프이지만 닫집에 비천이 장식된 예는 흔치 않다. 비천의 역할은 천상의 세계를 의미하면서 꽃과 음악으로 부처님이 설하시는 법을 찬양하는 것이다. 닫집에 장식된 비천은 주악비천으로 비행을 하며 비파를 타는 모습인데 주악 비천상 가운데 가장 많이 연주하는 악기가 비파인지 중국 돈황의 상징인 주악비천은 손을 등 뒤로 돌려 마치 곡예 하듯 비파를 연주하는 모습이다. 범어사 대웅전의 비천상과 같이 완주 회암사 극락전, 화성 용주사 대웅전 닫집의 비천은 그 아름다움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 아름다운 비천의 자태는 남성미가 물씬 느껴지는 성난 용과 비교되어 부드러움이 배가 되는 듯하다. 완주 회암사 닫집의 비천은 천의를 날리며 수평 비행하는 모습으로 매달려 있지만 범어사 비천은 천의를 입고 구름을 탔다. 원래 천의만으로 하늘을 비행하는 것이 비천의 특징이라 범어사 대웅전 불단의 생황을 부는 비천은 천의만으로 비행을 하는 모습이지만 천장에 매달리는 비천을 그렇게 만들기에는 뭔가 불안했던지 구름을 타고 있는 모습으로 균형감을 더했다.

▲ 강화 전등사 대웅보전 닫집과 장엄그림.

연꽃을 비롯한 다양한 꽃으로 장식된 닫집을 유유히 날아가는 서조는 극락세계에 산다는 극락조를 나타낸 것이다. 극락조의 울음소리를 듣고 극락정토의 사람들은 불법승을 생각한다고 하는데 강화 전등사 닫집의 서조는 닫집에 장식된 서조 가운데서도 크기나 조각된 형태에서 단연 돋보이는 존재이다. 닫집 중앙 불단을 향해 고개를 내민 용 좌우로 두 날개를 쫙 펴고 두 발에는 붉은 서기가 타오르는 여의주를 쥐고 창공을 비행하는 거대한 서수 두 마리는 보는 이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연일 불볕더위에 온 세상이 펄펄 끓고 있다.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따라 다니며 머리 위에서 그늘을 만들어 주는 닫집과 같은 매력적인 물건은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만들 수 없는 걸까? 열심히 마음을 닦아 부처가 되는 길만 해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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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탑(塔)
문화

불교문화 - 탑(塔)

탑은 산스크리트로 수투파, 팔리어로 투파,라 한다. 부처님이 입멸하신 뒤 여덟 날 국왕이 부처님 사리를 여덟 등분하여 각기 탑을 세우고 봉안했다는 경전 기록이 있는데, 이것이 불교 탑의 기원이다. 탑은 부처님의 진실사리 또는 부처님의 말씀을 보존하고 있는 곳으로 불자들의 숭배대상이다.

중국에서는 전탑(塼塔 벽돌탑), 우리나라에서는 석탑(石塔 돌탑), 일본에서는 목탑(木塔 나무탑)이 발달하였다. 탑은 초기 불교에서는 가장 중요한 신앙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사리의 수가 한계가 있어 탑을 세우기 어려워지자, 탑 대신 불상을 조성하여 신앙의 대상으로 삼게 되었다. 하지만 탑은 여전히 부처님의 진신에 귀의하는 신앙 대상으로 도량을 장엄하고 있다. 탑의 양식은 3층탑, 5층탑, 9층탑, 13층탑 등으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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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수하항마-2 (樹下降魔) -악마의 유혹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수하항마-2 (樹下降魔) -악마의 유혹

<만어사- 경남 밀양>

보리수 나무아래 앉아 있는 석가 주위로 야한 여인들이모여 들어 온갖 교태를 부리면서 수행을 방해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찰에서 다루어지는 대표적인 벽화로, 부처일대기를 8장면으로 압축하여 묘사한 팔상도(八相圖) 중 여섯 번째는 악마의 유혹을 다룬 그림이다.

어쩌면 사찰의 정서에 거리가 있어 보이는 춘화도(春畵圖)와도 같은 충격적 그림으로 우리에게 말 하고자 함은 무었인가 ?

보리수 나무 아래에는 석가가 막바지 수행에 정진 하고 있다.

수행을 마무리 하고 곧 깨달음을 얻으려 하자 가장 다급해진 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중생을 욕망에 사로잡히게 하여 세상을 어둡게 만들게 하는 마왕 파순이었다.

마왕은, "석가가 깨달음을 성취하면 일체 중생에 가르침을 주어 지극한 행복의(극락) 세계로 만들 것이다. 그가 깨닫는 것을 당장 막아야 한다."라고 생각하여 자신의 세 딸을 보내 석가를 유혹하도록 하였다.

마왕의 세 딸은 온갖 교태를 부리며 유혹하였으나, 석가는 오히려 수미산처럼 굳건하고 흐트러짐 없는 자세를 찾으며 그녀들을 나무라고 있다..

"너희들의 지금의 몸은 겉은 비록 아름답지만 속은 악으로 가득해 생로병사의 고통을 피할 수 없다.

온몸에 화려한 보석으로 장식하고 교태 섞인 웃음소리와 매혹스러운 향기를 뿌리며 상대눈에 띄려 관심을 끌려 애쓰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그대들의 유혹을 욕망으로 포장 한 탐욕의 속삭임을 알고 있다.

사악한 욕정은 칼날에 발린 꿀과 같아서 결국 자신의 혀를 상하게 하듯

너희들은 자신을 해치게 하는 탐욕의 모습에서 나와 본래 모습을 드러내거라."

그러자 마왕의 세 딸들은 모두 흉한 노파로 변하고 탄식하며 물러가게 된다.

석가는 용맹정진(勇猛精進)에 들어가. 길고 긴 밤이 지나 12월 8일 새벽이 되자

새벽을 여는 샛별이 나타나며 깨달음을 완성한 부처가 보리수 나무 아래로 내려오니 그가 석가모니다.

▮ 수하항마로 본 가르침

수하항마(樹下降魔)의 사전적 의미로는 “나무아래 악마를 물리치다”라고 해석될 수 있다.

수행자 앞에 나타 난 세 명의 여자는 마음속에 번뇌를 일으키게 하는 3독심으로 탐(욕심), 진(미움), 치(어리석음)를 형상화 하고 있다.

수행자는 이처럼 마음속에서 쉴 새 없이 일어나는 번뇌의 마음과 악전고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내가 어떤 계획을 작정할 때 마다,

‘남이 안 보는데 어때, 오늘 하루만 더 쉬고, 내일부터는 진짜 열심히 하면 되지’ 하는 내 마음 한편에서 소록소록 일어나는 온갖 달콤한 유혹이 나타나 춤을 추게 되는데.

지난번처럼 이번에도 마지막 의지를 지키지 못 한 채 결국 예전처럼, 유혹의 속삭임을 이겨내지 못한 체.

작심삼일(作心三日)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수하항마’에서는 탐진치의 유혹이 어떻게 고통으로 이어지며 이 또한 의지의 막바지에 나타나는 허상임을 알아차릴 때 이미 큰 보상은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느끼게 하는 그림이다.

<br><br> ▮ 모아보는 마귀의 유혹

<br><br> <내원사-경남 양산>

<br><br> <락가사-강원 강릉>

<br><br> <법천사-전남 무안>

<br><br> <선본사-경북 경산>

<br><br> <초암사-경북 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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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물고기 살린 원효ㆍ혜공 스님
불교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물고기 살린 원효ㆍ혜공 스님

▲ 원효 스님과 혜공 스님이 물고기를 살려 내는 내기를 하여 ‘오어사’란

절 이름이 생긴 설화를 그림으로 표현한 양양 문수사 원통보전 2층 벽화.

한 시대를 풍미하던 두 스님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우리나라 불교역사에서 최고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원효 스님과 혜공 스님이 주인공이다.

노스님들의 장난이란 다름 아니라 서로의 도력(道力)을 테스트 하는 것이다.

진짜 도인이라면 스스로 도를 드러내는 것조차 마다할 것이지만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속설이고 전설일 뿐이다.

그러나 전설 속에 들어 있는 익살과 해학 너머에 알싸한 교훈도 있다.

우선 벽화를 살펴보자. 양양 문수사 원통보전 2층 외벽에 그려진 그림이다. 깊은 산골 맑은 계곡이 보인다. 삭발한 머리카락과 수염이 흰 스님은 앉아 있고 머리카락과 수염이 검은 스님은 서 있다. 두 스님의 눈과 오른손이 물속을 향해 있고 물속에는 몇 마리의 물고기가 꼬리를 흔들며 헤엄을 치고 있다. 그게 전부다. 두 스님과 물고기가 벽화의 핵심이다.

이 그림은 천태종 여러 사찰에서 벽화로 볼 수 있다. 그림의 내용은 경북 포항에 있는 오어사의 창건설화와 관련이 있다. 오어사의 원래 이름은 항사사(恒沙寺)였다. 도행(道行)을 펼치던 원효 스님과 혜공 스님은 어느 날 물가에서 서로의 법력을 시험하기로 했다. 물고기를 잡아먹었다가 다시 살리는 내기였다. 스님들이 하기에는 지나친 내기지만 두 스님은 그 정도의 도력은 충분히 갖추었기에 가능한 내기가 아니었을까?

아무튼 두 스님은 물고기를 한 마리씩 잡아먹고 냇물을 향해 대변을 보았는데 두 스님 중 한 스님이 배설한 물고기만 다시 살아서 물속으로 헤엄을 치고 다녔다. 그것을 본 두 스님은 서로 ‘나의 물고기(吾魚)’라고 우겼다고 하여 절 이름이 오어사가 됐다는 전설이다.

대개의 전설은 내용이 통일되지 않는다. 어떤 설에는 두 스님이 천렵을 하여 물고기를 끓여 먹고 “우리가 명색이 수도자인데 물고기를 먹어서야 되겠느냐” “그럼 살려 주면 될 것 아니냐” “그렇다면 어디 한 번 살려 보자” 이렇게 하여 끓여 먹었던 물고기를 다 생환(生還) 시킨 이야기로 전개되기도 한다.

어느 이야기가 됐건 분명한 것은 뱃속에 들어갔던 물고기를 다시 살려 내는 스님들의 법력이 핵심이다. 거창하게 불살생이나 자비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어설프게 꾸며진 이야기 속에 원효와 혜공 스님의 도력을 부각시키고 있다.

한편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조선 중기 전북 지역에서 활동했던 진묵대사(1562~1633)의 일화에서도 보인다.

진묵대사가 길을 가다가 천렵을 하여 물고기를 끓여먹는 소년들을 만났다. 대사가 펄펄 끓는 가마솥을 들여다보자 장난기가 발동한 소년들이 “스님 먹고 싶으세요? 그럼 다 드세요” 라고 조롱을 한다. 이에 스님은 말없이 솥을 비웠다.

그러자 소년들은 “스님이 물고기를 드셨으니 이제 파계를 한 것”이라며 더 세게 놀렸다. 하지만 스님은 태연하게 “물고기를 죽인 것은 너희들이지만 살리는 것은 바로 나다”라며 물을 향해 앉아서 배설을 했고 물고기들이 살아서 냇물 속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진묵 스님은 물고기를 향해 “다시는 미끼를 탐해 낚시에 걸려들지 말고 깊은 곳에서 놀아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 역시 진묵스님의 도력을 강조한 설화다. 진묵스님은 아주 많은 이적을 보인 것으로 유명하다. 어쩌면 고승의 높은 도력이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도 포교의 한 방법이었을지 모른다.

원효와 혜공 그리고 진묵 스님. 물고기를 다시 살려 내는 이야기가 불교의 역사와 함께 면면히 전해 오는 것은 중생들이 언제나 ‘큰 도인’을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진짜 큰 도인은 어디 먼 곳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다. 얼마나 가까이 있을까? 진실하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음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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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입문 - 공양 예절
문화

불교입문 - 공양 예절

향. 초. 꽃. 쌀. 차. 과일 등의 시물(施物)을 부처님께 바쳐 목마르고 배고픈 중생에게 회향하고, 중생의 고통을 여의게 해주는 것을 공양(供養)이라고 한다.

전통적으로 향. 초. 꽃. 쌀. 차. 과일은 육법공양(六法供養)이라 해서 중요시해 왔다.

공양(供養)이란 원래 스님들에게 수행에 필요한 여러 가지 물건이나 음식을 드려 깨달음의 텃밭을 일구게 한다는 의미이지만, 삼보께 올리는 정성스러운 모든 것은 다 공양의 의미로 확대되었다. 법회 때 찬탄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음성공양이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온 마음을 다해 바치는 정성스러운 공양은 삼륜이 청정할 때, 즉 받는 이, 받는 물건, 주는 이가 청정할 때 크나큰 공덕이 뒤따른다고 한다.

한편 불교에서는 밥 먹는 것도 ‘공양’이라 한다. 밥 먹는 행위도 하나의 의식이자 수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양할 때 외우는 글> 한 방울의 물에도 부처님의 은혜가 스며 있고, 한 알의 곡식에도 많은 사람의 노고가 담겨 있습니다.

몸과 마음을 바로 하여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발원을 세웁니다. <공양게>

<오관게>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삼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이 <공양게>에는 공양을 하는 마음가짐이 잘 드러나 있다. 즉 위로는 부처님의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위한 이타행을 하고자 음식을 먹는 것이다. 한 톨의 쌀이 내 입에 들어오기까지 농부를 비롯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정성과 노력이 있었는지를 살피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 때문에 밥알 하나도 함부로 버리지 않는 것이 불가의 풍습이다.

공양법에는 크게 상공양(床供養)과 발우공양(鉢盂供養)이 있다.

상공양은 일반 가정에서처럼 밥상이나 식탁에서 공양하는 것으로 공양하는 사람 수가 적을 때하는 공양법이다.

발우공양은 불교 전통식 공양법으로, 많은 대중이 같이 공양하거나 수련회 및 수행시에 한다. 대중이 함께 모여 정진하는 도량에서는 발우공양을 하는데, 여러 사람이 함께한다고 해서 이를 '대중공양(大衆供養)'이라고도 한다.

발우는 스님들의 밥그릇을 말한다. ‘발(鉢)’은 산스크리트의 음역인 발다라의 약칭이며 ‘우(盂)’는 밥그릇을 뜻하는 한자이다. 발우는 수행자에게 합당한 크기의 그릇이라는 뜻으로 ‘응량기(應量器)’라고도 번역한다.

발우공양의 절차에는 부처님과 음식을 만든 사람들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과, 중생의 고통을 깊이 생각하고, 공양을 먹고 얻은 힘을 모든 중생에게 회향하겠다는 다짐이 담겨 있다.

부처님께서는 당시 인도의 수행 풍습대로 매일 사시(巳時 오전 9~11시)에 한 끼 공양을 하셨는데, 커다란 그릇 하나에 시주 받은 음식을 다 담아 드신 데서 유래하였다. 발우공양은 음식물 쓰레기가 심각한 환경문제로 대두된 요즘,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되고 있다. 불교계에서 시작해 사회 전체로 퍼져가고 있는 ‘빈그릇운동’도 이 발우공양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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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부모은중경 9편.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부모은중경 9편.

자식을 위해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 은혜 (위조악업은)

< 부모님의 크신 은혜 강산같이 중하여서, 깊고 깊은 그 은덕 실로 갚기 어려워라. 자식의 괴로움은 대신 받기 원하시고, 자식들 고생하면 부모 마음 편치 않네. 자식들이 먼 길을 떠나가 있을 때면, 잘 있는지 춥진 않나 밤낮으로 근심하네. 잠시라도 자식들이 어려움 당할 때면, 어머니의 그 마음은 오랫동안 아프다네. >

부모님의 마음은 자식을 위해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행여 자식이 고생할까봐 남의 집 허드렛일이라도 자식의 앞날을 위해서라면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자식들은 이러한 부모님의 큰 사랑을 망각하고, 오히려 늙고 병들었다고 부모를 업신여기고 부모의 고통을 모른척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역죄를 저지르는 불효자와 다르지 않습니다.

오역죄는 아버지를 헤치거나 어머니를 헤치거나, 부처님이나 아라한을 헤치거나 스님들을 이간질하는 등의 무거운 죄입니다. 오역죄를 지으면 무간지옥이라는 가장 무서운 지옥에 떨어집니다.

가끔 인륜을 저버리고 존속을 헤친 사건이 보도되면 정말 믿겨지지가 않습니다.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부모님의 마음은 자식의 잘못을 대신 받고자 애원합니다. 자식의 괴로움을 대신 받으려는 것입니다.

자식이 잘못을 저지르면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제가 잘못 가르쳐서 그렇습니다. 제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제가 함께 있어 주지 못해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

부모님의 마음은 이처럼 자식의 모든 잘못이 다 자신 때문이라고 여깁니다. 부모님은 이렇게 자식을 평생토록 걱정하는데. 오히려 세상에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고통을 모른척한다는 것은 가장 나쁜 불효입니다. 부모님의 마음만이라도 편안하게 해주지 못할지언정 강산같이 무거운 부모님의 은덕을 어찌 다 갚으려는지 불효를 저지르고 맙니다. 근본부터 되짚어 생각을 고쳐먹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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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선혜동자와 구리천녀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선혜동자와 구리천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출현하시기도 전 아득히 먼 과거의 일입니다. 당시는 연등불이라는 과거 부처님께서 계실 때입니다. ​ 어느 날 마을에 부처님께서 오신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모든 사람들은 앞 다투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릴 준비를 하였습니다. 마을에 선혜라는 동자가 있었는데, 선혜동자 역시 부처님에게 꽃 공양을 올리기 위해 마을 이곳저곳을 꽃을 구하러 다니고 있었습니다. ​ 그런데 마을의 꽃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모두 가져가 버린 뒤라 더 이상 꽃을 파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때 꽃바구니에 연꽃 일곱 송이를 가진 구리천녀라는 여인을 우연히 길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 선혜동자는 구리천녀에게 공손히 인사를 한 뒤, 지금 자기가 수중에 있는 돈을 모두 드리겠으니 그 꽃을 나에게 팔아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동자는 은화 500냥이나 되는 거액을 내미는 것입니다. 구리천녀는 동자의 행동이 의아해 여줘보았습니다.

"지금 저더러 연꽃 일곱 송이와 동자님의 그 돈을 모두 바꾸자는 말씀이세요? 아니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많은 돈까지 내면서 이 꽃을 사려하나요?" ​ "우리 마을에 연등부처님께서 오신다고 합니다. 저는 수행자의 몸으로 부처님을 직접 뵙고, 부처님으로 부터 내세에 성불할 수기授記를 꼭 받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 빛나는 눈동자로 말하는 그의 말에 구리천녀는 진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자를 한참동안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 "그렇다면 이 꽃은 당신에게 그냥 드리겠습니다. 단 저에게도 조건이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저는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오늘 동자님의 늠름한 모습을 보니 그동안 제가 찾던 사람은 바로 당신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부디 저와 결혼을 해 주세요." ​ 난데없는 구리천녀의 요구를 듣고 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여인이여, 나는 이미 수행자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대와 결혼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대신 다음 생에 다시 만나면 꼭 그대와 결혼하겠습니다. 다만, 제가 수행하겠다는 마음을 내었을 때 저의 수행을 위해 기꺼이 헤어질 수 있다는 약조를 해 준다면 그리하겠습니다." ​ 이미 선혜동자에게 반하여 낭군으로 마음을 정해 버린 구리천녀는 그러겠다고 약속을 하며, 다섯 송이는 선혜동자의 원을 위해 그리고 두 송이는 자기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부처님께 꽃을 바쳐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 선혜동자와 구리천녀는 연등불을 찾아뵈었습니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에게 갖가지 공양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선혜동자도 갖고 있던 꽃을 올리며 마음 깊이 원을 세웠습니다. ​ 그러나 사람들은 부디 다음 세상에는 좋은 곳에 태어나게 해 달라는 등 개인의 복을 빌었던 반면, 선혜동자는 부처님 앞에서 성불을 발원하였습니다. 장차 부처가 되어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서원을 세운 선혜동자의 깊은 마음을 이미 부처님께서도 알고 계셨습니다.

부처님을 위해 머리를 늘어뜨리는 선혜동자 그는 훗날 석가모니 부처님으로 환생한다 (좌) / 대한불교 천태종 경산 장엄사 (우)

그리고 모든 공양물이 바쳐지자 부처님께서 정사로 돌아가시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시려는데, 마침 비가 그친지 얼마 되지 않는 탓에 길바닥이 진흙길이었던 것입니다. 선혜동자는 재빨리 묶었던 머리를 풀어 헤치며 땅바닥에 엎드렸습니다. ​ "부처님, 여래께서 지저분한 흙탕물을 밟고 가실 수는 없습니다. 부디 제 머리카락을 밟으시옵소서." ​ 연등부처님은 다시 자리에 앉아 선혜동자를 칭찬하시더니, 오랫동안 쌓아 온 공덕으로 장차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았습니다. ​ 그 후 세월이 흘러, 선혜동자는 싯다르타 태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선혜와 결혼하고자 소원했던 구리천녀는 야소다라 공주로 태어나 둘은 정말 혼인을 하였습니다. ​ 그러나 전생에서 약속한대로 싯다르타가 출가할 때 둘은 부부의 연을 끊어 버렸고, 싯다르타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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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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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벽화이야기 - 부모은중경 3편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부모은중경 3편

자식을 낳았다고 근심을 잊어버리신 은혜 (생자망우은)

< 어지신 어머님이 이내 몸 낳으실 때, 오장과 육부까지 찢기고 헤쳐지니 정신은 혼미하며 육신마저 기절하고, 소와 양 잡은 듯 끝없는 피 흘리시네. 아기가 씩씩하고 예쁘단 말 들으시니, 반갑고 기쁜 마음 무엇에 비유할까. 기쁨이 진정되니 또 다시 슬픈 마음, 괴롭고도 아픈 것이 온몸에 사무치네. >

어떤 사람들은 출산의 순간을 덩치 큰 거인들이 배위에서 마구마구 뛰어 다니는 것만 같고, 마치 커다란 트럭이 몸을 밟고 지나가버려 온몸의 뼈가 모두 으스러지는 듯 심한 고통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는 크나큰 고통입니다.

끔찍한 고통을 이겨내고, 아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예쁜 공주님, 씩씩한 왕자님이 태어났다는 말을 전해들을 때 어머니의 눈가에 흐르는 눈물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어머니의 품에 갓 태어난 아기가 안겨질 때면 더 자세히 아기의 얼굴을 바라보시려는 듯 어느새 흘리던 눈물도 훔치셨습니다. 어머니의 다정한 표정에서 우리는 세상에 가장 행복한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언제 아팠냐는 듯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이시죠.

"한 번 아이를 낳을 때 마다 피를 3말 3되씩이나 흘리는구나."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1말은 20리터 1되는 2리터 가량됩니다. 3말 3되라면, 66리터, 쉽게 말해서 커다란 생수병으로 약 33병이나 되는 많은 피를 흘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그 자리가 소나 양을 잡은 것 같다고 비유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어머니께서 큰 사랑으로 감내하신 희생을 바탕으로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제부터 부모님에게 효도만으로도 부족한데,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온갖 어리석은 행동을 일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자식을 위해 정성으로 보살피고 기르시는 어머니의 마음은 기쁨도 잠시요, 매일 매일 슬픈 마음, 괴롭고도 아픈 것이 몸과 마음에 사무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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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세조와 문수보살
불교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세조와 문수보살

<상원사- 강원 평창>

악성피부병으로 고통 받고 있던 조선의 7대왕 세조는

영험하다 소문난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에서 간절히 기도를 한 후 조용한 개울을 찾아 목욕하던 중 문수보살의 도움을 받고 난 뒤에 피부병이 씻은 듯 낳았다는 내용의 그림이다.

▮ 세상에 없는 것

무슨 목적으로 그려진 벽화인가

아무리 죄 많은 사람일지라도 불법에 의지하면 반드시 성불의 인연이 나타나준다는 교훈을 말 함 일까,

문수보살의 손길에 악성종양이 순식간에 사라졌다는 종교적 신통력을 말함일까

동자의 도움으로 목욕을 마친 세조는 동자에게 다짐하길 어딜 가더라도 ‘세조의 몸에 난 흉한 종기를 봤다’ 는 소문이 나지 않기를 부탁 하였더니

동자는 왕에게 ‘문수 동자를 만났다’ 는 소문이 나지 않기를 부탁하며 둘만의 비밀스런 약속을 하고 헤어지지만

세조는 상원사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화공을 불러 그때 만난 동자의 모습을 그리게 하고,

또 한 조각공을 불러 그 모습대로 목각 상을 조각하게 하여 만든 목각상이 바로 지금의 상원사의 문수동자상이다.

< 상원사 문수동자 상>

그 동자상의 몸속에 세조의 피고름이 묻은 옷이 발견되었다는 물증도 나왔다 하는데

약속은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고 했나,

이미 세상은 둘만의 비밀을 다 아는 데, 인간 세상에 무슨 비밀이 있을까 ?

‘세조와 문수보살’의 설화를 통해 세상에 없는 것 3가지가 비밀, 정답, 공짜라는 말을 다시 느끼게 한다.

▮ 없는 것 세 가지

비밀이 없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다. 그러니, 완벽한 비밀은 없는 샘이다.

온 사방에 설치된 CCTV가 바야흐로, 이 세상의 모습을 비추기에. 우리에게 숨길 비밀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 어떤 것도 감추려 해 보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끝내 들통 나고 말 것 같다.

정답이 없다-

지구별의 70억 넘는 사람들 중 똑같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삶의 모습 역시 모두 다르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 생각의 울타리를 고집하다 보니 ‘정답’ 운운하는 것이다.

서로 각자의 삶에 따라 다른 길이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각자의 생각과 각자의 삶을 존중해야 한다.

공짜가 없다-

반드시,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인과의 법칙이다.

콩 심은데 콩이 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난다. '공짜 심리'는 아주 저급한 동물적인 본능에 가깝다. 그래서 공짜 심리는 곧 재앙이다.

나에게 오는 과도한 칭찬이나 선물은, 받는 그 순간에는 무척 기분이 좋다. 하지만, 그것은 빚이 된다.

분명 이유가 있기에 공짜 심리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 세상에 없는 것이 또 3가지가 더 있다고 한다.

좋은 배우자. 좋은 직장. 좋은 돈벌이를 찾는 것 또한 불가마속에서 시원한 얼음을 찾고 있는 것과도 같다.

▮ 모아보는 세조와 문수보살

:: 법주사-경북 군위

:: 성주사-경남 창원

:: 용운사-경북 경주

:: 은적사-대구 남구

:: 해인사-경남 합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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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관음재일날 불교설화
문화

관음재일날 불교설화

관음재일날 불교설화

로타리 불자회는 금년말에 전남 해남 대흥사와 달마산 도솔암으로 참배를 갈 예정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삼재소멸지 대둔산 대흥사 천불전의 천불조성설화와 금란가사의 설화내용을 올려드립니다.

오랜 세월 남도의 깊은 산중에서 수행자들의 발길을 받아온 대흥사에는 지금도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머물게 하는 천불전이 자리하고 있다.

그 천불전에는 단순한 불상 조성의 기록을 넘어, 바다를 건너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신비로운 인연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조선 순조 연간, 완호(玩虎) 대사는 당시 이름 높은 선승이었으며 훗날 차 문화와 선풍으로 널리 알려진 초의선사의 스승이기도 하였다.

완호 대사는 1813년, 낡고 허물어진 천불전을 새롭게 중건한 뒤 그 법당을 장엄할 천불 조성의 큰 원력을 세우게 된다.

그는 경주에서 나는 귀한 옥석을 구해 천 개의 불상을 만들도록 하였다.

당시 최고의 솜씨를 지닌 열 명의 조각사가 불상 조성에 참여하였는데, 작은 불상 하나에도 정성과 기도가 담겨야 했기에 작업은 결코 쉽지 않았다.

조각사들은 맑은 물로 몸을 씻고 마음을 가다듬은 뒤 정을 대었다고 하며, 그렇게 장장 여섯 해에 걸쳐 천 개의 옥불이 마침내 완성되었다.

옥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천불들은 크지는 않았지만 표정마다 자비로움이 어려 있었고, 어떤 이는 그 모습을 보고 “천 개의 부처가 아니라 천 개의 마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완성된 옥불들은 세 척의 배에 나누어 실렸다. 배는 경주를 떠나 울산과 부산 앞바다를 지나 남쪽 끝 해남을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당시 사람들은 무사히 도착하기를 바라며 바닷가에서 두 손 모아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순탄하던 항해 도중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갑작스러운 풍랑이 몰아치며 배 한 척이 울산진 앞바다에서 거센 파도에 휩쓸리고 말았던 것이다.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노를 저으며 방향을 돌리려 했지만 거대한 바람과 물결은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었다. 결국 그 배는 멀리 일본 장기현, 오늘날의 나가사키 지역까지 떠밀려 가게 되었다.

며칠 뒤 바닷가에서 표류한 배를 발견한 일본인들은 배 안에 가득 실린 옥불들을 보고 크게 놀랐다. 햇빛을 받은 불상들은 마치 스스로 빛을 내는 듯 신비로운 광채를 띠고 있었고, 사람들은 이것이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했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서로 의논하여 이 불상들을 모실 절을 새로 짓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날 밤부터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과 승려들의 꿈속에 옥불들이 하나둘 나타나더니 조용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말하였다고 한다.

“우리는 조선국 해남 대둔사로 가는 길이다. 이곳에 머물 수 없으니 본래의 자리로 돌려보내라.”

한 사람만 그런 꿈을 꾼 것이 아니었다. 여러 사람이 같은 내용의 꿈을 꾸자 모두가 놀라 두려워했고, 결국 불상들을 억지로 붙잡아 둘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마침내 일본인들은 옥불들을 다시 배에 실어 조선으로 돌려보내기로 하였다. 그리고 훗날 다시 보더라도 그 불상들이 일본에 머물렀던 흔적을 알 수 있도록 불상 밑바닥마다 ‘日’ 자를 새겨 보냈다고 전한다.

그렇게 먼 바다를 돌아온 옥불들은 마침내 대흥사 천불전에 무사히 봉안되었다. 사람들은 이것을 두고 “부처도 제 머물 곳을 스스로 찾아간다”고 이야기하였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천불전의 옥불들은 영험한 기운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어느 시기부터인가 인근 지역의 신도들이 비슷한 꿈을 꾸기 시작했는데, 꿈속의 불상들이 나타나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에게 가사를 입혀 다오.”

신기하게도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자, 대흥사 신도들은 이를 예사로운 일로 여기지 않았다.

결국 신도들은 정성을 모아 천불의 부처님께 금란가사를 인간문화재 누비장의 작품으로 작은 가사를 지어 입혀 드렸고, 이후부터는 4년마다 한 번씩 새 가사로 갈아 입히는 전통이 이어지게 되었다.

또한 4년간 입혔던 헌 가사를 소중히 간직하면 집안의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고 액운을 막을 수 있다는 믿음도 함께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어떤 이들은 천불전의 가사를 보시한 사람이나 입었던 천불전 금란가사를 소장할 매우 귀한 인연의 상징처럼 여기며 공경한다고 한다.

남도의 깊은 산사에 삼재도 스며들지 못하는 대흥사에 자리한 천불전은 오늘도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바다를 건너 다시 돌아온 천 개의 옥불은, 인간의 뜻을 넘어선 불연(佛緣)의 신비를 오래도록 들려주고 있다.

그런일이 있고부터 대흥사는 매4년마다 천불전 금란가사를 한벌에 2십만원의 모연을 받았으나 개인별로 받는것이 아니라 100벌을 한단위로 10계좌와 번의한 옷들의 세탁과 액자로 만들 2계좌로 1계좌당 2천만원의 시주자 모연을 접수받기 시작하였으나 그소문을 들은 서울의 재벌들이 다투어 경쟁을 하는 바람에 계좌당 5천만원이 넘어가게 되여서 법상 주지 스님께서는 경인지역의 갑부들보다 지방의 불자들에게도 혜택을 주고자 십여년전에 시행을 하였다.

그러나 경인지역 이외의 지방은 부산과 포항에서 각 1계좌만 신청되여서 법상예하께서는 보명에게 반계좌를 지명하시며 큰소리로 어쩔수 없다는 실소를 하시며 차담을 나누었지요.

지금도 서울 갑부들은 계속하여 복전을 가꾸시니 대를 이어진 부자로 존경받는 불자로 사는가 봅니다.

그런 금란가사를 보명도 반계좌를 오래전에 보시하여 대흥사 천불전 금란가사를 로타리 불자회 회원들에게 액자속에 만들어 증정하여 드렸습니다.

그렇게 천불전의 부처님께서 4년간 입고계셨던 금란가사를 개별로 손빨래로 먼지를 씻어내고 다려서 고급액자에 넣어서 집에 걸어두신다면 그곳이 바로 극락세계 일것입니다.

로타리 불자회 지도법사 보명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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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0일

스님도 군대 가나요?..갓 스무 살부터 재입대까지 군승 임관

불교와 천주교, 개신교 등 총 46명의 장교 중 육군 네 명, 해군 한 명, 총 다섯 명이 늠름한 대한민국 군승으로... 법으로 국토방위와 평화를 위해 정진할 것을 맹세했습니다. 육군종합행정학교에서 BTN뉴스 배수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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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0
불교입문 - 부처님께서는 언제 어디에서 깨달으셨습니까?
문화

불교입문 - 부처님께서는 언제 어디에서 깨달으셨습니까?

35세가 되던 해 12월 8일 "붇다강Ⅰ" 숲속 보리수 아래에 앉아 하늘에 떠있는 샛별을 보았을 때 인간과 우주의 근원인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보리"란 깨달음이란 뜻을 가지고 있으며 부처님께서 이 나무 아래에서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에 보리수라고 합니다. 이나무의 본래 이름은 "필발라"입니다.

※ 이 자료는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 알아두면 좋은 불자상식 작성자 민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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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관음재일날의 법문
문화

불교문화 - 관음재일날의 법문

보명의 관음재일날의 법문.

오늘은 을사년의 마지막달인 섣달의 관세음보살 재일날의 기도하는 법.

기도가 안 되는 사람이나 희망과 포부가 충천하여 성공을 바라는 사람, 또는 자기 인생에 어려움이나 괴로움이 많은 사람일수록 관세음보살님께 지극한 서원을 세워서 애써보십시오.

기도의 요령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확고부동한 반석 같은 믿음의 바탕에서 간절하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에는 믿을 신(信)자와 간절할 절(切)자 두 자가 가장 요긴합니다. 오직 철저히 굳게 믿고 간절하게 끊임이 없도록 해보십시오. 가나 오나 앉으나 서나 언제 어디서나 ‘관세음보살’이 끊이지 않아야 하고, 기쁘거나 슬프거나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 밥을 먹든 일을 하든 ‘관세음보살’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하다가 시간을 채웠다고 안 한다거나 마음을 놓지도 말고, 잘 된다고 들뜨고 좋아하지도 말고, 안 된다고 괴로워하고 안절부절 하지도 말고, 새벽에 눈뜨자마자 저녁에 잘 때까지 ‘관세음보살’을 떠나지 않도록 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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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실상염불(實相念佛)
문화

불교문화 - 실상염불(實相念佛)

실상염불(實相念佛).

여기저기 법회에 나다니면서도 많이 보고 있습니다 만은 가령 우리가 염불한다. 염불을 하는 것이 사실은 그야말로 얼마나 쉽습니까.?

생각 염(念)자 부처 불(佛)자 아! 부처님을 생각하고 부처님 이름을 부르고 싶으면 부르고

부르기 싫으면 속으로 또 외고 말입니다. 그러면 되는 것을 꼭 자기 식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리도 꼭 자기식으로 내야하고, 그리고 같은 염불종도 특히 일본종교에서 있는 것입니다만은 생각을 말고 꼭 소리만 내서 하라는 종파가 있어요.

일본 진종(眞宗)같은 참 진(眞)자 마루 종(宗)자 그런 종파는 꼭 소리만내서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염불하는 법에서는 여러분들 대체로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습니다 만은 가령 관상염불(觀像念佛)이라 관상염불은 무엇인고 하면은 부처님의 원만스러운 모습을 우리가 관찰한단 말입니다. 우리 마음이란 것이 얼마나 산란스러움이 많습니까. 그 산란스러움이 많고 분별시비가 많아놔서 그냥 염불하면 마음이 잘 통일이 안돼요.

그러니까 부처님의 원만덕상(圓滿德像)을 이렇게 상상하면서 보면서 하는 염불이 관상염불 아닙니까? 가령 우리가 여기 부처님 관음상(觀音像)을 모시고 있는 셈인데

부처님을 우리가 참배하면서 우러러보면서 염불하면은

훨씬 더 마음도 차분하고 공부가 잘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불상(佛像)을 순수한 우리 마음을 지속을 시키기 위해서 불상을 모시는 것인데 그 불상을 상상 말고서 꼭 소리만 내야 된다.

또는 염불 가운데는 이런 염불도 있습니다. 이른바 실상염불(實相念佛)이라. 실상염불은 무엇인고 하면은 이것은 부처님의 진리(眞理)자체를 우리가 상상 한단 말입니다.

부처님의 진리가 우리 눈에 지금 보이지 않지 않습니까.? 따라서 실상염불은 우리에게 보이는 대상이 아닙니다.

보이는 대상이 아니지만은 이 우주란 것은 바로 부처님 생명이란 말입니다.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 아주 훌륭한 말씀이 있습니다. “시방여래(十方如來)는 법계신(法界身)이라”. 아주 고도한 진리를 담은 그런 말씀입니다.

무슨 말씀인고하면은 모든 부처님은 여래(如來)라는 것은 부처님 아닙니까.? 시방 여래는 모두 부처님이란 뜻입니다.

모든 부처님은 법계신이라, 이 법계라는 것은 바로 우주를 말합니다. 모든 부처님은 우주를 몸으로 한단 말입니다. 우주를 말입니다.

이런 말씀은 방편(方便)을 떠나버린 진리 그대로의 말씀입니다. 우주(宇宙) 자체가 이것이 부처님의 몸이란 말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이른바 불교의 대승불법(大乘佛法)이 됩니다.

이리 나누고 저리 나누고 둘로 나누고 셋으로 나누고 그런 것은 참다운 대승불법이 못되는 것입니다. 나까지도 포함해서 이 우주 자체가 오직 하나의 생명(生命)이란 말입니다. 우주가... 시방여래는 법계신이라, 모든 부처님은 우주를 몸으로 한단 말입니다. 우주를 말입니다.

우주를 몸으로 한다고 생각할 때는 산도 부처님 물도 부처님 곤충도 부처님 모두다 부처 아님이 없단 말입니다.

중생과 부처의 차이가 어디가 있는가? 그것은 중생들은 자꾸만 이렇게 나누어서 본단 말입니다. 나누어서....? 어째서 그런 것인가.?

중생(衆生)은 겉에 뜬 상(象)만 본단 말입니다. 나라는 상(我相), 너 라는 상(人相) 밉다는 상. 사랑한다는 상. 그런 상만 집착한 것이 중생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자(聖者)란 것은 모든 존재(存在)의 본바탕을 봅니다. 본바탕을 본다고 생각할 때 똑같단 말입니다.

이것은 불교에서 항시 우리가 인용해서 비유할 수 있는 수파(水波)의 비유라. 물수(水)자 물결파(波)자 물과 파도의 비유란 말입니다. 바람 따라서 파도가 천파만파 일어난다 하더라도

냇물이나 대야는 똑같은 물이란 말입니다.

그렇듯이 부처님은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우주바다의 물에 비길 수가 있는 것이고 또 중생의 분별 따라서 일어나는 우리 번뇌망상(煩惱妄想)이나 모든 상은 이것은 하나의 그야말로 파도에 비긴단 말입니다.

파도와 물과 그것이 다른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바다나 강물의 파도가 천파만파 일어난다 하더라도 결국은 다 물이란 말입니다.

그렇듯이 우리 중생이 인과(因果)의 법 따라서 산이 되고

하늘의 별 되고 인간이 되고 또는 도둑놈이 되고 또는 범이 되고 그렇다 하더라도 똑같이, 모두가 다 똑같이 우주의 법에서 나왔단 말입니다.

우주의 법인 부처님 몸에서 모두가 나왔습니다. 우리가 반야심경(般若心經)을 보나 금강경(金剛經)을 보나 모두가 다 그런 도리로 해서 성품(性品)과 현상(現象)의 관계를 말씀했단 말입니다.

우리 중생(衆生)은 현상만 보는 것이고 성자란 것은 본바탕을 본단 말입니다.

따라서 저번에 말씀드린 실상염불(實相念佛)이라. 실상염불이란 것은 가장 고도한 염불(念佛)이 실상염불입니다.

우주의 본바탕 우주의 실상(實相)을 우리가 관찰하면서 하는 염불이라는 말입니다.

불기 2570년 3월 24일. 음력 2월 초6일날에. 부처님 출가ㅡ열반재일 용맹정진기도 6일에. 팔공산 로타리 불자회 지도법사 청정수월지 감고사지기 보명 합장.

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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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입문 - 우리의 마음이 최고의 보배이신 이유?
문화

불교입문 - 우리의 마음이 최고의 보배이신 이유?

건강은 최상의 이익이요. 만족 할줄 아는 마음은 제일 큰 재산이다. 그 보다 더욱 큰 것은 신뢰가 최상의 인연이다. 그리고 자기 수행 끝에 오는 평안 보다 더 좋은 행복은 없다.

※ 이 자료는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 알아두면 좋은 불자상식|작성자 민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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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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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바뀌는 기도* 법화경 제23 약왕보살본사품 독송 &amp; 사시불공 | 영평선원 2026.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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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바뀌는 기도* 법화경 제23 약왕보살본사품 독송 &amp; 사시불공 | 영평선원 2026.06.20.

!삶이 바뀌는 기도 법화경 제23 약왕보살본사품 독송 & 사시불공 | 영평선원 2026.06.20. 이 영상이 도움이 되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알림 설정을 켜시면 기도시간을 놓치지 않습니다! #법화경 #사시불공 ...

자현스님의 예불과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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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0일
사찰 벽화이야기 - 2편 팔상성도 3.4 상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2편 팔상성도 3.4 상

사찰 벽화이야기 제 2편 팔상성도 2-. 3.4 상

  1. 사문유관상 四門遊觀相

싯다르타는 어릴 때부터 여러 스승으로부터 온갖 학문을 모두 익히고, 병법과 무예를 익히며 차츰 전륜성왕으로서의 모습을 갖춰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봄 농경제農耕祭가 열렸습니다. 나라의 한 해 살림살이를 결정짓는 주요한 행사인 만큼 모든 왕족이 참석했고, 궁에서만 살던 싯다르타도 아버지와 함께 행사에 참석하여 처음으로 성 밖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싯다르타의 눈에는 모든 것이 새로웠습니다. 사실 아시따 선인의 말이 항상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던 정반왕은 싯다르타에게 출가할 마음조차 생기지 않도록 온갖 좋은 것들로 왕자의 주변을 가득 채워두었습니다. 마치 세상의 어떠한 괴로움도 알지 못하는 천상의 중생들처럼, 오직 즐거운 세상만 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농경제에 나온 싯다르타의 눈에 들판에서 힘겹게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들의 몰골은 초췌하기 그지 없었고, 겨우 바지만 입은 채 쉼 없이 쟁기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뜨거운 햇살아래 파헤쳐진 땅 위로는 조그만 벌레들이 기어 다녔고, 때를 기다렸다는 듯 새들이 날아들어 발버둥 치던 벌레들을 사정멊이 쪼아 먹는 것입니다. 쟁기를 맨 소는 농부의 채찍질로 등짝에 피가 맺혔고, 농부 역시 온통 흙 투성이로 힘겨워 보였습니다.

슬그머니 행사장을 빠져나온 싯다르타는 농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힘든데 쉬었다 하시지요."

"저도 그러고 싶지만, 제 삶에 휴식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나라에 세금을 바치려면 쉴 틈이 없습니다 ..."

태자는 더 이상 농부를 위로할 수 없었습니다. 긴 한숨을 쉬며 잠부나무 아래에 앉아 생각에 잠겼습니다.

"백성들은 귀족의 횡포아래 하루하루 힘겹게 사는구나. 이 미물들은 또 서로를 잡아먹고 있구나... 어째서 살아 있는 것들은 서로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현실에서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속리산 법주사 팔상전八相殿(좌)은 석가모니의 팔상을 그린 그림과 존상(尊像)을 봉안한 법당이다. / 석가팔상도 釋加八相圖(우)

머리가 온통 복잡해진 태자는 해답을 찾기 위해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왕자는 이 사색을 통해 이때 선정의 첫 번째 경지를 얻었다고 합니다.

'나는 눈물과 고통을 초래하는 저런 탐욕에 사로 잡히지 사로잡히지 않으리라...'

싯드르타가 보이지 않자 신하들과 함께 찾아다닌던 정반왕은 커다란 잠부나무 아래에서 선정에 들어있는 태자를 발견했습니다. 마치 깊은 강물과 맑은 하늘처럼 깊고도 고요한 태자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평온함이 가득하였고, 정반왕은 숙연한 마음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선정에 들어있는 태자를 지켜 본 정반왕은 오히려 왕자를 더욱 세상과 멀리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태자의 나이 열하홉이 되었을 때, 야소다라Yasodhara와 혼인을 시켰습니다.

야소다라는 꼴리야족의 공주였습니다. 싯다르타와 야소다라는 즐거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정반왕도 둘의 결혼을 축하하며, 계절마다 지낼 수 있도록 세 곳의 궁전을 지어 주었습니다. 각각의 궁전마다 연못과 정원이 잘 가꿔져 있었으며, 온통 호화로운 것들로 가득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봄이었습니다. 태자가 마부 찬나와 함께 궁전의 동쪽 문을 나섰다가 길 한가운데 서 있는 백발의 노인을 만났습니다. 거무죽죽한 그의 얼굴에는 주름이 늘어졌으며, 바싹 말라 뼈만 앙상한 몸으로 지팡이에 겨우 의지해 숨을 헐떡이고 있었습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비참한 모습인가?"

"사람은 누구나 늙으면 저렇게 됩니다." 마부 찬나의 대답을 듣고, 싯다르타는 생각했습니다.

'나도 늙으면 저렇게 되겠지... 늙는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구나. 사람으로 태어나 어느 누구도 늙는 것을 피하지 못한다. 나 또한 초라하게 늙어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는 없으리라...'

흥겨운 봄나들이였지만, 태자는 홀로 숲을 거닐며 생각에 빠진 채 성으로 돌아왔습니다. 며칠 뒤, 다시 나들이를 나서던 참이었습니다. 남쪽 성문으로 길을 나서는데, 길가에 쓰러져 누워있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저 사람은 병든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온몸의 종기에서 피고름이 흘러내리고, 괴로움에 신음하며 더군다나 자기가 토해 놓은 오물 옆에 누워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코를 막고 피하기만 할 뿐 누구하나 도움을 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괴로운 병이 들었는가?"

"살다보면 누구나 병이 들 수 있고, 병들면 저렇게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내며 괴로워하게 됩니다."

'저 사람 역시 지난 시절엔 나처럼 건강했을 것이다. 나의 젊고 건강한 이 육체도 영원한 것이 아니구나. 나 또한 누구하나 가까이 오지 않을 중병에 걸릴 수 있으리라. 어찌 저 괴로움의 신음소리를 저버리고, 여인들의 웃음소리와 풍류가락을 따라 흥얼거릴 수 있다는 말인가'

이번에도 태자는 어두운 표정으로 나들이에서 돌아왔고, 더 이상 웃음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정반왕은 문득 아시따 선인의 예언이 떠 올라 불안해하며, 앞으로 태자가 성 밖을 나설 때는 미리 길가에 모든 것들을 눈에 띄지 않게 치워두라고 명했습니다.

하루는 서쪽 성문을 나서 뒷산으로 올라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무리의 장례행렬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죽은이의 옷자락을 붙잡고 하늘이 무너질 듯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태자의 마음도 덩달아 우울해지고 말았습니다.

'슬픈 일이다... 죽음을 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 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도 결국 내 곁에서 떠나가겠지 ...'

"찬나야. 사람은 모두 죽는구나. 세상엔 온통 고통의 아우성만 들리는구나. 그만 돌아가자."

이제까지 태자가 만난 늙고, 병들고, 죽는 일들은 결국 태어나면 누구에게나 생겨나는 고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연 생사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는 것인지., 깊은 생각 속에서 정반왕이 있는 궁전으로 향했습니다.

"아바마마, 저에게는 네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태자의 소원이 무엇이냐. 그동안 나는 태자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해 주었다. 이번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반드시 들어줄 것이니라."

정반왕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내심 왕자가 수행자의 삶을 바라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런 눈빛으로 삿다르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늙지 않고 영원히 젊음을 누리게 해 주십시오. 병들지 않고 영원히 건강한 몸을 주십시오.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영원히 이별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세상에 누가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냐."

"아바마마, 비록 제가 왕자의 신분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누리고 있지만, 결국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얻고 싶습니다."

기어코 아시따 선인이 말한 순간이 찾아오는 것을 느낀 정반왕은 태자의 마음을 돌리려고 온갖 방법으로 설득했지만, 오히려 태자는 더욱 세상을 멀리한 채 사색에 빠지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어느덧 나이가 스물아홉이 되었습니다. 정반왕은 집안에만 머물러 초췌해진 태자의 건강이 염려되어 가까운 동산으로 나들이라도 다녀오라고 하였습니다. 마차를 탄 싯다르타 일행은 북문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그때, 싯다르타는 모든 근심과 걱정을 벗어버린 듯 평온한 표정으로 걸어가는 수행자를 만났습니다. 맨발에 비록 허름한 옷이지만 당당한 모습이었고, 손에 든 것이라곤 흙으로 빚은 그릇 하나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서 너무나도 강렬한 눈빛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출가하여 도를 닦는 사문이라 합니다."

"어디로 가는 길입니까?"​ 싯다르타는 설레는 마음으로 수행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사찰 벽화이야기 제 2편 팔상성도 2-. 3.4 상

  1. 사문유관상 四門遊觀相

싯다르타는 어릴 때부터 여러 스승으로부터 온갖 학문을 모두 익히고, 병법과 무예를 익히며 차츰 전륜성왕으로서의 모습을 갖춰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봄 농경제農耕祭가 열렸습니다. 나라의 한 해 살림살이를 결정짓는 주요한 행사인 만큼 모든 왕족이 참석했고, 궁에서만 살던 싯다르타도 아버지와 함께 행사에 참석하여 처음으로 성 밖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싯다르타의 눈에는 모든 것이 새로웠습니다. 사실 아시따 선인의 말이 항상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던 정반왕은 싯다르타에게 출가할 마음조차 생기지 않도록 온갖 좋은 것들로 왕자의 주변을 가득 채워두었습니다. 마치 세상의 어떠한 괴로움도 알지 못하는 천상의 중생들처럼, 오직 즐거운 세상만 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농경제에 나온 싯다르타의 눈에 들판에서 힘겹게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들의 몰골은 초췌하기 그지 없었고, 겨우 바지만 입은 채 쉼 없이 쟁기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뜨거운 햇살아래 파헤쳐진 땅 위로는 조그만 벌레들이 기어 다녔고, 때를 기다렸다는 듯 새들이 날아들어 발버둥 치던 벌레들을 사정멊이 쪼아 먹는 것입니다. 쟁기를 맨 소는 농부의 채찍질로 등짝에 피가 맺혔고, 농부 역시 온통 흙 투성이로 힘겨워 보였습니다.

슬그머니 행사장을 빠져나온 싯다르타는 농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힘든데 쉬었다 하시지요."

"저도 그러고 싶지만, 제 삶에 휴식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나라에 세금을 바치려면 쉴 틈이 없습니다 ..."

태자는 더 이상 농부를 위로할 수 없었습니다. 긴 한숨을 쉬며 잠부나무 아래에 앉아 생각에 잠겼습니다.

"백성들은 귀족의 횡포아래 하루하루 힘겹게 사는구나. 이 미물들은 또 서로를 잡아먹고 있구나... 어째서 살아 있는 것들은 서로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현실에서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속리산 법주사 팔상전八相殿(좌)은 석가모니의 팔상을 그린 그림과 존상(尊像)을 봉안한 법당이다. / 석가팔상도 釋加八相圖(우)

머리가 온통 복잡해진 태자는 해답을 찾기 위해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왕자는 이 사색을 통해 이때 선정의 첫 번째 경지를 얻었다고 합니다.

'나는 눈물과 고통을 초래하는 저런 탐욕에 사로 잡히지 사로잡히지 않으리라...'

싯드르타가 보이지 않자 신하들과 함께 찾아다닌던 정반왕은 커다란 잠부나무 아래에서 선정에 들어있는 태자를 발견했습니다. 마치 깊은 강물과 맑은 하늘처럼 깊고도 고요한 태자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평온함이 가득하였고, 정반왕은 숙연한 마음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선정에 들어있는 태자를 지켜 본 정반왕은 오히려 왕자를 더욱 세상과 멀리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태자의 나이 열하홉이 되었을 때, 야소다라Yasodhara와 혼인을 시켰습니다.

야소다라는 꼴리야족의 공주였습니다. 싯다르타와 야소다라는 즐거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정반왕도 둘의 결혼을 축하하며, 계절마다 지낼 수 있도록 세 곳의 궁전을 지어 주었습니다. 각각의 궁전마다 연못과 정원이 잘 가꿔져 있었으며, 온통 호화로운 것들로 가득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봄이었습니다. 태자가 마부 찬나와 함께 궁전의 동쪽 문을 나섰다가 길 한가운데 서 있는 백발의 노인을 만났습니다. 거무죽죽한 그의 얼굴에는 주름이 늘어졌으며, 바싹 말라 뼈만 앙상한 몸으로 지팡이에 겨우 의지해 숨을 헐떡이고 있었습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비참한 모습인가?"

"사람은 누구나 늙으면 저렇게 됩니다." 마부 찬나의 대답을 듣고, 싯다르타는 생각했습니다.

'나도 늙으면 저렇게 되겠지... 늙는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구나. 사람으로 태어나 어느 누구도 늙는 것을 피하지 못한다. 나 또한 초라하게 늙어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는 없으리라...'

흥겨운 봄나들이였지만, 태자는 홀로 숲을 거닐며 생각에 빠진 채 성으로 돌아왔습니다. 며칠 뒤, 다시 나들이를 나서던 참이었습니다. 남쪽 성문으로 길을 나서는데, 길가에 쓰러져 누워있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저 사람은 병든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온몸의 종기에서 피고름이 흘러내리고, 괴로움에 신음하며 더군다나 자기가 토해 놓은 오물 옆에 누워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코를 막고 피하기만 할 뿐 누구하나 도움을 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괴로운 병이 들었는가?"

"살다보면 누구나 병이 들 수 있고, 병들면 저렇게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내며 괴로워하게 됩니다."

'저 사람 역시 지난 시절엔 나처럼 건강했을 것이다. 나의 젊고 건강한 이 육체도 영원한 것이 아니구나. 나 또한 누구하나 가까이 오지 않을 중병에 걸릴 수 있으리라. 어찌 저 괴로움의 신음소리를 저버리고, 여인들의 웃음소리와 풍류가락을 따라 흥얼거릴 수 있다는 말인가'

이번에도 태자는 어두운 표정으로 나들이에서 돌아왔고, 더 이상 웃음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정반왕은 문득 아시따 선인의 예언이 떠 올라 불안해하며, 앞으로 태자가 성 밖을 나설 때는 미리 길가에 모든 것들을 눈에 띄지 않게 치워두라고 명했습니다.

하루는 서쪽 성문을 나서 뒷산으로 올라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무리의 장례행렬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죽은이의 옷자락을 붙잡고 하늘이 무너질 듯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태자의 마음도 덩달아 우울해지고 말았습니다.

'슬픈 일이다... 죽음을 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 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도 결국 내 곁에서 떠나가겠지 ...'

"찬나야. 사람은 모두 죽는구나. 세상엔 온통 고통의 아우성만 들리는구나. 그만 돌아가자."

이제까지 태자가 만난 늙고, 병들고, 죽는 일들은 결국 태어나면 누구에게나 생겨나는 고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연 생사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는 것인지., 깊은 생각 속에서 정반왕이 있는 궁전으로 향했습니다.

"아바마마, 저에게는 네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태자의 소원이 무엇이냐. 그동안 나는 태자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해 주었다. 이번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반드시 들어줄 것이니라."

정반왕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내심 왕자가 수행자의 삶을 바라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런 눈빛으로 삿다르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늙지 않고 영원히 젊음을 누리게 해 주십시오. 병들지 않고 영원히 건강한 몸을 주십시오.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영원히 이별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세상에 누가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냐."

"아바마마, 비록 제가 왕자의 신분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누리고 있지만, 결국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얻고 싶습니다."

기어코 아시따 선인이 말한 순간이 찾아오는 것을 느낀 정반왕은 태자의 마음을 돌리려고 온갖 방법으로 설득했지만, 오히려 태자는 더욱 세상을 멀리한 채 사색에 빠지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어느덧 나이가 스물아홉이 되었습니다. 정반왕은 집안에만 머물러 초췌해진 태자의 건강이 염려되어 가까운 동산으로 나들이라도 다녀오라고 하였습니다. 마차를 탄 싯다르타 일행은 북문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그때, 싯다르타는 모든 근심과 걱정을 벗어버린 듯 평온한 표정으로 걸어가는 수행자를 만났습니다. 맨발에 비록 허름한 옷이지만 당당한 모습이었고, 손에 든 것이라곤 흙으로 빚은 그릇 하나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서 너무나도 강렬한 눈빛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출가하여 도를 닦는 사문이라 합니다."

"어디로 가는 길입니까?"​ 싯다르타는 설레는 마음으로 수행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바람처럼 걸림없이 다닙니다. 마치 새들이 두 날개만으로 자유롭게 날아다니듯, 저도 그저 옷 한 벌과 그릇 하나만으로 자유롭게 세상을 떠돌 뿐입니다."

"무엇 때문에 떠돌아 다니는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저는 늙고 병들고 죽는 삶의 고통을 겪고 나니 세상의 모든 것이 덧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삶의 굴레에서 머문다면 그 슬픔과 고통에서 결코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고통에서 벗어나 영원한 평안을 얻으려 친족과 벗들의 울타리를 넘어 출가하였습니다. 이제 저는 세상의 욕심에 물들지 않고, 모든 생명을 자비로써 대 합니다. 어떤 고통이 닥치더라도 슬퍼하자 않으며, 어떤 기쁨을 만나도 즐거움에 들뜨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 엄히 다스리며 태산처럼 무거운 발걸음으로 해탈의 길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습니다."

사문의 대답에 싯다르타는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끓어오르는 무언가 뜨거운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궁으로 돌아 온 때자는 수행자의 말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마침내 그토록 갈구하던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 날 방법을 찾은 것 같아, 알 수 없는 평온함으로 가득했습니다.

  1. 유성출가상 踰城出家相

사찰 벽화이야기 제 2편 팔상성도 2-. 3.4 상

  1. 사문유관상 四門遊觀相

싯다르타는 어릴 때부터 여러 스승으로부터 온갖 학문을 모두 익히고, 병법과 무예를 익히며 차츰 전륜성왕으로서의 모습을 갖춰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봄 농경제農耕祭가 열렸습니다. 나라의 한 해 살림살이를 결정짓는 주요한 행사인 만큼 모든 왕족이 참석했고, 궁에서만 살던 싯다르타도 아버지와 함께 행사에 참석하여 처음으로 성 밖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싯다르타의 눈에는 모든 것이 새로웠습니다. 사실 아시따 선인의 말이 항상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던 정반왕은 싯다르타에게 출가할 마음조차 생기지 않도록 온갖 좋은 것들로 왕자의 주변을 가득 채워두었습니다. 마치 세상의 어떠한 괴로움도 알지 못하는 천상의 중생들처럼, 오직 즐거운 세상만 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농경제에 나온 싯다르타의 눈에 들판에서 힘겹게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들의 몰골은 초췌하기 그지 없었고, 겨우 바지만 입은 채 쉼 없이 쟁기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뜨거운 햇살아래 파헤쳐진 땅 위로는 조그만 벌레들이 기어 다녔고, 때를 기다렸다는 듯 새들이 날아들어 발버둥 치던 벌레들을 사정멊이 쪼아 먹는 것입니다. 쟁기를 맨 소는 농부의 채찍질로 등짝에 피가 맺혔고, 농부 역시 온통 흙 투성이로 힘겨워 보였습니다.

슬그머니 행사장을 빠져나온 싯다르타는 농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힘든데 쉬었다 하시지요."

"저도 그러고 싶지만, 제 삶에 휴식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나라에 세금을 바치려면 쉴 틈이 없습니다 ..."

태자는 더 이상 농부를 위로할 수 없었습니다. 긴 한숨을 쉬며 잠부나무 아래에 앉아 생각에 잠겼습니다.

"백성들은 귀족의 횡포아래 하루하루 힘겹게 사는구나. 이 미물들은 또 서로를 잡아먹고 있구나... 어째서 살아 있는 것들은 서로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현실에서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속리산 법주사 팔상전八相殿(좌)은 석가모니의 팔상을 그린 그림과 존상(尊像)을 봉안한 법당이다. / 석가팔상도 釋加八相圖(우)

머리가 온통 복잡해진 태자는 해답을 찾기 위해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왕자는 이 사색을 통해 이때 선정의 첫 번째 경지를 얻었다고 합니다.

'나는 눈물과 고통을 초래하는 저런 탐욕에 사로 잡히지 사로잡히지 않으리라...'

싯드르타가 보이지 않자 신하들과 함께 찾아다닌던 정반왕은 커다란 잠부나무 아래에서 선정에 들어있는 태자를 발견했습니다. 마치 깊은 강물과 맑은 하늘처럼 깊고도 고요한 태자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평온함이 가득하였고, 정반왕은 숙연한 마음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선정에 들어있는 태자를 지켜 본 정반왕은 오히려 왕자를 더욱 세상과 멀리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태자의 나이 열하홉이 되었을 때, 야소다라Yasodhara와 혼인을 시켰습니다.

야소다라는 꼴리야족의 공주였습니다. 싯다르타와 야소다라는 즐거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정반왕도 둘의 결혼을 축하하며, 계절마다 지낼 수 있도록 세 곳의 궁전을 지어 주었습니다. 각각의 궁전마다 연못과 정원이 잘 가꿔져 있었으며, 온통 호화로운 것들로 가득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봄이었습니다. 태자가 마부 찬나와 함께 궁전의 동쪽 문을 나섰다가 길 한가운데 서 있는 백발의 노인을 만났습니다. 거무죽죽한 그의 얼굴에는 주름이 늘어졌으며, 바싹 말라 뼈만 앙상한 몸으로 지팡이에 겨우 의지해 숨을 헐떡이고 있었습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비참한 모습인가?"

"사람은 누구나 늙으면 저렇게 됩니다." 마부 찬나의 대답을 듣고, 싯다르타는 생각했습니다.

'나도 늙으면 저렇게 되겠지... 늙는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구나. 사람으로 태어나 어느 누구도 늙는 것을 피하지 못한다. 나 또한 초라하게 늙어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는 없으리라...'

흥겨운 봄나들이였지만, 태자는 홀로 숲을 거닐며 생각에 빠진 채 성으로 돌아왔습니다. 며칠 뒤, 다시 나들이를 나서던 참이었습니다. 남쪽 성문으로 길을 나서는데, 길가에 쓰러져 누워있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저 사람은 병든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온몸의 종기에서 피고름이 흘러내리고, 괴로움에 신음하며 더군다나 자기가 토해 놓은 오물 옆에 누워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코를 막고 피하기만 할 뿐 누구하나 도움을 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괴로운 병이 들었는가?"

"살다보면 누구나 병이 들 수 있고, 병들면 저렇게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내며 괴로워하게 됩니다."

'저 사람 역시 지난 시절엔 나처럼 건강했을 것이다. 나의 젊고 건강한 이 육체도 영원한 것이 아니구나. 나 또한 누구하나 가까이 오지 않을 중병에 걸릴 수 있으리라. 어찌 저 괴로움의 신음소리를 저버리고, 여인들의 웃음소리와 풍류가락을 따라 흥얼거릴 수 있다는 말인가'

이번에도 태자는 어두운 표정으로 나들이에서 돌아왔고, 더 이상 웃음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정반왕은 문득 아시따 선인의 예언이 떠 올라 불안해하며, 앞으로 태자가 성 밖을 나설 때는 미리 길가에 모든 것들을 눈에 띄지 않게 치워두라고 명했습니다.

하루는 서쪽 성문을 나서 뒷산으로 올라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무리의 장례행렬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죽은이의 옷자락을 붙잡고 하늘이 무너질 듯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태자의 마음도 덩달아 우울해지고 말았습니다.

'슬픈 일이다... 죽음을 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 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도 결국 내 곁에서 떠나가겠지 ...'

"찬나야. 사람은 모두 죽는구나. 세상엔 온통 고통의 아우성만 들리는구나. 그만 돌아가자."

이제까지 태자가 만난 늙고, 병들고, 죽는 일들은 결국 태어나면 누구에게나 생겨나는 고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연 생사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는 것인지., 깊은 생각 속에서 정반왕이 있는 궁전으로 향했습니다.

"아바마마, 저에게는 네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태자의 소원이 무엇이냐. 그동안 나는 태자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해 주었다. 이번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반드시 들어줄 것이니라."

정반왕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내심 왕자가 수행자의 삶을 바라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런 눈빛으로 삿다르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늙지 않고 영원히 젊음을 누리게 해 주십시오. 병들지 않고 영원히 건강한 몸을 주십시오.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영원히 이별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세상에 누가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냐."

"아바마마, 비록 제가 왕자의 신분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누리고 있지만, 결국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얻고 싶습니다."

기어코 아시따 선인이 말한 순간이 찾아오는 것을 느낀 정반왕은 태자의 마음을 돌리려고 온갖 방법으로 설득했지만, 오히려 태자는 더욱 세상을 멀리한 채 사색에 빠지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어느덧 나이가 스물아홉이 되었습니다. 정반왕은 집안에만 머물러 초췌해진 태자의 건강이 염려되어 가까운 동산으로 나들이라도 다녀오라고 하였습니다. 마차를 탄 싯다르타 일행은 북문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그때, 싯다르타는 모든 근심과 걱정을 벗어버린 듯 평온한 표정으로 걸어가는 수행자를 만났습니다. 맨발에 비록 허름한 옷이지만 당당한 모습이었고, 손에 든 것이라곤 흙으로 빚은 그릇 하나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서 너무나도 강렬한 눈빛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출가하여 도를 닦는 사문이라 합니다."

"어디로 가는 길입니까?"​ 싯다르타는 설레는 마음으로 수행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바람처럼 걸림없이 다닙니다. 마치 새들이 두 날개만으로 자유롭게 날아다니듯, 저도 그저 옷 한 벌과 그릇 하나만으로 자유롭게 세상을 떠돌 뿐입니다."

"무엇 때문에 떠돌아 다니는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저는 늙고 병들고 죽는 삶의 고통을 겪고 나니 세상의 모든 것이 덧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삶의 굴레에서 머문다면 그 슬픔과 고통에서 결코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고통에서 벗어나 영원한 평안을 얻으려 친족과 벗들의 울타리를 넘어 출가하였습니다. 이제 저는 세상의 욕심에 물들지 않고, 모든 생명을 자비로써 대 합니다. 어떤 고통이 닥치더라도 슬퍼하자 않으며, 어떤 기쁨을 만나도 즐거움에 들뜨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 엄히 다스리며 태산처럼 무거운 발걸음으로 해탈의 길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습니다."

사문의 대답에 싯다르타는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끓어오르는 무언가 뜨거운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궁으로 돌아 온 때자는 수행자의 말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마침내 그토록 갈구하던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 날 방법을 찾은 것 같아, 알 수 없는 평온함으로 가득했습니다.

  1. 유성출가상 踰城出家相

​어느 날 깊은 밤, 싯다르타는 잠이 든 마부 찬나를 깨워 말을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사실 부인 야소다라와의 사이에서 라훌라를 얻은 지 얼마되지도 않은 때였습니다. 야소다라가 아들을 낳았을 때, 싯다르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라훌라Rahula가 태어났구나.' 속박을 얻었구나.'

태자는 수행자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했지만, 이제 라훌라가 태어나면서 큰 걸림돌을 얻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속박이면서도, 싯다르타에게 있어 문제가 되는 상황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없더라도 왕위를 이어 줄 혈통이 생겼으니, 홀가분하게 출가할 결심을 더욱 굳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의 나이 스물아홉 음력 2월 8일, 싯다르타는 부귀와 권력, 일가친척을 모두 버리고 기약할 수 없는 성불의 길을 찾아 떠났습니다. 태자의 출가를 돕기 위해 하늘의 여러 천신들은 궁궐을 지키던 모든 병사를 잠들게 했고, 애마 깐타까는 땅을 박차고 올라 성벽을 훌쩍 뛰어 넘었습니다. 마부 찬나는 놀란 나머지 말고삐를 놓치고 깐타까의 꼬리만 겨우 잡은 채 힘껏 하늘을 날아올랐습니다.

사찰 벽화이야기 제 2편 팔상성도 2-. 3.4 상

  1. 사문유관상 四門遊觀相

싯다르타는 어릴 때부터 여러 스승으로부터 온갖 학문을 모두 익히고, 병법과 무예를 익히며 차츰 전륜성왕으로서의 모습을 갖춰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봄 농경제農耕祭가 열렸습니다. 나라의 한 해 살림살이를 결정짓는 주요한 행사인 만큼 모든 왕족이 참석했고, 궁에서만 살던 싯다르타도 아버지와 함께 행사에 참석하여 처음으로 성 밖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싯다르타의 눈에는 모든 것이 새로웠습니다. 사실 아시따 선인의 말이 항상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던 정반왕은 싯다르타에게 출가할 마음조차 생기지 않도록 온갖 좋은 것들로 왕자의 주변을 가득 채워두었습니다. 마치 세상의 어떠한 괴로움도 알지 못하는 천상의 중생들처럼, 오직 즐거운 세상만 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농경제에 나온 싯다르타의 눈에 들판에서 힘겹게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들의 몰골은 초췌하기 그지 없었고, 겨우 바지만 입은 채 쉼 없이 쟁기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뜨거운 햇살아래 파헤쳐진 땅 위로는 조그만 벌레들이 기어 다녔고, 때를 기다렸다는 듯 새들이 날아들어 발버둥 치던 벌레들을 사정멊이 쪼아 먹는 것입니다. 쟁기를 맨 소는 농부의 채찍질로 등짝에 피가 맺혔고, 농부 역시 온통 흙 투성이로 힘겨워 보였습니다.

슬그머니 행사장을 빠져나온 싯다르타는 농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힘든데 쉬었다 하시지요."

"저도 그러고 싶지만, 제 삶에 휴식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나라에 세금을 바치려면 쉴 틈이 없습니다 ..."

태자는 더 이상 농부를 위로할 수 없었습니다. 긴 한숨을 쉬며 잠부나무 아래에 앉아 생각에 잠겼습니다.

"백성들은 귀족의 횡포아래 하루하루 힘겹게 사는구나. 이 미물들은 또 서로를 잡아먹고 있구나... 어째서 살아 있는 것들은 서로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현실에서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속리산 법주사 팔상전八相殿(좌)은 석가모니의 팔상을 그린 그림과 존상(尊像)을 봉안한 법당이다. / 석가팔상도 釋加八相圖(우)

머리가 온통 복잡해진 태자는 해답을 찾기 위해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왕자는 이 사색을 통해 이때 선정의 첫 번째 경지를 얻었다고 합니다.

'나는 눈물과 고통을 초래하는 저런 탐욕에 사로 잡히지 사로잡히지 않으리라...'

싯드르타가 보이지 않자 신하들과 함께 찾아다닌던 정반왕은 커다란 잠부나무 아래에서 선정에 들어있는 태자를 발견했습니다. 마치 깊은 강물과 맑은 하늘처럼 깊고도 고요한 태자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평온함이 가득하였고, 정반왕은 숙연한 마음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선정에 들어있는 태자를 지켜 본 정반왕은 오히려 왕자를 더욱 세상과 멀리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태자의 나이 열하홉이 되었을 때, 야소다라Yasodhara와 혼인을 시켰습니다.

야소다라는 꼴리야족의 공주였습니다. 싯다르타와 야소다라는 즐거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정반왕도 둘의 결혼을 축하하며, 계절마다 지낼 수 있도록 세 곳의 궁전을 지어 주었습니다. 각각의 궁전마다 연못과 정원이 잘 가꿔져 있었으며, 온통 호화로운 것들로 가득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봄이었습니다. 태자가 마부 찬나와 함께 궁전의 동쪽 문을 나섰다가 길 한가운데 서 있는 백발의 노인을 만났습니다. 거무죽죽한 그의 얼굴에는 주름이 늘어졌으며, 바싹 말라 뼈만 앙상한 몸으로 지팡이에 겨우 의지해 숨을 헐떡이고 있었습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비참한 모습인가?"

"사람은 누구나 늙으면 저렇게 됩니다." 마부 찬나의 대답을 듣고, 싯다르타는 생각했습니다.

'나도 늙으면 저렇게 되겠지... 늙는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구나. 사람으로 태어나 어느 누구도 늙는 것을 피하지 못한다. 나 또한 초라하게 늙어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는 없으리라...'

흥겨운 봄나들이였지만, 태자는 홀로 숲을 거닐며 생각에 빠진 채 성으로 돌아왔습니다. 며칠 뒤, 다시 나들이를 나서던 참이었습니다. 남쪽 성문으로 길을 나서는데, 길가에 쓰러져 누워있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저 사람은 병든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온몸의 종기에서 피고름이 흘러내리고, 괴로움에 신음하며 더군다나 자기가 토해 놓은 오물 옆에 누워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코를 막고 피하기만 할 뿐 누구하나 도움을 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괴로운 병이 들었는가?"

"살다보면 누구나 병이 들 수 있고, 병들면 저렇게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내며 괴로워하게 됩니다."

'저 사람 역시 지난 시절엔 나처럼 건강했을 것이다. 나의 젊고 건강한 이 육체도 영원한 것이 아니구나. 나 또한 누구하나 가까이 오지 않을 중병에 걸릴 수 있으리라. 어찌 저 괴로움의 신음소리를 저버리고, 여인들의 웃음소리와 풍류가락을 따라 흥얼거릴 수 있다는 말인가'

이번에도 태자는 어두운 표정으로 나들이에서 돌아왔고, 더 이상 웃음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정반왕은 문득 아시따 선인의 예언이 떠 올라 불안해하며, 앞으로 태자가 성 밖을 나설 때는 미리 길가에 모든 것들을 눈에 띄지 않게 치워두라고 명했습니다.

하루는 서쪽 성문을 나서 뒷산으로 올라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무리의 장례행렬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죽은이의 옷자락을 붙잡고 하늘이 무너질 듯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태자의 마음도 덩달아 우울해지고 말았습니다.

'슬픈 일이다... 죽음을 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 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도 결국 내 곁에서 떠나가겠지 ...'

"찬나야. 사람은 모두 죽는구나. 세상엔 온통 고통의 아우성만 들리는구나. 그만 돌아가자."

이제까지 태자가 만난 늙고, 병들고, 죽는 일들은 결국 태어나면 누구에게나 생겨나는 고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연 생사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는 것인지., 깊은 생각 속에서 정반왕이 있는 궁전으로 향했습니다.

"아바마마, 저에게는 네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태자의 소원이 무엇이냐. 그동안 나는 태자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해 주었다. 이번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반드시 들어줄 것이니라."

정반왕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내심 왕자가 수행자의 삶을 바라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런 눈빛으로 삿다르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늙지 않고 영원히 젊음을 누리게 해 주십시오. 병들지 않고 영원히 건강한 몸을 주십시오.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영원히 이별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세상에 누가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냐."

"아바마마, 비록 제가 왕자의 신분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누리고 있지만, 결국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얻고 싶습니다."

기어코 아시따 선인이 말한 순간이 찾아오는 것을 느낀 정반왕은 태자의 마음을 돌리려고 온갖 방법으로 설득했지만, 오히려 태자는 더욱 세상을 멀리한 채 사색에 빠지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어느덧 나이가 스물아홉이 되었습니다. 정반왕은 집안에만 머물러 초췌해진 태자의 건강이 염려되어 가까운 동산으로 나들이라도 다녀오라고 하였습니다. 마차를 탄 싯다르타 일행은 북문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그때, 싯다르타는 모든 근심과 걱정을 벗어버린 듯 평온한 표정으로 걸어가는 수행자를 만났습니다. 맨발에 비록 허름한 옷이지만 당당한 모습이었고, 손에 든 것이라곤 흙으로 빚은 그릇 하나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서 너무나도 강렬한 눈빛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출가하여 도를 닦는 사문이라 합니다."

"어디로 가는 길입니까?"​ 싯다르타는 설레는 마음으로 수행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바람처럼 걸림없이 다닙니다. 마치 새들이 두 날개만으로 자유롭게 날아다니듯, 저도 그저 옷 한 벌과 그릇 하나만으로 자유롭게 세상을 떠돌 뿐입니다."

"무엇 때문에 떠돌아 다니는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저는 늙고 병들고 죽는 삶의 고통을 겪고 나니 세상의 모든 것이 덧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삶의 굴레에서 머문다면 그 슬픔과 고통에서 결코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고통에서 벗어나 영원한 평안을 얻으려 친족과 벗들의 울타리를 넘어 출가하였습니다. 이제 저는 세상의 욕심에 물들지 않고, 모든 생명을 자비로써 대 합니다. 어떤 고통이 닥치더라도 슬퍼하자 않으며, 어떤 기쁨을 만나도 즐거움에 들뜨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 엄히 다스리며 태산처럼 무거운 발걸음으로 해탈의 길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습니다."

사문의 대답에 싯다르타는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끓어오르는 무언가 뜨거운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궁으로 돌아 온 때자는 수행자의 말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마침내 그토록 갈구하던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 날 방법을 찾은 것 같아, 알 수 없는 평온함으로 가득했습니다.

  1. 유성출가상 踰城出家相

​어느 날 깊은 밤, 싯다르타는 잠이 든 마부 찬나를 깨워 말을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사실 부인 야소다라와의 사이에서 라훌라를 얻은 지 얼마되지도 않은 때였습니다. 야소다라가 아들을 낳았을 때, 싯다르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라훌라Rahula가 태어났구나.' 속박을 얻었구나.'

태자는 수행자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했지만, 이제 라훌라가 태어나면서 큰 걸림돌을 얻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속박이면서도, 싯다르타에게 있어 문제가 되는 상황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없더라도 왕위를 이어 줄 혈통이 생겼으니, 홀가분하게 출가할 결심을 더욱 굳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의 나이 스물아홉 음력 2월 8일, 싯다르타는 부귀와 권력, 일가친척을 모두 버리고 기약할 수 없는 성불의 길을 찾아 떠났습니다. 태자의 출가를 돕기 위해 하늘의 여러 천신들은 궁궐을 지키던 모든 병사를 잠들게 했고, 애마 깐타까는 땅을 박차고 올라 성벽을 훌쩍 뛰어 넘었습니다. 마부 찬나는 놀란 나머지 말고삐를 놓치고 깐타까의 꼬리만 겨우 잡은 채 힘껏 하늘을 날아올랐습니다.

'늙고 병들고 죽어야만 하는 삶의 고통, 많은 중생이 삶과 죽음의 고통속에 있지 않은가. 이 모든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결코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으리라. 위 없는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결코 어머니와 야소다라를 찾지 않으리라.'

성에서 멀리 떠나 강가에 다다르자 멀리서 동이 뜨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너희들의 할 일은 끝났다. 그 동안 시중드느라 수고 많았다. 그만 깐타까와 함께 궁으로 돌아가거라."

하지만 찬나는 태자의 앞을 막아서며 함께 왕궁으로 돌아가자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러나 태자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내고 상투를 찬나에게 줘어 주었습니다.

사찰 벽화이야기 제 2편 팔상성도 2-. 3.4 상

  1. 사문유관상 四門遊觀相

싯다르타는 어릴 때부터 여러 스승으로부터 온갖 학문을 모두 익히고, 병법과 무예를 익히며 차츰 전륜성왕으로서의 모습을 갖춰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봄 농경제農耕祭가 열렸습니다. 나라의 한 해 살림살이를 결정짓는 주요한 행사인 만큼 모든 왕족이 참석했고, 궁에서만 살던 싯다르타도 아버지와 함께 행사에 참석하여 처음으로 성 밖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싯다르타의 눈에는 모든 것이 새로웠습니다. 사실 아시따 선인의 말이 항상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던 정반왕은 싯다르타에게 출가할 마음조차 생기지 않도록 온갖 좋은 것들로 왕자의 주변을 가득 채워두었습니다. 마치 세상의 어떠한 괴로움도 알지 못하는 천상의 중생들처럼, 오직 즐거운 세상만 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농경제에 나온 싯다르타의 눈에 들판에서 힘겹게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들의 몰골은 초췌하기 그지 없었고, 겨우 바지만 입은 채 쉼 없이 쟁기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뜨거운 햇살아래 파헤쳐진 땅 위로는 조그만 벌레들이 기어 다녔고, 때를 기다렸다는 듯 새들이 날아들어 발버둥 치던 벌레들을 사정멊이 쪼아 먹는 것입니다. 쟁기를 맨 소는 농부의 채찍질로 등짝에 피가 맺혔고, 농부 역시 온통 흙 투성이로 힘겨워 보였습니다.

슬그머니 행사장을 빠져나온 싯다르타는 농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힘든데 쉬었다 하시지요."

"저도 그러고 싶지만, 제 삶에 휴식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나라에 세금을 바치려면 쉴 틈이 없습니다 ..."

태자는 더 이상 농부를 위로할 수 없었습니다. 긴 한숨을 쉬며 잠부나무 아래에 앉아 생각에 잠겼습니다.

"백성들은 귀족의 횡포아래 하루하루 힘겹게 사는구나. 이 미물들은 또 서로를 잡아먹고 있구나... 어째서 살아 있는 것들은 서로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현실에서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속리산 법주사 팔상전八相殿(좌)은 석가모니의 팔상을 그린 그림과 존상(尊像)을 봉안한 법당이다. / 석가팔상도 釋加八相圖(우)

머리가 온통 복잡해진 태자는 해답을 찾기 위해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왕자는 이 사색을 통해 이때 선정의 첫 번째 경지를 얻었다고 합니다.

'나는 눈물과 고통을 초래하는 저런 탐욕에 사로 잡히지 사로잡히지 않으리라...'

싯드르타가 보이지 않자 신하들과 함께 찾아다닌던 정반왕은 커다란 잠부나무 아래에서 선정에 들어있는 태자를 발견했습니다. 마치 깊은 강물과 맑은 하늘처럼 깊고도 고요한 태자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평온함이 가득하였고, 정반왕은 숙연한 마음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선정에 들어있는 태자를 지켜 본 정반왕은 오히려 왕자를 더욱 세상과 멀리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태자의 나이 열하홉이 되었을 때, 야소다라Yasodhara와 혼인을 시켰습니다.

야소다라는 꼴리야족의 공주였습니다. 싯다르타와 야소다라는 즐거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정반왕도 둘의 결혼을 축하하며, 계절마다 지낼 수 있도록 세 곳의 궁전을 지어 주었습니다. 각각의 궁전마다 연못과 정원이 잘 가꿔져 있었으며, 온통 호화로운 것들로 가득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봄이었습니다. 태자가 마부 찬나와 함께 궁전의 동쪽 문을 나섰다가 길 한가운데 서 있는 백발의 노인을 만났습니다. 거무죽죽한 그의 얼굴에는 주름이 늘어졌으며, 바싹 말라 뼈만 앙상한 몸으로 지팡이에 겨우 의지해 숨을 헐떡이고 있었습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비참한 모습인가?"

"사람은 누구나 늙으면 저렇게 됩니다." 마부 찬나의 대답을 듣고, 싯다르타는 생각했습니다.

'나도 늙으면 저렇게 되겠지... 늙는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이구나. 사람으로 태어나 어느 누구도 늙는 것을 피하지 못한다. 나 또한 초라하게 늙어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는 없으리라...'

흥겨운 봄나들이였지만, 태자는 홀로 숲을 거닐며 생각에 빠진 채 성으로 돌아왔습니다. 며칠 뒤, 다시 나들이를 나서던 참이었습니다. 남쪽 성문으로 길을 나서는데, 길가에 쓰러져 누워있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저 사람은 병든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온몸의 종기에서 피고름이 흘러내리고, 괴로움에 신음하며 더군다나 자기가 토해 놓은 오물 옆에 누워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코를 막고 피하기만 할 뿐 누구하나 도움을 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괴로운 병이 들었는가?"

"살다보면 누구나 병이 들 수 있고, 병들면 저렇게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내며 괴로워하게 됩니다."

'저 사람 역시 지난 시절엔 나처럼 건강했을 것이다. 나의 젊고 건강한 이 육체도 영원한 것이 아니구나. 나 또한 누구하나 가까이 오지 않을 중병에 걸릴 수 있으리라. 어찌 저 괴로움의 신음소리를 저버리고, 여인들의 웃음소리와 풍류가락을 따라 흥얼거릴 수 있다는 말인가'

이번에도 태자는 어두운 표정으로 나들이에서 돌아왔고, 더 이상 웃음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정반왕은 문득 아시따 선인의 예언이 떠 올라 불안해하며, 앞으로 태자가 성 밖을 나설 때는 미리 길가에 모든 것들을 눈에 띄지 않게 치워두라고 명했습니다.

하루는 서쪽 성문을 나서 뒷산으로 올라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무리의 장례행렬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죽은이의 옷자락을 붙잡고 하늘이 무너질 듯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태자의 마음도 덩달아 우울해지고 말았습니다.

'슬픈 일이다... 죽음을 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 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도 결국 내 곁에서 떠나가겠지 ...'

"찬나야. 사람은 모두 죽는구나. 세상엔 온통 고통의 아우성만 들리는구나. 그만 돌아가자."

이제까지 태자가 만난 늙고, 병들고, 죽는 일들은 결국 태어나면 누구에게나 생겨나는 고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연 생사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는 것인지., 깊은 생각 속에서 정반왕이 있는 궁전으로 향했습니다.

"아바마마, 저에게는 네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태자의 소원이 무엇이냐. 그동안 나는 태자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해 주었다. 이번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반드시 들어줄 것이니라."

정반왕은 이렇게 말하면서도 내심 왕자가 수행자의 삶을 바라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런 눈빛으로 삿다르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늙지 않고 영원히 젊음을 누리게 해 주십시오. 병들지 않고 영원히 건강한 몸을 주십시오.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영원히 이별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세상에 누가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냐."

"아바마마, 비록 제가 왕자의 신분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누리고 있지만, 결국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얻고 싶습니다."

기어코 아시따 선인이 말한 순간이 찾아오는 것을 느낀 정반왕은 태자의 마음을 돌리려고 온갖 방법으로 설득했지만, 오히려 태자는 더욱 세상을 멀리한 채 사색에 빠지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어느덧 나이가 스물아홉이 되었습니다. 정반왕은 집안에만 머물러 초췌해진 태자의 건강이 염려되어 가까운 동산으로 나들이라도 다녀오라고 하였습니다. 마차를 탄 싯다르타 일행은 북문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그때, 싯다르타는 모든 근심과 걱정을 벗어버린 듯 평온한 표정으로 걸어가는 수행자를 만났습니다. 맨발에 비록 허름한 옷이지만 당당한 모습이었고, 손에 든 것이라곤 흙으로 빚은 그릇 하나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서 너무나도 강렬한 눈빛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출가하여 도를 닦는 사문이라 합니다."

"어디로 가는 길입니까?"​ 싯다르타는 설레는 마음으로 수행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바람처럼 걸림없이 다닙니다. 마치 새들이 두 날개만으로 자유롭게 날아다니듯, 저도 그저 옷 한 벌과 그릇 하나만으로 자유롭게 세상을 떠돌 뿐입니다."

"무엇 때문에 떠돌아 다니는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저는 늙고 병들고 죽는 삶의 고통을 겪고 나니 세상의 모든 것이 덧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삶의 굴레에서 머문다면 그 슬픔과 고통에서 결코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고통에서 벗어나 영원한 평안을 얻으려 친족과 벗들의 울타리를 넘어 출가하였습니다. 이제 저는 세상의 욕심에 물들지 않고, 모든 생명을 자비로써 대 합니다. 어떤 고통이 닥치더라도 슬퍼하자 않으며, 어떤 기쁨을 만나도 즐거움에 들뜨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 엄히 다스리며 태산처럼 무거운 발걸음으로 해탈의 길을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습니다."

사문의 대답에 싯다르타는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끓어오르는 무언가 뜨거운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궁으로 돌아 온 때자는 수행자의 말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마침내 그토록 갈구하던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 날 방법을 찾은 것 같아, 알 수 없는 평온함으로 가득했습니다.

  1. 유성출가상 踰城出家相

​어느 날 깊은 밤, 싯다르타는 잠이 든 마부 찬나를 깨워 말을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사실 부인 야소다라와의 사이에서 라훌라를 얻은 지 얼마되지도 않은 때였습니다. 야소다라가 아들을 낳았을 때, 싯다르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라훌라Rahula가 태어났구나.' 속박을 얻었구나.'

태자는 수행자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했지만, 이제 라훌라가 태어나면서 큰 걸림돌을 얻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속박이면서도, 싯다르타에게 있어 문제가 되는 상황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없더라도 왕위를 이어 줄 혈통이 생겼으니, 홀가분하게 출가할 결심을 더욱 굳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의 나이 스물아홉 음력 2월 8일, 싯다르타는 부귀와 권력, 일가친척을 모두 버리고 기약할 수 없는 성불의 길을 찾아 떠났습니다. 태자의 출가를 돕기 위해 하늘의 여러 천신들은 궁궐을 지키던 모든 병사를 잠들게 했고, 애마 깐타까는 땅을 박차고 올라 성벽을 훌쩍 뛰어 넘었습니다. 마부 찬나는 놀란 나머지 말고삐를 놓치고 깐타까의 꼬리만 겨우 잡은 채 힘껏 하늘을 날아올랐습니다.

'늙고 병들고 죽어야만 하는 삶의 고통, 많은 중생이 삶과 죽음의 고통속에 있지 않은가. 이 모든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결코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으리라. 위 없는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결코 어머니와 야소다라를 찾지 않으리라.'

성에서 멀리 떠나 강가에 다다르자 멀리서 동이 뜨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너희들의 할 일은 끝났다. 그 동안 시중드느라 수고 많았다. 그만 깐타까와 함께 궁으로 돌아가거라."

하지만 찬나는 태자의 앞을 막아서며 함께 왕궁으로 돌아가자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러나 태자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내고 상투를 찬나에게 줘어 주었습니다.

"나를 대신해 이것들을 부왕께 전해주거라. 내가 나라를 버리고 수행하는 것을 못난 짓이라 너무 나무라지는 마시라고 전해다오. 지금은 생사의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하니, 훗날 최상의 진리를 얻게 되면 돌아갈 것이라고 잘 전해다오."

"저만 궁으로 돌아가면 벌을 받을 것이 분명합니다. 왕자님 부디 제가 계속 모시도록 해 주십시오."

슬피 울며 애원하는 찬나에게 싯다르타는 마지막으로 신고 있던 황금신발을 벗어주며 다독였습니다. 그리고 왕비님과 야소다라에게 전해 달라고 당부하였습니다.

"만나면 헤어짐이 있게 마련이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 아니더냐, 나를 낳아주신 어머님도 얼굴을 뵙지 못하고 죽음으로 이별했는데, 너와 헤어짐이 없을 수 있겠느냐. 더 이상 부질없는 연민으로 괴로워 말라. 이제 여기서 헤어지자. 궁으로 돌아가 내 말을 잘 전해다오. 너에게 하는 마지막 부탁이다."

마침 지나가는 사냥꾼에게 부탁하여 자신의 화려한 옷과 사냥꾼의 허름한 옷을 바꿔 입고는, 그렇게 싯다르타는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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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미술여행 - 사찰의 용 ②
문화

사찰미술여행 - 사찰의 용 ②

용왕은 불법 수호하고 용왕 딸은 부처되다

▲ 월정사 용왕도, 조선(1755년), 모시에 채색, 세로 100cm, 가로 84.5cm.

서역 지방의 승려로 중국에 와서 불경을 번역하였던 구마라습이 쓴 ‘용수보살전(龍樹菩薩傳)’을 보면 바다의 용왕이 부처님의 법을 수호했다는 유명한 설화가 나온다. 말법(末法)의 세상이 되어 한 사람도 불법을 우러러 받드는 이가 없게 되면 불상은 스스로 무너져 버리고 경전들은 용왕이 살고 있는 용궁으로 들어가 모습을 감추게 된다. 그래서 기약 없는 날들을 지내며 불법이 다시 펼쳐질 세상을 기원하며 용왕은 용궁에 숨겨진 불경을 지키고 있었다. 용수보살은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600~700년 이후에 태어난 인도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지혜가 남달라 출가한지 90일 만에 삼장(三藏)의 깊은 뜻을 통달하였다. 대룡(大龍) 보살은 자만심이 하늘을 찔러 안하무인으로 살던 용수보살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 그를 이끌고 바다 속 용궁으로 향했다. 대룡보살이 이끈 용궁의 칠보로 장식이 된 창고 속에는 ‘화엄경’을 비롯한 대승의 경전들이 가득하였다. 용수는 석 달 동안 용궁에 있던 속 대승경전을 공부하여 그 이치를 모두 깨달았고 그 가운데 몇 권을 골라 뭍으로 가지고 나와 다시 불법을 세상에 널리 펼쳤다. 고로 우리가 지금 대승의 법을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것은 모두 용왕이 부처님의 법을 용궁 속에 고이고이 모셨던 공덕 그 덕택이다.

말법시대에 모습을 감춘 불법 용왕, 용궁에서 수호하고 지켜 ‘대승의 불법’을 후대에 전해 용녀, 문수보살의 설법 경청 어린 여성의 몸으로 성불해

‘화엄경’에는 10대 바라밀을 상징하는 10명의 용왕이 나오고 ‘법화경’에는 각각 독특한 특성을 가진 8명의 용왕이 소개되어 있다. ‘법화경’의 8대 용왕은 호법용신의 대표자인 난타(難陀). 난타용왕의 형제인 발난타(跋難陀), 비를 기원하는 청우법의 본존인 사가라(娑伽羅), 머리가 아홉 달린 화수길(和修吉), 화수길의 동료로 화가 나서 바라보기만 해도 짐승과 사람이 죽어버린다는 덕차가(德叉迦), 설산 위에 살며 덕이 가장 높은 아나발달다(阿那跋達多), 큰 몸과 큰 힘, 큰 뜻을 의미하는 모든 것이 큰 마나사(摩那斯), 푸른 연못에 사는 우발라(憂鉢羅) 용왕 등이다. 이 가운데 사가라 용왕은 큰 바다의 용왕으로 비를 기원하는 기우신앙에서 본존으로 모셔진다. ‘월인석보’를 보면 “일곱 산 밖에 짠물의 바다가 있는데 사가라 용왕이 우두머리가 되어 있나니 다른 용이 다 그 신하이다”라 하여 사가라가 용중의 왕으로 묘사되어 있다.

▲ 국립박물관 소장 신중도 중 용왕의 모습, 1750년, 비단에 채색.

용왕은 불법을 수호하는 신들을 그린 신중도의 구성원으로 빠지지 않고, 더불어 물과 관련된 절대적인 신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절에서는 용왕전이라는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여 용왕도라는 단독 불화를 조성하여 모시고 있다. 보통 용왕은 바다의 수호신이기에 바다 일을 하는 어부들과 관련이 있지만 드물게 수명장수를 기원하는 신으로도 모셔지기도 한다.

▲ 야차의 등에 업힌 인물상, 일본 대덕사 소장 고려 수월관음도 부분.

월정사 용왕도는 용왕의 왕인 사가라를 그린 것이다. 불화의 용왕은 인간과 같은 형상으로 제왕의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월정사의 용왕도와 같이 우리가 흔히 접하지 못한 독특한 형상으로 그려진 작품도 있다. 화면 중앙에 서 있는 인물이 두 손에 꼭 쥔 여의보주와 등 뒤로 용트림 하며 오르는 작은 용은 이 분이 바로 용왕님이라는 것을 알려 주는 모티프이다. 돼지 코를 하고 있는 용과 같이 돼지 코 얼굴에 그려진 수염은 마치 주렁주렁 하얀 고드름과 같다. 연재물이 나올 정도로 인기가 좋았던 ‘캐리비안의 해적’이라는 영화에서 데비존스 선장의 모습을 우리나라 불화의 용왕님에서 얻어 갔는지, 어딘지 모르게 이 둘은 묘하게 비슷한 느낌이 든다. 머리 위 포효하는 용의 당당함에 비해 여의보주를 쥔 두 손은 너무 공손해 보여 어딘가 해학적인 느낌을 가지게 한다.

‘법화경’의 ‘제바달다품’에는 지혜가 남다른 사가라 용왕의 딸이 8세 때 용궁에서 문수보살이 설하는 ‘묘법연화경’을 듣고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된 이야기가 나온다. 용왕의 딸은 여자의 몸은 부처가 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리자와 그 사실을 당연시 하였던 그 자리에 모였던 대중들에게 보란 듯이 부처님의 신력을 입어 홀연히 남자의 몸으로 바뀌어 보살행을 갖춘다. 그리고 곧바로 남방무구세계로 가 보배 연꽃자리에 앉아 부처님의 상을 갖춘 뒤 시방세계 일체중생을 위해 묘법을 연설하며 부처가 되었음을 증명하였다. 여성이 부처가 되었다는 이 놀라운 설화를 우리나라 사찰에서 그림으로 혹은 조각으로 만들어 소장하고 있는 예를 필자는 아직 찾지 못했다. 불화에서 성인 여성이 용녀로 그려진 작품은 고려 미륵사경변상도를 비롯하여 전라도 미황사 괘불 좌우 협시한 용왕과 용녀의 상, 수월관음도에서 공양자로 표현된 용왕과 용녀 등 조선시대 작품을 통해서도 살펴 볼 수 있지만 아쉽게도 어린 소녀의 모습으로 그려졌을 사가라 용왕의 딸을 다룬 작품은 없었다.

▲ 선녀용왕도(장곡천등백 작 실정말기 長谷川等伯 作 室町末期 1564년), 비단에 채색. 세로 35.3cm, 가로 16.3cm. 일본 이시카와현 칠미미술관(七尾美術館).

일본 대덕사(大德寺)에 소장된 고려 수월관음도의 아래부분에는 관음을 향해 한 쪽 방향으로 줄지어 가는 공양 인물군상이 있다. 선두에 선 용왕을 비롯하여 용왕의 부인 등 용궁의 인물들로 구성된 공양인물군상 끝에 야차의 등에 업혀 보주를 쥐고 있는 인물이 바로 용녀가 어린 남자아이로 변한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는 학계의 추정도 있다. 한 화면에 ‘화엄경’의 선재동자와 ‘법화경’의 용녀가 함께 그려지는 것이 가능하다면 허구적인 추측은 아니지 싶다. 일본의 유명한 화가 하세가와 도하쿠(長谷川等伯)가 그린 불화 가운데는 사가라 용왕의 어린 딸을 그린 선녀용왕도가 있다. 그림의 앳된 소녀가 용왕의 딸임을 나타내기 위해 소녀의 뒤로는 손에 붉은 여의주를 꽉 쥐고 용트림하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푸른 용 한 마리를 그렸다. 소녀의 오른손에 든 검은 문수의 지혜를 상징하는 반야검으로 보이고 왼손에 들어 올린 보주는 석가모니에게 바쳤다던 자신의 성불이 빠름을 증명했던 보배구슬을 의미하는 듯하다. 우리나라에도 사가라 용왕의 딸을 그린 작품이 존재하였다면 아마 일본 화가가 그린 이 작품과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을 듯싶다.

‘법화경’에서 지적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도 한량없는 겁 동안 힘든 수행을 통해 성불에 이르렀기 때문에 어린 소녀인 용녀의 성불을 못 믿겠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용녀의 성불은 사실이었고 그것도 무량겁의 세월이 아닌 순간에 이루어진 성과였다. 신통력을 가지고 있는 용왕의 딸이었기에 이 모든 일이 가능했겠지만 이 이야기를 달리 보면 어쩌면 여성은 성불하지 못하는 존재가 아니라 속성으로 성불할 수 있는 법기(法器)일 수도 있겠구나싶다. 어찌됐던 사가라 용왕의 딸 이야기는 필자를 포함한 모든 선녀인(善女人)들에게 여자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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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목어
불교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목어

옛날 어느 절에 덕 높은 스님이 몇 사람의 제자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한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어가고 제멋대로 생활하며,

계율에 어긋난 속된 생활을 일삼다가 그만 몹쓸 병이 들어 죽게 되었다.

죽은 뒤에는 물고기 몸을 받아 태어났는데

등 위에 큰 나무가 솟아나서 여간 큰 고통이 아니었다.

하루는 스승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 가는데

등 위에 커다란 나무가 달린 고기가 뱃전에 머리를 들이대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스승이 깊은 선정(禪定)에 잠겨 고기의 전생을 살펴 보니,

이는 바로 병들어 일찍 죽은 자기 제자가 방탕한 생활의 과보(果報)로 고통받는 모습이었다.

이를 가엾게 생각하여 수륙천도제(水陸薦度際)를 베풀어 고기의 몸을 벗게 하여 주었다.

그날 밤 스승의 꿈에 제자가 나타나서 스승의 큰 은혜를 감사하며

참으로 발심하여 공부할 것을 다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등에 있는 나무를 베어 고기 모양을 만들어,

부처님 앞에 두고 쳐주기를 부탁하는 것이었다.

그 소리를 들으면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교훈이 될 것이고,

강이나 바다의 물고기들은 해탈할 좋은 인연이 되겠기에 ...

이렇게 해서 고기 모양의 목어(木魚)를 만들게 되었다.

이것이 차츰 쓰기에 편리한 둥근 목탁(木鐸)으로 변형되어,

예불이나 독경을 할 때 혹은 때를 알릴 때에도 사용하며,

그 밖의 여러 행사에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일설에는, 고기는 잠을 잘 때도 눈을 뜨고 자므로

수행자도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해야 불도(佛道)를 성취한다는 뜻에서

고기 모양의 목어를 만들어 아침 저녁으로 치게 하였다고도 한다. )

  • 우리나라의 큰 사찰에 가보면 종각이 있고,

    이 종각에는 네 가지 법구(法具 : 사물四物)가 갖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쇠로 된 범종(梵鐘)과

가죽으로 만든 커다란 법고(法鼓),

구름 모양의 운판(雲板),

그리고 고기 모양의 목어(木魚)가 그것이다.

  • 범종은 고통 속에 살아가는 땅 밑 중생들의 해탈을 기원하며 울리고,

    큰 북은 네 발 가진 짐승의 무리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치는 것이며,

    목어는 물 속 생물들의 구원을 위해 두드리는 것이며,

    운판은 날아다니는 날 짐승과 온갖 곤충들의 안락을 바라며 소리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사물의 울림 속에는

「원컨대 이 소리 온누리에 두루 퍼져

고통 받는 온갖 중생 다 함께 해탈케 하여지이다」하는 염원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곧 뭇 중생의 행복과 해탈을 기원하고, 생명의 존엄성을 일깨우는 자비의 소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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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입문 - 십이연기설(十二椽起) 이란?
문화

불교입문 - 십이연기설(十二椽起) 이란?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인연으로 나타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연기(緣起)란 인연으로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비구니들이여 연기에 대해 말할 것이니 잘새겨들어라, 이것이 있는 까닭으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生)하는 까닭으로 저것이 생하고, 이것이 없는 까닭으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滅)하는 까닭으로 저것도 멸한다."고 연기에 대한 정의를 설하셨다고 전해집 니다. 연기란 인연생기(因緣生起)의 뜻으로 모든 것이 서로 연(緣)이 되어 생겨나고 일어나고 없어지고 하는 그러한 원리입니다.

※ 이 자료는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 알아두면 좋은 불자상식 작성자 민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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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전통사찰의 구조 - 명부전(冥府殿)
문화

전통사찰의 구조 - 명부전(冥府殿)

지장보살을 봉안한 경우는 지장전(地藏殿)이라고 부르고, 시왕을 모신 경우는 시왕전(十王殿)이라고 불린다. 시왕은 지옥에서 죄의 경중을 정하는 염라대왕을 비롯한 열 명의 왕이다. 지장보살은 지옥의 공간인 명부세계의 주존이므로 지장전을 명부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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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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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흠노화상 법어-호랑이에게 귀의(삼귀의)를 주다. (독송·염불:각의-호흡오음염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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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흠노화상 법어-호랑이에게 귀의(삼귀의)를 주다. (독송·염불:각의-호흡오음염불)

!광흠노화상 법어-호랑이에게 귀의(삼귀의)를 주다. (독송·염불:각의-호흡오음염불)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정토한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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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0일
사찰 벽화이야기 - 은혜를 갚은 꿩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은혜를 갚은 꿩

강원도 원주에 있는 치악산은 뱀이 많기로 유명합니다.

옛날 치악산에는 상원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이 절에서 수행하던 한 스님이 어느 날 법당 뒤로 산책을 나갔다가

우연히 큰 구렁이 한 마리를 목격했습니다.

구렁이는 독기를 뿜으며 꿩을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스님은 들고 있던 지팡이로 구렁이를 건드려 쫒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구렁이한테 놀라 날지도 못하는 꿩을 보듬어 멀리 날아가도록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스님이 홀로 참선을 하는 방문을 누군가 두드리는 것입니다.

방문을 열고 나가보니, 거기에 백발의 한 노인이 서 있는 것입니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야심한 밤에 길을 잃으셨나 보군요."

"나는 길을 잃은 게 아니오. 배가 고파서 들어 온 것 뿐이오."

"그럼 내 공양을 좀 준비해 드리리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스님이 후원으로 나가려 하자, 노인이 팔을 제지하면서 말했습니다.

"아니오. 나는 밥을 먹지 못하오. 살아 있는 것을 먹소. 죽은 고기도 안 먹소."

노인의 말에 스님이 깜짝 놀라 되물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죽은 고기와 밥을 드시지 않고, 산고기만 드신다니요."

"나는 구렁이올시다. 오늘 낮에 꿩 한 마리를 잡아먹으려 했는데,

스님이 방해를 해서 놓쳐버리고 이제껏 굶었소.

그러니 대신 스님을 잡아먹어야겠소."

"아니 노인장께서 구렁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잡아먹는 것은 나중이고, 우선 노인장이

어째서 구렁이인지 그 사연이나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정색하던 노인이 이윽고 말을 이어갔습니다.

"나는 전생에 이곳 상원사에서 주지로 있었소.

한 때, 불사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범종을 만들기로 했소.

시주들에게 화주를 했지요. 그렇게해서 꽤나 많은 불사금이 모였소.

그런데 나는 그 돈을 다른 곳에 쓰고 범종 만드는데는 조금밖에 쓰질 않았소.

그랬더니 종소리가 영 나질 않게 되었소.

난 그런 죄로 그만 죽어서는 구렁이의 몸으로 태어나고 말았소이다.

나의 죄업은 한 없이 크다는 것을 알았소.

하지만 지금의 나는 구렁이의 몸으로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니 산고기를 잡아먹어야만 하오."

"듣고 보니 참 딱하십니다. 내가 먹이를 뺏은 것은 잘못한 일이니 한 번 만 봐 주십시오."

그러나 노인은 막무가내였습니다.

그 일은 그 일이고 지금 배고픔을 참을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스님이 애원하며 매달리자, 노인은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좋습니다. 스님께서 정 그러하다면 내게 한 가지 제안이 있소.

이 상원사 법당 뒤에 가면 내가 전생에 잘못 주조하여 소리가 나지 않는 종이 있소.

만일 내일 새벽까지 그 종을 울려 소리를 나게 하면,

나는 구렁이의 몸을 벗고 다시 인간으로 태어날 수가 있소.

그때는 나도 열심히 정진하여 깨달음을 얻겠소이다."

과연 법당 뒤에는 종이 높다랗게 달려 있었습니다.

게다가 워낙 높은 곳에 달려 있어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그 종을 울릴 수가 없는 정도였습니다.

너무나 높은 곳에 달아맨 범종이기에 이 절에 그토록 오래 있으면서도

그런 종이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내왔던 것입니다.

결국 하는 수 없이 포기하고 선방으로 돌아와

새벽이 되기까지 마지막으로 수행이나 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노인도 옆에서 새벽이 되기만을 기다리며 침을 삼키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새벽이 밝아왔습니다.

노인이 구렁이로 변하여 스님을 잡아먹으려고 하는데,

바로 그때 밖에서 종소리가 들려오는 것입니다.

스님이 듣기에 그처럼 장엄하고도 아름다운 종소리는 처음이었습니다.

스님을 잡아먹으려던 구렁이는 다시 노인으로 변하여 스님에게 큰 절을 올리며 말했습니다.

"내, 저 종소리를 듣고 구렁이 몸을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날이 밝거든 나의 시신을 거두어 화장해 주십시오. 나는 다시 사람으로 태어납니다.

내 몸은 남쪽 처마 아래 땅 속에 있습니다."

노인은 말을 마치고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날이 밝자 스님은 종이 달려있는 법당 뒤로 가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두 마리 꿩이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지난날 구해 준 그 녀석들이었습니다.

꿩은 자기의 생명을 살려 준 은혜를 목숨을 바쳐 갚은 것입니다.

"미물이라도 은혜를 갚을 줄 아는데

사람으로서 어찌 저 꿩만도 못할 것이랴. 참으로 장한 일이로다."

스님은 꿩을 거두어 양지 바른 곳에 잘 묻어 주었고,

노인이 일러준 것처럼 남쪽 처마 아래 땅을 파 죽은 구렁이 한 마리도 잘 거두어 화장해 주었습니다.

그 뒤로 산 이름을 '꿩 치雉'자와 '큰산 악嶽'자를 써서 치악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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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미술여행 - 극락구품도
문화

사찰미술여행 - 극락구품도

19세기 민중 염원 반영한 새 장르의 출현 ▲ 파주 보광사 극락구품도 벽화, 19세기 후반.

신록의 오월, 창취한 유월이라는 말처럼 초여름으로 넘어가는 이 계절 하루가 다르게 창밖의 풍경은 녹음이 점점 짙어간다. 얼마 전 불교중앙박물관에서 왕실발원불화인 ‘극락구품도’를 보면서 파주에 있는 보광사 대웅보전 벽면에 그려져 있던 연화화생도가 생각났다. 보광사 대웅보전의 외부 측면에는 널판을 끼워 맞춘 판벽에 벽화가 빽빽이 그려져 있다. 19세기 후반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벽화들 가운데 연꽃이 핀 못의 풍경을 묘사한 장면은 아기자기한 구성에 불보살님도 볼 살이 통통한 아기와 같은 모습으로 그려져 보광사 판화 가운데 대중적인기가 가장 높다.

‘관경’ 그려낸 ‘16관경변상도’ 조선후기 대중결사 늘어나며 왕생 바라는 ‘극락구품도’로 기복신앙 흥성 시대상 보여줘

그림을 자세히 보면 연화대좌에 앉으신 부처님의 머리 위에는 천개와 함께 팔보 장식이 바람에 날리고 그 주위로 극락조와 극락의 보궁을 표현한 듯 전각의 지붕도 연못 풍경 위에 함께 있다. 이 모티프들을 다 조합해 보면 이 벽화는 선업을 지은 인연에 따라 아미타부처님이 계시는 극락정토에 연화화생하는 형상을 그림으로 나타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고려시대 그려진 ‘16관경변상도’는 우리나라에서 극락정토를 그린 불화로서는 현재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이다. ‘관무량수경’에는 아미타부처님이 계시는 극락정토에 이르기 위해 닦아야 할 구체적인 수행방법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특별한 것과 일반적인 것을 합쳐 모두 16가지를 일러주셨는데 그 내용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 ‘16관경변상도’이다. 경전에 따르면 석가모니 부처님은 ‘관무량수경’을 인도 마가다국의 바이데히 왕비를 위해 설하셨는데 그 배경에는 남편인 빔비사라 왕과 아들 아자타샤트루 태자 사이에 있었던 기구한 인연이 자리하고 있었다. 왕과 왕비는 오랫동안 자식이 없어 고민하다 어렵게 아들을 얻었는데 점술가들은 그 아들이 자라나면 후환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왕은 점술가의 말에 따라 태자를 죽이려 하였지만 궁녀의 도움으로 태자는 숨어서 장성하였고 이후 아버지에게 원한을 갚기 위해 왕을 굶겨 죽이려 하였다. 왕비의 도움으로 왕이 살아 있음을 알게 된 태자는 어머니까지 죽이려하자 세상에 어머니를 죽인 일은 없다는 주위의 만류에 왕비를 어두운 방에 가두어 버린다. ‘관무량수경’이 설해진 원인이 되는 이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린 것이 ‘관경서분변상도’이다.

▲ 16관경변상도, 1300년 전후, 비단채색, 202.8×129.8㎝, 일본 서복사.

일본 서복사에는 16관경을 설하게 된 바이데히 왕비의 사연을 그린 고려불화 ‘관경서분변상도’와 함께 13세기 전후에 그려진 고려의 ‘16관경변상도’가 있다. ‘16관경변상도’는 경전에 의거하여 극락세계를 관상하는 16개의 방법을 하나의 화면에 모두 담기 위해 화면을 크게 상중하 삼단으로 나누었다. 화면의 가장 윗부분에 불회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14관에서 16관까지 순서대로 그리고 화면 좌우에 2관에서 13관까지 배치하고 있다. 전체적인 화면의 구도와 모티프의 구성이 남송계열의 ‘16관경변상도’와 유사성을 보이고 있지만 화면 상부 불회도와 같은 모티프를 화면에 중심내용으로 표현한 것은 고려만의 개성과 독창성이 발휘된 부분이다. 화면 중앙에서 하단까지 중심부분에 그려진 내용은 삼배관(三輩觀)으로 수행자의 근기에 따라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모양을 보는 방법인데 이것이 다시 각각 셋으로 나뉘어져 구품으로 세분된다. 따라서 극락세계를 그린 ‘16관경변상도’에서 극락으로 왕생한 사람을 볼 수 있는 부분은 14관에서 시작해서 16관까지 구품의 연못이 그려진 장면들이다.

고려 ‘16관경변상도’의 도상은 시대를 따라 계승되어 조선후기에 이르면 ‘16관경변상도’의 여러 모티프 가운데서 신자의 품성에 따라 구품왕생을 그림으로 나타낸 연못 모습을 확대시킨 독특한 도상이 새롭게 모습을 나타낸다. 극락을 보는 나머지 방법을 모두 생략하고 구품의 연못에 포커스를 맞춘 도상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되면서 ‘극락구품도’라는 새로운 불화의 장르가 생기게 되었는데 불교 박물관에 전시된 수국사와 흥천사의 극락구품도가 여기에 속한다. 조선말 불교계는 극락왕생을 염원하는 염불결사와 같은 대중결사를 통해 폭넓게 신도를 확보할 수 있었고 이들의 후원으로 경제적 기반을 다져 신앙의 목적과 부합되는 다양한 불사의 추진이 가능하게 되어 ‘극락구품도’와 같은 새로운 장르의 불화가 탄생할 수 있었다.

▲ 극락구품도, 1907년, 비단채색, 186×254㎝, 수국사.

‘16관경변상도’와 같이 복잡하고 어려운 교리적 차원의 이해가 있어야 해석이 가능한 불화에 비해 ‘극락구품도’는 극락에 연화화생하는 장면에 초점을 맞춰 간략하고 단순화되어 있어 기복적 신앙으로 변모한 조선시대 불교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극락구품도’라는 불화가 그려진 19세기는 세도정치에 농민저항운동 등으로 그 시대를 사는 민중의 삶이 그리 녹록하진 않았다.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는 불자들의 마음에는 교리적으로 복잡한 그림보다는 극락으로 가는 방법이 명확하고 단순하게 그리고 중복 강조되어진 그림을 원했기 때문에 아홉 장면 모두 극락에 연꽃으로 화생하는 왕생자들을 그린 이런 불화가 탄생하였을 것이다.

극락왕생하는 연지의 모습을 확대하여 그린 ‘극락구품도’는 19세기에 그 예가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때문에 아마도 보광사의 대웅보전에 그려진 연화화생하는 연못의 그림도 역시 시대적인 양식에 따라 ‘극락구품도’를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비단바탕에 그려져 법당에 모셔져 있는 극락세계를 표현한 다른 불화들과 비교하였을 때 보광사 극락구품도벽화의 구성은 너무 간소하고 어딘가 엉성하고 거칠어 보인다. 하지만 화려한 비단그림에서 찾을 수 없는 수수함과 소박함에서 고달픈 민중의 시린 마음을 달래주었던 따뜻한 감성이 더 잘 전달되는 듯하다. 연꽃 위에 앉아 두 손 모아 합장하고 앉아 있는 왕생자도 그들을 맞이하는 여래도 모두 행복해 보이는 모습을 통해 이 그림을 그린 작가는 극락세계는 미소가 끊이지 않는 행복한 세상임을 우리에게 정확히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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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사명대사
불교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사명대사

<직지사- 경북 김천>

우리는 '사명대사'하면 먼저 떠올리는 건 임진왜란 때 일본군을 공포로 몰아넣은 용맹스러운 승병(僧兵)의 이야기고,

또 하나는 그의 얼굴에 나타난 풍성한 턱수염이다.

▮ 임진왜란과 승병에 대한 단상(斷想)

< 행주산성의 승병도 – 경기도 고양시 >

남도(南道) 지역의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승병에 대한 활약상을 안내하고 있다.

승병의 활약상에서 늘 그러 해왔던 것처럼 영웅으로 생각해 버리기에는 어떤 고민이 따른다.

아마 격렬한 살육의 현장 한가운데 승병(僧兵)이 등장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스님이 살인을 할 수 있느냐?"라는 볼멘소리를 못 들은 척하기는 어렵다.

비록 왜군(倭軍)이 침략자이기는 하나, 그들도 인간인 것은 변함이 없는 사실인데,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스님의 살생을 정당화할 수는 있는 것일까?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본다면,

살생(殺生)의 행위는 바라이 죄에 해당하는 중죄로. 살인은 물론이고 살인 시도만 하더라도 바라이 죄에서 빠져나갈 구멍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설사 그것이 애국심의 발로라 하더라도 살인을 하거나 살인을 계획한 순간 비구로서의 자격은 상실한 것이다.

임진왜란 때 전공을 세운 서산, 사명, 영규, 처영 같은 스님들은 지금까지도 영웅담이 이어지고 있다.

스님들에 어울리지 않는 어쩐지 어색한 '영웅'칭호

당시 조선의 불교는 숭유억불로 인해 깊은 침체에 빠져있었고, 선종의 법맥(法脈)마저도 대부분 끊겼다.

스님들 그들은 전쟁터로 나섰다 왜일까?

그렇게 조선의 대부분의 비구들이 자격을 상실한 상태이니 전장에 나서도 문제 될 것 없다는 명분이라는 불편한 진실과 마주한다.

▮ 임진왜란 그 살육의 현장으로 내 몰린 스님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스님들이 살생의 금기를 깨트리며 적극적으로 전장에 나선 이유로 혹자는 이렇게 알린다..

거의 실질적 폐불(閉佛) 상태로 몰리던 조선의 불교가 어떤 계기로 나라를 구하게 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게 되었을까.

임진왜란으로 조선의 존위가 막바지에 이르자, 선조와 서산대사의 회동이 이루어졌고, 이후 불교의 호국 활동은 급물살을 타게 된다.

속절없이 밀리기만 하던 전세는 역전되어 임진왜란이 끝나고 조정으로부터 승병의 공적이 인정받아 승려의 지위는 완전히 복권된다,

이로써 산중에 머물러 있던 불교가, 도성 내로 활동 범위가 확대되는 기반이 마련되는 계기가 된 걸 보면.

그때의 회동에서 어떤 도네이션이 (donation) 짐작 가는 대목이다.

▮ 사명대사의 수염.

< 연화사- 경남 통영>

사명 스님 하면 '수염'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으니, 사명 스님의 수염에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오늘날 불교의 ‘율장'에서 '머리카락이나 수염은 출가자라면 반드시 깎아야 한다‘라고 하며

이런 삭발 의식은 세속인과 출가자를 구분 짓는 계기이며, 출가자로서 거듭나는 과정 중에 하나라 한다.

그처럼 승려가 되기 위해 출가한다는 것을 흔히 ‘머리 깎는다’라고 할 정도로 승려와 삭 발은 불가분의 관계로 인식된다.

경전 ‘비니모경’ 제3권에 '머리를 깎는 이유는 교만을 제거하고 스스로의 마음을 믿기 위함'이라는 구절이 있으니

머리칼이나 수염을 깎는 행위는 ‘집착과 교만을 부수는 방법‘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나아가 수행을 방해하는 근원인 ‘아집과 온갖 유혹의 감정까지 모두 끊겠다’는 결의를 보여주는 행위라 하는데.

그러한 승가(僧伽)의 엄한 규율 속에서 사명은 스님 신분으로 수염을 기른다는 것은 당시 시대 상황에서는 상당한 현실 저항의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기에,

스님 직분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전장의 장군으로의 영웅담에 가리어 그가 현실에 맞서 저항하려 했던 사상은 아쉽게도 전해오지 않고 있다.

사명 스님은 파격적인 수염 기르기로 우리에게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남성의 상징이라 믿고 싶은 수염에 대한 여성의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여성의 대다수는 깨끗하게 면도한 남성의 얼굴을 선호했고(43.84%), 긴 그루터기 수염(26.03%), 짧은 그루터기 수염(16.44%), 짧은 수염(10.96%)이 뒤를 이었다.

그리고 사명대사처럼 풍성하게 기른 수염은 선호하는 사람이 2.74%로 가장 선호도가 낮았다.

결국 여성들은 남성이 깔끔히 면도한 모습을 가장 선호했다는 결과다.

▮ 모아보는 사명대사의 초상

:: 국립박물관

:: 동화사-대구 동구

:: 표충사-경남 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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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1편 팔상성도 1,2 상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1편 팔상성도 1,2 상

Ⅰ. 팔상성도八相成道로 본 부처님 일대기一代記<br><br> 도솔래의상 兜率來儀相

​비람강생상 毘藍降生相

사문유관상 四門遊觀相

유성출가상 踰城出家相

설산수도상 雪山修道​相

수하항마상 樹下降​魔相

녹원전법상 鹿苑轉法相

쌍림열반상 雙林涅槃相<br> <br> <br> 단양 구인사 설법보전 說法寶殿 천태종 제3대 김도용 종정 "나를 내려놓고 기도해야"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 가운데 탄생, 출가, 열반등을 여덟 폭의 그림으로 나타낸 것을 팔상도八相圖라고 합니다. 또 일대기 가운데 가장 중요한 시점이 깨달음의 순간이기도 하며,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인연이 깨달음을 얻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함으로 부처님의 일대기가 곧 깨달음으로 연결되므로 팔상도를 팔상성도 八相成道라고도 부릅니다.

팔상도는 사찰의 팔상전八相殿이나 영산전靈山殿 내부에 많이 봉안되는데, 벽화로서 법당 외벽을 장식하는 소재로도 자주 등장합니다. 각각 ① 도솔래의 ② 비람강생 ③ 사문유관 ④ 유성출가 ⑤ 설산수도 ⑥ 수하항마 ⑦ 녹원전법 ⑧ 쌍림열반의 여덟 장면입니다.

이 여덟 장면은 부처님께서 어떠한 인연으로 세상에 태어나셨으며, 부처님의 성장과 수행과정, 중생제도와 열반들 많은 사건들 가운데 주요한 사실만을 간추려 놓은 것입니다.

도솔래의상 兜率來儀相<br> <br> 도솔은 하늘세상 도솔천兜率天을 일컫습니다. '도솔래의'란 도솔천을 떠난 부처님께서 마야왕비의 몸으로 잉태되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도솔천은 부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시기 전에 머물던 곳으로, 그곳에서는 호명이라는 이름으로 수행하시며 부처님이 될 인연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부처님에게 호명보살이란 이름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담에는 수 많은 이름들이 등장합니다. 부처님께서도 과거 오랜겁 동안 최상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하셨고, 그 과정에서 여러 이름으로 등장하셨습니다.

배고픈 나찰귀에서 자신의 몸을 바치는 조건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게 된 설산동자, 과거불인 연등부처님에게 꽃을 바치고, 또 진흙길에서는 묶었던 머리를 풀어 펼치며 밟고 가시기를 청한 선혜동자등 부처님의 전생은 수행과 자비의 실천을 몸소 보이시던 진정한 보살이었습니다.<br>

끝없는 수행의 결과로 마침내 부처님이 되시던 때, 그 직전의 모습이 바로 호명보살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늘나라 도솔천에 머물던 호명보살에게 수 많은 하늘의 신들이 찾아왔습니다.

"호명보살이시여, 세상의 모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이제 부처님이 되어 주십시오."​ 이렇게 천신들이 간곡하게 청하자, 드디어 인간 세상으로 내려갈 것을 결심하고, 정반왕이 다스리던 카필라국에 태어나기로 정했습니다. 당시 카필라국의 정반왕(淨飯王, Suddhodana 숫도다나)과 마야(摩耶, Māyā) 왕비에게는 20년이 넘도록 왕자가 없었습니다. 왕자가 태어나기를 애타게 기다리던 어느 날, 마야왕비는 여섯 개의 상아를 가진 흰 코끼리가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습니다. 왕자를 가지게 될 태몽이었습니다. 이 때 호명보살이 사바세계로 내려오셨던 것입니다.

부처님은 천상의 모든 행복을 다 버리고, 보살의 지위마저 내려 놓으며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났습니다. 인간 세상은 온갖 괴로움과 즐거움이 공존하는 곳입니다. 천상의 세상은 너무나 행복한 곳이기에, 오히려 그곳의 중생들은 힘들게 수행을 할 생각을 하지 않게 됩니다. 또한 나쁜 세상이라고 불리는 축생, 아귀, 지옥 같은 곳의 중생이 수행을 한다는 것도 말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오직 행복과 불행이 함께 있는 인간 세상의 중생에게 진리를 수행하는 길이 열려있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도 인간의 모습으로서 세속의 모든 쾌락과 장애를 벗어나 능히 깨달음을 이루어, ​모든 중생은 마침내 누구라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참모습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 이 모든 번뇌와 괴로움을 참고 이겨내야만 하는 감인堪忍의 땅, 사바세계로 내려오신 것입니다.

  1. 비람강생상 毘藍降生相

해산할 날이 가까워지자 마야왕비는 당시에 풍습에 따라 출산을 위해 친정으로 향했습니다. 긴 행렬은 카필라 성에서 멀지 않은 룸비니 동산에 이르러 잠시 쉬어가게 되었습니다. 봄기운 완연한 4월의 동산에는 온갖 나무와 들풀마다 피어난 꽃과 향기로 모든 이들의 심신을 달래주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동산의 이곳 저곳을 거닐며 봄날의 여유를 만끽했습니다.

그때 동산을 거닐던 마야왕비는 한 나무 아래 걸음을 멈추었고, 무지개처럼 길게 드리운 나뭇가지의 끝을 붙잡았습니다. 그 순간 하늘에서는 눈처럼 꽃비가 흩날렸습니다. 때마침 출산의 느낌을 받게 되자, 시녀들은 급히 출산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왕비는 어떠한 산통도 느끼지 않고, 서 있던 자리에서 그대로 아기를 낳았습니다. 사람들은 마야왕비에게 아무런 산통도 없이 출산하게 한 나무를 근심을 없앤 나무라는 의미로 무우수無憂樹라고 불렀습니다.<br>

비람毘藍이라는 말은 룸비니(Lumbini, 藍毘尼람비니) 동산을 뜻합니다. 옛날 인도 말을 소리 나는 대로 한자로 옮긴 음역音譯으로써 비람이라 적은 것입니다. 따라서 비람강생이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셨다는 의미입니다.

오른쪽 옆구리로 태어난 아기는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은 땅을 가리키며,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는 우랑차게 외쳤습니다.

"하늘 위 하늘 아래 내 오직 존귀하나니, 온통 괴로움에 쌓인 삼계三界 의 세상을 내 마땅히 편안하게 하리라."

*삼계 : 불교의 세계관 가운데 하나. 삼유(三有). 미혹한 중생이 윤회(輪廻)하는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세계.

아기의 걸음마다 커다란 연꽃이 피어올라 발을 받들었으며, 하늘과 땅은 진동하였고 온 세상이 밝게 빛났습니다. 하늘에는 오색구름이 피어 오르며 천신과 동자들이 축하하였고, 꽃비가 내리는 가운데 아홉 마리의 용이 물을 뿜어 아기를 깨끗하게 씻겨 주었습니다.

왕자가 때어난 지 닷새가 되자 정반왕은 여러 바라문을 초청해 왕자의 관상을 살피게 하였습니다. 나라를 이끌 왕자와 이 나라의 장래가 궁금했던 것입니다. 왕자를 살펴 본 관상가들은 하나같이 "서른 두 가지의 모양이 잘 갖추어졌으니, 무력을 쓰지 않고도 전 세계를 다스리는 전륜성왕이 되실 상입니다. 왕자님은 어떤 목적이든 다 성취할 것이고, 전륜성왕의 출현으로 이제 이 나라는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라고 아뢰었습니다.

  • 전륜성왕轉輪聖王 : 인도신화에서 통치의 수레바퀴를 굴려, 세계를 통일, 지배하는 이상적인 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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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왕자의 성姓은 고따마(Gotama,瞿曇구담), 이름은 싯다르타(Siddhat-tha, 悉達多실달다)로 지었습니다.

이 말은 '온갖 성스러운 징조를 빠짐없이 갖추어 모든 것을 뜻대로 이룬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왕자가 태어난 지 7일 만에 어머니 마야왕비는 인간세상의 짧은 수명을 다하고,​ 하늘세상 도리천으로 올라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왕자는 이모였던 마하빠자빠띠(Mahapajapau, 大愛道대애도)의 손에 의해 키워지게 되었습니다.

한편 당시 히말라야 깊은 숲 속에는 아시따Asita라는 선인이 수행을 하고 있었는데, 그는 오랜 수행으로 덕이 높고,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분이었습니다. 어느 날 신통력으로 세상을 살펴보았더니 카필라 왕궁에서 찬란한 기운이 뿜어 나오고, 하늘의 천신들이 환희에 가득 찬 모습으로 왕자의 탄생을 기뻐하며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되었습니다. 카필라국에 왕자가 탄생한 것을 알아차린 아시따 선인은 왕자의 얼굴이 몹시 궁금해 서둘러 궁궐로 향했습니다. 급하게 달려와 숨을 헐떡이는 그에게 정반왕이 물었습니다.

"아시따 선인이여, 무슨 일로 이리 급히 오셨습니까?"

"왕자는 어디에 계십니까? 저도 왕자의 얼굴을 뵙고 싶습니다." 아시따 선인은 왕비의 품에서 왕자를 받아 안고, 찬찬히 싯다르타의 얼굴을 살폈습니다. 그리고는 말없이 왕비에게 돌려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갑작스런 아시따 선인의 행동에 정반왕은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br>

사찰 벽화이야기 제 2편 팔상성도 1.

Ⅰ. 팔상성도八相成道로 본 부처님 일대기一代記

  1. 도솔래의상 兜率來儀相

  1. 비람강생상 毘藍降生相

  1. 사문유관상 四門遊觀相

  1. 유성출가상 踰城出家相

  1. 설산수도상 雪山修道​相

  1. 수하항마상 樹下降​魔相

  1. 녹원전법상 鹿苑轉法相

  1. 쌍림열반상 雙林涅槃相

단양 구인사 설법보전 說法寶殿 천태종 제3대 김도용 종정 "나를 내려놓고 기도해야"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 가운데 탄생, 출가, 열반등을 여덟 폭의 그림으로 나타낸 것을 팔상도八相圖라고 합니다. 또 일대기 가운데 가장 중요한 시점이 깨달음의 순간이기도 하며,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인연이 깨달음을 얻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함으로 부처님의 일대기가 곧 깨달음으로 연결되므로 팔상도를 팔상성도 八相成道라고도 부릅니다.

팔상도는 사찰의 팔상전八相殿이나 영산전靈山殿 내부에 많이 봉안되는데, 벽화로서 법당 외벽을 장식하는 소재로도 자주 등장합니다. 각각 ① 도솔래의 ② 비람강생 ③ 사문유관 ④ 유성출가 ⑤ 설산수도 ⑥ 수하항마 ⑦ 녹원전법 ⑧ 쌍림열반의 여덟 장면입니다.

이 여덟 장면은 부처님께서 어떠한 인연으로 세상에 태어나셨으며, 부처님의 성장과 수행과정, 중생제도와 열반들 많은 사건들 가운데 주요한 사실만을 간추려 놓은 것입니다.

  1. 도솔래의상 兜率來儀相

도솔은 하늘세상 도솔천兜率天을 일컫습니다. '도솔래의'란 도솔천을 떠난 부처님께서 마야왕비의 몸으로 잉태되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도솔천은 부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시기 전에 머물던 곳으로, 그곳에서는 호명이라는 이름으로 수행하시며 부처님이 될 인연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부처님에게 호명보살이란 이름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담에는 수 많은 이름들이 등장합니다. 부처님께서도 과거 오랜겁 동안 최상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하셨고, 그 과정에서 여러 이름으로 등장하셨습니다.

배고픈 나찰귀에서 자신의 몸을 바치는 조건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게 된 설산동자, 과거불인 연등부처님에게 꽃을 바치고, 또 진흙길에서는 묶었던 머리를 풀어 펼치며 밟고 가시기를 청한 선혜동자등 부처님의 전생은 수행과 자비의 실천을 몸소 보이시던 진정한 보살이었습니다.

끝없는 수행의 결과로 마침내 부처님이 되시던 때, 그 직전의 모습이 바로 호명보살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늘나라 도솔천에 머물던 호명보살에게 수 많은 하늘의 신들이 찾아왔습니다.

"호명보살이시여, 세상의 모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이제 부처님이 되어 주십시오."​ 이렇게 천신들이 간곡하게 청하자, 드디어 인간 세상으로 내려갈 것을 결심하고, 정반왕이 다스리던 카필라국에 태어나기로 정했습니다. 당시 카필라국의 정반왕(淨飯王, Suddhodana 숫도다나)과 마야(摩耶, Māyā) 왕비에게는 20년이 넘도록 왕자가 없었습니다. 왕자가 태어나기를 애타게 기다리던 어느 날, 마야왕비는 여섯 개의 상아를 가진 흰 코끼리가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습니다. 왕자를 가지게 될 태몽이었습니다. 이 때 호명보살이 사바세계로 내려오셨던 것입니다.

부처님은 천상의 모든 행복을 다 버리고, 보살의 지위마저 내려 놓으며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났습니다. 인간 세상은 온갖 괴로움과 즐거움이 공존하는 곳입니다. 천상의 세상은 너무나 행복한 곳이기에, 오히려 그곳의 중생들은 힘들게 수행을 할 생각을 하지 않게 됩니다. 또한 나쁜 세상이라고 불리는 축생, 아귀, 지옥 같은 곳의 중생이 수행을 한다는 것도 말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오직 행복과 불행이 함께 있는 인간 세상의 중생에게 진리를 수행하는 길이 열려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도 인간의 모습으로서 세속의 모든 쾌락과 장애를 벗어나 능히 깨달음을 이루어, ​모든 중생은 마침내 누구라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참모습을 일깨워 주기 위해서 이 모든 번뇌와 괴로움을 참고 이겨내야만 하는 감인堪忍의 땅, 사바세계로 내려오신 것입니다.

  1. 비람강생상 毘藍降生相

해산할 날이 가까워지자 마야왕비는 당시에 풍습에 따라 출산을 위해 친정으로 향했습니다. 긴 행렬은 카필라 성에서 멀지 않은 룸비니 동산에 이르러 잠시 쉬어가게 되었습니다. 봄기운 완연한 4월의 동산에는 온갖 나무와 들풀마다 피어난 꽃과 향기로 모든 이들의 심신을 달래주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동산의 이곳 저곳을 거닐며 봄날의 여유를 만끽했습니다.

그때 동산을 거닐던 마야왕비는 한 나무 아래 걸음을 멈추었고, 무지개처럼 길게 드리운 나뭇가지의 끝을 붙잡았습니다. 그 순간 하늘에서는 눈처럼 꽃비가 흩날렸습니다. 때마침 출산의 느낌을 받게 되자, 시녀들은 급히 출산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왕비는 어떠한 산통도 느끼지 않고, 서 있던 자리에서 그대로 아기를 낳았습니다. 사람들은 마야왕비에게 아무런 산통도 없이 출산하게 한 나무를 근심을 없앤 나무라는 의미로 무우수無憂樹라고 불렀습니다.

비람毘藍이라는 말은 룸비니(Lumbini, 藍毘尼람비니) 동산을 뜻합니다. 옛날 인도 말을 소리 나는 대로 한자로 옮긴 음역音譯으로써 비람이라 적은 것입니다. 따라서 비람강생이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셨다는 의미입니다.

오른쪽 옆구리로 태어난 아기는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은 땅을 가리키며,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는 우랑차게 외쳤습니다.

"하늘 위 하늘 아래 내 오직 존귀하나니, 온통 괴로움에 쌓인 삼계三界 의 세상을 내 마땅히 편안하게 하리라."

*삼계 : 불교의 세계관 가운데 하나. 삼유(三有). 미혹한 중생이 윤회(輪廻)하는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세계.

아기의 걸음마다 커다란 연꽃이 피어올라 발을 받들었으며, 하늘과 땅은 진동하였고 온 세상이 밝게 빛났습니다. 하늘에는 오색구름이 피어 오르며 천신과 동자들이 축하하였고, 꽃비가 내리는 가운데 아홉 마리의 용이 물을 뿜어 아기를 깨끗하게 씻겨 주었습니다.

왕자가 때어난 지 닷새가 되자 정반왕은 여러 바라문을 초청해 왕자의 관상을 살피게 하였습니다. 나라를 이끌 왕자와 이 나라의 장래가 궁금했던 것입니다. 왕자를 살펴 본 관상가들은 하나같이 "서른 두 가지의 모양이 잘 갖추어졌으니, 무력을 쓰지 않고도 전 세계를 다스리는 전륜성왕이 되실 상입니다. 왕자님은 어떤 목적이든 다 성취할 것이고, 전륜성왕의 출현으로 이제 이 나라는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라고 아뢰었습니다.

  • 전륜성왕轉輪聖王 : 인도신화에서 통치의 수레바퀴를 굴려, 세계를 통일, 지배하는 이상적인 제왕

이에 왕자의 성姓은 고따마(Gotama,瞿曇구담), 이름은 싯다르타(Siddhat-tha, 悉達多실달다)로 지었습니다.

이 말은 '온갖 성스러운 징조를 빠짐없이 갖추어 모든 것을 뜻대로 이룬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왕자가 태어난 지 7일 만에 어머니 마야왕비는 인간세상의 짧은 수명을 다하고,​ 하늘세상 도리천으로 올라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왕자는 이모였던 마하빠자빠띠(Mahapajapau, 大愛道대애도)의 손에 의해 키워지게 되었습니다.

한편 당시 히말라야 깊은 숲 속에는 아시따Asita라는 선인이 수행을 하고 있었는데, 그는 오랜 수행으로 덕이 높고,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분이었습니다. 어느 날 신통력으로 세상을 살펴보았더니 카필라 왕궁에서 찬란한 기운이 뿜어 나오고, 하늘의 천신들이 환희에 가득 찬 모습으로 왕자의 탄생을 기뻐하며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되었습니다. 카필라국에 왕자가 탄생한 것을 알아차린 아시따 선인은 왕자의 얼굴이 몹시 궁금해 서둘러 궁궐로 향했습니다. 급하게 달려와 숨을 헐떡이는 그에게 정반왕이 물었습니다.

"아시따 선인이여, 무슨 일로 이리 급히 오셨습니까?"

"왕자는 어디에 계십니까? 저도 왕자의 얼굴을 뵙고 싶습니다." 아시따 선인은 왕비의 품에서 왕자를 받아 안고, 찬찬히 싯다르타의 얼굴을 살폈습니다. 그리고는 말없이 왕비에게 돌려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갑작스런 아시따 선인의 행동에 정반왕은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선인이여, 어찌 그렇게 우십니까, 혹여 왕자에게 무슨 일이라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왕자는 결코 불행한 운명을 갖고 태어난 분이 아니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왕자님은 인간 가운데 가장 높은 분, 가장 뛰어난 분입니다. 궁궐에서 왕위를 잇는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전륜성왕이 되어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출가하여 수행을 닦는다면 최상의 깨달음을 얻게 될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을 이익되게 하고, 중생을 연민하여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릴 것입니다.

다만 저는 너무 늙었으니 왕자님이 최상의 법을 굴리기 전에 죽고 없을 것입니다. 참으로 깨달은 이의 가르침을 듣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 큰 불행입니다. 그래서 지금 슬퍼하는 것입니다." ​

정반왕에게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혹시 왕자가 출가할지도 모른다는 또 다른 걱정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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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큰 불을 피하려다 나무넝쿨에 매달린 사람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큰 불을 피하려다 나무넝쿨에 매달린 사람

사찰 벽화이야기 10. 큰 불을 피하려다 나무넝쿨에 매달린 사람 ​

​ 인생은 무명장야無明長夜와 같습니다. 깊은 어둠속에 쌓인 긴 밤처럼, 중생은 무명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헤매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무상한지는 아래에 적은 안수정등岸樹井藤의 비유는 여러 가지 상황으로써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 한 나그네가 끝없이 펼쳐진 들판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사나운 코끼리 한 마리가 들판에 난 큰 불을 피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나그네는 코끼리를 향해 죽을 힘을 다해 도망쳤습니다. 도망치던 나그네는 다행히 우물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곳에는 한 줄기의 넝쿨이 우물 속으로 뻗어 있는 것입니다. 일단 코끼리를 피해야 하겠기에 그 나그네는 급히 나무덩쿨을 잡고 우물 속으로 내려갔습니다. ​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한 나그네는 주변을 둘러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물 안 벽에는 독사 네 마리가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있었습니다. 또 발아래로는 무서운 독룡이 먹이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며 입을 쩍 ~ 벌리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나그네가 매달린 나무넝쿨은 언제부터인가 검은 쥐와 흰 쥐 한 마리가 갉아먹고 있는 것입니다. ​ 이대로는 죽을 것 같은 두려움에 놀란 나그네는 밖으로 나가려고 넝쿨을 잡고 올라가는데, 들에 난 큰 불이 벌써 이곳까지 번져 자욱한 연기 때문에 나갈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진퇴양난의 상황이 벌어지고만 것입니다. ​ 바로 그때였습니다. 매달린 넝쿨이 묶인 나무에 벌집이 하나 있는데, 그 벌집에서 꿀이 한 방울 씩 똑 똑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 꿀을 맛보니 그렇게 달고 맛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새 나그네는 두려움을 모두 잊어버리고, 이제는 달콤한 맛에 취하여 자신의 위태로움은 잊은 채 다시 꿀물이 떨어지기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비유경譬喩經』에 등장하는 이 비유는 우리의 인생을 빗대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저 나그네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여기서 나그네는 우리의 인생살이입니다. 끝없는 들판은 무명의 긴 밤을, 코끼리는 무상함을, 우물은 생사를, 넝쿨은 수명을, 두 마리 쥐는 낮과 밤을, 네 마리 독사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 흙, 물, 불, 바람의 사대를 각각 상징합니다. 벌은 삿된 생각이며, 꿀은 재물, 애욕, 음식, 명예, 수면의 다섯 욕망의 즐거움을, 큰 불은 늙고 병듦을, 독룡은 죽음을 각각 비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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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 이야기 - 꽃 속에 피어난 사람들
문화

사찰 벽화 이야기 - 꽃 속에 피어난 사람들

반야용선을 타고 도착한 곳, 극락세계는 중생이 어떠한 슬픔과 괴로움도 느끼지 않는 세상입니다. 새소리 물소리마다 부처님의 법음이 아닌 것이 없으니, 저절로 도를 통하게 되는 곳이 극락입니다. ​ 극락 세상에 왕생하는 중생은 모두 연꽃위에 앉아 있습니다. 이미 생전의 수행을 통해 본인이 태어날 연꽃이 자라나고 있는 것입니다. 중생이 태어나는 방법에는 모두 네 가지 유형이 존재합니다.

사찰벽화 이야기 13. 꽃 속에 피어난 사람들 ​

대한불교 천태종 안동 해동사 반야용선을 타고 도착한 곳, 극락세계는 중생이 어떠한 슬픔과 괴로움도 느끼지 않는 세상입니다. 새소리 물소리마다 부처님의 법음이 아닌 것이 없으니, 저절로 도를 통하게 되는 곳이 극락입니다. ​ 극락 세상에 왕생하는 중생은 모두 연꽃위에 앉아 있습니다. 이미 생전의 수행을 통해 본인이 태어날 연꽃이 자라나고 있는 것입니다. 중생이 태어나는 방법에는 모두 네 가지 유형이 존재합니다. ​

​ '태란습화'라고 하는데, 태생胎生은 부모의 태에 의탁해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엄마 뱃 속에서 자라는 우리가 태생에 해당합니다. 둘째, 난생卵生으로 알에서 태어나는 유형입니다. 포유류를 제외한 많은 동물이나 곤충 등이 알에서 태어납니다. 셋째, 습생湿生으로 습지에서 만들어지는 여러 생물들을 말합니다. 마지막 화생化生은 스스로의 업의 힘에 따라 갑자기 생겨나는 형태입니다. 극락왕생이 바로 화생에 해당합니다. ​ 반야용선을 타고 극락으로 가게되면, 우리는 연꽃 위에 태어납니다. 연꽃이 우리를 품고 있다가 내어 놓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있게 될 연꽃에 저절로 화생하는 것입니다. ​ 그 수준에 총 9단계가 있어서 9품九品이라고 합니다. 중생의 선업에 따라 9품 가운데 어느 한 곳으로 왕생합니다. 우리가 태어날 연꽃의 모양과 크기가 어떠한지는 지금 내가 닦고 있는 선행과 불도의 노력 여하에 따라 스스로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어떤 괴로움도 없이 행복을 누리며 다음 생에는 반드시 성불을 할 수 있는 부처님 나라, 그곳이 극락정토의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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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입문 - 모든 진리의 근본은?
문화

불교입문 - 모든 진리의 근본은?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마음을 착하게 쓰면 복을 받고 마음을 나쁘게 쓰면 죄를 받게 되는데, 이것은 모두 사람들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습니다.

※ 이 자료는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 알아두면 좋은 불자상식 작성자 민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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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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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 - 예불문에 담긴 의미
문화

불교문화 - 예불문에 담긴 의미

  1. 예불의 의미

예불(禮佛)이란 ‘부처님께 예배드림’을 뜻한다. 즉, 예불은 부처님을 향한 경의의 표현이다.

불교를 부처님이 되는 종교, 부처님을 깨닫는 종교, 수행을 통해 스스로가 부처임을

증득하는종교라고 할 때, 예불은 불교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대승불교의 정수인『법화경(法華經)』에서는 모든 인간과 일체 사물에도 불성(佛性)이

내재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는 자타(自他)와 주객(主客)을 구별하지 않고

모든 존재를 분별없이 포착하여 존재의 참뜻을 찾아내는 제법실상(諸法實相)의

이치를 천명한 것이다.

따라서 예배 대상으로서의 ‘부처’는 역사적 인물로서의 고타마 싯다르타뿐만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부처를 포함하여 가능성의 부처인 나와 남 그리고 일체 만물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를 지니게 된다.

부처님이 마지막 남기신『열반경(涅槃經)』의 ‘자등명법등명(自燈明法燈明)’

가르침에 의한다면 이 마음이 부처요[心卽佛]이고 이 몸이 곧 법당이다.

이는 곧 예불의 자심귀의(自心歸依)의 참뜻을 표명한 것이다.

예불이란 바로 자기 존재의 참된 가치를 깨우치는 것뿐만이 아니라,

가능성으로서의 부처인 나와 남을 위한 헌신을 통해서 총체적 존재의

위상을 발현하고자 하는 ‘불교적 존재관’의 표현인 것이다.

예불시 합장의 자세는 나와 남뿐만이 아니라 일체 만물이 하나가 된다는

일심(一心)의 근원을 표명하는 것이다.

또한 예불은 자신을 낮추는 자의 마음[下心]이며 겸손한 자의 마음이다.

나아가 모든 중생에게 내재된 청정하고 영원불변한 깨달음의 본성인

여래장(如來藏)을 찾아가는 수행정진의 과정이며, 영원한 깨우침을

예비하는 불자의 참된 자세[신․해․행․증(信解行證) - 믿음․사상․실천․깨달음]이다.

  1. 예불의 구성
  1. 광의의 예불

○ 도량송(道場誦)

(1) 도량석(道場釋) - ①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 ②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五方內外安慰諸神眞言)

③개경게(開經偈) 및 개법장진언(開法藏眞言) ④진언(眞言) 또는 다라니(陀羅尼)

(2) 사방찬(四方讚)

(3) 도량찬(道場讚)

○ 종송(鐘誦)

(1) 아침종송 - ①서설부분 ②파지옥진언(破地獄眞言) ③후렴 ④사물(四物)의 진행

(2) 저녁종송 - ①서설부분 ②파지옥진언 ③사물의 진행

※ 아침예불 : 법고 → 목어 → 운판 → 범종

※ 저녁예불 : 법고 → 운판 → 목어 → 범종

【 목어 : 木 = 東(아침) 운판 : 金 = 西(저녁) 】

※ 아침범종 : 28번 타종

【 욕계6천, 색계18천, 무색계4천 / 3 (동쪽방위 숫자) × 8 (동서남북상 하좌우) + 4 (간방 숫자) / 석가모니 부처님 28가지 대인상 】

※ 저녁범종 : 33번 타종

【 수미산 위 도리천 33천 / 4 (서쪽방위 숫자) × 9 = 사생(四生) 구류 (九類)의 태어남의 9가지 현상 】

◉ 예경(禮敬) - 아래 협의의 예불과 같음

  1. 협의의 예불

◉ 예경(禮敬)

(1) 새벽 예경 - ①다게(茶偈) ②예불문(禮佛文)

<다게>

아금청정수 변위감로다 봉헌삼보전

我今淸淨水 變爲甘露茶 奉獻三寶前

내 지금 맑고 깨끗한 물로 감로의 차를 만들어 불법승 삼보께 바치오니

원수애납수 원수애납수 원수자비애납수(반배)

願垂哀納受 願垂衰納受 願垂慈悲哀納受

원컨대 자비로 어여삐 받아주소서

※ 차(茶) : 茶에는 108이란 숫자적 표현〔艹(20) + 八十(80) + 八(8)〕

이 가미되어 있어, 인간의 108번뇌를 소멸하고자 하는 염원에서

부처님께 차를 공양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가 있다.

또 물(水)은 생명의 원천을 말하며, 영원불변의 진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한역 경전에서는 진리(다르마, dharma)를 법(法)으로 해석했는데,

‘法’이란 ‘물(氵, 水)의 흐름(去)’을 뜻하는 단어로 물 자체에 진리의

항구성이라는 의미가 부여되어 있는 것이다.

부처님께 물 또는 차를 공양함은 진리 자체의 항구성을 진리의 원천인

부처님께 되돌리는 인간적 염원이자 종교적 기원인 것이다. (외도의 세례의식 비교)

(2) 저녁 예경 - ①오분향례(五分香禮) 및 헌향진언(獻香眞言) ②예불문 (아래)

  1. 예불문의 구조와 의미 해설

① 집전자와 대중은 부처님 향해 무릎 꿇고 앉는다

② 집전자 목탁 1박에 접족례(接足禮)를 하고 일어나 합장한다

③ 집전자의 내림 목탁 1회에 대중은 반배한다

<오분향례 및 헌향진언>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반배)

戒香 定香 慧香 解脫香 解脫知見香

계․정․혜 삼학의 향과 깨달음을 구하는 향과 깨달음의 지혜를 얻는 향을 사루어 올리오니

광명운대 주변법계 공양시방 무량불법승(반배)

光明雲臺 周遍法界 供養十方 無量佛法僧

밝은 구름 법계에 두루하여 모든 세계 한없는 불법승 삼보께 공양예배 드립니다

헌향진언

獻香眞言

옴 바아라 도비야 훔 (3번째 반배)

향을 부처님께 바치는 진언 ‘아, 향이여 피안에 이를 수 있게 되기를‘

(여기까지 집전자만 봉독, 반배는 대중도 함께 한다)

                 <예불문>

   

지심귀명례 삼계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절)

至心歸命禮 三界導師 四生慈父 是我本師 釋迦牟尼佛

삼계의 길잡이시며 사생의 어버이시며 우리의 근본 스승이신 석가모니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목숨 다하여 예를 올립니다)

지심귀명례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불타야중(절)

至心歸命禮 十方三世 帝網刹海 常住一切 佛陀耶衆

시방삼세 제석천의 그물망과 같이 많은 땅과 바다에 항상 머무르시는 일체 불보께-

지심귀명례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달마야중(절)

至心歸命禮 十方三世 帝網刹海 常住一切 達摩耶衆

시방삼세 제석천의 그물망과 같이 많은 땅과 바다에 항상 머무르시는 일체 법보께-

지심귀명례 대지문수 사리보살 대행보현보살

至心歸命禮 大智文殊 舍利蓄藏 大行普賢菩薩

대비관세음보살 대원본존지장보살 마하살(절)

大悲觀世音菩薩 大願本尊地藏菩薩 摩訶薩

지혜 크신 문수사리보살과 행원 크신 보현보살과 자비 크신

관세음보살과 원력 크신 지장보살님께-

지심귀명례 영산당시 수불부촉 십대제자 십육성 오백성

至心歸命禮 靈山當時 受佛付囑 十大弟子 十六聖 五百聖

영산에서 부처님께 부촉받은 십대 제자와 열여섯 성인 및 오백 성인과

독수성 내지 천이백제대아라한 무량자비성중(절)

獨修聖 乃至 千二百諸大阿羅漢 無量慈悲聖衆

홀로 깨달은 성인 내지 천이백 모든 아라한과 한량없이 자비로운 모든 성인들께-

지심귀명례 서건동진 급아해동 역대전등 제대조사

至心歸命禮 西乾東震 及我海東 歷大傳燈 諸大祖師

인도와 중국 거쳐 우리 나라에 이르기까지 역대로 법의 등불을 전하였던 모든 조사와

천하종사 일체미진수 제대선지식(절)

天下宗師 一切微塵數 諸大善知識

천하의 종사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모든 선지식께-

지심귀명례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승가야중(절)

至心歸命禮 十方三世 帝網刹海 常主一切 僧伽耶衆

시방삼세 제석천의 그물망과 같이 많은 땅과 바다에 항상 머무르시는 일체 승보께-

유원 무진삼보 대자대비 수아정례 명훈가피력

唯願 無盡三寶 大慈大悲 受我頂禮 冥熏加被力

오직 원하옵나니 한량없는 삼보시여 큰 자비로써 저의 예배를 받으시고

그윽한 가피력으로,

원공법계제중생 자타일시성불도(반배)

願共法界諸衆生 自他一時成佛道

원하옵건대 온 법계의 모든 중생들과 나와 남이 일시에 불도를

이룰 수 있게 하시옵소서

예불문은 모두 2백71자로 구성된 짧은 문장이다.

전체 예불문을 봉송하는 가운데 7번의 절을 하기 때문에

‘칠정례(七頂禮)’라 부르기도 한다.

현재 한국 불교의 예불(경)문으로 사용되는 이 칠정례는 1955년 월운 스님

등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기존에 사용되어 오던 많은 종류의

예불문을 종합하고 간략화한 것인데, 오늘날 모든 종파를 초월한

‘범종파적 예불문’이라는 의의를 지니고 있다.

물론 일부 큰 사찰에서는 이 칠정례에 몇 구절을 첨가하여

사찰 고유의 전통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 예불문의 구성 >

(1) 삼보 향한 정중한 예의

예불문은 우선 삼보를 향한 정중한 예의에서부터 출발한다.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 광명운대 주변법계 공양시방 무량불법승’에

이어 헌향진언인 ‘옴 바아라 도비야 훔’까지가 바로 그 대목이다.

대우주의 진리 앞에 고게 숙여 겸허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발원함을 아뢰면서 서약하는 선언적 구절이다.

따라서 이 예불문을 염송할 때는 마음을 경건하게 갖춰야 할 것이다.

그 순간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지니고 온 가장 진실하고 순수한 본래심(本來心)의

마음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 부처님의 예찬

다음에 이어지는 칠정례 가운데 첫 번째인 ‘지심귀명례 삼계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과 ‘지심귀명례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불타야중’까지는

부처님을 예찬한 표현이다.

대우주의 진리 그 자체이신 부처님의 장엄하신 공덕에 감사하면서 그 가르침을

목숨 바쳐 지키고 따르겠다는 부처님과의 서약인 것이다.

(3) 부처님의 가르침에 예경

다음으로 ‘지심귀명례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달마야중’은

부처님의 가르침(다르마, 법法)에 예경을 올리는 내용이다.

불법의 진리이자 부처님의 가르침인 법을 배우고 비록 목숨을 바칠지언정

그 가르침대로 살아가겠음을 약속하는 구절이다.

깨끗하고 참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이승에서 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할 것을 맹세하는 대목이다.

(4) 4대보살님과 대성자 선지식께 예경

뒤이어 계속되는 3개 절의 ‘지심귀명례’는 부처님을 모시면서

부처님으로부터 위촉받은 사명을 대행하시는 4대 보살에 대한 예경이다.

‘대지문수사리보살, 대행보현보살, 대비관세음보살, 대원본존지장보살마하살’

은 우리의 삶과 가장 밀착되어 있는 네 분의 보살님이시다.

‘지심귀명례 영산당시 수불부촉 십대제자 십육성 오백성독수성 내지

천이백 제대아라한 무량자비성중’은 큰 깨우침을 이루신 대성인님들에 대한 예찬과 서약이다.

‘지심귀명례 서건동진급아해동 역대전등 제대조사 천하 종사 일체미진수 제대선지식’

역시 인도와 중국 그리고 우리 나라에 이르기까지 역대의 덕과 학문이 지고하신

선지식들을 지극한 마음으로 받들어 모시고 목숨을 바쳐 따르겠다는 맹세이다.

(5) 스님들에 대한 예경

그 다음에 이어지는 ‘지심귀명례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승가야중’은

바로 우리의 스님들에 대한 예경이다.

현세에서 고난극복과 수행정진을 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또한 이생을 마치는 영가들을 천도해 주시는 스님들께 목숨 바쳐 공경하고

배우며 따르겠다는 서약이다.

이는 승가(僧伽)에 대한 예경이라는 본래적 의미에서 나아가 사부대중인

비구(比丘)․비구니(比丘尼)․우바새(優婆塞)․우바이(優婆夷)의 화합과

조화라는 의미로 확산된다.

출가스님과 재가신자를 포함한 사부대중에로의 확대된 인식은,

모든 불자들 스스로가 승가의 일원임을 자각하여 공동체적 신행으로

부처님 법을 닦겠다는 서원의 발로라 할 것이다.

(6)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성불 기원

마지막 절인 ‘유원 무진삼보 대자대비 수아정례 명훈가피력 원공법계 제중생 자타일시 성불도’

는 우리가 소원하는 바를 깨끗하고 진지한 마음으로 아뢰면서 부처님과

약속하는 중요한 구절이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원하는 바가 있는데 그중 가장 절실한 것이 성취되도록

가피력을 베풀어 주십사 하는 기원이다.

그와 같은 성취는 삶의 현장에서 볼 수 있는 물질적인 것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 모두의 궁극적 소원인 성불로 이어지도록 기도하는 내용이다.

또한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모두 성불하기를 서원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정신을 바탕으로 대도(大道)의 길을 수행 정진할 것을

깨우치는 내용이다. 궁극적으로는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바로 극락정토가

되도록 다 같이 서원하는 가장 경건한 기도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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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입문 - 수행의 궁극적인 목적은?
문화

불교입문 - 수행의 궁극적인 목적은?

팔만대장경을 똘똘 뭉쳐 놓으면 마음심(心)자 하나이다. 중생을 제도 하라는 말뿐이다. -내 마음 내본심을 깨닫는 것인데, 본심을 모르니 갈등이 생긴다. -불(佛)은 본심을 깨닫는 것이고 -불법(佛法)은 깨달음 널리 펴는 것이다. -안으로는 자기 본심을 깨달아야 하고, 밖으로는 남을 도와 주는 일 밖에 없다.

※ 이 자료는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 알아두면 좋은 불자상식 작성자 민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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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부처님 수인(手印)에 대하여
문화

불교문화 - 부처님 수인(手印)에 대하여

부처님 수인(手印)에 대하여

회화적 표현에 있어서 동양미술, 특히 우리나라 고미술이 서양미술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부분을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손, 발의 묘사입니다.

물론 이는 신체를 섬세하고 세밀하게 표현하는 것이

신에 가장 가깝게 그리는 것이라 믿는 철학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서양에 비해 외부로 속살이 비치는 것은 경박한 것이기에

함부로 손과 발 조차 밖으로 드러내는데 인색했던 우리네이었기에

당연히 손, 발을 그림으로 표현 한다는 건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많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하지만 유독 손과 발의 표현이 적극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이 불교미술 입니다.

불화, 석조, 불상 등에서는 손, 발의 표현이 잘 나타나 있으며,

특히 손은 거의 모든 부처 표현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아주 정밀하게 묘사된 것은 아니지만

(반가사유상에서 빰에 대고 있는 손의 섬세함은 예외라 할 수 있지만..)

여타 미술에서는 볼 수 없을 만큼 손을 많이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에는 부처를 표현하는데

손의 모양이 중요한 점이란 걸 말해주고 있습니다.

부처의 손 모양. 즉 손의 위치, 손가락 모양이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손 모양,

수인(手印)이라고 불리는 것이 불교미술을 이해를 하는데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단 걸 알 수 있습니다.

수인은 부처나 보살의 공덕을 나타내는 의미로써

원래 불전도에 나오는 석가의 손 모양에서 유래한 것으로

석가불의 경우에는 선정인, 항마촉지인, 전법륜인, 시무외인,

여원인의 5가지 수인을 근본 5인 이라고 합니다.

그밖에 천지인 아미타 부처님의 구품인(九品印),

비로자나 부처님의 지권인(智拳印)등이 있습니다.

불상 종류에 의한 수인은 교리적인 뜻을 가지고 표현되었기 때문에

불상의 성격과 명칭을 분명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였으나

우리나라에서는 그 규칙이 엄격하게 지켜지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선정인(禪定印)

부처가 결가부좌 상태로 참선 즉 선정에 든 것을 상징하는 수인이다.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 금강좌에 앉아

깊은 명상에 잠겨 있을 때 취한 수인이 바로 이 수인이다.

결가부좌한 불좌상에서만 볼 수 있으며 삼마지인(三摩地印),

삼매인, 법계정인(法界定印), 등지인으로 부르기도 한다.

왼쪽 손의 손바닥을 위로해서 배꼽 앞에 놓고 오른손도 손바닥을 위로해서

그 위에 겹쳐 놓으면서 두 엄지손가락을 서로 맞대어 놓는 형식이다.

전법륜인(轉法輪印)

부처가 처음 깨달은 후 바라나시의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와 중생들에게 최초로 설법할 때의 수인이다.

이 수인은 시대나 지역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어 일정치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예가 많지 않으나

안압지 출토 금동삼존판불상의 본존불 등에서 볼 수 있다.

안압지 금동삼존불상

시무외인

시무외인은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주어

우환과 고난을 해소시키는 덕을 보이는 수인이다.

손의 모습은 다섯 손가락이 가지런히 위로 뻗치고

손바닥을 밖으로 하여 어깨 높이까지 올린 형태이다.

여원인

여원인은 부처님이 중생에게 자비를 베풀고

중생이 원하는 바를 달성하게 하는 덕을 표시한 수인이다.

손의 모습은 손바닥을 밖으로 하고 손가락은 펴서 밑으로 향하며,

손 자체를 아래로 늘어뜨리는 모습이다.

통인(通印)

시무외인과 여원인을 합친 수인을 말한다.

교리상 비슷한 성격을 가진 두 개의 수인을 합치게 된 것은

보다 많은 자비를 베풀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인 것 같다.

통인을 취하는 상은 대부분 입상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고구려의 연가 7년명 금동 여래 입상을 비롯하여

신라의 경주 남산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배리 삼체석불 입상 등

삼국시대 불상에서 그 예를 많이 볼 수 있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부처가 깨달음에 이르는 순간을

상징하는 수인으로 항마인, 촉지인, 지지인이라고도 한다.

이 수인은 결가부좌한 좌상에만 취하는 것으로 입상이나 의상에서는 볼 수 없다.

이 수인의 유래는 부처님이 성도하기 전에

보리수나무 밑 금강보좌에 앉아 선정에 들었을 때,

석가모니 부처님은 정각을 성취하지 못하면 이 자리를 떠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한다.

그 때 마왕 파순은 권속을 이끌고 와서 갖가지의 방해를 하게 된다.

마왕은 먼저 염욕(染欲).능열인(能悅人).가애락(可愛樂)이라는

3인의 미녀를 보내서 교태를 보이면서

세속의 쾌락이 출가의 즐거움보다 더하다고 하면서 유혹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 시도가 성공하지 못하자 최후의 수단으로

악마 세계의 모든 세력을 동원하여 힘으로 쫓아내려고 하였다

이 때 제1의 지신(地神)이 앞에 나타나 도와주고자 하였으나

부처님은 “걱정하거나 겁내지 말라.

나는 인(忍)의 힘으로 기어이 악마를 항복시킬 것” 이라고 자신에게 타일렀다.

마왕은 칼을 석가모니 부처님께 들이 대면서

“비구야, 나무 아래 앉아서 무엇을 구하는가. 빨리 떠나라,

너는 신성한 금강보좌에 앉을 가치가 없는 자”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이에 석가모니 부처님은 “천상 천하에 이 보좌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은 나 한 사람뿐이다.

지신이여, 이를 증명하라”고 하면서

선정인의 상태에서 오른손을 풀어서 검지로 땅을 가리켰다.

이때의 손의 모습이 항마촉지인이다.

선정인에게 왼손을 그대로 두고 위에 얹은 오른손을 풀어 손바닥을 무릎에 대고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고 있는 모습으로 부처님의 깨달음의 순간을 표현한다.

석굴암 석가모니불

지권인(智拳印)

이(理)와 지(智), 중생과 부처, 미혹함과 깨달음이

원래는 하나라는 뜻의 수인으로 보리인(菩提印), 각승인(覺勝印)이라고도 한다.

이 수인은 금강정경(金剛頂經)에 기초를 둔 것으로

주로 밀교계의 대일여래가 취하는 것이나

우리나라에서는 화엄종의 주존인 비로자나불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바른손으로 왼손의 둘째손가락 윗부분을 감싸는 형태를 취하는데

이와 반대의 경우도 있다. 곧 바로 손은 부처님의 세계를 표현하고

왼손은 중생계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이와 같은 결인은 중생과 부처님이 하나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 수인(手印)에 대하여

회화적 표현에 있어서 동양미술, 특히 우리나라 고미술이 서양미술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부분을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손, 발의 묘사입니다.

물론 이는 신체를 섬세하고 세밀하게 표현하는 것이

신에 가장 가깝게 그리는 것이라 믿는 철학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서양에 비해 외부로 속살이 비치는 것은 경박한 것이기에

함부로 손과 발 조차 밖으로 드러내는데 인색했던 우리네이었기에

당연히 손, 발을 그림으로 표현 한다는 건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많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하지만 유독 손과 발의 표현이 적극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이 불교미술 입니다.

불화, 석조, 불상 등에서는 손, 발의 표현이 잘 나타나 있으며,

특히 손은 거의 모든 부처 표현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아주 정밀하게 묘사된 것은 아니지만

(반가사유상에서 빰에 대고 있는 손의 섬세함은 예외라 할 수 있지만..)

여타 미술에서는 볼 수 없을 만큼 손을 많이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에는 부처를 표현하는데

손의 모양이 중요한 점이란 걸 말해주고 있습니다.

부처의 손 모양. 즉 손의 위치, 손가락 모양이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손 모양,

수인(手印)이라고 불리는 것이 불교미술을 이해를 하는데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단 걸 알 수 있습니다.

수인은 부처나 보살의 공덕을 나타내는 의미로써

원래 불전도에 나오는 석가의 손 모양에서 유래한 것으로

석가불의 경우에는 선정인, 항마촉지인, 전법륜인, 시무외인,

여원인의 5가지 수인을 근본 5인 이라고 합니다.

그밖에 천지인 아미타 부처님의 구품인(九品印),

비로자나 부처님의 지권인(智拳印)등이 있습니다.

불상 종류에 의한 수인은 교리적인 뜻을 가지고 표현되었기 때문에

불상의 성격과 명칭을 분명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였으나

우리나라에서는 그 규칙이 엄격하게 지켜지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선정인(禪定印)

부처가 결가부좌 상태로 참선 즉 선정에 든 것을 상징하는 수인이다.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 금강좌에 앉아

깊은 명상에 잠겨 있을 때 취한 수인이 바로 이 수인이다.

결가부좌한 불좌상에서만 볼 수 있으며 삼마지인(三摩地印),

삼매인, 법계정인(法界定印), 등지인으로 부르기도 한다.

왼쪽 손의 손바닥을 위로해서 배꼽 앞에 놓고 오른손도 손바닥을 위로해서

그 위에 겹쳐 놓으면서 두 엄지손가락을 서로 맞대어 놓는 형식이다.

전법륜인(轉法輪印)

부처가 처음 깨달은 후 바라나시의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와 중생들에게 최초로 설법할 때의 수인이다.

이 수인은 시대나 지역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어 일정치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예가 많지 않으나

안압지 출토 금동삼존판불상의 본존불 등에서 볼 수 있다.

         안압지 금동삼존불상

시무외인

시무외인은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주어

우환과 고난을 해소시키는 덕을 보이는 수인이다.

손의 모습은 다섯 손가락이 가지런히 위로 뻗치고

손바닥을 밖으로 하여 어깨 높이까지 올린 형태이다.

여원인

여원인은 부처님이 중생에게 자비를 베풀고

중생이 원하는 바를 달성하게 하는 덕을 표시한 수인이다.

손의 모습은 손바닥을 밖으로 하고 손가락은 펴서 밑으로 향하며,

손 자체를 아래로 늘어뜨리는 모습이다.

통인(通印)

시무외인과 여원인을 합친 수인을 말한다.

교리상 비슷한 성격을 가진 두 개의 수인을 합치게 된 것은

보다 많은 자비를 베풀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인 것 같다.

통인을 취하는 상은 대부분 입상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고구려의 연가 7년명 금동 여래 입상을 비롯하여

신라의 경주 남산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배리 삼체석불 입상 등

삼국시대 불상에서 그 예를 많이 볼 수 있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부처가 깨달음에 이르는 순간을

상징하는 수인으로 항마인, 촉지인, 지지인이라고도 한다.

이 수인은 결가부좌한 좌상에만 취하는 것으로 입상이나 의상에서는 볼 수 없다.

이 수인의 유래는 부처님이 성도하기 전에

보리수나무 밑 금강보좌에 앉아 선정에 들었을 때,

석가모니 부처님은 정각을 성취하지 못하면 이 자리를 떠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한다.

그 때 마왕 파순은 권속을 이끌고 와서 갖가지의 방해를 하게 된다.

마왕은 먼저 염욕(染欲).능열인(能悅人).가애락(可愛樂)이라는

3인의 미녀를 보내서 교태를 보이면서

세속의 쾌락이 출가의 즐거움보다 더하다고 하면서 유혹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 시도가 성공하지 못하자 최후의 수단으로

악마 세계의 모든 세력을 동원하여 힘으로 쫓아내려고 하였다

이 때 제1의 지신(地神)이 앞에 나타나 도와주고자 하였으나

부처님은 “걱정하거나 겁내지 말라.

나는 인(忍)의 힘으로 기어이 악마를 항복시킬 것” 이라고 자신에게 타일렀다.

마왕은 칼을 석가모니 부처님께 들이 대면서

“비구야, 나무 아래 앉아서 무엇을 구하는가. 빨리 떠나라,

너는 신성한 금강보좌에 앉을 가치가 없는 자”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이에 석가모니 부처님은 “천상 천하에 이 보좌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은 나 한 사람뿐이다.

지신이여, 이를 증명하라”고 하면서

선정인의 상태에서 오른손을 풀어서 검지로 땅을 가리켰다.

이때의 손의 모습이 항마촉지인이다.

선정인에게 왼손을 그대로 두고 위에 얹은 오른손을 풀어 손바닥을 무릎에 대고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고 있는 모습으로 부처님의 깨달음의 순간을 표현한다.

석굴암 석가모니불

지권인(智拳印)

이(理)와 지(智), 중생과 부처, 미혹함과 깨달음이

원래는 하나라는 뜻의 수인으로 보리인(菩提印), 각승인(覺勝印)이라고도 한다.

이 수인은 금강정경(金剛頂經)에 기초를 둔 것으로

주로 밀교계의 대일여래가 취하는 것이나

우리나라에서는 화엄종의 주존인 비로자나불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바른손으로 왼손의 둘째손가락 윗부분을 감싸는 형태를 취하는데

이와 반대의 경우도 있다. 곧 바로 손은 부처님의 세계를 표현하고

왼손은 중생계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이와 같은 결인은 중생과 부처님이 하나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도피안사 철조비로나자불좌상

합장인(合掌印)

보통 예배를 드리거나 제자와 문답(問答)할 때 취하는 수인으로,

귀명인(歸命印) 또는 일체절왕인(一切切王印)이라고도 한다.

두 손을 가슴 앞에 올리고 손바닥을 서로 맞대고 있는 모양으로

인도의 부조상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방어산 마애삼존불(801년)의

오른쪽 협시보살상, 안압지 금동판보살좌상 등에 나타나고 있다.

안압지 금동판보살좌상

아미타정인(阿彌陀定印)

선정인에서 약간 변형된 것으로 아미타불의 수인이다.

묘관찰지정인(妙觀察智定印)이라고도 한다.

손바닥을 위로 한 왼손에 오른손을 포개서 배꼽 부근에 놓고

각각 둘째 손가락을 구 부려서 그 끝이 엄지손가락에 닿게 한 모양이다.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 의하면 중생들은 성품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상, 중, 하 3등급으로 나누고 이를 다시 세분화하여 9등급으로 나누어서

각 사람에게 알맞게 설법해야만 구제할 수 있다고 한다.

이 9품에 따라 아미타불의 수인도 각각 다르다.

상생인(上生印)은 아미타정인과 같은 손모양을 하고 있으며

중생인(中生印)은 두 손을 가슴 앞에까지 올려서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게 한 자세이고,

하생인(下生印)은 오른손을 손바닥이 밖으로 향하게 하여

가슴 위까지 올리고 왼손은 아래로 내리고 있는 것만이 다를 뿐,

손가락 모양은 상, 중, 하생인이 똑같이 되어 있다.

다만 엄지와 맞대고 있는 손가락에 따라 상(上), 중(中), 하품(下品)으로 구분된다.

즉 엄지와 둘째 손가락이 서로 맞대고 있을 때에는 상품이고,

엄지가 셋째 손가락과 맞대고 있을 때에는 중품,

그리고 엄지와 넷째 손가락이 닿아 있을 때에는 하품이 되는 것이다.

이 중에서 상품상생인은 좌상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반면에 입상에서는

상품 하생인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미타불이 9품인을 하고 있는 예는 매우 드물다.

천지인(天地印)

부처가 태어나자마자 일곱 발자국 걸어가서

오른손은 하늘을, 왼손은 땅을 가리키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외쳤던 데에서 유래한 수인이다.

한 손은 위로 하고 다른 한 손은 아래로 향한 모습으로

주로 탄생불이 취하는 수인이다

보물808호 금동탄생불

조금은 도식적이고 재미없는 정리 작업이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보다 불교미술에 가까이 다가 설 수 있다는 생각에

정리 해보았습니다.

단순한 손 모양 하나에도 어리석은 중생을 계도하고자 하는 부처의 각오가 담겨있는 수인.

행동과 생각은 둘이 아님을 보여주며 소망하는 그 무엇을

반듯이 이루어내겠다는 간절하고도 따뜻함이 느껴지는 수인.

손 모양 하나에도 이런 깊은 뜻을 있을 진데 우리 행동은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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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자식을 위해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 은혜 (위조악업은) ​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자식을 위해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 은혜 (위조악업은) ​

< 부모님의 크신 은혜 강산같이 중하여서, 깊고 깊은 그 은덕 실로 갚기 어려워라. 자식의 괴로움은 대신 받기 원하시고, 자식들 고생하면 부모 마음 편치 않네. 자식들이 먼 길을 떠나가 있을 때면, 잘 있는지 춥진 않나 밤낮으로 근심하네. 잠시라도 자식들이 어려움 당할 때면, 어머니의 그 마음은 오랫동안 아프다네. >

부모님의 마음은 자식을 위해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행여 자식이 고생할까봐 남의 집 허드렛일이라도 자식의 앞날을 위해서라면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자식들은 이러한 부모님의 큰 사랑을 망각하고, 오히려 늙고 병들었다고 부모를 업신여기고 부모의 고통을 모른척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역죄를 저지르는 불효자와 다르지 않습니다.

오역죄는 아버지를 헤치거나 어머니를 헤치거나, 부처님이나 아라한을 헤치거나 스님들을 이간질하는 등의 무거운 죄입니다. 오역죄를 지으면 무간지옥이라는 가장 무서운 지옥에 떨어집니다.

가끔 인륜을 저버리고 존속을 헤친 사건이 보도되면 정말 믿겨지지가 않습니다.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부모님의 마음은 자식의 잘못을 대신 받고자 애원합니다. 자식의 괴로움을 대신 받으려는 것입니다.

자식이 잘못을 저지르면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제가 잘못 가르쳐서 그렇습니다. 제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제가 함께 있어 주지 못해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

부모님의 마음은 이처럼 자식의 모든 잘못이 다 자신 때문이라고 여깁니다. 부모님은 이렇게 자식을 평생토록 걱정하는데. 오히려 세상에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고통을 모른척한다는 것은 가장 나쁜 불효입니다. 부모님의 마음만이라도 편안하게 해주지 못할지언정 강산같이 무거운 부모님의 은덕을 어찌 다 갚으려는지 불효를 저지르고 맙니다. 근본부터 되짚어 생각을 고쳐먹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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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부모은중경 4편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부모은중경 4편

입에 쓴 것은 삼키고 단것만 뱉어 먹이신 은혜 (인고토감은)

< 무겁고도 깊은 것이 부모님 크신 은혜, 사랑하고 보살피심 한결같아 끝없다네. 단 음식은 다 뱉으니 드신 것 무엇이며, 쓴 것만 드시고도 기쁜 얼굴 잃지 않네. 사랑이 무거우니 깊은 정은 다함없고, 지중하신 은혜처럼 슬픔 또한 더하시네. 다만 어린 자식 잘 먹일 것 생각하니, 자애로운 어머니는 굶주려도 기쁘시네. >

'감탄고토甘呑苦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세상살이가 이처럼 명확합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내 비위에 맞으면 좋아하고, 좋아하는 것은 취하게 됩니다. 싫은 것을 가지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마음은 반대라는 것입니다. 모든 우선순위가 사랑하는 자식에게 맞춰져있어 스스로의 불편도 감내하기에, 맛있는 음식도 본인보다는 아이에게 먹이는 것이 더 행복합니다.

"엄마, 아빠는 네가 먹는 것만 봐도 배불러."

자주 듣는 이 말은 사실이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아이가 잘 먹는 것만 봐도 행복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부모님의 배가 부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가 잘 먹는다면 맛없는 음식도 오늘따라 입에 잘 맞고, 조금 밖에 먹지 않아도 왠지 기운이 납니다. 모든 부모님의 실제 마음입니다. 아마도 긍정의 힘이 불러온 효과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한편으론, 자녀을 동반하고 비행기에 탔을 때, 처음에는 비상구 구명조끼를 입는 순서를 이해 못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항상 '아이먼저'라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있다 보니, 구명조끼도 본인보다 아이 것을 먼저 챙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설명서에는 반드시 부모가 먼저 입은 후 자녀를 챙기라고 적혀 있습니다.

아마 세상의 모든 부모가 같은 마음으로 실수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이 혼자서는 생존이 어렵기에 지켜줄 부모의 안전이 먼저 확보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모의 입장에서 나보다 자식만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항상 옳지는 않지만, 그것은 부모의 마음에 온전히 자식만을 바라보고 있다는 반증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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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법구(法具) - 불전 사물(四物)
문화

법구(法具) - 불전 사물(四物)

조석 예불 때 치는 법고, 운판, 목어, 범종을 불교의 사물이라고 한다.

법고(法鼓)는 법을 전하는 북이라는 뜻이다. 쇠가죽으로 만들며, 짐승을 비롯한 중생을 깨우치기 위하여 울린다.

운판(雲版)은 청동이나 철로 만든 넓은 판으로, 원래 중국의 선종 사찰에서 부엌에 달아놓고 대중들에게 끼니때를 알리기 위해 쳤다고 한다. 운판은 공중을 날아다니는 중생과 허공을 떠도는 영혼을 제도하기 위해서 친다.

목어(木魚)는 나무를 물고기 모양으로 깎아 배 부분을 파낸 것으로, 두 개의 나무 막대기로 두드려서 소리를 낸다. 목어를 치는 까닭은 물에 사는 모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이다. 늘 눈을 뜨고 있는 물고기는 처럼, 수행자는 늘 깨어 있는 채로 정진해야 한다는 뜻이다.

범종(梵鐘)은 조석 예불과 사찰의 큰 행사 때 사용한다. 아침에는 28번, 저녁에는 33번을 친다. 범종을 치는 근본 뜻은 천상과 지옥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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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선재스님이 사찰음식을 알리게 된 이유 #공양간의셰프들 #NFd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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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스님이 사찰음식을 알리게 된 이유 #공양간의셰프들 #NFd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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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0일
불교입문 - 미륵불이란?
문화

불교입문 - 미륵불이란?

도솔천 내원궁에 계시면서 천인들의 교화하고 계시며, 석가여래 불연(佛緣)이 다한 팔법세상에 이 사바세계에 내려 오시어 용화수 나무 아래서 성불하시어 용화 도량에서 세 번에 걸려 설법하시어 석가여래가 제도 하지 못한 유연(有緣)중생들을 모두 제도하신다. 이 미륵불의 용화 세계는 우순퐁조하여 모든 재난이 없고 풍년이 들어 도둑이 없으며 미륵불의 가르침으로 백성들이 모두 십선계를 닦아 온순하고 화목하며 전륜성왕이 시천가 미륵불이 우리나라 출현한다는 미륵불의 수기를 받아 금산사 미륵전을 건립하고 미륵불의 하생(下生)을 기원하였다.

※ 이 자료는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 알아두면 좋은 불자상식 작성자 민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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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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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벽화이야기 - 보이는 것들에 현혹되지 말라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보이는 것들에 현혹되지 말라

수보리에게 반야경을 설하시다 - 단양 구인사 광명전 벽화로 그려진 불화

마음을 찾는 여행의 도착지에 어마어마한 보물이 들어 있을까요? 아니면 텅 빈 곳간만 덩그러니 남아 있을까요? 하지만 혼자만 들어갈 수 있는 내 마음속 창고입니다.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나 외에는 가 본 사람도 없으며, 나 외에는 갈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가 내 마음에 도착한다면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몹시 궁금합니다.

『반야심경』은 불자라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외우게 됩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 지혜를 닦는 수행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해 놓은 경전입니다. 반야심경이라면 대부분의 불자들은 '색즉시공'色即是空이라는 말을 떠 올립니다. 여기서 '색'色은 우리가 받아들이는 모든 '대상'을 대표하는 말입니다. 구체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들, 귀에 들리는 소리, 코로 맡아지는 냄새, 혀에 전해지는 맛, 손이나 신체로 만져지는 것등 우리 감정이나 느낌을 일어나게 하는 모든 대상을 색이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그 색色이 공空하다는 말이 색즉시공色即是空입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 지혜로 바라보니, 모든 대상은 사실 그때 그때 변하는 것이지 항상 그 모습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시간에 따라 다르고, 장소에 따라 다른 것이 색즉시공의 이치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말이 있는데, 내 눈에 내 자식은 그렇게 귀하고 예뻐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남의 집 자식이라면 눈에 넣을 생각이라도 할까요? 또 가족끼리 외식으로 고기 집을 갔는데, 고기 굽는 냄새가 배고픈 식당 안에서는 그렇게 행복할 수 없더니, 막상 배부르게 먹고 나오니 옷에 밴 냄새가 좋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단지 상황만 조금 바뀌었을 뿐인데, 전혀 반대의 결과가 되어 버렸습니다. 인연법因緣法이 변한 것입니다. 그 인연을 공空이라 생각해 보면, 색즉시공이란, 같은 대상이라도 그 때의 인연에 따라 내가 갖는 느낌과 생각이 모두 바뀐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 제자 가운데, 공의 이치를 가장 잘 깨우친 해공제일解空第一수보리 존자에게 부처님께서 반야경을 설하고 계십니다. 마음을 찾기만 해서 되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마음이 모두 공空이라고 하십니다. 혹시 우리의 마음 창고도 텅 비어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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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불치병을 고치다. 세조와 문수동자.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불치병을 고치다. 세조와 문수동자.

세조와 문수 동자

조선시대 제7대 임금인 세조는 조카인 어린 단종을 폐위시키고서 왕위에 올랐다.

그 죄에 대한 응보인지 하루는 꿈에 단종의 모후가 나타나 무섭게 꾸짖는 것이었다.

“이보시오, 내 아들이 나이가 어린 탓으로 당신이 섭정을 하고 있었으니

왕과 다름없었을 터인데, 그 어린 것을 왕위에서 몰아내고 귀양까지 보내더니

무엇이 더 부족하여 무참하게 죽여 버렸단 말이오?

왕의 자리가 그리도 탐이 났소?

뭐, 이 더러운 양반아!”

이렇게 말하고는 침을 뱉았다.

세조는 그 꿈에서 깨어나면서부터 온 몸에 등창이 생겼는데 그 괴로움은 말로 다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용하다는 의원도 또 신비스러운 영약도 아무런 효험이 없었다.

세조는 지난 일을 진심으로 참회하였다. 그리고 병을 낮게 하려고 강원도 오대산으로 떠났다.

오대산은 문수 보살이 늘 계시는 영험한 도량인 까닭에서였다.

세조는 오대산 상원사에 머물며 문수 보살께 지극한 정성으로 백일 기도를 드렸다.

마침내 백일째 되는 날이었다.

몸이 몹시 가려워 견딜 수가 없게 된 세조는 기도를 마친 뒤에 개울에서 목욕을 하였다.

홀로 몸을 씻으면서 누가 등을 좀 밀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마침 개울가의 샛길로 한 동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세조는 손짓으로 동자를 불러 자기의 등을 밀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동자가 기꺼이 응하여 등을 밀어 주는데 가려운 데가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목욕을 마친 뒤에 세조가 동자에게 칭찬하며 말하였다.

“앞으로 어디에 가서 행여나 다른 사람들에게 임금의 옥체에 손을 대고

흉한 종기를 씻어 주었다는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될 것이니라.”

동자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였다.

“잘 알겠읍니다.

그러나 상감께서도 뒷날에 누구에게든지 오대산에 가서

문수 동자를 친견하였다는 말씀은 하지 말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러더니 동자는 홀연히 사라졌다.

세조는 그 어린 동자가 나중에 좋지 않은 소문을 퍼뜨릴까 염려되어 그런 부탁을 하였는데,

그 동자가 문수 보살의 화신인 것을 알고는 부끄럽고 송구스러운 마음이 들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더구나 그 덕분에 병까지 말끔히 나왔던 것이다.

그래서 세조는 나라에서 으뜸가는 화공과 조각가를 불러 자신이 본 그대로의

문수 보살의 모습을 그림 그려 조각하게 하였다.

그것이 바로 상원사 선원에 모셔져 있는 문수 동자상이다.

세조가 상원사에 머물 때에 식사 때면 늘 대중 공양에 참여하여

발우를 펴놓고 스님들과 함께 공양하였다.

음식을 나누어받기 전에 미리 천수물을 받아두었다가 식사가 끝나면 그 물로 발우를 씻었다.

그런데 하루는 나이 어린 사미승이 천수물을 돌리며 세조에게 이르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거사님, 어서 물 받으십시오.”

감히 나랏님을 거사라 부르다니,

주위의 여러 스님과 따라온 신하들은 아연했다.

그 어린 사미승이 큰 벌을 받을 것이 분명하여 걱정된 것이다.

그러나 세조는 자신을 거사라 불러 준 것을 오히려 영광으로 여기며 칭찬하였 다.

“네가 아니었으면 내가 누구에게서 거사라는 말을 듣겠느냐?”

그러고는 사미승에게 큰 상을 내렸다고 한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세조가 법당에 올라 부처님께 예배를 드리려고 하였다.

그때에 어디선가 갑자기 고양이가 나타나서 세조의 옷자락을 잡아끌며 절을 못하도록 방해하였다.

세조가 이상히 여겨 사람들을 시켜 법당 안을 살피게 하니 탁자 밑에 자객이 숨어 있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곧 자객을 붙잡아 내고, 고양이에게 감사하는 마음에서 상

원사에 양모전을 하사하여 고양이를 기르게 하였다.

그리고 법당 앞에는 돌로 고양이 상을 새겨 놓았다.

세조는 오대산에 들어가서 문수 보살을 천견하여

고질로 앓던 종기병을 말끔히 치료하였을 뿐만 아니라,

고양이 덕분에 죽을 목숨까지 건지기도 하였다.

그러니 참으로 부처님의 은혜를 많이 입은 왕이라 하겠다.

그런 까닭 에 세조는 불교 탄압이 심하였던

조선시대에 드물게 불교를 이해한 임금으로서 많은 공적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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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부모은중경 6편
불교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부모은중경 6편

젖을 먹여 길러 주신 은혜 (포유양육은)

< 어머니의 깊은 사랑 땅에다 비유하랴. 아버님의 높은 언덕 하늘에 비유하랴. 하늘과 땅의 은혜 아무리 크다 한들, 부모님의 깊은 은혜 그보다도 더욱 크네. 아기 비록 눈 없어도 미워함 없으시고, 손과 발이 불구라도 싫어함 없으시네. 배 가르고 피를 나눠 몸소 낳은 자식이라, 종일토록 아끼시고 사랑하심 한량없네. >

어버이의 은혜를 하늘과 땅으로 비유합니다. 땅은 모든 생명의 근본입니다. 커다란 나무가 하늘을 향해 뻗을 수 있는 것도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땅을 딛고 살아갑니다.

땅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상상할 수 없지만, 높은 곳에 위치한 스카이워크나 유원지 등에 가보면 투명한 유리 바닥으로 아래가 훤히 보이도록 만들어 놓은 시설이 있습니다. 그 위를 걷게 되면 마치 땅이 사라진 것처럼 느껴져 심장이 오그라드는 아찔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땅이 없다면 그런 느낌이 아닐까요? 마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흑암지옥에 갇혀 끝없이 또 끝없이 아래로 떨어진다면 이루 말로 표헌할 수 없는 두려움에 쌓인다고 하는데, 어쩌면 그런 느낌말이죠.

이 모든 두려움을 편한하게 감싸주는 것이 하늘입니다. 하늘 아래는 누구나 평등합니다. 서로 높고 낮음을 견주더라도 하늘보다 높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태산이 높다한들 하늘아래 뫼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렇게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식을 길러주십니다.

젖을 먹여 자식을 기르는 포유양육을 경전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기에게 8섬 4말이나 되는 젖을 먹여 길러야 한단다. 그러므로 앙상한 여인의 뼈는 마치 불에 탄 것처럼 검고 가볍구나."

1섬을 10말로 친다면, 8섬 4말은 대락 커다란 생수병으로 약 800병이나 됩니다. 어머니는 이렇게 어마어마한 공덕을 자식에게 쏟아 붓습니다. 그러니 어머니 몸에 남아 있을 영양분이 어디 있을까요. 아난존자가 골라내야 할 여인의 뼈가 검고 가늘다는 것이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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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태전선사太顚禪師와 한유韓愈 그리고 홍련紅蓮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태전선사太顚禪師와 한유韓愈 그리고 홍련紅蓮

사찰 벽화이야기 태전선사太顚禪師와 한유韓愈 그리고 홍련紅蓮

태전선사太顚禪師와 한유韓愈 그리고 홍련紅蓮

중국 당나라 때 한유(韓愈, 韓退之, 768~824)는 문장이 뛰어난 당송 8대가의 한 사람이며, 당헌종의 신임도 두터워서 한림학사라는 높은 벼슬에 있었지만, 헌종이 인도에서 부처님의 뼈사리를 모셔오는데, 크게 관심을 보여 동참하자, 그것을 비방하는 불골표(佛骨表)를 올려서 헌종의 미움을 받고, 장안에서 800리 떨어진 시골 조주자사로 좌천되었다.

울분을 참지 못하고 술과 문장으로 세월을 보내던 한유는 조주에 훌륭한 태전선사(太顚禪師, 732~824)라는 자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 스님을 타락시켜 불교가 하찮은 것임을 밝히려고, 가장 젊고 예쁜 홍련(紅蓮)이라는 기생에게 "백일의 기한을 줄 것이니, 태전선사라는 중을 파계(破戒) 시켜라, 그렇지 않으면 너의 목을 칠 것이니라."라고 했다.

홍련은 생각하기를, “그까짓 중하나 꾀는데 뭔 100일씩이나 걸리나” 라며 우습게 생각하고는 예쁘게 단장하고 태전선사가 계시는 축륭봉으로 올라갔다. 가서는 "100일 기도를 하러 왔다"고 말씀 드리고 태전선사를 유혹하려고 했지만 100일이 다 가도록 어쩌지를 못하고 오히려 태전선사의 수행에 감화되었다.

마지막 날이 되자 겁이 난 홍련은 태전선사에게 예절을 갖추어 삼배를 드리고 눈물을 흘리며, “사실은 제가 이곳의 자사인 한유의 명으로 큰스님을 타락시키고자 왔는데, 오늘까지 타락시키지 못하면 저를 죽이겠다고 하였습니다. 큰스님, 제가 어찌하면 좋겠나이까?” 그러자 태전선사는 홍련에게 하얀 속치마를 내어 펼치라 하고는 아래의 게송(偈頌, 선시)을 써 주면서, “이곳 자사가 문장이 뛰어나다고 하니, 이 글을 보여주면 너를 죽이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홍련은 감사한 마음으로 예를 올려 작별하고는 조주자사인 한유에게로 가서 태전선사의 게송이 적힌 치마를 펼쳐 보이니, 한유는 한 번 읽고는 감탄하면서 생각하기를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 이름이 헛되이 전해지지 않음)이구나. 내 친히 가서 만나봐야되겠다.”

십년불하축융봉(十年不下鷲融峰)관색관공즉색공(觀色觀空卽色空)십년 동안 축융봉을 내려가지 않고색을 관하고 공을 관하니, 색이고 공일뿐이었네.여하조계일적수(如何曹溪一適水)긍타홍련일엽중(肯墮紅蓮一葉中)어찌 조계의 한 방울 물을홍련의 한 잎사귀에 떨어뜨리겠는가.

한유가 태전선사에게 가니, 선사가 묻기를

“어떠한 불교경전을 읽어보았습니까?”

“뭐 특별히 읽어 본 경전이 없습니다.”

그러자 태전선사는

“문장(학문)으로 이름 높은 자사께서 어찌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불교를 비난하셨습니까?”

그래서 한유는 자신의 잘못됨을 뉘우치고 태전선사에게 귀의하고

독실한 불교신자가 되어 불교에 관한 문장도 많이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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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상의 종류 - 여래상
문화

불상의 종류 - 여래상

여래상은 부처님상을 말한다. 수인(手印 : 손모양)이나 좌우 보처의 협시보살에 따라 구분되며, 각 사찰의 법당 명칭을 기준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본래 여래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가리킨다. 그러나 대승불교시대에 이르면서 수많은 부처님을 등장하고, 더불어 불상 형태도 다양해진다. 하지만 이름만 다를 뿐 '32상(相) 80종호(種好)'라는 기본 형식을 같으므로, 손 모양 등을 제외하고는 거의 같다. 즉 상이 원만하고 육계(肉髻 : 불상의 정수리에 솟아 있는 상투 모양)와 백호(白毫 : 불상의 눈썹 사이에 난 흰 터럭)가 있으며, 법의를 입고 장엄구가 없다.

① 석가모니불상 항마촉지인. 선정인 . 전법륜인 등의 수인을 하고 있고, 가사는 오른 쪽 어깨를 드러낸 우견편단의 보습이다. 협시로는 문수보살. 보현보살 또는 가섭존자. 아난존자가 있다.

② 아미타불상 수인은 구품인을 하고 있으며, 가사를 양 어깨에 걸친 통견의 모습이다. 좌우 협시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나, 많은 사찰에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모시기도 한다.

③ 비로자나불상 지권인을 하고 있다. 좌우 협시로는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 또는 아미타불과 약사여래 등 삼존불과 함께 다섯 부처님을 모시고 있다.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협시로 모시기도 한다.

④ 미륵불상 미래불인 미륵불은 대부분 전각 밖에 따로 모신다. 시무외인 또는 여원인 등의 수인을 하고 있다. 협시보살은 법화림보살과 대묘상보살을 모시기도 한다.

⑤ 약사여래상 약사여래는 질병 치료, 수명 연장, 재화 소멸, 의복과 음식 등을 구족시키고자 하는 부처님으로서 왼손에는 약병이나 약함, 오른손은 시무외인을 하고 있다. 좌우 협시는 일광변조 소재보살과 월광변조 식재보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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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육법 공양물에 담긴 의미
문화

불교문화 - 육법 공양물에 담긴 의미

향, 등, 차(다), 꽃, 과일, 쌀 등 여섯가지 공양물을

육법공양(六法供養)이라 합니다.

육법(六法)이란

깨달음과 관련된 6가지 법을 의미합니다.

  1. 향-해탈의 향기

등불은 강렬하게 어둠을 없애주지만

가려져 있거나 깊숙이 숨겨져 있는 어두운 곳까지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향은 가려진 곳에도 향기를 두루 나눠주는 공덕이 있습니다.

불가에서는 향을 해탈향이라 하는데

이는 부처님의 깨달음의 향기가 시방세계에 두루 미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1. 초-지혜의 등불

등(燈)공양, 촛불공양은 깨달음의 광명을 어둠의 세계에 회향함이다.

어두운 밤에는 불빛이 제일이듯이 미망의 어둠 속에

방황하는 중생에는 지혜의 광명이 등대가 되고,

안내자이며 눈이 되는 것이다.

촛불은 사바의 고뇌하는 중생에게 구원의 찬란한 빛이다.

그래서 이 몸을 등대(燈臺)로 하고,

마음을 등잔으로 삼고 믿음을 등 심지로 하며

청정한 계행을 기름으로 삼아 지혜를 더욱 밝게 하여

꺼지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한 개의 등불로 천 개의 등심지에 불을 붙이듯

공양 올리는 이의 지혜광명이

자신을 밝히고, 이웃에게 빛을 주어

꺼질 줄 모르는 긴 광명의 빛이 되도록 발원하여야 할 것이다.

등을 켜고 촛불을 밝힘은 지혜롭게 살아가기를 서원(誓願)함이고,

이웃에게 등대 되기를 발원(發 願)함이다.

그래서 "등대를 주면 눈을 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자기 마음을 스승으로 삼아라.

남을 따라서 스승으로 삼지 말라.

자기를 잘 닦아 스승으로 삼으면

능히 얻기 어려운 스승을 얻나니...

  1. 차-열반의 맛

부처님께 올리는 차는 보통 차가 아니라 감로차(甘露茶)입니다.

괴로움에 빠져있는 중생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이 바로 감로수이며

이를 형상화한 것이 바로 차 공양입니다.

  1. 꽃-보살행의 아름다움

열매가 맺기 위해서는 먼저 꽃을 피워야 합니다.

따라서 꽃은 열매를 맺기 위한 가장 치열한 노력의 모습입니다.

불가에서는 '깨달음'을 얻기 위한 보살행의 치열함을

울긋불긋 피어나는 꽃의 아름다움에 비유했습니다.

꽃을 공양 올리는 것은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겠다는

보살행의 서원이며 실천행인 것입니다.

만행화(萬行華),

꽃 공양은 환희스런 마음자세, 찬탄하는 마음자세,

참고 견디라는 인욕의 마음 자세로 부처님께 나아가

서원을 세우는 표시로써 공양 올리는 것이다

  1. 과일-깨달음의 열매

과일은 오랜 노력으로 이루어진 결과물 입니다.

우리들의 지극한 수행이 열매를 맺기를 바라며 올리는

공양물이 바로 과일 입니다.

  1. 쌀-깨달음의 기쁨

봄부터 수많은 노력을 한 후 가을에 추수할 때의 기쁨처럼,

수행의 결과로 얻은 깨달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쌀은 깨달음의 기쁨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쌀을 올리는 것은

지극한 깨달음의 기쁨을 얻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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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벽화이야기 - 고령선사
불교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고령선사

촌철살인으로 스승의 깨침 독려

벽화 속 불교 이야기 ⑤ 고령선사.

촌철살인으로 스승의 깨침 독려

▲ 서울 삼룡사 법화삼매당의 벽화. 형상적인 것, 유위에 집착해 있는 스승에게 무위의 무한한 자유를 일깨워 준 고령 선사의 일화를 그린 것이다.

나무물통에 담긴 뜨거운 목욕물에서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른다. 물통 속에는 알몸의 스님이 앉아 있고 그 뒤에서 가사를 수한 제자가 등을 밀고 있다. 욕조 속 스님의 머리는 흰색으로 그려졌고 등을 미는 제자의 머리는 푸른색으로 묘사되어 있다.

서울 삼룡사 법화삼매당 입구에 들어서서 몸을 뒤로 돌려 벽을 보면 여러 장면의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그 중 한 장면이 스님의 목욕 장면이다. 목욕하는 스승의 등을 밀어주는 제자가 가사를 수하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또 스승과 제자의 삭발한 머리를 흰색과 푸른색으로 확연히 다르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벽화의 내용은 당나라 때의 고승 고령신찬(古靈神贊) 선사와 그의 스승 계현(戒賢) 선사의 이야기다. 이 벽화와 관련된 일화는 〈직지심경〉에 전한다.

고령 선사는 복주의 대중사로 출가 했는데, 스승을 떠나 행각을 했다. 백장(百杖) 선사를 만나 가르침을 받고 깨달음을 얻었다. 그 뒤 만행을 하다가 스승이 계시는 대중사로 돌아갔다. 하루는 스승이 목욕을 하며 등을 밀어 달라고 했다. 고령 선사는 스승의 등을 보고 한 마디 했다.

“법당은 좋은데 부처가 영험이 없구나!(好箇佛殿 而佛無靈)”

생뚱맞은 제자의 말에 스승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제자는 또 한 마디 던진다. 얼음장 같은 한 마디, 촌철살인의 한 마디였다.

“비록 영험 없는 부처일지라도 방광은 하는구나!(佛雖無靈 亦能放光)”

참으로 버릇없이 비꼬는 말이 아닌가? 스승의 벗은 몸을 보고 ‘몸집은 좋은데 속에 든 것이 없다’고 놀리고 나서 돌아보는 스승에게 ‘속은 비었으면서 반응할 줄은 아네?’ 하고 희롱을 한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스승은 그게 뭔 말인지 잘 모르고 그냥 지나쳐 버렸다. 정말, 몸뚱이만 그럴 듯 하고 아무 생각이 없는 목석같은 스승인가 보다.

이 버릇없는 제자의 스승 놀리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며칠 후 스승이 창가에 앉아 경전을 읽고 있었다. 마침 벌 한 마리가 방에 들어왔다가 밖으로 나가려고 창호지에 자꾸만 몸을 부닥치고 있었다.

“세상은 넓고 넓은데 마땅히 나가지 않고 저렇게 낡은 종이만 뚫으려고 하니 어쩌자는 것인가?(世界與廣闊 不肯出 鑽他古紙作作)”

그때서야 스승은 제자가 스승을 희롱하려는 것이 아니라 뭔가 일깨움을 주려고 하는 줄을 알게 됐다. 며칠 전에는 몸뚱이만 비대한 자신을 꾸짖었고 지금은 책벌레처럼 경전이나 파고 있는 자신을 나무라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다. 버릇없는 소리는 버릇없는 소리가 아니라 깨침을 독려하는 절실한 친절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네가 다르구나.”

스승은 종을 쳐서 대중들을 모았다. 고령 선사를 법상에 앉게 하고 자신은 제자의 예를 갖추어 법을 청했다. 물론 그날 고령 선사의 법문으로 스승의 마음은 밝아졌다.

깨침에는 신분도 나이도 빈부귀천도 없다.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그런 허울들을 다 버려야 한다. 제자는 스승을 가르치고, 스승은 제자를 스승으로 여기는 가풍이 아름답지 않는가?

자, 이제 다시 벽화를 보자. 때밀이를 하는 제자가 가사를 수하고 있는 이유는 이미 깨달음의 경지를 이루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가사는 법의 상징이다. 그리고 제자의 머리를 푸른색으로 칠한 것도 이미 불과를 증득해 한없는 자비심으로 중생 제도에 나선 입장을 드러내는 것이다. 푸른색은 신성(神性)과 성실, 책임 등을 나타내고 방위로는 동쪽에 해당된다.

그나저나 스승을 법당 바닥에 앉히고 법상에 오른 고령 선사는 무슨 법문을 했을까? 귀를 열고 잘 들어 보라.

“신령한 광명이 홀로 빛나서 육근과 육진을 멀리 벗어났네. 심체가 참되고 향상함을 드러내니 문자에 구애되지 않았도다. 심성은 더러움이 없이 본래 저절로 원만하게 이루어졌으니, 다만 망령된 인연만 벗어난다면 곧 여여한 부처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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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아난의 지옥구경
불교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아난의 지옥구경

난타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배다른 동생이다.

즉 부처님과 마찬가지로 정반왕의 아들이지만

부처님은 마야부인을 어머니로 하고, 난타는 마하파자파티 부인을 어머니로 하였다.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후 고국인 카필라에 돌아왔을 때 마침 난타에게는 세가지 경사스러운 일이 겹쳐 있었다.

그것은 새 궁전이 완성되어 그곳으로 들어가는것, 신부를 맞아 결혼식올 올리는 것, 그리고 카필라국의 태자로 책립된다는 것 등의 일이었다.

특히 새로 맞이하는 신부는 나라에서 제일가는 미녀로 이름을 순다리라고 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아우되는 난타를 제도(濟度)할 때가 되었음을 알고

성 안에 들어가 난타의 집으로 가셨다.

난타가 나와서 보니 부처님께서는 걸식을 하러와서 빈 바루를 들고 서 계셨다.

그래서 바루를 받아 음식을 담아 부처님께 드리려고 하자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받지 않고 되돌아서 가는 것이었다.

난타는 하는 수 없어 어디선가 바루를 건네줄 생각으로 뒤를 따라 가다가 마침내 니그로다 정사에까지 오게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난타를 의자에 앉게하고

“착하다, 비구여 ! ” 하고 말씀하시자 저절로 머리가 깎이고 몸에는 가사가 입혀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난타의 생각은 집에 두고 온 부인의 모습이 생각나서 도망갈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부처님이 언제나 그를 데리고 다니기 때문에 탈주의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았다.

이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그는 정사의 당번을 서라는 명령을 받았다.

낮시간에 부처님과 비구들이 걸식하기 위하여 밖에 나가면 한사람은 남아서 당번을 서는 것이다.

드디어 탈주의 기회가 왔다 생각하고 부처님이 다니시는 큰 길을 피해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모든 것을 빠짐없이 아시고 오솔길 맞은 편에서 오고 계셨다.

부처님께서는 가까이 다가가서 자비스럽게 말씀하셨다.

  • 난타 ! 너는 아직까지도 집에 두고 온 부인 생각만을 하고 있구나.

  • 예, 그렇습니다. 부처님

부처님께서는 난타를 데리고 히말라야 깊은 산으로 가셨다.

그 산 속에는 한 마리의 늙은 원숭이가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원숭이를 가리키며

  • 부인은 미인이라는데 이 눈먼 원숭이와 비기면 어떻냐?

  • 제 아내 순다라는 미인으로서는 인간 중에서도 겨룰 자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어찌하여 그녀를 눈먼 원숭이 따위와 비교하십니까?

그 다음 부처님께서는 난타를 데리고 천상계(天上界)에 올라가 천상의 궁전을 구경시켰다.

궁전 속에는 500명이나 되는 아름다운 천녀가 미묘한 악기를 울리며 누구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궁금해진 난타가 천녀들에게 물었다.

  • 누구를 맞이하기 위해 준비를 하십니까?

  • 염부제라는 나라에 부처님의 동생으로 난타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출가하여, 계율을 지키고 수행한 공덕으로 다음 생에 이곳 저희들의 천자가 되십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그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난타는 뛸듯이 기뻐하였다.

  • 그 난타라는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이대로 여기서 살게 해 주십시요.

  • 안됩니다. 우리들은 천녀입니다만 당신은 인간입니다. 인간의 일생을 마치고 와 주셔요.

난타는 그대로 부처님에게 돌아와서 천녀들에게 들은 것을 부처님에게 이야기 하였다.

  • 네 아내는 미인이라고 하지만 그 천녀들과 비교하면 어떻냐.

  • 제 아내와 천녀의 차이는 늙은 원숭이와 제 아내의 차이와 같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난타를 데리고 염부제로 돌아왔는데 그 이후 난타의 수행은 비상한 것이었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난타를 데라고 지옥을 구경하였다.

지옥에는 큰 가마솥이 여러 개 있고, 솥하나는 펄펄 끓는 데도 옥졸들은 계속 나무를 집어 넣고 있었다. 난타는 옥졸들에게 물어 보았다.

  • 여보시오, 다른 가마엔 모두 죄인이 벌을 받고 있는 모양인데,

    이 가마는 계속 끓이고 있으니 어떤 까닭입니까?

  • 염부제에 부처님의 동생으로 난타란 자가 있지요.

    그는 출가했으니 다음 생에는 천상에 태어나겠지만,

    천상의 수명이 다하면 다시 이 지옥에 떨어지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이 가마솥을 끓이며 기다리고 있소이다.

난타는 두려워 떨면서 부처님께 다가와서 어서 염부제로 돌아가자고 하였다.

  • 너는 천상의 세계에 태어나고 싶어서 계율을 지키고 정진하는 것이냐?

  • 아닙니다. 저는 천상에 살고 싶지 않읍니다. 제발 지옥에만 떨어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렇게 해서 더욱 수행에 전념하게 된 난타는 17일만에 아라한과를 성취하여 성인의 경지에 이르렇다고 한다.

  • 연재되고 있는 벽화설명의 그림은 해인사 큰법당인 대적광전의 벽화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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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홍인선사와 제자 혜능의 수계
문화

홍인선사와 제자 혜능의 수계

사찰 벽화이야기 홍인선사와 제자 혜능의 수계 혜능이 행자로 들어와서 절에서 방아를 열심히 찧는 모습

홍인선사 법을 전수해줄 것을 암시하는 모습. 지팡이로 3번 탁 탁 탁 쳤다고 한다.

스승인 홍인선사가 혜능에게 자신이 쓰던 가사와 발우를 전해주는 장면

사찰의 건물 벽화 중에는 재미있는 그림이 많다.

그 중에 오늘은 선종이 교종을 능가하는 위세로 퍼져나가는 계기가 되었던

스님인 혜능선사의 전법에 대한 그림이다.

혜능은 본래 공부를 전혀 하지 못할 형편의 가난한 집 아들이었다.

그는 집안 형편이 좋지 못하였지만 늙으신 어머니를 정성으로 모시면서,

날마다 산에서 땔나무를 해서 이를 시장에 내다 팔아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한 탁발승이 시장에서

금강경을 독송하는 독경소리를 듣고 문득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신심이 깊은 불자였던 어머니의 허락을 받고,

집을 떠나 한 절에서 무진장스님이 열반경을 독경하는 소리를 듣고 그 뜻을 통하였고,

선종의 종가로 황매산에서 달마의 선법을 전수받았던 5조 홍인선사의 법을 전수받고자

그의 문하에 들어가고자 했다.

그러나 언제 어디나 세상은 격식과 절차가 있는 법이라,

홍인선사의 문하에는 수많은 제자들이 법을 전수받고자 공부하고 있었으며,

이미 수제자로 자타가 공인하는 걸출한 상좌들이 있었다.

그러니 혜능은 행자승으로 머리를 깎고 땔나무하기, 청소하기, 밥짓기, 밭일하기등으로

경전공부도 선공부도 전혀 하지 못하고 일만 열심히 하였다.

그런데 스승인 홍인선사는 자신의 선법을 전수해줄 제자를 찾기 위해서 방을 붙였다.

'그동안 공부한 결과를 나름대로 깨달음을 시로 지어서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절에서 공부하던 상좌 중에서도 자타가 공인하는 가장 뛰어난 상좌승이었던 '신수'는

이번에야말로 스승 홍인대사의 인가를 받을 기회가 왔다며,

자신의 공부를 함축한 시를 써서 보란듯이 써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붙였다.

이를 본 다른 제자들은 역시나 대단하다며

감히 자신들이 공부하고 깨달은 바를 글로 표현조차 하지 못하고 말았다.

그래서 절안의 모든 스님들은 당연히 신수가 홍인선사의 법을 인가받을 것으로 공인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방앗간에서 쌀방아를 찧고 있던 가장 말단의 혜능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한번도 홍인선사로부터 배운바가 없었지만

나뭇군으로 시장에서 탁발스님의 금강경독송을 듣는 순간

이미 선의 종지를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였던 것이다.

다만 글을 배우지 못해서 읽을줄도 모르고 쓸줄도 모를 뿐

선사들이 추구하는 깨달음에는 이미 도달하였던 것이다.

다만 그 깨달음을 인가해줄 스승을 만나지 못했을 뿐...

혜능은 자신이 깨달은 바를 같이 행자생활을 하는 동료스님에게 부탁하여

자신만의 계송을 지어서 방앗간 대문에 붙여놓았다.

그런데 혜능이 지은 계송은 감히 수제자라는 '신수'의 계송에 거의 반대되는 내용이었고,

읽은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그 내용이 너무도 뛰어난 것이기에 스승인 홍인대사는

혜능이 다른 스님들에게 큰 화를 당할 것이라는 염려가 되어

그가 붙여놓은 계송을 떼어버렸다.

하지만 자신의 선법을 전수할 사람은 '신수'가 아니라 바로 '혜능'임을 확신하고,

언제 그에게 법을 전수할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혜능이 방아를 찧는 방앗간 앞으로 가서,

자신이 늘 가지고 다니던 지팡이(주장자)를 3번 탁 탁 탁 쳤다.

같이 일하던 다른 행자들은 무심결에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혜능은 스승이 하는 뜻을 이미 알아차렸다.

그 주장자 소리는 '야반 3경에 자신의 방으로 와서 법을 전수받으라는 것' 이었던 것이다.

혜능은 모든 행자 일을 다 끝내고 잠들었다가 새벽 3경에 일어나 홍인대사의 방 앞으로 갔다.

그랬더니 스승은 이미 자신의 방에 등불을 켜놓고 혜능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혜능은 스승의 방에 들어가서 선종의 조사로 법을 전수 받았다.

당시에는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하고 그 증거로 자신이 쓰던 발우(밥그릇)와,

자신이 입고 다니던 옷(가사)을 증거로 내려주는 것이 전통이었다.

혜능은 스승이 전해준 전법의 증거인 가사와 발우를 받아서

야반에 절을 떠나 스스로의 길을 향해 나아갔다.

그래서 혜능은 선종의 6대조사가 되었고,

그를 뒤이어 참선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는 수많은 선사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으며,

통일신라에도 선종이 들어와 번창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혜능에게 조사의 법전수를 빼앗긴 신수는 너무도 억울한 생각이 들어

야반도주한 혜능이 스승의 가사와 발우를 훔쳐갔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많은 자신의 제자들을 풀어 혜능을 뒤쫓아 붙잡았으나,

결국 전법의 증거인 가사와 발우는 되찾지 못하였다.

혜능이 내려놓은 가사와 발우가 바위에 딱 붙어서 떨어지질 않았기에

그냥 돌아설 수밖에 없었고,

혜능을 선사로서의 경지를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신수는 이후 중국의 북으로 올라가서 북종선의 스승이 되었고,

혜능은 남으로 내려와 남종선의 스승이 되었다.

선종의 주류는 남조의 선법을 이어받은 남종선 곧 혜능의 제자들이 주류가 되었다.

신수가 읊은 시와 혜능이 읊은 시를 한 번 읽어보고

그 의미를 되새겨 본다면 홍인이 왜 신수가 아닌 혜능을

자신의 전법수제자로 인가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올려본다.

<신수의 계송> 몸은 보리수나무와 같고 마음은 명경대와 같으니

                  수시로 부지런히 갈고 닦아 먼지가 묻지 않게 하라!

<혜능의 계송> 보리수라는 본래 나무가 없고, 명경 또한 대가 아니니

                   본래 한물건이 없거늘 어디에 티끌 때가 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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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무인도의 두 형제. 관세음과 대세지보살.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무인도의 두 형제. 관세음과 대세지보살.

<br> **관세음보살의 전신** ​

아득한 옛날에 인도의 남쪽에 있는 조그마한 나라에 한 부자가 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장나라고 하며 아름다운 부인과 근심없이 행복하게 지냈다. 그러나 결혼한 지 몇 해가 지나도록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그의 부인은 제단을 차려 놓고 옥동자를 하나만 점지해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였다. 그런 덕분인지 곧 태기가 있더니 옥동자를 낳았고 그 뒤 세 해가 지나 또 아들을 얻게 되었다.

장나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큰 잔치를 베풀어 이웃 사람들을 대접하였다. 그리고 예언가를 칭하여 두 아들의 장래 운명을 말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예언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였다.

“두 형제는 용모는 단정하고 고우나 부모와의 인연이 박하여 일찍 부모를 여읠 운명을 타고났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형은 조리, 동생은 속리라고 이름을 지었다. 모두가 부모와 일찍 헤어진다는 뜻이다.

형이 열살, 동생이 일곱살이 되던 해 삼월에 어머니가 갑자기 병이 들었다. 백방으로 약을 써도 병세는 나날이 악화되어 가기만 했다. 어머니는 두 아들을 불러 놓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 “엄마의 병은 아무래도 나을 것 같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 태어나면 죽을 수밖에 없지만 어린 너희 형제를 남겨 놓고 떠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몹시 아프구나, 내가 죽더라도 너희는 서로 도우며 착하게 살아야 한다.”

​ 그러고는 어머니는 숨을 거두었다. 두 아들은 싸늘해진 어머니의 시신을 붙들고 통곡하였다. 장나는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장례를 후하게 치료고, 두 아들을 이전보다 더욱 극진히 사랑하며 및 해를 보냈다.

​ 그러다 여러 사람들의 권유에 못 이겨 새 부인을 맞아들었다. 새 부인은 죽은 부인과 모습이 비슷하여 두 아들도 마치 죽은 어머니가 다시 살아온 것처럼 기뻐하였다. 그 부인도 아이들을 불쌍히 여겨 퍽 귀여워하며 사랑하였다. 그런데 그 이듬해에 흉년이 크게 들어 곡식을 하나도 수확할 수가 없었다. 장나는 하는 수 없어 집안 일을 부인에게 맡기고 식량과 맞바꿀 보물을 가지고 이웃나라로 떠났다. 혼자 남게 된 부인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 ‘만일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저 아이들을 장차 어떻게 키울 것인가. 또 앞으로 내가 자식을 낳게 되면 남편이 저 아이들에게 먼저 재산과 가문을 상속해 줄 것이 아닌가. 그러니 두 아이는 큰 장애가 될 것이다.’

​ 새 부인은 뱃사공을 매수하여 두 아이들을 멀리 갖다버리도록 시켰다. 그리하여 낯선 무인도에 버려진 형제는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좁은 섬 안을 이리저리 미친듯이 뛰어다니며 부모를 찾았다. 그러나 섬에는 사람의 그림자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형제는 목이 터지도록 어머니와 아버지를 또 저희들을 데려다 준 뱃사공을 불러 보았지만 들리는 것은 바람 소리, 파도 소리뿐이었다.

​ 조리와 속리 형제는 마침내 피로가 겹치고 굶주려 가엽게도 쓸쓸한 무인도에서 숨을 거둘 지경에 이르렀다.

​ 죽음에 가까이 이르러서 아우인 속리가 남에게 속아서 비참하게 죽게 된 처지를 한탄하였다. 말없이 듣고 있던 형 조리가 아우를 타이르며 말했다.

“나도 처음에는 세상을 저주하고 사람을 원망했다. 하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지 않으냐. 차라리 우리가 다음 세상에 태어날 때에는 이 고통의 체험을 인연으로 삼아서 우리처럼 비운에 우는 사람을 구원해 줄 생각을 하자. 다른 사람을 위로해 주는 것이 곧 우리가 위로받는 길임을 일찌기 배우지 않았더냐.”

이 말을 듣자 비로소 아우는 얼굴이 밝아졌다. 형과 아우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크고 거룩한 서원을 세웠다.

“우리는 비록 여기에서 죽더라도 다음 생에서는 성현이 되고 보살이 되어 우리와 같이 불쌍한 사람들을 구원해 주겠읍니다. 또 빈곤하고 병으로 고통받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그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고 온갖 병을 고쳐 주겠읍니다···”

형제는 이렇게 하여 모두 서른두 가지의 서원을 세우고 서로 얼싸안고 숨져갔다.

무인도에서 외롭게 죽어간 이 형제의 얼굴에는 조용하고도 밝은 미소가 어리어 있었다.

그 섬의 이름은 보타락가이며 형은 관세음보살이 되고 아우는 대세지보살이 되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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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매화공불 (買花供佛) - 최고의 선물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매화공불 (買花供佛) - 최고의 선물

<유하사- 경북 안동>

과거현재인과경(過去現在因果經)에 나오는 이야기로 한 쌍의 남녀가 부처님에게 꽃을 올리는 그림이다.

이야기는 아득한 옛날 석가모니의 전생시절 ‘선혜’라는 이름의 청년으로 살고 있을 때, 마침 그곳 마을에 연등부처님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처님에 올릴 최상의 선물은 연꽃이라 생각하고 꽃을 준비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마침 일곱 송이 연꽃을 들고 지나가는 ‘고오피’라는 소녀를 만나 다음 생 서로 부부의 연을 맺기로 약속 하고 다섯 송이를 구하고 소녀도 나머지 두 송이를 들고 연등부처를 만나기 위해 함께 길을 나서게 된다.

둘은 각자 가져온 꽃으로 연등부처님에게 올리니,

선혜는 연등부처로부터 내세에 석가모니 부처가 되리라는 예언을 듣게 된다.

훗날

고오피 소녀는 약속대로 석가의 아내 야소다라가 되었고, 선혜 청년은 연등부처의 예언대로 석가모니 부처가 되었다.

▮ 선혜가 최상의 선물로 선택한 연꽃의 의미.

첫째, 처염상정(處染常淨)- 더럽고 추한 물에 살지만 그 더러움을 자신의 잎이나 꽃에 묻히지 않는 모습처럼 세상이 아무리 혼탁해도 고고한 기품을 지켜내는 보배로운 기상이 있다.

둘째, 화과동시(花果同時)- 꽃을 피움과 동시 열매가 그 속에 있는 모습처럼, 모든 사실에는 인(因)과 과(果)가 함께 한다는 진리가 있다.

셋째, 연꽃 송이의 모습은, 간절함을 위해 두 손 모은 합장(合掌)한 손과 닮아있다.

▮ 꽃선물의 의미

꽃 선물은 받는 사람도 행복하지만, 받을 사람을 위해 준비하는 사람도 행복하게 만든다.

막상 꽃 선물을 받게 되면 가장 좋은 곳에 놓고 정성스레 가꾸게 주게 된다.

그렇게 꽃을 가꾸다 보면 정이 들고, 그러다 보니 꽃을 보는 이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

인고의 세월을 겪은 후에야 피워낸 꽃이기에. 이렇듯 꽃 선물 의미는 환희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또, 꽃은 영원하지도 않기에, 그렇게 짧은 시간에 아쉽게도 시들어 버리니

그만큼이나 소중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우리 인생처럼 찰나(刹那)에 지나갈 소중한 아름다움이기에

꽃 선물은 제일 감사하고, 제일 소중한 사람을 위해 준비하는 제일로 향기로운 선물이다.

‘매화공불’은 꽃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향기로운 최고의 선물을 느끼게 하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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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신묘장구 대다라니 (6일차)
문화

불교문화 - 신묘장구 대다라니 (6일차)

**보명법사의 신묘장구대다라니 3×7=21일 기도 6일째. **

(6) 계속해서 <신묘장구대다라니>의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매다리야 니라간타 가마사 날사남 바라하라나야 마낙 사바하 싯다야 사바하 마하싯다야 사바하 싯다유예 새바라야 사바하 니라간타야 사바하 바라하 목카싱하 목카야 사바하 바나마 하따야 사바하 자가라 욕다야 사바하 상카섭나녜 모다나야 사바하 마하라 구타다라야 사바하 바마사간타 이사시체다 가릿나 이나야 사바하 먀가라잘마 이바사나야 사바하

위의 내용은 <신묘장구대다라니>의 마지막 부분인데, 이것은 관세음보살의 여러 가지 역할과 위신력에 따라 붙여진 열두 가지의 상징적인 이름에 해당됩니다.

관세음보살은 항상 자비스러운 모습만을 가진 것이 아니라 때로는 위엄스러운 모습으로, 때로는 화엄신장과 같은 두려움을 가진 존재로서 불법을 지켜주는 분이기도 합니다.

그럼 이제부터 때와 장소에 따라 관세음보살이 어떤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지 구체적인 내용을 검토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맨 처음에 나오는 <매다리야 니라간타 가마사 날사남 바라하라나야 마낙 사바하>에서 <매다리야>는 <마이트라야>라고 하여 미륵보살의 이름인데 '자비스러운, 인정이 깊은'의 뜻이 있습니다.

<니라간타>는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청경관음 (靑頸觀音)'이란 뜻입니다. <가마사>는 '욕망, 원망(願望)'의 뜻이며, <날사남>은 '부수다, 파괴하다'의 뜻입니다. <바라하리나야>는 악마왕 아들의 이름으로, 아버지인 악마를 따르지 않고 정법을 따른 자입니다. <마낙>은 ‘마음’이란 뜻이며, <사바하>는 여러번 나온 단어로서 '성취, 원만, 구경, 완성'등의 뜻이 담긴 종결어미로서 별도로 번역하지 않습니다.

<매다리야 니라간타 가마사 날사남 바라하라나야 마냑 사바하>까지가 관세음보살의 첫 번째 이름입니다. 이것을 연결해서 해석하면 '자비심이 깊으신 청경관음존이시여, 욕망을 부숴 버린 님의 마음을 위하여'가 됩니다.

두 번째의 이름인 <싯다야 사바하>에서 <싯다야>는 '성취'의 뜻이 있으니 <싯다야 사바하>는 말 그대로 '성취하신 분을 위하여'가 됩니다.

세 번째의 이름인 <마하싯다야 사바하>에서 <마하>는 '크다', <싯다야>는 ‘성취’의 뜻이므로 이것은 ‘위대한 성취존을 위하여’가 됩니다.

네 번째 이름인 <싯다유예 새바라야 사바하>에서 <싯다>는 ‘성취’, <유예>는 다른 말로 <요가>라고 표기하며 <새바라야>는 '자재(自在)'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싯다유예 새바라야 사바하>는 '요가를 성취하신 자재존(自在尊)을 위하여' 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의 이름인 <니라간타야 사바하>에서 <니라간타>는 '청경관음'이란 뜻이니, 이것은 '청경관음존을 위하여'가 됩니다.

여섯 번째의 이름인 <바라하 목카싱하 목카야 사바하>에서 <바라하>는 '산돼지', <목카>는 '얼굴', <싱하>는 '사자'라는 뜻이니 이것은 '산돼지 얼굴, 사자 얼굴을 한 관세음보살을 위하여'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일곱 번째의 이름인 <바나마 하따야 사바하>에서 <바나마>는 '연꽃'의 뜻이고, <하따야>는 ‘잡다’는 뜻으로 이것은 ‘연꽃을 손에 잡으신 관음존을 위하여’가 됩니다.

여덟 번째 이름인 <자가라 욕다야 사바하>에서 <자가라>는 ‘크고 둥근 바퀴’, <욕다야>는 ‘지니다’의 뜻이니 이것은 '큰 바퀴를 지니신 관음존을 위하여'가 됩니다.

아홉 번째의 이름인 <상카섭나녜 모다나야 사바하>는 <상카 섭나 녜모다나야 사바하>로 띄어 읽어야 합니다. <상카 섭나>는 '법(法) 소라 나팔 소리'라는 뜻이며 <녜모다나야>는 ‘깨어나다’라는 뜻이니 이것은 '법 소라 나팔 소리로 깨어난 관세음보살을 위하여'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열 번째의 이름인 <마하라 구타다라야 사바하>는 <마하 라구타 다라야 사바하>로 띄어 읽어야 합니다. <마하>는 '크다', <라구타>는 '곤봉, 금강저'이라는 뜻이며, <다라야>는 '가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위대한 금강저를 가진 관음존을 위하여'라는 뜻이 됩니다.

열한 번째의 이름인 <바마사간타 이사시체다 가릿나 이나야 사바하>에서 <바마>는 '왼쪽'이란 뜻이며, <사간타>는 '어깨'라는 뜻입니다. <이사>는 '곳, 장소'라는 뜻이고, <시체다>는 '굳게 지키다'는 뜻입니다. <가릿나>는 '흑색(黑色), 신승존(身勝尊)'이라 하여, 인도 힌두 신화의 크리슈나를 가리킵니다. <이나야>는 '승리자'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왼쪽 어깨쪽을 굳게 지키는 흑색의 승리자이신 관음존을 위하여'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끝으로 열두 번째의 이름인 <먀가라잘마 이바사나야 사바하>에서 <먀가라>는 '호랑이'라는 뜻이며, <잘마>는 '가죽'이란 뜻입니다. <이바사나야>는 '머물다'라는 뜻으로 '호랑이 가죽위에 머물러 있는 관음존을 위하여'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이상으로 관세음보살의 열두 가지 이름을 낱말 하나하나의 뜻을 새겨 보면서 그 의미를 풀이해 보았습니다. 이것은 결국 관세음보살이 과거에 보살행을 할 때의 여러 가지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서는 우리가 흔히 관념적으로 생각하는 자비스러운 모습과는 달리 어떤 때는 호랑이 가죽위에 머물러 있으며, 또 어떤 때는 전투하는 모습을 한 관세음보살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상징하는 진정한 숨은 뜻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관세음보살은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나타나 중생을 제도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넓고 깊은 관세음보살의 이력을 낱낱이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불기 2570년 4월 16일 팔공산 감고사지기 보명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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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전통사찰의 구조 - 나한전(羅漢殿)
문화

전통사찰의 구조 - 나한전(羅漢殿)

나한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 중 아라한과를 성취한 성인, 즉 나한을 모신 곳이다. 나한은 아라한의 약칭으로, 번뇌를 남김없이 끊은 성자라는 뜻이다. 부처님에게는 열여섯 명의 뛰어난 제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16나한이라고 한다. 나한전은 영산회상의 모습을 재현했다고 해서 영산전(靈山殿)이라 하며, 또는 참된 진리와 완전히 합치한 분들을 모셨다는 의미에서 응진전(應眞殿)이라고도 부른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모시고, 좌우에 가섭존자와 아난존자가 봉안되어 있다. 그 좌우에 열여섯 명의 나한이 웃고, 졸고, 등을 긁는 등 자유자재한 형상으로 배치되어 있다. 나한의 숫자가 500명인 경우도 있는데 이는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 부처님 생전 설법을 정리하기 위해 최초로 집회를 열었을 때 모인 비구의 수가 500명인 데서 유래하였다. 이를 오백결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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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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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 - 신묘장구 대다라니 (9일차)
문화

불교문화 - 신묘장구 대다라니 (9일차)

**보명법사의 신묘장구대다라니 3×7=21일 기도 9일째. **

천수천안 관자재보살 광대원만 무애대비심 대다라니 계청 (2) 千手千眼 觀自在菩薩 廣大圓滿 無碍大悲心 大陀羅尼 啓請

그러면 지금부터 관세음보살의 공덕을 칭송하는 구체적인 게송의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계수관음대비주 (稽首觀音大悲呪) 원력홍심상호신 (願力弘深相好身) 천비장엄보호지 (千臂莊嚴普護持) 천안광명변관조 (千眼光明遍觀照)

맨 처음의 <계수관음대비주>를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관세음보살의 대비주에게 머리를 숙여 귀의한다.'는 뜻이 됩니다. 여기서 <대비주>는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이르는 말입니다.

『천수경』에서 대다라니는 다름 아닌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비주와 관세음보살은 둘이 아닙니다.

관세음보살이 곧 대비주이며, 대비주는 바로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일컫는 말이니 이 세 가지를 함께 붙여서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관세음보살은 <원력홍심상호신>을 가진 분입니다. 이 말은 '관세음보살의 원력은 넓고 깊으며, 그 모습은 너무나 원만하다'는 뜻입니다. 흔히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마음을 쓰는 것을 욕심이라고 하고, 높은 차원의 지혜를 가지고 타인을 위해서 마음을 쓰는 것을 원력이라고 합니다. 원력도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처럼 차원 높은 원력을 가져야 합니다. 관세음보살의 원력이란 모든 중생들의 고통을 다 해결해 주고 그들의 소원을 다 들어주겠다는 자비심 입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은 천의 손과 눈이 되었으며 그 마음은 그 누구보다도 깊고 넓습니다.

『법화경』의「보문품」에는 '홍서심여해(弘誓深如海)'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은 바로 관세음보살의 원력을 표현한 말인데 '큰 서원의 깊이가 마치 바다와 같다'는 뜻입니다. 또한 관세음보살의 상호는 32상(相)과 80종호(種好)로 표현됩니다. 이것은 주로 부처님상을 말할 때 사용하지만 문수·관음·보현·지장불보살님께도 해당됩니다.

상(相) 종호(種好)는 육체적으로 나타나는 아름다운 모습뿐만 아니라 형이상학적으로 길상(吉祥)한 모습을 모두 갖춘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상과 종호를 합해서 상호라고 하는데, 이러한 상호를 갖춘 몸이 바로 관세음보살입니다.

다음으로 <천비장엄보호지>는 '천 개의 팔로써 장엄해서 우리를 널리 보호하고 감싸준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천비(千譬)는 천수(千手)와 같은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천 개의 팔로써 중생들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통과 소원을 다 해결해 주고 들어 주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바로 장엄입니다.

우리가 흔히 목걸이나 귀걸이로 몸을 장식하듯이 관세음보살은 천 개의 손으로 모든 것을 다 감싸줄 수 있는 자비심과 지혜와 원력으로 장엄하고 있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상을 보면 산호, 진주, 마니, 자거 등 온갖 진귀한 보석들로 치장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외형적인 치장은 관세음보살이 보석을 좋아해서 그렇게 요란하게 한 것이 아니라 바로 중생을 향한 자비심의 상징입니다. 관세음보살의 자비심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보호지〉라고 하는 것은 '널리 보호하여 감싸준다'는 말인데 <호지〉라는 낱말과 함께 우리가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정법호지(正法護持)'라고 하는 말입니다.

요즘 세상에는 종교도 많고, 그 가르침만이 최고라고 하는 진리도 많고, 모두들 자신의 주의주장만이 옳다고들 합니다. 이러한 시대에서 우리는 참으로 옳은 것을 잘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또한 그 많은 것 중에서 불법이 정말 값지고 귀중한 가르침이라는 확신이 섰을 때는 그것을 잘 지키고 보호함은 물론 남에게도 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흔히 공양이란 말을 잘 씁니다. 부처님께서는 경전의 곳곳에서 공양이란 말을 많이 했습니다. 예를 들어 등불, 초, 향, 꽃, 과일, 음식, 약, 의복 등 무엇엔가 이바지하는 온갖 것을 공양이라고 합니다. 그런 것들도 물론 좋은 공양이지만 부처님께서 무엇을 제일 좋은 공양이라고 여기실까를 한번 생각해보는 것이 바람직한 공양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일 것입니다.

우리가 손님을 청해서 공양을 대접한다고 할 때도 그 사람의 성향이나 취미, 식성을 잘 고려해야 진정한 공양을 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좋은 대접입니다. 마찬가지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릴 때도 자기가 좋을 대로 생각해서 공양을 올리지는 않았는지 한번쯤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제일 좋아하는 공양은 바로 법공양이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는「보현행원품」에서 많은 공양을 나열했지만 그 가운데서 제일은 법공양이라고 명시 하셨습니다.

법공양이란 좁게는 경전을 출판하여 보시하는 것도 해당되지만 진정한 의미는 정법을 호지하는 것입니다. 정법을 호지하는 것은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깨닫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여러 가지 물질적인 공양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긴 법을 전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본래의 참모습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법을 호지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정법을 호지하는 방법 중에서도 법을 펴는 일은 그 무엇보다도 시급하고 귀중한 일입니다.

불교에 대한 올바른 사상과 견해가 섰다면 그것을 잘 지킴은 물론 이웃과 사회에 불법을 통한 이익과 행복을 펴는 일에 좀 더 희생적으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남에게 베푸는 일도 좋은 일이지만 정법에 대한 확신을 갖고 남에게 정신적인 삶의 질을 높여 주는 것보다 바람직하고 값진 일은 없습니다. 그러한 법공양을 통해 지혜의 눈이 뜨이고 마음의 문이 열려 자신 속의 무한한 가치를 발견한다면 그것보다 더 보람 된 일은 없을 것입니다. 불자라면 누구나 진리의 가르침을 잘 보호하여 기회 있을 때마다 남에게 베풀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다음으로 <천안광명변관조>는 '천 개의 눈으로 빛을 내어 널리 두루 관찰하여 비춘다'는 말입니다.

관세음보살은 중생을 어여삐 여겨 천개의 손으로 이끄시고, 천개의 눈으로 관찰하여 자비를 펼치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관세음보살의 광명을 앉아서만 받을 것이 아니라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배워서 우리도 관세음보살처럼 살도록 능동적인 마음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처럼 지혜와 자비로써 베풀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그분들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며, 또 그분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불기 2570년 4월 19일 팔공산 감고사지기 보명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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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2일
사찰미술여행 - 사찰의 꽃살문
문화

사찰미술여행 - 사찰의 꽃살문

▲ 영변 보현사 대웅전 정면 문장식(‘조선고적도보’6).

겨울이 짙어가는 이 시기 우리네 마음속엔 벌써 봄을 기다리지만 시절이 하수상 하니 봄이 올동말동할 것만 같다. 불어오는 차가운 산바람은 세상의 속진(俗塵)을 모두 털어낼 만큼 매섭지만 가쁜 숨을 몰아쉬며 찾아간 겨울의 산사는 세상 번뇌와는 무관한 듯 고즈넉하기만 하다. 한겨울 눈바람에 발끝이 시리고 행여 바람이 들까 연신 옷깃을 여미는 이 계절에 부처님에게로 향하는 문의 창살에는 벌써 봄이 와 있다. 내가 서 있는 문 밖과 부처님이 계시는 문 안을 속(俗)과 성(聖)으로 구분이라도 짓듯 법당의 문창살에는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라는 노랫말과 같이 이 엄동설한에 갖가지 꽃이 흐드러지게도 피어있다. 마치 불법의 세상인 법당 내부는 기화요초가 만개한 비밀의 정원과 같아 창을 넘어 바라보는 이에게 몽환적 느낌마저 들게 한다.

문살 교차점에 꽃 조각 일반적 판재 통으로 붙여 장식하기도 용은 불법 수호하는 호법 의미 연지 새겨 연화화생 의미 담아

단아하고 정제된 형태로 벽사(辟邪)의 의미를 담고 있는 간결한 격자문 창살에 비해 꽃으로 수놓은 한 폭의 그림과 같은 꽃살문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사찰의 장엄이다. 선암사의 꽃살문은 괴석 사이에 뿌리를 내린 커다란 나무가 자라 가지를 뻗고 꽃 봉우리를 맺은 모습이다. 우리나라 꽃살문 가운데 최고 수준의 명품으로 인정받는 내소사의 화려한 형태의 꽃살문에는 인간으로 변한 호랑이가 화승이 되어 곱게 곱게 단청하다 다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세월이 지나 고운 빛의 단청은 다 사라지고 이제는 나뭇결이 그대로 보이지만 형태에서 풍겨지는 화려함은 단출한 색감도 문제되지 않는다. 1633년 중건된 내소사 대웅전의 꽃살문은 꽃송이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어 있는 잎을 연결고리로 삼았다. 얼핏 보면 모두 같은 꽃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국화, 모란, 연꽃 등 그 종류도 다양하고 형태도 만개한 꽃송이에서 봉우리까지 각양각색이다. 어떤 이는 불성을 깨우치는 단계를 꽃 봉우리와 활짝 핀 꽃에 비유하기도 한다. 꽃살문의 명칭은 새겨진 꽃의 종류에 따라 빗국화꽃살문, 빗모란연꽃살문 등으로 불린다. 빗꽃살문이 한 떨기 탐스런 꽃송이 하나하나를 모아 놓은 것 같다면 솟을꽃살문은 넝쿨식물이 뻗어나간 육각형의 영역 사이에서 기화요초가 피어있는 듯하고 꽃잎의 크기도 빗꽃살문보다 훨씬 크다.

우리가 익히 아는 꽃살문은 문살이 만나는 교차점에 꽃을 조각하여 장식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朝鮮古蹟圖譜(조선고적도보)’에 실린 20세기 초 사찰의 사진을 보면 문살에 판재를 통으로 붙여 문양을 투조하여 창을 장식한 꽃살문의 형태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어 아마도 꽃살문의 고식은 통으로 투조한 양식이 더 많이 애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묘향산 보현사의 대웅전 정면 문살은 한 쪽은 솟을빗꽃살문 양식으로 창살로 만들고 나머지 한 면은 통판투조 양식으로 문양을 새겨 넣었다. 통판투조 창살에는 연지에서 뻗어 자란 연꽃과 잎을 배경으로 하단에 두 명의 동자를 새겨 넣고 상단에는 하늘로 승천하는 한 마리의 용을 운문(雲紋)과 함께 조각하였다.

▲ 예천 용문사 윤장대 꽃살문 부분.

동자가 연꽃줄기를 쥐고 있는 문양은 고려 청자대접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이는 연(蓮)과 연(緣)이 동음이라 ‘연생다자(緣生多子)’의 기원을 의미한다. 연못 바닥에서 자라난 연꽃줄기는 하늘 높이 피어올라 구름과 함께 승천하는 용의 배경이 되고 있다. 창살에 새긴 용은 부처님이 계신 법당이 장경(藏經)을 담고 있는 용궁임을 나타내는 상징적 표현이거나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표현일 수 있다. 연꽃이 피어 있는 연지를 배경으로 동자와 물고기, 수금(水禽)이 묘사된 연지수금꽃살문은 경북 영주 성혈사 나한전의 어간에도 있고 황해도 박천의 심원사 보광전 문살에도 보인다. 불화의 배경으로 연지를 주로 사용하는 도상은 아미타여래와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며 이때 연지는 불법을 믿고 따라 서방정토의 연지에서 태어난다는 연화화생의 의미를 담고 있어 아마도 문살에 표현된 연지도 그와 같은 기원을 담았을 것이다.

예천 용문사 윤장대의 문살 장식은 격자문양의 창살과 함께 연지수금꽃살문과 빗꽃살문을 모두 이용하였다. 연지를 새긴 문살은 보현사의 연지수금꽃살문과 같이 통판투조이다. 부처님의 법인 경전을 보관하였던 윤장대의 창호를 사찰의 큰 법당 문살과 같은 양식으로 한 까닭은 각양각색의 꽃으로 장엄된 문살이 속세와 불법의 세계를 구분하는 의미도 품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강화도 정수사 법당 꽃살문은 판재를 통으로 붙인 양식으로 현병(賢甁)에 꽂인 갖가지 꽃이 넝쿨을 이루며 상부로 뻗어나간 모습을 문살에 새겼다. 그 모습은 마치 부처로 향하는 신심의 표현으로 법당을 장식했던 화만(花鬘)이나 법석에 장식되었던 지화와 유사성을 보이며 화려한 모란과 장미가 꽂힌 꽃병을 그린 네 폭의 민화병풍을 보는 느낌도 있다. 동학사 대웅전 문살에 사군자와 세한삼우(歲寒三友)를 투각한 것과 같이 민화병풍에 사용되는 모티프를 차용하여 문살을 장식한 예도 드문 것은 아니다.

영산재에 사용되는 지화장엄에서 상중하단에 사용되는 꽃은 단상에 따라 차이가 있다. 작약과 모란은 상단에 올리는 꽃으로 아름다운 꽃술과 향기가 은은해 최상의 꽃으로 여긴다. 불교의식에서 작약과 모란을 잡고 법무를 추다 두 손을 모으면 세상의 꽃을 부처님께 헌화한다는 뜻이다. 중단에 올리는 국화는 기국연년(杞菊延年), 송국연년(松菊延年)이라는 축수의 문구를 부쳐 장수화를 의미하는 꽃으로 불단에 헌화되고 국화와 대칭을 이루는 타리화(陀利華) 역시 중단에 공양되는 꽃이다. 마지막으로 하단에 올리는 꽃은 연화이다. 윤회와 환생을 의미하는 연화는 영단의 장엄에 사용되는데 다른 꽃들과 달리 연지단을 함께 꾸며 못 속에 피어난 연꽃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사찰의 창살에 곱게 피어난 꽃들은 부처님이 계신 곳을 장엄하는 의미뿐만 아니라 부처에서부터 영가에게 이르기 까지 모두를 공양하는 헌화의 의미이기도 하다.

꽃살문을 통해 속계에서 바라보는 법계는 비밀의 화원과 같이 기화요초로 장엄된 세상이다. 하지만 법계에서 바라보는 속계는 장엄을 걷어낸 고요함이 문살에 비치는 것처럼 내소사 대웅보전의 꽃살문을 법당 안에서 바라보면 단정한 마름모 살 그림자만 비춘다. 법당의 문짝 하나에도 이렇게 많은 의미를 담아 정성을 기울여 만든 선조들의 지혜가 그저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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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입문 - 비로자나 부처님은?
문화

불교입문 - 비로자나 부처님은?

연꽃 속의 세계에 계시는 맑고 깨끗하신 부처님으로 진리의 몸이 온 누리를 두루 비치는 큰 빛을 내어 모든 이들로 이끌어 주시는 부처닙이며, 영원한 본체인 진리의 부처님 법신 부처님으로 어느 세계, 어느곳에라도 계시지 않는 곳이 없다. 그러나 현상세계의 모습으로는 출현하지 않으신다.

※ 이 자료는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 알아두면 좋은 불자상식 작성자 민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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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삼척동자도 다 아는 내용을 가르친 도림선사 ​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삼척동자도 다 아는 내용을 가르친 도림선사 ​

당대唐代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유명한 백낙천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문장가이도 했지만 정치가로서 학식과 총명이 뛰어나 높은 벼술에 올랐던 인물입니다. 그가 항주고을의 태수로 부임했을 때입니다. 그때 항주에서 그리 멀지 않는 사찰에 도림선사라는 분이 계셨는데, 뛰어난 고승으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항주에 부임한 백낙천은 직접 도림선사를 찾아가서 한 수 가르침을 배우고자 했습니다.

도림선사는 곧잘 경내의 큰 소나무 위에 올라가 좌선을 하곤 했는데. 그 날도 노송 위에서 좌선을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백낙천의 눈에는 한 스님이 나무위에 앉아서 졸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스님, 나무 위는 위험합니다. 어서 내려 오세요."

"아래에 있는 자네가 더 위험하네."

"스님, 나는 이미 큰 벼슬에 올라 내 말이면 모두 벌벌 떱니다. 지금도 이렇게 안전한 땅을 밟고 있거늘 무엇이 위험하단 말입니까."

그의 자만심을 이미 꿰뚫어 본 도림선사가 타이르듯 말했습니다.

"티끌같은 세상의 지식만으로 교만심이 늘어 번뇌와 탐욕이 쉬지 않으니, 어찌 위험하지 않단 말인가?"

결국 백낙천은 도림선사의 기개에 눌려 가르침을 청했습니다. 선사는 백낙천에게 게송으로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제악막작 중선봉행諸惡莫作衆善奉行, 나쁜 짓은 하지 말고 착한 일을 받으러 행하라. 자정기의 시제불교自淨其意 是諸佛敎, 자기의 마음 맑게 하면 이것이 곧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백낙천은 크게 실망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스님, 그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내용이 아닙니까?"

"그렇지, 하지만 팔십 노인도 행하기는 어려운 일이지."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을 지행합일知行合一이라고 합니다. 평소의 마음이 수행과 다르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일로 크게 깨달은 백낙천은 지행합일의 삶으로 훗날 더 큰 벼슬에 올랐으며, 덕치를 베풀어 사람들에게 큰 추앙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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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부모은중경 10편.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부모은중경 10편.

끝까지 자식을 사랑하는 은혜 (구경연민은)

< 부모님의 크신 은혜 깊고도 지중하니, 크신 사랑 잠시라도 그칠 새 없으시네. 앉으나 일어서나 마음을 놓지 않고, 멀더라도 가까워도 크신 뜻 함께 있네. 어머니 연세들어 일백 살 되었어도, 여든 살된 그 아들을 언제나 걱정하네. 이와 같이 크신 사랑 어느 때 멈추실까, 목숨이나 다하시면 그때라야 쉬게 될까. >

부모님에게는 아무리 나이 많은 자식이라도 불안하기는 어린 자식과 마찬가지입니다. 부모의 눈에는 여전히 어린아이로만 보여 애처롭기만 할 뿐, 그 마음의 끈을 내려놓는 일은 결코 생이 마감할 때까지는 없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백 살이 된 노모가 팔십이 된 자식 손을 쓰다듬으며, 걱정스럽게 말을 합니다.

"우리 아들 밥은 먹었느냐. 차조심해라. 항상 잘 보고 건너거라 ... "

어쩌면 그 모습이 우스운 상황일 수도 있지만, 어느 누구라도 가슴이 뭉클해져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어머님의 깊은 사랑을 함께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부모의 열 가지 무거운 은혜인 '십중대은'을 설하실 적에 부모로서 자식에게 갖는 일방적인 의무로 말씀해 주신 것은 아닙니다. 또한 부모니깐 당연히 그러한 것이고, 자식은 부모님에 대한 효도에 있어 형식과 책임을 다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닙니다.

부모님의 은혜와 자식으로서 부모에 대한 사랑을 가슴에 새기고 느껴보라는 이유로 열 가지 은혜를 알려 주셨습니다. 또한 부모로서 자녀를 가질 때의 마음, 낳을 때의 마음, 기를 때의 마음이 각각 어떠한 것인지 알 수 있도록 부모의 자세에 대하여 설명해 주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은혜를 보답하는 마음은 부디 자연스럽게 일어나야 합니다. 자식에 대한 애정만큼 부모에 대한 사랑이 생겨나 진심으로 부모님을 공경할 수 있어야, 형식에 그친 효도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사찰 벽화이야기 부모은중경 9.10 편.

  1. 자식을 위해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 은혜 (위조악업은)

< 부모님의 크신 은혜 강산같이 중하여서, 깊고 깊은 그 은덕 실로 갚기 어려워라. 자식의 괴로움은 대신 받기 원하시고, 자식들 고생하면 부모 마음 편치 않네. 자식들이 먼 길을 떠나가 있을 때면, 잘 있는지 춥진 않나 밤낮으로 근심하네. 잠시라도 자식들이 어려움 당할 때면, 어머니의 그 마음은 오랫동안 아프다네. >

부모님의 마음은 자식을 위해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행여 자식이 고생할까봐 남의 집 허드렛일이라도 자식의 앞날을 위해서라면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자식들은 이러한 부모님의 큰 사랑을 망각하고, 오히려 늙고 병들었다고 부모를 업신여기고 부모의 고통을 모른척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역죄를 저지르는 불효자와 다르지 않습니다.

오역죄는 아버지를 헤치거나 어머니를 헤치거나, 부처님이나 아라한을 헤치거나 스님들을 이간질하는 등의 무거운 죄입니다. 오역죄를 지으면 무간지옥이라는 가장 무서운 지옥에 떨어집니다.

가끔 인륜을 저버리고 존속을 헤친 사건이 보도되면 정말 믿겨지지가 않습니다.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부모님의 마음은 자식의 잘못을 대신 받고자 애원합니다. 자식의 괴로움을 대신 받으려는 것입니다.

자식이 잘못을 저지르면 부모님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제가 잘못 가르쳐서 그렇습니다. 제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제가 함께 있어 주지 못해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

부모님의 마음은 이처럼 자식의 모든 잘못이 다 자신 때문이라고 여깁니다. 부모님은 이렇게 자식을 평생토록 걱정하는데. 오히려 세상에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고통을 모른척한다는 것은 가장 나쁜 불효입니다. 부모님의 마음만이라도 편안하게 해주지 못할지언정 강산같이 무거운 부모님의 은덕을 어찌 다 갚으려는지 불효를 저지르고 맙니다. 근본부터 되짚어 생각을 고쳐먹어야 합니다.

  1. 끝까지 자식을 사랑하는 은혜 (구경연민은)

< 부모님의 크신 은혜 깊고도 지중하니, 크신 사랑 잠시라도 그칠 새 없으시네. 앉으나 일어서나 마음을 놓지 않고, 멀더라도 가까워도 크신 뜻 함께 있네. 어머니 연세들어 일백 살 되었어도, 여든 살된 그 아들을 언제나 걱정하네. 이와 같이 크신 사랑 어느 때 멈추실까, 목숨이나 다하시면 그때라야 쉬게 될까. >

부모님에게는 아무리 나이 많은 자식이라도 불안하기는 어린 자식과 마찬가지입니다. 부모의 눈에는 여전히 어린아이로만 보여 애처롭기만 할 뿐, 그 마음의 끈을 내려놓는 일은 결코 생이 마감할 때까지는 없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백 살이 된 노모가 팔십이 된 자식 손을 쓰다듬으며, 걱정스럽게 말을 합니다.

"우리 아들 밥은 먹었느냐. 차조심해라. 항상 잘 보고 건너거라 ... "

어쩌면 그 모습이 우스운 상황일 수도 있지만, 어느 누구라도 가슴이 뭉클해져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어머님의 깊은 사랑을 함께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부모의 열 가지 무거운 은혜인 '십중대은'을 설하실 적에 부모로서 자식에게 갖는 일방적인 의무로 말씀해 주신 것은 아닙니다. 또한 부모니깐 당연히 그러한 것이고, 자식은 부모님에 대한 효도에 있어 형식과 책임을 다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아닙니다.

부모님의 은혜와 자식으로서 부모에 대한 사랑을 가슴에 새기고 느껴보라는 이유로 열 가지 은혜를 알려 주셨습니다. 또한 부모로서 자녀를 가질 때의 마음, 낳을 때의 마음, 기를 때의 마음이 각각 어떠한 것인지 알 수 있도록 부모의 자세에 대하여 설명해 주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 은혜를 보답하는 마음은 부디 자연스럽게 일어나야 합니다. 자식에 대한 애정만큼 부모에 대한 사랑이 생겨나 진심으로 부모님을 공경할 수 있어야, 형식에 그친 효도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아버지를 왼쪽 어깨 위에 업고, 어머니를 오른쪽 어깨 위에 업어 천만년 동안 부모에게 옷과 음식, 약으로 공양을 한다. 만약 부모가 어깨 위에서 똥오줌을 싸도 불평없이 이와 같은 행동으로 효도를 다해도 역시 부모의 은혜에 다 보답할 수 없다." ☞ 『아함경 阿含經』

부모님의 은혜는 부모님을 양 어깨 위에 업은 것처럼 깊고 무겁습니다. 그 깊은 은혜에 보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부처님께서는 부모의 은덕을 갚으려면 다음과 같이 하라고 일러주셨습니다.

"깊은 은혜를 갚으려거든 부모를 위하여 이 정전을 쓰며, 부모를 위하여 이 경전을 읽고 외우며, 부모를 위하여 죄를 참회하며, 부모를 위하여 삼보에게 공양하며, 부모를 위하여 계를 받아 지니며, 부모를 위해 보시하여 복을 지을 것이니, 만일 이런 행을 행하면 효도하는 자식이라 할 것이다."

왜 그럴까요. 부모은중경을 쓰고 외우기 위해 경을 읽다보면, 부모님의 은혜가 얼마나 무거운지 저절로 알게 됩니다. 따라서 경전을 제대로 읽고서도 감히 부모님 은혜에 보답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이 경전을 쓰며 읽고 또 외우라 하셨습니다. 그렇게 읽고 읽다보면 저절로 마음속에 죄송스런 생각이 들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게 됩니다. 그것이 참회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너무나 익숙한 것들에 소홀합니다. 부모님께서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필요할 때는 부모님의 어려움 따위는 아랑곳 않고 내 욕심을 채우기 급급합니다. 하지만 부모님 마음은 자식 걱정으로 하루하루가 바늘방석에 앉아 계신 심정입니다.

벽화의 그림과 새겨진 글귀를 보면서 우리는 부모님의 은혜를 마음깊이 새기며 부처님의 가르침 따라 반드시 효도를 행동으로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은 곧 과거 어느 생에 나의 부모형제였을 수 있다는 심정으로 이웃에 대한 자비와 사랑을 더욱 더 적극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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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성지순례지 불영사 전각 해설
불교문화

성지순례지 불영사 전각 해설

**1. 불영사 대웅보전.

보물 1201호.**

불영사는 신라 진덕여왕 5년(651)에 의상대사가 세웠다고 전하는 절이다.

대웅보전은 절에서 석가모니불상을 모셔 놓은 중심 법당을 가리키며 지금 있는 건물은 안에 있는 탱화의 기록으로 영조 11년(1735)에 세운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규모는 앞면과 옆면이 모두 3칸씩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각 공포의 조각 솜씨가 뛰어나다.

가장 주목할만한 점은 건물에 색을 칠한 단청 부분을 들 수 있는데 바깥쪽은 다시 칠하여 원래 모습을 잃었지만 안쪽은 그 형태가 잘 남아 있다.

천장부분을 비롯한 벽, 건물을 지탱하는 굵직한 재료들에 그림을 그린 기법들은 수준이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건축양식과 기법연구, 격조 높은 불교그림과 단청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조선 후기 건축물이다.

**2. 불영사 영산회상도

보물 1272호.**

영산회상도는 석가가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으로 대개 불상의 뒷벽에 위치한다.

이 영산회상도의 석가여래는 오른쪽 어깨가 드러나는 우견편단의 옷을 걸쳤으며, 손가락을 땅으로 향하게 하여 마귀를 물리치는 의미를 지닌 항마촉지인의 손모양을 하고 앉아 있다. 석가여래 주변으로 10대 보살, 사천왕상, 상단의 10대 제자 등이 배열되어 있다.

주로 영산회상도에서는 8대보살이 그려지는데, 이 그림에서는 10대보살을 표현한 점과 석가불 아래의 그 보살이 유난히 큰 점이 특징이다.

석가의 옷이 붉은색이고 석가 뒤의 광배가 이중으로 붉은 테를 두른 점등은 조선 후기의 불화양식보다 약간 앞선 양식적 특징이다.

채색의 사용법이 유창하고 아름다우며 묘사법이 정밀하여 그림의 가치를 더욱 높인다.

조선 영조 9년(1733)에 그려진 이 그림은 격조있는 양식, 양호한 보존상태 등으로 18세기 초 조선불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3. 불영사 신중탱화.

대웅보전에 봉안되 있는 이 신중탱화는 삼베(麻) 바탕에 채색한 것으로 전체 크기는 세로 230.5cm, 가로 236.2cm이며, 화면크기는 세로 214.5cm, 가로 223.1cm이다.

팔곡병풍을 배경으로 상단에는 제석과 범천을, 하단에는 위태천을 중심축으로 좌우에 무장의 천룡팔부중 (天龍八部衆)을 묘사하였다.

이러한 형식은 가장 많이 애용되었던 것으로 신중도 중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제석천과 범천은 주위로는 일월천자와 보살, 주악 천중 등의 천부중(天部衆)이 둘러 서 있다. 이 아래 갑옷을 입고 깃털장식 투구를 쓴 위태천은 두 손으로 양쪽에 가지가 달린 삼차극(三叉戟)을 세워 잡은 모습인데, 앞 열 좌우로 사천왕, 팔부중 등 천룡팔부를 각각 3위씩 배치하였다.

그 뒤쪽 열에는 투명 두건과 草衣 착용에 白羽扇을 쥔 산신,명왕과 사갈라용왕을 배열하였다.

색채는 적색과 녹색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반면 돋보이는 청색과 흰색의 남용으로 인해 화면이 밝아졌으나 차분한 느낌을 유지하고 있다.

화면 하단의 畵記를 통해, 1860년(철종 11)에 金魚인 意雲 慈友 등 5인의 畵員에 의해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意雲(堂) 慈友(1856~1873년 활동)는 사불산 대승사를 중심으로 경상도와 강원도까지 활동한 金魚로서 최고의 지위인 도총섭의 직함까지 갖춘 화승이었으며, 그의 작품은 대부분 경상도 지역에 보존되어 있다.

이 신중탱화는 하단에 촛농이 떨어진 자국 등을 제외하면 보존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며, 정밀한 형태 묘사, 조화로운 색채의 구성, 힘 있는 필선, 화사한 문양과 장식 등에서 완성도가 높은 19세기 불화 가운데 수작이라 판단되므로 有形文化財로 지정되였다.

로타리 불자회 지도법사 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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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0일
사찰 벽화이야기 - 부모님 크신 은혜
불교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부모님 크신 은혜

수미산 백 천 번 돌아도 부모 은혜 못 갚아

안성 삼봉사 법당 내부에 그려진 <불설부모은중경>벽화의 한 장면.

효(孝)는 백 가지 행실의 근본이라는 말이 있다.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파된 불교는 중국의 정신을 수용하면서 효사상도 중요하게 받아들였다.

그런 과정에서 〈불설부모은중경〉은 불교의 효 사상을 담은 경전으로 널리 유통되어 왔다.

‘나 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로 시작되는 ‘어버이 은혜’ 노래가사는

국문학자 양주동 박사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은 이 가사의 내용 모두가 바로

〈불설부모은중경〉에 나오는 부모님의 은혜다.

경전에 나오는 부모님의 열 가지 은혜는 다음과 같다.

△회탐수호은(懷耽守護恩)-몸에 실어 보호 해주신 은혜

△임산수고은(臨産受苦恩)-나를 낳으실 때 고통을 마다 않으신 은혜

△생자망우은(生子忘憂恩)-자식 낳은 뒤 근심 고통 모두 잊어버리시는 은혜

△인고토감은(咽苦吐甘恩)-쓴 것은 삼키시고 단 것은 뱉어 먹여주신 은혜

△회건취습은(廻乾就濕恩)-진자리 마른자리 가려주신 은혜

△유포양육은(乳浦養育恩)-젖먹이고 길러주신 은혜

△세탁부정은(洗濯不淨恩)-깨끗하지 않은 것을 씻어주신 은혜

△원행억념은(遠行億念恩)-먼 길 떠나면 돌아오도록 걱정 해주시는 은혜

△위조악업은(爲造惡業恩)-자식을 위해 궂은 마다하지 않으신 은혜

△구경연민은(究竟憐愍恩)-자식을 위한 은정은 끝이 없으신 은혜.

경전은 이 열 가지 은혜를 항상 생각하고 보답해 드리고자 노력하면서 살아 갈 것을 가르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열 가지 은혜는 잘 알고 있지만 실천에는 인색하다.

부처님은 〈불설부모은중경〉에서 부모님의 은혜를 다 갚기가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해서도 언급하셨다.

이 부분도 열 가지 은혜 못지않게 널리 알려져야 마땅하지만 사람들은 열 가지의 은혜만 기억하지 않는가 싶다.

부모님의 은혜를 다 갚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부처님 말씀을 들어 보자.

“그대들은 잘 들어라.

내 이제 그대들을 위해 알아듣기 쉽게 설해 주리라.

가령 어떤 사람이, 왼쪽 어깨에 아버지를, 오른쪽 어깨에 어머니를 태우고

살갗이 닳아서 뼈가 드러나고 뼈가 닳아서 골수가 드러나도록

수미산을 백 천 번 돌아도 부모의 깊은 은혜를 다 갚지 못하리라.

가령 어떤 사람이, 흉년을 만나 부모를 위해 자신의 몸을 티끌처럼 잘게 다져서 공양하기를

몇 천 겁 동안 한다 해도 깊은 부모의 은혜를 다 갚지 못하리라.

가령 어떤 사람이, 자신의 눈동자를 예리한 칼로 도려내서

부모님을 위해 부처님께 공양하기를 백 천 겁 동안을 한다 해도

깊은 부모의 은혜를 다 갚지 못하리라 ….”

어떻게 보면 섬뜩할 정도의 내용이다.

그만큼 부모님의 은혜는 큰 것이고 다 갚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어쩌면 부모님의 은혜를 다 갚는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지도 모르겠다.

천태종의 사찰들에 많이 그려지는 벽화 가운데 하나가 이 〈불설부모은중경〉의 내용이다.

부처님이 뼈 무더기를 향해 절을 하는 장면,

열 가지의 은혜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많고

은혜를 갚기가 어려움을 설한 내용을 그림으로 그리기도 한다.

안성 삼봉사 법당의 내벽에는 〈불설부모은중경〉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벽화가 가득하다.

열 가지 은혜와 경전을 설하신 배경은 물론 은혜 갚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표현한 그림들이다.

여기 제시한 그림은 바로

‘왼쪽 어깨에 아버지를, 오른쪽 어깨에 어머니를 태우고

살갗이 닳아서 뼈가 드러나고 뼈가 닳아서 골수가 드러나도록

수미산을 백 천 번 돌아도 부모의 깊은 은혜를 다 갚지 못하리라’는 대목을 그린 것이다.

가정의 달 5월에는 여러 기념일이 있지만 그 어느 날보다 소중한 날이 어버이날이다.

누구를 막론하고 부모 없이 어떻게 이 세상에 왔겠는가?

일 년에 단 하루라도 뼈에 사무치도록 어버이의 은혜를 생각해 본다면,

나머지 날들이 행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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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구품상생도
불교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구품상생도

극락정토 향한 간절함 담겨

경북 풍기 연풍사는 웅장한 소백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전쟁이 나도 그 화(禍)가 미치지 않는다는 십승지(十勝地)의 한 곳인 금계동으로 가는 길목이다. 연풍사 법당은 2004년에 낙성한 단층 슬래브 건물이다. 법당은 244㎡(74평) 규모인데 중앙 불단의 맞은편 벽에 ‘구품상생도(九品上生圖)’가 화려한 색채로 빛을 뿜고 있다. 이 벽화는 연풍사 뿐 아니라 구인사를 비롯한 여러 천태사찰에 그려져 있다.

화면의 하단과 중앙부 거의 전체에 아름다운 연꽃이 만개해 있고 그 꽃마다 사람이 앉아 있다. 얼핏 보면 여러 사람이 연꽃을 방석삼아 앉아 있는 모양이다. 허리를 곧게 펴고 두 팔을 양쪽 무릎위에 단정이 올려놓은 모습이 통일되어 있다. 그들이 앉은 방향도 일정하여 모두 몸이 오른쪽을 향하고 있다. 커다란 선방에서 연꽃 방석에 올라 앉아 참선을 하는 모습이다.

사람들의 위쪽은 뭉글뭉글 구름이 떠 있고 오른쪽에는 구름이 드리워 있는데 삼층의 궁전 같은 건물이 일부만 살짝 보인다. 가만히 살펴보면 사람들의 눈이 그 궁전을 향해 있고 표정은 그 궁전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눈치다. 도대체 무슨 광경일까?

이 벽화의 이름이 ‘구품상생도’라는 점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구품이란 아홉 가지의 단계다. 정토3부경의 하나인 〈관무량수경〉에서 극락을 아홉 가지의 등급으로 설명하는데 최하위인 하품하생부터 최상위인 상품상생까지의 단계다. 이들 단계를 거쳐 극락정토로 왕생하는 과정이 ‘구품연화’로 묘사되는데, 각 단계마다 왕생의 매개로 연꽃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조형이나 회화에서 연꽃은 깨달음의 완성을 의미하는 상징체계다.

▲ 풍기 연풍사 법당 안에 그려진 '구품상생도'. 깨달음의 완성을 상징하는 연꽃을 통해 정토에 왕생하는 모습이다.

경전에는 그 품계별 왕생의 시간도 어마어마하게 긴 시간으로 묘사되고 있다. 하품하생에서 상품상생까지 이르는 시간을 12겁이라 설명하고 있는데, 오늘날의 시간 개념으로 계산하면 2억157만 6000년이다. 그러나 그 수치적인 개념의 시간에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얼마나 지극한 마음으로 얼마나 밝게 마음을 쓰느냐의 문제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 다시 그림으로 돌아와 보자. 이제 한쪽 귀퉁이만 보이는 궁전 같은 건물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다음 품계다. 지금 연화대에 앉은 중생들이 하품하생의 단계라면 그 건물은 다음 단계인 하품중생일 것이다. 그래서 연꽃 위에 가지런히 앉아 지성으로 기도를 하는 모습이 그림의 전체적인 내용이고, 극락왕생의 과정이 그림이 주는 메시지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극락정토에 차별이 있다는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방편’이다. 〈관무량수경〉이 제시하는 16가지 관법 즉 ‘16관법’이 수행을 해 나아가는 방편이듯 구품연화의 정토왕생도 중생을 깨우치기 위해 제시된 방편인 것이다. 하품하생의 품계보다는 상품상생의 품계로 왕생하려면 더 철저한 수행이 필요할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정토에 왕생하기를 원한다. 그러한 발원은 진심어린 수행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구품왕생도’는 바로 그 수행의 실상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타인이 왕생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왕생을 이루어 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정토신앙은 그 뿌리가 깊다.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연화화생도가 그려져 있다. 평안남도 남포의 고구려고분 ‘성총(星塚)’은 그 천정에 별자리들이 그려져 있어 성총이라 불리는데, 그 무덤의 북쪽 벽에 연꽃 위로 사람이 그려진 도상이 있다. 이른바 연화화생(蓮花化生)이다. 그래서 ‘구품상생도’를 ‘연화화생도’라고 부르기도 한다. 장천 1호분에서도 비슷한 그림이 보이는데, 이에 대한 불교적 해석은 학술적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극락왕생이라는 이 지극한 염원, 그 성취의 열쇠는 무엇인가?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현생을 잘 살면 내생도 복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에 최선을 다하고, 여기를 복전(福田)으로 가꾸는 것이 현생과 내생을 상품상생의 정토로 구현하는 길이다.

천태사찰에 ‘구품상생도’가 벽화로 그려진 까닭도 바로 지금 여기를 상품상생의 연화대로 가꾸라는 가르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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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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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 - 신묘장구 대다라니 (3일차)
문화

불교문화 - 신묘장구 대다라니 (3일차)

**보명법사의 신묘장구대다라니 3×7=21일 기도 3일째. **

(3)옴 살바 바예수 다라나 가라야 다사명 나막까리 다바 이맘알야 바로기제 새바라 다바

다음은 <옴 살바 바예수 다라나 가라야>입니다. 여기서 <옴>은 앞에서도 강조 했듯이 모든 진언과 다라니와 진언의 모체가 되는 것이며, 모든 소리의 어머니입니다. 또한 <옴>은 우주의 핵심이며, 지극한 찬탄의 소리며, 상대를 교화하고 항복 받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살바>는 '일체'라는 뜻이며, <바예수>는 '두려움들에서'란 뜻입니다. <다라나>는 '구제, 구도'의 의미가 있으며 <가라야>는 '행위한다'는 뜻이므로 '구제하는'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옴 살바 바예수 다라나 가라야>는 '일체의 두려움들에서 구제해 주시는' 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다사명 나막까리 다바 이맘알야 바로기제 새바라 다바> 까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다사명>은 '그런 까닭에'가 되고 <나막까리 다바는>는 <나막 까리다바>로 띄어 써야 하는데, <나막>은 '귀의하여 받든다'의 뜻이며, <까리다바>는 '어지신 분'이란 뜻입니다. 또 <이맘>은 '이로 말미암아'가 되고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알야>는 <알약>과 같은 말의 '성스럽다'는 뜻이며 <바로기제 새바라>는 '관자재보살'이라는 뜻입니다. <다바>는 '찬탄하다'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옴>에서 <새바라 다바>까지를 뜻이 통하도록 해석해 보면, '일체의 두려움에서 구제해 주시는 저 어진 관세음보살님께 귀의하고 이 성스러운 관자재보살을 찬탄한다'는 말입니다.

불기 2570년 4월 13일 팔공산 감고사지기 보명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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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무착문희
불교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무착문희

중국 오대산 중턱의 외딴 암자 금강굴에서 한 스님이 손수 밥을 해먹으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 스님은 어려서 출가하여 무착(無着; 821-900)이라는 법명을 받아 계율과 교학을 공부하다가

문수보살의 영지(靈地) 오대산에 참배하고 문수보살을 친견(親見)하고자 기도를 하는 중이었다.

하루는 식량이 떨어져 산 아래 마을에 내려가 양식을 탁발해 올라 오다가

소를 몰고 가는 한 노인을 만나게 되었는데,

노인의 모습이 범상치 않음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뒤를 따르게 되었다.

한참을 뒤쫓아 가다 보니 전혀 보지 못했던 웅장한 절 한 채가 나타났다.

노인이 문 앞에서 “균제야! ” 하고 부르니 한 동자가 뛰어나와 소고삐를 잡아 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에 따라 들어가 노인에게 인사를 드렸더니,

동자가 아주 향기로운 차를 한 잔 내왔다. 노인이 묻기를

  • 자네는 오대산에 무엇하러 왔는가?

  • 저는 문수보살을 친견하여 그 가호를 얻고자 찾아왔습니다.

  • 자네가 가히 문수를 만날 수 있을까? 자네 살던 절에는 대중은 얼마나 되고 어떻게 살아가는가?

  • 300여명 되는 대중이 경전도 읽고 계율도 익히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곳은 어떠한지요?

  • 전삼삼 후삼삼(前三三 後三三)이요, 용과 뱀이 뒤섞여 산다네.(龍蛇混雜 凡聖交參)

무착은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느 새 밖은 어두워져서 무착은 노인에게 하룻밤 쉬어갈 것을 청하였더니

  • 애착이 남아 있는 사람은 이곳에서 자고 갈 수 없네.

하고는 동자에게 배웅하게 하고 안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어둑해진 길가에 나와서 무착은 동자에게 물었다.

  • 아까 노인에게 이곳 대중의 수를 물었더니 전삼삼 후삼삼이라고 하시던데 도대체 무슨 뜻인가?

하고 물으니,

동자가 큰 소리로 무착아! 하고 부르니 엉겁결에

  • 네.

하고 대답하자,

-그 수효가 얼마나 되는고?

하며 동자가 다그쳐 묻는 것이었다.

무착은 또 다시 말문이 막혀 동자를 쳐다 보며

  • 이 절 이름은 무엇입니까?

  • 반야사(般若寺)라고 합니다.

하며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니 웅장하던 절은 금시에 간 곳이 없었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동자도 사라지고 없는데, 허공에서 한 귀절 게송이 들려오는 것이었다.

<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面上無瞋供養具)

부드러운 말 한 마디 미요한 향이로다(口裡無瞋吐妙香)

깨끗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心裡無瞋是眞寶)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일세(無染無垢是眞常) >

이렇게 문수보살을 친견하고서도 알아보지 못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며,

무착은 더욱 수행에 힘써 앙산 선사(仰山; 840~916)의 법(法)을 이어받아

어디에도 거리낄 바 없는 대자유인이 되었다.

어느 해 겨울, 동짓날이 되어 팥죽을 쑤고 있는데

김이 무럭무럭 나는 죽 속에서 거룩하신 문수보살이 장엄하게 나타나서는

  • 무착은 그 동안 무고한가?

하며 옛날 오대산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시키며 먼저 인사말을 건냈다.

그런데 무착스님은 무엇을 생각했는지

팥죽을 젓던 주걱을 들어 문수보살의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갈기는 것이었다.

문수보살은 놀래어

  • 어이, 무착 내가 바로 자네가 그렇게도 만나고 싶어하던 문수일세 문수야!

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받은 무착스님은

  • 문수는 문수요, 무착은 무착이다.

    만일 문수가 아니라 석가나 미륵이 나타날지라도 내 주걱 맛을 보여주리라.

하고 대꾸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문수보살은

  • 쓴 꼬두박은 뿌리까지 쓰고 단 참외는 꼭지까지 달도다.

    내 삼대겁(三大劫)을 수행해 오는 동안 오늘에사 괄시를 받아 보는구나.

하는 말을 마치고 슬며시 사라져 버렸다.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문수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오대산 금강굴에서 3년 간이나 기도를 하고,

또 문수보살을 원불(願佛)로 모시고 다녔던 무착이었건만

깨달음을 성취한 뒤에는 문수보살이 스스로 나타나셨어도

도리어 호령을 하고 주걱으로 얼굴을 갈긴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진리를 체득한 선사들의 기백이요 실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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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신묘장구 대다라니 (15일차)
문화

불교문화 - 신묘장구 대다라니 (15일차)

보명법사의 신묘장구대다라니 3×7=21일 기도 15일째.

15. 다라니와 관세음보살의 공덕.

계청(啓請)은 계(啓)라는 한문 글자의 뜻이 '열다, 꿇어앉다, 아뢰다'이고, 청(請)은 '청하다'는 말이므로 '청하다, 아뢴다'라고 할 수 있으나, '무릎 꿇고 청하오니'라는 뜻이라고 하겠습니다.

관세음보살님께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을 드러낸 말입니다.

<계수관음대비주(稽首觀音大悲呪)>로부터 <무위심내기비심(無爲心內起悲心)>까지는 다라니와 관세음보살님의 공덕을 찬양하는 글입니다.

우리말로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의 주문과 稽首觀音大悲呪 넓고 깊은 원력, 상호 앞에 머리 숙여 절합니다. 願力弘深相好身 천 팔의 장엄으로 보호하여 주시옵고 千臂莊嚴普護持 천 눈의 광명으로 세상 끝까지 살피시며 千眼光明遍觀照 참된 말씀 가운데는 비밀하신 뜻 펴시었고 眞實語中宣密語 꾸밈없는 마음에서 자비심을 일으키시네" 無爲心內起悲心

관세음보살님이 설하신 이 다라니는 중생들의 고통을 구제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비주입니다. 만일 어떤 주문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여 행해지는 것이라면 대비주라고 할수 없습니다. 본래 주문은 사람들이 앙화를 물리치고 행복을 얻기 위하여 옛부터 인도사회에서 성행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는 자기자신의 행복, 자신만의 소원을 위하여 행해지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다라니는 모든 중생들을 고통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가장 자비스러운 주문입니다.

또한 관세음보살님이 천의 팔과 천의 눈을 얻으신 것은 우연이 아니라, 관세음보살께서 과거 무량억겁 전에 다겁의 수행을 하시고 일체 중생들의 고통을 해결하려는 원력에 의해서 성취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깊고 깊은 원력(願力)과 그 결과로 천수천안의 상호(相好)에 대해서 저절로 머리 숙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계수관음대비주 원력홍심상호신 (稽首觀音大非呪 願力弘深相好身)>은 바로 이런 관세음 보살님의 공덕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말입니다. 천 개의 팔은 바로 중생제도의 방편이요, 천 개의 눈은 온 세상을 살피는 자비로운 마음 입니다.
관세음보살님은 이 지혜의 눈으로 중생들의 사정을 낱낱이 살피시고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중생들을 보호하시므로 <천비장엄보호지 천안광명변관조 (千臂莊嚴普護持 千眼光明遍觀照)가 됩니다.

그리고 관세음보살님이 말씀하신 이 천수경은 진실을 드어낸 말일 뿐 아니라, 이 가운데는 우리네들이 지혜로는 다 알 수 없는 깊은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실한 가운데 또한 깊고 비밀스런 말씀이 들어 있으므로 <진실어중선밀어 (眞實語中宣密語)>라는 말로 천수경의 불가사이한 공덕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는 관세음보살님이 오직 반야바라밀을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반야바라밀이므로 모든 중생을 구제하시지만, 한 중생도 구제했다는 생각이 없고, 어디에도 집착함이 없는 마음입니다. 바로 이런 마음이 <무위심내기비심 (無爲心內起悲心)>입니다.

'함이 없는 마음' 가운데 자비가 저절로 샘 솟듯 솟아나는 것입니다. 진리를 깨달은 이는 이처럼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고, 억지로 꾸미지 않고도 모든 중생, 모든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모든 중생을 구제하고도 단 한 사람도 구제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라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금강경>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보살마하살은 응당 이렇게 그 마음을 항복 받아야 되나니, 세상에 있는 온갖 중생을 제도하여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게 하되, 단 한 중생도 제도했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이냐?

수보리야, 만일 보살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보명과 함께 천수경과 신묘장구대다라니를 공부하는 불자 여러분! 지금까지 관세음보살님에 대한 이야기와 관세음보살님의 공덕을 찬양하는 게송에 대해서 알아 보았습니다.

특히 이제 방금 마지막으로 설명해 드린 <무위심내기비심(無爲心內起悲心)>은 우리 불자들이 꼭 본받아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세상은 작은 일을 하고도 자기의 얼굴을 내는데 정신들이 없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좋은 일 하고도 남에게 빈축을 사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린이처럼 순진한 마음, 어린이처럼 꾸밈없는 마음, 여기에 한량없는 자비심이 깃들인다면 우리들 자신이 바로 관세음보살님과 같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 다같이 명심합시다.

[https://youtu.be/iZhKiSB-nGY?si=JodxOkLIfIKkcCeD](보명의 염불독송 천수경 성문스님 독경)

불기 2570년 4월 25일 팔공산 감고사지기 보명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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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7일
불교문화 - 불교 성보의 이해
문화

불교문화 - 불교 성보의 이해

한국불교는 170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우리 민족의 정신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고, 마침내 민족문화의 뿌리와 줄기가 되었다. 방방곡곡에 불교 성지와 불교 문화재가 숨쉬고 있다. 우리나라 국보와 보물, 지방문화재 대부분이 불교 성보(聖寶)이다.

유네스코는 한국불교 문화재로 지난 1995년에 고려대장경을 보존하는 해인사 장경판전과 불국사 석굴암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2000년도에는 경주역사유적지구(이중 남산지구, 황룡사지구는 불교유산지구)를 세계문화유산으로, 2001년에는 직지심체요절이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2007년에는 해인사 대장경판과 제경판이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2009년에는 영산재를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였다. 우리나라 불교 문화재의 우수성을 세계에서도 인정한다는 증거이다.

불교 문화재는 민족 문화유산이면서 한편으로 불교 성보라는 두 가지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일부 국민들은 이를 민족 문화유산으로만 받아들일 뿐 불자들의 변함없는 신앙 대상이라는 본질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들에게 전통사찰은 경관이 빼어난 단순한 관광지에 불과하고, 성보 문화재는 관광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불교 문화재는, 우리조상들이 지극한 불심과 뛰어난 기술로 구현한 신앙의 상징이며 영원한 신앙의 대상이다. 이를 바르게 인식할 때 사찰과 성보 문화재의 존재가치가 제되로 인정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성보와 민족 문화유산의 가치를 이해하고 보존하는 것은 바로우리 민족의 전통과 역사 그리고 사상과 문화를 창달하는 기초가 된다. 어떤 민족이든 고유의 전통문화와 사상을 보존하지 못하면 그 존재성을 확인하기 힘들다. 진정한 세계화. 국제화는 민족 고유의 전통과 문화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 가장 불교적인 것이 가장 국제적이고 세계적인 것임을 우리는 해인사 장경판전과 불국사 석굴암, 고려대장경 및 제경판, 직지심체요절, 영산재는 세계 문화유산 지정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전통문화의 정수를 계승해 온 우리한국불교는 우수한 문화민족으로서 민족문화를 잘 보존하고 발전시켜야 할 역사적 사명이 있다. 한국불교의 이러한 문화적 과제를 새삼 인식하고, 이를 위해 정진해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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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입문 - 부처님의 말씀은 모두 얼마나 되나?
문화

불교입문 - 부처님의 말씀은 모두 얼마나 되나?

우리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온갖 괴로움과 병어 8만 4천가지이기 때문입니다.

※ 이 자료는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 알아두면 좋은 불자상식 작성자 민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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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아, 훔' 금강력사의 힘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아, 훔' 금강력사의 힘

사찰 입구의 천왕문天王門은 부처님의 도량에 삿된 무리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동서남북으로 지키는 수호신장인 사천왕을 모신 곳입니다. 이와함께 금강문金剛門이 세워지는데, 이 곳 역시 불법을 수호하는 금강력사 두 분을 모셔놓은 문입니다.

그런데 금강문을 조성하게 되면, 두 금강력사와 함께 문수와 보현동자를 함께 모셔놓게 됩니다. 이는 지혜와 원력을 상징하는 두 보살이 금강력사와 함께 계시면서, 사찰에 들어 갈 때는 굳은 마음으로 부처님의 지혜를 배우고, 속세로 돌아갈 때는 변함없이 보현행을 실천하기를 마치 금강력사와 같이 굳세게 성취하라는 의미입니다.

보통 오른편에 계신 분은 나라연那羅延금강, 왼편에 계신 분은 밀적密迹금강이라고 불립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반대로 서 있기도 합니다. 나라연금강은 천상의 역사力士로서 그 힘은 코끼리의 백만 배나 된다고 합니다. 손에 쥔 것은 금강저金剛杵라 불리는 도구로 온갖 삿된 것들을 모두 물리치는 무기입니다.

밀적금강은 부처님의 비밀스런 사적(事跡, 부처님께서 오랫동안 행하신 일들)​을 모두 듣겠다는 서원을 세웠으므로 밀적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나라연금강은 자세히 보면 입을 크게 벌려 '아 ~!'라며 마치 함성과 함께 공격을 시작하는 듯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밀적금강은 "훔!'이라는 소리로 기합을 넣어 입을 굳게 다물고 몸에 힘을 준 채 마치 방어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라연금강은 '아금강'이라고 불리고, 밀적금강을 '훔금강'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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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소신공양 (燒身供養) -불속으로 뛰어든 토끼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소신공양 (燒身供養) -불속으로 뛰어든 토끼

<대관음사 벽화- 대구 대명동>

본생경(本生經)에 나오는 내용으로 배고픈 나그네에게 자기 몸을 제공하기 위해 불에 뛰어드는 소신공양하는 토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림이다.

소신공양(燒身供養)의 사전적 의미는 나를 태워-燒身, 받들다-供養 이다.

본생경에 나오는 내용으로 배고픈 나그네에게 자기 몸을 제공하기 위해 불에 뛰어드는 소신공양하는 토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림이다.

이야기에서는 보시의 마음은, 비워내면 다시 채워지는 달의 모습이다’ 라며 달에다가 영원히 살아있는 토끼의 모습을 새겨 넣었다 라며 보시의 의미를 설명 하는데.

우리가 남들에게 보시를 못하는 이유는 가진 게 없어서가 아니라 탐욕을 내려놓지 못하는 마음 때문이라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 .

▮ 소신공양과 인과(因果).

식탁 위 올라온 밥, 소신공양으로 땅의 기운 담고,

식탁 위 올라온 조기, 소신공양으로 바다의 기운 담고,

식탁 위 올라온 과일, 소신공양으로 하늘의 기운 담아,

제 몸 찢는 나눔 되어,

나를 위한 소신공양 되리라.

이처럼

누군가의 희생 없이 하루도 살수 없는 나!

누군가의 섬김 없이 하루도 행복할 수 없는 나!

내가 지금 요만큼이라도 잔머리 굴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도

소신공양과 같은 부모님의 희생과 스승님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그리고 있다.

▮ 가르침.

가르침이란 가장자리의 모난 부분(교만한 부분)을 쳐낸다는 뜻이다,

하나의 큰 돌덩이에서 각각 떨어져 나온 두 개의 돌덩이 중 계단이 된 돌이, 불상(佛像)이 된 돌에게 푸념했다.

‘우린 원래 한 몸이었는데, 나는 수많은 사람이 밟고 다니고, 너 불상 돌에게는 모든 이들이 엎드려 섬기니 너무 불공평 하자나‘,

이 말을 들은 불상 돌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너보다 더 많은 가르침(가를 쳐냄)을 받았지‘

그렇다.

‘잘 다듬어진 불상 돌은, 가를 쳐내는 고통이 그 만큼 더 했기에 결과가 그렇게도 다르게 나오는 것이다.’

남의 성공은 부러워하면서도,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어리석음을 꼬집고 있다.

‘소신공양’은 불속에 뛰어든 토끼를 통해 나는 나의 능력이 전부처럼 알고 살고 있지만 누군가의 희생과 섬김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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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비천주악 (飛天奏樂) - 천사의 연주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비천주악 (飛天奏樂) - 천사의 연주

<묘봉암- 대구 팔공산>

비천주악(飛天奏樂)의 사전적 의미는 날아갈飛, 하늘天, 음악을 연주할(奏樂) 이다.

날개옷을 입은 아름다운 천사가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그림으로.

욕망을 다스릴 수 있는 경지까지 올라 온 구도자들에게 하늘에 사는 천사들이 내려와 그들의 수고를 격려하며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 위로 나부끼는 천사의 옷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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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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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벽화이야기 - 귀자모의 귀의 ​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귀자모의 귀의 ​

하리티란 여인이 있었는데, 그는 사람들에게서 아기를 훔쳐 잡아먹는 잔인한 야차夜叉귀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에게도 500명이나 되는 자식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귀자모鬼子母라 불렀습니다.

그 중에서도 막내를 가장 애지중지 여기며, 제 자식은 끔찍이 아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의 아이를 해치고 다녔고, 마을 사람들은 날마다 불안에 휩싸여 지냈습니다.

왕은 거리마다 경비를 강화했고, 유명한 주술가를 불러 처방을 구했지만 별다른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마을 사람들은 부처님을 찾아와 상황을 말씀드리며 도와 달라고 애원하였습니다.

이튿날 부처님은 탁발을 마친 후 하리티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집에 하리티는 보이지 않고, 아이들만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아이들 중 그녀가 가장 아끼는 막내를 갖고 계시던 발우로 덮어 씌우자 아이는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윽고 하리티가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막내가 없어진 것을 알고는 눈물을 흘리며 이산 저산으로 찾아 헤매고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부처님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발아래 엎드려 말씀드렸습니다.

"부처님, 제 아들이 없어졌습니다. 정말 미칠 것만 같습니다. 제발 자비를 베풀어 아들을 찾게 도와 주십시오."

그러자 부처님은 하리티에게 아이가 몇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하리티는 울부짖으며 자신에게는 많은 아이들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리티야, 많은 아이가 있으면서도 그 중 한 아이라도 보이지 않으니 네 심정이 어떠하냐. 하물며 네가 사람들의 아이를 해치는데, 한 아이가 자신의 전부인 사람들의 심정은 오죽 애가 타고 슬프지 않겠느냐?"

부처님의 말씀에 그녀는 크게 뉘우쳤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발우를 치우고, 아이의 모습을 원래대로 되돌려 그녀에게 돌려주셨습니다. 그녀는 울면서 지난 과거를 뉘우쳐 악업을 끊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할 것을 맹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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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입문 - 불교란 어떤 종교인가?
문화

불교입문 - 불교란 어떤 종교인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실천하는 종교이다. 첫째, 인과응보(因果鷹報)를 믿고 둘째, 인연(因緣)의 소중함을 깨닫고 셋째, 그 인(因)과 연(緣)이 모두 한마음에서 지어진 것을 알고, 넷째, 언제 어디서나 가장 훌륭한 일을 하여 고통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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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말 조련사와 조어장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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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벽화이야기 - 말 조련사와 조어장부

부처님께서 왕사성에 계실 때 일입니다.

어느 날 제자들과 길을 걷다가 야생마를 길들이는 말 조련사를 만났습니다.

그는 마을의 촌장으로, 자신의 말 다루는 실력은 명성이 자자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한 눈에 말의 상태를 알아내고, 그에 따라 적절한 조련술로 어떤 말이든지 길들일 수 있습니다."

"말을 길들이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는가?"

"세 가지 방법을 사용합니다. 첫째는 부드럽게 다루는 것이고,

둘째는 거칠게 다루며, 셋째는 부드러우면서도 거칠게 다루는 것입니다."

"만약 세 가지 방법을 다 사용하여도, 말이 길들여지지 않으면 어떻게 하는가?"

"제 명성을 더럽히는 쓸모없는 말이기에 그냥 죽입니다."

이번에는 말 조련사가 부처님에게 여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대장부를 다스리는 최고의 '조어장부'(調御丈夫:산스크리트어 puruṣa-damya-sārathi 부처님의 10가지 이름중의 하나로 이는 모든 사람을 잘 다루어 깨달음에 들게 한다는 뜻, 곧 부처를 일컬음)라고 하는데, 어떤 방편으로 사람들을 다루십니까?"

"나도 세 가지 방법으로 제자를 가르친다. 첫째는 한결같이 부드럽게, 둘째는 한결같이 거칠게, 셋째는 부드러우면서도 거칠게 다룬다."

"세 가지 방편을 모두 사용해도 바른 길로 인도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나 역시 세존을 욕되게 하지 못하도록 그를 죽이고 만다."

말 조련사는 깜짝 놀라 부처님께 되물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살생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어찌 제자를 죽인다는 말씀이십니까?"

"바른 길로 인도되지 않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그와 같이 말하지 않고, 다시 가르치지도 않으며, 훈계하지도 않는다. 이것은 바로 제자를 죽이는 것과 다름이 없다. 내가 한 중생을 구제하려고 해도, 그 중생이 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 비록 내가 부처일지라도 그 중생을 구제할 수가 없다." ☞ 『잡아함경』 「지시경 只尸經」

세상에 부처님이 계심에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불자라는 의미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 말은 곧 불자에게 있어서는 죽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님을 믿고 신행생활을 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참된 불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수행을 꾸준히 이어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게으르지 않고 노력하며 실천해야만 진실한 불자라 불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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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신묘장구 대다라니 (18일차)
문화

불교문화 - 신묘장구 대다라니 (18일차)

보명법사의 신묘장구대다라니 3×7=21일기도 18일째.
2. 신묘장구대다라니 (神妙章句大陀羅尼)의 뜻③

(9) 제9구.

구로 구로 갈마 Kuru kuru karma 꾸루 꾸루 까르마

<구로>는 '나쁜ㆍ간악한'의 뜻이고 '갈마'는 업(業)이므로 '속히 악업을 그치게 하소서!'하는 말입니다.

** (10) 제10구.**

사다야 사다야 도로 도로 미연제 마하 미연제 다라다라 sādhaya-sādhaya dhuru-dhuru vijayantae mahāvijayantae dhara-dhara 싸다야 싸다야 두루 두루 위자얀떼 마하위자얀떼 다라 다라

<사다야>는 '앞서다', <도로>는 '우두머리', <미연제>는 '이기다', <다라>는 '가진다ㆍ유지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승리자여, 대승리자여, 항상 기억해 주소서!' 하는 뜻입니다.

【다라니 해석】 ☞ Kuru kuru karma sādhaya-sādhaya 꾸루 꾸루 까르마 싸다야 싸다야 (중생구제의 위업을) 행하소서, 행하소서! (그 위업을) 이루소서, 이루소서!

⊙ 꾸루(kuru) : 행하소서.(kr 끄리. 행하다의 명령형) ⊙ 까르마(karma) : 업(業). ⊙ 싸다야(sādhaya) : 이루소서. sādh - 이루다, 성취하다의 명령형.

☞ Dhuru-dhuru vijayantae mahāvijayantae 두루 두루 위자얀떼 마하위자얀떼 수호하소서, 수호하소서! 승리자시여, 위대한 승리자시여!

⊙ 두루(dhuru) : 지키다, 수호하다. ⊙위자얀떼(vijayantae) : 승리하다. 승리자(vijayanta). ⊙마하위자얀떼(mahāvijayantae) : 대승자. 위대한 승리자. 크게 승리하다.

※ 산스크리트 학자들은 신들의 신 인드라(Indra)를 시바 신의 현신으로 보고 있다. 리그베다(Rig Veda)에도 인드라 신이 자신을 시바 신으로 칭하고 있는 부분이 여러 곳에 있다.

신묘장구대다라니에 묘사되어 있는 비쉬누 신의 모습과 그 의미.

브라만교(Brahmanism)의 3신인 창조의 신 브라흐마(Brahma; 절대아(絶對我)인 Brahman (梵我)을 의인화한 신), 보존의 신 비쉬누(Vishnu), 파괴의 신 쉬바(Shiva)는 브라만 삼위일체 또는 힌두 삼위일체(Trimurti ; the Trinity)를 이룬다. 비쉬누 신은 우주의 유지자로로서 항상 진리를 수호하고 언제나 자애로운 구세주이다. 세상이 평온할 때, 비쉬누 신은 그의 배우자 신 락쉬미(Lakshmi)와 함께 뱀의 왕 쉐쉬나가 (Sheshnaga)를 타고 우주의 바다 위를 떠돌며 누운 채 휴식을 취한다.

그의 배꼽에서는 연꽃이 피어오르고 거기에서 브라흐마가 태어나는데 이것은 비쉬누가 다음에 올 창조의 기간까지 휴식을 취하고 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세상이 혼란하고 위기에 처하게 되면 비쉬누 신은 그때마다 다른 화신으로 나타나 악을 몰아내고 질서를 바로 잡고 세상을 구원한다.

푸라나(Purana)에 따르면, 비쉬누 신은 열 가지 (또는 23가지)의 화신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이들 중 아홉 가지의 화신은 이미 과거에 이루어졌으며 마지막 열 번째 화신만 남아있다고 한다. 특히 비쉬누 신의 두 번째 화신 쿠르마(Kurma; 거북의 형상), 세 번째 화신 바라하(Varaha; 멧돼지의 형상), 네 번째 화신 나라싱하(Nara-singha; 반은 인간, 반은 사자의 형상)에 대한 예찬(禮讚)이 바로 이 다라니에 언급되어 있다. 비쉬누 신의 아홉 번째 화신은 붓다(Buddha ; 석가모니 부처님)이며, 열 번째 화신은 칼키(Kalki; 칼을 들고 백마를 탄 모습)로서 미래에 출현할 화신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힌두교 비쉬누 신의 아홉 번째 화신으로 수용하고 있는 기록은 많은데 그 최초 기록의 출처는 바가바타 푸라나(Bhagavata Purana)이다.

비쉬누 신은 보통 노란 색의 옷을 입고 4개의 손에는 각기 상징물로 연꽃, 원반, 소라나팔 그리고 곤봉을 들고 있는 것으로 형상화 된다.

비쉬누 신이 타고 다니는 새 가루다(Garuda; '생명의 새'라는 뜻) 역시 불교에 수용되어 불교를 수호하는 팔부신중(八部神衆), 즉 천룡팔부(天龍八部)에 속하게 되었다. ※ 출처 : 민희식 이진우 엮음의《천수경》에서 옮김.

(11) 제11구.

다린나례 새바라 자라자라 dharanidhareśvara cala-cala 다라니다레슈와라 짤라 짤라

<다린나례>는 '받아지니는 자ㆍ기억하는 자' 곧 수지자(受持者), <새바라>는 '마음대로 하는 자' 즉 자재자(自在者), <자라>는 동요(動搖)ㆍ발기(發起)의 뜻입니다.

【다라니 해석】 ☞ Dhara-dhara dharanidhareśvara 다라 다라 다라니다레슈와라 지지(支持)하소서. 지지하소서. 대지를 받치고 있는 신이시여!

⊙ 다라(Dhara) : 지키다. 지지(支持)하다. 지탱하다. ⊙ 다라니다레슈와라 (dharanidhareśvara) : 대지를 지탱하는 신. 비쉬누 신. (dharani 대지(大地) + dhare 지탱하는 + iśvara 주(主), 왕, 절대자.)

※ 다라니다레슈와라 (dharanidhareśvara) 다라니(dharani)를 '다라니경'이란 뜻으로 보고 '다라니를 수호하는 자'로 해석한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다라니(dharani)에는 '대지(大地)'라는 뜻도 있으며 여기서는 '대지를 지탱하는 신, 즉 비쉬누 신으로 해석하는 것이 신화와도 일치한다.

푸라나(Purana)에 의하면, 큰 홍수로 인류가 파멸 위기에 처하자 비쉬누 신은 그의 두번째 화신인 쿠르마(Kurma)로 현신하여 바다 밑으로 잠수하여 그의 등에 만다라(Mandara) 산을 짊어지고 대지를 지탱하였다.

또한 그의 세 번째 화신인 바라하(Varaha, 멧돼지)도 바다 밑으로 침몰한 대지를 그의 이빨로 끌어올려 지탱하여 인류를 구원하였다고 한다. ※ 출처 : 민희식ㆍ이진우 엮음의 《천수경》에서 옮김.

(12) 제12구.

마라 미마라 아마라 몰제 예혜혜 malla vimalā amala-mūrte ehyehe 말라 위말라 아말라 무르떼 에흐예헤

<마라>는 '때ㆍ더러움', <미마라>는 '더러움을 없앤다ㆍ더러움을 벗어난다ㆍ해탈자 (解脫者), <아마라>는 '더러움을 없앤ㆍ깨끗한', <몰제 예혜혜>는 '속히ㆍ빨리'라는 뜻 입니다. 전체적인 뜻을 해석하면 '더러움으로부터 벗어남이여, 깨끗함이여, 속히 이루어지소서!'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라니 해석】 ☞ Cala-cala malla vimalā amala-mūrte 짤라 짤라 말라 위말라 아말라 무르떼 움직이소서. 움직이소서. 번뇌를 여읜 청정한 님이시여! 청정한 해탈로 이끄소서!

⊙ 짤라(cala) : 움직이소서. (짤(cal) : 움지이다의 명령형.) ⊙ 위말라(vimalā) : 깨끗한, 순수한 (것) (vi 없음(접두어) + malā 번뇌, 때, 더러움) ⊙ 아말라 무-르떼(amala-mūrte) : 번뇌를 여읜 청정한 몸(amala 청정한 + mūrte 몸, 실체) 생사윤회로부터의 완전한 해탈.

(13) 제13구.

로게새바라 라아 미사미 나사야 Lokeśvara rāga-viṣaṁ vināśaya 로께슈와라 라가 위샹 위나샤야

<로게>는 '세상', <새바라>는 '마음대로 하는 자', <라아>는 '욕망ㆍ탐욕ㆍ애욕', <미사미>는 '포악ㆍ험악ㆍ독' 등의 뜻이 있고, <사야>는 '휴식ㆍ잠ㆍ머무르다'의 뜻입니다. 따라서 <미사미 나사야>는 '독을 쉬게 해달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전체적인 뜻은 '세상을 마음대로 관찰하시는 분이시여, 탐욕의 독을 그치게 하옵소서!'입니다. '세상을 마음대로 관찰하시는 분'이란 물론 관세음보살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라니 해석】 ☞ Ehyehe Lokeśvara 에흐예헤 로께슈와라 바라옵나니 어서 오소서! 세상을 다스리는 분이시여! ⊙ 에흐예헤(ehyehe) : 오다. 강림하다. (ehi 오소서(기원어구) + ihe 소망하다. 바라다(ih의 1인칭)) ⊙로께슈와라(lokeśvara) : 세상을 다스리는 분. 세상의 자재자. 세자재(世自在). ((loke 세간, 세상. + iśvara (主), 왕, 통치자)

☞ Rāga-viṣaṁ vināśaya 라가 위샹 위나샤야 탐욕의 독을 소멸케 하옵소서!

⊙ 라가 위샹(Rāga-viṣaṁ) : 애착, 탐심(貪心), 탐욕이라는 독심. (rāga 애착, 욕망, 탐욕 + viṣaṁ 독(毒)) ⊙위나샤아(vināśaya) : 소멸케 하다. 사라지게하다.

※ 삼독(三毒) : 깨달음에 장애가 되는 세 가지의 근본적인 번뇌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탐(貪; 탐욕)ㆍ진(瞋; 성냄)ㆍ치(癡; 어리석음)를 말함.

(14) 제14구.

나베사 미사미 나사야 dveṣa-viṣaṁ vināśaya 드웨사 위샹 위나샤야

<미사미 나사야>는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독을 그치게 하다'의 뜻이고, <나베사>는 '마음을 해치다ㆍ마음 속으로 미워하다'는 뜻이므로 이 구절은 '성내는 마음의 독을 그치게 하소서!' 라는 뜻입니다.

{다라니 해석】 ☞ dveṣa-viṣaṁ vināśaya 드웨사 위샹 위나샤야 노여움의 독을 소멸케 하옵소서!

⊙ 드웨사 위샹(dveṣa-viṣaṁ) : 진심(瞋心), 화내는 독심. (dveṣa 화, 성냄, 진심(瞋心) + viṣaṁ 독(毒)) ⊙위나샤아(vināśaya) : 잠재우다. 소멸케 하다. 사라지게하다.

(15) 제15구.

모하자라 미사미 나사야 moha-cala-viṣaṁ vināśaya 모하짤라 위샹 위나샤야

<모하>는 '어리석음ㆍ밝지 못함', <자라>는 '불안정ㆍ동요ㆍ움직임'의 뜻이 있으므로 이 구절은 '동요하는 어리석음의 독을 소멸하여 주소서!' 라는 뜻입니다.

앞 구절에서는 삼독심 가운데 성내는 마음을 소멸하여 주소서! 하는 것이었고, 이 구절은 삼독심 가운데 어리석음을 제거하여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다라니 해석】 ☞ moha-cala-viṣaṁ vināśaya 모하짤라 위샹 위나샤야 어리석음의 독을 소멸케 하옵소서!

⊙ 모하짤라 위샹(moha-cala-viṣaṁ) : 치심(癡心), 태산같이 견고한 어리석음. (moha 어리석음, 치암, 무명. + acala 산, 암벽; 견고한 + viṣaṁ 독) ⊙위나샤아(vināśaya) : 잠재우다. 소멸케 하다. 사라지게하다.

불기 2570년 4월 28일 팔공산 감고사지기 보명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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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30일
사찰 벽화이야기 - 부모은중경 8편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부모은중경 8편

멀리 가는 자식을 생각하고 염려하시는 은혜 (원행억년은)

< 죽어서 헤어짐도 슬프고 괴롭지만, 살아서 헤어짐은 더욱더 서러워라. 자식이 집을 나서 먼 길을 떠나가면, 어머니의 마음 또한 타향에 나가있네. 밤낮으로 그 마음은 자식을 쫓아가고, 흐르는 눈물줄기 천 줄기 만 줄기네. 원숭이 달을 보며 새끼 생각 울부짖듯, 자식걱정 하는 마음 애간장 다 끊기네. >

자식이 품에서 떠나 독립하는 순간, 부모님의 마음은 맑은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것처럼 멍한 심정이 되고 맙니다. 곧 마음을 추스르더라도 항상 생각은 자식 옆에 머물게 됩니다. 부모의 자식 걱정하는 마음은 마치 어미 원숭이가 새끼 원숭이에 대한 애정으로 비유되곤 합니다. 아마 새끼를 안거나 업어서 키우는 유일한 동물이 사람과 원숭이 이기 때문입니다.

옛날 숲 속의 모든 짐승에게 자식이 가장 잘 생겼다고 생각하는 짐승을 선발하는 대회가 있었습니다. 한 원숭이가 새끼를 데리고 나오자, 다른 동물들이 모두 깔깔거리며 웃는 것이었습니다. 그 원숭이는 납작원숭이였는데, 누가 보더라도 새끼원숭이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주변을 향해 어미원숭이는 소리쳤습니다.

"아무도 내 자식에게 상을 주지 않아도, 최소한 내 눈에는 내 자식이 가장 사랑스럽고 잘 생겼으며 가장 아름답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원숭이가 자식을 애지중지 기른다는 것은 옛부터 잘 알려져 있습니다.

원숭이는 온순한 동물은 아닙니다. 하물며 개코원숭이라는 녀석은 난폭하기로도 유명합니다. 떼를 지어 집단으로 몰려다나며 사람들을 공격하거나 심지어 목숨을 앗아간 사건도 종종 보도되었습니다. 그런 개코원숭이도 새끼원숭이가 죽으면 일주일 이상 제 품에 안고 다닙니다. 달을 보며 새끼 생각에 울부짖는 모습, 자식에 대한 모성애가 사람 못지 않다는 것입니다.

설령 받기만 하는 사랑이라도 부모님의 큰 은혜을 알고서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알아가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멀리서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깊이 헤아려 감사한 마음으로 보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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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해산에 임하여 고통 받으신 은혜 (임산수고은)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해산에 임하여 고통 받으신 은혜 (임산수고은)

해산에 임하여 고통 받으신 은혜 (임산수고은)

< 아기를 잉태한지 열 달이 다가오니, 순산이 언제일까 손꼽아 기다리네. 날마다 기운 없어 중병 든 사람 같고, 나날이 정신조차 희미해 가는구나. 두렵고 떨려오는 마음을 어찌하나, 근심은 눈물되어 가슴에 가득하네. 슬픔을 머금은 채 주위사람 말하기를, 이러다 죽을까봐 두렵기만 하더이다. >

아기를 낳으실 때 아픔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닐 것입니다. 마치 세상을 구제할 성인이 출현하시면 온갖 박해을 이겨내고 큰 깨달음을 이루시는 것처럼, 그 고통은 누구라도 대신 해 줄 수 없는, 오직 이 세상의 어머니만이 겪을 수 있는 가장 성스러운 고통의 순간입니다.

더구나 의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아이를 낳다가 잘못되는 산모가 많은 형편에, 의술이 부족했던 과거에는 잘못될 확률이 더욱 높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를 낳는 것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오락가락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출산에 대한 두려운 마음은 산모에게는 곧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두려운 산모는 가족과 친지에게 눈물로써 기대어보고, 떨리는 마음을 주변 사람들에게도 털어 놓지만 누구라도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괴로워하는 산모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그저 다독여줄 뿐입니다. 오로지 자식이 건강히 태어나야 해결될 문제이며, 무사히 산통을 이겨내야 없어질 두려움입니다.

눈물을 훔치시며 애써 의연하려 하시지만, 숨죽여 우시는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사무쳐 들려옵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아난과 제자들이 가슴을 저미는 심정으로 슬피 울고 계신 그 모습이 어쩐지 우리 눈앞에 선명히 드러나는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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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법통을 이는 혜능대사
불교문화

불교문화 - 법통을 이는 혜능대사

달마, 혜가에 이어 어느덧 중국 선종은 5대 조사인 홍인弘忍대사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가난한 농부의 집안에 태어나 나무를 팔며 홀어머니를 모시던 효심깊은 혜능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탁발 나온 스님의 독경소리에 느끼는 바가 있어 훗날 출가를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노모를 잘 모신 뒤, 때가 되자 홍인대사를 찾아갔습니다.

"어디서 왔으며, 무엇을 구하려는가?"

"저는 영남 사람이온데, 오직 깨달음을 얻으러 왔습니다."

"영남 사람은 오랑캐인데, 어떻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인가."

"사람은 남쪽 북쪽이 있지만, 불성이 어찌 남북이 있을 수 있습니까?"

홍인대사는 혜능이 비범한 줄 알았지만, 다른 스님들의 눈치를 염려하여, 큰 소리로 꾸짖듯이 방앗간에 가서 일이나 하라고 몰아냈습니다. 당시 중국은 중원을 중심으로 남쪽 해안가의 광동성 사람들을 변방의 오랑캐로 부르며 멸시하는 경향이 컸습니다.

8개월이 지난 어느 날 홍인대사는 방앗간을 둘러보았습니다. 그곳에서 힘이 부족하여 큰 돌덩이를 등에 지고 열심히 방아를 찧는 혜능을 보게 되었습니다. 홍인대사는 혜능에게 다가가 지난 일을 물어보았습니다.

"혹 누군가 너를 해칠까 염려하여 더 말하지 않은 것인데, 네가 그 뜻을 알고 있었느냐?"

"예, 저도 스님의 뜻을 짐작하였습니다."

홍인대사는 다시 한 번 혜능의 그릇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중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나도 이제 세상의 인연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내 뒤를 이어 법을 전할 자를 정하겠다. 각자 본심의 지혜로운 마음을 게송으로 표현하여 가져오라. 만일 진리를 깨달았다면 그에게 초조初祖 달마대사 이래 전해오는 가사와 발우 전하여 6대 조사로 삼겠노라."

이미 홍인대사에게는 신수神秀라는 샛별과도 같은 제자가 있었습니다. 모두들 신수스님이 육조가 될 거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신수스님은 홍인대사의 이 말을 듣고 게송을 지어 여러 스님들이 다니는 복도 벽에다 붙여놓았습니다.

"육체는 지혜의 나무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으니, 항상 부지런히 털고 닦아 티끌 먼지 묻지 않게 하라."

홍인대사는 이 글을 보고 아직 진리를 깨닫지 못한 게송임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럼에도 대중에게는 이 게송을 따라 수행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러자 여러 스님들은 이 게송을 외우며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혜능스님은 여전히 방아만 찧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여러 스님들이 외우고 다니는 소리에 신수스님의 게송을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게송의 내용을 들어보니, 아직 깨달음을 증득하지 못했음을 한 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그날 밤, 다른 스님에게 부탁하여 자기가 말하는 게송을 신수스님의 게송 옆에 써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사실 배움이 부족한 혜능스님은 아직 글을 몰랐던 것입니다.

"지혜는 본래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 또한 대가 없노라. 본래 한 물건도 없거니 어느 곳에 티끌이 일어나리."

혜능이 남긴 이 게송을 본 스님들은 놀라며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했던 자신들을 뉘우쳤습니다.

홍인대사는 혜능이 남긴 게송을 보시고 이제 제자가 깨달음을 얻었음을 아시고, 다음 날 방앗간으로 찾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쌀을 얼마나 찧었느냐?"

"쌀은 찧은 지 오래되었사오나, 키질로 아직 골라내지는 못했습니다."

  • 키질 : 타작된 곡식의 낟알을 겨와 분리시키기 위해 까부는 행위. 타작 마당에서 타작 기계를 이용하여 떤 곡식을 키를 이용해 삽질하듯 바람에 날리면 알곡은 땅에 떨어지고 겨는 바람에 날려 분리된다

이에 홍인대사는 혜능대사에게 법을 물려주어, 출가한 지 8달 만에 초조 달마대사의 법통을 이어 육조 혜능대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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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마음의 눈으로 본 세상, 아나율존자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마음의 눈으로 본 세상, 아나율존자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후 고향으로 돌아와 석가족의 여러 친족을 위해 법문을 들려주셨습니다.

설법을 마치자 많은 석가족이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십대 제자 중에서도 아난, 라훌라, 아나율 등이 석가족 출신입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설법을 하시는데 아나율이 졸고 있는 모습을 보셨습니다. 그런데 평소와는 다르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아나율을 호되게 꾸짖는 것입니다.

"너는 수행하는 사문으로 그렇게 잠이 많느냐. 아까도 설법을 들으면서 졸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런 나쁜 버릇을 당장 고쳐야한다. 마치 한 번 잠이 들면 천 년을 깨지 않는 조개와 같구나. 어찌 수행하는 사문이라 할 수 있겠느냐?"

대중들 앞에서 부처님께 야단을 맞으니,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아나율은 즉시 부처님 앞에 꿇어앉아 합장하고서 맹세했습니다.

"지금부터 몸이 문드러지더라도 결코 여래 앞에서 졸지 않겠나이다."

사실 부처님은 잠이 많고, 졸음이 많은 아나율의 나쁜 습관을 고쳐주기 위해 방편으로 심한 말씀을 한 것입니다. 결국 그날 이후 아나율은 부처님께 약속한 것처럼 아예 잠을 자지 않은 채, 뜬 눈으로 정진을 했습니다. 그렇게 석 달을 피눈물 나도록 수행하다가 결국 아나율은 앞이 안 보일 지경이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아나율을 불러 수행이란 지나치게 도를 넘지 않아야 한다고 타이르셨지만, 아나율은 여래 앞에서 한 맹세를 결코 어길 수 없다며 계속 잠을 자지 않고 정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나율은 눈앞이 밝아지고 정신이 맑아지더니, 이제껏 눈으로 볼 수 없던 세상 곳곳이 환하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하늘과 땅, 지옥계에서 천상계에 이르는 온 우주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천안天眼이 열린 것입니다.

한 번은 시력을 잃게 된 아나율을 위해 부처님께서 바느질을 해주신 적도 있었습니다. 비록 아나율이 천안을 얻었지만,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은 일생생활에서 여러 가지로 애로사항이 많았습니다.

하루는 헤진 옷을 깁고자 바느질을 하려 했는데, 앞이 보이지 않다보니 도저히 바늘에 실을 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아나율은 혼잣말처럼 소리쳤습니다.

"누구든 이 세상에 복을 지으려는 자가 있다면, 나를 위해 이 실을 꿰어주어 공덕을 지으시오."

바로 그 순간 대답이 들려 왔습니다.

"그 실과 바늘을 내게 다오. 나에게 공덕을 짓게 해다오."

바로 부처님의 목소리였습니다. 너무 놀라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있는데, 부처님은 아나율의 손에 쥔 바늘과 실을 받아 손수 옷을 기우며 아나율과 대중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괜찮다. 이 세상에서 행복을 찾기 위해 나보다도 더 열심히 공덕을 지으려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미 세상의 모든 깨달음을 얻어 지혜와 자비를 베푸시는 부처님께서 또 무슨 공덕을 지어 복을 구하신다는 것인지, 부처님 말씀에 아나율과 다른 제자들은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누구라도 꾸준히 공덕을 지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몸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제자들은 저절로 환희심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나율에게 지은 공덕은 한 순간 모든 대중들의 마음에 감격어린 행복으로 다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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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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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미술여행 - 야차-불교의 도깨비
문화

사찰미술여행 - 야차-불교의 도깨비

풍요 가져다주는 심술궂지만 순박한 신

▲ 비사문천왕과 권속, 당, 견본채색, 37.6×26.6㎝, 대영박물관.

우리나라에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깨비는 귀신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그렇다고 서양 동화에 나오는 요정은 더더욱 아닌 뭐라 꼭 집어 설명하기 곤란한 전설에 나오는 잡신 가운데 하나였다. 터무니없고 까닭 없는 일을 도깨비장난이라 하는 걸 보면 도깨비는 장난을 좋아하는 허무맹랑한 캐릭터에, 불로 혹은 빗자루로 변하는 걸 보면 둔갑술도 꽤 하셨나 보다. 세상이 변하면서 우리네 삶 속에서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던 도깨비가 요즈음 핫한 드라마를 통해 다시 우리에게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이 드라마를 보다 보면 죽음으로 인도하는 무서운 저승사자도 친근감마저 느끼게 되니 참 사람의 마음이란 오묘하고 현대사회에서 매스미디어의 힘은 대단하다.

설화서 야차로 비유되는 도깨비 숲에 살며 초자연적인 힘 갖춰 불교에 흡수돼 불법수문장 변모 모든 세계 두루해 인간 변신도

우리나라 도깨비는 부와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이다. 무섭고 심술궂지만 순박하고 인간에게 속을 만큼 착하다. 중국에서는 어떤 짐승이나 사물이 오래되면 정령으로 변하고 그 정령이 도깨비로 된다고 하며 일본 도깨비 ‘오니’는 뿔이 달리고 가시가 박힌 쇠몽둥이를 휘두르는 형상을 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뿔 달린 도깨비로 생각하는 이미지는 실은 일본의 오니에 가깝다. 우리나라 설화에서도 청년이 밤새 씨름한 도깨비는 날이 밝자 피 묻은 빗자루로 변했다 하니 중국과 도깨비의 개념이 유사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박기용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고려대장경’에 전하는 도깨비 관련 설화는 총 195화에 달하고 있다. ‘불설미증유인연경(佛說未曾有因緣經)’에서 도깨비는 ‘지옥의 죄를 마치고 아귀로 태어나 이매(魅), 망량(魑魅) 따위의 도깨비로 돌아다니기 8000겁을 지나서 아귀의 죄를 마치고는 6축(畜)의 몸을 받았습니다’라 하여 생물이 오래된 정령이거나 아귀의 일종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리고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에서 하늘과 땅의 정령들과 수명이 다하여 죽은 신선이 다시 살아나서 도깨비가 되었다고 한다.

불교설화에 등장하는 도깨비는 주로 야차(藥叉, yaksa)로 비유되는데 원래 야차는 숲이나 나무에 사는 정령으로 그 모습은 보이지 않고 초자연적인 힘을 갖추고 있다. 야차는 자비심 많은 성격을 가짐과 동시에 공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무서운 신이 되기도 한다. 불교로 흡수된 야차는 악신에서 부처의 교화를 받고 불법을 수호하고 지키는 수문장으로 변화한다. ‘대방등대집경(大方等大集經)’에 의하면 12신장이 주야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교대로 감시한다. 12신장은 12야차대장이라고도 부르는데 ‘약사경’에 의하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약사여래의 본원공덕에 대하여 법문을 설하실 때 그 소식을 들은 12야차대장들이 그 설법회에 참석하여 큰 감화를 받고 ‘약사유리광여래의 명호로 공경, 공양하는 모든 사람을 옹위하여 일체의 고난에 벗어나게 하고 바라는 소원을 이루게 하겠다’는 서원을 세웠다. 이에 의거하여 야차12신장은 불법을 옹호하는 호법신이 되었다.

불교에서 야차의 왕은 북방 다문천왕을 달리 부르는 비사문천왕이다. 원래 비사문천왕은 인도 신화에 나오는 재물과 보화의 신인 쿠베라(kubera)가 변용된 것인데 이와 같은 연유에서 도깨비가 부자를 만들어 준다는 신앙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돈황 17굴에서 발견된 비단그림에는 왼손에 부처님이 모셔진 불탑을 들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사문천왕과 그를 따르는 권속을 그린 불화가 있다. 권속 무리 끝에 그려진 도깨비 야차는 검은 피부에 근육질 몸매로 눈이 불거지고 코끝은 뭉툭한 돼지 코 형상이며 코에 바짝 붙어 양쪽으로 갈라진 입술에는 뾰족한 윗니가 그려져 인상이 험상궂다. 붉게 그린 머리카락은 모두 솟구쳐 있으며 목에는 해골처럼 보이는 장식이 달린 목걸이를 하고 있어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분노의 형상이다.

▲ 연화배경 도깨비와 산수배경 도깨비 문양전, 백제, 각각 29×29㎝, 두께 4㎝, 국립부여박물관. 보물 제343호.

우리나라 불교에서 도깨비는 사찰을 지키는 수호신이며 재앙이나 귀신, 질병 등 사람을 해치는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고마운 존재이다. 전라도 강진 사문(寺門)안 석조상에는 중국 불화에 그려진 도깨비와 유사한 형상을 한 인물상이 새겨져 있는데 머리에 뿔이 있고 눈을 부라리며 방망이를 든 도깨비 모습이다. 13인의 인물형상이 새겨진 이 돌기둥은 원래 월남사지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었던 것으로 돌기둥에 새긴 인물들은 악귀를 물리치고 사찰을 수호하는 호법선신의 역할을 한다.

부여 규암면 외리 절터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는 도깨비를 나타낸 무늬벽돌이 두 점 있다. 뾰족하고 긴 손톱과 발톱을 갖고 부라린 두 눈은 튀어 나올 듯 부리부리하다. 그리고 돼지 코처럼 생긴 두툼한 코 바로 밑에서 갈라진 입 속에는 송곳니가 날카롭다. 과장되게 나타낸 당당한 상체와 눈코입만 표현된 얼굴 주위로는 타오르는 화염문이 선명하여 사납고 무서운 귀면임을 나타내고 있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금방이라도 장난을 칠 듯 익살스럽고 귀여운 모습이다. 두 개의 도깨비 전돌을 나란히 놓아 붙이면 하부의 모서리 문양이 서로 이어지고 있어 아마도 이 두 개의 도깨비 전돌은 번갈아 이어서 깔렸을 가능성이 있다. 사찰의 입구 통로나 복도에 도깨비 문양 벽돌이 쭉 이어서 깔려 있었으면 아마 재앙과 악귀는 사찰 주변에 범접하지 못했을 것이다.

‘불설라마가경(佛說羅摩伽經)’에서 도깨비 신은 모든 세계 두루하고 법계의 평등한 모든 중생을 위하여 보기 좋아하는 몸으로 나타났다고 하니 불교의 도깨비는 인간의 몸으로 변신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신격이다. 그러면 한동안 브라운관을 통해 보여주셨던 멋진 도깨비님의 보기 좋은 모습은 이래저래 어지러운 상황으로 인해 슬픈 우리네 중생들을 위로하는 하나의 방편이셨나 보다. 음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이 시기 불교 도깨비 야차의 초자연적인 힘을 빌어 모든 불자님의 가정에 재앙과 악귀가 범접하지 못하고 도깨비 방망이에서 쏟아지는 금은보화의 기운으로 부자 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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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입문 - 불경이란?
문화

불교입문 - 불경이란?

부처님의 말씀이 글로 기록된 경전을 불경이라 합니다.

※ 이 자료는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 알아두면 좋은 불자상식 작성자 민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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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입문 - 부처님께 절은 몇번하나?
문화

불교입문 - 부처님께 절은 몇번하나?

절은 3배, 7배, 108배를 하는 등 평상시에 참배하는 절은 보통 3배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기도를 올릴때는 절을 많이 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 소원을 이루기 위해 1000배, 3000배, 5000배, 만배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 이 자료는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 알아두면 좋은 불자상식 작성자 민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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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세조-문수동자
불교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세조-문수동자

이조 7대 임금인 세조는 그의 조카인 나이 어린 단종을 패하고 왕이 되었기 때문에

그 죄악의 응보였는지,

아니면 단종의 모후가 세조의 꿈에 나타나서 힐책하며

「내 아들의 나이가 어려 당신이 섭정을 하고 있었으니 왕이나 조금도 다름이 없었을 터인데,

무엇이 부족하여 왕위를 빼앗고 영월로 귀양까지 보내어 그렇게도 무참하게 죽여버렸단 말이요.

왕이 그렇게도 탐이 나던가요? 이 더러운 양반아」하고 침을 뱉었는데,

이런 까닭인지 세조는 이때부터 온 몸에 등창이 생겨서 그 고통을 형언할 수가 없었다.

용하다는 의원도 신비한 영약도 아무런 효험이 없자, 세조는 병을 낫게 하기 위하여

진심으로 참회하고, 강원도 오대산이 문수보살의 상주도량으로 영험하다는 소리를 듣고,

상원사에 가서 문수보살님께 지극 정성으로 백일기도를 드리게 되었다.

백 일째 되는 날 몸이 가렵고 견딜 수가 없어서, 기도를 마치고 개울로 나아가 목욕을 하였다.

혼자서 몸을 씻으면서 누가 등 좀 밀어 줬으면 하고 생각하는데,

마침 개울 옆 작은 샛길로 한 동자가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세조 임금은 동자를 손짓해 불러 자기의 등을 좀 밀어 줄 것을 부탁하였다.

동자가 그러마고 부드러운 손으로 등을 밀어 주는데,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목욕을 마친 후, 세조 임금이 동자를 향하여 칭찬을 하고 다시 이르기를

“ 행여나 사람을 만나더라도 상감의 흉한 종기를 씻어드렸다는 얘기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더니

동자가 미소를 지으며

“잘 알겠습니다. 상감께서도 후일에 누구를 보시던지

오대산에 가서 문수동자를 친견했다는 말씀을 하지 마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하는 말과 함께 홀연히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세조는 어린 것이 자기의 종기를 씻어주고 소문을 퍼뜨릴까 염려하여 부탁한 것인데,

문수보살이 자기 병을 고쳐주고 성인(聖人)을 만났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부탁을 받았으니

도리어 부끄럽고 송구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뒤로 세조의 종기는 씻은 듯이 나아, 환희와 감사한 생각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나라에서 제일가는 화공(畵工)을 불러서

자기가 본대로 문수동자의 모습을 그리게 하고 또 조각하여 모시었으니,

지금의 상원사 선원에 모셔진 문수동자상이 그것이다.

이 밖에도 세조가 상원사에 있을 때의 이야기 중에 한 가지는

세조 임금이 상원사에서 여러 대중 스님네와 같이 대중공양을 하는 데에 참례하여,

임금도 승려들이 사용하는 발우(鉢盂)라는 식기 4개를 펴놓고 음식을 받아서 공양하였다.

이 때 공양을 받기 전에 미리 천수물을 받아 놓았다가,

식사를 끝낸 뒤에 반드시 이 물로써 발우를 씻는 것이다.

그런데 하루는 사미승 아이가 천수물을 돌리면서

“처사님 어서 물 받으십시오” 하고 말하자,

큰방의 대중스님네와 신하들이 크게 두려워하며 곧 벌을 받을 줄로 알았는데,

세조는 사미승이 자기를 처사라고 불러 준 것을 큰 영광으로 여기며 사미승을 칭찬하고,

“네가 아니었으면 내가 누구에게 처사란 말을 들어보겠느냐”

하며 오히려 큰 상을 내렸다고 한다.

또 한번은 세조가 법당에 올라가서 부처님께 예배를 드리려 하는데

문득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서 세조의 곤용포자락을 잡아 끌면서 절을 하지 못하게 했다.

세조가 이상하게 여기고 사람을 시켜 법당을 살펴보게 하니,

탁자밑에 자객이 세조가 엎드려 절할 때 죽이려고 칼을 품고 노리고 있었다.

곧 자객을 붙잡아 내고 양묘전(養猫田)을 상원사에 하사하여 고양이를 기르게 하였다.

세조는 불교의 탄압으로만 일관한 조선불교에 많은 공적을 이루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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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전통사찰의 구조 - 조사당(祖師堂)
문화

전통사찰의 구조 - 조사당(祖師堂)

조사당은 한 종파를 세운 스님이나 후세에 존경받는 큰스님, 그리고 창건자나 역대 주지스님의 영정 또는 위패를 모신 당우이다. 국사가 배출된 절에는 조사전 대신 국사전이다. 전남 순천의 송광사 국사전이 대표적이다. 조사당은 부석사 조사당, 신륵사 조사당 등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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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다섯 방울의 꿀에 취하여. 인수정등도.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다섯 방울의 꿀에 취하여. 인수정등도.

인생의 비유
<br> 나그네 한 사람이 끝없이 펼쳐진 벌판을 걷고 있었다. 가도 가도 인가가 보이지 않고 길도 없는 벌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그네 앞으로 코끼리 한 마리가 달려오고 있었다. 집채만한 코끼리가 단숨에 밟아 죽일 듯한 기세로 달려오는 것을 보고 나그네는 기를 쓰고 달아났다.
<br> 그러나 무작정 달린다고 해서 코끼리를 피할 수는 없었다. 겁에 잔뜩 질려 달아나던 나그네는 다행히 우물을 발견하였다. 마침 그 우물은 비어 있었고 우물 안으로 넝쿨이 한 줄기 드리워져 있었다. 나그네는 재빨리 넝물에 매달려 우물 안으로 몸을 숨겼다.
<br> 사나운 기세로 뒤쫓아오던 코끼리는 좁은 우물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어서 우물 주변을 돌았다. 일단 코끼리로부터 몸을 피하게 된 나그네는 넝쿨에 매달린 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br> 그러나 조금 있다가 우물 속을 휘둘러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위를 보니 검은 쥐와 흰 쥐가 넝물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그네가 목숨을 의지하고 있는 그 넝쿨은 조금 있으면 곧 끊어져 밑바닥으로 떨어질 판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우물 안 벽에는 독사 네 마리가 사방에서 나그네를 향하여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있고, 또 밑바닥에는 무서운 독용이 그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며 노려보고 있었다.
<br> 나그네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두려움에 떨다가 우물 밖으로 다시 나가려고 위를 쳐다보았다. 코끼리는 보이지 않고 우물 입구 쪽에서 연기가 자욱한 가운데 불꽃이 튀는 것이 보였다. 들불이 일어나 사방을 휩쓸고 있었다. 어느 쪽으로도 몸을 움직여 볼 엄두가 나지 않아 나그네는 그저 넝쿨 한 줄기에만 매달려 있었다.
<br> ​바로 그때였다. 어디에선지 꿀물 다섯 방울이 나그네의 입술에 똑똑 떨어졌다. 그러자 그 달콤한 꿀맛에 나그네는 지금까지 그에게 닥쳤던 모든 두려움과 괴로움을 잊고 꿀물이 떨어져내리는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곳에 는 꿀벌 집이 있었다. 나그네는 입을 벌리고 꿀물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br> 그때에 나무가 흔들리는 바람에 꿀벌들이 놀라서 날아다니며 나그네의 얼굴과 머리를 쏘았다. 넝물을 잡고 있는 손을 놓는다면 아래로 떨어져 독용에게 잡아먹힐 것이며, 벌을 피하느라 몸을 움직였다가는 독사에게 물릴 것이다. 또 그렇다고 해서 성난 코끼리와 타오르는 들불 때문에 우물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니 나그네의 괴로움은 이루 말로 할 수가 없었다.
<br> **이 이야기는 불설비유경에 나오는 인생에 대한 비유로서, 사람이 살아가는 참 모습이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가르침이다. ** <br> 이 비유에서 나그네는 인생 그 자체를 말하며 황량한 벌판은 빛이 없이 길고 캄캄한 밤을[무명장야], 코끼리는 무상함을, 우물은 나고 죽는 일이 험난한 이 세상을, 한 줄기의 넝쿨은 또 우리의 생명을 각각 뜻한다.
그리고 검은 쥐와 흰 쥐는 밤과 낮을, 독사 네 마리는 우리의 육신을 이루고 있는 네 요소인 지, 수, 화, 풍의 사대를, 꿀물 다섯 방울은 재물, 애욕, 음식, 명예, 수명의 오욕을, 벌은 사악한 생각을, 들불은 늙고 병듬, 독용은 죽음을 각각 상징한다.
<br> 이처럼 사람들은 삶의 참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릇된 생활에 빠져서 헤어나지를 못한다. 그것은 마치 이 이야기에서처럼 우물 속의 그 무시무시한 고통은 생각하지 못하고 꿀물의 달콤함에 취하여 정신을 잃은 나그네와 같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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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효도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부모은중경』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효도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부모은중경』

사찰 벽화이야기 부모님 은혜

우리가 사찰벽화에서 자주 접하는 효도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부모은중경』에 담긴 이야기를 벽화를 통하여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1. 자식을 잉태하고 지켜주신 은혜 (회탐수호은)

  1. 해산에 임하여 고통 받으신 은혜 (임산수고은)

  1. 자식을 낳았다고 근심을 잊어버리신 은혜 (생자망우은)

  1. 입에 쓴 것은 삼키고 단것만 뱉어 먹이신 은혜 (인고토감은)

  1. 마른자리에 눈히고 진자리에 누우신 은혜 (회건취습은)

  1. 젖을 먹여 길러 주신 은혜 (포유양육은)

  1. 깨끗하지 못한 것을 씻어 주신 은혜 (세탁부정은)

  1. 멀리 가는 자식을 생각하고 염려하시는 은혜 (원행억념은)

  1. 자식을 위해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 은혜 (위조악업은)

  1. 끝까지 자식을 사랑하는 은혜 (구경연민은)

< "효孝에는 세 가지가 있다. 의식衣食을 제공함은 하품下品의 효행孝行이요, 어버이 마음을 기쁘게 함은 중품中品의 효행이며, 부모님의 공덕功德을 여러 부처님께 회향함은 상품上品의 효행이라 한다."> ☞ 『아함경 阿含經』

효孝는 유교적 사상이라고만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나 불교라고 하면 세속의 인연을 뒤로하고 출가 수행하는 스님들을 연상하기 때문에 불교에서 효를 강조하는 것을 의아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전의 말씀처럼, 자식으로서 부모님을 잘 시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부모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려 자식에 대한 근심을 잊게 해 드리는 것이 더 낫고, 나아가 부모님의 은혜가 여러 부처님 전에 복전이 되도록 회향하는 것이 가장 뛰어난 효행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부모님에게 효행을 잘 갖춰야 하는 것은 누구나 당연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실천으로 옮기는 일에는 여전히 소극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무거우며, 그 은혜를 갚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알고 나면 갚으려는 마음 또한 더욱 크게 자리할 것입니다. 또한 부모의 입장에서도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근본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 불교 수행의 목적이라면, 우리의 근본이 되는 부모님에게 효를 다하는 것은 곧 불도를 닦는 수행과 다르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두 손 모아 해골무덤 앞에서 조차 예를 갖추신 그 모습에서, 효가 곧 계戒임을 배우게 됩니다.

< 뼈 무덤에 절을 하시다 >

부처님께서 사위성 기원정사에 계실 때였습니다. 어느 날 제자들과 함께 남쪽으로 가시다가 마른 뼈 한 무더기를 보시고, 이마를 땅에 대고 정중히 예를 갖추셨습니다. 이를 보고 아난이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삼계 (三界: 불교의 세계관으로 중생들이 생사윤회하는 미망의 세계를 3단계로 나누어 欲界, 色界, 無色界을 말함)​의 큰 스승이시고, 사생(四生: 생물이 태어나는 네 가지 형태.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이다)의 아버지로 여러 사람들이 귀의하고 공경하는 분이온데, 어찌 이 마른 뼈 무더기에 예배하시나이까."

부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아난아, 비록 그대가 나의 훌륭한 제자로서 출가한 지 오래지만 아직 모르는 것이 많구나. 이 마른 뼈 한 무더기는 어쩌면 전생에 내 조상이거나 아니면 여러 생을 거치는 동안의 어버이였을 것이므로, 내 지금 예를 갖추는 것이다."

뼈 무더기에 절을 하시는 부처님의 모습을 바라보면, 누구라도 부처님의 효에 대한 깊은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 효 의식에 따르면 부처님만큼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분도 없을 것입니다.

어머니를 잃은 싯다르타에게 어머니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도록 정성으로 길러준 이모, 아들을 위해 계절마다 궁궐까지 지어가며 무엇이든 아낌없이 지원했던 부왕, 그리고 야소다라와 혼인하여 낳은 아들 라훌라까지, 이 모든 가족을 버리고 출가함으로써 부모님의 가슴을 아프게 했고 자식에게는 좋은 아버지가 되지 못했습니다.

이런 사실 때문에 기존 바라문들은 부처님과 그의 제자들에게 은혜를 저버린 불효자의 무리라고 비방하는 일이 늘어났습니다. 그것이 부처님께서 '효'에 대해 가르친 계기가 되었고, 『부모은중경』이 설해졌습니다.

부처님은 세상의 모든 여래께서는 수 없는 생사를 거치는 동안 모든 중생의 부모가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모든 중생도 부처님의 부모가 되어 왔으므로, 부처님께서 중생을 위해 출가하여 도를 배우는 것은 그 자체로 모든 부모님의 은혜를 갚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부처님과 제자들이 은혜를 저버린 사람이라고 비방한 외도는 좁은 견해만으로 단지 눈앞의 현실 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전생에 내 조상이거나 여러 생을 거치는 동안의 어버이'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참된 보은報恩은 바로 중생을 잊지 않고 큰 자비심으로 제도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뼈 무더기를 향한 절을 통해 가르치셨습니다.

< 굵고 흰 뼈와 가늘고 검은 뼈 >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앞에 있는 뼈 무더기를 각각 남자와 여자의 뼈로 나누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아난이 말씀드렸습니다.

사찰 벽화이야기 부모님 은혜

우리가 사찰벽화에서 자주 접하는 효도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부모은중경』에 담긴 이야기를 벽화를 통하여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1. 자식을 잉태하고 지켜주신 은혜 (회탐수호은)

  1. 해산에 임하여 고통 받으신 은혜 (임산수고은)

  1. 자식을 낳았다고 근심을 잊어버리신 은혜 (생자망우은)

  1. 입에 쓴 것은 삼키고 단것만 뱉어 먹이신 은혜 (인고토감은)

  1. 마른자리에 눈히고 진자리에 누우신 은혜 (회건취습은)

  1. 젖을 먹여 길러 주신 은혜 (포유양육은)

  1. 깨끗하지 못한 것을 씻어 주신 은혜 (세탁부정은)

  1. 멀리 가는 자식을 생각하고 염려하시는 은혜 (원행억념은)

  1. 자식을 위해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 은혜 (위조악업은)

  1. 끝까지 자식을 사랑하는 은혜 (구경연민은)

대한불교 천태종 백양산 삼광사 설경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소재

< "효孝에는 세 가지가 있다. 의식衣食을 제공함은 하품下品의 효행孝行이요, 어버이 마음을 기쁘게 함은 중품中品의 효행이며, 부모님의 공덕功德을 여러 부처님께 회향함은 상품上品의 효행이라 한다."> ☞ 『아함경 阿含經』

효孝는 유교적 사상이라고만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나 불교라고 하면 세속의 인연을 뒤로하고 출가 수행하는 스님들을 연상하기 때문에 불교에서 효를 강조하는 것을 의아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전의 말씀처럼, 자식으로서 부모님을 잘 시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부모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려 자식에 대한 근심을 잊게 해 드리는 것이 더 낫고, 나아가 부모님의 은혜가 여러 부처님 전에 복전이 되도록 회향하는 것이 가장 뛰어난 효행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부모님에게 효행을 잘 갖춰야 하는 것은 누구나 당연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실천으로 옮기는 일에는 여전히 소극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무거우며, 그 은혜를 갚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알고 나면 갚으려는 마음 또한 더욱 크게 자리할 것입니다. 또한 부모의 입장에서도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근본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 불교 수행의 목적이라면, 우리의 근본이 되는 부모님에게 효를 다하는 것은 곧 불도를 닦는 수행과 다르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두 손 모아 해골무덤 앞에서 조차 예를 갖추신 그 모습에서, 효가 곧 계戒임을 배우게 됩니다.

< 뼈 무덤에 절을 하시다 >

부처님께서 사위성 기원정사에 계실 때였습니다. 어느 날 제자들과 함께 남쪽으로 가시다가 마른 뼈 한 무더기를 보시고, 이마를 땅에 대고 정중히 예를 갖추셨습니다. 이를 보고 아난이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삼계 (三界: 불교의 세계관으로 중생들이 생사윤회하는 미망의 세계를 3단계로 나누어 欲界, 色界, 無色界을 말함)​의 큰 스승이시고, 사생(四生: 생물이 태어나는 네 가지 형태.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이다)의 아버지로 여러 사람들이 귀의하고 공경하는 분이온데, 어찌 이 마른 뼈 무더기에 예배하시나이까."

부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아난아, 비록 그대가 나의 훌륭한 제자로서 출가한 지 오래지만 아직 모르는 것이 많구나. 이 마른 뼈 한 무더기는 어쩌면 전생에 내 조상이거나 아니면 여러 생을 거치는 동안의 어버이였을 것이므로, 내 지금 예를 갖추는 것이다."

뼈 무더기에 절을 하시는 부처님의 모습을 바라보면, 누구라도 부처님의 효에 대한 깊은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 효 의식에 따르면 부처님만큼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분도 없을 것입니다.

어머니를 잃은 싯다르타에게 어머니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도록 정성으로 길러준 이모, 아들을 위해 계절마다 궁궐까지 지어가며 무엇이든 아낌없이 지원했던 부왕, 그리고 야소다라와 혼인하여 낳은 아들 라훌라까지, 이 모든 가족을 버리고 출가함으로써 부모님의 가슴을 아프게 했고 자식에게는 좋은 아버지가 되지 못했습니다.

이런 사실 때문에 기존 바라문들은 부처님과 그의 제자들에게 은혜를 저버린 불효자의 무리라고 비방하는 일이 늘어났습니다. 그것이 부처님께서 '효'에 대해 가르친 계기가 되었고, 『부모은중경』이 설해졌습니다.

부처님은 세상의 모든 여래께서는 수 없는 생사를 거치는 동안 모든 중생의 부모가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모든 중생도 부처님의 부모가 되어 왔으므로, 부처님께서 중생을 위해 출가하여 도를 배우는 것은 그 자체로 모든 부모님의 은혜를 갚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부처님과 제자들이 은혜를 저버린 사람이라고 비방한 외도는 좁은 견해만으로 단지 눈앞의 현실 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전생에 내 조상이거나 여러 생을 거치는 동안의 어버이'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참된 보은報恩은 바로 중생을 잊지 않고 큰 자비심으로 제도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뼈 무더기를 향한 절을 통해 가르치셨습니다.

< 굵고 흰 뼈와 가늘고 검은 뼈 >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앞에 있는 뼈 무더기를 각각 남자와 여자의 뼈로 나누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아난이 말씀드렸습니다.

"세존이시여, 남자는 평소 큰 옷을 입고 띠를 매고, 신을 신고 모자를 쓰기 때문에 남자인 줄 알며, 여인은 붉은 입술과 연지를 곱게 바르고 향수로 치장하기 때문에 여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죽은 후의 백골은 남녀가 마찬가지이거늘 제가 어떻게 그것을 알아 볼 수 있겠습니까?"

어찌할 바 몰라 난감해하는 아난을 위해 부처님께서 자세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만약 남자라면 살아있을 때 집안일에서 자유로웠을 것이다. 절에서 법문도 듣고 경전을 독송하며, 삼보께 예배도 하면서 부처님의 명호도 염송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 사람의 뼈는 희고 단단하단다.

하지만 여인은 자식을 낳아 기르되, 한 번 아이를 낳을 때마다 피를 3말 3되씩이나 흘리는구나. 또 아이에게 8섬 4말이나 되는 젖을 먹여 길러야 한단다. 그러므로 앙상한 여인의 뼈는 마치 불에 탄 것처럼 검게 그을리고 가벼운 것이란다."

"세존이시여, 어머니의 은덕을 어떻게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아난과 제자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가슴을 도려내는 것 같은 심정으로 슬픈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출산하기까지는 열 달 동안 갖은 고통을 겪게 됩니다. 첫 달에 뱃속에서 아기의 기운이 맺히는 것을 시작으로 열째 달 출산에 이르기까지, 직접 자식을 낳아 보지 않고서는 그 힘든 고통과 불편함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식습관도 바뀌고 무엇보다 입덧이라도 시작되면 음식을 먹는 것도 힘이 듭니다. 아기의 몫까지 적어도 두 배는 먹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기운이 없어집니다. 또한 온몸의 통증은 물론 불러오는 배로 인해 움직이는 것조차 어렵게 됩니다.

상상해보면, 자기 몸무게의 절반이나 되는 무거운 물건을 껴안고 다닌다면 어떨까요. 내려놓을 수도 없는 커다란 짐을 하루 종일 들고 서 있으라면 아마 팔이 끊어질 것만 같은 통증이 찾아올 것입니다.

어머니는 이 모든 고통을 참고 견딥니다. 열 달의 시간이 길고 힘들어도 자식을 위한 성스러운 활동으로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아난아, 열째 달이 되면 바야흐로 아기가 태어나는데,만약 효순한 아이라면 합장한 것처럼 손을 모으고 주먹을 꼭 쥐고 나와 어머니의 몸을 상하지 않게 한다. 그러나 부모를 아프게 할 불효한 자식이라면 손으로는 어머니의 간과 염통을 움켜쥐고, 다리로는 어머니의 엉덩이뼈를 밟아 어머니는 마치 천 개의 칼로 배를 저미고 만 개의 칼날로 염통을 쑤시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게 된다."

출산의 고통은 더욱 큽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기들은 본능적으로 엄마의 통증을 줄이려 최선을 다합니다. 갓 태어나 울음을 터트리는 갓난아기의 모습을 보면 움츠리고 있는 것 같지만, 다시 보면 꼭 쥔 주먹을 합장하듯 가슴 앞으로 모아 몸을 최대한 작게 만드는 것이죠.

그러지 않고 부모의 몸을 상하게 하며 태어나는 것은 오역죄五逆罪를 지을 불효자의 모습이라 하는데, 그 고통은 마치 칼로 몸을 베고 송곳으로 찌르는 것과도 같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님은 열 달 동안 뱃속에서 자식을 지키고 보살펴 또한 큰 고통을 이겨내며 출산을 했지만, 그 후에도 평생을 자식에게 은혜를 베풀어 줍니다. 아이를 가질 때부터 출산 후 자식을 기르기까지 모두 열 가지 은혜가 있다고 해서, 이것을 십중대은十重大恩이라 부릅니다.

부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자녀들이 부모님의 깊은 은혜를 알기 쉽고, 잘 외워 잊지 않도록 이 십중대은을 10편의 게송으로 읊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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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부모은중경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부모은중경

  1. 자식을 잉태하고 지켜 주신 은혜 (회탐수호은)

< 여러 겁 지나오며 인연이 깊고 깊어, 이번 생 다시 만나 모태에 의탁했네. 날이 가고 달이 가서 오장이 생겨나고, 일곱 달에 이르러서 육정이 열렸어라. 어머니 몸 무겁기는 태산보다 무거우며, 가나오나 서로 앉고 바람조차 두렵구나. 아름다운 비단옷도 도무지 입지 않아, 단장하던 거울에는 먼지만 쌓여있네. >

모든 만남은 소중한 인연이라지만, 그 중에 부모자식간의 인연만큼 귀한 것도 없습니다. 흔히 옷깃을 스치는 인연이라는 말이 있지만, 부모와 자식으로 만나는 것은 8천생을 거치는 인연을 쌓아야 합니다. 우리가 부모님 몸에 태어난 인연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에 가깝습니다.

아기가 어머니의 몸 속에 온전히 자리하면, 점차로 오장과 육정이 생깁니다. 오장五臟은 간장, 심장, 비장, 폐장, 신장으로 우리 몸의 각종 장기를 말하며, 육정六精은 눈, 귀, 코, 입, 혀, 뜻으로 우리의 감각기관입니다. 즉 점차로 엄마의 몸 속에서 아기의 신체가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서서히 아기의 몸이 만들어지면서 자연히 어머니의 몸에도 변화가 찾아옵니다. 가장 큰 변화는 몸이 불어나는 것이죠. 아기를 갖고 한 두 달이면 자궁이나 혈액, 양수 등 순수하게 아기의 성장만으로도 1kg에 가까운 체중이 늘어나게 됩니다. 다이어트와 운동으로 단지 1kg라도 감량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해 본 사람은 잘 압니다.

그런데 몸무게가 늘어도 아기를 위해 다이어트도 격한 운동도 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혹시나 뱃속 아기가 잘못될까 노심초사하며 부는 바람도 조심조심하다 보니 신체활동은 점점 더 줄어듭니다. 그러나 영양소 섭취를 위해 꾸준히 먹어야하니, 몸은 더욱 무거워집니다.

어머니는 어느덧 여자로서의 마음은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이전에 입었던 멋스러운 옷들은 더 이상 입을 수 없고, 품이 넉넉한 옷만 찾습니다. 거울 앞에서 단장하는 모습은 사라지고, 아기를 위해 자신의 미美는 뒤로 한 채 오직 태교에만 관심을 두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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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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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사찰의 구조 - 미륵전(彌勒殿)
문화

전통사찰의 구조 - 미륵전(彌勒殿)

미륵전은 미래의 부처이신 미륵불을 모신 곳이다. 미륵불에 의해 새로이 펼쳐지는 불국토 ‘용화세계’를 상징한다. 하여 용화전(龍華殿)이라고도 하고, ‘미륵’의 한문 의역인 ‘자씨’를 붙여 자씨전(慈氏殿)이라고도 부른다. 미륵은 미래세의 세상에 출현해서 중생을 제도한다는 부처님이시다. 미륵전은 전북 김제의 금산사 미륵전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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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3편 팔상성도 5.6상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3편 팔상성도 5.6상

  1. 설산수도상 雪山修道相

싯다르타의 소식은 이내 왕궁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정반왕은 아들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신하들로 하여금 싯다르타를 뒤쫓게 하였습니다.

맨발의 싯다르타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배고픔을 이겨내며 꾸시나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싯다르타는 그를 뒤쫓던 부왕의 신하들에게 따라 잡히고 말았습니다.

"태자님, 이게 무슨 고생이십니까. 저희랑 같이 궁으로 돌아가세요. 태자님은 천하를 다스릴 왕이 되실 분입니다."

"나의 수행은 세상의 권세를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태자께서 진리를 구하려는 마음은 익히 저희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가 반드시 깊은 숲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가?"

"저는 천상에 태어나고자 공덕을 쌓는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상에 태어나는 것도 결국 생사의 고통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나고 죽는 고통에서 자유로운 길을 찾아 집을 나선 것 입니다. 부왕의 뜻을 어기며, 사랑하는 가족을 버리고 출가한 것은 진정으로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최상의 진리를 얻으려는 것입니다."

결국 어떠한 설득으로도 싯다르타의 굳은 결심을 꺾을 수 없었던 신하들은 그냥 왕궁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신하들 가운데 싯다르타 혼자만 보낼 수 없었던 교진여(憍陳如, 꼰단냐 Kondanna)등 다섯 명이 싯다르타와 함께 수행하기로 하고 그의 뒤를 따라 나섰습니다.

싯다르타가 처음 만난 스승은 박가바Bhaggava라고 불리는 선인이었습니다. 그의 제자들은 물과 불, 해와 달등 여러 정령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나뭇가지나 풀만 먹는 사람, 쇠똥만 먹는 사람, 나체로 다니는 사람, 가시덤불 위에 누워있는 사람, 머리카락을 뽑는 사람등 다양한 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고행자였습니다.

사찰 벽화이야기 제2편 팔상성도 5.6상

  1. 설산수도상 雪山修道相

싯다르타의 소식은 이내 왕궁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정반왕은 아들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신하들로 하여금 싯다르타를 뒤쫓게 하였습니다.

맨발의 싯다르타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배고픔을 이겨내며 꾸시나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싯다르타는 그를 뒤쫓던 부왕의 신하들에게 따라 잡히고 말았습니다.

"태자님, 이게 무슨 고생이십니까. 저희랑 같이 궁으로 돌아가세요. 태자님은 천하를 다스릴 왕이 되실 분입니다."

"나의 수행은 세상의 권세를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태자께서 진리를 구하려는 마음은 익히 저희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가 반드시 깊은 숲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가?"

"저는 천상에 태어나고자 공덕을 쌓는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상에 태어나는 것도 결국 생사의 고통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나고 죽는 고통에서 자유로운 길을 찾아 집을 나선 것 입니다. 부왕의 뜻을 어기며, 사랑하는 가족을 버리고 출가한 것은 진정으로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최상의 진리를 얻으려는 것입니다."

결국 어떠한 설득으로도 싯다르타의 굳은 결심을 꺾을 수 없었던 신하들은 그냥 왕궁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신하들 가운데 싯다르타 혼자만 보낼 수 없었던 교진여(憍陳如, 꼰단냐 Kondanna)등 다섯 명이 싯다르타와 함께 수행하기로 하고 그의 뒤를 따라 나섰습니다.

싯다르타가 처음 만난 스승은 박가바Bhaggava라고 불리는 선인이었습니다. 그의 제자들은 물과 불, 해와 달등 여러 정령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나뭇가지나 풀만 먹는 사람, 쇠똥만 먹는 사람, 나체로 다니는 사람, 가시덤불 위에 누워있는 사람, 머리카락을 뽑는 사람등 다양한 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고행자였습니다.

"참으로 흉내 내기도 힘든 수행을 하고 있군요. 이런 고행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

"육체는 속박의 그릇입니다. 육체를 학대하고 괴롭혀 고통에서 자유롭게 된다면, 그 보상으로 우리는 천상에 태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오로지 천상에 태어나고자 수행하는 것은 참된 수행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그저 고통의 연속일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싯다르타가 찾아 간 사람은 베살리Vesali 근처에 있는 알라라깔라마Alarakalama라는 선인이었습니다. 그 역시 사람들에게 명성이 자자했던 존경받는 수행자였습니다.

"고따마여. 생사의 근본을 끊고자 한다면, 먼저 계행을 지키고 인욕하면서 선정을 닦아야 합니다." 싯다르타는 알라라깔라마에게 선정으로 삼매에 드는 법을 배웠고, 스승과 같은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을 터득하였습니다. 그는 싯다르타의 경지에 탄복하며, 자신과 동등한 스승으로 대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싯다르타는 이제 스승의 경기를 뛰어넘어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의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무소유처정'은 육체에 일어나는 모든 욕망과 속박을 벗어난 경지이고, '비상비비상처정'은 몸과 함께 마음마저 일체의 욕심과 번뇌가 완전히 사라진 경지입니다.

구인사 대조사전大祖師殿 대한불교 천태종을 중창하신 상월원각 대조사上月圓覺大祖師를 모신 佛殿이다

비로소 싯다르타는 몸과 마음의 모든 번뇌에서 자유로운 경지에 다다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고요히 앉아 선정에 들어 있는 순간만의 해탈일 뿐, 참선에서 깨어난 후 실제로 생사의 근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수행은 완전한 가르침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 싯다르타는 다시 스승을 찾아 마가다국으로 향했습니다. 당시 마가다국을 이끄는 빔비사라왕은 수행자들에게 상당히 우호적인 분이었습니다. 때문에 마가다국에는 수 많은 수행자와 사상가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산자야San̄jaya, 니간타 나따뿟따 Nigantha nataputta, 웃다까라마뿟다Uddaka ramaputta등 그곳에는 대중들에게 존경받는 스승들이 즐비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가르침도 대부분 고행을 닦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서도 수행을 배웠고 또한 머지않아 여러 스승들의 가르침을 모두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뛰어난 선인들을 모두 만나 보았으나, 어떠한 가르침에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없었다. 이제 세상의 어떠한 스승에게서도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 나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더 이상 스승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싯다르타는 올바른 고행을 통해 최고의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고행자들이 머무는 우루벨라Uruvela의 숲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싯다르타는 극도의 고행으로 거의 죽음의 문턱에 이를 만큼 힘든 수행을 이어갔습니다. 수행을 함께 하던 다섯 수행자들도 이런 싯다르타의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결기에 큰 용기를 받아 더욱 열심히 정진하였습니다.

사찰 벽화이야기 제2편 팔상성도 5.6상

  1. 설산수도상 雪山修道相

싯다르타의 소식은 이내 왕궁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정반왕은 아들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신하들로 하여금 싯다르타를 뒤쫓게 하였습니다.

맨발의 싯다르타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배고픔을 이겨내며 꾸시나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싯다르타는 그를 뒤쫓던 부왕의 신하들에게 따라 잡히고 말았습니다.

"태자님, 이게 무슨 고생이십니까. 저희랑 같이 궁으로 돌아가세요. 태자님은 천하를 다스릴 왕이 되실 분입니다."

"나의 수행은 세상의 권세를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태자께서 진리를 구하려는 마음은 익히 저희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가 반드시 깊은 숲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가?"

"저는 천상에 태어나고자 공덕을 쌓는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상에 태어나는 것도 결국 생사의 고통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나고 죽는 고통에서 자유로운 길을 찾아 집을 나선 것 입니다. 부왕의 뜻을 어기며, 사랑하는 가족을 버리고 출가한 것은 진정으로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최상의 진리를 얻으려는 것입니다."

결국 어떠한 설득으로도 싯다르타의 굳은 결심을 꺾을 수 없었던 신하들은 그냥 왕궁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신하들 가운데 싯다르타 혼자만 보낼 수 없었던 교진여(憍陳如, 꼰단냐 Kondanna)등 다섯 명이 싯다르타와 함께 수행하기로 하고 그의 뒤를 따라 나섰습니다.

싯다르타가 처음 만난 스승은 박가바Bhaggava라고 불리는 선인이었습니다. 그의 제자들은 물과 불, 해와 달등 여러 정령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나뭇가지나 풀만 먹는 사람, 쇠똥만 먹는 사람, 나체로 다니는 사람, 가시덤불 위에 누워있는 사람, 머리카락을 뽑는 사람등 다양한 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고행자였습니다.

"참으로 흉내 내기도 힘든 수행을 하고 있군요. 이런 고행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

"육체는 속박의 그릇입니다. 육체를 학대하고 괴롭혀 고통에서 자유롭게 된다면, 그 보상으로 우리는 천상에 태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오로지 천상에 태어나고자 수행하는 것은 참된 수행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그저 고통의 연속일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싯다르타가 찾아 간 사람은 베살리Vesali 근처에 있는 알라라깔라마Alarakalama라는 선인이었습니다. 그 역시 사람들에게 명성이 자자했던 존경받는 수행자였습니다.

"고따마여. 생사의 근본을 끊고자 한다면, 먼저 계행을 지키고 인욕하면서 선정을 닦아야 합니다." 싯다르타는 알라라깔라마에게 선정으로 삼매에 드는 법을 배웠고, 스승과 같은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을 터득하였습니다. 그는 싯다르타의 경지에 탄복하며, 자신과 동등한 스승으로 대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싯다르타는 이제 스승의 경기를 뛰어넘어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의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무소유처정'은 육체에 일어나는 모든 욕망과 속박을 벗어난 경지이고, '비상비비상처정'은 몸과 함께 마음마저 일체의 욕심과 번뇌가 완전히 사라진 경지입니다.

구인사 대조사전大祖師殿 대한불교 천태종을 중창하신 상월원각 대조사上月圓覺大祖師를 모신 佛殿이다

비로소 싯다르타는 몸과 마음의 모든 번뇌에서 자유로운 경지에 다다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고요히 앉아 선정에 들어 있는 순간만의 해탈일 뿐, 참선에서 깨어난 후 실제로 생사의 근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수행은 완전한 가르침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 싯다르타는 다시 스승을 찾아 마가다국으로 향했습니다. 당시 마가다국을 이끄는 빔비사라왕은 수행자들에게 상당히 우호적인 분이었습니다. 때문에 마가다국에는 수 많은 수행자와 사상가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산자야San̄jaya, 니간타 나따뿟따 Nigantha nataputta, 웃다까라마뿟다Uddaka ramaputta등 그곳에는 대중들에게 존경받는 스승들이 즐비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가르침도 대부분 고행을 닦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서도 수행을 배웠고 또한 머지않아 여러 스승들의 가르침을 모두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뛰어난 선인들을 모두 만나 보았으나, 어떠한 가르침에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없었다. 이제 세상의 어떠한 스승에게서도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 나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더 이상 스승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싯다르타는 올바른 고행을 통해 최고의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고행자들이 머무는 우루벨라Uruvela의 숲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싯다르타는 극도의 고행으로 거의 죽음의 문턱에 이를 만큼 힘든 수행을 이어갔습니다. 수행을 함께 하던 다섯 수행자들도 이런 싯다르타의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결기에 큰 용기를 받아 더욱 열심히 정진하였습니다.

싯다르타는 음식을 아주 조금씩만 먹어 뼈만 앙상하게 남았습니다. 하루을 대추 한 알로도 보냈으며, 하루에 한 끼, 사흘에 한 끼, 이윽고 보름에 한 끼를 먹었습니다. 또 숨이 귀와 피부를 뚫고 나올 만큼 호흡을 참기도 했습니다. 마음을 한 곳에 모아 호흡을 참자, 몸에 열이 가득차고, 귀에서는 대장간의 풀무소리처럼 윙윙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황혼이 밀려오며 춥고 어두운 밤이 되어도 그 곳을 떠나지 않고, 먹고 자는 것도 잊는 고행으로 6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고행을 통해서도 깨달음은 이룰 수 없었습니다.

'육신을 괴롭혀 마음의 욕망을 끊고자 하는 것은 진리를 깨닫기 위한 참된 해결책이 아니구나. 해탈은 켜녕 진리의 실마리조차 얻지 못했다. 깨달음을 위한 다른 길이 있음이 분명하다.' 극심한 고행은 그에 상응하는 더 큰 고통만을 남길 뿐이었습니다. 그 순간 예전 농경제에서 처음으로 선정에 들었을 때의 경험이 떠 올랐습니다.

'그 나무아래에서 나는 애욕과 선하지 못한 것들을 떠나 깊은 사색에 잠겼었다. 바르고 차분하게 사유하며 애욕을 떠났을 때, 고요함과 기쁨이 나를 찾아왔다. 그 당시의 즐거움은 지금까지 수행하며 얻은 그 무엇도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사찰 벽화이야기 제2편 팔상성도 5.6상

  1. 설산수도상 雪山修道相

싯다르타의 소식은 이내 왕궁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정반왕은 아들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신하들로 하여금 싯다르타를 뒤쫓게 하였습니다.

맨발의 싯다르타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배고픔을 이겨내며 꾸시나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싯다르타는 그를 뒤쫓던 부왕의 신하들에게 따라 잡히고 말았습니다.

"태자님, 이게 무슨 고생이십니까. 저희랑 같이 궁으로 돌아가세요. 태자님은 천하를 다스릴 왕이 되실 분입니다."

"나의 수행은 세상의 권세를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태자께서 진리를 구하려는 마음은 익히 저희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가 반드시 깊은 숲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가?"

"저는 천상에 태어나고자 공덕을 쌓는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상에 태어나는 것도 결국 생사의 고통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나고 죽는 고통에서 자유로운 길을 찾아 집을 나선 것 입니다. 부왕의 뜻을 어기며, 사랑하는 가족을 버리고 출가한 것은 진정으로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최상의 진리를 얻으려는 것입니다."

결국 어떠한 설득으로도 싯다르타의 굳은 결심을 꺾을 수 없었던 신하들은 그냥 왕궁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신하들 가운데 싯다르타 혼자만 보낼 수 없었던 교진여(憍陳如, 꼰단냐 Kondanna)등 다섯 명이 싯다르타와 함께 수행하기로 하고 그의 뒤를 따라 나섰습니다.

싯다르타가 처음 만난 스승은 박가바Bhaggava라고 불리는 선인이었습니다. 그의 제자들은 물과 불, 해와 달등 여러 정령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나뭇가지나 풀만 먹는 사람, 쇠똥만 먹는 사람, 나체로 다니는 사람, 가시덤불 위에 누워있는 사람, 머리카락을 뽑는 사람등 다양한 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고행자였습니다.

"참으로 흉내 내기도 힘든 수행을 하고 있군요. 이런 고행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

"육체는 속박의 그릇입니다. 육체를 학대하고 괴롭혀 고통에서 자유롭게 된다면, 그 보상으로 우리는 천상에 태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오로지 천상에 태어나고자 수행하는 것은 참된 수행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그저 고통의 연속일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싯다르타가 찾아 간 사람은 베살리Vesali 근처에 있는 알라라깔라마Alarakalama라는 선인이었습니다. 그 역시 사람들에게 명성이 자자했던 존경받는 수행자였습니다.

"고따마여. 생사의 근본을 끊고자 한다면, 먼저 계행을 지키고 인욕하면서 선정을 닦아야 합니다." 싯다르타는 알라라깔라마에게 선정으로 삼매에 드는 법을 배웠고, 스승과 같은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을 터득하였습니다. 그는 싯다르타의 경지에 탄복하며, 자신과 동등한 스승으로 대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싯다르타는 이제 스승의 경기를 뛰어넘어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의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무소유처정'은 육체에 일어나는 모든 욕망과 속박을 벗어난 경지이고, '비상비비상처정'은 몸과 함께 마음마저 일체의 욕심과 번뇌가 완전히 사라진 경지입니다.

구인사 대조사전大祖師殿 대한불교 천태종을 중창하신 상월원각 대조사上月圓覺大祖師를 모신 佛殿이다

비로소 싯다르타는 몸과 마음의 모든 번뇌에서 자유로운 경지에 다다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고요히 앉아 선정에 들어 있는 순간만의 해탈일 뿐, 참선에서 깨어난 후 실제로 생사의 근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수행은 완전한 가르침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 싯다르타는 다시 스승을 찾아 마가다국으로 향했습니다. 당시 마가다국을 이끄는 빔비사라왕은 수행자들에게 상당히 우호적인 분이었습니다. 때문에 마가다국에는 수 많은 수행자와 사상가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산자야San̄jaya, 니간타 나따뿟따 Nigantha nataputta, 웃다까라마뿟다Uddaka ramaputta등 그곳에는 대중들에게 존경받는 스승들이 즐비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가르침도 대부분 고행을 닦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서도 수행을 배웠고 또한 머지않아 여러 스승들의 가르침을 모두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뛰어난 선인들을 모두 만나 보았으나, 어떠한 가르침에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없었다. 이제 세상의 어떠한 스승에게서도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 나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더 이상 스승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싯다르타는 올바른 고행을 통해 최고의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고행자들이 머무는 우루벨라Uruvela의 숲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싯다르타는 극도의 고행으로 거의 죽음의 문턱에 이를 만큼 힘든 수행을 이어갔습니다. 수행을 함께 하던 다섯 수행자들도 이런 싯다르타의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결기에 큰 용기를 받아 더욱 열심히 정진하였습니다.

싯다르타는 음식을 아주 조금씩만 먹어 뼈만 앙상하게 남았습니다. 하루을 대추 한 알로도 보냈으며, 하루에 한 끼, 사흘에 한 끼, 이윽고 보름에 한 끼를 먹었습니다. 또 숨이 귀와 피부를 뚫고 나올 만큼 호흡을 참기도 했습니다. 마음을 한 곳에 모아 호흡을 참자, 몸에 열이 가득차고, 귀에서는 대장간의 풀무소리처럼 윙윙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황혼이 밀려오며 춥고 어두운 밤이 되어도 그 곳을 떠나지 않고, 먹고 자는 것도 잊는 고행으로 6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고행을 통해서도 깨달음은 이룰 수 없었습니다.

'육신을 괴롭혀 마음의 욕망을 끊고자 하는 것은 진리를 깨닫기 위한 참된 해결책이 아니구나. 해탈은 켜녕 진리의 실마리조차 얻지 못했다. 깨달음을 위한 다른 길이 있음이 분명하다.' 극심한 고행은 그에 상응하는 더 큰 고통만을 남길 뿐이었습니다. 그 순간 예전 농경제에서 처음으로 선정에 들었을 때의 경험이 떠 올랐습니다.

'그 나무아래에서 나는 애욕과 선하지 못한 것들을 떠나 깊은 사색에 잠겼었다. 바르고 차분하게 사유하며 애욕을 떠났을 때, 고요함과 기쁨이 나를 찾아왔다. 그 당시의 즐거움은 지금까지 수행하며 얻은 그 무엇도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싯다르타는 바른 육신에 바른 정신이 깃든다고 생각하고, 몸을 추스르기로 하였습니다. 마침 우루벨라 마을의 어느 장자의 딸인 수자따Sujātā 라는 여인이 우유죽을 들고 가다가 싯다르타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수행자에게 공양 올려 복을 쌓겠다는 생각으로 싯다르타에게 우유죽을 바쳤습니다. 싯다르타는 네란자라(neranjara, 尼連禪河니련선하) 강변에 앉아 수자따가 바친 우유죽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러자 이 모습을 지켜 본 다섯 수행자는 싯다르타를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고행으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더니, 최고의 지혜를 얻기는 커녕 결국 고따마는 미치고 말았구나. 이제 여인이 주는 음식이나 받아먹고, 그는 고행을 버렸다. 그는 타락했다. 더 이상 그의 곁을 머물 필요가 없다." 그들은 싯다르타를 손가락질하며 북쪽으로 떠나 버렸습니다. 수자따의 우유죽으로 기운을 차린 싯다르타는 네라자라 강에 온 몸을 깨끗이 씻으며 심신을 정갈히 다스렸습니다. 그리고 수행할 자리를 찾아 다시 숲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곳에는 삡팔라(Pipphala, 보리수) 나무가 큰 그늘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앉을 자리를 찾던 중 마침 길 한쪽에서 풀을 베는 사내를 만났습니다. 그의 이름은 소띠야(Sotthiya, 吉祥 길상)라고 했습니다.

싯다르타는 그 사내로 부터 여덟 다발의 향기로운 풀[길상 초]을 얻어 삡팔라 나무 아래 바르게 펴고는, 동쪽을 바라보며 앉았습니다.

"설령 뼈와 살이 없어지고, 내 몸이 말라버려도 좋다.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이 자리에서 죽어도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

싯다르타는 이렇게 굳은 맹세를 하며 선정에 들었습니다.

  • 참고: 불교의 세계관 우주론: 삼계三界(Trayo-dhātavah)

불교의 세계관에서 중생이 생사유전(生死流轉)한다는 3단계의 미망(迷妄)의 세계를 말하며 여기에는​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세 가지이다. 욕계는 맨 아래에 있으며 오관(五官)의 욕망이 존재하는 세계로​ 지옥·아귀(餓鬼)·축생(畜生)·아수라(阿修羅)·인간(人間) 등 5가지와 사왕천(四王天)·도리천·야마천(夜摩天)·도솔천(兜率天)·화락천(化樂天)·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등 육욕천(六欲天)이 여기에 속한다. 여기에서는 보시(布施)·지계(持戒) 등을 욕계의 선(禪)이라고 한다.

색계는 욕계 위에 있으며 색계사선(色界四禪:初禪·二禪·三禪·四禪)이 행해지는 세계로, 여기에는 물질적인 것(色)은 있어도 감관의 욕망을 떠난 청정(淸淨)의 세계이다.

무색계는 물질적인 것도 없어진 순수한 정신만의 세계인데, 무념 무상의 정(定:三昧)으로서 사무색정(四無色定:空無邊處定·識無邊處定·無所有處定·非想非非想處定)을 닦은 자가 태어나는 곳이다. 무색계는 색계 위에 있다고 할 수 없다. 그것은 방처(方處), 즉 공간의 개념을 초월한 것이다.

삼계는 세간(世間)이라고도 하는, 중생이 육도(六道)에 생사유전하는 범부계(凡夫界)를 말한다. 이에 반해 출세간(出世間)은 생사 윤회(輪廻)를 초월한 성자(聖子)의 무루계(無漏界)이다. 초기불교에서는 삼계와 출세간이 구별되었지만, 대승불교에서는 무루계도 삼계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따라서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라고 한다.

불교의 우주관 三界

사찰 벽화이야기 제2편 팔상성도 5.6상

  1. 설산수도상 雪山修道相

싯다르타의 소식은 이내 왕궁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정반왕은 아들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신하들로 하여금 싯다르타를 뒤쫓게 하였습니다.

맨발의 싯다르타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배고픔을 이겨내며 꾸시나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싯다르타는 그를 뒤쫓던 부왕의 신하들에게 따라 잡히고 말았습니다.

"태자님, 이게 무슨 고생이십니까. 저희랑 같이 궁으로 돌아가세요. 태자님은 천하를 다스릴 왕이 되실 분입니다."

"나의 수행은 세상의 권세를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태자께서 진리를 구하려는 마음은 익히 저희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가 반드시 깊은 숲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가?"

"저는 천상에 태어나고자 공덕을 쌓는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상에 태어나는 것도 결국 생사의 고통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나고 죽는 고통에서 자유로운 길을 찾아 집을 나선 것 입니다. 부왕의 뜻을 어기며, 사랑하는 가족을 버리고 출가한 것은 진정으로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최상의 진리를 얻으려는 것입니다."

결국 어떠한 설득으로도 싯다르타의 굳은 결심을 꺾을 수 없었던 신하들은 그냥 왕궁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신하들 가운데 싯다르타 혼자만 보낼 수 없었던 교진여(憍陳如, 꼰단냐 Kondanna)등 다섯 명이 싯다르타와 함께 수행하기로 하고 그의 뒤를 따라 나섰습니다.

싯다르타가 처음 만난 스승은 박가바Bhaggava라고 불리는 선인이었습니다. 그의 제자들은 물과 불, 해와 달등 여러 정령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나뭇가지나 풀만 먹는 사람, 쇠똥만 먹는 사람, 나체로 다니는 사람, 가시덤불 위에 누워있는 사람, 머리카락을 뽑는 사람등 다양한 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고행자였습니다.

"참으로 흉내 내기도 힘든 수행을 하고 있군요. 이런 고행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

"육체는 속박의 그릇입니다. 육체를 학대하고 괴롭혀 고통에서 자유롭게 된다면, 그 보상으로 우리는 천상에 태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오로지 천상에 태어나고자 수행하는 것은 참된 수행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그저 고통의 연속일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싯다르타가 찾아 간 사람은 베살리Vesali 근처에 있는 알라라깔라마Alarakalama라는 선인이었습니다. 그 역시 사람들에게 명성이 자자했던 존경받는 수행자였습니다.

"고따마여. 생사의 근본을 끊고자 한다면, 먼저 계행을 지키고 인욕하면서 선정을 닦아야 합니다." 싯다르타는 알라라깔라마에게 선정으로 삼매에 드는 법을 배웠고, 스승과 같은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을 터득하였습니다. 그는 싯다르타의 경지에 탄복하며, 자신과 동등한 스승으로 대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싯다르타는 이제 스승의 경기를 뛰어넘어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의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무소유처정'은 육체에 일어나는 모든 욕망과 속박을 벗어난 경지이고, '비상비비상처정'은 몸과 함께 마음마저 일체의 욕심과 번뇌가 완전히 사라진 경지입니다.

구인사 대조사전大祖師殿 대한불교 천태종을 중창하신 상월원각 대조사上月圓覺大祖師를 모신 佛殿이다

비로소 싯다르타는 몸과 마음의 모든 번뇌에서 자유로운 경지에 다다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고요히 앉아 선정에 들어 있는 순간만의 해탈일 뿐, 참선에서 깨어난 후 실제로 생사의 근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수행은 완전한 가르침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 싯다르타는 다시 스승을 찾아 마가다국으로 향했습니다. 당시 마가다국을 이끄는 빔비사라왕은 수행자들에게 상당히 우호적인 분이었습니다. 때문에 마가다국에는 수 많은 수행자와 사상가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산자야San̄jaya, 니간타 나따뿟따 Nigantha nataputta, 웃다까라마뿟다Uddaka ramaputta등 그곳에는 대중들에게 존경받는 스승들이 즐비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가르침도 대부분 고행을 닦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서도 수행을 배웠고 또한 머지않아 여러 스승들의 가르침을 모두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뛰어난 선인들을 모두 만나 보았으나, 어떠한 가르침에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없었다. 이제 세상의 어떠한 스승에게서도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 나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더 이상 스승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싯다르타는 올바른 고행을 통해 최고의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고행자들이 머무는 우루벨라Uruvela의 숲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싯다르타는 극도의 고행으로 거의 죽음의 문턱에 이를 만큼 힘든 수행을 이어갔습니다. 수행을 함께 하던 다섯 수행자들도 이런 싯다르타의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결기에 큰 용기를 받아 더욱 열심히 정진하였습니다.

싯다르타는 음식을 아주 조금씩만 먹어 뼈만 앙상하게 남았습니다. 하루을 대추 한 알로도 보냈으며, 하루에 한 끼, 사흘에 한 끼, 이윽고 보름에 한 끼를 먹었습니다. 또 숨이 귀와 피부를 뚫고 나올 만큼 호흡을 참기도 했습니다. 마음을 한 곳에 모아 호흡을 참자, 몸에 열이 가득차고, 귀에서는 대장간의 풀무소리처럼 윙윙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황혼이 밀려오며 춥고 어두운 밤이 되어도 그 곳을 떠나지 않고, 먹고 자는 것도 잊는 고행으로 6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고행을 통해서도 깨달음은 이룰 수 없었습니다.

'육신을 괴롭혀 마음의 욕망을 끊고자 하는 것은 진리를 깨닫기 위한 참된 해결책이 아니구나. 해탈은 켜녕 진리의 실마리조차 얻지 못했다. 깨달음을 위한 다른 길이 있음이 분명하다.' 극심한 고행은 그에 상응하는 더 큰 고통만을 남길 뿐이었습니다. 그 순간 예전 농경제에서 처음으로 선정에 들었을 때의 경험이 떠 올랐습니다.

'그 나무아래에서 나는 애욕과 선하지 못한 것들을 떠나 깊은 사색에 잠겼었다. 바르고 차분하게 사유하며 애욕을 떠났을 때, 고요함과 기쁨이 나를 찾아왔다. 그 당시의 즐거움은 지금까지 수행하며 얻은 그 무엇도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싯다르타는 바른 육신에 바른 정신이 깃든다고 생각하고, 몸을 추스르기로 하였습니다. 마침 우루벨라 마을의 어느 장자의 딸인 수자따Sujātā 라는 여인이 우유죽을 들고 가다가 싯다르타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수행자에게 공양 올려 복을 쌓겠다는 생각으로 싯다르타에게 우유죽을 바쳤습니다. 싯다르타는 네란자라(neranjara, 尼連禪河니련선하) 강변에 앉아 수자따가 바친 우유죽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러자 이 모습을 지켜 본 다섯 수행자는 싯다르타를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고행으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더니, 최고의 지혜를 얻기는 커녕 결국 고따마는 미치고 말았구나. 이제 여인이 주는 음식이나 받아먹고, 그는 고행을 버렸다. 그는 타락했다. 더 이상 그의 곁을 머물 필요가 없다." 그들은 싯다르타를 손가락질하며 북쪽으로 떠나 버렸습니다. 수자따의 우유죽으로 기운을 차린 싯다르타는 네라자라 강에 온 몸을 깨끗이 씻으며 심신을 정갈히 다스렸습니다. 그리고 수행할 자리를 찾아 다시 숲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곳에는 삡팔라(Pipphala, 보리수) 나무가 큰 그늘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앉을 자리를 찾던 중 마침 길 한쪽에서 풀을 베는 사내를 만났습니다. 그의 이름은 소띠야(Sotthiya, 吉祥 길상)라고 했습니다.

싯다르타는 그 사내로 부터 여덟 다발의 향기로운 풀[길상 초]을 얻어 삡팔라 나무 아래 바르게 펴고는, 동쪽을 바라보며 앉았습니다.

"설령 뼈와 살이 없어지고, 내 몸이 말라버려도 좋다.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이 자리에서 죽어도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

싯다르타는 이렇게 굳은 맹세를 하며 선정에 들었습니다.

  • 참고: 불교의 세계관 우주론: 삼계三界(Trayo-dhātavah)

불교의 세계관에서 중생이 생사유전(生死流轉)한다는 3단계의 미망(迷妄)의 세계를 말하며 여기에는​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세 가지이다. 욕계는 맨 아래에 있으며 오관(五官)의 욕망이 존재하는 세계로​ 지옥·아귀(餓鬼)·축생(畜生)·아수라(阿修羅)·인간(人間) 등 5가지와 사왕천(四王天)·도리천·야마천(夜摩天)·도솔천(兜率天)·화락천(化樂天)·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등 육욕천(六欲天)이 여기에 속한다. 여기에서는 보시(布施)·지계(持戒) 등을 욕계의 선(禪)이라고 한다.

색계는 욕계 위에 있으며 색계사선(色界四禪:初禪·二禪·三禪·四禪)이 행해지는 세계로, 여기에는 물질적인 것(色)은 있어도 감관의 욕망을 떠난 청정(淸淨)의 세계이다.

무색계는 물질적인 것도 없어진 순수한 정신만의 세계인데, 무념 무상의 정(定:三昧)으로서 사무색정(四無色定:空無邊處定·識無邊處定·無所有處定·非想非非想處定)을 닦은 자가 태어나는 곳이다. 무색계는 색계 위에 있다고 할 수 없다. 그것은 방처(方處), 즉 공간의 개념을 초월한 것이다.

삼계는 세간(世間)이라고도 하는, 중생이 육도(六道)에 생사유전하는 범부계(凡夫界)를 말한다. 이에 반해 출세간(出世間)은 생사 윤회(輪廻)를 초월한 성자(聖子)의 무루계(無漏界)이다. 초기불교에서는 삼계와 출세간이 구별되었지만, 대승불교에서는 무루계도 삼계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따라서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라고 한다.

☞ [네이버 지식백과] 삼계[三界]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불교의 우주관 三界

  1. 수하항마상 樹下降魔相

삡팔라 나무 아래에서 깊은 선정에 들었을 때, 수행을 방해하려고 마왕 파순魔王 波旬이 다가 와 속삭였습니다.

"그렇게 바싹 마른 몸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니, 곧 죽을 때가 다 되었습니다. 당신이 죽지 않고 살아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 그만 두십시오. 손쉬운 방법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 방법을 알려드릴까요?"

수행자의 마음을 흩트려 나약하게 만들기 위해, 파순은 온갖 감언이설을 속삭이며 싯다르타를 현혹하는 말들을 끊임없이 내 놓았습니다.

"마왕이며, 당신은 헛된 일에 애쓰고 있습니다. 나의 결심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당신 앞에 무릎 꿇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마왕은 이대로는 싯다르타를 굴복시킬 수 없겠다고 생각하고서, 자신의 세 딸들에게 수행자를 유혹하도록 시켰습니다.

"저 삡팔라 나무 아래 한 수행자가 선정에 들어있다. 그의 신념과 정진, 그리고 지혜라면 반드시 최고의 깨달음을 성취할 것만 같구나. 만약 그가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게 된다면, 우리 마군들은 온전하기가 어렵겠구나."

"아버지, 저희에게 맡기세요. 저희 땅하(Tanha, 渴愛 갈애), 아라띠(Arati, 嫌惡 혐오), 라가(Raga, 貪欲 탐욕) 세 자매라면 그깟 수행자 한 명 타락시키지 못하겠어요?"​

마왕의 딸들은 가무를 펼치고, 온갖 애교와 아양으로 수행자를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싯다르타의 마음은 마치 수미산과 같았습니다. 조금의 요동조차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왕의 딸들에게 거울을 보라고 했습니다. 거울 속에는 세 딸의 빼어난 외모는 사라지고, 백발에 이가 다 빠지고 앞도 잘 보지 못해 지팡이에 겨우 의지해 서 있는 노파의 모습이 비추었습니다. 그녀들은 통곡하며 마왕의 궁으로 돌아갔습니다.

분노가 극에 달한 파순은 무력으로 싯다르타를 굴복시키려 결심했습니다. 파순은 온갖 독사, 불을 뿜는 괴물등 무서운 악귀들과 칼과 창으로 무장한 강한 마군을 이끌고 다시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거센 비바람과 큰 불을 일으키는 등 여러 술수를 부려 수행자를 겁박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어떤 적의도 품지 않고 오히려 큰 자비심을 내었습니다. 그러자 마왕의 부하들이 싯다르타를 공격하려는 어떠한 행동도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거센 바람은 싯다르타의 옷자락도 흔들지 못했고, 폭풍우로도 물방울 하나 적시지 못했습니다. 화살을 퍼부어도 모두 꽃송이로 변해 버렸고, 칼과 창은 모두 꽃잎이 되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싯다르타가 한 손으로 땅을 가리키자, 대지가 사방으로 크게 진동하더니 연꽃을 담은 화병을 들고 땅의 신[地神지신]이 솟아 올랐습니다.

당황하는 마군들 앞에 싯다르타는 지신이 갖고 있던 물병을 세워 놓고, 만약 물병을 움직일 수 있다면, 마왕의 뜻에 따라 수행을 포기하겠다고 했습니다. 대신 물병을 움직이지 못하면 즉시 물러가 더 이상 수행을 방해하지 말라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그깟 물병 하나쯤이야 생각한 마군들이 서로 달려들어 움직이려 해 보았지만 물병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마군들이 모조리 합심하여 밧줄을 걸고 일제히 물병을 잡아 당겼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물병은 요동조차 없었습니다.

"마왕 파순이여, 그대의 군대는 욕망이며, 두 번째 군대는 혐오며, 세 번째 군대는 기갈이며, 네 번째 군대는 집착이다. 다섯 번째 군대는 나태이며, 여섯 번째 군대는 공포며, 일곱 번째 군대는 의혹이며, 여덟 번째 군대는 위선과 고집이다. 그대가 가진 무기라고는 그저 남을 경멸하는 오만함뿐이구나.

악마여, 사람들과 저 신들마저도 그대의 군대를 격파할 수 없지만, 나는 지혜의 힘으로 그대의 군대를 쳐부수리라."

그러자 지신이 말했습니다.

"가장 큰 대장부시여! 우리들이 당신을 증명하며, 당신의 굳은 결심을 지켜 주겠습니다. 당신은 인간세계는 물론 천상에서도 가장 높으신 분입니다. 오랜 세월 목숨을 다해 중생들을 보호하셨으니, 이제 그 과보로 가장 높고 가장 바른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마왕 파순, 네 이놈. 너는 이 수행자의 털끝하나 괴롭히지 못할 것이다."

지신이 증명을 하자, 다시 한 번 삼천대천세계의 국토가 크게 진동하였습니다.

"우리는 칠 년 동안이나 그를 따라 다니며 수행을 방해하였다. 그러나 언제나 단 한 치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았고, 수행하는 그에게 뛰어들 틈이 없었다. 우리는 이제 지쳤으니, 저 싯다르타에게서 떠나야겠다.'

싯다르타는 이렇게 깊은 수행과 굳센 의지로 마군의 군대와 싸워 이겼습니다. 이제 수행의 장애가 온전히 사라졌으니 깨달음을 향해 더욱 가까이 다가선 것입니다.

나무 아래 고요히 선정에 든 싯다르타는 곧 선정의 네 번째 단계에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삶의 모든 고통과 즐거움에는 다 원인이 있으니, 과거의 삶이 어떠했는지 살펴보시는 선정 속에서 전생의 갖가지 모습들이 눈앞에 선명하게 드러나는 숙명통宿命通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삶에는 또한 결과가 있으니, 중생들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깊은 선정 가운데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중생계의 나고 죽는 모습을 낱낱이 알게 되는 천안통天眼通을 터득하였습니다. 이로써 고통스러운 생사의 굴레를 끝없이 윤회하는 것은 번뇌임을 알아차리고, 번뇌의 생성과 소멸하는 과정을 바르게 알아차린 연기법緣起法을 깨우쳤습니다. 그렇게 모든 번민과 고통은 사라졌습니다. ​그에게 더 이상 번뇌는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모든 번뇌와 망상이 완전히 끊어져 모든 것을 다 알게 되는 누진통漏盡通을 얻었습니다. 선정에서 눈을 뜨니 동녁 하늘에 샛별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나는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無上正等正覺 무상정등정각]을 성취하였다."

수행자 싯다르타는 이제 부처가 되었고, 사람들은 그가 앉아 수행했던 삡팔라 나무를 '보리(菩提Bodhi, 즉 깨달음을 얻게 한 나무)'라 하여 보리수菩提樹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석가족釋迦族의 성자라는 뜻으로 석가모니(釋迦牟尼, 사까무니 Sakyamuni) 부처님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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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미술여행 - 부처님이 오시다(毘藍降生)
문화

사찰미술여행 - 부처님이 오시다(毘藍降生)

부처님 자취 그려 사람들 깨달음으로 인도

▲ 석가탄생도, 조선전기, 견본채색, 145.0×109.5㎝, 일본 후쿠오카 혼가쿠지.

그 옛날 우리들에게로 오셨던 부처님의 탄생장면은 불화로 그려진 팔상도에서 살필 수 있다. 일반적으로 부처님의 일생을 살필 수 있는 불화는 8장면으로 구성된 팔상도를 떠올리지만 부처의 일생을 표현한 도상에는 도를 깨닫는 장면과 열반에 드시는 2장면만을 다룬 것에서부터 여기에 탄생과 초전법륜 장면이 더해 4장면으로 구성된 것도 있고 9장면과 10장면으로 나눠진 것도 있어 표현방식에 다양함이 있다. 주로 소승불교를 믿는 남방불교권의 불전문학에서는 4가지 장면으로 표현되는 방식이 선호되었지만 북방불교권의 대승불교 불전문학에서는 이것이 더욱 구체화되어 8개의 장면으로 확대 전개된다. 미술품으로 표현한 작품의 주제도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예를 들면 인도의 것은 주로 성도 이후의 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에 반해 중국의 팔상은 출가 전 세속의 생활에 중점을 두는 특징이 있다.

부처님 일생 도상화한 팔상도 구성순서는 ‘석보상절’과 동일 장면 4개로만 구성한 남방불교 인도는 성도 이후 사건 초점

우리나라의 팔상도는 부처님 전생인 도솔천의 호명보살이 마야부인의 태속으로 흰 코끼리를 타고 들어가는 마야 부인의 꿈을 표현한 ‘도솔래의’로 시작된다. 그리고 ‘비람강생’ ‘사문유관’ ‘유성출가’ ‘설산수도’ ‘수하항마’ ‘녹원전법’ ‘쌍림열반’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나머지 7장면이 순차적으로 구성되는데 우리나라 팔상도의 구성순서는 세조가 지었다는 ‘석보상절’에 소개된 순서와 동일하다. 부처님이 일생 동안 겪으신 일을 그림으로 엮어서 보이는 이유를 ‘부처님의 도리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도 팔상을 넘지 못하고 중지함을 안타깝게 여기며 인간세상에서 부처님의 도리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출생하신 곳과 종신한신 곳의 출처를 선명하게 알리노라. 세존께서 성도하신 것을 그림으로 그려서 시초와 종신하신 곳의 자취를 넣어 놓았으니 사람마다 쉽게 깨달아 삼보에 귀의하여 소망을 이루기 바라노라’라고 ‘석보상절’의 서문에는 기록하고 있다. 2세기 전후 인도 시인 마명이 부처의 생애를 시적으로 서술한 ‘불소행찬(Buddhacarita)’에는 전생담을 배제하고 도를 이루신 현생으로만 구성되어 있음에 반해 ‘석보상절’에 소개된 부처님은 초월력과 자비심을 강조하여 고난에 처한 인간을 구제하는 신앙의 대상으로 되어 차이를 나타낸다.

팔상도는 사찰의 대웅전이나 영산전, 팔상전 등 석가모니 부처님과 관련 있는 전각에 걸리게 되는데 팔상의 모습 가운데 부처가 태어나시는 장면을 도상으로 표현한 것이 비람강생상이다. 비람강생이라는 뜻은 룸비니동산으로 내려와 태어나셨다는 말로 도솔천에서 본인이 서원한 바에 따라 본인의 선택과 의지에 의하여 탄생하였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사월초파일은 부처님이 오신 날이라 표현한다. 우리나라 불화로 가장 오랜 된 비람강생도는 일본 혼가쿠지(本岳寺)에 소장된 ‘석가탄생도’이다. 한 화면에서 시간적 차이를 두고 싯다르타 태자의 탄생과 관련된 여러 장면을 다루고 있는 이 그림은 세종이 ‘석보상절’에 부합하기 위해 석가모니 일대기를 시로 지었다는 ‘월인천강지곡’에 도상적 근거를 두고 있다는 기존의 연구가 있으며 특히 화면 중앙 정방형의 단 속에 그려진 내용은 ‘월인석보’의 ‘비람강생’ 판화와 거의 일치한다.

▲ 비람강생, 1459년, 35×40㎝, 월인석보 팔상판화 부분, 서강대 도서관.

혼가쿠지 ‘석가탄생도’의 이야기 전개는 화면을 바라보는 우측 중단부에서 무우수 나무를 잡고 있는 마야 부인의 출산장면으로 시작된다. ‘불본행집경’에 의하면 마야 부인이 나뭇가지를 잡자마자 부인의 꿈속에서 호명보살이 들어갔던 오른쪽 옆구리를 통해 태자가 태어났는데 출산을 하며 상처도 없고 아픔도 없었기에 마야 부인의 표정은 고요하고 평온하다. 부처님이 마야부인의 옆구리를 통해 세상에 나왔다는 표현을 인도에서는 사실적인 조각 작품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조선 전기 팔상도에서는 부인의 오른쪽 소매 깃에서 합장한 자세로 앉아 있는 동자의 모습으로 은유적인 표현을 하고 있다.

그 장면 아래 어린 아이가 오른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는 모습은 싯다르타 태자가 인도에서 완성의 수를 뜻하는 7걸음을 걸어 장차 깨달음을 이루고 이를 널리 펼칠 것을 다짐하는 모습이다. 사람이 죽어 다시 태어나는 인연과 이치를 설법한 ‘정법념처경’에 따르면 선행을 닦은 사람이 다시 태어난 천상의 숲은 그 이름이 연화화생이며 그 숲에서 유희할 때 옮기는 한 걸음 한걸음마다 줄기는 비유리로 되어 있고 꽃술은 금강으로 되었으며 잎은 진금으로 된 연꽃이 피어나서 그 발을 받든다고 한다. 싯다르타 태자 주위 바닥의 정방형으로 표현된 연꽃은 천상의 연화화생 숲에서처럼 동서남북으로 걸었던 각각의 걸음걸이마다 땅에서 연꽃이 피어났음을 표현한 것이다.

다음은 태어난 석가모니를 사천왕이 하늘의 비단으로 안아 금궤 위에 앉히고 제석과 범왕이 여러 가지 향을 뿌리는 장면이다. 그 위로는 아홉 마리의 용이 향기로운 물을 내려 보살을 씻기는데 왼쪽 물은 덥고 오른 쪽 물은 차다고 한다. 몸을 씻은 뒤 태자는 말없이 세상의 아기와 같아졌는데 그 다음은 제석과 범왕이 천의로 태자를 둘러싸 채녀에게 안겨 주면 그녀가 화면 중앙 마야부인이 있는 곳으로 아기부처님을 모셔가고 있다. 화면 하부 정방형으로 뚫어진 네 개의 사각우물은 마야부인이 몸을 씻은 팔공덕수를 표현한 것이다. 부처가 태어나는 극적인 상황을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보여주던 조선전기 비람강생 도상에 비해 조선후기 도상은 산만한 구성과 생략으로 인해 화면은 설명력을 잃고 도상이 해체되는 현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부처님의 탄생에 천지만물이 상서로움을 보였으며 깨달음을 얻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몸을 나투신 까닭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모습들은 시대가 바뀌어도 계속해서 전승되고 있다.

▲ 석가모니 부처의 탄생, 쿠산시대, 라호르박물관.

일반적인 인간의 출생과 달리 태아가 산모의 옆구리를 통해 태어났다는 것은 그 존재가 평범한 인간과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힌두설화에 의하면 산모의 옆구리로 출생한 사람은 출산의 고통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깨달음을 얻기 위해 이 세상에 온 정확한 이유를 잊지 않고 태어난 존재라고 한다. 때문에 부처님은 태어나자마자 아무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일곱 걸음을 걸으며 그 자리에서 ‘나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태어났으며 세상의 이익을 위해 태어났고, 이것이 세속적인 존재의 마지막 탄생이다’라고 말씀하셨나 보다. 그렇다면 출생의 고통으로 그것을 잊어버려서 그렇지 이 글을 쓰는 필자도 이 글을 읽는 독자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깨달음을 얻어 가기 위한 자신의 숙제를 가지고 이 땅에 왔다는 말이다. 죽음을 이야기 할 때 우리는 흔히 돌아가셨다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세상이라는 학교에 와서 깨달음을 이루고 다시 돌아가야 하는 존재들인가 보다. 부처님은 고맙게도 득도하시는 순간부터 열반에 드시기까지 끊임없이 우리들에게 깨달음을 얻는 방편을 일러주셨지만 게으르고 어리석은 중생은 입으로 말하지만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태어나며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걸음을 떼셨고 열반에 들면서 자기 자신 이외 그 무엇도 의지처로 삼지 말라던 부처님의 말씀을 오신 날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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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중생의 여섯 갈래길, 육도윤회 ​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중생의 여섯 갈래길, 육도윤회 ​

'저승은 어떤 곳일까?', 아마 인류 역사이래 끊이지 않는 질문가운데 하나가 사후세계가 아닐까요. 누구나 알고 싶지만, 가 본적이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갔었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표현이 정확합니다. 전생에 대한 기억이 없으므로 당연히 사후세계도 생각나지 않는 것입니다.

저승세상을 그린 '신과 함께'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주인공이 저승에 도착해 재판을 받는 내용을 통해 비록 영화였지만 우리는 저승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판관들은 그의 결백을 믿기보다는, 일단 생전의 모습을 낱낱이 살피며 잘못을 찾는 일에 온 힘을 쏟습니다. 때문에 우리를 변호해 주는 지장보살의 자비가 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저승에 도착한 중생은 생전의 업에 대해 재판을 받게 됩니다. 재판관은 열 분의 대왕으로 명부시왕冥府十王이라 불립니다. 시왕마다 다스리는 지옥이 있어, 재판에서 유죄로 판결나면 해당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우리가 살아있을 때 어떤 모습이었는지, 생전의 기록은 무서우리만치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업경대業鏡臺라는 거울이 있는데,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를 마치 영화처럼 되돌려 보는 신비한 장치입니다.

업경대 옆에는 나졸이 지켜보는 가운데 저울 위로 올라 선 사람의 초조한 눈빛이 느껴집니다. 반대편의 돌덩이는 유죄와 무죄의 기준입니다. 몸무게를 재는 거울이 아니라 죄의 무게를 달아보는 저울입니다. 만약 저울이 사람쪽으로 기운다면 결과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합니다.

외모에 신경쓰며 노력하는 다이어트는 잠깐이지만, 저울 위에서 정해지는 몸무게는 한평생을 정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어떤 다이어트가 더 중요한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혹시 모를 과거의 잘못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선행을 부지런히 닦아야 합니다.

< 열 가지 지옥 >

  • 도산지옥(제1 진광대왕)

첫 번째 맞이하는 재판관으로 진광대왕은 망자가 살아 생전에 공덕이 있는지 없는지를 가늠합니다. 만약 도산지옥에 갇히게 되면, 칼날로 이루어진 산을 맨발과 온몸으로 기어올라 살점이 모두 떨어져 나가는 형벌을 받습니다.

  • 화탕지옥(제2 초강대왕)

초강대왕은 남의 물건을 훔쳤는지, 빌린 것을 돌려주지 않았는지, 베풀지 않고 받기만 했는지 등을 판결합니다. 화탕지옥에서는 활활 타오르는 불길 위 끓는 쇳물 속에 죄인을 집어넣어 삶는 형벌로 상상도 못할 무서운 고통을 받게 됩니다.

  • 한빙지옥(제3 송제대왕)

송제대왕은 부모에게 효도를 했는지, 화목한 가정을 이루었는지, 주변 어른들을 존경했는지를 재판합니다. 송제대왕이 다스리는 한빙지옥은 죄인을 얼음 속에 가두는 지옥입니다. 죄인들이 구덩이에 빠지면 세찬 얼음바람으로 꽁꽁 얼려버려 뼈와 살이 모두 찢기는 고통을 받습니다.

  • 검수지옥(제4 오관대왕)

살인이나 도둑질, 음행, 거짓말, 음주등 오계를 어긴 사람은 검수지옥에 떨어집니다. 이곳의 숲과 들판에는 나뭇잎과 나뭇가지, 풀 등이 매우 날카로운 칼날로 우겨져 있어, 스치기만 해도 살점이 뚝뚝 떨어져나가는 무서운 지옥입니다.

  • 발설지옥(제5 염라대왕)

염라대왕은 저승시왕의 재판가운데 다섯 째로 만나는 왕으로, 험한 욕을 하거나, 거짓말, 말재간으로 남을 속인 사람 등 입으로 지은 죄를 재판합니다. 발설지옥에서는 혀를 뽑아 그 위에서 소가 밭을 갈 듯 쟁기로 혀를 파내어 갈아엎는 형벌을 내립니다.

  • 독사지옥(제6 변성대왕)

이곳은 발설지옥을 거치고도 남은 죄가 있는 사람을 골라내어 추가로 형벌을 주는 곳입니다. 말 그대로 징그럽고 날카로운 이를 가진 독사가 우글우글한 동굴에 죄인을 가두고 온 몸을 물어뜯게 하여, 죄를 뉘우치게 만듭니다.

  • 거해지옥(제7 태산대왕)

나쁜 음식을 팔거나, 쌀을 속여서 파는 등 먹거리로 사람에게 해를 입힌 사람을 재판합니다. 거해지옥에서는 죄인을 틀에다 묶고 온몸의 뼈와 살을 톱으로 썰어 도려내는 잔인하고 끔찍한 형벌이 주어집니다.

  • 철상지옥(제8 평등대왕)

철상지옥은 사람들에게 사기를 쳐 재물을 모은 사람이 가는 곳입니다. 철상이란 날카롭고 무시무시한 쇠못이 빼곡히 박힌 침상입니다. 이곳에 죄인을 눕혀 묶거나 구르게 하고, 또 온뭄에 긴 못으로 찔러 구멍을 내는 무서운 형벌을 내리는 지옥입니다.

  • 풍도지옥(제9 도시대왕)

이곳은 남편이나 아내가 있으면서도 다른 이성에 끌려 부정한 행동을 한 사람들이 갇히는 지옥입니다. 옥졸들이 당겨 올리는 조그만 추는 떨어질 때 엄청나게 커지면서 아래의 죄인들을 빻아 가루로 만들고, 살을 에는 바람이 불어와 몸을 갈기갈기 찢는 형벌을 받게 됩니다.

  • 흑암지옥 (제10 오도전륜대왕)

아홉 분의 명부대왕 즉, 각각의 지옥을 무사히 통과한 중생은 마지막 순서로 오도전륜五道轉輪 대왕의 재판을 받습니다. 만약 이 재판에서 유죄로 판명되면 흑암지옥에 떨어지는데, 밤도 없고 낮도 없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지옥입니다. 오도五道는 육도윤회六道輪廻가운데 지옥을 제외한 다섯입니다. 일설에는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3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신중한 판결을 내리기 위해 변론의 기회가 부여되고, 서로 치열한 공방을 벌이다보면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제 마지막 판결에 따라 다섯 곳의 세상으로 다시 태어나므로, 대왕의 이름이 오도전륜입니다. 사람이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축생은 몸을 바꿔 좋은 곳에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그보다 더 못한 짐승으로 윤회하기도 합니다. 마지막 판결에 따라 갈 곳을 정하는 판관들의 모습이 엄숙하면서도, 판결을 기다리는 여러 갈래의 중생들 표정이 천진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육도윤회는 천상, 인간, 수라, 축생, 아귀, 지옥의 여섯 갈래길을 말합니다. 이 가운데 지옥을 제외한 다섯 갈래로 중생은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천상, 인간, 수라를 삼선도三善道라 하여 그나마 좋은 세상으로 분류하고, 그 아래로 지옥, 아귀, 축생은 나쁜 몸으로 태어나는 과보이기에 삼악도三惡道라고 부릅니다.

그림 속에 구름처럼 퍼지는 장면을 보면, 맨 위로 올라가는 중생은 천상으로 태어나는 분들입니다. 그 바로 아래로 줄지어 나가는 이들은 다시 인간의 삶으로 태어나는 중생들입니다. 그리고 차례대로 수라, 아귀나 축생의 몸을 받아 저승을 떠나 새롭게 윤회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윤회및 환생에 관련된 자료는 네이버 검색창에 '래용의 잡설'을 치시면 ① 나는 환생을 믿지 않았다 ② 왜 우리는 윤회, 환생사상에 환호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역사적 기록및 사실증명에 관한 자료들이 많이 있으니 참조바랍니다

< 배고픈 귀신 아귀 >

지옥, 아귀, 축생의 세 곳은 육도 가운데 나쁜 곳이기에 삼악도를 삼악취三惡趣라고도 부릅니다. 축생이 짐승의 몸으로 윤회하는 것이라면 아귀는 배고픈 귀신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살아 생전에 탐욕스럽고 인색하여 보시를 하지 않았다거나, 먹을 것에 욕심이 많고 또한 음식을 남겨 버리게 되면 아귀의 몸을 받습니다.

아귀의 모습은 지옥과 별반 다르지 않기에 이곳은 아귀지옥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아귀는 태산처럼 커다란 배를 갖고 있습니다. 배를 채우려면 엄청난 양을 먹어치워도 모자랄 판에, 목구멍은 밥 한 톨 겨우 넘어갈 정도로 가느다랗게 생겼습니다. 더구나 입에서는 불이 뿜어져 나와 입으로 들어간 음식은 모두 타버립니다. 결국 아귀는 평생을 배고픔과 갈증에 시달리며 벌을 받는 배고픈 귀신으로 지내게 됩니다.

저승이 어떤 곳인지 모른다지만, 사실 지난 저승에서의 경험이 기억나지 않을 뿐입니다. 우리는 모두 저승에서의 재판을 통해 육도 가운데 인간세상으로 윤회했습니다.

​ 육도의 어느 곳으로 가게 되는지, 자신을 돌아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명부시왕이 중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무서운 재판 앞에서 반드시 생전에 선한 업을 쌓아야만 좋은 세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판결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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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4편 팔살성도 7.8장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4편 팔살성도 7.8장

  1. 녹원전법상 鹿苑轉法相

보리수 아래, 정각을 이룬 부처님은 그 곳에서 49일간 진리의 기쁨을 맛보았지만, 마지막 순간 잠시 주저하고 계셨습니다. 과연 누가 이 진리를 알아들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던 것입니다. '어렵게 도달한 이 법은 완벽하며, 최고의 진리이다. 그러나 이 진리는 깊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가 어렵다. 오직 지혜를 갖춘 이라야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중생의 근기가 낮으니 과연 누가 알아차릴 수 있을까.'

세상에 진리를 알려준다 한 들, 잘못된 견해에 사로잡혀 있는 중생들은 오히려 진리의 세계를 이해하기는 커녕 나아가 부처님의 법을 비방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그 때 하늘의 범천이 부처님 앞으로 나서서 인연있는 중생마저 저버리지 말아달라고 간청을 드렸습니다.

범천이 간곡하게 부탁을 올리자, 자비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한 번 살펴 보셨습니다. 그리고 중생의 근기가 각기 다르니 마치 더러운 연못에서도 연꽃이 피어나듯, 분명 진리을 이해하는 이가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중생을 위해 가르침을 펴기로 결심을 하셨습니다.

'연못에는 여러 종류의 연꽃이 있어 아직 물 속에 잠겨 있는 것도 있고 간신히 수면에 고개를 내 놓고 있는 것도 있다. 또 어떤 것은 수면으로 부터 훨씬 올라와 꽃을 피웠으니, 진흙탕 속에 살면서도 더러움에 불들지 않는구나.'

우선 부처님은 진리를 알아 들을 만한 사람이 누가 있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거 함께 수행했던 다섯 명의 수행자가 떠 올라 천안으로 살펴보니, 그들은 바라나시Varanasi에 있는 '선인들이 머무는 사슴동산, 녹야원(migadāya, 鹿野苑)'에서 여전히 수행 중이었습니다. 부처님은 이들을 찾아 녹야원으로 떠났습니다.

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바라나시의 녹야원으로 가는 여정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밤낮을 쉬지 않고 걸어도 족히 20여 일은 걸리는 먼 거리입니다. 그 길은 인도의 뜨거운 태양 아래, 가뜩이나 수행으로 쇠약해진 몸으로, 오로지 제자를 찾아 맨 발로 떠나신 고단하고 긴 여정이었습니다.

그들은 아직 고따마가 부처님이 되셨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다섯 수행자는 고따마가 자신들을 향해 오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저기 타락한 수행자 고따마가 오고 있다."

"그는 고행을 버리고 여인에게 맛있는 음식이나 받아 먹었다. 그런 자에게 우리가 뭘 기대하겠는가?"

"고따마가 다가와도 우린 그냥 본척 만척 하세나."

다섯 수행자는 서로 그렇게 합의를 보았는데, 멀리서 부터 다가오는 부처님을 가만히 보니 이미 예전에 그들이 알고 있던 고따마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부처님을 바라봤을 때, 온화한 얼굴과 몸에서 뿜어 나오는 광채에 도무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한 명은 부처님의 발우을 받아 들고, 한 명은 부처님께서 앉으실 자리를 준비했고, 또 다른 이는 발 씻는 물을 떠 왔습니다.

"고따마여, 어서 오십시오. 먼 긴을 오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자 이쪽으로 앉으십시오."

"그대들은 여래如來를 고따마라 부리지 말라. 완전히 깨달은 부처님을 예전의 벗처럼 대해서도 안 된다."

그들은 보고 있으면서도,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나는 너희 생각처럼 타락한 적도 없었고,선정을 잃어버린 적도 없다. 나는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었으며, 죽지 않고 영원히 변함없는 진리를 성취했노라."

그리고 그들에게 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드디어 세상을 향해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수행자들이여, 두 가지 극단을 떠난 중도中道가 있다. 그것은 눈을 밝게 하고, 지혜를 증장시키며, 번뇌를 떠나 고요함에 머물게 한다. 신통을 이루며, 평등한 깨달음을 얻어 미묘한 열반에 이르게 한다. 수행자들이여, 중도란 무엇인가? 그것은 지혜롭고 성스러운 팔정도八正道가 그것이다."

이어서 사성제 四聖諦, 연기법緣起法등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몇 날 몇 밤에 걸쳐 말씀해 주셨습니다. 부처님의 법을 듣고 맨 처음으로 깨닫는 이는 교진여였습니다.

"교진여는 깨달았다. 교진여는 깨달았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세존께 출가하여 계를 받고자 하나이다."

"오라. 비구여!"

이렇게 하여 다섯 수행자가 최초로 비구스님이 되었고, 모두 아라한阿羅漢의 경지를 성취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시고, 오비구五比丘가 법을 들어 깨달음을 이룬 것이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입니다.

녹원은 '녹야원鹿野苑'의 준말이며, 법을 전했다는 의미에서 전법轉法입니다. 법을 전하는 것이 마치 어딘가을 갈 때 수레바퀴 달린 마차를 타고 이동하듯,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해 진리를 보게 되므로, 이것을 '진리의 수레바퀴 [法輪법륜]를 굴린다'고 말합니다.

부처님과 제자들은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려 수 많은 중생을 교화하셨고, 다섯 비구에서 시작한 교단은 셀 수 없을 만큼 출가자와 재가자들이 귀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인도 전역을 넘어 전 세계로 전파되었으며, 이제 부처님은 모든 중생의 가장 큰 스승으로 섬겨지게 되었습니다.

  1. 쌍림열반상 雙林涅槃相

보리수 아래, 최상의 깨달음을 이루시고 어언 45년이 지났습니다. 부처님의 연세도 여든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열반에 들 날도 멀지 않았구나. 나의 가르침 가운데 의심스러운 부분이 남아있는 사람은 미루지 말고 물어라."

갑작스런 말씀에 대중들 사이에는 고요한 침묵만이 흘렀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새하얀 연꽃을 대중들에게 말없이 들어 보였습니다. 제자들은 어리둥절하며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무슨 연유인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때 여러 제자 가운데 오직 한 사람, 가섭(迦葉, 마하깟사빠 산스크리트어: Mahākāśyapa)존자만이 빙그레 웃으셨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법을 가섭에게 부촉하니, 그대는 잘 보호하며 널리 전하여 끊어지지 않도록 하라."

"아난아, 발우와 가사를 들어라. 베살리로 갈 것이다."

부처님은 늙으신 몸을 이끌고 왕사성의 영축산을 뒤로 하고 북쪽으로 길을 정해 강가 강을 건너 밧지족의 수도 베살리에 이르렀습니다. 그해 베살리에는 심한 기근이 찾아 왔었습니다. 때문에 많은 비구들이 한꺼번에 탁발을 다니기가 어려웠습니다.

"비구들이여! 베살리 근처에서 흩어져 지내도록 하라. 뜻이 맞는 가까운 사람들끼리 어울려 이 우기를 이겨내라. 나는 벨루와Beluva마을에 머물며 안거할 것이다."

비구들을 떠나 보낸 뒤 부처님께서는 무더위로 몸이 허약해져 심한 병을 앓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병의 고통을 정진의 힘으로 견뎌냈습니다. 어느 날 병세가 조금 회복되자 거처에서 나오신 부처님은 나무 그늘 아래에 자리를 펴고 쉬고 계셨습니다. 아난은 이런 부처님의 모습을 보는 것이 괴로워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부처님의 병환을 지켜보면서 두려움에 앞이 캄캄했습니다. 앞으로 저희들이 어떻게 해야 된다는 말씀도 해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많이 걱정했습니다."

"어난아, 나는 이제까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진리를 다 가르쳤다. 진리를 가르치는 일에 인색해 본 적도 없다. 아난아, 내 나이 여든이다. 이제 내 삶도 다하고 있구나."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계시지 않으면 저희는 누구를 믿고, 무엇에 의지해야 합니까?"

"아난아, 너 자신을 등불로 삼고, 너 자신에게 의지하여라. 법을 등불로 삼고, 법에 의지하여라. 법을 떠나 다른 것에 매달리지 말라."

그리고 부처님은 아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베살라에 흩어져 있는 제자들을 불러 한 곳에 모이도록 하여라."

며칠 후 흩어져 있던 제자들이 다시 부처님 계신 곳으로 모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마음을 닦는 네 가지 수행법인 사념처四念處, 수행에 필요한 다섯 가지 힘인 오력五力, 깨달음을 얻기 위해 필요한 일곱가지 분별법인 칠각지七覺支 그리고 깨달음을 향하는 여덟 가지 바른 방법인 팔정도八正道등 '37조도품'이라고 불리는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방법을 하나 하나 상세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당부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여래의 가르침을 잘 기억하고 잘 헤아리고 잘 분별하여, 그에 맞게 부지런히 수행해야 한다. 세상은 덧없고 무상한 것이다. 나도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대들 스스로 잘 닦아 나아가도록 하라."

제자들은 땅에 쓰러져 통곡하며 울부짖었고, 하늘과 땅이 뒤집힐 듯 대지가 진동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입멸할 때가 가까워온 것입니다. 부처님은 베살리를 떠나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장장이 춘다Cunda의 땅에 도착했습니다. 춘다는 부처님 일행을 초대하여 공양을 올렸습니다. 특별히 전단나무에서 나는 귀한 버섯으로 요리를 만들었습니다.

부처님은 그 음식을 보시고, "이 버섯요리는 다른 비구들에게 주지 말고, 나머지는 모두 땅에 묻어 버리세요."라고 하셨습니다. 버섯요리가 상한 것을 아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춘다의 성의를 생각하여 받으신 공양은 혼자 다 드셨습니다. 그리고는 춘다에게 법문을 설해 주셨습니다.

공양과 설법을 마치고 부처님은 춘다의 집을 나섰지만, 몇 걸음을 채 옮기기도 전에 심한 복통이 찾아왔습니다. 고통을 참으며 길을 재촉했지만, 마을을 벗어난 곳에서 자리를 깔고 누우셔야 했습니다.

"아난아, 등이 아프구나. 잠시 쉬어가자."

부처님께서는 행여 이 일로 자책하고 있을 춘다을 염려하여, 아난을 돌려보내 이렇게 말을 전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춘다여,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러 왔습니다. 부처님께서 도를 이루셨을 때 최초로 올린 공양과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 마지막으로 올린 공양은 그 공덕이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대는 여래에게 마지막으로 공양을 올렸기에 큰 이익을 얻어, 수명이 늘어나고 건강할 것입니다. 그리고 명예와 재물이 늘어나고, 죽어서는 하늘에 태어날 것입니다."

춘다에게 보냈던 아난이 돌아오자, 잠시 휴식을 취하시던 부처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꾸시나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저녁 무렵 말라족의 땅사라나무 숲에 당도하였습니다. 사라나무 숲에는 때 아닌 꽃들이 만발하였고, 여러 꽃들의 향기가 진동하고 있었습니다.

"아난아, 저 두 그루 사라나무 사이에 자리를 펴다오."

부처님은 북쪽으로 머리를 두신 채 오른 쪽 옆구리를 바닥에 붙이고 두 발을 포개어 누우셨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삼매에 드셨습니다. 두 그루의 사라나무에서는 어느 순간 꽃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어찌 이 궁핍하고 황량한 벌판에서 열반에 드시려 하십니까? 멸도하시더라도 왕사성이나 베살리 같이 큰 도시에서, 부처님을 기다리는 수 많은 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시옵소서."

"아난아, 이 곳을 작고 궁핍한 숲이라고 말하지 말라. 비록 미천한 집일지라도 법의 왕이 한 번 머물면 또한 영광스럽지 아니하겠느냐?"

"...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다면 장례는 어떻게 치러야 합니까?"

"너희 비구들은 걱정하지 말라. 나의 장례는 재가불자 우바새와 우바이들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아난아, 말라족에게 가서 전하라. 오늘 밤 여래가 사라나무 숲에서 열반에 들것이라고."

아난존자는 흐느끼며 마을로 갔습니다.

"여래께서 열반에 들려 하시며, 여러분이 부처님을 뵙는 것도 오늘 밤이 마지막이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이고, 부처님 ... 흑흑흑"

"부처님은 무엇이 그리 급하시어 벌써 멸도에 드시는 것입니까 ..."

말라족 사람들은 커다란 슬픔에 피를 토하며 통곡하였습니다.

"여러분, 슬퍼하지 마십시오. 생겨 난 모든 것은 사라지는 법이라고 부처님께서 늘 말씀해 주셨습니다. 인연을 얽매여 붙잡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만나면 헤어지고, 태어나면 받드시 죽는다고 늘 말씀하셨던 것을 잊으셨습니까?"

그렇지만,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 아난도 울음을 참을 수는 없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누워계신 처소에는 수 많은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그날 밤 부처님의 마지막 제자가 된 수밧다가 가르침과 구족계를 받아 지녔습니다. 그리고 수밧다가 물러가자, 부처님께서 조용히 눈을 감으셨습니다. 잠시 후 힘겹게 눈을 뜨시더니 아난을 찾았습니다.

"아난아, 눈물을 거두어라. 오랫동안 너는 나를 위해 애써왔다. 이 세상 누구도 너처럼 여래를 잘 섬기지는 못했을 것이다. 더욱 열심히 노력하라. 머지않아 너도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그리고 잠시 침묵을 이어가던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죽은 뒤에는, 내가 가르친 법과 율이 너희를 보호하리라. 오늘부터 소소한 계율은 버려도 좋다. 서로가 화합하여 예의와 법도를 잘 따르도록 하라. 비구들아, 모든 것은 변하고 무너진다.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 나는 게으름 없이 열심히 수행했으므로 바른 깨달음을 얻었느니라."

부처님께서는 마지막 유훈을 남긴 후, 선정에 든 채 열반에 드셨습니다. 대지가 크게 진동하고, 깜깜한 어둠이 대낮처럼 밝아왔습니다.

날이 밝아오자 소식을 듣고 사라나무 숲으로 달려온 사람들은 하루 종일 향과 꽃을 바치고, 흰 천으로 몇 겹의 천막을 만들면서 분주히 그 날을 보냈습니다. 이튿날 '부처님의 유해를 오늘 바로 장례를 치르는 것은 때에 맞지 않다. 하루만 더 준비를 하자'며 전날과 마찬가지로 음악과 춤, 꽃, 향등을 바치며 공양을 올렸습니다. 그렇게 하루만 하루만 하더니 벌써 6일이나 지나갔습니다.

7일 째가 되어서야 부처님의 장례가 치러졌습니다. 그런데, 다비식을 시작하려고 준비된 장작에 불을 붙이려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나무에 불이 붙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나서서 불을 붙여 보았지만, 마치 물에 젖은 나무인 것 마냥 이내 불이 꺼지고 말았습니다.

그즈음, 부처님의 장례가 준비되고 있을 무렵, 부처님의 법을 물려받은 가섭존자와 오백 명의 비구들은 인도의 다른 지역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윽고 부처님께서 멸도에 드시고 장례를 치른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슬픔에 잠긴 채 부랴 부랴 사라나무 숲으로 달려오던 중이었습니다.

그렇게 나무에 불이 붙지 않아 우왕좌왕하던 사이, 뒤늦게 가섭존자와 5백 명의 비구가 도착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존자를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아난이여, 부처님을 직접 뵙고 싶습니다."

"안 됩니다. 이미 다비식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입니다."

"아난이여, 부처님께 마지막 예를 갖출 수 있도록 해 주세요."

"가섭존자님, 곤란합니다 ..."

그 때였습니다. 부처님을 모셨던 황금 관에서 갑자기 부처님께서 두 발을 불쑥 밖으로 내미셨습니다. 가섭은 조용히 부처님의 발에 이마를 조아리고 오른 쪽으로 세 번 돌았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두 발을 다시 관 안으로 거두셨습니다.

그 순간 장작더미에는 저절로 불길이 솟았습니다. 커다란 불길을 뒤로하고 가섭을 비롯한 장로 비구들은 대중을 향해 부처님께 들었던 가르침을 설법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불길이 사그라지자 말라족은 부처님의 사리를 잘 수습하였습니다.

얼마 후 인도 전역의 각 국에서 사신들이 당도했습니다. 그들은 실질적으로 인도를 지배하는 7대 대국을 대표하여 부처님의 열반을 애도하려고 모인 사절단이었습니다.

"부처님은 우리 모두의 위대한 스승이십니다. 우리가 부처님의 사리를 모셔가 탑을 세우고 공양을 올리고 싶습니다."

그러자 장례를 주관했던 말라족은 거절을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곳에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이 곳에 탑을 세워 부처님께 공양을 올려야 마땅합니다. 그러니 사리를 나눠 드릴 수 없습니다."

급기야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모두가 군사를 동원해 힘으로 빼앗아 가겠다며 난리였습니다. 그러자 아사세왕(阿闍世王, 아자따삿뚜 Ajatasattu)의 사신으로 온 도나Dona는 공평하게 여덟 등분으로 나누어, 온 세상에 부처님의 사리탑을 세우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리하면 모든 사람이 부처님을 가까이에서 뵐 수 있다고 설득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도나의 말에 동의했습니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사리는 모두 여덟 등분으로 나뉘어 졌습니다. 그리고 사리를 분배할 때 사용한 용기들은 도나가 한 곳에 모아 탑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각 국의 사신들과 말라족이 떠났고, 뒤늦게 몰리야족이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모든 사리의 분배가 긑난 터라 사리를 얻지 못하게 되자, 다비 후 남아있는 재들을 긁어 모아서 갖고 돌아가 탑을 세웠습니다. 이로써 모두 열 개의 탑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 룸비니에서 꾸시나라까지 >

세상의 모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하늘 나라 도솔천에서 내려와, 룸비니에서 꾸시나라에 이르기까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여든의 평생을 오로지 중생을 제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탄신일, 출가일, 성도일, 열반일, 이 날을 불교의 4대 명절이라고 부릅니다. 팔상성도에서도 탄신에 해당하는 비람강생상, 출가의 유성출가상, 성도의 수하항마상, 열반에 해당되는 쌍림열반상으로 4대 명절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팔상성도는 우리가 아는 부처님의 일대기에서 주요한 내용을 뽑아내어 불자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그려 낸 그림입니다.

그러나 경전에는 부처님의 수명은 상주불멸常住不滅, 즉 항상 머물러 있으며 사라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부처님께서 룸비니에서 태어나시고, 꾸시나라의 사라나무 숲에서 멸도에 드신 까닭은 무엇일까요? 마지막 순간 제자들은 부처님의 급작스런 열반을 맞아 통곡하며 부처님께 간청했습니다.

"여래께서는 무엇이 그리 급하시어 벌써 멸도에 드시려는 것입니까. 부디 저희만 두고 이렇게 가지 마옵소서..."

부처님은 만나면 헤어지는 법이고,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 것이 이치라고 말씀하셨지만, 『법화경』을 통해 보면 사실은 방편으로 열반을 나타내 보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참으로 멸도하지 않으면서도, 방편으로 '마땅히 멸도를 취取하리라'고 말하느니라. 만약 부처님이 세상에 오래도록 머무른다면, 덕이 옅은 사람들은 선근을 심지 않아 빈궁하고 하천下賤한 신분이 되더라도 오욕을 탐착하여 갖가지 부질없는 생각들과 그릇된 소견에 빠질 것이다.

또 만약 부처님이 항상 머물러 있어 멸하지 않음을 보게 되면, 교만한 생각을 일으키고, 싫증내고 게으른 마음을 품어 부처님을 만나기 어렵다는 생각과 부처님을 공경하는 마음을 내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유훈에서처럼 게으르지 않고 정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만약 부처님은 항상 머물러 계신다는 것을 보게되면, 자칫 중생들은 너무 안일하고 편안한 생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중생들은 아쉬움이 없기에 힘들게 수행하려는 마음을 내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만나 뵙기 어렵고, 부처님 가르침을 배울 기회 얻기는 더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매 순간 노력하는 마음을 잃지 않아야 비로소 부처님을 만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오로지 중생을 바르게 제도하기 위한 방편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2,600여 년 전 사라나무 아래에서 열반에 드시는 모습을 보이셨지만, 부처님의 광명은 지금껏 우리 곁에서 중생을 향해 무한한 대자비를 베풀며 항상 함께 머물러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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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정념스님 &quot;자리 주어지면 마다하지 않을 것&quot;..총무원장 출마 시사

월정사 주지 정념스님이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불교의 역할과 리더십을 화두로 던졌습니다. 신간 출판... 단기출가학교나 문화축전으로 대중과 소통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삼겠다고 밝혔습니다. BTN뉴스 양유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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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0
사찰 벽화이야기 - 목마 타고 승천한 동자. 칠불암 아자방.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목마 타고 승천한 동자. 칠불암 아자방.

목마 타고 승천한 동자. 칠불암 아자방.

칠불암 아자방

조선시대 중엽이었다.

하동 군수로 새로이 부임한 사또가 어느 날 쌍계사에 들른 길에

전부터 소문을 많이 들은 그 부근의 칠불암 아자방을 찾아갔다.

사또 일행이 칠불암에 다다른 때는 아자방 선원에서 스님들이 오후 참선에 들어간 때였다.

마침 뒤뜰에서 노스님 한 분이 나오길래 이방이 나서서 말을 건넸다.

“새로 부임하신 사또께서 이곳 구경을 왔소이다.”

노스님은 반가이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하지만 산중에서 공부하는 곳이라 특별히 불 만한 것이 있어야지요.”

“그런 염려는 할 것 없읍니다. 그저 아자방이나 한번 구경하고 갔으면 하오.”

노스님은 무척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공부 중이라 선방 안을 보여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사또 일은 이 말에 물러서지 않았다.

사또는 말리는 노스님을 물리치고 아자방 선원으로 성큼 올라가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뜻밖의 광경이 눈에 뜨이는 것이었다.

점심을 먹은 바로 뒤라 그런지 스님들은 식곤증에 취하여 갖가지 모습으로 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늘로 고개를 쳐들고서 조는 스님, 땅을 내려다보며 조는 스님, 좌우로 흔들거리며 조는 스님, 게다가 방귀까지 마구 뀌는 스님도 있었다. 사또는 어처구니 가 없어 이맛살을 찌푸리며 문을 닫고 내려섰다.

“이곳은 고승 대덕들이 공부하는 곳이라는 말을 들었소, 무슨 공부가 이 모양이오?”

사또는 노스님에게 꾸짖기라도 하듯이 따져 물었다.

“방 안에서 하늘을 쳐다보고 조는 것은 대체 무슨 공부요?”

노스님이 대답하였다.

“네, 그것은 양천성숙관이라고 합니다.

하늘의 별자리를 보아 일체 중생을 다 구제하려고 하는 공부입니다.”

“그러면, 머리를 숙이고 땅을 내려다보는 것은?”

​“지하망령관이지요, 한 세상 업을 짓고 죽은 지하의 망령들을

어떤 방법으로 제도합지를 한 마음으로 관하는 공부입니다.”

“제 몸 하나도 가누지 못한 채로 좌우로 봄버들마냥 흔들거리는 것은?”

​“그것은 춘풍양류관이라 하여,

유기와 무배, 선과 악, 고와 낙의 어느 한쪽에도 집착 하지 않는 관을 함으로써

오묘한 경지에 이르는 공부이지요.”

사또는 노스님의 이러한 거침없는 답변에 저으기 놀랐다.

​“그렇다면 앉아서 방귀나 풍풍 뀌는 것은 또 무슨 공부요?”

“네, 그것은 칠통타파관이라고 합니다.

무지한 사람들이 남의 말을 들을 줄 모르고 제 고집만 내세 우려는

칠후 같은 마음을 깨뜨려 주기 위한 공부랍니다.”

사또는 그에 대해 할 말이 없었다.

“그 말대로라면 과연 소문처럼 훌륭하고 기특한 데가 있겠소.

내가 숙제를 하나 내리다.

내일 안으로 동헌 뜰 에다 목마를 만들어 놓을 터이니 한번 타고 달려보시오.

만일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선방은 문을 닫고 대중들 은 크게 경을 치게 될 것이오.”

사또 일행이 떠나자 대중스님들은 크게 걱정하며 큰방에 모여 밤늦도록 의논하였으나

뚜렷한 묘책이 나오지 않았다.

그때에 맨 아랫자리에서 잠자코 앉아 있던 한 동자가 나서며 말했다.

“대중 스님들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동헌에 가서 이 일을 처리해 보겠읍니다.”

“아니, 동자가 무슨 수가 있단 말인가?”

더러는 동자를 꾸짖기도 하였으나 다른 방법이 없었다.

다음 날 동자는 과연 동헌에 가서 목마를 타고 앉았다.

그리고는 손바닥으로 말의 엉덩이를 힘껏 쳤다.

그러자 목마는 갑자기 히히형 소리를 내며 뜰을 세 바퀴 돌더니

방울소리를 올리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이었다.

그 순간 목마는 곧 푸른 사자의 모습으로 바뀌고

그 등에 탄 동자는 문수 보살로 변하여 하늘 멀리 사라져갔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문수 동자가 사라진 쪽을 향하여 합장하였다.

이 일이 있은 뒤로 사또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지극한 신심을 갖고 칠불암 아자 선원을 보살폈다고 한다.

*’목마를 타고 승천한 동자’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칠불암은

하동 쌍계사에서 북쪽으로 산길을 따라 10킬로미터쯤 올라가면 있는 절로,

가락국의 시조인 김수로 왕이 출가하여 성불한 자신의 일곱 왕자를 위하여

지었다는 유서깊은 절이다.

이 절의 오른 편에 자리잡은 아자방 선원은 방의 생김새가 특이해서 참배객의 눈길을 끈다.

신라 효공왕 때에 구들 도사 담공 스님이 축조했다고 전하는 이 아자방은

방바닥이 아 자 꼴을 하고 있는데,

무릎 높이만큼 올라온 부분이 아 자 꼴로 그 위가 좌선하는 곳으로 쓰이고

낮은 바닥은 내려와 다니는 통로로 쓰인다.

아궁이에 한 주일 몫의 장작을 때면 한 주일 동안 계속 따뜻하고

한 달 몫의 장작을 때면 한달 동안 따뜻했다고 하니 불가사의한 일이다.

이 아자방의 이중 온돌 구조는 동양 의학의 원리를 터득한 사람만이 알 수 있다고 한다.

이 절은 서기 119년에 측조되어 천년을 두고 한번도 손질하지 않다가

육이오 때에 불타서 다시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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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팔상도
불교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팔상도

부처님 생애와 불교 기본교리 이해하는 지름길

◇상주 청룡사 대웅보전 외벽의 ‘팔상도’ 중 ‘비람강생상’. 경전의 내용을 충실히 묘사한 벽화다.

사월초파일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전국의 사찰은 연등을 만들고

장엄등을 손질하는 등 축제 준비로 분주하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성인의 탄생을 기리는 대축제인 초파일.

이날 모든 불자들은 부처님이 사바 중생계에 오신 참뜻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온 이유?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 일체개고(一切皆苦) 아당안지(我當安之)’라는

탄생게가 그 이유를 설명한다.

부처님은 이 우주공간에 가장 존귀한 분으로서 일체중생의 모든 고통을 없애 편안케 하리라는 것이 그 내용이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전지전능의 신격(神格)을 갖춘 존재란 말인가?

그렇지 않다.

여기서의 유아독존은 부처님 자신을 표현한 것임과 동시에 일체중생을 말하는 것이다.

즉 모든 생명을 가진 중생이 유아독존이고 마땅히 편안할 수 있다는 선언이 탄생게인 것이다.

그래서 탄생게를 인간존엄의 선언, 생명 평등과 자유의 선언이라고 해석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모든 중생이 다 부처’라는 말일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위대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 위대한 가르침을 남긴 부처님의 삶 역시 한 편의 위대한 드라마다.

80년에 이르는 삶의 과정을 중요한 사건에 따라 8가지로 나누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 팔상도(八相圖)다.

그러므로 이 팔상도를 이해하면 부처님의 생애를 이해하고 부처님의 생애를 이해하면 불교를 이해할 수 있다.

문자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글을 잃을 줄 모르는 사람이 많던 시절에는

그림을 통해 교리나 경전의 내용을 전달하려 했다.

경전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려 붙인 것을 변상도(變相圖)라고 한다.

팔상도 역시 일종의 변상도 개념에 속한다.

팔상도는 변상도나 벽화로도 그려지지만, 팔상도를 모시는 전각도 있다.

팔상도를 모시는 전각을 영산전이라 한다.

팔상도의 처음은 ‘도솔래의상(儀相)’이다.

도솔천에서 부처님이 사바세계로 내려오는 장면이다.

부처님은 흰코끼리를 타고 있는데 길상(吉祥)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두 번째는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으로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는 장면이다.

거의 모든 경전이 이 상황을 왕족의 출생을 의미하는 옆구리로의 출생 장면,

사방 일곱 걸음을 걸으며 게송을 외치는 장면,

아홉 마리의 용이 나타나 아기부처님을 씻어 주는 장면 등으로 기술하고 있다.

신화적 요소가 강하지만 그 장면들이 갖는 상징은 크다.

위에 보인 장면은 경북 상주 청룡사 대웅보전 외벽에 그려진 팔상록의 ‘비람강생상’이다.

아기 부처님을 호위하는 호법 신장들과 왕비일행 그리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피어났다는 연꽃,

물을 뿜어 아기부처님을 씻기는 아홉 마리의 용 등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세 번째는 4대문을 나가 삶의 고통을 느끼고 인생의 유한성에 회의를 품는 ‘사문유관상(四門游觀相)’이고

네 번째는 성을 넘어 출가를 단행하는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이다.

다섯 번째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수행하는 6년여의 행적을 상징하여

앙상한 뼈만 남은 고행상으로 묘사된다.

여섯 번째는 홀로 명상에 들어 안팎에서 일어나는 번민과 고통을 이겨내는 것을 마왕과의 싸움으로

묘사한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그 다음으로 성불이후 다섯 비구를 찾아가 첫 설법을 하는 ‘녹원전법상(鹿園傳法相)’과

열반에 들어 육신으로서의 삶을 마감하는 장면을 대표하는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으로 이어진다.

부처님의 생애는 그 자체가 지극한 교훈이고 우주만물의 이치를 설명하는 교본이다.

팔상도는 부처님 생애에 담긴 불교의 고갱이를 보여주기 때문에

천태종 사찰에서 중요한 벽화의 소재로 삼고 있다.

화가에 따라 그림의 분위기는 다르지만 그 내용은 〈불본행경〉 등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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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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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벽화이야기 - 수자타의 공양 - 중도
불교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수자타의 공양 - 중도

<운흥사- 대구 달성>

<br><br> 수행자 석가에게 한 여인이 식사를 올리고 있다

석가가 출가한 후 깨달음을 이루기 위한 수행으로 먹는 것도 자는 것을 억제한 채 견딜 수 없는 고통의 밤낮이 6년으로 거듭되던 어느 날,

결국 석가의 몸은 약해질 대로 약해졌고 정신마저 희미해져 결국 탈진하게 된다.

마침 양떼를 먹이며 이곳을 지나던 ‘수자타’라는 여인이 이 모습을 발견하고.

지극한 돌봄으로 석가는 정신을 차리게 된다.

<br><br> ▮ 당신이 왜 거기서 나와

어느 여인의 집에서 정신을 차린 모범 수행자 석가는 그때의 자신이 처해진 상황이 엄청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또한, 수행의 모범이라고 믿고 목숨을 건 고행을 6년 동안이나 석가와 함께 해 동고동락 해 왔던 교진여 등 다섯 명의 수행자 들은 또한 어떤가.

갑자기 사라져 걱정스럽게 그렇게 찾아 헤매던 석가가 결국 처녀의 집에서 따스한 식사제공을 받아가면서 편하게 머물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석가를 경멸하며 모두 떠나 가버리게 되는 결과를 보면 그들이 석가에 대해 얼마나 실망했는지 상상이 간다.

<br><br> ▮ 중도(中道)의 깨달음

깨달음으로 이끈 여인 수자타의 공양은 열반하기 직전 대장장인 춘다가 올린 마지막 공양과 더불어 부처님 생애의 위대한 공양으로 불리는 유명한 사건이다.

석가는 수자타의 공양을 계기로 조용히 마음을 정리 해 가기 시작 한다.

수행이라는 명분으로 ‘육체를 의식적으로 괴롭힌다는 것은 그만큼 육체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은 아닌가,

육체에 대한 고행보다 차라리 마음을 고요히 바르게 가다듬는 수행이 오히려 육체의 정화까지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깊은 생각에 든다.

이를 게기로 수자타의 공양이 중도의 논리를 완성하였기에 위대한 공양으로 기억하게 된다.

과연 석가가 깨달은 '중도'란 무엇일까?

사실 그의 중도에는 수년간에 걸친 극단의 고행을 기반으로 한 깨달음이라는 전제를 두고 있다.

그렇게 얻은 중도이기에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거나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는 최적의 삶의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생각이나 행동이 양 극단 사이의 중간을 취하는 것이되 수량적인 중간치가 아니라 최상의 선을 추구할 수 있는 중간적인 위치를 잡는 것을 말한다.

‘수자타 공양’에서 는 종교적인 이상(理想)이라고 말할 수 있는 중도의 깨달음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부족함도 지나침도 없는 중도의 마음으로 삶을 살아간다면

세상은 그만큼 더 아름다워지고 그만큼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가 르침을 느끼게 하는 그림이다. <br><br> ▮ 다시 보는 수자타의 공양 <br><br> <법주사-경북군위>

<br><br> <보천사-경북구미>

<br><br> <청량사-경북영천>

<br><br> <충효사-경북영천>

<br><br> <해인사-경남합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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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바느질로 만든 空, 수보리존자 ​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바느질로 만든 空, 수보리존자 ​

부처님께서 도리천에 올라 어머니에게 석 달 간으 법문을 하고 계실 때, 목련존자는 도리천으로 부처님을 찾아뵙고, 그만 지상으로 내려와 주실 것을 청하였습니다.

7일 뒤 부처님께서는 내려오시는데, 한 동안 부처님을 뵙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은 승속을 떠나 너나 할 것 없이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곳에 수보리존자의 모습은 모이지 않았습니다. 수보리존자 역시 스승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옷을 깁던 바느질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다 다시금 자리에 주저앉으며 문득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서둘러 부처님을 맞이하러 가려고 하다니, 과연 지금 내가 보려고 하는 것이 진짜 여래인가 아니면 허상뿐인 몸인가. 부처님의 형상은 눈, 코, 귀, 혀, 몸, 뜻의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참으로 부처님을 뵙고 공경하려거든 이 오온이 모두 무상함을 알아야 한다. 부처님의 형상도 무상하여 시시각각 변한다. 그러므로 모두 공하며, 내것이라고 고집할 무엇도 없으니, 이것을 부처님께서 무아無我라고 말하시지 않았던가. 이렇듯 일체가 모두 공인데, 무엇 때문에 부처님을 뵈려고 안절부절 못하고, 이렇게 나서려 하다니 나는 지금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이처럼 생각하고는 덤덤하게 다시 하던 바느질을 계속했습니다. 부처님을 직접 보고자 나서는 것은 부처님의 형상에 얽매이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수보리의 생각과 행동을 꿰뚫어 보시고 다른 제자들에게 수보리가 옳다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언제나 공의 경지에 즐겨 들어가고, 공의 이치를 잘 헤아려 사람들에게 차근 차근 일러주는 이는 수보리가 최고다."

바느질은 말 그대로 옷을 기워 입는 것입니다. 스님들이 하시는 바느질은 부처님 당시 출가 수행자가 지켜야 할 수행법 가운데 두타행頭陀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분소의糞掃衣라 하여 사람들이 헤지고 떨어져 입지 못하게 된 옷을 내다 버리면, 그것을 주워 쓸 만한 부분만 골라 서로 기워서 옷을 만들어 입는 것입니다.

수행이란 화려하고 분에 넘치는 행동으로 일어나는 헛된 마음을 멀리하고, 항상 검소하고 최소한의 것에 만족함으로써 마음에 조금의 욕심과 번뇌도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두타행을 즐겨했을 때 세상의 복잡함을 멀리하고, 항상 평화로운 마음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의 이치를 터득하고 즐거이 실천한 수보리존자가 가장 평화로운 제자였다고 합니다.

수행이란 화려하고 분에 넘치는 행동으로 일어나는 헛된 마음을 멀리하고, 항상 검소하고 최소한의 것에 만족함으로써 마음에 조금의 욕심과 번뇌도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두타행을 즐겨했을 때 세상의 복잡함을 멀리하고, 항상 평화로운 마음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의 이치를 터득하고 즐거이 실천한 수보리존자가 가장 평화로운 제자였다고 합니다.

"비구들이여, 내 제자 가운데 수보리는 평화롭게 사는 이들 가운데 으뜸이다. 내 제자 가운데 수보리는 다른 이에게 보시를 받아 마땅한 이 가운데 으뜸이다."

수보리존자의 바느질은 그저 한가로운 여유가 아니었습니다. 일상 그대로 묵묵히 수행하며, 언제 어디서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충만하였기에 텅 비어 있는 空을 바르게 실천하신 분이 수보리존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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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미술여행 - 희견보살
문화

사찰미술여행 - 희견보살

깨달음을 주신 가르침에 소신공양으로 보은

▲ 월정사 석조 공양보살 좌상, 고려, 전체높이 1.8미터, 국보 제48-2호, 월정사 성보박물관.

“오대산의 가을 단풍이 절정”이라고 매스컴에서 떠드는 소리만 철석같이 믿고 천연색으로 곱게 물들인 털실로 뜨개질한 것 같은, 그야말로 금수강산을 한번 진하게 볼 일념 하나로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강원도를 향해 길을 나섰다. 하지만 꽉 막힌 도로에서 수 시간을 부대끼며 찾아간 나의 기대와는 달리 눈앞에 펼쳐진 강원도의 산은 아직 청춘의 빛을 잃지 않고 있었고 그 푸르름에 눈이 시릴 정도였다. 억울한 마음을 위로 받을 심사로 월정사로 향했던 발걸음도 사찰 진입로부터 끝이 보이지 않는 차량의 행렬에 금세 기가 꺾였고 차선책으로 찾은 것이 새로 지어 유물을 모신 월정사 성보박물관이었다. 아마도 내년 2월 강원도 평창에서 펼쳐질 세계적인 축제를 위해 기존의 박물관을 확장해 새로운 개관을 준비하고 있었을 텐데 사찰의 인심은 역시 훈훈하여 아직 정식 개관은 하지 않았지만 찾아간 이들을 박하게 내쫓지 않고 내부 관람을 하게 해 주었다.

부처님 사리 수습 소임 맡아 두팔 태우며 7만2000세 동안 부처님 사리탑 공양올린 보살 제일의 공양 의미 ‘소신공양’ 희견보살의 공양에서 비롯돼

새로 만든 월정사 성보박물관은 트인 공간에 엄청 규모가 장대해 입구부터 살펴보는 재미가 적지 않아 이것저것 구경하다 보니 박물관에서 보기 드문 석굴처럼 생긴 방이 만들어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갔더니 천장이 높은 공간이 나타났고 감실 같은 공간 중앙 연화대좌에는 예전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앞에 있던 보살상을 따로 모셔 두었다. 야외에 있을 때는 대좌가 땅 속에 묻혀 바닥에 놓인 상태와 같았는데 대좌 높이를 달리 하고 왼팔을 고이기 위해 후대에 동자를 새겨 끼웠던 석조 부조물도 떼어 내니 크기도 다르고 생김새도 뭔가 다른듯 내가 예전에 보았던 그 보살상인가 싶다. 정면으로 바라보다 밑에서 우러러 뵈니 정말 사람뿐만 아니라 유물도 있는 자리에 따라 이렇게 달라 보일 수 없어 요즈음 뜨는 말 그대로 “슈퍼 그뤠잇!”이었다. 전시실 입구 한쪽에는 ‘공양보살상’이라 하고 맞은편에는 ‘희견보살(喜見菩薩)’이라는 유물명을 달아 놓았는데 동행하였던 조각 전공자가 “무슨 근거로 희견보살이라고 확정지었지?”라고 전문가답게 한마디 한다. ‘월정사사적기’에 의하면 이 보살은 무릎을 꿇고 앉아 손에 향로를 들고 공양하는 약왕보살상(藥王菩薩像)이라 하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월정사 탑 앞 문수보살상이 지키고 있어 천년동안 새가 탑 위로 날지 못했다는 고려시대 정추라는 문신이 지은 시가 있다고 하니 이 보살상의 이름을 두고 예전부터 설왕설래가 많았구나 싶다.

‘법화경’의 ‘약왕보살본사품’을 보면 약왕보살의 전생담에 희견보살이 등장한다. 약왕보살이라는 보살명이 다소 생소하지만 경전에는 문수, 관음, 대세지 등과 함께 약사 8대보살로 등장하고 실제로 석가여래의 협시보살로 조성된 예가 있다. 약왕보살은 전생에 ‘일체중생희견보살’이라는 한 보살님이셨는데 어느 날 일월정명덕이라는 부처님이 설해주는 ‘법화경’을 듣고 고행하며 정진하여 삼매에 들어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일월정명덕불과 ‘법화경’에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1200년 동안 최고의 향을 자신의 온몸에 바르고 먹는 정성을 들이고 마지막에는 몸을 향처럼 불태우는 소신(燒身)공양을 올렸다. 이후 다시 몸을 받아 이 세상에 태어난 희견보살은 부처님의 사리를 수습하여 탑을 세우고 장엄하는 소임을 맡아 이를 수행하면서 탑 앞에서 또 다시 자신의 두 팔을 태우며 7만2000세 동안 사리탑을 공양하였다. ‘법화경’에서 희견보살이 자신의 몸을 불태워 부처님에게 공양하였던 일을 두고 ‘제일의 보시’라고 한 것에서 소신공양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하며 소신공양은 중국에서 ‘법화경’이 번역된 이후 현실에서도 행해졌다고 하는 궁극의 공양법이다.

▲ 법주사 석조 희견보살입상, 전체높이 213㎝, 통일신라 보물 제1417호

돈황 막고굴 벽화를 비롯하여 고려시대 ‘묘법연화경’ 변상도에는 탑 앞 혹은 높은 대좌에 가부좌로 앉은 부처님 앞에서 자신의 몸과 팔을 불태워 소신공양하는 희견보살이 있으며 조선시대 사경(寫經)에도 희견보살은 같은 모습으로 표현된다. 법주사의 향로를 머리에 이고 있는 조각상은 학계에서 피부색이 검은 노예를 뜻하는 곤륜노(崑崙奴)의 형상이라는 의견이 있기도 하지만 일반 대중들에게는 희견보살로 여겨져 왔다. 서 있는 자세에서 두 손을 들어 머리에 연화향로를 이고 있는 돌로 만든 법주사의 보살이 희견보살이 맞는다면 아마도 약왕보살의 전생에서 희견보살로 있으면서 자신의 몸을 소신공양하였던 이야기를 조각품으로 만들어 모셨을 것이다. 그리고 법주사 희견보살과 달리 탑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한 다리를 올리고 두 손을 모아 무엇을 들고 있는 월정사 공양자상은 인간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 사리탑을 조성하고 장엄하면서 자신의 두 팔을 태웠던 일월정명덕국의 왕자로 지낸 전생 이야기를 표현한 작품일 것이다.

한 쪽 무릎을 세우고 바닥에 꿇어앉은 형태의 공양자상은 삼국시대부터 그 예가 나타나고 대부분이 스님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월정사 석조보살좌상과 같이 탑 앞에 앉아 공양하는자세로 조성된 보살상들은 고려시대로 들어오면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들 공양보살좌상은 머리에 원통과 같은 관을 쓰고 있어 기존 고려보살상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 원통형 보관은 요나라 귀족들도 쓰고 있는 특징적인 머리장식으로 이런 모양의 보관을 착용한 보살상들은 고려와 요나라 사이 교류가 시작되어 새로운 문화가 유입되면서 우리나라에 새롭게 등장한다. 원주의 법천사지에서 나온 석등 부재조각에 새긴 공양보살의 모습을 보면 원통형으로 높은 관을 쓰고 무릎을 꿇고 앉아 향로를 올리는 형태이다. 따라서 월정사 성보박물관 보살상의 모아 쥔 두 손에 뚫린 구멍은 향로를 꽂기 위해 만든 것으로 지금은 사라졌지만 처음 만들 당시에는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향로가 들려져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신복사지 석불좌상, 전체높이 181㎝, 고려 보물 제84호

전설에 의하면 이 보살은 월정사 남쪽 금강연이라는 연못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흥미롭게 우리나라에서 이런 모습의 공양자상 혹은 고려시대 강원도 명주(지금의 강릉지역), 오대산, 충남 연산지역에서 만 보이고 있다. 10세기 초반 연산 개태사에서 처음 등장한 석조공양보살상은 11세기 이후부터 원주 법천사, 강릉 신복사, 오대산 월정사 등에서 만들어졌는데 모두 탑 앞에 놓여있던 공양보살로 추정되고 있어 이 모두가 월정사 공양보살좌상과 유사한 의미로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탑 앞에 석조공양보살좌상이 강원도 지역에서 유독 많이 만들어진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히 밝혀진 바는 없고 옛 명주지역 장인들에 의한 지역적인 특색 정도로 추정만 할 뿐이니 앞으로 연구자들의 과제로 남겨져 있다.

보살이 불도를 수행하기 위해 실천하는 육바라밀 가운데 제1의 덕목이 보시바라밀이다. 타인을 위해 널리 베푸는 수행과정에서 자신의 몸을 불태워 공양하는 것은 이타정신의 극치일 것이다. 궁극의 깨달음을 얻었기에 그러한 공양이 가능했던 것일까? 개인의 이기심에 의해 돌아가는 현실을 사는 필자에게 깨달음을 주신 가르침에 보답하기 위한 그 마음 하나로 자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몸을 보시하는 희견보살의 마음이 이 가을 하늘처럼 높고 푸르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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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국청사의 성인, 한산과 습득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국청사의 성인, 한산과 습득

천태산 국청사國淸寺는 수나라 때 천태 지의대사가 세운 사찰로 천태종의 본산입니다. 경내에는 천태대사와 더불어 고려 대각국사 의천조사 그리고 대한불교 천태종 중창조 상월원각대조사의 존상을 모신 「중한천태종조사기념당」이 건립되는 등 한국과 중국불교의 활발한 교류가 이뤄지는 곳입니다.

당나라 때입니다. 국청사에는 풍간선사와 한산 그리고 습득의 세 성인이 은거해 머물렀다하여 사람들은 국청삼은國淸三隱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들은 모두 불보살의 화신이라고 합니다. 풍간은 아미타불, 한산은 문수보살, 습득은 보현보살의 화신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은 이들의 기이한 행동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한산寒山은 국청사 뒤편의 한암이라는 토굴에 살면서 끼니때가 되면 국청사로 내려와 사람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얻어먹었다고 합니다. 옷은 다 떨어지고 커다란 나막신을 신고 다니면서 늘 기이한 행동이 많았는데, 한암에 산다고 해서 그를 한산이라고 불렀습니다.

한편 습득拾得이라는 분은 풍간스님이 길에서 주워 온 분이라고 습득이라는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그는 국청사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는 일을 맡았는데, 사람들이 먹다 남은 밥과 나물이 있으면 모다 두었다가 한산이 찾아오면 주곤 했습니다.

어느 날 국청사 스님들은 산 아래 목장에서 한산과 습득이 소떼와 놀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한산이 먼저 소떼를 향해 말했습니다.

"도반들아, 소 노릇하는 기분이 어떠한가, 시주 밥을 먹고 놀기만 하더니 기어코 이 모양이 되었구나. 오늘은 여러 도반들과 더불어 법문을 나눌까하여 왔으니, 호명하는 대로 이쪽으로 나오시게. 첫째, 동화사 경진 율사!"

한산이 이렇게 말하자 검은 소 한마리가 '음메 ~'하면서 앞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다음은 천관사 현진법사!"

이번에는 누런 황소가 '음메 ~'하면서 앞으로 나와 절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른 번을 스님들의 이름을 호명하였고, 그때마다 어떤 소가 앞으로 나와 머리 숙여 절을 하더니 자리에 앉는 것입니다. 수 많은 소떼 가운데 이 서른 마리는 전생에 스님이었는데, 수행을 게을리 한 과보로 축생의 몸으로 태어났던 것입니다. 이를 본 스님들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한산과 습득이 그저 미치광이인 줄만 알았더니, 성인의 화신임이 틀림없구나.'

얼마 뒤, 여구윤이라는 관리가 이 고을 원님인 자사刺史로 부임했습니다. 그에게는 평소 지병이 있었는데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이에 풍간스님이 자사를 찾아가 깨끗한 그릇에 물을 받아 자사에게 뿌리니 언제 아팠냐는 듯 말끔하게 병이 낫는 것입니다. 자사가 크게 공양을 올리며 설법해 주기를 청하자 풍간스님은 굳이 마다하면서 말하기를,

"나 보다는 문수, 보현께 물어 보시오."

"두 보살께서는 어디에 계신지요?"

"국청사에서 불을 때고, 그릇을 씻는 한산과 습득이 바로 그들입니다."

자사는 공양물을 준비해 국청사로 한산과 습득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한산과 습득은 개울가에서 개구리와 장난치며 놀고 있는 것입니다. 자사가 다가와 절을 올리자 그 둘은 무턱대고 자사를 꾸짖었습니다.

잠시 후 한산은 자사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해주었습니다.

"풍간께서 실없는 소릴 지껄였군. 자네는 풍간스님이 바로 아미타불인 줄도 모르고 우리를 찾아오면 뭘 어쩌겠나?"

그리고는 둘은 홀연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여구윤은 못내 아쉬워 한암굴로 급히 쫓아가 법을 청했습니다.

"너희들에게 이르노니 각자 노력하여 얻으라."

한산과 습득이 이 말만 남기고 굴속으로 들어가자 입구의 돌문이 저절로 닫혀버렸습니다. 결국 여구윤은 성인을 친견하고도 깊은 법문을 듣지 못한 것을 서운하게 여겨 풍간선사, 한산과 습득이 평소 동굴주변, 숲 속 마뭇잎이나 석벽, 혹은 국청사 구석구석에 써놓은 세 분의 시 약 350수를 모아 책으로 엮었습니다.

이 책이 한산시집寒山詩集이라는 제목으로 전해지는데, 선화禪畵의 소재로도 자주 인용되며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 "홀연한 마음으로 편히 앉아 쉬노라면 해 저무니 나무그림자 덩달아 낮아지네.

스스로의 마음자리 자세히 보노라면 진흙탕 가라앉고 연꽃 한 송이 피어나네."> ☞ 한산寒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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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천도재와 49제
문화

불교문화 - 천도재와 49제

천도재

돌아가신 조상이나 부모님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제의식(齊儀式)입니다.

조상의 혼령이신 영가를 부처님전에 모시고 부처님을 찬탄하고,

영가의 업장을 소멸케 한 다음, 시식을 하도록하여

극락왕생할 수 있도록 축원합니다.

여러 스님들께서 범패와 염불의식을 행하여

장엄을 더하며 살아 있는 후손들의

안과태평과 사업성취를 발원한다.

49제

영가(靈駕)가 돌아가신 날로부터

칠일마다 한번씩 재를 올리게 되는데

그것을 일곱번에 걸쳐 올립니다.

그 일곱번째 재를 막재 또는 사십구재라고 합니다.

보통 칠일마다 올리는 재는 간소하게 하고

마지막 사십구일이 되는 일곱번째 올리는 재는

영가가 정성으로 차린 재물을 흠향할 수 있도록

넉넉하게 장만합니다.

이렇게 칠일만에 한 번씩 올리는 것은

몸을 벗어버린 영가가 49일 동안

중음신(中陰神)으로 떠도는데

몸을 가지고 있을 때 지은 업에 따라

매 7일째마다 심판을 받게 되며

이때마다 불공을 드려 망자를 대신해

선근공덕을 지어주며 그 공덕으로 좋은 곳에 태어난다고 합니다.

49재를 중요시 여기는 까닭은

명부시왕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염라대왕이

49째 되는 날 심판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십구재는 법화경(法華經) 사상과

지장경(地藏經), 아미타경(阿彌陀經), 약사여래경(藥師如來經) 등의

사상에 근거해서 봉행하는 의식입니다.

그리고 사십구재는 우리나라 불교의 특징이기도 하고

이제 우리나라 고유의 민족의식으로 자리잡아

생명존중과 조상공경의 의식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49재의 근거는...

지장보살님이 말씀하시되,

장자여 내가 지금 미래 현재 일체중생을 위해

부처님의 위력을 이어서 간략히 이 일을 설하리라.

장자여 미래 현재 모든 중생들이 명을 마칠 때 다달아서

한 부처님 이름이거나,

한 보살의 이름 을 얻어 듣게 되면

죄가 있고 없음을 불문하고 다 해탈을 얻으리라. .....중략....

죽어서 모든 이가 7.7 = 49일 안에는

업보를 받지 않았다가

49일이 지나면 비로소 업에 따라 과보를 받나니,

만일 죄 인이 이 과보를 받으면

천백세중에 헤어날길이 없나니

마땅히 지극한 정성으로 49제를 베풀어 공양하되

이같이 하면 목숨을 마친이나

살아 있는 권속들도 함께 이익을 얻으리라. 라는 구절에서 비롯된다.

49재의 절차

(侍輦) - 동구 밖에서 영가를 맞아들인다.

대령(對靈) - 영가를 간단한 대접을 하여 맞이들이고 휴식하게 한다.

관욕(灌浴) - 불보살을 맞이하기 위하여 영가를 목욕시킨다.

신중작법(神衆作法) - 불법의 도량을 잘 수호하도록 모든 신중을 맞아들인다.

상단권공(上壇勸供) - 불단에 공양을 들이며 법식(法食)을 베푼다.

관음시식(관음시식) - 영가를 대접하는 일반 제사의식이다.

봉송(奉送) - 불보살을 먼저 배송(拜送)시키고 영가도 왕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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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벼랑 끝에 올라선 아난존자
문화

불교문화 - 벼랑 끝에 올라선 아난존자

평생을 부처님의 옆에서 시봉하셨던 아난존자는 원래 부처님의 사촌동생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후 고향 카필라성으로 돌아와 법문을 하셨을 때, 다른 석가족의 친척들과 함께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는 순간까지 가장 가까이에서 모셨습니다. 때문에 부처님이 가시는 곳이라면 항상 그 옆에 서있었던 분이 아난입니다. 부처님의 법문을 가장 많이 들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난존자의 기억력은 남달랐습니다. 부처님께서 법문을 하시면 그대로 외워버릴 정도로 능력이 뛰어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난존자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까지 깨달음을 얻지 못했던 아픔이 있었습니다. 부처님의 열반 순간에 '이제 저희는 누구를 의지합니까?'라며 눈물로 여쭈었던 심정은 그런 후회와 절망의 표현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이제 부처님게서 생전에 하셨던 수 많은 법문을 정리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는 같은 내용을 두고도 제자들의 이해도와 그 때의 상황에 따라 방편으로서 각각 다르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저마다 들은 바 내용이 달랐던 탓에 혼선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제자들 가운데에서도 모두가 인정할 만한 가장 뛰어난 분들이 모여 부처님의 말씀을 정리하기로 하였습니다. 이것을 결집結集이라고 합니다. 훗날 이 결집은 수 차례에 걸쳐 이뤄졌기에, 이 때의 모임을 '제1차 결집'이라 부르는데, 이 모임에는 500명의 아라한이 참가했습니다.

그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면 누구보다 가장 많이 들었던 아난존자는 아직 아라한이 되지 못했던 이유로, 즉 깨달은 성인이 아니었기에 결집에는 참석할 자격이 부여되지 않았습니다.

아난의 입장에서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만큼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이대로라면 부처님의 말씀을 온전하게 남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시 결집을 주도했던 장로 가섭존자도 이러한 사실을 알아차리고 아난에게 7일간의 말미를 주었습니다. 만약 일주일 안에 깨달음을 얻으면 결집에 참가해도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난존자는 벼랑 끝에선 심정으로 절벽 위로 올랐습니다. 그리고 두 발꿈치를 세워든 채 꼼짝도 않고 수행했습니다. 조금만 졸았다가는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맙니다. 그렇게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죽을 각오로 수행을 이어갔습니다.

그로부터 7일째 된 날, 아난존자는 드디어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집이 열리는 칠엽굴로 갔습니다. 칠엽굴에는 외부의 출입을 철저히 막기 위해 굴의 입구를 커다란 바위로 막아 놓은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도를 깨친 아난존자는 신통력으로 바위를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 광경를 목격한 스님들은 아난존자의 깨달음을 인정하고, 결집에 참가하도록 허락하였습니다.

이 결집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앞으로 스님들이 지켜야할 계율에 대해서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십대 제자 가운데 지계제일持戒第一우바리존자가 계율을 읊자, 모였던 스님들이 합송으로 따라 읊었고, 부처님의 말씀은 아난존자가 대표로 외우자 모든 스님들이 따라서 읊으면서 드디어 제1차 결집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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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신묘장구 대다라니 (20일차)
문화

불교문화 - 신묘장구 대다라니 (20일차)

보명법사의 신묘장구대다라니 3×7=21일기도 20일째.

  1. 신묘장구대다라니 (神妙章句大陀羅尼)의 뜻⑤

(23) 제23구.

바나마 핫다야 사바하 padma-hastāya svāhā 빠드마 하스따야 쓰와하

<바나마>는 '연꽃', <핫다야>는 '가지다ㆍ지니다' 그러므로 <바나마 핫다야 사바하> 는 '연꽃을 가지신 성존을 위하여 길상이 있을지어다'는 뜻입니다.

【다라니 해석】 ☞ padma-hastāya svāhā 빠드마 하스따야 쓰와하 손에 연꽃을 드신 분 [비쉬누 신]께 경배하옵니다, 성취케하소서!

⊙ 빠드마(padma) : 붉은 연꽃(cf pundarika/ 푼다리카: 백련, utpala/ 웃팔라: 청련) ⊙하스따야(hastāya) : 손에 드신 분에게(hastā 손 + ya ~에게)

◈ 비쉬누 신이 아래쪽 왼쪽에 들고 있는 붉은 연꽃은 순수성과 정신적 자각의 시작을 상징한다. 연꽃이 햇빛을 받으며 꽃잎을 열 듯이 인간의 원초적인 정신의 자각은 신이라는 빛을 받고서 깨어난다 것을 의미한다. 또한 우주 만물과 개인의 영혼이 오는 원천은 신이라는 것을 상징한다.

◈<신묘장구대다라니>에 그대로 나타나 있는 비쉬누 신의 4가지 상징물은 무엇일까요?

  1. 비쉬누 신. 비쉬누(Vishnu) 신은 보통 노란 색 옷을 입고 네 개의 손에는 각각 붉은 연꽃(padma/빠드마), 원반(cakra/), 소라나팔(sankha/ 샹카) 그리고 곤봉(lakuta/ 라꾸따 or gada/ 가다) 을 들고 있다.

여기서 연꽃은 순수성과 정신적 자각의 시작을 상징하고, 원반은 무지를 부수는 것을 상징하고, 곤봉은 지식의 힘을 나타내고, 소라나팔은 생명의 기원을 상징한다. 우리는 현재에도 관세음보살님의 손에 들려 있지도 않으며, 관세음보살님과는 상관도 없는 비쉬누 신의 네 가지 상징물에 대한 묘사를 마치 관세음보살님에게 바치는 예찬으로 착각하고 독송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그 신심은 크다 할지라도 내용상으로는 관세음보살님 전(前)에서 비쉬누 신을 예찬하고 있는 상황이 된다.

이부분에서 보명이 궁금한것은?
그렇다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염송하는 것이 관세음보살님께 크나큰 불경(不敬)이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는가?

시바 신과 비쉬누 신을 예찬하고 두 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신묘장구대다라니>의 내용에는 눈을 감은 채, 단지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관행의 탓으로 돌리고 염송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가?

이 책에서 밝히기 전까지는, <신묘장구대다라니>의 위신력과 가피력만 강조하였을뿐, 정작 이러한 중대한 사안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미흡하였다는 점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위에 던지 작은 돌 하나가 일파만파를 일으키며 퍼져나가듯이, 이 책의 출간으로 시작된 <신묘장구대다라니>에 대한 논의가 불교의 발전을 위하여 진지한 논의를 촉발케 하는 계기가 되리라 기대해 본다.」 -민희식ㆍ이진우 엮음 <천수경>에서 옮긴 글-

(24) 제24구.

자가라 욕다야 사바하 Cakrā yudhāya svāhā 짜끄라 유다야 쓰와하

<자가라>는 '수레바퀴', <욕다야>는 '종사하다ㆍ생활하다'의 뜻인데, '진리에 다다르다ㆍ구족하다'는 뜻으로 번역합니다.

그러므로 <자가라 욕다야 사바하>는 '법륜을 굴리시는 성자를 위하여 길상이 있을지어다'가 되겠습니다.

【다라니 해석】 ☞ Cakrā-yudhāya svāhā 짜끄라 유다야 쓰와하 (무기로) 원반을 드신 분께 경배하옵니다. 성취케 하소서!

⊙ 짜끄라 유다야(Cakrā-yudhāya) : 원반을 드신 이(비쉬누 신)에게 (cakrā 원반형 무기 + yudhā 갖추다 + ya ~에게)

◈ 짜끄라(Cakrā)는 수레바퀴, 원반 등을 가리킨다. 비쉬누 신이 위쪽 오른 손에 무기로 들고 있는 원반은 물리적 전쟁이 아니라 정신적 무지와 번뇌를 부수는 것을 상징한다.

또한 우주의 창조-유지-파괴의 순환을 나타낸다.

(25) 제25구.

상카섭나녜 모다나야 사바하 śaṁkha-śabdane bodhanaya svāhā 샹카삽다네 보다나야 쓰와하

<상카>는 '소라', <섭나녜>는 '소리', <모다나야>는 '깨달음)'의 뜻이 있으니, <상카섭나녜 모다나야 사바하>는 '소라 음성처럼 거룩한 성자시여, 깨달음을 위하여 길상이 있을지어다'라는 말입니다.

【다라니 해석】 ☞ Śankha-śabda-nibodhanāya svāhā 샹카 샵다 니보다나야 쓰와하 소라나팔 소리로 깨우쳐 주시는 분께 경배하옵니다. 성취케 하소서!

⊙ 썅카 샵다(śankha-śabda) : 소라 소리(śankha 소라 + śabda 소리) ⊙ 니보다나야(nibodhanāya) : 깨닫게 하는 이에게(nibodhanā 깨닫게 함 + ya ~에게)

◈ 비쉬누 신이 위쪽 왼손에 들고 있는 소라는 5원소를 상징한다. 비쉬누 신이 가장 원초적인 창조와 우주 유지의 신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소리, 즉 옴(Aum)을 나타낸다.

또한 소라는 물과 관련된 것으로 모든 생명과 존재의 기원을 상징한다.

(26) 제26구.

마하라 구타다라야 사바하 mahāla kuṭā dharaya svāhā 마하 라꾸따 다라야 쓰와하

<마하라>는 '크다ㆍ넓다ㆍ거룩하다'의 뜻이고, <구타>는 '병(甁)', <다라야>는 '가지다ㆍ지니다ㆍ맡다'의 뜻, <사바하>는 '성취'의 뜻이므로, 전체의 뜻은 '거룩한 병을 가지고 계시는 성자를 위하여, 길상이 있을지어다'가 됩니다.

【다라니 해석】 ☞ mahā lakuṭā dharaya svāhā 마하 라꾸따 다라야 쓰와하 큰 곤봉을 지닌 분께 경배하옵니다. 성취케 하소서!

⊙ 마하 라꾸따 다라야(mahā lakuṭā dharaya) : 큰 곤봉을 가지신 분에게 (mahā 큰 + lakuṭā 곤봉 + dhara 지니다 + ya ~에게)

◈ 비쉬누 신이 아래쪽 오른 손에 들고 있는 곤봉은 비쉬누 신의 힘이 모든 정신적 육체적 힘의 원천임을 상징한다. 또한 인간정신을 속박하는 의식을 부수며, 인간을 물질적 예속에서 벗어나게 하여 정화시키고 고양시키는 힘을 상징한다.

(27) 제27구.

바마사간타 니사시체다 가릿나 이나야 사바하 Vama-Sakanda disa-sthita kṛṣṇa jinaya svāhā 바마 쓰깐다 디사 쓰티따 끄리슈나 지나야 쓰와하

<바마>는 '오른손', <사간타>는 '어깨', <니사>는 '방향ㆍ쪽', <시체다>는 '있는ㆍ사는ㆍ서 있는', <가릿나>는 '검은색, <이나야>는 '거룩한 이ㆍ깨달은 이'이므로,

전체의 뜻은 '오른손 어깨 쪽이 검은색의 몸을 가지신 성자님께 길상이 있을지어다'가 됩니다.

【다라니 해석】 ☞ Vāma-skāndha-deśa-sthita-kṛṣṇā-ajināya svāhā 와마 쓰깐다 데샤 쓰티따 끄리슈나 아지나야 쓰와하 왼쪽 어깨에 흑사슴 가죽을 걸치신 분[시바신]께 경배하옵니다. 성취케 하소서!

⊙ 와마 쓰깐다(vāma-skānda) : 왼쪽 어깨(vāma 왼쪽 + skāndha 어깨) ⊙ 데샤 쓰티따(deśa-sthita) : ~에 서 있는 (deśa 부분 + sthita 서 있는(← stha 거주하다)) ⊙ 끄리슈나 아지나야(kṛṣṇā-ajināya) : 흑사슴 가죽을 걸치신 분에게 (kṛṣṇā 검은색; 비쉬누 신의 8번째 화신; 흑사슴 + ajināya 사슴가죽 + ya ~에게)

◈ 끄리슈나 아지나야(kṛṣṇā-ajinā)가 흑사슴가죽으로 쓰인 용례는 힌두 성전(聖典) Srimad Bhagavatam 11.5.21에서 확인할 수 있음.

◈ 시바 신이 명상할 때 두르고 있는 사슴 가죽과 호랑이 가죽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호랑이 가죽 위에서 명상하는 시바 신 인도 고대종교에서 호랑이는 힘이나 창조적(創造的) 에너지를 상징한다. 여신 두르가(Durga)는 호랑이를 타고 전장(戰場)에 달리며 악마들을 물리쳤다. 힘의 여신인 샥티(Shakti)도 호랑이를 타고 다녔다. 호랑이는 칠정오욕을 상징하기도 한다.

따라서 호랑이 가죽 위에 앉아 있는 시바 신의 모습은 그가 모든 정욕을 정복하였음을 나타낸다.

사슴가죽을 두른 시바 신 시바 신이 사슴가죽을 어깨에 걸치거나 허리에 두르고 있는 것은 그가 사슴이 뛰듯이 동요하는 마음을 극복하였음을 나타낸다. 시바 신은 코끼라 가죽도 두르고 있는데 이것은 그가 육중한 코끼리로 상징되는 자부심이나 자만심을 극복하였음을 나타낸다. -민희식ㆍ이진우 엮음 <천수경>에서 옮긴 글-

(28) 제28구.

먀가라 잘마 이바사나야 사바하 vyaghracarmanivasanaya svāhā

<먀가라>는 '호랑이', <잘마>는 '피부ㆍ가죽ㆍ껍데기'이고, <이바사나야>는 '옷', 따라서 전체의 뜻은 '호랑이 가죽 옷을 입으신 성존께 길상이 있을지어다'라는 말입니다.

【다라니 해석】 vyaghra-carma-nivasanaya svāhā 비야그라 짜르마 니와싸나야 쓰와하 호랑이 가죽 옷을 두른 분께 경배하옵니다. 성취께 하소서!

⊙ 비야그라 짜르마 니와싸나야(vyaghra-carma-nivasanaya) : 호랑이 가죽옷을 두른분께 (vyaghra 호랑이 + carma 가죽 + nivasana (의복의) 착용 + ya ~께)

◆ 사슴 가죽이나 호랑이 가죽을 두른 관세음보살이란 있을 수 없다.

「사바세계 모든 중생들의 고통을 들으시고 일체의 고통에서 구해내시는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이 동물의 생명을 빼앗고 그 가죽을 벗겨 입고 깔개로 사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신묘장구대다라니 속에 있는 어구와 문장들은 곳곳에서 천수천안관세음보살님과는 너무나 상충된다.

이러한 현상은 본래 고대인도의 종교의식에서 시바 신과 비쉬누 신에게 바치는 기도문인 대다라니를 불교에서 그 내용을 수정조차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수용하여 시바 신과 비쉬누 신에게 관세음보살의 의미를 부여하여 사용하는 데서 일어나는 필연적 현상인 것이다.」 -민희식ㆍ이진우 엮음 <천수경>에서 옮긴 글-

(29) 제29구.

나모라 다나 다라야야 나막 알약 바로기제 새바라야 사바하 Namo ratnatrayāya namaḥ arya-avalokiteśvāraya svāhā 나모 라뜨나 뜨라야야 나마하 아리야왈로끼떼슈와라야 쓰와하

이 구절은 맨 처음에 이미 설명한 구절입니다.

<나모라>는 '귀의한다', <알약 바로기제 새바라>는 원음대로 발음하면 '아바로키테스바라'로 관세음보살님을 말합니다. <다라야야>는 '보호자', 따라서 '귀의하옵나니,

거룩한 보호자이신 관자재 보살님께 길상이 있을지어다'라는 뜻입니다.

【다라니 해석】 ☞ Namo ratnatrayāya namaḥ arya-avalokiteśvāraya svāhā 나모 라뜨나 뜨라야야 나마하 아리야아왈로끼떼슈와라야 쓰와하 삼보에 귀의하여 받드나이다. 거룩하신 관자재께[시바 신과 비쉬누 신] 귀의하나이다.

⊙ 나모(namo ←namas) : 귀의하다, 경배하다. ⊙ 라뜨나 뜨라야야(ratnatrayāya) : 삼보께(ratna 보물 + trayā 삼(三) + ya ~에게) ⊙ 나마하(namaḥ = namo, amas) : 귀의하다, 경배하다. ⊙아리야아왈로끼떼슈와라야(arya-avalokiteśvāraya) : 성스러운 관자재님께 (arya 성스러운 + avalokiteśvāra 관자재보살 + ya ~에게)

☞ 지금까지의 신묘장구 대다라니의 경전과 해설을 하면서.. <신묘장구대다라니>의 해석을 여러 책에서 대조해 보면 책마다 차이가 있고, 원문도 조금씩 달라 문장의 뜻이 자연 다르게 해석되고, 또한 자연스럽지 못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 중 보명이 이글들이 가장 진실하게 여겨져 참고로 옮겨 놓은 것 입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가 이와 같이 관세음보살을 찬탄한 것이 아니라 외도의 시바 신과 비쉬누 신의 예찬문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일부 정법을 추구하는 곳에서는 폐기한 곳도 있음을 밝혀 둡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 불기 2570년 4월 30일 팔공산 감고사지기 보명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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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30일
전 세계 불교 성지가 한곳에 모인 특별한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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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HARU - 마음이 머무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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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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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부처님의 근본5인 - 시무외인(施無畏印)과 여원인(如願印)
문화

석가모니부처님의 근본5인 - 시무외인(施無畏印)과 여원인(如願印)

시무외인은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주어 우환과 고난을 해소시키는 덕을 보이는 수인이다. 손의 모습은 다섯 손가락을 가지런히 위로 향하고 손 바닥을 밖으로 하여 어깨 높이까지 올린 형태이다.

여원인은 부처님이 중생에게 자비를 베풀고 중생이 원하는 바를 달성하게 하는 덕을 표시한 수인이다. 손바닥을 밖으로 하고 손가락은 펴서 밑으로 향하며, 손 전체를 아래로 늘어뜨리는 모습이다. 시무외인과 여원인은 부처님마다 두루 취하는 수인으로 통인(通印)이라고도 한다. 석가모니불 입상(立像)의 경우 오른 손은 시무외인, 왼손은 여원인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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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입문 - 최초의 여스님은?
문화

불교입문 - 최초의 여스님은?

파쟈파티이라고 하는 비구니 스님이며 석가여래의 속가 이모이며 부처님이 어릴 때 길러준양어머니이다.

※ 이 자료는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 알아두면 좋은 불자상식 작성자 민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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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미술여행 - 찬란한 화엄의 세계, 화엄경변상도.
문화

사찰미술여행 - 찬란한 화엄의 세계, 화엄경변상도.

난해한 ‘화엄경’ 내용 쉽고 명료하게 표현

▲ 화엄경변상도, 조선 1770년, 비단에 채색, 281×255㎝, 송광사 성보박물관 소장, 국보 314호.

순천 송광사 성보박물관이 새롭게 문을 열면서 그동안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던 소중한 불교 보물들을 전시하였다. 그 많은 유물들 가운데 불화를 전공하는 필자가 가장 보고 싶었던 작품은 ‘화엄경’의 내용 가운데 정수만을 간추려 요점 정리하듯 그린 ‘화엄경변상도’이다. 1770년에 그려진 이 작품은 미타회(彌陀會)라는 불교결사단체가 발원하여 무등산 안심사에서 화련 스님을 비롯한 12명 화승들의 참여로 제작이 되었고 그림이 완성된 이후 송광사로 옮겨와 소장되고 있다.

화엄종사 활동사찰 중심으로 18세기~19세기 많이 그려져 화엄사상 고취 시대상 반영 지역·시대에 따라 도상 변화

우리가 ‘화엄경’이라 말하는 경전은 부처가 되는 완전한 깨달음을 얻게 하는 원인들과 그것에 의해 성취되는 갖가지 공덕을 설한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경전의 권수에 따라서 40화엄, 60화엄, 80화엄으로 나뉘며 경을 설한 장소(處)와 경을 설하는 모임(會)에 따라 60화엄은 7처8회, 80화엄은 7처9회로 구분 지을 수 있지만 내용이 크게 차이를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조선 후기 그려진 ‘화엄경변상도’는 80화엄에 따라 7장소에서 9번 화엄법회를 열었던 모습을 그림으로 도해하고 있어 ‘화엄회도’ ‘화엄7처9회도’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1765년에 만들어진 김룡사 화장암을 비롯하여 1770년 송광사, 1780년 선암사, 1790년 쌍계사 그리고 19세기 초반에 그려진 통도사 작품이 남아 있었다. 아쉽게도 18세기 만들어진 네 점의 작품 가운데 김룡사의 작품은 기록만 남겨진 것이고 선암사, 쌍계사 소장의 ‘화엄경변상도’는 도난을 당해 현재 남겨져 전하는 작품은 송광사 소장본뿐이어서 2009년 이 작품은 국보 제314호로 지정되었다.

난해한 ‘화엄경’의 내용을 시각적으로 쉽고 명료하게 보여주는 ‘화엄경변상도’가 이 시기 다수 만들어지고 있었던 사실은 화엄사상에 고취되었던 당시 분위기를 잘 전해준다. 선사상을 중심으로 교리와 염불을 수행방식으로 삼고 있었던 조선후기, 승려들의 교육기관이었던 강원에서는 대교과의 교과목인 ‘화엄경’ 강의가 성행하였고 경전을 해석하여 주해를 단 화엄 관련 서적들이 출판되기도 하며 수많은 대중이 운집한 화엄법회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실제 ‘화엄경변상도’를 소장하고 있던 사찰 가운데 송광사와 선암사, 쌍계사는 지리적으로 서로 인접하고 뛰어난 화엄 종사가 활동한 화엄사상의 중심지이며 화엄대법회가 개최된 곳이기도 하였다.

▲ 향수해 연꽃과 찰종, 53선지식, 송광사 화엄경변상도 부분.

송광사 ‘화엄경변상도’가 경전의 전체내용을 충실히 반영하여 서술적인 방식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에 비해 선암사와 쌍계사의 작품은 경전의 해석에서 오류가 보이고 도상의 생략이 나타나기도 하며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대체적인 도상의 구성은 거의 동일한 형식을 보이고 있어 당시 송광사와 선암사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던 화승집단인 조계산화파 화사들의 교류관계를 짐작하게 한다. 이들 세 작품에 비해 1811년에 그려진 통도사 ‘화엄경변상도’는 교학을 상징하는 ‘화엄경’의 내용에 천수관음보살과 준제관음보살이라는 형상을 통해 함축적으로 당시 대중에게 호응이 높았던 염불문인 ‘천수경’의 내용을 반영하고 있다. 이처럼 ‘화엄경변상도’는 화엄이라는 엄격한 교리를 그림으로 그려낸 불교회화였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선조들이 남긴 문화유산이기에 지역과 시대의 차이에 따라 도상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송광사 ‘화엄경변상도’의 화면은 크게 위에서 아래로 단을 이루고 있으며 각각의 법회는 상서로운 구름으로 구분 짓고 있는데 위의 2줄은 천상에서 설법한 도리천회, 야마천궁회, 도솔천궁회, 타화자재천궁회를 아래 2줄은 지상에서 행한 보리도량회와 3번의 보광명전회, 시다림회가 그려져 있다. 사실 그림에 등장인물이 너무 많고 화면의 분할도 많이 되어 있어 ‘화엄경’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가 없이 이 그림을 보면 무척 난해하여 정확한 뜻을 알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 제8 보광명전회의 노사나불, 송광사 화엄경변상도 부분.

단 화면을 크게 분할하여 아래에서부터 살펴보면 가는 먹선으로 표현한 물결무늬 위에 곱게 피어난 주홍빛 연꽃은 이 그림의 내용이 ‘화엄경’에서 말하는 향수해(香水海) 바다 속에서 피어난 연꽃 속에 감추어진 연화장세계를 그린 것임을 암시한다. 연꽃 위에 그려진 크고 작은 원은 찰종(刹種)이라는 것인데 불찰, 사찰처럼 찰은 땅, 곳(處)이라 번역되니 찰종은 곧 화엄세계에 있는 여러 국토의 종류를 의미하고 20중 세계로 이루어진 찰종 가운데 인간이 사는 사바세계는 제13층에 속한다. 이 그림에서 찰종은 제1회 설법인 보리도량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품으로 표현된 것인데 19세기 후반이 되면 이 부분이 독립되어 ‘연화장세계도’라는 새로운 불화양식으로 제작되기도 한다.

그림의 향 우측 찰종이 그려진 윗부분에는 ‘화엄경’의 ‘입법계품’에 나오는 53선지식을 찾아 길을 나선 선재동자의 모습이 앙증맞다. 화면에서 선재동자가 법을 구하는 선지식 53명 가운데는 보살뿐만 아니라 승려. 소년, 소녀, 뱃사공, 선인과 외도, 바라문도 있어 ‘화엄경’에서 현상세계는 무한한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사무애(事事無?) 법계연기(法界緣起)라는 사상을 나타낸 부분으로 법을 구하는 마음에는 계급도 종교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구도의 참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 작품을 그린 화승은 선재동자를 표현하면서 고려 불화의 선재동자처럼 천의를 휘날리며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모습과 더불어 색색의 도포를 입고 있는 조선시대 동자승의 모습까지 다양하게 변화를 주어 자칫하면 단조로워질 수도 있는 화면구성을 피해가는 재치를 보이고 있다.

그림에서 각각의 설법회는 ‘화엄경’의 교주인 비로자나부처님에 의해서가 아니라 보현보살, 문수보살, 법혜보살 등 설주보살에 의해 설법이 진행되고 있으며 법회의 상석에 앉아 있는 부처님은 양 손을 어깨 위로 올려 설법하는 모습을 취한 보살형 노사나불이다. 제9회의 불화에 그려진 노사나불 각각의 모습에는 정수리, 양 눈, 발바닥 등의 불신으로부터 뻗어 나오는 하얀 영기(靈氣)와 같은 광명이 다양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마치 화엄법회가 진행되면서 법문이 심오해지는 분위기를 나타내는 듯 위로 솟구쳐 올랐다 다시 내려오며 주위를 상서롭게 한다. ‘화엄경’의 교주는 비로자나부처이지만 연화장 세계는 노사나불의 서원과 수행으로 현출된 이상적 세계이기에 그림에서는 노사나불이 연화장 세계의 교주로 표현되고 있다. 따라서 불화에 노사나불이 설법하는 모습은 화엄설법을 상징하는 도상으로 이해하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 제5회 39부 장엄중, 송광사 화엄경변상도 부분.

불보살과 성중이 빽빽이 그려 있는 그림에 표현된 다양한 인물의 묘사는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여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불보살님이 설하시는 법문의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귀를 쫑긋 세우고 두 눈을 굴려가며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 하고 집중하는 천신이 있는가 하면 불법의 광대무변함을 설하는 화엄의 교리는 도솔천에 살고 있는 천신들에게도 어려웠는지 난감한 표정으로 축 처진 눈썹에 걱정을 가득 담아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의 천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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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문수보살과 세조
불교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문수보살과 세조

조선조 7대 임금인 세조(1417~1467)는 세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세종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한 문종이 재위 2년 3개월 만에 승하하고, 문종의 아들인 단종이 12살에 왕위를 잇는 혼란기에 세조는 조카인 단종을 밀어내고 왕좌에 앉았다. 세조는 왕위를 찬탈하는 과정에서 사육신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을 죽이거나 귀양 보냈다. 피바람을 일으키고 왕이 된 것이다.

세조는 비록 쿠데타로 왕위에 등극했지만 1445년부터 옥좌를 지키면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왕권을 강화한 것은 물론이고 국방력의 강화와 호적제도 개선 및 보완, 각종 세제의 효율적인 개편 등은 조선 초기 괄목할만한 정책적 변화였다. 무엇보다 세조는 인문학 분야에 많은 공을 들여 역사서와 법전, 불경 등의 편찬에 큰 업적을 남겼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불교관련 설화나 야사, 사찰 창건설화 등에 세조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강원도 진부의 오대산은 문수보살의 상주도량으로 유명하다. 신라 말의 자장율사가 중국 오대산에서 기도를 하고 고국의 문수보살 상주도량을 찾아 왔던 곳으로, 이때부터 오대산은 문수도량으로 불리고 있다.

자장율사가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한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가운데 한 곳이기도 한 상원사는 오대산 문수신앙의 중심이다. 월정사를 거쳐 상원사와 중대를 지나 적멸보궁에 이르게 되는데, 상원사 초입에 ‘관대걸이’라는 버섯 모양의 석상이 서 있다.

관대걸이란 이름 그대로 갓과 옷, 그리고 허리띠를 걸어둔 곳이란 의미다. 상원사 오르는 길에 관대걸이가 서 있게 된 것은 세조의 행차로 인해서이다. 세조는 불심이 깊은 왕이었다. 그래서 사찰 찾아가길 즐겼고 불경 간행에 힘썼다. 혹자는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고 왕이 되어서 그것을 참회하느라 불교에 의지했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아무튼 세조가 상원사를 방문했을 때 그의 등에는 종기가 있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즉위 10년 째 되던 해에 세조는 등창을 심하게 앓게 되어 괴로웠는데 신미대사의 권유로 오대산에 기도를 하러 왔다고 한다. 세조가 오대산을 찾아 온 이유는 불분명하지만 이때 등에 등창 내지는 종기로 고통을 받았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 세조와 문수동자 이야기를 담고 있는 김천 금강사 대웅보전의 벽화.

오대산에 온 세조는 오대천 맑은 물에 몸을 씻고 싶었다. 그러나 종기가 난 몸을 신하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 혼자 물에 몸을 담갔다. 세조는 마침 지나가는 동자를 불러 등을 닦게 했다. 그런데 등에 동자의 손이 닿자 종기로 인한 고통이 사라지고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세조는 기분이 좋아졌지만 자신의 신분을 생각해 동자에게 근엄하게 타일렀다.

“너는 왕의 몸을 만졌다는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러자 등 뒤에 있던 동자도 한 마디 했다.

“왕께서도 문수동자를 보았다는 이야기를 하시면 안 됩니다.”

세조는 순간적으로 놀라 뒤를 돌아보았으나 동자는 보이지 않았고 등의 종기는 씻은 듯이 나아 있었다. 기묘한 영험을 겪은 세조는 화공에게 자신이 보았던 문수동자의 모습을 설명해 주어 그림으로 그리게 했고, 그 그림을 보고 문수동자상을 조성하게 하여 상원사에 모셨다. 오늘날 상원사에 전하는 문수동자상이 그것으로 국보 제221호로 지정되어 있다.

신라의 자장율사도 귀국한 뒤로 친견하지 못했다는 문수동자를 세조가 친견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피바람을 일으키며 등극한 왕의 핸디캡을 사찰의 설화들로 정당화 시킬 수는 없다. 그럼에도 전국의 사찰에는 세조와 관련된 이야기가 적지 않다. 거칠게 드러나는 세조의 왕위찬탈 과정을 모티브로 하여 신이한 이야기들을 만들어 냄으로써 불교신앙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찰과 관련된, 혹은 불교와 관련된 많은 설화들이 중생교화의 목적을 두고 전승되고 있다는 점이다. 문수동자를 친견한 세조의 이야기 역시 지극하게 귀의한 왕의 신심에 문수보살이 응신으로 나타나 병고를 치유해 주었다는 사실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아무리 흉악한 사람일지라도 마음을 밝혀 불법(佛法)에 의지하고자 하면 그 즉시 성불의 인연으로 통한다는 것이 대승보살의 가르침이 아닌가?

많은 천태사찰에도 세조와 문수동자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한 벽화가 있다. 소망이 있는 사람에게는 언제 어디든지 문수보살이 나타나 지혜를 준다는 것을 잊지 말자는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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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유성출가 (踰城出家) - 벽을 넘다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유성출가 (踰城出家) - 벽을 넘다

석가가 마부 찬다의 만류에도 말을 타고 성벽을 넘어 출가를 감행하는 그림이다.

대부분의 사찰에 다루어지는 대표적인 벽화로, 부처일대기를 8장면으로 압축하여 묘사한 팔상도(八相圖) 중 네 번째에는 석가의 출가를 다룬 그림이 있다.

▮ 담의 의미

석가가 담벼락을 넘고 있다.

우리의 마음속에도 늘 ‘내가 만들어 놓은 담벼락’이 있다.

담벼락 이쪽은 내편이고, 저쪽은 적폐, 이쪽은 선(善)이고 저쪽은 악(惡)이다.

한 마디로 내게 좋으면 선(善)이고, 내게 나쁘면 악(惡)이다. 그런 담벼락을 내가 만들고 있다.

그 담벼락이 하나둘 모여서 에고(ego)가 된다.

우리의 삶에서 고통은 언제 어디서나 피어난다.

그 출처가 그 사람 때문이든, 그 일 때문이든, 아님 나를 둘려 싼 모든 곳에서.

내가 세운 잣대에서 한 치라도 어긋나는 순간, 에고의 고통이 바로 올라온다.

석가는 그걸 깊이 이해했기에 담벼락을 넘고 있다. ▮ 모아보는 유성출가<br><br>

<법주사-경북 군위><br><br>

<용문사-대구 달성><br><br>

<운문사-경북 청도><br><br>

<임허사-경북 포항><br><br>

<죽림사-경북 영천><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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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가난한 이의 등불 ​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가난한 이의 등불 ​

옛날 한 가난한 노파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너무나 가난했기 때문에 이 집 저 집 밥을 빌어 겨우 목숨을 이어 갈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온 성안이 떠들썩한 것입니다. 그 노파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임금께서 석 달 동안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옷과 음식과 침구와 약을 공양하고, 오늘 밤에는 또 수 만 개의 등불을 밝혀 복을 비는 연등회를 연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노파는 생각했습니다.

"임금님은 참 많은 복을 짓는구나. 나도 등불을 하나 켜서 부처님께 공양하면 좋겠지만, 나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구나."

결국 그녀는 지나가는 행인에게 구걸하여 동전 두 닢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기름집을 찾아 갔습니다. 기름집 주인은 허름한 노파의 행색을 쳐다 보고는 수상히 여겨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이 기름을 어디에 쓰려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부처님을 만나 뵙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이제 그 부처님을 뵙게 되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다만 저는 가난해서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으니 그저 등불이라도 하나 켜서 부처님께 바칠까 합니다."

노파의 말에 감동한 가게 주인은 기름을 곱절이나 주었습니다. 그녀는 부처님께서 지나가는 길목에 불을 켜며 마음속으로 이렇게 발원했습니다.

"저는 가난한 처지라 이 작은 등불을 부처님께 공양하나이다. 비록 보잘 것없는 등불이지만 이 공덕으로 다음 생에는 지혜와 광명을 얻어 모든 중생의 어둠을 없애도록 해 주옵소서."

그리고 밤이 깊었습니다. 어느덧 기름이 다 된 등불은 하나 둘 꺼지고 있었지만, 그 가난한 여인의 등불만은 한결같이 환하게 빛나는 것입니다. 등불이 모두 꺼지기 전에는 부처님께서도 주무시지 않을 것이므로, 아난은 남아 있는 등불을 손으로 불어 끌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등불은 거센 손바람에도 꺼지지 않았습니다. 옷자락으로 바람을 일으켜도 보았고, 부채로 불어도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난아, 부질없이 애쓰지 말라. 그것은 비록 가난하지만 어느 마음 착한 여인의 넓고 큰 서원과 정성으로 켜진 등불이기에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 여인은 이 등불의 공덕으로 다음 세상에 반드시 부처가 될 것이니라."

한편 이 말을 전해들은 임금이 부처님을 찾아와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석 달 동안이나 부처님과 스님들께 큰 보시를 올렸고, 수만 개의 등불을 켰습니다. 제 공덕이 적지 않으니, 저의 미래도 자세히 알려 주십시오. 저에게도 수기授記를 내려 주십시오."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불법佛法은 그 뜻이 매우 깊어 헤아리기 어렵고 알기 어려우며 깨닫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보시로써 얻을 수도 있지만, 백 천의 보시로도 얻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불법을 바르게 깨달으려면 먼저 이웃에게 베푸어 복을 짓고, 좋은 친구를 사귀어 많이 배우며, 스스로 겸손하여 남을 존경할 줄 알아야 합니다. 결코 자신이 쌓은 공덕을 내세우거나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하면 훗날 반드시 깨달음을 얻을 것입니다."

왕은 공덕을 내세우려던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물러 갔습니다.

​ 매년 초파일이면 우리도 부처님 전에 등을 밝힙니다. 등을 켜는 것만으로도 큰 공덕이 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부처님께 켜는 등불보다는 이웃에게 베풀고 존경하는 복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br>일 년에 하루 있는 부처님 오신 날이 아니라, 매일 매일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 더욱 큰 공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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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겨자씨와 주검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겨자씨와 주검

<해인사- 경남 합천> <br><br> 잡비유경(雜譬喩經)에 나오는 이야기로 고타미라는 여인이 반은 실성한 채로 자신의 죽은 아들을 안고 석가모니를 찾아와 애를 살려 달라 애원을 하는 그림이다.

<br><br> ▮ 겨자씨를 구해오라. <br><br>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아들이 아장아장 걸음마를 막 시작 할 무렵 그만 병에 걸려 죽게 되자. 자식 잃은 어미의 슬픔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사람마다 붙들고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아이를 살릴 방법이 없는지를 묻자, 전능하신 석가모니에게 찾아보면 어쩌면 살릴 방도가 있을 줄 모른다는 말에. 여인은 죽은 아이를 안고 바로 석가모니에게 뛰어 갔다. 죽은 애를 살려달라며 석가모니에게 절규하듯 애원하는 여인 고타미에게 말하길 “여인아, 아이를 살려 줄 테니 한 번도 장례를 치루지 않은 집에 가서 겨자씨를 구해오라.”라고 하자 그 말을 들은 여인은 바로 마을로 뛰어 갔다. 여인이 찾아간 모든 집에서는 흔한 겨자씨는 쉽게 얻을 수 있었으나, 장례를 한 번도 치루지 않은 집을 찾기가 문제였다. 마을 모든 집을 샅샅이 찾아다니던 중 여인은 석가가 겨자씨를 구해오라는 이유를 차츰 알게 된다. 점점 그녀의 마음엔 서서히 법안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겨자씨를 구해야 할 그토록 집요한 마음 역시 서서히 멈추게 된다. 이제는 며칠을 안고 뛰어다니던 죽은 아들을 땅에 묻고 기원정사로 돌아가 석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사라짐’에 대한 두려움이다. 세상에서 그토록이나 귀한 내 아기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라는 존재 역시도 결국 사라진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미스터리한 일이다. 그런 의문에 걸린 마음을, 불교는 ‘나에 대한 집착’이라 한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 늙고 병들고 죽는 법인데, 한번쯤은 생로병사의 현실을 망각하고 생명에 집착하게 된다. 인간의 몸은 소용돌이, 그 감각은 물방울, 그 표상은 아지랑이, 그 의지는 파초, 그 의식은 환영이라고 불교경전에 기록하고 있기에. 어디를 가나 집착할 것은 많지만, 그곳에서 쉽게 얻은 것 또한 없지 않은가 그처럼 하늘에 주인이 없고, 바람에 주인이 없듯, 나의 몸과 나의 마음도 내가 주인 아니다 라고 석가는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겨자씨와 주검’은 죽은 아기를 놓지 못하는 어미를 통해 우리에게 언젠가 다가올 죽음에 대해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느끼게 하는 그림이다.

<br><br> ▮ 모아보는 겨자씨와 주검 <br><br>

<보광사-전남 담양> <br><br>

<북지장사-대구 동구> <br><br>

<청량사-경북 영천>

<br><br>

<태안사- 전남 곡성>

<br><br> ▮ 회향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건만큼 슬픈 일은 없을 겁니다. 고타미 여인이 엄청난 슬픔을 잘 이겨 낸 이유를 이렇게 생각 해 봅니다. 아마도 그녀가 마을의 모든 집을 돌아다니며 겨자씨를 얻으려 할 때마다 그집에서도 그런일들은 있었고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함께 슬픔을 나누며 서로에게 위로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에게 위로하고 위로받으면서 슬픔과 절망 속에서도 예전처럼 기쁨과 활기를 찾았을 것입니다 슬픔에 빠져 내게 찾아 온 사람들에게 해줘야 하는 일은 '남들도 다 그래 약한 모습보이지마 이래라 저래라 '라며 훈수 드는게 아니라, 그저 묵묵히 그의 곁에 있어주는 것입니다. 함께 하기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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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불상과 수인
문화

불교문화 - 불상과 수인

한 종파나 사찰의 불상 가운데 가장중심이 되는 불상을 본존불이라 한다 예를 들면 석가모니불, 아미타불(정토종), 비로자나불(화엄종), 미륵불(법상종), 약사여래 등이 있다.

불상에는 여래상, 보살상, 신장상, 나한상, 조사상 등이 있다. 여래상은 나발(螺髮 : 부처님의 32상 80종호 가운데 하나. 불상의 머리 형태로 소라모양의 머리 카락을 말함) 형상을 하고 있다. 보살상은 머리에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천의를 입고, 목걸이. 귀걸이 등의 장신구를 하고 있다. 신장상은 무장한 모습이며, 조사상은 스님 모습이다.

불상은 형식에 따라 단독상. 삼존상(三尊像). 병좌상(竝座像)으로 나누고, 자세에 따라 입상. 좌상. 와상(臥像). 유행상(遊行像) 등으로 나눈다. 좌상에도 결가부좌. 반가부좌. 의좌(倚座)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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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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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벽화이야기 - 심우도 [득우 (得牛)]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심우도 [득우 (得牛)]

  1. 득우 (得牛)

< 온 정신 다하여 너를 겨우 잡았으나 힘세고 마음 강해 다스리기 어려워라.

어는 땐 고원高原위에 올랐다가도 또 다시 구름 속에 들어가 머무누나.>

드디어 소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벽화에서 처럼 둘은 팽팽한 줄다리기로 맞서고 있습니다. 소가 힘세고 강하게 버티고 있어 마음처럼 다스리기 어려운 상황을 마치 세상이 휜희 내려다보이는 고원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잘 알 것 같기도 하다가도, 또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구름 속에 갇힌 것처럼 잘 모르겠다고 표현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그와 같습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것이 잠시만 방심해도 언제 그랬냐는 듯 변해 버립니다. 벽화에 등장하는 소들은 짙은 황색으로 그려져 있기도 하고, 때로는 검게 그려놓기도 합니다. 동자의 마음이 아직까지 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삼독심三毒心에 물들어 있다는 표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소를 잡아 고삐를 묶었으나, 야생으로 살아온 소는 사납기 그지없습니다. 마음을 잡는다는 것이 꼭 이와 같습니다. 그동안 온갖 번뇌에 가려있던 본성을 찾기는 하였으나, 도망가려는 소처럼 쉽게 혼란스러운 상태를 벗어나기는 어렵습니다. 마음은 언제 어떻게 변할 지 모른는 것이기에, 스스로의 마음을 잘 다스려야 원하는 것도 잘 이룰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경전에서 또 이런 비유로써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마음은 독사나 맹수, 큰 불이 번지는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히 두려운 존재이다. 비유하자면 어떤 사람이 꿀 그릇을 손에 들고 신이나 이리저리 움직이고 떠들면서 꿀 그릇만 보고 발아래의 깊은 구덩이를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또 성난 코끼리를 매어 둘 수 있는 쇠로 만든 튼튼한 고삐가 없는 것과 같고, 이리 저리 날뛰는 원숭이를 붙잡기 어려운 것과 같다.

마땅히 급히 욕심을 꺾어서 게으르거나 나태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 마음을 풀어 놓아버리는 자는 선행을 잃어버리지만, 마음을 한 곳에 묶어 두면 갖추지 못할 일이 없다." ☞ 『중아함경 中阿含經』

마음이란 성난 코끼리 같고, 날뛰는 원숭이와도 같습니다. 그냥 내버려두면 어디로 달아날지 종잡을 수 없는 것입니다. 소를 잡아 팽팽하게 힘을 겨루고 있는 그림처럼, 방심하는 순간 다시금 고삐를 놓치고 맙니다. 수행에 더욱 부지런히 정진해야 하는 것이며, 한 치의 느슨함도 두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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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수처작주(隨處作主) 란.
문화

수처작주(隨處作主) 란.

불교 선종에서 유래한 사자성어로, 어디에 있든 그 자리에서 주인이 되라는 뜻입니다. 즉, 외부 환경에 끌려다니지 말고 스스로 주체가 되어 삶을 이끌라는 자기 수양의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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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23일

건학 120주년 동국대, 불교학 첫 대규모 워크숍..'산림법회'

동국대학교는 이틀간의 워크숍에서 결집한 모든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해 한국 불교학을 세계 무대의 중심에 세우기 위한 노력에 속도를 낼 방침입니다. BTN뉴스 박성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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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0
불교문화 - 초하루 기도축원이란 무엇인가?
문화

불교문화 - 초하루 기도축원이란 무엇인가?

초하루 기도축원이란 무엇인가?

초하루란 음력으로 매월 1일을 말합니다. 초하루 기도축원은 한 달간의 우환을 대비하고 무사안녕과 발복을 비는 중요한 축원기도입니다.

현실의 삶에서 중요한 축원기도이며 꼭 필요한 축원기도입니다. 부처님의 위신력과 칠성님과 신중님의 힘으로 한 달간의 큰 액운과 액살을 막아 무사무탈을 기원하는 축원기도입니다.

계묘년 섣달 초하루 날은 "칠성기도축원"와 "신중기도축원"를 합니다. 왜냐하면 기도 중에 현실적인 삶에 가장 빨리 잘 통하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칠성님과 신중님이 인간사와 밀접하게 관계되어 우리의 현실기도를 더 잘 들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그러하듯 칠성기도와 신중기도로 문을 여는 팔공산 감고사 초하루 축원기도에 동참을 하시어 나 자신과 가족의 안녕과 평안과 행운을 얻으시길 발원합니다.

◎ 축원 날짜 ◎ ~ 초하루 축원기도 ::: 갑진년 음력 매월 1일 오전 10시~

특혜 ~ 초하루 축원기도를 올리시는 분은 가족 모두 3일간 축원을 올려드립니다. ~ 법회 참석을 못하시더라도 가족 모두 축원을 올려 드립니다. ~ 일 대 일 대자비 광명 수지 (마음에 원불 모시기) 관정 기도. ~ 언제든 예약을 통해 보명과 상담을 하실 수 있습니다. 참여 하신 기간 동안 여러분과 가족의 이름이 이 기도의 공간에 계속 보존됩니다.

⊙ 초하루와 보름날 기도 시 불단에 올릴 공양물 신청 받습니다. ⊙ ⊙ 금년의 우란분재 맞이 1~6재까지의 육법 공양 과일 · 떡 · 쌀 · 향 · 초 · 꽃 · 차· 등· 공양물 등등.

성공 행복 소원성취를 자리이타 실천행 로타리 불자회 감고사가 함께 합니다

일반적인 초하루 기도란?

음력으로 매월 1일을 말합니다. 초하룻날의 축원은 한 달간의 우환을 대비하고 무사안녕과 발복을 비는 중요한 기도입니다. 인간의 길· 흉· 화· 복을 다루시는 북두칠성의 신이신 치성광여래부처님께 축원하는 기도의 종합선물세트입니다

현실의 삶에서 중요한 축원이며 꼭 필요한 축원입니다. 한 달간의 큰 액운과 액살을 막기 위한 축원입니다.

초하루 날은 "칠성기도"를 합니다. 왜냐하면 기도 중에 현실적인 삶에 가장 빨리 잘 통하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칠성님이 인간사와 밀접하게 관계되어 우리의 현실기도를 더 잘 들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치성광여래부처님은 천재지변을 관장하시고 난리(전쟁)와 질병을 다스리며 재앙을 물리치실 뿐만 아니라 특히 자식 낳기를 원하는 사람이 불공을 올리면 그 원을 살펴 들어준다고 합니다. 일광 보살님은 번뇌를 제거하고 광명을 가져다 주시며. 월광 보살님은 중생 인도를 완성하시겠다 대서원을 발하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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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조왕신
불교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조왕신

선본사(갓바위)- 경북 경산

조왕신(竈王神)은 일명 부뚜막 신으로 부르며, 불과 살림을 지키는 신으로 사찰 대부분의 공양간에 에도 붙혀놓고 있다.

사찰에서는 예로부터 ‘내호(內護竈王)조왕 외호산신(外護山神)’이란 말을 즐겨 인용 하고 있는데.

그렇듯 조왕신이 이 집안 부엌에 거주하는 신이라면, 산신(山神)은 집밖인 산에 거주하면서 어느 신들보다도 사람들을 잘 보살피는 신이라고 믿었다.

이 둘은 모두 하늘세계에서 내려온 무한한 능력을 지닌 신들로서, 사람들이 착한 마음으로 선행을 하면 적극적으로 돕는 소위 호위선신들이다고 믿는다.

가장 강력한 호위신들이 항상 안팎으로 나를 지켜주니 얼마나 든든했을까.

▮ 굴곡진 인생길.

집집마다 그 집 부엌을 지키고 있는 조왕신은 매월 깜깜한 그믐날 새벽이면 하늘나라로 올라가 옥황상제에게 이집사람들이 그동안에 있었던 이야기를 전해준다고 하니.

이 말을 듣고 옥황상제는 그 집 사람들이 죄가 크다 생각하면 그 사람 수명을 300일이나 감해버리고,

들어 기분이 조금이라도 불편해지면 수명에서 3일이라도 단축 시켜 버린다고 하니.

사람들은 이렇게 그렇게 생존 마일리지가 점점 바닥이 나게 되어, 사람들은 결국 수명이 다해 죽는다고 한다.

인간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이 너무도 찜찜했다.

완벽한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털어 먼지 안 나는 놈 없다는데, 칭찬은 관두더라도, 우리집 조왕신이 일일이 죄다 고자질 할 것 같아 걱정이 태산이다.

매번 식사시간마다 조왕신에게 정성스럽게 올리는 제물로 그의 기분도 살리고,

옥황상제를 만나거든 부디 나쁜 이야기는 가능한 줄이고 좋은 이야기만 많이 하고 오도록 하여, 더불어 오래 오래 살게 해 달라는 기복적 요소가 많아 보인다.

특히 조왕신이 하늘로 올라가는 매월 그믐날 제물상에는 평상시와 다르게 끈적끈적한 엿을 추가로 조왕단(竈王壇)에 특식으로 올리니 아예 입이 찰싹 달라 붙으라는 해학적 의미도 보인다.

그렇게 오른 조왕단에 오른 달콤한 엿을 바라보는 눈빛을 통해서 보니,

사람 사는 인생길이 좋은 일보다 얼마나 궂은일이 얼마나 더 많은지를 느끼게 하는 그림이야기다.

이처럼 옛날 우리에게 집이란, 사람과 신이 한데 어울려 공존하는 공간이라 믿었는데.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우리 내 교육이 미신은 구시대 산물이며 나쁜 것 이라며 홀대하니,

지금껏 우리네 집을 지켜주던 신들을 모두 떠나버리고, 그 자리에는 이제

성주신 대신 TV가, 삼신 대신 컴퓨터가, 조왕신 대신 냉장고가, 수문장신 대신 인터폰이 신들의 자리를 차지해버렸다.

어쩌면, 요즘 아이들에게는 그것들이 하시라도 없어서는 안 될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 모아보는 조왕신

:: 동화사- 대구동구

:: 보문사- 인천 강화

:: 은해사- 경북 영천

:: 백흥암- 경북 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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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12띠 순서는 세상을 지키는 임무시간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12띠 순서는 세상을 지키는 임무시간

12지신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셨을 때 문상차 들린 12동물의 순서대로 정해졌다. 맨처음 소가 도착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소등에 올라타 무임승차했던 쥐가 소등에서 벼락같이 뛰어내리면서 쥐☞소☞호랑이☞토끼☞용☞ 뱀☞말☞양☞원숭이☞닭☞개☞돼지순으로 도착했다

12지十二支인 '자축임묘진사오미신유술해'의 열두 신장은 각각 띠를 상징합니다. 하루 24시간 가운데 각각의 시간을 지키기도 하고, 동서남북의 방위를 12곳으로 나눠 각 방향을 수호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하루의 시작인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의 두 시간을 12지의 첫 번째인 자시子時라고 부릅니다. 그 다음의 두 시간이 축시丑時가 되는 것입니다. 또 탑에는 사방을 둘러 12신장을 배치하였는데, 이것은 열두 신장이 각각 열두 방향을 수호하는 방위신의 역할도 맡기 때문입니다.

각각 신장의 모습은 열두 동물의 얼굴에 사람의 몸을 지닌 형상으로 손에는 호신무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약사경藥師經』을 보면 12지신은 약사부처님께서 거느리는 무리[권속 眷屬]로 불자를 지켜주는 호법신장이라 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약사여래의 공덕을 찬탄하시는 것을 듣고는 크게 발심하여, 약사여래의 권속이 되었다고 합니다.

한편, 설화에 의하면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 지상의 동물들 가운데 열두 동물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들은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의 순서대로 도착했습니다.

이에 부처님께서 열두 동물들에게 여러 중생들과 사이좋게 지내며, 앞으로 선한 불자들을 잘 보살필 것을 당부하셨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동물들이 도착한 순서대로 각각 띠를 정하여 열두 호법신장으로 임명했습니다. 그리하여 각 시간대별로 불자들을 수호하는 신장으로서 임무를 맡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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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설산수도 (雪山修道) - 안다는 것 느낀다는 것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설산수도 (雪山修道) - 안다는 것 느낀다는 것

<선본사- 경북 경산>

도에 이르면 초인간적인 힘을 갖게 된다고 믿는 수행자가 완전한 고행에 들어서 있는 모습이다.

대부분의 사찰에 다루어지는 대표적인 벽화로, 부처일대기를 8장면으로 압축하여 묘사한 팔상도(八相圖) 중 다섯 번째에는 석가의 고행을 다룬 그림이 있다.

▮ 고통의 메시지

철저한 고행으로 몸은 수척해질 대로 수척해져. 뼈와 가죽만 남아 힘줄이 드러나고, 뱃가죽은 등에 닿아있는 고행상이다.

고행상에서 표현한 고통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무었을 말하려 하고 있는가.

상대를 이해 할 수 있으려면, 상대의 입장을 완전하게 느낄 수 있어야만 된다.

느낀다는 것은 듣거나 보고서 알 수 있는 지식이 아니라, 경험으로만 얻을 수 있는 지혜이기 때문에,

안다는 것과 느낀다는 것은 완전하게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을’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갑’의 말에 어쩐지 믿음이 약하듯,

‘중생’을 다 알고 있다는 권위적인 ‘신’의 말씀도 어쩌면 그런 이유로 구구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고행상의 모습은 중생의 고통을 함께 느낌으로,

그를 완전하게 이해하기 위한 그래서, 그와 내가 하나 되는 과정을 보이는 몸짓이다.

‘설산수도’에는 나를 낮추는 고행을 통해 먼저 상대의 입장이 되어 보려는 마음이 더욱 소중하다는 걸 느끼게 하는 그림이다.

▮ 상대를 이해하려면 먼저 들어라

소통의 가장 큰 팁은 상대의 이야기를 들여야 한다고 하지만, 문제는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분명 눈을 맞추어 주면서 그의 말에 목에 핏대 세우며 응대했는데 내 말은 전혀 듣지 않고 있었다는 걸 발견하게 되면, 그냥 한 대 콱 쥐어박고 싶은 충동이 들 때도 있다.

나름 대화중에서 상대의 말을 잘 듣는 나라고 생각하지만

왜 이처럼, 여전히 사람들과의 대화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느낌이 들까?

상대의 말을 들으려는 당시 나의 의도는 무엇 이였을까?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서 일까, 아니면 상대의 말에 대응하기 위해서 일까?​

불상의 모습에서 무엇 보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과장된 커다란 귀다, 그 커다란 귀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여주고자 함일까 ?.

▮ 모아보는 설산수도

<br><br> <법주사- 경북 군위>

<br><br>

신흥사- 경북 김천

<br><br> <안일사- 대구 남구>

<br><br> <은해사- 경북 영천>

<br><br> <해인사 홍제암- 경남 합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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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전통사찰의 구조 - 누각(樓閣)
문화

전통사찰의 구조 - 누각(樓閣)

누각은 2층의 다락집 형태로 대부분 주불전을 마주보고 서있다. 좌우에는 요사채가 마당을 둘러싸고 있어, 뜨락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구조를 이룬다. 그러나 사찰의 본래 배치는 중앙에 금당이 자리 잡고, 뒤로는 강당이, 앞에는 중문이 있는 형식이다. 그리고 이들을 회랑(廻廊)이 빙 둘러서 연결하는 구조 였다.

중문 대신 누각 형태로 달라진 것은 절이 산 속에 세워지면서부터인듯하다. 특히 누각은 사찰에 대중이 많이 운집하면서부터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누각은 출입 통로이면서 또한 불전사물 봉안, 대법회시 대중운집 장소 등의 용도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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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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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입문 - 불교의 4대 성지는?
문화

불교입문 - 불교의 4대 성지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룸비니동산" 깨달음을 얻으신 "붇다가야" 처음으로 깨달음을 가르치신 "녹야원" 그리고 열반에 드신 "쿠시나가라"를 말합니다.

※ 이 자료는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 알아두면 좋은 불자상식 작성자 민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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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사슴왕
불교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사슴왕

아주 오랜 옛날, 베나레스의 사슴동산에는 500마리의 사슴들이 떼지어 살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황금빛 털로 장식된 사슴 왕은 다른 사슴들에 비해 유난히 크고 늠름하였다.

그 때 인간의 왕은 사슴고기에 맛을 들여 매일 사슴동산에 와서 한 마리씩 활로 쏘아 잡아 갔다.

사슴들은 인간의 왕이 나타나면 두려워 떨며 이리 뛰고 처리 뛰다가 화살에 맞아 죽어갔다.

또한 많은 사슴들이 섣부른 화살에 맞아 피를 흘리며 신음하였다.

이에 황금빛 사슴왕은 사슴의 무리를 모아 놓고 말했다.

  • 많은 동료들이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느니 보다는,

    차라리 이쪽에서 차례를 정해 스스로 나아가 죽음을 기다리기로 하자.

죽을 때 죽더라도 차례가 아닌 다른 사슴들에게는 상처를 입히지 않고, 하루라도 불안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였다.

사슴왕은 인간의 왕에게 나아가 사슴들의 뜻을 전달하였다.

이렇게 되어 인간의 왕은 손수 활을 쏘지 않게끔 되었다.

자기 차례가 된 사슴은 제발로 걸어 나가면 왕의 요리사가 와서 그를 잡아가곤 했다.

그런데 하루는 새끼를 밴 암사슴의 차례가 되었다.

이런 사정을 알게 된 황금빛 사슴은 자기가 대신 죽기로 생각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다치지 않도록 왕이 특별히 주의를 준 바 있는 황금빛 사슴이 처형대 위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본 요리사는 왕에게 달려가 그 사실을 알렸다.

인간의 왕은 황금빛 사슴에게 말했다.

  • 너만은 죽일 생각이 없는데 어째서 여기에 나와 죽음을 기다리고 있느냐?

  • 오늘은 새끼 밴 친구의 차례가 되어 제가 대신 죽으려고 합니다.

사슴왕의 말을 들은 왕은 속으로 크게 뉘우치며 말했다.

  • 나는 너처럼 자비심이 깊은 자를 사람들 속에서도 보지 못했다.

    너로 인하여 내 눈이 뜨이는 것 같구냐. 가거라 너와 암사슴의 목숨 만큼은 살려주리라.

그러나 사슴의 왕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 우리 둘만의 목숨은 건질 수 있다 할지라도 다른 사슴들의 목숨은 어찌 되겠읍니까?

  • 좋다 그들의 목숨도 구해 주리라.

  • 임금님의 자비로 저희 사슴의 우리들은 죽음을 면했지만 다른 동물들은 어찌 되겠읍니까?

  • 좋아 다른 동물들의 목숨도 보호하지.

  • 거룩하신 임금님,

    죽기를 싫어하고 살기를 좋아 하는 건 생명을 가진 모든 생물들의 한결같은 소망입니다.

    날아 다니는 새들과 물속 고기들의 생명까지도 보호해 주십시오.

인간의 왕은 황금빛 사슴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생각하기를

「사람이나 짐승이나 살려고 하는 점에서는 조금도 다름이 없구나.

사슴왕처럼 동료 사슴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는 마음이야 말로

보살의 자비심일 것이다. 내가 남에게서 무엇을 뺏어오는 삶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베풀어 줄 수 있는 생활만이 평화로운 세계를 가져 다 줄 것이다.」하고 깨닫게 되었다.

이와 같이 하여 황금빛 사슴은 안간의 왕에게 모든 생물의 안전을 보장받고 동료 사슴들과 함께 숲에서 평화롭게 살았다. 〈자타카 12〉

  •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前生)이야기를 본생담(本生談 ; Jataka)이라고 하는데,

    이 이야기도 그 중의 하나로 황금빛 사슴왕이 바로 부처님의 전신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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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손순의 효심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손순의 효심

옛날 신라에 손순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비록 가난한 형편이었지만 아내와 함께 남의 집 품팔이를 하며 늙으신 홀어머니를 잘 봉양했습니다. 하지만 살림살이가 어렵다 보니 어머니 한 분께 밥을 지어드릴 뿐 다른 식구들은 죽으로 때우곤 했습니다. 때문에 어린 아들은 밥 때만 되면 할머니 밥상 앞에 버티고 있다가 몰래 할머니의 밥을 빼앗아 먹곤 했습니다. ​ "부인, 아이는 다시 얻을 수 있지만 어머니는 다시 구할 수가 없소. 저 애가 늘 어머니의 밥을 빼앗아 먹으니, 어머님이 얼마나 배고프겠소? 차라리 저 애를 몰래 묻어 버리고 어머님을 배고프지 않게 잘 모십시다." ​ 아내는 울음을 참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 깊은 밤, 모두 잠이 들자 손순은 아이를 업고 아내와 함께 마을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땅을 팠습니다. 그런데 땅을 파다가 뭔가 단단한 것이 손에 잡히는 것입니다. 깜짝 놀라 계속 파보았더니 뜻밖에도 너무나 훌륭한 돌종이 하나 나오는 것입니다. ​ 돌로 되었음에도 생김새가 참으로 훌륭했습니다. 이게 소리는 나는지 궁금하여 나무에 걸어놓고 쳐보았더니, 고요한 밤하늘에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데, 일찍이 들어보지 못한 아름다운 소리가 울렸습니다. ​ 내심 아이를 버리는 것이 마음 아팠던 부인이 손순에게 아이를 데려가자고 말했습니다. ​ "이처럼 신기한 보물을 얻은 것도 이 아이의 복인 듯하니, 아이를 잘 데려가도록 해요." ​ 둘은 아이와 돌종을 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날부터 종을 대들보에 매달아 두고 아침 저녁으로 한 번 씩 쳤는데, 그 소리가 대궐에까지 울려 퍼질 정도였습니다. 어느 날 궁에 있던 흥덕왕이 범상치 않은 종소리를 듣고는 신하들에게 말했습니다. ​ "궁궐 밖 서쪽에서 이상한 종소리가 들려오는데,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그 소리가 비할 데 없이 맑고 청아하구나. 예사 종이 아닌 듯하니, 얼른 가서 알아보도록 하라." ​ 왕의 명을 받은 신하들은 소리를 따라 손순의 집에까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허름한 짐 대들보에 걸려 있는 돌종을 보고는 의아하게 여겨 한번 쳐 보았습니다. 역시 궁궐에서 들리던 천상의 소리 그대로였습니다. ​ 사람들은 손순에게 그 종을 구하게 된 경위를 전해 듣고 왕에게 돌아가 그대로 말씀을 올렸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왕은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 "옛날에 한나라에 곽거郭巨라는 효자가 있었는데, 늙은 모친이 음식을 손자에게 나누어지기를 좋아하자 어머니의 몫이 줄어든다며, 땅을 파고 아이를 묻어버리려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땅에서 돌솥이 나와 그 뚜껑을 열어보니 한 솥 가득 황금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 자식을 묻으려 할 정도의 효심에 감복하여 하늘이 금솥으로 치하했는데, 지금 손순이 자식을 묻으려 하니 땅에서 돌종을 솟아나게 했구나." ​ 한나라에 곽거가 있다면, 신라에는 손순이 있었습니다. 하늘과 땅에서 두 효자의 마음에 감복했던 것입니다. 흥덕왕도 손순에게 집 한 채를 하사하고 매년 쌀을 내려주었다고 합니다. ​ 자식을 버리려 했던 것은 물론 잘못이지만, 그만큼 효심이 뛰어났다는 반증입니다. 부모와 자식에 대해 선택을 하라는 것 만큼 잔인한 일은 없겠지만, 한편으로는 진심으로 자식을 버리는 부모 또한 없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손순이 하늘을 감복시킬 만큼 효심으로 부모님을 잘 봉양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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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법을 전하는 마음가짐, 부루나존자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법을 전하는 마음가짐, 부루나존자

부처님 제자 가운데 설법을 가장 잘 하는 분은 부루나존자였습니다. 그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얻은 깨달음의 기쁨을 여러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설법하는 것을 즐겨했습니다. 급기야 멀리 수로국으로 부처님의 법을 전하려 떠날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장하다, 부루나여. 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 좋은 가르침을 전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부처님은 부루나존자를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물으셨습니다.

사찰 벽화이야기 5. 법을 전하는 마음가짐, 부루나존자

부처님 제자 가운데 설법을 가장 잘 하는 분은 부루나존자였습니다. 그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얻은 깨달음의 기쁨을 여러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설법하는 것을 즐겨했습니다. 급기야 멀리 수로국으로 부처님의 법을 전하려 떠날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장하다, 부루나여. 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 좋은 가르침을 전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부처님은 부루나존자를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물으셨습니다.

"그런데 부루나야, 그 나라 사람들은 포악하고 잔인하다. 욕된 말로 그대를 비난할 텐데 괜찮겠느냐."

"흙뭉지를 던지지 않으니 이 얼마나 친절한가.라고 여기겠습니다."

"흙뭉치를 던지면 어쩌려는가."

"몽둥이로 때리지는 않으니 참으로 친절한 사람이라고 여기겠습니다."

"몽둥이로 때린다면 어떻게 하려는가."

"칼을 휘두르지는 않으니 참으로 친절한 사람들이라고 여기겠습니다."

"날카로운 칼로 목숨을 뺏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는 것이라고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몸은 무상한 것입니다. 많은 비구들이 이미 이 몸과 목숨은 늘 덧없는 것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언제든 버려도 아깝지 않은 것을 저들 덕분에 한 시름 덜게 되었으니 고맙다고 여기겠습니다."

"장하다, 부루나여, 그와 같은 마음을 갖고 법을 전한다면 교화하지 못할 사람이 없고, 능히 뛰어넘지 못할 장애가 없을 것이다. 언제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도 좋다."

이후 부루나존자는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수로국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열반에 들 때까지 홀로 불법을 천하며 많은 사람들을 교화하고, 많은 절을 지었습니다.

상불경보살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만나는 사람마다 합장하시고, '여러분은 모두 부처가 될 분들입니다. 그러니 저는 여러분을 가벼히 여기지 않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다녔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없이 평등하게 대하는 모습을 실천하신 보살이십니다.

부루나존자도 이와 같은 마음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펼쳤을 것입니다. 부루나존자의 설법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게 된 수로국 사람들은 항상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법문'을 들어며 서서히 불교에 귀의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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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관세음보살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관세음보살

  1. 중생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

  1. 크고 큰 원력의 보현보살

  1. 지혜의 화신 문수보살

  1. 지옥 중생 구제하는 지장보살

  1. '아, 훔' 금강력사의 힘

  1. 불법을 수호하는 하늘 왕

  1. 띠 순서는 세상을 지키는 임무시간

  1. 중생의 여섯 갈래길, 육도윤회

  1. 구산팔해, 하늘과 인간

보살菩薩, Bodhisattva은 보리살타菩提薩埵를 줄여 부르는 말입니다. 범어 보디사트바Bodhisattva를 한자로 적은 것으로 번역하면 깨달은 중생이라는 뜻이 됩니다. 즉, 부처와 중생의 중간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미 깨달음을 얻었지만,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부처가 되지 않고, 머물러 계신 분들입니다. 대표적인 보살로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지장보살 등이 있습니다.

보살의 정신은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즉, 위로는 부처님의 진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는 대승불교의 이상적인 모습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 정신은 모두가 잘 아는 사홍서원四弘誓願에서 더욱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홍서원은 모든 보살들이 세우는 네 가지 넓고 큰 서약으로

(1)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2)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3)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4)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중생의 구제와 번뇌를 끊고 법문을 배워 불도를 성취하는 것은 개인의 원력이 아니라 대승보살이 지니는 원력입니다. 보살은 이러한 원력으로 늘 중생들 가운데 함께 머물며 지혜와 자비를 실천합니다.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는 분이라면, 신장神將은 부처님의 도량과 가르침을 수호하면서, 불자들을 지키고 보살펴주며 때로는 수행력을 증장하는데 힘을 보태어 주시는 분들입니다

탱화나 벽화는 주불로 모시는 부처님에 따라 좌우에 배치되는 협시보살들과 등장인물이 다르지만, 대표적으로 팔대보살과 십대제자, 사천왕 들이 부처님 탱화에 등장합니다.

가운데 0번 석가모니불 ① 문수보살 ② 보현보살 ③ 관세음보살 ④ 대세지보살 ⑤ 미륵보살 ⑥ 지장보살 ⑦ 금강장보살 ⑧ 제장애보살 ⑨ 가섭존자 ⑩ 아난존자 ⑪ 사리불존자 ⑫ 수보리존자 ⑬ 부루나존자 ⑭ 목건련존자(목련존자) ⑮ 가전연존자 16번 아나율존자 17번 라훌라존자 18번 우바리존자 19번 동방 지국천왕 20번 남방 증장천왕 21번 북방 다문천왕 22번 서방 광목천왕

[중생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

중생과 가장 친근한 보살인 관세음보살에 대해서는 『법화경』 <보문품>에서, 무량 백천만 억 중생이 온갖 고뇌를 받더라도 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곧 음성을 알아들어 고뇌에서 풀려나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관세음보살은 자비의 화신으로 중생을 구제하려는 큰 자비심을 바탕으로 모든 중생들의 고난을 구제하고 복덕을 나누어 안락한 세계로 인도해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소리를 모두 관찰한다는 의미에서 관세음보살이라 부릅니다. 관세음보살께서 이마에 두른 보관에는 늘 아미타부처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관세음보살의 가장 큰 특징은 신통력으로 방편을 베푼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32응신이라고 하여, 중생에게 필요한 상황에 맞추어 여러 가지 몸을 신통변화로 나타내십니다.

벽화의 소재가 되는 불교설화에서 관세음보살의 화신과 연관된 일화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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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빈자1등 (貧者一燈) - 보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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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벽화이야기 - 빈자1등 (貧者一燈) - 보시(1)

<은적사- 대구 남구>

현우경(賢愚經)에 나오는 이야기로 사위성에서 법회가 열리게 되어 마을 사람 모두 법회에 참석하기 위해 분주하게 서두르는데 난타(難陀)라는 한 여인은 너무나 가난해서 등하나 들고 갈 수 없음을 한탄하지만 결국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서 등불을 밝힐 기름 한 되를 구하여 법회에 참석하게 된다. 그날 밤 법회는 끝나고 모두 떠난 그 자리에 들고 왔던 그 수많은 등불도 하나 둘 꺼졌지만 그 중 이상하게도 난타의 등불만이 꺼지지 않은 채 새벽까지 남아서 밝게 타고 있었다. 등불이 스스로 다 꺼지기를 기다리며 자리를 지키던 비구들도 이제 돌아가기 위해 하나 남은 그 등불앞에 모여 등불을 끌려고 손으로 바람을 보내거나 옷자락으로 흔들어 바람을 내봐도 여전히 불은 꺼지지 않았다. 의아하게 생각한 비구들은 이유를 석가모니에게 묻자 답하기를 “저 등불은 모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대비심을 낸 사람의 등불은 꺼지지 않는다” 라 말하고 그 등불을 가져온 난타에게 말 하기를 ‘그대는 먼 훗날 등광이라는 이름을 가진 부처가 될 것이다’ 라며 여인에게 부처가 되기를 예연을 하고 있는 그림이다.

▮ 빈자1등의 가치.

빈자1등이란 가난한 사람의 등불 하나라는 뜻으로 부귀한 사람의 명예욕에 쌓여진 보시(布施) 보다도 가난한 사람의 성의를 다한 보시의 가치가 더욱 크다는 메시지다. 사실, 보시란 있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없어도 할 수 있는 배려의 마음 이라 하지만 단돈 얼마라도 남을 위해 흔쾌히 내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으니 이 또한 연습을 자꾸 해야 한다 보시를 해 보려 해도 쑥쓰러워서, 어찌 할 줄 몰라서, 반응이 두려워서 주저 하고 있다 자꾸 자꾸 주다가 보면받는 기쁨보다 주는기쁨이 얼마나 큰지를 알게된다 주는순간의 나의 기쁨. 그것만으로도 나는 큰 복을 받은 것이다

그렇게 주는 연습을 하다보면 줄 수있는 능력이 생기는 게 세상의 이치다 마음을 허공처럼 비우되, 비었다는 생각에 매이지 말라고 배웠다. 복도 허공과 같아서 찾으면 보이지 않지만, 사실은 내 주위의 허공처럼 늘 상주한다.

보시란 무엇일까?

‘이것이 보시다’라고 입을 열면 이미 보시는 아니다. 그래서 보시란 서원(誓願)이다. 바라는 바 없이 서원을 내는 것이 보시의 마음이다. 신라의 의상스님은 말했다. 사람은 각자의 마음그릇에 따라, 복을 많이 담고 적게 담는다고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 하늘에는 보배가 내리는 비처럼 가득 쏟아지지만, 중생수기극이익(衆生受器得利益)- 자기 딱은 만큼만 그 그릇을 채운다.

  • 법성게(法性偈) <br><br> ▮ 법당에는 등이 참 곱다. <br><br> 부처님 오신 날이면 사람들은 번뇌와 무지로 가득한 세상을 부처의 지혜로 밝힌다며 법당에 형형색색의 등을 단다. 그래서인지 법당의 등은 그렇게 모인 마음처럼 곱고. 그 고운 빛 만큼이나 세상은 맑아졌을 것이라 믿어 진다. 온 법당에 고운 빛으로 가득 채우고 있는 다양한 등에도, 사실은 한눈에 눈길 끄는 크고 화려하여 등급을 짐작 할 수 있는 높은 탐욕의 등에 가려진 가난한 사람의 등은 이미 빛을 잃은 지 오래전이다. 요즘 사찰마다 경쟁적으로 진입로를 넓혀 찻길을 내고, 도량을 넓히고 높이는 불사가 한창이다. 경내에 모신 부처님의 크기로, 탑이나 석등의 규모로 절이 위세를 떨치려는걸 보면. 절을 찾는 사람이 찾고자 하는 속세와 피안, 고통과 구원, 미망과 깨달음에서 아슬아슬한 경계에 걸려 있는 듯하다. 가난하고 부족한 인간의 미욱함을 부처님의 한없는 넓은 가슴으로 품어주는 구원의 공간이 법당이며 인간 스스로도 자신을 마음껏 매질하는 구도의 현장이 법당라고. 그래서 ‘인간이 무릎을 꿇는 마지막 땅이 절이다’ 라는 선언이 귀에 아련해 진다. 그때처럼 가난한 여인이 밝혔던 '착한 등불'의 빛이 있던 이곳에서 무릎 꿇고 두 손 모은 나의 기도에도 지혜의 광명으로 다시 밝혀지길 바라며 무릎 꿇는다. ‘빈자1등’은 등불을 올리는 가난한 여인을 통해 남을 위한 보시란 어떤 물질을 갖고 하는가 보다는, 어떤 마음을 갖어야 함이 얼마나 중요 한지를 느끼게 하는 그림이다. <br><br> ▮ 모아보는 빈자1등 <br><br> <경흥사-경북 경산>

<br><br> <법련사-경북 영천>

<br><br> <보광사-전남 담양>

<br><br> <심복사-경기 평택>

<br><br> <용운사-경북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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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수인 (手印)
문화

수인 (手印)

불상의 손모양을 수인이라고 하는데, 수인에는 특별한 뜻이 있다. 부처님의 덕을 나타내기 위해 열 손가락으로 여러 모양을 만들어 표현하는 것이다. 인계(印契), 인상(印相), 밀인(密印), 계인(契印)이라고도 한다.

수인은 교리상 중요한 의미가 잇으므로 불상을 만들때 함부로 현태를 바꾸거나 다른 불상의 수인을 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수인은 불상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수인의 종류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근본5인, 아미타부처님의 구품인(九品印), 비로자나부처님의 지권인(智拳印) 등 매우 다양하다.

아미타부처님의 수인은 좌선자세에서 양손의 검지를 구부려 손가락끝을 붙이되 검지손가락의 등쪽이 서로 맞닿도록 하는 상품상생인 등 아홉가지가 있다.

아미타부처님의 구품인은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아홉가지 차별을 말하며, 상품.중품.하품을 각각 상.중.하로 세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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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신묘장구 대다라니 (14일차)
문화

불교문화 - 신묘장구 대다라니 (14일차)

**보명법사의 신묘장구대다라니 3×7=21일 기도 14일째. **

  1. 천수경 수지공덕(受持功德).

그러면 이제 이 천수경을 우리가 수지독송 하므로써 어떠한 공덕이 있는가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금강정유가천수천안관자재보살수행의쾌경>에서는 이 대비심 다라니를 항상 염송하면 현생에 삼업(三業)을 청정히 할 수 있고 구하는 바 세간의 부귀영화를 모두 성취한다고 하였습니다.

뿐만아니라 제불보살이 옹호가지하여 여러 마(魔)가 침범하지 못하고, 임종에는 아미타 부처님이 나타나서 장차 극락세계 연화대(蓮華臺) 중에 가서 상품상생(上品上生)하여 보살의 지위을 얻고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수기한다고 하였습니다.

<천안천비관세음보살모다라니신주경> 상권에서는 이 다라니를 수지하면 일체 업장이 모두 소멸되고 일체의 귀신이 침노하지 못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널리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고 천ㆍ인ㆍ아수라를 안락하게 하기 위하여 이 다라니 법문을 설한다고 하였으며, 과거ㆍ현재ㆍ미래의 모든 부처님이 이 다라니법문으로 인하여 정등정각(正等正覺)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후오백세(後五百歲) 중의 중생은 때가 두껍고 복이 옅으므로 마음을 한 곳에 전념할 수 없어 귀신의 침해를 받게 되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이 다라니문을 설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또 진심으로 관세음의 이름을 칭념하고 본사아미타불(本師阿彌陀佛)을 전념하고 이 다라니주를 송하면 몸안에 있는 백천만억 겁 동안의 생사중죄를 제멸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천수경은 그 지송공덕이 한량이 없습니다.

우리 중생들이 여러 가지 질병에 걸려 신음하는 것이나 여러 가지 일로 고통을 받는 것은 모두가 스스로 지은 죄업의 과보입니다. 이 죄업들을 천수경은 소멸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에서의 모든 행사의 시작과 끝은 항상 천수경으로 터를 씻고 부정을 소명시키는 것입니다.

또한 이 경은 모든 악한 귀신으로부터 보호하여 부처님을 일심으로 생각할 수 있게 보호하는 능력이 있고, 살아 생전에는 부귀영화를, 사후에는 극락왕생을 보장하는 아주 귀한 경전입니다.

지금까지 천수경이란 경전의 이름 속에 담긴 깊은 뜻과 이 경이 세상에 나오게 된 인연 그리고 수지독송하는 공덕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불법은 많이 아는 것만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를 알아도 그것을 실천해서 바로 우리 생활에 유익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천수경이 이처럼 소중한 경전이지만, 책장에 꽂아두고 잘 모신다고 공덕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말고 그대로 믿고 실천 해야만 공덕이 됩니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많은 지식이 있다 해도 자기 자신에게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미란다왕문경>에 보면 미란다왕이 나아가세나 비구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세상에 살면서 1백년이나 악을 행한 사람이라도 임종시에 염불하면 죽은 후 태어난다고 하는데 이 말을 믿지 않습니다".

이런 생각은 미란다왕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생각일 것입니다.

불자들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참으로 많습니다. 이에 대해 나아가세나 비구는 다음과 같이 비유를 들어서 의심 많은 왕을 깨우치고 있습니다.

"조약돌을 물 위에 놓으면 가라앉습니다. 그러나 1백개의 돌이라도 배위에 올려 놓으면 가라앉지 않고 뜹니다. 염불의 수행은 바로 백 개의 돌을 뜨게 하는 배와 같은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한 개의 돌맹이도 물에 가라않지만 백 개의 돌이라도 물위에 뜨는 것은 배를 이용했기 때문인데. 바로 이 배와 같은 역활을 하는 것이 불보살님의 원력이고 지도법사의 법력이고 자신이 갈구하는 자력입니다.

우리는 홀로는 믈 속에 가라 앉을 수 밖에 없는 죄업이 두터운 존재이면서도 불보살님을 통해서 능히 뜰 수가 있는 것입니다. 천수경은 바로 이러한 불보살님의 중생구제의 서원을 다라니를 통해 구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수경을 수지독송하고 생활화하게 되면 우리는 모두 부처님의 가호로 성불할 수가 있습니다.

음식이 아무리 많아도 내가 먹지 않으면 배부르지 않듯이 천수경이 아무리 훌륭한 경전이라도 우리가 활용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불자들은 천수경에 대한 바른 인식을 하고 나아가서 부지런히 수지독송하고 생활화합시다.

보명의 염불독송 천수경 성문스님 독경

오늘도 감ㆍ고ㆍ사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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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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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벽화이야기 - 해인사의 창건 설화. 순응과 이정화상.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해인사의 창건 설화. 순응과 이정화상.

<br> **[해인사의 창건 설화. 순응과 이정화상]** <br>

순응 화상과 이정 화상
<br> 중국 양무제 때 배포 화상이 임종에 즈음하여 동국답산기라는 책을 제자들에게 전해주면서 말하였다.

“내가 죽은 뒤에 신라에서 두 명승이 찾아와 법을 구할 터이니, 이 책을 전하여 주거라.”

지공 화상이 그 말을 남기고 열반에 들어간 뒤에 과연 신라에서 순응과 이정 두 스님이 중국에 와서 법을 구하였다. 지공 화상의 제자들은 그들을 몹시 반가이 맞으며 스승의 유언을 말하고는 동국답산기를 전하였다. 두 스님은 깊은 감동을 받고 지공 화상의 탑묘를 찾아갔다.

사람에게는 옛날과 현재가 있을지언정 진리에는 멀고 가까움이 없다.

두 스님이 이와 같은 가르침을 생각하며 일주일을 밤낮으로 기도하며 법문을 청하였더니, 이윽고 탑 속에서 지공 화상의 모습이 나타나 두 스님의 구도심을 찬탄하고 의발을 전해주며 말하였다.

“너의 나라 우두산 서쪽에서 불법이 크게 일어날 곳이 있으니 그곳으로 가서 대가람을 창건하라.”

지공 화상이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탑 속으로 들어가자 순용과 이정 두 스님은 탑묘를 향하여 다시 한 번 예배드리고 고국인 신라로 돌아왔다.

법을 구하던 길에서 돌아온 두 스님은 바로 우두산을 찾아 나섰다. 그리하여 맑은 물이 흐르고 산세가 빼어 난 곳에 이르러 자리를 깔고 선정에 들어가자, 그 두 스님의 이마에서 오색광명이 솟아나 하늘로 뻗쳐오르는 것이었다.

그 무렵 나라에는 근심거리가 있었다. 신라 제40대 임금인 애장왕의 왕후가 몹쓸 병에 걸려 백방으로 좋다는 약을 써봐도 뚜렷한 효험이 없었던 것이었다. 왕은 신하들을 여러 곳으로 널리 보내어 덕이 높은 고승을 모셔올 것을 명하였다.

고승을 찾아 헤매던 한 신하가 우두산 근처를 지나다가 하늘로 뻗쳐오르는 신령한 빛을 보게 되었다. 그는 수 풀을 헤치며 그 빛이 나오는 곳을 찾아나섰다. 그리하여 마침내 선정 삼매에 들어가 빛을 발하고 있는 순응과 이정 두 스님을 뵈을 수 있었다. 신하는 예를 올린 뒤에 그곳을 찾아오게 된 내력을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두 스님은 오색실을 내어주면서 실의 한 끝은 궁전 뜰 앞의 배나무 가지에 매고 다른 한 끝은 문고리에 대어두라 고 일러주었다.

신하가 돌아가서 두 스님이 시키는 대로 하니 파연 궁전 뜰 앞의 배나무가 말라 죽으면서 왕후의 오랜 병이 말끔히 가셨다. 왕과 왕후와 신하들은 모두 크게 기뻐하였다.

예장왕은 그 은혜에 감사하여 몸소 우두산으로 가서 두 스님께 인사를 드린 뒤에 그 자리에 대가람을 창건하였다. 그 절이 바로 가야산 해인사이니, 이것은 애장왕 3년(802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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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심우도 [망우존인 (忘牛存人)]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심우도 [망우존인 (忘牛存人)]

망우존인 (忘牛存人)

사찰 벽화이야기 심우도 7.8도

  1. 망우존인 (忘牛存人)

< 소를 타고 고향에 도착하니 소는 간데없고 사람까지 한가롭네

붉은 해가 높이 솟아도 여전히 꿈 꾸는 것 같으니 채찍과 고삐는 초당에 텅하니 놓아두네.>

애써 찾은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소는 온데간데 없이 홀연히 사라져 버리고 동자만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매어놓을 소가 없으니, 이제는 쓸모없어진 채찍과 고삐를 초당(창고)에 무심히 던져둡니다. 그런데 소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분명히 소를 데려 왔는데, 타고 온 소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사실상 소는 우리를 본래의 자리로 데려다주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햐얀 소를 타고서 집으로 돌아온 것은 원래의 자리, 순백처럼 청정한 본래의 마음자리로 돌아왔다는 의미입니다. 돌아왔기에 더 이상 소가 필요없어진 것입니다.

마치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왔는데, 분명히 타고 왔는데, 문 앞에 타고 온 버스가 없다고 황당해 하는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누구도 하지 않는것과 같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강가에 뗏목과 같다고 했습니다.

커다란 강을 건네준 뗏목이 아무리 고맙더라도 힘들게 머리 위에 짊어지고 갈 수 없는 것처럼, 본래의 마음을 찾았으면 현실의 나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몸 따로 마음 따로, 이상 따로 현실 따로 두지 않아야 합니다. 무심히 산천을 바라보는 동자의 모습에서 현실 그대로가 대자유의 순간임을 잘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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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바르게 피어나는 하얀 연꽃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바르게 피어나는 하얀 연꽃

사리불에게 법화경을 설하시다 - 단양 구인사 광명전 벽화로 그려진 불화

바른 마음가짐으로 심성心性을 바르게 하면 내 마음에도 하얀 연꽃이 피어납니다. 무거운 진흙을 뚫고 흙탕물 속에서도 새하얗게 피어난 연꽃들 처럼, 중생의 마음도 무명無明의 번뇌를 걷어내어야 합니다.

그렇게 여래의 씨앗을 갈무리해 둔 곳간을 찾아 싹을 틔우니, 하얀 연꽃 한 송이가 바르게 피어났습니다. 각각의 연꽃 봉우리에는 한 분 한 분의 불자님들이 앉아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게 됩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세상, 말법의 시대가 닥치더라도 그 곳에 바른 마음으로 살아가는 한 중생만 있다면, 그 청정한 마음을 연못삼아 연꽃의 미묘한 향기가 부처님 가르침처럼 전해질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세상을 부처님께서 오가시는 도량으로 만들기 위해 『법화경』의 큰 가르침이 중생들에게 전해집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길

경전이운經典移運. 우마차를 이용해서 경전을 옮기는 모습 - 단양 구인사 광명전 벽화로 그려진 불화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은 경전은 부처님의 육성과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님을 모시듯 예를 갖추어 머리에 이고 두 손으로 떠 받치고서 경전을 옮겨갑니다.

옛날 인도에서 서역을 거쳐 삼장법사께서 모셔오던 불서 행렬이 그림과 같지 않았을까요, 앞선 동자가 받쳐 든 향불을 따라, 스님과 대중의 원력으로 경전이 모셔지고 있습니다.

경전이운經典移運이란, 부처님의 말씀인 경전을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의미입니다. 마치 법륜(法輪: 부처의 敎法)을 굴리 듯 우마차에 가득 실은 부처님의 말씀은 열 개의 살로 이루어진 수레바퀴를 따라 동서남북 시방十方세계 곳곳마다 부처님의 자비광명을 기다리는 곳으로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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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기도란.?
문화

불교문화 - 기도란.?

보명의 3월 초하룻날의 법문. 제목 : 기도(祈禱)란 ?.

'기도(祺禱)'란 다겁생에 지은 죄업과 현생에 길들여진 잘못된 가치관과 습관을 부수어 자신의 업장을 소멸시키고, 주위의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주며 더 나아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것이다.*

또한, 기도(祈禱)란 부처님의 길을 따르고자 하는 원(願)을 세우고, 세속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세상을 올곧게 살아가는 힘과 믿음을 키우는 것을 말한다.

기도란 올바르게 살려는 자신의 의지에 대한 신념과 불보살님의 가피력을 입으려는 믿음의 표현이다. 기도의 방법은 스스로 원(願)을 절, 염불, 독경, 간경, 사경, 주력, 정근 등을 하며, 일심으로 정진하는 것이다.

  1. 기도의 방법. 흔히 기도라 하면 염불(念佛)을 떠올린다. 부처님 (또는 보살님)을 마음속으로 항상 생각하는 수행법으로 불보살님의 위덕을 생각하며 불보살님의 이름을 간절히 부르는 것.

예로부터 대표적인 것이 극락왕생을 염원하는 '아미타불' 염불이 대표적이다. 이에, '석가모니불' 염불은 기본이고, '관세음보살' 염불, 지장보살' 염불, '약사여래불' 염불, '화엄신중' 염불도 열심히 한다.

  1. 염불의 종류.
  1. 법신염불: 부처님이 깨달으신 진리를 생각하는 염불

  2. 관념염불: 부처님의 공덕이나 모습을 마음에 그려보는 염불

  3. 칭명염불: 부처님의 명호(名號)를 부르는 염불 --> 흔히 쓰이는 염불.

  1. 독경(讀經): 일심으로 소리내어 경을 외거나 읽는 것. 전경(轉經: 경을굴린다)이라고도 함.

  2. 간경(看經): 경전을 보고 마음속으로 읽는 수행법

  3. 사경(寫經): 경전을 서사(書寫), 즉 보고 베껴 쓰는 것을 말한다. 일자일배(一字一拜)하면서 지극한 마음으로 반야심경, 금강경 등을 옮겨 적음으로써 산란한 마음을 다스리고 업장을 소멸하는 수행이 사경기도(寫經祈禱)이다.

  • 사경의 종류
  1. 시간에 따라:
  1. 돈사경(頓寫經) - 경전을 하루에 다 쓰는 것.
  2. 점사경(漸寫經) - 경전을 여러 날에 걸쳐 쓰는 것.
  3. 일필경(一筆經) - 한 사람이 큰 경전을 다 쓴 것.
  1. 재료에 따라:
  1. 묵서경(墨書經) - 먹으로 쓴 경전
  2. 금자경(金字經) - 금가루로 쓴 경전, 금니사경이라고도 함.
  3. 은자경(銀字經) - 은가루로 쓴 경전, 은니사경이라고도 함.
  4. 수예경(手藝經) - 바늘로 수를 놓아 쓴 경전.
  5. 혈사경(血寫經) - 피로 쓴 것.
  1. 제본에 따라:
  1. 권자본(卷子本) - 두루마리 형태

  2. 절첩본(折帖本) - 병풍 형태

  3. 선장본(線裝本) - 족보책 형태

  4. 주력(呪力): 불, 보살님의 명호나 진언(眞言)의 다라니를 일념으로 염송하는 것을 말한다.

  1. 진언(眞言): 짧은 주문 = 만트라
  2. 다라니(陀羅尼): 긴 주문.
  • 진언(다라니)에는 모든 공덕을 지니다는 '총지(總持)', 모든 잘못을 막는다는 '능차(能遮)' 의 뜻을 가지고 있다.

  • 주력기도 진언으로 천수경의 관세음보살 본심미묘육자대명왕진언인 옴마니반메훔과 신묘장구대다리니, 광명진언, 능엄신주 등이 이용된다.

  1. 정근(精勤):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등을 부지런히 염송(念誦)하며, 서원을 세우고 이루고자 하는 의식으로 염불수행법 중의 하나로서 자라게 하고 마음의 악을 여의려고 부지런히 수행 정진하는 것.

불기 2570년 4월17일의 병오년 3월 초하룻날에. 팔공산 감고사지기 보명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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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앙굴리말라 (央掘摩羅) - 멈춤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앙굴리말라 (央掘摩羅) - 멈춤

<의림사- 경남 창원>

앙굴마라경(央掘摩羅経經)에 나오는 이야기로 한 살인마가 앞서가는 석가모니를 해치기 위해 칼을 들고 쫒는 그림이다.

살인마 앙굴리말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감화되어 살인을 저지르던 과거를 뉘우치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유명한 이야기다 <br><br> ▮ 앙굴리말라야 그만 멈추어라

알굴리말라는 목표로 세운 죽임 100명을 채우기 위해 마지막 한명의 희생자를 애타게 찾아다니던 중 앞서가는 석가모니를 발견하고 그를 쫓기 시작한다. 그러나 앙굴리말라는 아무리 쫓아도 차분하게 걷고 있는 부처를 따라 잡지 못한다. ‘앙굴리말라야 멈추어라’가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話頭)는 무었일까.

  • 부처를 죽이다: 선사들이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인다!’라는 뜻으로 쓰고 있는 살불살조(殺佛殺祖)에서는. 인생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풀겠다면서 지금껏 해 왔던 습(習)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행(行)만으로는 진리를 얻을 수 없다고 이런 이야기를 올려놓은 건 아닌 가.
  • 부처를 따라잡지 못하다: 부처는 육신의 움직임이라는 ‘행’으로써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분이라 비유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미 마음 일어남을 멈춘 적멸의 상태에 들어선 분이기 때문이다. 마치 손오공이 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사실은 부처님 손바닥 안이란 말과 같이 내 알음알이로는 부처의 세계를 이해 할 수도 따라갈 수 도 없다는 뜻으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앙굴리말라는 아무리 달려도 차분하게 걷고 있는 부처를 따라 잡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쫒아도 부처와의 거리를 줄이지 못하자 앙굴리말라는 결국 부처에게 "걸음을 멈추라"고 외친다. 대답하길 "앙굴리말라야, 나는 이미 멈추었다. 너도 그만 멈추어라."라 하였다. *멈춤: 좀 더 많이 갖으려는 마음, 좀 더 채우려는 마음, 좀 더 잘 보이려는 마음, 이런 집착의 마음을 멈추어라 그러면 당장 자유로워지리라 멈춤의 의미로 깨달음을 얻은 앙굴리말라는 부처에게 엎드려 절하고, 제자로 들어간다. ‘알굴리말라’에서는집착에 빠진 살인마를 통하여 멈춤의 미학을 느끼게 하는 그림이다. 꽃이 멈춤의 힘으로 피어나듯. <br><br> ▮ 모아보는 앙굴리말라 <br><br> <경흥사-경북 경산>

<br><br> <영화사-서울 광진>

<br><br> <용운사-경북 경주>

<br><br> <은적사-대구 남구>

<br><br> <해인사-경남 합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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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삶이 바뀌는 기도* 법화경 제24 묘음보살품 독송 &amp; 사시불공 | 영평선원 2026.06.21.
영상

*삶이 바뀌는 기도* 법화경 제24 묘음보살품 독송 &amp; 사시불공 | 영평선원 2026.06.21.

!삶이 바뀌는 기도 법화경 제24 묘음보살품 독송 & 사시불공 | 영평선원 2026.06.21. 이 영상이 도움이 되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알림 설정을 켜시면 기도시간을 놓치지 않습니다! #법화경 #사시불공 ...

자현스님의 예불과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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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0일
사찰 벽화이야기 - 스승이 제자가 되다, 희운선사
불교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스승이 제자가 되다, 희운선사

희운선사는 중국 당나라 때 스님입니다.

그의 출가 스승은 고령이라는 스님이셨는데,

자신을 시봉하는 희운스님에게 때가 되면

마조선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보라고 권했습니다.

그리하여 마조스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마조선사는 이미 3일전에 입적하셨다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상심하다가,

마침 마조스님의 법통이 제자인 백장스님에게 전해졌다는 사실을 알고,

희운스님은 백장스님에게 배우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3년을 백장스님을 시봉하며 열심히 수행을 했습니다.

3년의 공부 끝에 희운스님은 큰 깨달음을 얻고

원래 스승이던 고령스님에게 돌아왔습니다.

"마조의 법이 어떠하던가?"

"제자가 박복하여 이미 대사께서 열반에 들어 법을 듣지 못했습니다."

고령스님은 그렇게만 알고는 더 이상 뒷일을 묻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고령스님이 목욕을 하면서 등을 밀어 달라고 했습니다.

희운스님은 고령스님의 등을 밀다가 갑자기 등을 탁 치면서,

"법당은 좋으나 부처가 없습니다."

"내 비록 영험은 없으나, 참 나를 찾을 줄은 아네."

희운스님은 깨달음의 문답을 던졌으나,

스승은 알아듣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또 하루는 고령스님이 선방에서 경전을 보는데

벌 한 마리가 날아 들어 왔다가 나가지 못하고

온 방안을 방황하는 것입니다.

희운스님이 또 선시를 읊었습니다.

"창문을 날아든 벌 창틀은 더듬어도

종이를 분별하지 못하니 어느 때에 빠져 가리."

그러나 고령스님은 그 뜻을 알지 못하고,

벌이 나가지 못하는 줄로만 알고는 문창호에 구멍을 뚫어주었습니다.

벌은 그 틈새로 붕 ~ 하고 날아가 버렸습니다.

"천안통을 열고 보니 벌은 날아 요지로 간다.

가는 소리 불법을 말하고 밝은 달이 햇불을 비추더라."

그제야 고령스님은 알아차렸습니다.

"네가 법을 얻어 왔구나."

하고 일어나 희운스님에게 큰 절을 했고,

스승이 곧 제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습니다.

그 말은 배움에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속담에 '여든 노인도 세 살 아이에게 배울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잘못입니다.

나를 헤치려는 원수에게도 배울 점이 있으면 배워야 합니다.

배움에 스승이 어디있고 제자라고 정해진 법이 어디에 있을까요.

인연 따라 가르침을 주는 모든 이들이 나에게 스승이 됩니다.

선재동자의 심정으로 모든 선지식을 찾아야 하는 것이

참된 수행자의 바른 공부 자세라 할 것입니다.

배움의 길에 지름길은 없습니다.

옛 고승의 전기만 보더라도 하루아침에 저절로 깨달음을 얻으신 분은 없습니다.

오랜 노력과 수행의 결과로 한 마음 바른 깨달음을 얻으신 것입니다.

차근차근 노력하는 것만이 가장 빠른 지름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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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구정스님 (九鼎) -나도 모르는 것이 있다.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구정스님 (九鼎) -나도 모르는 것이 있다.

<광덕사- 대구 달성>

젊은이가 공양간의 솥을 걸고 있고, 그 옆에서 한 스님이 잘못 솥을 걸었다고 손사래 치는 그림이다,

▮ 야! 그건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어느 날 한 젊은이가 가르침을 받고자 무염스님을 찾아오게 되는데.

스님은 젊은이의 결의를 확인하기 위해 부엌아궁이 솥을 거는 일을 시키는데 온갖 트집을 잡으며, 같은 일을 다시 또다시 시키고 있다.

그래도, 시키면 시키는 대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묵묵히 솥을 걸고 허물어뜨리기를 반복하는 젊은이의 모습에.

무염스님은 젊은이의 구도심을 인정하고 결국은 제자로 받아드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무염스님은 재자로 받아들인 젊은이에게 솥을 아홉 번 고쳐 걸었다는 뜻에서 구정(九鼎)이라 법명을 내린다.

이야기에서는, 참 스승을 만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스승의 가르침에 전적으로 믿고 배우려는 마음 또한 중요한 조건이 된다는 이야기를 남기고 있다,.

배움이란 ‘ 나도 모르는 것이 있다’라는 알아차림에서부터 시작된다는데.

이는

컵 속에 새로운 물을 채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전에 있던 물은 미련 없이 비워야 한다는

누구나 알고 있는 평범한 진리를 기억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정스님’의 사례에서는 똑 같은 일을 아홉 번이나 참아내는 인욕을 통해서

내가 안다고 하는 생각부터 먼저 내려놓고 비울 때, 비로소 배움에 다가갈 수 있다는 의미를 느끼게 하는 그림이다.

▮ 잔소리와 조언의 차이

모 방송에 나온 어느 초딩에게 사회자가 ‘잔소리와 조언’의 차이를 묻자

잔소리는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쁜데, 조언은 더 기분 나빠요 ~

나이가 어리나 나이가 드나 간섭하는 말은 모두 싫어하지만.

그래도 어느 순간에는 조언은 듣고 싶어 돈을 줘서라도 적극적으로 찾아갈 때도 있다.

그럼 비슷해 보이는 두 가지 말속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조언이라 하면,

내가 돈을 내서라도 정답을 찾고자 위안을 받고자 하는 적극적인 행위라 할 수 있는데.

점집에가서 내 미래의 운명에 대하여 얘기를 듣고 싶고,

의사를 만나 내 건강이 좋은 지 아닌지를 확인받고 싶고,

교육 카운슬러에게는 우리 아이에게 맞는 학교가 어디인지 조언 받고 싶다..

내가 알고 싶은 것에는, 돈과 시간을 내서라도 알고 위안이라도 받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이들 대상의 화법에서는 아주 객관적인 3자의 입장에서 얘기를 풀어낸다는 공통점이 보인다.

결국, 듣기 싫은 잔소리도 조언이 될 수 있는 필수조건은 타이밍과 기다림인데.

내가 상대를 위해 조언(助言)을 하고 싶다면,

나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까지 인내해야하고, 기다릴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하며, 그 타이밍을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이다.

사실은 자기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상대에게 조언으로 포장한 말로 내게 다가오듯이,

누구나 상대의 이야기가 듣고 싶다기 보다는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그것도 간절히....

그러나, 나의 조언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사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나 역시 말을 아끼려 애써 보지만, 자기 이야기에 너무도 열중인 상대의 이야기를 너무 오래 듣고 있다 보면

돌부처가 돼 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 모아보는 구정스님

:: 금산사- 전북 김제

:: 선암사- 부산 진구

:: 영화사- 서울 광진

:: 운문사- 경북 청도

:: 해인사- 경남 합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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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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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입문 - 사찰에서 서로 인사 할 때 출가자의 목적은?
문화

불교입문 - 사찰에서 서로 인사 할 때 출가자의 목적은?

두손을 합장하며 "성불하십시오"하면서 인사합니다. "성불"이란 말은 부처님처럼 진리를 깨달아 거룩한 성인이 되라는 뜻이 있으며 또는 모든 소원을 이루라는 뜻도 있습니다.

※ 이 자료는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 알아두면 좋은 불자상식 작성자 민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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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향싼종이 --- 향기나는 사람
불교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향싼종이 --- 향기나는 사람

<북지장사- 대구 동구>

법구비유경(賢愚經)에 나오는 이야기로 한 비구가 길에 버려진 새끼줄을 들고 석가에게 묻고있는 그림이다. <br><br> ▮ 향싼종이에는 향내나고, 생선 묶은 줄에선 비린내난다

석가모니 일행이 정사로 돌아오는 중 제자중 한명이 석가에게 ‘어떤 마음으로 참 된 인연을 만나야 합니까’라며 묻자. 그 제자에게 길에서 낡은 종이를 줍게하고 어떤 종이냐고 물었다. 비구는 이 종이에서 향기가 나는 걸 보니, 향을 싼 종이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번에는 새끼줄을 줍게 하여 다시 물으니, 이 새끼줄은 비린내가 나기 때문에 생선을 묶었던 줄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석가는. 사람은 모든 인연을 따라 죄와 복을 부른다. 어진 이를 가까이 하면 자신도 점점 어진 마음 함께 높아지게 되고, 어리석은 이를 친구로 가까이 하면 곧 재앙을 부르게 된다. 저 종이는 향을 가까이 했기에 향기가 나고, 저 새끼줄은 생선과 함께 엮이어 있었기에 비린내가 나는 것과 같다. 사람은 다 조금씩 환경 따라 물들어 가지만 스스로는 그렇게 되는 줄 모를 뿐이다. 그렇다. 종이와 새끼줄에는 원래는 향냄새와 비린냄새가 있지 않았다. 향을 싸고, 생선을 엮은 인연으로, 향냄새가 나고 비린냄새가 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도 이와 마찬가지다. 선한 것도 아니고, 악한 것도 아닌 것이 원래 사람의 마음이었다. 우리가 만나는 인연을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대하며 살아 왔는가에 따라서 선하게도 되고 악하게도 되는 것이다.

‘향싼종이’에서는 향내 나는 종이와 비린내 나는 새끼줄을 통해 가까이 두어야 할 인연의 중요함을 느끼게 하는 그림이다.

<br><br> ▮ 회 향

‘향싼종이’에서는 ‘모든 것은 본래 깨끗하고 정결하였지만 인연에 따라 죄와 복을 얻는다’. 라는 가르침을 설하는 유명한 장면입니다. 파리를 따라가면 화장실이나오고, 꿀벌을 따라가면 꽃밭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좋은 친구를 만난 것은 이미 인생의 전부를 성공한 것이니.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이미 당신의 인생 승패가 결정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듯 부지런한자와 함께하면 생활에 여유가 생겨나고 적극적인자와 함께하면 세상은 즐거워 지며 지혜로운자와 함께하면 나는 어느듯 정상에 도착해 해 있습니다 누구의 좋은 점을 찾아서 배우고, 격려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 수고가 곧, 누구를 위한 보시이기전에, 나를 위한 보시가 됩니다. 오늘은 소중한 누구를 위해 기도하는 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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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입문 - 견성 성불이란?
문화

불교입문 - 견성 성불이란?

부처와 같은 성품을 봄으로서 스스로 부처를 이룬다는 것이 견성 성불입니다. 부처가 둘이 아닌 것이다.(깨달기 위하여)

※ 이 자료는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 알아두면 좋은 불자상식 작성자 민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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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대구 용연사 혜가단비도.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대구 용연사 혜가단비도.

혜가단비도 (慧可斷臂圖 : 팔을 잘라 도를 구하다)

중국 당대에 형성된 선종은 근원적인 본래심(本來心) 즉 불성(佛性)을 자각하고

그 지혜와 덕성을 일상 속에서 완성하고 전개하였다.

따라서 부처님의 가장 본질 적인 가르침이 선(禪)수행이라고 여겼기에

이 전승의 출발은 석가모니부처님으로부터 시작한다.

첫번째 조사는 가섭 존자이며 두 번째는 아난 존자이다.

이후 27조 반야다라 존자를 잇는 28조가 바로 달마(達磨) 대사이다.

남인도 향지국의 태자였던 달마 대사는 인도 28조이면서 중국 초조(初祖)가 된다.

그로부터 2조 혜가(慧可) 대사, 3조 승찬(僧璨) 대사, 4조 도신(道信) 대사,

5조 홍인(弘忍) 대사에 이르렀고, 홍인에게서 6조인 혜능(慧能) 대사가 나왔다.

그래서 서천(西天) 28조와 동토(東土) 6조를 합쳐 33조사를 헤아리고,

이를 지혜의 등불을 잇는 전등(傳燈)의 정통으로 삼는 전통이 생겨났다.

달마 대사는 스승이던 반야다라 존자의 열반을 마지막으로

인도 내의 교화를 제자들에게 맡기고 중국으로 건너갔다.

당시 양(梁)나라의 왕이던 무제(武帝)를 만났으나

무제는 대사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고 대사는 그 길로 낙양(洛陽)의

숭산(崇山) 소림사(少林寺)에서 9년이란 긴 세월 동안 면벽(面壁)하며

시절인연이 도래하길 기다렸다.

대사의 말없는 교화가 9년째이던 어느 해 엄동설한에

유불선(儒佛仙)의 이치를 통달한 신광(神光)이라는 스님이 찾아와

법의 가르침을 청하였다.

그러나 대사는 면벽한 채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신광은 춥고 눈내리는 긴 겨울밤을 인내로 지새웠다.

대사가 하룻밤의 얄팍한 덕으로 큰 지혜를 얻고자 하느냐며 꾸짖자

신광은 칼을 빼어 왼쪽 팔을 잘라 구도 결심의 척도를 보였다.

이에 땅에서 파초잎이 솟아나 팔을 받쳤고

대사는 신광의 입문(入門)을 허락하여 혜가(慧可 487-593)라 하였다.

혜가는 달마 대사의 가르침을 받고 중국 선종의 제2대 조사가 되었다.

혜가단비도는 벽화 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회화의 소재로 많이 그려지기도 하였는데,

어느 것이나 위의 내용을 사실적이고 인상적으로 잘 표현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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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불영사의 응진전 전설이야기
불교문화

불교문화 - 불영사의 응진전 전설이야기

불영사의 응진전 전설이야기.

불영사에서는 동지팥죽에 얽힌 갑오년(1892) 동지 날에 있었던 일이다.

경북 울진 불영사 공양주 스님이 새벽에 일어나 팥죽을 쑤려고 부엌으로 갔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려고 살펴보니 불씨는 꺼지고 재만 남아 있었다.

팥죽을 쑤어 부처님께 공양을 올려야 하는데 절 안에 남은 불씨는 없고, 언제 불을 지펴 죽을 쑬 지 공양주 스님은 앞이 캄캄하기만 했다.

스스로 자책을 하던 스님은 불씨를 얻기 위해 아랫마을 휘씨 댁으로 갔다. “아궁이에 불씨가 꺼져 불씨를 얻으러 왔다”고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스님에게 휘씨 댁 노인이 말했다.

“새벽에 웬 어린아이가 절에 불씨가 꺼져 부처님께 팥죽공양을 못 올리게 되었으니 불씨를 달라고 찾아왔습니다. 불씨를 얻으러 온 아이가 하도 추워하기에, 팥죽 한 그릇 주었더니 다 먹고 돌아가던데요. 아니 아무리 불씨가 없어도 그렇지 춥고 어두운 새벽에 불씨를 얻어오라고 어린아이를 보내면 되겠습니꺼.?”

공양주스님은 노인의 말에 어리둥절해하며 급히 절로 돌아갔다. 절에 도착해 공양간에 들어가니 아궁이에 장작불이 활활 타고 있던 것이다.

공양주 스님은 자신도 모르게 “나한성중”을 외치며 팥죽을 쑤었다. 공양주 스님은 팥죽공양을 올리기 위해 나한전으로 갔다.

여러 나한상을 자세히 살펴보니 그 중의 한 나한상의 입에 팥죽이 묻어 있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사람들은 동지가 되면 팥죽을 쒀 올리고 기도를 하고 있다.

나한이란

“번뇌-속박에서 벗어난 아라한”이라는 뜻으로 16나한-500나한 신앙은 중생제도 믿음 반영한 것 아라한은 범어 아라하트(arahat)의 음역으로 보통 줄여 ‘나한’이라고 한다.

아라한을 한자(漢字)로 응공(應供)이라고 하는데, 이는 공양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 존경 받을 만한 사람을 의미한다.

부파불교 당시엔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사람, 즉 부처님을 가리키는 명칭이 바로 아라한이었다. 후에 부처님과 아라한이 구별돼, 부처님의 제자가 도달하는 최고 깨달음의 경지를 의미하게 됐다. 넓은 의미에서는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사람을 뜻한다.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은 온갖 번뇌와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것은 중생의 몸에서 부처의 몸으로 향상된 것이니, 아라한이라 하면 바로 부처의 경지를 이룬 사람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통상 16나한과 500나한을 자주 말한다. 16나한은 부처의 경지에 오른 16명의 나한들을 말하는 것이고, 500나한 역시 부처의 경지에 오른 수행자를 말한다.

〈입대승론〉 〈법화경〉 〈사분율〉 등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이들 16나한과 500나한은 실재했던 인물들이다. 16나한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아라한과를 증득한 열여섯 명의 부처님 제자를 일컫는다.

그런데 이들은 부처의 경지에 오른 수행의 결실을 맺었지만, 제각기 개별적으로가 아니라 집단으로 숭배되는 특별한 점이 있다.

그들이 깨달음을 완성하고도 중생계에 머물며 중생을 제도한다는 믿음 때문인 것 같다. 〈입대승론〉에는 ‘부처님이 열반하실 때 16나한에게 부처님 입적 후 교단을 보호하고 지킬 것을 부촉하셨다’는 내용이 있는데, 여기의 16나한이 바로 부처님 수제자들이며, 삼계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수행력과 지혜를 갖추고 있는 인물들이다.

16나한이 신앙의 대상인 것처럼 500나한도 중요한 신앙의 대상이다. 500나한 역시 실재했던 부처님의 상수제자들임을 경전을 통해 알 수 있다.

〈아함경〉에는 부처님께서 500나한들을 위해 코살라국 사위성에서 설법하신 것을 전하고 있으며, 매월 16일에 부처님께서 친히 법을 설하셨다는 기록도 전한다. 500명의 제자들이 부처님에게 수기를 받는 장면 역시 〈법화경〉 ‘오백제자 수기품’에 나온다.

로타리불자회 지도법사 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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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0일
불교문화 - 신묘장구 대다라니 (11일차)
문화

불교문화 - 신묘장구 대다라니 (11일차)

**보명법사의 신묘장구대다라니 3×7=21일 기도 11일째. **

천수천안 관자재보살 광대원만 무애대비심 대다라니 계청 (4) 千手千眼 觀自在菩薩 廣大圓滿 無碍大悲心 大陀羅尼 啓請

계속해서 관세음보살의 공덕을 칭송하는 구체적인 게송의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천룡중성동자호 (天龍衆聖同慈護) 백천삼매돈훈수 (百千三昧頓勳修) 수지신시광명당 (受持身是光明幢) 수지심시신통장 (受持心是神通藏)

처음의 <천룡중성동자호>를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하늘에 있는 천산 사람들과 용, 그리고 여러 성인들이 함께 자비로써 보호한다'는 뜻이 됩니다.

관세음보살의 자비심이 너무 훌륭하니까 주위의 성인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의 자비심을 조금이라도 베풀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주위에서 보호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백천삼매돈훈수>는 '백천 가지의 온갖 삼매를 한꺼번에 닦는다'는 말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갈등이 생기지 않고 일념으로 해야 합니다. 승가에서는 '전기생(全機生) 전기사(全機死)'라고 하여 살 때도 철저히 살고, 죽을 때도 철저히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뿌리까지 철저히 되면 이루어지지 않을 일이 없습니다.

여기서 <훈>이라고 하는 것은 향을 피워 놓고 오래 앉아 있으면 그 향기가 몸이나 옷에 서서히 배어드는 것을 일컫는 말인데, 이 말은 곧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차츰차츰 수행이 쌓여가는 것을 이르는 말입니다.

<백천삼매>는 어떤 일을 하든지 그것과 하나가 되어 마음을 비우고 철저히 하는 것을 이르는 말입니다. 결국 <백천삼매돈훈수>는 관음 대비주를 철저히 일념으로 독송하면 온갖 수행이 한꺼번에 닦여진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는 일마다 걸림이 없이 잘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업장이 소멸되고 여러 성인의 보호 아래 수행이 닦여진 연후에야 가능한 것입니다.

앞에서도 거듭 강조했듯이 『천수경』에서 관세음보살이 상징하는 것은 대비주인데, 이것을 넓은 의미로 생각하면 불법, 곧 정법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수지신시광명당>을 해석하면 '관세음보살의 대비주를 몸에 지니면 그것이 곧 광명의 깃발이 된다' 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흔히 경전에 대한 공덕을 말할 때 서사(書寫), 수지(受持), 독송(讀誦) 이 세 가지를 일컫는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첨가하여 위인연설 (爲人演說)을 할 수 있다면 최상의 공덕이 되는 것입니다.

서사란 경전을 베껴 쓰고 출판하는 것을 말하며, 수지란 경전을 몸에 잘 지니고 다니는 것을 이르는 말입니다. 또 독송은 읽고 외우는 것을 말하며, 위인연설은 남을 위해 경전의 내용을 자세히 설명해 주는 것을 말합니다.

경전을 가지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함을 느낄 수 있는데 거기에다 남을 위해 한 구절이라도 설명해 줄 수 있다면 그것은 최상의 공덕이 되는 것입니다.

경전을 대할 때, 이 네 가지 중 최소한 하나는 반드시 수행해야 합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경전은 바로 부처님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정신, 부처님의 마음, 부처님의 뜨거운 가슴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바로 경전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불법을 만난다고 할 때 가장 이상적인 만남이 바로 경전의 가르침을 통해서 부처님과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한 만남이 곧 서사, 수지, 독송이며, 거기에 위인연설까지 더한다면 그것이 바로 최고의 복을 짓는 일인 것입니다.

여기서 <수지>라고 하는 것은 관세음보살의 대다라니를 수지하는 데서 한 차원 높여서 불법, 곧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지니는 것을 뜻합니다.

또 <광명당>이라고 하는 것은 불법을 수지하는 그 자체가 바로 광명의 깃발을 드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불법을 가진 사람에게는 어둠이란 없으며 더 이상의 고통이나 번뇌, 근심, 걱정, 문젯거리는 있을 수 없습니다. <광명>은 바로 희망차게 밝게 사는 삶 자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삶의 부정적인 것, 온갖 고통, 뒤엉킨 상황들은 <광명>의 반대 의미로 어둠, 혹은 무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불법(佛法)을 지닌 사람은 마치 태양을 항상 몸에 가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불법을 마음에 제대로 지닌 사람은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그 밖의 어떤 관계에 있어서도 고뇌하거나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삶도 죽음도 떠나 있는 본래 생명의 실상을 바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에 대한 믿음과 이해, 그리고 자신감에 찬 확신이 섰을 때 비로소 불교를 믿고 이해한다는 할 수 있습니다. 불교교리를 잘 알고 염불이나 한문을 많이 안다고 해서 불교를 이해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 개개인의 본성은 관세음보살이나 부처님의 능력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도 부처님과 똑같은 능력과 공덕과 빛과 진리 덩어리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우리가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은 착각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자신도 부처님과 똑같은 <광명>과 영원한 생명 덩어리인 것입니다. 부처님의 무량한 생명과 한량없는 공덕이 곧 자기 자신 속에도 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곧 불법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인간이 발견한 숱한 것들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부처님께서 모든 인간들에게는 똑같이 영원한 생명과 빛과 진리가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연성지벽(連城之壁)'이라고 하는 중국 고사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몇 개의 고을과 바꿀 수 있을 만큼 훌륭한 구슬이 돌 속에 있었는데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고 왕에게 바쳐 큰 고을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왕에게 구슬의 귀함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왕은 그것을 몰라보고 가짜라고 우기면서 그를 물리쳤습니다. 그러면서 왕을 속였다고 해서 그 사람의 다리 하나를 잘라버렸습니다. 그 다음 임금이 등극하자 그는 또 그 구슬을 바치면서 "이것은 겉보기에는 돌멩이에 지나지 않지만 그 속에 엄청난 보물이 들어 있습니다"라고 말했으나 왕은 그 말을 듣지 않고 그 사람의 다리를 또 하나 잘라버렸습니다. 다리 두 개가 다 잘리고 나서 세 번째 왕에게 바쳤을 때 비로소 구슬의 귀함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몇 개의 성을 얻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들의 모습 또한 이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가 겉으로 보기에는 비록 늙고 젊고, 무식하고 유식하고, 못 배우고 많이 배우고, 잘 생기고 못 생기는 등의 차별이 있을지 몰라도 그러한 껍질을 벗고 자기 자신의 생명의 참 면목을 들여다보면 누구나 똑같이 부처님과 같은 한량없는 빛과 생명과 진리와 신통과 만덕이 숨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알고 그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과 믿음을 가진 사람이 바로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며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발견한 최대의 깨달음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일깨워주기 위해서 팔만 사천 가지의 방편을 설해 놓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감로법(甘露法)'이라는 말을 쓰는데 이것은 곧 생사를 초월한 불사법(不死法)인 것입니다. 불사의 가르침, 진리의 가르침을 깨달은 사람은 바로 감로를 받을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이 감로병을 들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상징적인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자기 자신 속에 감로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바로 불법을 수지하는 일인 것입니다.

이처럼 『천수경』속에는 문제 해결의 지혜가 가득 들어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수지심시신통장>이란 '불법을 수지한 사람의 마음은 바로 신통의 창고와 같다'는 말입니다.

<신통>이란 말 그대로 무엇이든 마음먹은 대로 잘 되는 것입니다. 불법을 가진 사람의 마음속에는 온갖 <신통>의 변화가 그 사람이 마음 가운데 나타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불법을 마음에 지닌다는 것은 거대한 창고 속에 신통을 가득 채워 놓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불법이란 바로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빛나는 보물에 대한 믿음, 이해, 확신인 것입니다. 그러한 보물을 손에 있는 과일을 보듯이 육안으로 확연히 보는 것을 가리켜 견성(見性)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수지신시광명당>과 <수지심시신통장>의 두 게송은 『천수경』의 깊은 안목을 담고 있는 매우 중요한 구절입니다.

불교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수지신시광명당>과 <수지심시신통장>이 되어야 합니다. 이 말은 결국 불자라면 어느 곳에 있든지 정신적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세 가지 몸 가운데 법신 비로자나불이 바로 <광명>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광명>은 바로 진리의 몸 그 자체를 가리킵니다. 만약 우리에게 <광명>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진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빛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불법을 믿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빛의 역할, 즉 정신적인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광명>의 깃발을 높이 들고 미혹한 사람을 이끌어야 할 임무와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병든 사람에게 약을 처방해줘야 할 중대한 책임이 불법을 믿는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이 좋은 것인 줄 알면 자신감을 갖고 이웃에게 전할 때, 비로소 불제자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법구경』에서 말씀하시기를, “잠 못 드는 사람에게 밤은 길고, 피곤한 나그네에게 길이 멀듯이, 진리를 모르는 사람에게 인생의 밤길은 길고 멀어라”고 하셨습니다. 인생의 갈 길을 모르면 늘 불행하고 무거운 짐을 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알고 나면 하루하루가 보석처럼 빛나는 나날로 이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항상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해 훤히 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눈뜸은 곧 지혜로워지는 것이고, 그것은 삶을 윤택하게 하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대하는 『반야심경』이 바로 지혜의 완성이며, 그것은 곧 성불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불기 2570년 4월 21일 팔공산 감고사지기 보명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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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2일
사찰 벽화이야기 - 심우도 [반본환원 (返本還源)]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심우도 [반본환원 (返本還源)]

반본환원 (返本還源)

< 본래의 자리에서 돌이켜보니 공치사에 지나지 않구나 차라리 당장에 귀머거리나 벙어리였다면

암자 가운데 앉아 암자 앞의 일을 보지 않을 것을. 물은 저절로 망망하고 꽃은 절로 붉구나.>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 그간의 일들을 돌아보니 헛된 노력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내 마음이 원래 청정한 것인데, 애써 소를 찾고 어렵게 길들여 흰 소로 만들었습니다.

자연이란 스스로가 있는 그대로 존재합니다. 마치 수행하는 사람으로서 한가로운 산 속 절간에 머무르면서도 답답하다고 절간 문을 나선다면, 복잡한 세상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석다며 웃고 갈 노릇입니다.

벽화의 산수화는 번뇌와 망상이 끊어진 동자가 이제 자연과 하나된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삶을 그린 것입니다. 벽화를 보면 산은 산대로 수려하고, 물은 물대로 유유히 흘러 내립니다. 조금의 더함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그린 것은, 말하자면 조그만 번뇌에도 물들지 않은 참된 지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모두가 환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마음이 흔들리면 번뇌 망상을 일으키게 되므로, 보지 않으려면 차라리 앞 못 보는 장님이 더 낫겠다며 동자는 속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억지로 세상을 바라보며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때에도, 이미 자연은 있는 그대로 물결은 잔잔하고, 내 두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에도 꽃은 그 본연의 색으로 산천에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우리가 미쳐 알아차리지 못했을 따름입니다. 관심觀心이 없어 마음을 바르게 살펴보지 못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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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
불교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

아득한 옛적 인도 남쪽에 조그만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에 장나(長那)라는 부자가 예쁜 여자를 부인으로 맞아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한가지 근심이 있었는데 그것은 몇 년이 지나도록 자식이 없는 것이었다.

하루는 부인이 제단을 차려놓고

「천지신명이시여! 옥동자 하나만 점지하여 주시옵소서.」하며 지극정성으로 기도하고 빌었다. 기도를 잘 모신 영험인지 그 후로 태기가 있어 옥동자를 낳고

삼년이 지나 또 한 아들을 낳게 되었다.

장자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큰 잔치를 베풀어 이웃사람들을 대접하였다.

또 예언가를 청하여 두 아이의 장래운명을 말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예언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두 아이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본 다음

「두 형제는 용모는 단정하고 고우나

부모와의 인연이 박해서 일찍 부모를 여윌 운명을 타고 났습니다.」

이런 연유로 이름은 형은 조리(早離), 동생은 속리(速離)라, 일찌기 부모를 여읜다는 뜻이다.

그 뒤 몇 해가 지나 형은 열살, 동생은 일곱살이 되었는데

그해 삼월에 어머니는 홀연히 병이 들어 백약이 무효로 병세는 나날이 악화되어 갔다.

어머니는 두 아들을 불러 놓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조리야! 속리야! 엄마는 아무래도 병이 낳을 것 같지 않구나

사람이 한번 태어나서 죽는 것은 누구라도 면할 수 없는 것이니

죽는 것은 무서울 것이 없다마는 너희 어린 형제를 남겨놓고 떠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몹시 아프고 쓰리구나.

너희들은 내가 죽은 뒤라도 서로 도우며 착하게 살기 바란다.」

하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

두 아들은 식어가는 어머니의 시체를 붙들고 통곡하였다.

장나는 마을사람들의 도움으로 장사를 후히 지내고, 두 아들을 극진히 사랑하며 몇 년을 살았다.

여러 사람들의 권유와 소개로 새로 들어온 후처는 죽은 부인과 용모가 비슷하여

두 아들도 엄마가 다시 살아온 것처럼 좋아하였다.

새로 온 부인도 두 아이를 불쌍하게 여겼는지 귀엽게 여기고 사랑하였다.

그런데 다음해 큰 흉년이 들어 들판의 곡식을 하나도 수확할 수 없었다.

장나는 집안을 새 부인에게 맡기고 이웃나라에 보물을 식량으로 바꿔오기 위해 먼 길을 떠났다.

혼자 남게 된 부인은

「만일 영감이 안 돌아오면 저 아이들은 어떻게 키울 것인가

또 내가 저 아이들에게 상속해 줄 것이 아닌가.

두 아이는 장차 큰 장애가 되겠구나.」

부인은 아이들을 없애려고, 뱃사공을 매수하여 두 아이들을 멀리 갖다 버리게 하였다.

영문도 모른 채 낮선 무인도에 버려진 두 아이들은

좁은 섬 안을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부모를 찾았으나 끝내 사람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두 형제는 목이 터져라고 엄마 아빠를, 그리고 뱃사공 아저씨를 불렀지만

바람소리와 파도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조리와 속리 두 형제는 마침내 겹친 피로와 굶주림을 못 이겨

가엾게도 쓸쓸한 무인도에서 숨을 거두게 되었다.

죽음에 임박해서 아우 속리가 사람들에게 속아서 비참하게 죽게 되는 운명을 한탄하자

말없이 듣고 있던 형 조리는 아우를 위로하며 다음과 같이 타일렀다.

「나도 처음에는 세상을 저주하고 사람을 원망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찌할 도리가 없지 않은가!

차라리 우리가 다음 세상에 태어날 때는 이 고뇌의 체험을 인연으로 삼아서

우리와 같이 비운(悲運)에 우는 사람들을 구원해 주자.

다른 사람을 위로해 주는 것이 바로 우리가 위로를 받는 길인 것을 일찌기 배우지 않았던가」

이 말을 듣던 아우도 비로소 형의 말뜻을 알아듣고 밝은 얼굴이 되었다.

이리하여 형과 아우는 하늘을 우러러 보며 거룩하고 크나 큰 서원을 세웠다.

「우리는 여기서 죽더라도 내생에는 성현이 되고 보살이 되어

우리와 같은 처지에 놓인 불쌍한 사람들을 구원해 주자.

또 세상에는 빈곤하고 병든 사람이 얼마나 많겠느냐.

그들에게 의복과 양식을 주고 온갖 병을 치료해 주자....」

하는 등의 서른 두 가지의 서원을 세우고 어린 두 형제는 서로 얼싸안고 숨져 갔다.

무인도에서 외롭게 죽어간 두 형제의 얼굴에는 조용하고 밝은 미소가 어리어 있었다고 한다.

이 섬의 이름이 보타락가산이며

형은 관세음보살이 되고 동생은 대세지보살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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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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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벽화이야기 - 멀리 가는 자식을 생각하고 염려하시는 은혜 (원행억년은)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멀리 가는 자식을 생각하고 염려하시는 은혜 (원행억년은)

< 죽어서 헤어짐도 슬프고 괴롭지만, 살아서 헤어짐은 더욱더 서러워라. 자식이 집을 나서 먼 길을 떠나가면, 어머니의 마음 또한 타향에 나가있네. 밤낮으로 그 마음은 자식을 쫓아가고, 흐르는 눈물줄기 천 줄기 만 줄기네. 원숭이 달을 보며 새끼 생각 울부짖듯, 자식걱정 하는 마음 애간장 다 끊기네. >

자식이 품에서 떠나 독립하는 순간, 부모님의 마음은 맑은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것처럼 멍한 심정이 되고 맙니다. 곧 마음을 추스르더라도 항상 생각은 자식 옆에 머물게 됩니다. 부모의 자식 걱정하는 마음은 마치 어미 원숭이가 새끼 원숭이에 대한 애정으로 비유되곤 합니다. 아마 새끼를 안거나 업어서 키우는 유일한 동물이 사람과 원숭이 이기 때문입니다.

옛날 숲 속의 모든 짐승에게 자식이 가장 잘 생겼다고 생각하는 짐승을 선발하는 대회가 있었습니다. 한 원숭이가 새끼를 데리고 나오자, 다른 동물들이 모두 깔깔거리며 웃는 것이었습니다. 그 원숭이는 납작원숭이였는데, 누가 보더라도 새끼원숭이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주변을 향해 어미원숭이는 소리쳤습니다.

"아무도 내 자식에게 상을 주지 않아도, 최소한 내 눈에는 내 자식이 가장 사랑스럽고 잘 생겼으며 가장 아름답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원숭이가 자식을 애지중지 기른다는 것은 옛부터 잘 알려져 있습니다.

원숭이는 온순한 동물은 아닙니다. 하물며 개코원숭이라는 녀석은 난폭하기로도 유명합니다. 떼를 지어 집단으로 몰려다나며 사람들을 공격하거나 심지어 목숨을 앗아간 사건도 종종 보도되었습니다. 그런 개코원숭이도 새끼원숭이가 죽으면 일주일 이상 제 품에 안고 다닙니다. 달을 보며 새끼 생각에 울부짖는 모습, 자식에 대한 모성애가 사람 못지 않다는 것입니다.

설령 받기만 하는 사랑이라도 부모님의 큰 은혜을 알고서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알아가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멀리서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깊이 헤아려 감사한 마음으로 보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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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신묘장구 대다라니 (17일차)
문화

불교문화 - 신묘장구 대다라니 (17일차)

**보명법사의 신묘장구대다라니 3×7=21일 기도 17일째. **

2. 신묘장구대다라니 (神妙章句大陀羅尼)의 뜻 ②

(5) 제5구

하리나야 마발타이사미 hṛdayam māvartayiṣyāmi <하리나야>는 '마음에 부딪치다. 능히 들어 가다'는 뜻이고, <마발다이사미>는 '돌리다. 회복하다'는 뜻이므로 '마음의 근원에 도달하겠습니다'라는 뜻입니다.

【다라니 해석】 ☞ hṛdayam āvartayiṣyāmi 흐리다얌 아와르따이샤미 (성관자재님을 찬양하여) 이 다라니를 염송하옵니다.

⊙흐리다얌(hṛdayam) : 흐리다야(hṛdaya)의 단수 목적격.
흐리다야(hṛdaya) : 마음, 심장, 정수; 베다(Veda); 다라니; 심진언(心眞言). ⊙아와르따이샤미(āvartayiṣyāmi) : 암송하겠다. 염송할 것이다. (vrt 빛나다, 말하다의 미래형)

(6) 제6구. 살발타 사다남 수반 아예염 살바보다남 바바마라 미수다감 sarvārtha-sādhanaṁ śubhaṁ ajeyaṁ sarva-bhūtānāṁ bhava-mārga-viśodhakam <살발타>는 '모든 사물을 이롭게 한다. 나와 남이 함께 이롭다'는 뜻이고,

<사다남>은 '성취ㆍ정복ㆍ달성'의 뜻이며, <수반>은 '아름답다. 유쾌하다'는 뜻의 인도말로 중국에서는 이를 맑다는 뜻의 '정(淨)ㆍ정처(淨處)' 또는 '진실ㆍ단정' 등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아예염>은 '최고의'라는 뜻이고 <보다남>은 '모든 생물ㆍ모든 존재'라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미수다감>은 '청정한 공덕ㆍ진실한 공덕'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을 해석하면 '모든 이익을 성취하고 깨끗이 하여 더할 수 없는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르러서 일체중생의 삶의 길을 깨끗이 하는데 이르겠습니다.'라는 말이 됩니다.

** 【다라니 해석】** ☞ sarvārtha-sādhanaṁ śubhaṁ ajeyaṁ sarva-bhūtānāṁ bhava-mārga-viśodhakam 싸르와르타 싸다남 슈밤 아제얌 싸르와 부따남 바와 마르가 위쇼다깜 (이 다라니는) 일체의 소망을 성취케하고, 복을 받게 하며, 무적의 것이며, 일체의 생명이 있는 존재 [일체중생(一切衆生)]가 윤회하는 삼유(三有)의 길을 청정케하는 것이옵니다. ⊙싸르와르타(sarvārtha) : 일체의 소망, 모든 바라는 바의 목적. (싸르와(sarvā) : 일체의, 모든 + 아르타(ārtha) : 소망, 목적, 재산, 이로움) ⊙싸다남(sādhanaṁ) : 성취, 완성(←sidh 성취하다, 완성하다) ⊙ 슈밤(śubhaṁ) : 행복, 복, 행운, 풍요, 아름다움(←subh) ⊙ 아제얌(ajeyaṁ) : 무적의. ⊙ 싸르와 부따남(sarva-bhūtānāṁ) : 일체의 생명이 있는 존재, 일체중생(一切衆生). (싸르와(sarvā) : 일체의, + 브후따남(bhūtānāṁ) : 생명이 있는 존재) ⊙ 바와 마르가 위쇼다깜(bhava-mārga-viśodhakam) : 삶의 길을 정화하는 것. (바와(bhava) : 탄생, 존재, 삶; 삼유(三有) + 마르가(mārga) : 길, 통로.

  • 위쇼다깜(viśodhakam) : 청정케 하는 것(vi- 분리 + sudh 정화하다
  • kam 청정)

※ 삼유(三有 bhava) : 존재의 세 가지 형태로서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의 삼계(三界), 또는 현유(現有; 현재의 몸과 마음의 상태), 당유(當有); 미래의 몸과 마음의 상태), 중유(中有; 현재와 미래 중간의 몸과 마음의 상태)

** (7) 제7구.** 다냐타 옴 아로게 아로가 마지로가 지가란제 헤헤하레 tadyathā oṁ āloke āloka mati lokātikrānte hehe hare

<다냐탸>는 '추적ㆍ타격'의 뜻이고, <옴>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아'나 '오'와 같이 원초적인 의미의 말로 기도하는 말이라고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아로게>는 '보는 자ㆍ살피는 자'라는 뜻이고, <아로가>는 '관찰자', <마지>는 '기도' 찬송ㆍ뜻ㆍ지혜'등의 여러 가지 뜻이 있는 말입니다. <로가>는 '세간ㆍ세계ㆍ중생', <지가란제>는 '해탈ㆍ초월'의 뜻입니다.
<헤헤>는 '오른다ㆍ타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옴 아로게 아로가 마지로가 지가란제 헤헤 하레>는 '오, 관찰하시는 분이시여, 지혜로서 관찰하시는 성자이시여, 관찰을 초월한 성자이시여, 어서 어서 태워주옵소서!' 의 뜻이 됩니다.

【다라니 해석】 ☞ tadyathā oṁ āloke āloka mati lokātikrānte he he hare 따드야타 옴 알로께 알로까 마띠 로까띠끄란떼 헤헤 하레

(이 진언은) 이러하오니, 옴! 빛이여! 빛과 같은 지혜여! 세속을 초월하신 분이시여! 오소서, 하리 [비쉬누 신]이시여!

⊙따드야타(tadyathā) : (진언은) 이러하니, 즉설주왈(卽說呪曰), 그것은 즉. → 다라니는 따드야타(tadyathā)라는 어구로써 주부(主部)로 도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므로 따드야타 다음에 비로소 핵심이 되는 주문이 온다. 반야심경에도 나오는 즉설주왈(卽說呪曰)이 바로 산스크리트 원어로 따드야타이다.

⊙ 알로께(āloke) : 빛, 광명(←lok 빛나다); 관조, 통찰, 주시((←lok 보다) ⊙ 알로까-마띠 (āloka-mati) : 빛과 같은 지혜(로운 자) (āloka 빛 + mati 지혜) ⊙ 로까띠끄란떼 (lokātikrānte) : 세속을 초월하신 자(비쉬누 신)여(호격) (로까(lokā) 세상, 세속 + ati ~을 넘어, 초월하여 + krānta 거침없이 가다) ⊙ 헤 헤(he he) : 여기에, 이리로 (←iha iha iha 이하의 연음). ⊙ 하레(hare) : 하리(Hari 觀自在), 비쉬누 신(cf. Hari sarvottam = Indra 제석천). (hare : 최고신 '하리(Hari)를 부르는 감탄사(Hari 또는 Hara의 단수 호격)

※ 하리ㆍ하라(Hari-Hara) 하리와 하라의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성육자(成育子)와 제거자이다. 하리는 비쉬누 신에 대한 별칭으로 갱신과 성장을 의미하며, 하라는 시바 신에 대한 별칭으로 창조를 위한 선행단계로서의 파괴를 의미한다.

하리는 성장을 통한 유지의 개념을, 하라는 파괴의 개념을 인격화시킨 것이다. 비쉬누 신은 정의롭고 자애로운 구세주적 존재로서 질서를 바로잡는 역할을 한다. 한편 창조에는 파괴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기에 시바 신의 파괴를 통해 브라흐마 신의 창조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로써 창조-유지-파괴-재창조로 이어지는 우주의 순환고리가 완성된다고 보는 것이다.

(8) 제8구. 마하모지사다바 사마라 사마라 하리나야 mahābodhisattva smara-smara hṛdayaṁ

<모지사다바>는 원음대로 읽자면 <보디사트바>로 '보살'이라는 뜻이고, <마하>는 '크다'는 말이므로 <마하모지사다바>는 '큰 보살님'이라는 뜻입니다.
<사마라>는 '상기하다ㆍ기억하다ㆍ사랑하다'는 뜻의 말로 중국에서는 '사념(思念)ㆍ억념(憶念)ㆍ기억 등으로 번역했습니다.
<하리나야>는 '능입ㆍ통철'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의 전체적인 뜻은 '큰 보살님이시여, 깊히 기억하여 주옵소서' 또는 '항상 생각해 주옵소서'하는 간절한 기원을 담은 말입니다.

{다라니 해석】 ☞ Mahābodhisattva smara-smara hṛdayaṁ 마하보디쌋뜨와 쓰마라 쓰마라 흐리다얌

대보살님이여! 이 (베다의) 진언을 기억해 주소서, 기억해 주소서!

⊙ 마하보디쌋뜨와 (Mahābodhisattva) : 대보살이시여, 시바 신(mahat)이시여(호격) ⊙ 쓰마라(smara) : 기억하소서(smr 쓰므리 기억하다의 명령형. ⊙흐리다얌(hṛdayaṁ) : 마음, 심장, 정수; 베다(Veda) (hṛdaya)의 목적격 (←hr, hrih)

※ 흐리다얌(hṛdayaṁ) 흐리다얌(hṛdayaṁ)에는 '마음', '심장'이란 뜻 외에도 '정수(精髓)', '진실한 지식', '비밀스런 지식' 등의 뜻이 있는데 이 말들은 모두 베다(Veda 성전(聖典)이란 뜻)를 지칭한다.

베다는 제식 때 신들을 불러오고 찬양하는 종교시로서 재앙을 막고 복이 오게 하는 주문이 수록되어 있다. 베다를 이루고 있는 싯구는 만뜨라(mantra 眞言)로 되어 있으므로 여기서 흐리다얌은 이 진언 또는 다라니를 의미한다.

불공삼장(佛空三藏)은 흐리다얌(hṛdayaṁ)을 심진언(心眞言)으로 해석하였다.

😃😃 불기 2570년 4월 27일 팔공산 감고사지기 보명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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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8일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던 템플스테이 | 나를 위한 행복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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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한 번 해보고 싶었던 템플스테이 | 나를 위한 행복 여행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던 템플스테이 | 나를 위한 행복 여행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던 템플스테이를 체험했습니다. 불교 문화와 생활 체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나를 위한 행복한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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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0일
사찰 벽화이야기 - 말이 아닌 지혜로 논의, 가전연존자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말이 아닌 지혜로 논의, 가전연존자

스스로 알고 깨닫는 일과 자기가 알고 깨달은 바를 남에게 전달하는 것은 다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알더라도, 다른 사람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데에는 논리정연한 말주변이 요구됩니다. 부처님 제자 가운데 토론에 있어서는 가전연이 으뜸이었습니다.

가전연은 명망 높고 부유한 바라문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풍족한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존경받는 학자로 국왕의 스승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그의 집안은 대단한 권세가였습니다. 어릴 때 부터 총명했던 그는 자신이 배운 학문을 사람들 앞에서 곧잘 강연하였고, 모두 그의 언변에 탄복할 지경이었습니다.

가전연의 부모는 뛰어난 그의 자질을 연마하여 더 많은 학문을 연구할 수 있도록 외삼촌에게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의 외삼촌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장래를 예언했던 아시따 선인이었습니다. 뛰어난 스승 아래에서 그의 학문은 더욱 높아졌고, 논사論師로서 여러 사람들과 토론하고 논쟁하기를 즐겼습니다.

아시따 선인의 제자라는 사실과 국사國師였던 아버지, 그리고 대부호라는 그의 배경은 사람들로 하여금 존경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가전연 또한 자신을 추앙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스스로가 뛰어나다고 믿게 되었고, 서서히 그의 자만심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습니다.

과거 아시따 선인은 마야왕비 품에 안긴 싯다르타의 관상을 보았을 때 장차 자신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을 수 없다며 눈물을 흘렸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전연에게 자기가 죽으면 자기 대신 부처님에게서 배우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의 칭송을 한 몸에 받던 가전연이었기에, 그의 교만함은 스승의 유언도 잊어버린 채 현실의 만족에 빠져 하루 하루 지내고 있었습니다.

가전연의 명성이 더욱 높아질 때였습니다. 그가 활동하던 바라나시에 오래된 비석이 하나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비석에 적혀있는 문자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바라나시의 왕은 아시따 선인의 제자인 가전연을 불러오라 명하여, 비석을 읽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왕 가운데 왕은 누구며, 성인 가운데 성인은 누구인가? 어떤 사람이 어리석고,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가? 어떻게 해야 더러운 때를 벗고 열반에 이르는가? 누가 생사의 바다를 헤매며, 누가 해탈의 바다에서 노니는가?"

고대의 문자에도 능통했던 가전연이었기에 비문을 읽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왕은 가전연의 능력에 감탄하며, 그 뜻이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러나 가전연은 문자를 읽기는 하였으나, 의미를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자존심이 구긴 그는 비문의 내용을 유명하다는 학자와 선인들을 찾아가 물어보았지만 아무도 시원하게 대답해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 순간 스승이 남긴 유언이 떠오는 가전연은 곧장 부처님에게로 달려갔습니다. 부처님은 가전연이 갖고 온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왕 가운데 왕은 하늘의 왕이며, 성인 가운데 성인은 부처라네. 무명에 물든 사람은 어리석고, 번뇌를 벗어나야 지혜롭다네. 탐진치貪瞋癡:탐욕(욕심), 진에(성냄),우치(어리석음)가 더러운 때이니, 계정혜戒定慧를 이루면 열반에 이른다네. 내 것이란 생각에 집착하면 생사의 바다에서 헤매게 되며, 연기의 진리를 깨달으면 해탈의 바다에서 노닐게 되네."

부처님의 대답을 들은 가전연은 자신의 자만심을 뉘우치게 되었습니다. 일찍이 스승에게서 배운 적 없던 진리의 말씀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가전연이 마음을 고쳐먹은 것을 아시고 더 많은 가르침을 전해주었고, 가전연은 부처님께 출가하게 되었습니다.

출가한 가전연은 비석의 내용을 국왕에게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최상의 진리를 만나 이제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고도 전해주면서, 국왕에게 여러 가지 법문을 들려주었습니다. 가전연의 설법을 들은 바라나시의 국왕도 그의 법문에 감화되어 불교에 귀의하였고, 이로써 불교가 더욱 널리 퍼지는 계기가 만들어 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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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 천태종 백양산 삼광사 三光寺 (좌) 부산시 부산진구 초읍동 소재 / 삼광사내 지관전 止觀殿 (우) <br> 논의제일論議第一이라는 가전연의 논리 정연한 언변을 엿볼 수 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공양시간에 나이 많은 장로 한 사람이 찾아와 화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부처님의 인정을 받는 젊은 가전연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던 그는, 논리로는 안 되기에 나이로 윽박지를 작정이었습니다. 이를 눈치 챈 가전연이 일부러 모른 척하며 공양 준비에만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나이 많은 장로가 와서 서 있으면, 냉큼 자리를 양보할 것이지 어찌 모른 척 하고 있단 말인가?"

당황한 스님들은 그 나이 많은 비구에게 자리를 권하는데, 그때 가전연이 이들을 막고 나섰습니다.

"누구시기에 이곳에서 그렇게 큰 소리로 호통을 치십니까? 더구나 우리는 이미 공양하기 위해 준비 중인데 다짜고짜 자리를 비우라고 화를 내는 것은 부당한 일입니다."

나이 많은 스님은 가전연을 향해 더욱 큰 소리로 쏘아 붙였습니다.

"나는 나이가 많은 사람이니 장로이며, 젊은 그대들이 공경하고 양보하는 것이 당연하다! 어째서 나를 안중에 두지 않는가?"

그러자 가전연이 말했습니다.

"스님의 거친 행동과 말투를 보니 결코 대접받을 만한 장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자칭 장로라고 하지만, 너무도 부끄러운 행동을 일삼고 있군요. 아무리 나이가 들고 백발에 이가 다 빠진 노인이 되더라도, 참다운 수행자라면 못된 성미를 부리거나 남을 괴롭히는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는 아무리 젊고 새파란 청년이어도 애욕과 탐욕을 여의고, 불평불만이 없는 사람이면 그를 장로라 부르며 존경합니다. 당신처럼 스스로 장로라 우기며 거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존경하지 않습니다."

가전연이 말을 마치자 주변의 젊은 비구들은 가전연을 향해 '하하하. 가전연 장로님 ~'이라며 자기들끼리 부르더니, 웃음을 띤 얼굴로 공양 준비를 계속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늙은 비구는 상기된 얼굴로 조용히 뒤돌아 가버렸습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처럼 학문과 덕이 높고 사려가 깊은 사람은 스스로를 낮추어 행동합니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나이가 많아도 상대를 이기려는 마음으로 행동한다면 진정으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 없습니다.

가전연이 논의제일論議第一이었던 것은 한 때의 자만심을 깊이 뉘우쳐 부처님의 제자가 된 후에는 늘 겸손했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오히려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이기려는 마음이 아니라 배려하는 마음으로 상대를 대했었기에 누구와의 논쟁에서도 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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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석가모니부처님의 근본5인 - 선정인(禪定印)
문화

석가모니부처님의 근본5인 - 선정인(禪定印)

결가부좌 상태로 참선, 즉 선정에 들 때 이 수인이다. 왼손의 손바닥을 위로해서 배꼽 앞에 놓고, 오른손도 손바닥을 위로 해서 그 위에 겹쳐 놓으면서 두 엄지손가락을 맞대는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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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부처님을 만난 사람들 1. 1. 모래 공양을 올린 아쇼카 왕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부처님을 만난 사람들 1. 1. 모래 공양을 올린 아쇼카 왕

부처님을 만난 이들은 다양합니다.

평범한 사람들, 왕족, 귀족, 노비 등과 같은 다양한 신분의 사람들과

다양한 종교를 가진 사람 등 실로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이들의 성품도 다양한 만큼 저마다 다른 근기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마치 한 교실에 여러 명의 학생들이 모여 있는데

어떤 학생은 한 번의 설명에 바로 이해를 하는 반면,

같은 내용이라도 설명을 쉽게 풀어줘야 알아 차리는 학생이 있습니다.

하물며 서로 다른 학년의 학생들이 한 곳에 모였다면 더욱 이해도의 차이가 클 것입니다.

부처님의 법문을 듣는 대중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중생에 따라, 살아 온 환경과 언어, 문화에 따라 법문의 내용이 모두 같을 수는 없습니다.

하물며 이들을 제도하는 방법이 같을 수도 없습니다.

상대에 따라 다른 설법, 이것을 대기설법對機說法이라고 합니다.

상대의 눈높이, 즉 근기[機기]에 따라 [對대] 다른 가르침[法법]을 말씀[說설]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부처님의 일생은 단 하루도 중생제도를 멈추신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열반에 드시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제자를 받아 들이셨습니다.

부처님께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셨던 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합니다.

때문에 부처님을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은 사찰벽화의 중요한 소재가 되기도 합니다.

  1. 모래 공양을 올린 아쇼카 왕

어느 날 부처님께서 아난존자와 함께 탁발하러 가시다가 길에서 소꿉장난을 하는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아이들은 모래와 흙으로 집을 만들고 또 신발에다 모래를 담아 밥이라고 얘기하며 놀고 있었습니다. 그때 놀고 있던 아이들은 저 멀리 부처님께서 가까이 오시는 것을 보고 문득 이런 생각을 떠 올렸습니다.

'부처님께 무엇이든지 공양을 올리면 큰 복을 받는다고 하던데 ....'

이렇게 생각한 아이는 신발에 담아 놓은 모래 밥을 부처님께 바쳤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모래 밥을 받으시고는 빙그레 웃으시며 아난에게 건네 주셨습니다.

"아난아, 이 모래로 내 방의 허물진 곳에 바르도록 하여라."

정사로 돌아 온 아난이 말씀대로 방의 허물어진 곳에 바르고 나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모래라고는 하나, 어린 두 아이가 환희심으로 보시하였으니, 그 공덕으로 다음 생에는 국왕이 되어 삼보를 받들고 여래를 위하여 팔만사천보탑을 세울 것이다."

그러자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어찌 한 줌 흙의 공덕으로 그와 같이 큰 과보를 성취할 수 있습니까?"

"과거에 한 국왕이 있었는데, 부처님께서 출현하시니 임금과 부하들이 모두 부처님께 예배드리고 법을 청하여 들었다.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왕은 마음의 문이 열리고 깨닫는 바가 참으로 많았다. 왕은 그 기쁜 마음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부처님의 형상을 팔만사천장을 그려 보시하였으며, 그 공덕으로 장차 팔만사천의 탑을 건립할 수 있는 과보를 얻게 되었다. 그때 왕이 바로 오늘 모래를 공양한 소년이니, 다음 생에는 다시 국왕으로 태어나 그 탑을 세울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고 백여 년 후, 여러 나라로 쪼개져 있던 인도를 통일하고, 인도 역사상 가장 넓은 땅을 다스린 국왕으로 기록된 아쇼카왕이 있습니다. 바로 아쇼카왕의 전생이 그 소년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는 인도를 통일하는 과정에서 수 많은 전쟁을 치렀습니다. 그 과정에서 인생의 무상함을 절실하게 깨달았고, 결국 큰 상처를 받은 백성들을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보살피고자 불교에 귀의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하신 말씀대로 아쇼카왕은 천여 명의 승려로 하여금 경전을 편찬케 하는 결집을 주최했고, 인도 전역에 불탑을 건립하는 한편, 해외 여러 나라에 불교사절단을 파견했습니다.

오늘날 인도의 곳곳에서 발견되는 아쇼카왕의 석주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 "전쟁에 의한 승리보다 자비에 의한 정복이 휠씬 훌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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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에서 말하는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가 (3가지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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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말하는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가 (3가지 조건)

!불교에서 말하는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가 (3가지 조건) 스님 #불교명언 #불교이야기 #불교 #부처님 #사찰 #입적 #죽음 #마음챙김 #마음치유.

힘내라 지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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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0일
불교입문 - 부처님이란 분은 어떤 분인가?
문화

불교입문 - 부처님이란 분은 어떤 분인가?

"깨달은 님" 이란 뜻이며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진리를 밝게 깨달아 온갖 복과 지혜를 구족하게 성취 하시어 중생을 구제하시는 어른이시다.

이 자료는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 [출처]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 알아두면 좋은 불자상식|작성자 민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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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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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사찰의 구조 - 원통전(圓通殿)
문화

전통사찰의 구조 - 원통전(圓通殿)

원통전은 관세음보살을 모신 곳으로, 특히 그 사찰의 주불전(主佛殿)일 때 원통전이라고 부른다. 원통이란, 관세음보살이 모든 곳에 두루 원융통(圓通通)을 갖추고 중생의 고뇌를 소멸해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반면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이 부불전(副佛殿)일 경우에는 관음전(觀音殿)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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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좋은말 좋은글
불교문화

좋은말 좋은글

가난하다고 다 인색한 것은 아니다.
부자라고 모두가 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됨됨이에 따라 다르다.

후함으로 하여 삶이 풍성해지고 인색함으로 하여 삶이 궁색해 보이기도 하는데 생명들은 어쨌거나 서로 나누며 소통하게 돼 있다.

그렇게 아니하는 존재는 길가에 굴러 있는 한낱 돌멩이와 다를 바 없다.

나는 인색함으로 하여 메마르고 보잘것없는 인생을 더러 보아 왔다.

심성이 후하여 넉넉하고 생기에 찬 인생도 더러 보아 왔다.
인색함은 검약이 아니다. 후함은 낭비가 아니다.
인색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 낭비하지만 후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는 준열하게 검약한다.

사람 됨됨이에 따라사는 세상도 달라진다. 후한 사람은 늘 성취감을 맛보지만 인색한 사람은 먹어도 늘 배가 고프다.
그것은 마치 천국과 지옥의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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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마당 먼지를 쓸어 담는 스님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마당 먼지를 쓸어 담는 스님

부처님 제자 가운데 '주리반특'이란 분이 있었는데, 그는 얼마나 멍청했던지 자기 이름마저 기억 못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다른 스님들에게서 항상 바보취급을 당하던 그는 스스로를 자책하다가 어느 날 부처님을 찾아가 호소했습니다.

"부처님, 저는 너무 바보여서 이곳에 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아니다, 주리반특아. 자신을 어리석다고 아는 사람은 결코 어리석지 않은 사람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시자, 순간 스님을 그만 두려고 했던 자신의 행동이 후회되기 시작했습니다.

"너는 어려운 설법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으니, 내가 한 가지만 가르쳐주마. 여기 빗자루가 있으니 이 빗자루로 매일 마당을 쓸어라, 그리고 마당을 쓸 때마다 '쓸고 닦아라!'고 반복해 말하면서 쓸도록 하여라."

하지만 그는 이 말조차도 외우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여러 제자들에게 일러주기를 길에서 주리반특을 만날 때마다 인사 대신에 '쓸고 닦아라!'라고 말해 주라고 당부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주리반특에게는 '쓸고 닦아라!'라는 소리와 함께 경내를 청소하는 일은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십년이 지났습니다. 한때 그를 바보라고 놀리던 스님들도, 매일 같은 마음으로 청소와 수행을 하는 주리반특을 보면서 점차 경의심이 들게 되었습니다. 그의 성실한 모습이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존경심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그리고 주리반특은 부처님의 말씀대로 하루도 쉬지 않고 쓸고 닦는 청소를 계속하는 중,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아, 사람도 마찬가지다. 마음속에 있는 먼지나 때를 닦아내는 게 중요한 것이다.'라고 깨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욱 열심히 수행하여 마침내 아라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주리반특 스님이 매일 마당을 쓸고 닦듯 우리도 우리 마음의 큰 마당을 매일 쓸고 닦아야 합니다. 청소란 조금일 때는 치우기 쉽지만, 미뤄두면 어렵다 못해 아예 할 생각조차 들지 않게 됩니다. 마음 닦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 속 먼지와 때가 짙어지기 전에 닦아내고 또 닦아내는 것이 비로소 마음 수행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주리반특 스님에게 마당을 쓸며 깨우치라고 하신 것이 그런 이유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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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심우도 [기우귀가 (騎牛歸家)]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심우도 [기우귀가 (騎牛歸家)]

기우귀가 (騎牛歸家)

< 소타고 유유히 집으로 가노라니 밝은 피리 소리 저녁놀에 실려 간다.

한 박자 한 곡조가 한량없는 뜻이려니 음을 알기에 어찌 꼭 설명이 필요하랴.>

동자가 길들인 소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말을 탔으면 기마지만, 소를 탔으므로 기우입니다. 그래서 기우귀가는 소를 타고 귀가한다는 말입니다. 수행으로 말하자면, 본래의 자신으로 되돌아와 번뇌 망상을 벗어난 상태에 해당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니, 본래 '나'로 돌아옴을 뜻합니다.

소는 완연히 흰색으로 변했습니다. 동자가 고삐를 잡고 소를 몰아가는 것도 아닌데, 때를 모두 벗어던진 흰 소는 동자를 태우고서 유유히 진리의 세계로 나아갑니다. 마치 부처님께서 불이 난 집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노는 것에만 정신 팔린 아이들을 구하고자 흰 소가 끄는 수레로 호기심을 일으켜 불난 집에서 아이들을 구해낸 것을 비유하는 것만 같습니다. 그렇게 흰 소는 동자를 태우고 열반의 세계로 데려갑니다.

이것은 수행자의 마음이 이제 자리를 잡았음을 뜻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동자가 부는 피리소리는 한 곡조 한 가락이 모두가 깨달음에서 나오는 소리입니다. 사실상 곡조나 박자에 음악적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 소리가 저녁놀에 실려 가는 것이 이제는 마음에 모든 욕망을 벗어던진 경지에 이르렀으니, 동자는 또한 번뇌가 사라진 세상을 향하고 있다는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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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석가모니부처님의 근본5인 -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문화

석가모니부처님의 근본5인 -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부처님이 마왕 파순의 항복을 받기 위해 지신(地神)에게 부처님의 수행을 증명해 보라고 말하면서 지은 수인이다. 선정인에서 왼손은 그대로 두고, 우에 얹은 오른손을 풀어 손바닥을 무릎에 대고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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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한일 불교계 &quot;세계평화 이바지 맡거름되자&quot;..문화교류대회 폐막

[스탠딩]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반세기 동안 이어 온 양국 불교계의 교류는 일불제자로서 중생 구제에 앞장선 보살행으로 거듭났습니다. 일본 교토 엔랴쿠지에서 BTN 뉴스 윤호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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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0
사찰미술여행 -  사찰의 용 ①
문화

사찰미술여행 - 사찰의 용 ①

사찰의 용문양은 불법이 지닌 절대 존엄 상징\

▲ 인도 팔상도의 관수장면, 굽타시대, 사르나트 출토, 인도 뉴델리국립박물관.

이달 초 부산 해양박물관에서 고대로부터 지배자와 수호자의 상징이었던 용과 관련해 다양한 주제로 진행된 연구의 결과물들이 발표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부처님의 탄생 설화 때부터 호법신장 같은 역할로 등장

힌두교 뱀신에서 차용된 용 인도선 코브라 모습 그려져

용 신령스럽지만 역시 동물 사천왕들에 의해 제어 당해

용에 대한 피상적인 상식만 갖고 있던 필자도 이 글을 쓰게 될 인연이었는지 우연히 참석할 기회를 얻어 용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용의 모습은 뱀뿐만 아니라 악어, 도마뱀과도 연결고리가 있단다. 그리고 8000년 전의 중국 사해(査海)유적에서 발견된 20미터에 달하는 용 형태의 돌무더기가 현재 용을 표현한 최초의 유물로 판명되면서 용문화의 기원은 중원지역이 아닌 만리장성 북쪽 요하(遼河) 일대가 되었다. 이 지역은 동이(東夷)의 땅이었으니까 지역만으로 본다면 우리민족과 전혀 관련 없는 사실은 아닌 듯싶다.

용의 모습은 한나라시기에 만들어졌다. 머리는 낙타, 뿔은 사슴, 눈은 토끼, 귀는 소, 목덜미는 뱀, 배는 큰 조개, 비늘은 잉어, 발톱은 매, 주먹은 호랑이와 비슷한 여러 동물의 형태를 모아서 만든 집성체와 같다. 용의 비늘은 81개이며 울음소리는 구리로 만든 쟁반을 울리는 것 같고 입 주위는 긴 수염이, 턱 밑에는 명주(明珠)가 있으며 목 아래는 거꾸로 박힌 비늘(逆鱗)이, 머리 위는 박산이 있단다. 사람들은 용이 상상속의 동물이라고 말하면서 도대체 어찌 알고 저리 세세히 용을 그려내게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 비람강생중 구룡토수장면, 1459년, 월인석보 팔상판화 부분, 서강대 도서관.

사찰을 장식하는 여러 문양 가운데 불법을 의미하는 연꽃만큼 용도 다양한 의미로 즐겨 사용되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만 의존해 농사를 짓던 시절 비를 내리는 구름과 밀접한 용 문양이 가진 가장 큰 의미는 물과 관련된 것이지만 사찰의 용 문양에서 기우와 관련된 뚜렷한 상징성은 보이지 않는다. 사찰의 용이 가지는 다양한 의미 가운데 가장 뚜렷한 상징성은 무소불위의 절대적인 권위이다. 용은 신령스러운 동물 가운데서도 그 위상과 권위가 으뜸이라 절대적인 지배자의 상징으로 여겨졌기에 사찰에 이용된 용 문양은 불법이 갖고 있는 절대 존엄성을 의미한다. 그래서 주불이 모셔진 금당이나 주요전각의 기둥이나 들보, 지붕 아래 공포장식 등에서는 그 모습을 찾을 수 있지만 부속 건물의 장식으로 용이 사용된 예는 흔치 않다.

더불어 사찰의 용은 호법신장과 같은 역할을 한다. 부처님을 공양하면서 불법을 수호하는 의미로 용이 등장한 예는 부처님의 탄생 설화에서부터 보인다. 부처님이 태어나 처음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실 때 하늘에서 아홉의 용신들이 감로수로 몸을 씻겨 주었다는 구룡토수(九龍吐水) 설화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불전에서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룡으로 묘사되는 나가(Naga)는 원래 힌두교 뱀의 신에서 차용되었기 때문에 인도와 동남아시아에서 목둘레가 넓은 코브라와 같은 모습을 띠고 있다. 인도 굽타시대 사르나트에서 만든 부처의 탄생을 묘사한 불전부조에는 어린 싯타르타 좌우로 관욕을 위해 물 항아리를 가진 나가들이 있다. 나가의 모습은 머리에 세 마리의 코브라 장식후드를 하고 있는 남녀로 이 불전부조와 같이 반인반수 형상에서부터 코브라와 같은 뱀이나 완전한 사람까지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지고 있으며 남성인 나가와 여성인 나가니 이렇게 짝을 이루어 표현되기도 한다.

▲ 용왕과 용녀, 미륵하생경변상도 부분, 1350년, 일본 친왕원(親王院).

산스크리트어 나가라는 말은 중국에서 용이라는 한자로 번역되었는데 그런 까닭에서인지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지역의 불전도 비람강생의 관욕장면은 인도와 동일한 내용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뱀의 신이었던 나가를 상상의 동물인 용으로 바꿔 묘사한다. 농경을 위주로 하는 남방문화는 대부분 뱀을 신성시하기에 이 지역에서는 용보다 뱀이 숭배되었다. 그래서 남방문화의 불교신화에 나오는 뱀은 힌두교 뱀의 신인 나가를 차용하였기 때문에 뱀과 인간이 합체된 혹은 뱀 형상 그대로 표현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인류 최초로 용문화가 생성되었다는 사해유적과 같이 초원지대와 사막지대가 많은 북방으로 지역이 바뀌면 뱀보다는 용이 신성한 동물로 숭배되어졌다. 때문에 인도불교의 나가는 중국으로 전래되어 정착하며 뱀에서 하늘을 나는 용으로 그 모습이 바뀌어 진 것이다.

그렇다면 용을 현실의 왕과 같은 모습으로 그려낸 우리나라 용왕도는 나가를 완전한 인간으로 표현했던 방식을 따른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고려불화 ‘미륵하생경변상도’에서 화면 중단 불법에 귀의하여 삭발하는 미륵부처의 부모님 바로 옆, 용과 함께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남녀형태로 그려진 인물들은 용녀와 용왕이다. 우리나라에서 용왕이 여성으로 설화에서 묘사되거나 작품으로 그려진 예는 전무하다시피해서 그림의 용녀를 보면서 의아해 했던 적이 있었는데 나가를 남녀로 표현한 사례들을 알고 나니 고려 왕비와 같은 모습으로 묘사된 여성 용왕도 이해가 간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고려불화는 섬세하고 화려하다는 품평을 넘어 도상이 경전의 내용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그 가치가 대단하다.

▲ 상원사 동종의 용뉴, 통일신라(725년), 국보 제36호, 상원사.

사찰을 장식하고 있는 용 문양은 사용되어진 공간에 따라 의미를 각각 달리하는 특징을 보이는데 그 근거는 대부분 용들의 왕이라고 하는 규룡(虯龍)이 낳은 아홉 자식(龍生九子)들인 비희(贔屓), 이문(螭吻), 포뢰(浦牢), 폐안(狴犴), 도철(饕餮), 공하(蚣蝦), 애자(睚眦), 산예(狻猊), 초도(椒圖) 이야기에서 따온 것이 많다. 절에 세워진 비석 아래 거북이의 모양을 하고 있는 귀부는 무거운 것을 등에 지기 좋아하는 뿔 없는 용 비희를 나타낸 것이고, 전각의 지붕 위 용머리 장식인 취두는 멀리 보기 좋아하는 이문의 형상을 본 떠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 용은 화재를 누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단다. 대부분의 건축물이 나무로 지어졌던 시절에 화재는 무서운 재난이었기에 물을 다스리는 능력을 가진 용의 형상은 화마를 제어하는 벽사의 의미가 컸다.

소리 지르는 것을 좋아하는 포뢰는 종을 걸어두기 위한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의 문양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범종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종의 구조이다. 포뢰는 큰 물고기인 고래를 무서워하기에 종소리가 크게 울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종을 치는 당은 고래모양으로 만들기도 한다. 선암사 입구 돌다리 아래 용머리 장식과 같이 물을 좋아하는 공하는 다리의 기둥에 많이 새겨지고 사자를 닮은 산예는 연기와 불을 좋아하여 향로에 새기기도 하며 앉아 있는 것을 즐겨하는 습성으로 인해 부처님의 대좌 아래 사자로 많이 표현되기도 한다. 우리가 아는 용이 모두 선한 성품을 가진 것은 아니어서 향로에 새겨지는 도철은 먹고 마시는 것을 좋아하고 애자는 죽이기를 좋아하여 칼의 콧등이나 칼자루에 새긴다.

▲ 소조 증장천왕상, 조선시대(1649), 보물 제1255호, 완주 송광사.

용이 신령스럽기는 하나 동물인지라 이를 부리고 제어하는 신의 권속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절 입구에 위치한 천왕문에서 볼 수 있는 팔뚝에 감겨있는 용을 억센 손으로 꽉 쥐고 있는 사천왕의 모습은 용을 다스리는 능력을 의미한다. 대개 사천왕 중에서 용과 여의주를 지물로 가지는 천왕은 서방의 수호신인 광목천왕으로 알려져 있지만 완주 송광사 사천왕문에서처럼 남방을 다스리는 증장천왕의 손에 용과 여의주가 들려있는 예도 적지 않다. 사실 사천왕의 지물은 시대나 지역에 따라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어느 것이 정답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순수한 우리말로 용은 미르이다.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질 않는 요즈음 필자에게도 독자 여러분에게도 수호신 미르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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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전통사찰의 구조 - 팔상전(八相殿)
문화

전통사찰의 구조 - 팔상전(八相殿)

팔상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생을 여덟 폭으로 나누어 그린 그림을 봉안한 곳이다. 여덟 폭의 그림에서 연유하여 팔상전 또는 부처님의 설법회상인 영산회상에서 유래하여 영산전(靈山殿)이라 부르기도 한다. 불단 없이 벽에 팔상도를 봉안하는 것이 보통이다. 주불은 석가모니 부처님이고, 좌우 협시로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보살을 봉안한다. 충북 보은의 법주사 팔상전이 대표적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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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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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입문 - 석가여래의 십대제자는?
문화

불교입문 - 석가여래의 십대제자는?

  1. 두타 제일 가섭존자
  2. 다문 제일 아난존자
  3. 지혜 제일 사리불존자
  4. 해공 제일 수보리존자
  5. 설법제일 부루나존자
  6. 신통제일 목련존자
  7. 논의제일가전연존
  8. 천안제일 아나율존자
  9. 지계제일 우발리존자
  10. 밀행 제일 라후라존자

※ 이 자료는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현묵 김광호 님의 저서 “엄마 따라 절에 가기”에서 발췌: 알아두면 좋은 불자상식 작성자 민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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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안수정등
불교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안수정등

“팔정도 실천하면 열반 언덕 이를 수 있어”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절 안의 돌 하나, 나무 한 그루에도 큰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찰에는 무엇 하나 예사로운 것이 없습니다. 전각 벽에 그려져 있는 벽화에도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불자들은 법당에서 참배만하지 벽화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갖지 않고 그냥 지나쳐 버립니다. 2500여 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불교는 긴 세월을 거쳐 오면서 많은 설화를 가지고 있으며 그 설화들은 현재까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신앙에 관한 이야기,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 교리에 관한 이야기, 고승들의 행적에 관한 이야기 등 종류와 수가 방대합니다. 그 가운데 중요하고 지침이 될 만한 이야기들을 벽화로 그린 것입니다.

불교에서 인생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안수정등(岸樹井騰)’이라는 비유가 있습니다.

▲ 단양 구인사 설법보전 외벽에 있는 '안수정등' 벽화.

광야를 지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무서운 코끼리가 나타나 쫓아옵니다. 정신없이 도망치다 보니 언덕 밑에 우물이 하나 있습니다. 그 속에는 나무넝쿨이 늘어져 있었고, 그 사람은 넝쿨을 잡고 우물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아! 이제 살았다’는 안도의 숨을 채 내쉬기도 전에 밑을 보니 사나운 용이 입을 벌리고 그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둘레에는 네 마리의 뱀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자신을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 밖에는 코끼리가 지키고 있으니 나갈 수도 없고 오직 나무넝쿨만 움켜쥐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어디선가 흰 쥐와 검은 쥐 두 마리가 나타나서 나무넝쿨을 갉아대기 시작합니다. 그 순간 위에서 꿀이 떨어져 입술에 닿자 그는 달콤한 꿀맛에 취해 자신의 처지를 잊고 맙니다.

여기서 광야를 가는 사람은 중생의 모습이고, 고독한 모습이지요. 광야는 중생이 윤회하는 (천상, 인간, 아수라, 축생, 아귀, 지옥) 육도를 뜻 합니다. 무서운 코끼리는 목숨을 앗아가는 살귀이고, 우물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며, 네 마리의 뱀은 인간의 몸인 사대(四大) 즉 지수화풍(地水火風)을 말합니다. 나무넝쿨은 중생의 생명줄을 말하고, 흰 쥐와 검은 쥐는 낮과 밤의 시간을 말하며, 꿀은 중생들의 앞에 펼쳐진 오욕락(五欲樂)을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 중생들은 잠시의 오욕락이 영원한 것으로 착각하고 살아갑니다. 이것뿐만이 아니라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는〔常〕 즐거움의 착각〔樂〕, 존재의 착각〔我〕, 깨끗함의 착각〔淨〕이 더 있습니다. <반야심경>에 나오는 전도몽상(顚倒夢想)이 바로 이것입니다. 회자정리(會者定離) 생자필멸(生者必滅).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고,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게 됩니다. 이렇듯 인생은 무상(無常)하고 제행(諸行)은 무상인 것이며 제법(諸法)은 무아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처음 설하셨던 것이 고(苦), 집(集), 멸(滅), 도(道) 사성제인데 그 가운데 고성제는 인생은 고(苦)라는 것입니다. 생, 노, 병, 사의 근본 사고(四苦)를 이야기하고 여기에 애별리고, 원증회고, 구득불고, 오온성고의 네 가지를 더해 인생이 팔고(八苦)임을 설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부처님은 우리 인생에 대해 고(苦)라고 결론지어 놓으셨습니다. 그러면 인생에 행복이란 것이 없고 고만 있다면 바르게 살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지 않는가 하는 오해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을 말씀하셨습니다. 집성제, 멸성제, 도성제를 이해하면 저절로 의문이 풀릴 것입니다. 고성제가 인생의 현실에 대한 진단이라면, 집성제는 그것의 원인 분석입니다. 괴로움의 원인은 갈애(渴愛)에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갈애의 근본 원인은 바로 무명, 즉 어리석음입니다. 어리석기 때문에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괴로움을 겪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고(苦)라는 것에 대한 원인 분석이 끝났습니다. 그러면 그 괴로움을 벗어난 상태인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멸성제입니다. 열반(涅槃)이란 괴로움을 벗어난 적정과 안온이 있는 참된 행복의 상태를 뜻합니다. 〈반야심경〉에서는 괴로움의 이 세상을 차안(此岸)이라고 했고, 참된 행복이 있는 열반의 세상을 피안(彼岸)이라고 했습니다. 바라밀은 곧 차안에서 피안으로 건너간다는 뜻입니다. 열반의 언덕으로 가는 방법이 바로 도성제입니다. 도성제는 팔정도(八正道)를 말합니다. 쾌락과 고행의 두 극단을 떠난 중도를 말하는 이 팔정도를 실천하면 반드시 열반의 언덕에 이를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바르게 노력하는 한 행복한 미래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모두 실천할 수 없지만 조금씩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다 보면 우리도 부처님같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런 노력의 실천만이 고해에서 벗어나는 길이며, 우리의 밝은 미래가 보장된 불국토로 가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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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지장신앙, 명부전, 시왕신앙이란..
문화

불교문화 - 지장신앙, 명부전, 시왕신앙이란..

  • 지장신앙의 개요 및 철학 지장보살의 서원, 인과응보 사상, 참회 수행 중심의 신앙 설명

링크정보 명부신앙(冥府信仰) 한국불교문화포털

  • 명부전과 시왕신앙의 구조와 의미

지장보살과 시왕의 결합, 사찰 내 명부전의 상징적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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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전통사찰의 구조 - 약사전(藥師殿)
문화

전통사찰의 구조 - 약사전(藥師殿)

약사전은 약사유리광여래(약사여래)를 모신 법당이다. 약사여래는 현세중생의 모든 재난과 질병을 없애주고 고통에서 구제해주는 현세이익적인 부처님이다. 만월보전, 유리광전, 보광전이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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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상의 종류 - 나한상과 조사상
문화

불상의 종류 - 나한상과 조사상

부처님이 상수제자인 가섭존자와 안나 존자 등 훌륭한 제자들을 조성한 것이 나한상(羅漢像)이고, 한 종파의 큰스님을 조각한 것을 조사상(祖師像)이라고 하는데, 모두 스님상을 하고 있다. 나한상은 가섭존자. 아난존자 등 십대 제자를 중심으로 오백 나한. 천이백 아라한 등이 있고, 조사상은 용수.무착. 세친. 현장. 원효. 자장. 달마. 보조 선사 등 인도.중국.우리나라의 고승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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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원효와 의상대사.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원효와 의상대사.

사찰 벽화이야기 고승이야기 3. 원효와 의상대사.

해골 무덤가에서 원효스님과 헤어진 의상스님은 계속해서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의상스님은 중국에서 지엄智儼대사의 문하에 들어가 십여 년간 화엄을 공부했습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당시 인근에 도선율사라는 덕 높은 분이 계셨는데 하루는 의상스님을 초청한 적이 있습니다.

도선율사는 수행력이 매우 뛰어나, 하늘에서도 큰 재가 있을 때마다

스님에게 천녀를 보내와 하늘음식으로 만든 천공天供을 바쳤다고 합니다.

그날도 신라에서 온 의상스님에게 대접하기 위해 천공을 기다리고 있는데,

때가 지나도록 음식이 오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한참동안 천공이 오지를 않자 두 스님은 이런 저런 담소만 나누다 그냥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의상스님이 돌아간 후에야 천녀가 찾아 왔습니다.

도선율사가 오늘은 어째서 이렇게 늦엇는지를 물었습니다.

천녀가 말하기를 "산 입구에 골짜기 가득 신병神兵이 가로 막고 있어서,

들어올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이에 도선율사는 의상에게 신의 호위가 있음을 알고,

그 도가 자기보다 높은 것에 탄복하며 그 공양을 잘 놔뒀다가

다음 날 지엄과 의상 두 스님을 청하여 공양 올렸다고 합니다.

그것은 의상스님께서 화엄을 공부하고 깨달음을 얻었기에

화엄성중華嚴聖衆 즉 여러 신장님들이 의상스님을 호위했던 것입니다.

그 후 하늘의 천공도 이제는 도가 높은 의상스님에게 올려지게 되었습니다.

의상스님은 지엄스님 문하에서 방대한 화엄경을 정리하고

그 핵심만을 요약한 「법성게法性偈」를 집필했습니다.

그리고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의상스님이 귀국했다는 소식에

친한 도반을 맞이하려 원효스님이 찾아 왔습니다.

그런데 그날도 의상스님에게 천공이 올 시간이 되었는데,

원효스님이 방문하자 하늘의 천사들이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원효스님이 떠나자 뒤늦게 천신들이 공양을 갖고 나타났습니다.

"왜 이렇게 늦었는가?"

"저희가 들어가려고 하는데, 번쩍이는 옷을 입은 신장들이 문 앞을 막고 서 있어서

도저히 들어갈 틈이 안보였습니다."

의상스님은 옛날 도선율사의 일이 떠올라 새삼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행동이 수행자로서 올바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친구였던

원효스님이 꾸짖은 것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 후부터는 의상스님도 더 이상 천공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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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용연사 설산동자와 나찰.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용연사 설산동자와 나찰.

설산동자와 나찰

대반열반경에 등장하는 설산동자 반게살신(雪山童子 半偈殺身) 대목

싯다르타의 전생에 설산동자라는 이름으로 설산(히말라야)에서 명상에 잠겨 있던 어느 날 공중에서

諸行無常 是生滅法(제행무상 시생멸법)

모든 것은 무상하나니, 이것이 곧 생멸의 법칙이다. 라는 시구가 들려왔고,

설산동자는 이 말이 자신이 찾던 깨달음이라며 기뻐하고 사방을 두리번거렸으나,

사람은 없고 오직 나찰만이 험악한 얼굴로 서 있었다.

설산동자가 "방금 ‘제행무상 시생멸법’이라는 시구를 그대가 읊었는가?"라고 했고,

나찰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건 반쪽이고 뒷부분이 더 있을 거 같은데 나머지 부분도 들려달라"고 부탁했는데,

나찰은 "들려주고 싶지만 지금 나는 너무 배가 고파서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소.

만일 그대의 뜨거운 피를 준다면 나머지 시구를 들려줄 수 있소."라고 했고,

설산동자는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줄 테니 마지막 시구를 들려달라고 다시금 부탁했다.

이에 나찰이 뒷부분을 마저 읊었다.

生滅滅已 寂滅爲樂.(생멸멸이 적멸위락)

생멸이 끝나면 곧 고요한 열반의 경지이니, 그것이 극락이니라.

설산동자는 나찰과의 약속대로 높은 나뭇가지 위에 올라가서 몸을 던졌다.

그런데 나찰은 설산동자의 몸이 땅이 닿기 전에 인드라(제석천)로 변해서

설산동자의 몸을 받아서 땅에 내려놓았다.

경전에는 이때 여러 천신들이 모여 설산동자의 발에 절을 하면서

깨달음에 대한 구도의 정신과 서원을 찬탄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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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신묘장구 대다라니 (4일차)
문화

불교문화 - 신묘장구 대다라니 (4일차)

**보명법사의 신묘장구대다라니 3×7=21일 기도 4일째. **

(4) 니라간타 나막하리나야 마발다 이사미 살발타 사다남 수반 아예염 살바 보다남 바바말아 미수다감 다나타 옴 아로게 아로가 마지로가 지가란제 혜혜하례 마하모지 사다바 사마라 사마라 하리나야 구로구로 갈마 사다야 사다야 도로도로 미연제 마하 미연제 다라나라 다린 나례 새바라 자라자라 마라미마라 아마라 몰제 예헤헤

처음에 나오는 <니라간타>의 <니라>는 '푸른'의 뜻이고, <간타>는 '목'이란 뜻인데 그것을 합하면 푸른목, 즉 '청경(靑頸)'이란 말입니다. 이것은 인도 신화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본래 청경존(靑頸尊)은 인도 힌두 신화에 등장하는 시바신의 이름인데, 대승불교권에서는 이분을 관세음보살이라 합니다. 힌두 신화에 따르면 비슈누신이 불사의 약을 얻기 위해 우유바다를 휘 저을 때 바다를 젓는 오랏줄로 쓰인 뱀이 푸른 독을 내뿜었다고 합니다. 이 독으로 인해 모든 생명들이 모조리 목숨을 잃을 위험에 처하자 시바신이 그 푸른 독을 한 접시에 모아 자신이 마셔 버렸습니다. 그러나 삼키지 않고 목 안에 머금고 있었기 때문에 독으로 인해 시바신은 푸른 목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신화는 괴로움의 독 바다에서 모든 생명을 살려낸 자비의 상징이 되니 관세음보살의 또 다른 이름으로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나막 하리나야>라고 할 때 <나막>은 '~라고 이름하는'이란 뜻이며, <하리나야>는 '마음', '심수(心髓)', '진언'이라는 뜻입니다.

<마발다 이사미>는 '암송하겠다', '반복하겠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니라간다>에서 <마발다 이사미>는 '청경존의 마음을 노래하겠습니다' 란 뜻이 됩니다.

<살발타 사다남>에서 <살발타>는 살바르타를 줄여서 <살발타>라고 하는데 <살바>는 앞에서도 나왔듯이 '일체'라는 말이며, <르타>는 '목적', '이익'이란 말입니다. <사다남>은 '완성','성취'라는 뜻이니 붙여서 해석하면 '일체의 목적(이익)을 성취한다'이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수반 아예염>에서 <수반>은 '길상(吉祥)'혹은 훌륭한'의 뜻이며, <아예염>은 '불가승(不可勝)' 즉 '이길 수 없는'이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살바 보다남>에서 <살바>는 '일체'라는 뜻이며, <보다남>은 '존재'라는 뜻입니다. <바바말아 미수다감>에서 <바바말아>는 '탄생하다, 존재하다, 있다' 혹은 '삶의 길' 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미수다감>은 '정화(淨化), 청정'의 뜻이 있으니 <바바말아 미수다감>은 '삶의 길을 청정하게 하시는' 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니라간타 나막하리나야 마발다 이사미 살발타 사다남 수반 아예염 살바 보다남 바바말아 미수다감>까지를 붙여서 풀이하면 '청경존의 그 마음과 모든 목적을 성취하고 모든 존재들의 삶을 길을 청정하게 하시는 그 마음을 노래 합니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다냐타 옴 아로게 아로가>에서 <다나탸>는 '그것은 다음과 같다'란 뜻이며, <옴>은 극찬의 의미를 지닌 진언의 근본 되는 소리인 것입니다.

<아로게 아로가>라고 할 때, <아로게>와 <아로가>는 같은 뜻을 지닙니다. 즉 '광명, 명조(明照), 안목(眼目), 주시(注視), 봄' 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마지로가 지가란제>에서 <마지로가>는 다시 <마지>와 <로가>를 분리해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마지>는 '지혜'의 의미가 있으며, 앞의 <아로가>와 이어집니다. 그래서 '지혜의 빛이여'라는 뜻이 됩니다. <로가>는 <로까>라고도 하는데 '세간, 세계'라는 뜻이 있습니다. <지가란제>는 '초월한다'라고 풀이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냐타 옴 아로게 아로가 마지로가 지가란제>까지를 붙여서 해석하면 '옴 ! 광명존이시여, 광명의 지혜존이시여, 세간을 초월하신 존(尊)이시여'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혜혜하례>에서 <혜혜>는 '오 !'라는 감탄사이며, <하례>는 '신(神)의 이름' 혹은 '실어 나른다'라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서 <하례>라는 신의 이름은 결국 관세음보살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혜혜하례>가 궁극적으로 뜻하는 의미는 '오 ! 관세음보살이시여, 저 피안으로 우리를 실어 나르소서'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마하모지 사다바>에서 <마하>는 잘 알다시피 '대(大)'라는 뜻이며, <모지 사다바>는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보리살타' 즉 '보살'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혜혜하례 마하모지 사다바>는 '오! 님이시여, 위대한 보살이시여!' 라는 뜻이 됩니다.

<사마라 사마라>의 반복은 '기억하다, 억념(憶念)하다'는 뜻이고, <하리나야>는 '마음의 진언, 심수(心髓)'라는 의미이므로 <사마라 사마라 하리나야>는 '마음의 진언을 억념하옵소서, 억념하옵소서'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구로구로 갈마>에서 <구로구로>는 반복되는 말로서 '작위(作爲), 시행, 행위'등을 나타냅니다. <갈마>는 <카르마>라고도 하는데 '업(業), 작용, 작업, 행업, 작법(作法), 행위 등을 뜻합니다. 그래서 <구로구로 갈마>는 '작업을 실행하옵소서, 실행하옵소서'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사다야 사다야>라고 할 때 <사다야>는 앞에서도 여러 번 나온 단어로서 '성취한다'는 뜻입니다. 또 <도로도로>는 '승리하다'의 뜻이 반복 되는 것이고, <미연제>는 '승리한 님이시여'라는 뜻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깨닫고 나서 '모든 것을 이긴 사람'이라고 해서 일체승자(一切勝者)라고 했습니다. <마하 미연제>는 '위대한 승리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다야 사다야 도로도로 미연제 마하 미연제>까지를 연결해서 풀이해 보면 '성취케 하소서, 성취케 하소서, 승리하고 또 승리 하소서, 위대한 승리자시여'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라다라 다린 나례 새바라>에서 <다라다라>는 앞에 나온 <도로도로>와 같은 뜻으로 '수지(受持), 보존, 임지(任持)'의 뜻이 있습니다. <다린 나례 새바라>는 지닌다는 뜻의 '다라'와 번개를 의미하는 '인드라'와 절대자를 뜻하는 '이슈바라'가 합해진 말입니다. 따라서 <다라다라 다린 나례 새바라>는 '지켜주소서, 번개를 지니신 절대자시여'라는 뜻입니다.

이어서 <자라자라 마라 미마라 아라라 몰제 예혜혜>에서 <자라자라>라고 할 때 <자라>는 '발동(發動), 행동'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마라 미마라>의 <마라>는 '진구(塵垢)'즉 '때, 더러움, 오염'의 뜻입니다. <미마라>에서 <미>는 부정을 나타내는 부정사이니 '더러움을 벗어난' 이란 의미가 됩니다. <아마라>의 <아>도 마찬가지로 부정을 나타내는 부정사이므로 <아마라>도 <미마라>와 같은 뜻의 '더러움을 벗어난' 혹은 '때를 없앤'이란 뜻입니다.

<몰제 예혜혜>의 <몰제>는 '훌륭한 모습, 아름다운 모습'이란 뜻이 담겨 있으며, <예혜혜>는 원래는 <예히예히>인데 '강림하다' 혹은 '오다'의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라자라>에서부터 <몰제 예혜혜>까지를 붙여서 해석하면 '발동하소서, 진구(塵垢)를 이탈(離脫)한 존(尊)이시여, 무구청정(無垢淸淨) 원만상존(圓滿相尊) 이시여, 강림(降臨)하소서, 강림 하소서'가 됩니다.

불기 2570년 4월 14일 팔공산 감고사지기 보명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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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벽화이야기 - 초전법륜 (初轉法輪) - 석가의 첫 가르침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초전법륜 (初轉法輪) - 석가의 첫 가르침

<청량사- 경북 영천> <br><br> 진리를 깨우친 석가는 다섯 명의 비구들에게 법문을 열고 있다. 대부분의 사찰에서 다루어지는 대표적인 벽화로, 부처일대기를 8장면으로 압축하여 묘사한 팔상도(八相圖) 중 일곱 번째에는 석가가 5비구에게 전하는 최초의 가르침을 다룬 그림이다. 여기 첫 가르침으로 부터 중도(中道)와 4성제(四聖諦), 팔정도(八正道)를 시작으로 바야흐로 8만4천 법문으로 이어지게 된다. 석가의 위대한 업적은 가르침이다. 불교에서 파생된 종교(宗敎)의 사전적 의미는 근본, 진리-宗, 가르칠-敎 로 초전법륜으로 하여금 가르침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지금가지 스스로 깨달음을 이루어가는 자기 성찰의 수행 이였다면 석가는 깨달음을 공유하려는 큰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br><br> ▮ 모아보는 초전법륜 <br><br> <내원사-경남 양산>

<br><br> <법천사-전남 무안>

<br><br> <송광사-전남 순천>

<br><br> <심복사-경기 평택>

<br><br> <해인사-경남 합천>

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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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신묘장구 대다라니 (16일차)
문화

불교문화 - 신묘장구 대다라니 (16일차)

**보명법사의 신묘장구대다라니 3×7=21일 기도 16일째. **

  1. 신묘장구대다라니 (神妙章句大陀羅尼)의 뜻 ①.

신묘장구(神妙章句)란 신통묘용(神通妙用)한 글귀라는 뜻입니다.

왜 신통묘용한 글귀인가 하면 이 글귀를 외우므로써 여러 가지 신비스러운 묘한 작용을 얻어 생활을 유익하게 할 수 있고 나아가 성불(成佛)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다라니(大陀羅尼)는 큰 다라니라는 뜻이며, 다라니에 대해서는 이제껏 자세히 설명한바 있으므로 생략하고 바로 본문구절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1) 제1구 나모 라다나 다라야야 나모 라뜨나 뜨라야야

<나모>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귀의(歸依)ㆍ귀명(歸命)'의 뜻이며, <라다나>는 인도에서는 증물(贈物)ㆍ재산 부(富)의 뜻이고, 중국사람들이 이를 재보(財寶)ㆍ보석ㆍ진주 등으로 번역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한결같이 매우 귀중한 것을 뜻하므로 '가장 훌륭한' 또는 '가장 거룩한'이라는 뜻이 됩니다.

이는 마치 불ㆍ법ㆍ승을 세 가지 보배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다라야야>는 '보호자ㆍ보호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들을 종합하면 '가장 거룩한 보호자에게 귀의합니다'라는 뜻이 됩니다. 여기서 가장 거룩한 보호자는 물론 관세음보살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라니 해석}

나모 라뜨나 뜨라야야 삼보(三寶)님께 귀의(歸依)하나이다.

⊙ 나모(namo) ←namas) : 귀의(歸依)하다. 경배(敬拜)하다. ⊙ 라뜨나 뜨라야야(ratna trayāya) : 삼보께 (ratna : '보물ㆍ보석' + traya : '세 종류로 구성된 것. 세 종류의, 삼(三)' + ya : ~에게(여격어미)) ⊙ 삼보(三寶) : 불(佛 Buddha, 佛陀), 법(法 Dharma 達摩), 승(僧 Sangha(僧伽).

(2) 제2구 나막 알약 바로기제 새바라야 모지사다바야 마하사다바야 마하가로니가야 nama āryā-avalokiteśvarāya bodhisattvāya mahāsattvāya mahākāruṇikāya 나마 아리야아왈로끼떼슈와라야 보디쌋뜨와야 마하쌋뜨와야 마하까루니까야

<나막>은 앞의 <나모>와 같이 '귀의한다'는 말이고, <알약 바로기제 새바라야>는 관세음보살님의 본 이름인 '아바로키테스바라'입니다.
<모지사다바야>는 보디사트바를 한자로 표시한 보살의 원음입니다.

<마하사다바야>는 '마하사트바' 즉 대 보살이라는 뜻입니다. <마하가로니가야>는 마하는 '크다'는 말이고, <가로니가야>는 '불쌍히 여긴다. 사랑 한다'는 말의 원어이므로 '크게 불쌍히 여기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본문의 뜻을 종합해서 번역하면 '거룩하신 관자재보살님께 귀의하오니 크게 어여삐 여기소서!'하는 뜻도 되고, '크게 어여삐 여기시는 거룩하신 관자재보살님께 귀의합니다'라는 뜻도 됩니다.

{다라니 해석}

☞ namaḥ āryā-avalokiteśvarāya bodhisattvāya mahāsattvāya mahākāruṇikāya 나마하 아리야아왈로끼떼슈와라야 보디쌋뜨와야 마하쌋뜨와야 마하까루니까야 거룩하신 관자재님께, 보살님께, 큰보살님께, 대자대비하신 분께 귀의하나이다.

⊙ 나마하(namaḥ = namo, namas) : 귀의(歸依)하다. 경배(敬拜)하다. ⊙ 아리야아왈로끼떼슈와라야(āryāavalokiteśvaraya) : 성스러운 관자재님께 (āry ; 성스러운, 고귀한 + āvalokiteśvarā ; 관자재 + ya ~에게) ārya : 성스러운 존경할 만한 분. Avalokiteśvara : 관세음보살. valokia : 모든 보여진 존재의. iśvara : (능력있는) 절대자. 신(神). 주(主) ⊙ 보디쌋뜨와야(bodhisattvāya) : 보살님에게 (bodhi ; 지혜, 깨달음 + sattvā ; 존재 + ya ; ~에게) (bodhisattva(菩薩) → bodhi ; 지혜, 깨달음 + sat ; 지혜로운 자 + tva ;추상명사어미) ⊙ 마하싸뜨와야(mahāsattvāya) : 마하살(摩訶薩), 대보살님께 (mahāsattvā ; 마하살, 대보살, 시바 신(mahat) + ya ; ~에게) ⊙ 마하살(mahāsattva 摩訶薩)은 10지(十地) 이상을 성취한 보살을 다른 계위(階位)의 보살과 구분하기 위해 마하살을 붙임. (mahā ; 큰. 위대한, 대(大) + sattvā : 존재자. 유정(有情).

⊙ 마하까루니까야(mahākāruṇikāya) : 대자대비하신 분에게 (mahā ; 큰, 대(大) (접두어) + kāruṇa : 자비(慈悲) + ika 자(者) + ya ~에게)

(3) 제3구 옴 살바 바예수 다라나 가라야 다사명 나막 Oṁ sarva-bhayeṣu trāṇa-karāya tasmai namas 옴 싸르와 바예쑤 뜨라나 까라야 따스마이 나마스

(4) 제4구 까리다바 이맘 알약바로기제 새바라다바 니라간타 나막 kṛtvā imam āryāvalokiteśvara-tava nilakantha-namo 끄리뜨와 아리야왈로끼떼스와라따와 닐라깐타 나모

<옴>은 생명의 근원적인 소리로, 이 소리 안에 시작과 유지와 끝이 다 포함되어 있다는 말을 앞서 설명한 바 있습니다.

<살바>는 '전체ㆍ일체ㆍ모두'의 뜻이고, <바예수>는 '장애ㆍ두려움' 등의 뜻이 있으며, <다라나>는 '보호ㆍ피난처', <가라야>는 '고난ㆍ어려움'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옴 살바 바예수 다라나 가라야>는 '모든 두려움과 고난에서 건져 주시는...' 이라는 뜻입니다.

<다사명>은 '구한다ㆍ건진다'는 뜻이고, <나막>은 '나모'와 같이 '귀의한다. 귀의하면'의 뜻이며, <까리다바>는 '위엄있는ㆍ힘이 있는', <이맘>은 '거룩한 이' 즉 성인이라는 뜻입니다.

<알약바로기제새바라다바>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관자재보살의 원음입니다.

그러므로 <다사명 나막 까리다바 이맘 알야 바로기제 새바라다바>는 '능력있는 관자재보살님께 귀의하면'이라는 뜻이 됩니다.

이를 모두 종합하여 <옴 살바 바예수 다라나 가라야 다사명 나막 까가리다바 이맘 알약 바로기제 새바라다바>를 번역하면 '옴, 모든 두려움과 괴로움 속에서 건져주시는 거룩한 이에게 귀의하면 관자재의 위력이 나타납니다'라는 뜻이 됩니다.

<니라>는 청색이나 감청색을 의미하는 말이고 <간타>는 머리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니라간타>는 '푸른머리'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본래 인도의 삼주신(三主神) 가운데 하나인 시바(Siva)신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시바신은 과거ㆍ현재ㆍ미래를 투시하는 세 눈을 가졌으며, 파괴 및 생각의 능력을 가진 신이라고 합니다.

후에 불교에서 쓰이게 되어 청경존(靑頸尊)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다른 경전에는 <니라간타>앞에 <나모>가 붙어서 <나모 니라간타>라고 되어 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된ㅡ 것으로 보고, 이 말을 독립적으로 해석하면 '청경존께 귀의합니다'라는 뜻이 됩니다. <나막>은 <나모>와 같은 말로 '귀의'라는 뜻입니다.

{다라니 해석} ☞ Oṁ sarva-bhayeṣu trāṇa-karāya tasmai namaḥ
옴 싸르와 바예쑤 뜨라나 까라야 따스마이 나마하 옴! 일체의 위난으로부터 구제해 주시는 분에게, 그 분에게 귀의하나이다.

⊙ 옴(Oṁ) : 우주적 본질의 시작과 과정과 끝을 의미하는 우주의 근본적 진언. 진언의 처음에 놓이는 비밀한 말(감탄사) ⊙ 싸르와(sarva) : 일체의 (것)으로부터(sarva 일체의 + a ~로부터)
⊙ 바예쑤(bhayeṣu) : 두려움, 위험(bhi 두려워하다 + -esu 처소격 어미) ⊙ 뜨라나 까라야(trāṇa-karāya) : 구제해 주시는 분에게 뜨라(trāṇa) : 보호, 구제 + kara : 행위자 + ya : ~에게(여격) ⊙ 따스마이(tasmai) : 그에게 ⊙ 나마하(namaḥ = namo, namas) : 귀의하다. 경배하다.

☞ kṛtvā imam āryāvalokiteśvara tava nilakantha namaḥ 끄리뜨와 이맘 아리야 아왈로끼떼슈와라 따와 닐라깐타 나마하 이에, 성 관자재시여, 당신의 (중생구제의 위업을 행하신) 청경(靑頸)을 우러르나이다.

⊙ 끄리뜨와 이맘(kṛtvā imam) : 이에; 중생구제의 위업을 행하셨기에 끄리뜨와(kṛtvā) : ~을 하고서, 기억하면서. 이맘(imam) : 이것을. ⊙ 아리야아왈로끼떼슈와라(āryāvalokiteśvara) : 성(聖) 관자재(觀自在)이시여(호격) ⊙ 따와(tava) : 그대의, 당신의(2인칭 대명사 yusmad의 소유격)

※ 다른 책에서는 스따밤(stavaṁ) : stava(노래. 찬가)의 단수 목적격으로 해석함. ⊙ 닐라깐타(Nila-kantha) : 푸른 목, 청경(靑頸), 청경성존(靑頸聖尊). 닐라(Nila)는 푸른[靑]을 뜻하는 형용사. 깐타(kantha)는 목[頸]을 뜻하는 명사. 푸른 목을 지닌 시바 신. ⊙ 나마하(namaḥ = namo, namas) : 귀의하다. 경배하다.:

※ 다른 책에서는 나마(nāma) : 이름, 명호를 뜻하는 명사 nāman의 주격에 해당하는 것으로 Nila-kantha와 합하여 '청경의 명호'라 해석함.

그래서 위의 다라니를 kṛtvā imam āryāvalokiteśvara stavaṁ nilakantha nāma로 하여. "이것을 (즉), 청경(靑頸)의 명호이신 성관자재 찬가(讚歌)를 기억하면서"로 해석합니다.

※ 【다라니 해석】부분은 민희식ㆍ이진우 엮음의 <천수경>에서 옮겼고 또 다른 책을 참고하여 보충 설명한 부분입니다.

여기서 보명이 참고로 정리를 드립니다. 닐라깐타는 푸른 목을 가진 시바신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시바 신은 힌두교의 파괴의 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천수경에 힌두교의 신 시바 신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비쉬누 신도 등장합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는 석가모니부처님의 위신력과 관세음보살님의 대비신력이 들어 있다고 하는데 곳곳에 시바신과 비쉬누신의 예찬문이 삽입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을 모른 채 우리는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독송해 왔습니다.

천수경을 연구한 민희식 교수에 의하면 신묘장구대다라니에는 부처님과 관세음보살의 위신력을 찬탄한 것은 없고 외도의 시바 신과 비쉬누 신에 대한 예찬문이 곳곳에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천수경에 신묘장구대다라니는 삭제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시바 신은 108가지의 호칭이 있다 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닐라깐타'라 합니다. 닐라깐타는 시바 신이 세상을 구원하려는 이타적 행위와 희생정신을 불교적으로 해석하여 관세음보살의 대자비심이라는 틀 속에 수용한 것이라 합니다.

시바신은 왜 푸른 목을 지니게 되었나? 옛날 전쟁에서 상처 입은 신들은 비쉬누(Vishnu) 신의 조언에 따라 산을 뽑아 우유의 바다를 휘저어 영생불멸의 치료약 아무리타(Amrita 不死藥. 甘露)를 얻기로 하였다.

그들은 산을 지키고 있는 신성한 뱀 바수키(vasuki)를 붙든 채 바다를 휘저었다.
이 과정에서 바다에서 많은 것들이 나왔다.

아름다운 여신 락샤미(Lakshmi)는 연꽃을 타고 떠올랐다. 그 때 독사 바수키가 갑자기 백 개나 되는 머리에서 맹독 할라할라(Halahala)를 뿜어내어 그것이 세상의 모든 것을 멸망시키게 되었으나 어느 신도 감당하려 하지 않았다.

비쉬누 신은 시바 신에게 인류의 구원을 간청하였다. 시바 신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독을 마셔 없애버리는 희생적 조치를 취하였다. 독은 최고의 신 시바에게 해를 입히지 못하였으나 그의 목구멍에 푸른색을 남겼는데, 그것은 그 후에도 사라지지 않은 채 여전히 남아 있게 되었다 한다.

[https://youtu.be/uBKbOWv1LtY?si=HQaQOIykN2Q0LSu-](보명의 염불독경 통도사 대중스님의 천수경 합송)

불기 2570년 4월 26일 팔공산 감고사지기 보명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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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7일
사찰 벽화이야기 - 극락으로 가는 배편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극락으로 가는 배편

중생들이 뱃놀이라도 하는 것일까요? 벽화에는 보살이 몰고 있는 용선에 여러 중생들이 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br> 배의 이름은 반야용선般若龍船입니다. 배에는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하신다는 인로왕보살께서 뱃머리에 서 계십니다. ​ 극락은 어디에 있을까요. 극락이 있다면 어떻게 찾아 갈 수 있을까요. 경전에서 부처님은 극락의 존재를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 "여기서 서쪽으로 십만 억 부처님의 세계를 지나서 한 세계가 있으니 이름을 극락이라 한다. 그 나라에 아미타부처님이 계시니 지금도 법을 설하고 계신다. 사리불아, 저 세계는 왜 극락세계라 하는가. 그 나라 중생은 어떤 괴로움도 없고 모든 즐거움만 느끼기 때문에 극락이라고 한다." ☞ 『아미타경 阿彌陀經』 ​ 십만 억 불국토를 지나야 한다니, 가히 중생들이 생각만으로 당도할 수 없을 정도로 먼 거리입니다. 결국 확실한 것은 중생의 방법으로는 도저히 갈 수가 없습니다. 불보살이 인도해 주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 그래서 극락으로 가는 방법은 오직 인로왕보살이 운전하는 반야용선에 올라타야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누구나 반야용선을 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든 승차권이 있어야 되는 것처럼, 반야용선이라는 배편을 타기 위해서도 표가 필요합니다.

<br> <br> 반야용선을 놓친 사람들 (단양 구인사) (좌) / 반야용선 (우) ​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는 세 가지 조건이 나옵니다.<br> 첫째는, 부모님을 지성으로 봉양하며 효도하고, 스승과 어른을 공경하면서 늘 자비스러운 마음으로 십선을 힘써 닦아야 합니다. <br>둘째로, 부처님과 가르침, 그 가르침으로 행하는 수행자 즉 불법승 삼보를 공경하고 그 분들께 귀의하는 계율을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br>셋째로, 스스로 깨닫고자 발심을 하여, 먼저 인과의 법칙을 철저히 믿으며 부지런히 경전을 독송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불법을 알려 수행으로 인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br> 이것이 반야용선을 타기 위한 조건입니다. 이런 실천이 따라야 반야용선에 올라 극락으로 인도됩니다.<br> ​ 어렵게 배 앞까지 도착하더라도 몸을 싣지 못하는 중생들도 많습니다.<br> 땅을 치는 후회 속에 눈물을 흘려도 그때는 이미 소용이 없습니다.<br> 무임승차란 절대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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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신묘장구대다라니 기도. 업장소멸·소원성취 기도법
문화

불교문화 - 신묘장구대다라니 기도. 업장소멸·소원성취 기도법

1. 신묘장구대다라니란 무엇인가?

신묘장구대다라니(神妙章句大陀羅尼)《천수경》에 수록된 관세음보살의 핵심 진언으로, 불교에서 모든 기도의 뿌리라 불릴 만큼 중요한 다라니입니다.

신(神) : 신비롭고 오묘한 힘 묘(妙) :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진리 장구(章句) : 깨달음의 문장 대다라니(大陀羅尼) : 모든 공덕을 담는 큰 진언.

뜻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소리 자체가 업장을 녹이고 마음을 정화하는 수행의 언어로 전해집니다.

그래서 신묘장구대다라니는 의미를 몰라도 이해가 완벽하지 않아도 독송 그 자체만으로 수행이 되는 기도입니다.

2. 왜 “모든 기도의 기본”이라 불릴까요?

신묘장구대다라니는 단순한 소원 기도가 아닙니다.

  1. 업장 소멸. 2) 마음 안정.
  2. 지혜 증장. 4) 재난·액난 소멸
  3. 소원 성취의 바탕 마련.

즉 소원을 이루기 전에, 그릇을 먼저 닦는 기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불교에서는 업이 정화되지 않으면 복도 머물 곳을 찾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어떤 기도를 하더라도 먼저 신묘장구대다라니부터 독송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3. 신묘장구대다라니 기도의 공덕과 효능.

① 업장소멸. 과거생·현생의 막힌 기운 정화 반복되는 문제, 이유 없는 답답함 완화.

② 소원성취의 기반. 돈·건강·인연·시험·사업운→ 막힘을 걷어내는 기도.

③ 마음 안정 & 불안 해소. 잡념이 줄고 잠이 깊어지고 감정 기복이 완화됨.

④ 보호 기도. 관세음보살의 자비력으로 액운·재난·나쁜 인연에서 보호.

4. 신묘장구대다라니 기도하면 좋은 시간대는?
  1. 가장 좋은 시간: 새벽 3~5시 (인시) 하루 중 기운이 가장 맑음. 집중력, 영적 감응이 높음.

  2. 잠들기 전: 하루 업장을 씻어내는 시간 불면, 걱정 많은 분께 추천.

  3. 마음이 불안할 때: 정해진 시간보다 마음 상태가 더 중요.

  4. 중요한 건: 매일 같은 시간에 하는 꾸준함 입니다.

5. 신묘장구대다라니의 올바른 기도 방법.
  1. 기본 준비. 조용한 공간 가능하면 합장 향이나 초는 선택 (없어도 OK) 단 보명에게 주문하시면 일주일에 1만원의 7일초를 켜드립니다. 우리가 3주간 21일간을 기도 드리니 3만원을 주시면 3주간 밀랍대형초를 켜드립니다.

  2. 기도 순서 (초보자용). 1️⃣ 삼귀의 2️⃣ 반야심경 또는 발원문 (선택) 3️⃣ 신묘장구대다라니 독송(3,7,21,108 독) 4️⃣ 발원 (소원은 짧고 분명하게) 5️⃣ 회향 숫자보다 중요한 건 또박또박, 마음을 담아 읽을 것.

6. 소원성취를 위한 기도법 (핵심)

“이것 해주세요, 저것 해주세요”는 하지마세요. “이 기도를 통해 제 업장이 소멸되고 이 소원이 이루어질 인연과 지혜가 갖추어지길 발원합니다.” 이렇게 발원 하십시요.

집착을 내려놓을수록 기도는 더 빨리 작용합니다.

7. 이번 신묘장구대다라니 기도는 이런 분께 특히 추천합니다.
  1. 기도를 수십년 해도 변화가 없다고 느끼는 분.
  2. 이유 없이 삶이 막힌 느낌이 드는 분.
  3. 불안, 걱정, 우울이 잦은 분.
  4. 불교 기도를 처음 시작하는 분.
  5. 어떤 기도를 해야 할지 모르는 분.
8. 보명의 마무리 한마디.

신묘장구대다라니는 부처님께 무엇을 요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내 마음을 부처의 자리로 되돌리는 수행입니다.

조용히, 꾸준히, 욕심 없이. 그렇게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삶이 조금씩 부드러워져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몰록 물미가 터지듯 세상이 밝아보이고 사람이 정겹고 천지만물들의 환희로움을 느껴지실겁니다. 그렇게 한소식을 깨닫는 깨달음을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제 2장의 발원문의 작성.

1. 신묘장구대다라니 기도를 드리고 발원문이 중요한 이유.

신묘장구대다라니는 의미를 이해하지 않아도 공덕이 되는 다라니이지만, 독송 전·후에 올리는 발원문은 기도의 방향을 바르게 잡아줍니다.

발원문이란 “이 기도를 어떤 마음으로 올리는지 밝히는 서원”입니다. 그래서 이번 기도는 본인이 직접 발원문을 간단하게라도 지어보십시요.

특히 초보자일수록

  1. 욕심 많은 기도
  2. 막연한 소원으로 흐르기 쉬운데, 발원문은 기도를 수행으로 바꿔주는 역할을 합니다.
2. 신묘장구대다라니 기본 발원문 (가장 많이 쓰는 정석)
  1. 기본 발원문. 이 기도를 올리는 공덕으로 저의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업장이 소멸되게 하시고 몸과 마음이 항상 평안하며 지혜와 자비가 날로 증장되게 하소서!. 또한 이 기도가 인연 되어 저와 인연 있는 모든 중생이 괴로움에서 벗어나 각자의 삶에서 밝은 길을 찾게 하소서!

  2. 특징. 가장 무난하고 매일 반복하기 좋음으로 특정 소원이 없어도 가능합니다.

3. 소원성취를 위한 신묘장구대다라니 발원문.

제가 이 신묘장구대다라니 독송 공덕으로 제 업장이 먼저 소멸되고 이 소원이 이루어질 바른 인연과 지혜가 갖추어지게 하소서! 이 소원이 저만을 위한 욕심이 아니라 주변에도 이로움이 되는 방향으로 원만히 성취되기를 발원합니다.

기본적인 소원은 발원문 뒤에 한 문장으로 조용히 마음속으로 (예: “직장 문제”, "사업 성취" “건강 회복”, “시험 합격” 등)

4.업장소멸·마음안정을 위한 발원문 (힘들 때 추천)
  1. 마음이 괴로울 때 발원문. 이 기도를 통해 알게 모르게 지은 모든 업장이 소멸되고 제 마음의 번뇌와 두려움이 가라앉게 하소서! 지금의 이 괴로움이 지혜로 바뀌는 인연이 되게 하시고 오늘 하루를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갈 힘을 주소서!

  2. 불안, 우울, 답답함이 심할 때 특히 좋음.

**5. 초보자용 독송 가이드 **

문장 (매우 중요합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는 빠르게 읽는 기도가 아닙니다. 소리나게 독송의 기본 원칙.

  1. 또박또박
  2. 숨이 차면 멈추기
  3. 틀려도 멈추지 말고 계속

초보자님들은 “지금 이 순간,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관세음보살님의 자비에 의지하여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독송하겠습니다.”

이 문장을 독송 전 한 번 소리 내어 읽어주세요. 마음이 훨씬 안정 될것입니다.

특히 독송 중 마음이 흐트러질 때 “알아차립니다. 다시 이 소리로 돌아옵니다.”잡념을 밀어내지 말고, 돌아오기.

6. 독송 후 회향 문장 (꼭 추천)

회향문. 오늘 올린 이 기도의 공덕을 저와 인연 있는 모든 이에게 회향합니다. 이 공덕으로 괴로움은 줄고 지혜와 평안은 늘어나기를 발원합니다. 회향은 기도의 에너지를 맑게 마무리하는 단계입니다.

7. 초보자를 위한 하루 기도 흐름의 정리.****
  1. 합장 하시고 음성독송 가이드 문장
  2. 신묘장구대다라니 3·7·21번
  3. 발원문
  4. 회향 총 5~10분이면 충분.

제 3장의 신묘장구대다라니 기도 루틴.

초보자도 따라 하는 업장소멸·마음정화 수행.

시작하기 전 (입재시 미리 준비해두세요)

  1. 조용한 공간
  2. 합장 또는 편안한 자세
  3. 하루 같은 시간에 하는 것이 가장 좋음
  4. 총 소요 시간 : 하루 5~10분 시작 음독 문장 (매일 공통)

지금 이 순간,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관세음보살님의 자비에 의지하여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독송하겠습니다.

첫째날은 기도와 친해지는 날 둘째날은 기도로 마음 안정의 날 셋째날은 기도로 업장소멸의 날 넷째날의 기도는 감사의 날 다섯째날 기도는 소원 발원의 날 여섯째날 기도는 회향과 나눔의 날 일곱째날 기도는 마무리와 또 다음의 한주기도 다짐의 날

이 7일 기도를 인연 삼아 앞으로도 꾸준히 수행하며 지혜와 평안을 키워가겠습니다. 내가 잘했는지 평가하지 마시고 “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렇게 첫 7일의 기도 후에는 이렇게 하세요. 다시 첫째날부터 반복하여 하루 1번 → 2번으로 늘려도 좋고요. 가능하면 새벽 또는 잠들기 전 고정 추천 보명의 기도는 ‘완성’이 아니라 ‘동행’입니다.

**8. 마무리 글. **

신묘장구대다라니는 무언가를 더 얻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이미 지쳐 있는 마음을 본래 자리로 돌려놓는 수행입니다.

오늘 하루, 단 한 번의 독송이라도 괜찮습니다. 그 한 번이 쌓여 삶의 결을 조금씩 바꿔줄 것입니다.

그렇게 보명법사와 함께하는 신묘장구대다라니 기도방에서 또 한번의 발심을 다짐해보시지요. 이제껏 수도없이 천수경과 대비주를 독송하였겠지요? 그러나 체계적인 공부라는게 갈차주는 선생이 부처님의 심부름으로 가르침을 드리는 법사가되여 길을 닦아드리겠습니다.

그길을 따라 불자님들의 행복의 샘물을 마시는것은 결국은 불자님 스스로의 몫이 되는것입니다.

또 다른 희유한 공부길에서 밝음을 찾아 길위에서 길을 찾아 발심을 적극 권청드립니다.

**불기 2570년 4월 7일

팔공산 감고사지기 보명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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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조가스님 (鳥家)-착하게 살아라.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조가스님 (鳥家)-착하게 살아라.

사찰벽화이야기 33- 조가스님 (鳥家) --- 착하게 살아라.

<금산사- 전북 김제>

어느 날 당나라 백낙천이 지역의 관리로 부임해 오면서 나무위에 기거 하고 있는 스님에게 위험하다며 당장 나무 아래로 내려오라고 소리치는데...

▮ 흔들리는 나무 꼭대기 보다 그대가 서 있는 땅위가 더 위험하다.

당시 지역 사람들은 스님이 나무꼭대기에 새집처럼 자리 잡고 머문다 해서 조가(鳥家)스님이라 불렀다.

그 모습을 본 백낙천은 스님에게 왜 그렇게 위험한 곳에 머무는지 물었다,

이 말에 조가스님은 지금껏 백낙천을 기다려온 듯 그를 반기면서 답하기를

‘자네가 서 있는 땅위가 더 위험하네.

‘그곳 땅위에는 하찮은 지식으로 상대보다 높은 목소리로 제 잘났네. 교만부리며, 다 가지려는 탐욕의 마음이 난무한 세상이 아닌 가,

나를 해치고 너를 해칠 교만과 탐욕의 마음이 사나운 불길처럼 일고 있어 하루하루가 생사를 넘나드는 곳이 그 세상인데.... 내가 왜 내려가겠는가?"

백낙천은 조가스님의 말에.

대단해 보이는 지금 자신의 성공도 자만에 빠져 안주 한다면

언젠가 더 큰 기세로 다가오는 사나운 불길에 재로 사그라지듯, 영원할 것 같은 이 자리도 언젠가 물러나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백낙천이 조가스님 말에 감동하여 평생 좌우명으로 삼을 법담(法談)을 구하자 답하기를

  • ‘착하게 살아라.

▮ 착하게 살아라.

법담 “제악막작 중선봉행(諸惡莫作衆善奉行)”-------------- 착하게 살아라.

하지만, 대단한 가르침을 기대했던 백낙천은 이 대답을 듣고 크게 실망 하며.

"그런 말씀은 어린애도 다 아는 사실 아닙니까?“ 라며 짜증내자

스님 말하기를

그렇다 "두 살 먹은 어린애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팔십 노인도 실천하기는 어려운 일이지“

예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가 ‘머리에서 손까지'라고 했다

다들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행동으로 옮겨 놓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백낙천의 일화가 지금껏 생명력을 갖고 회자(膾炙)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 회향.

조가스님이야기에서 받을 수 있는 화두는 ‘착하게 살아라’. 로 보인다.

요즘도

선거 철만 되면, 표를 얻고자 귀가 따갑도록 유권자에게 충성맹새가 난무하더니, 선거가 끝이 나면 기가 막힐 정도로 교만으로 군림해진 정치꾼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조가스님’은 그런 교만심이 자신을 얼마나 위험에 빠트리는 지를 느끼게 하는 그림이다.

나쁨은 생각만 해도 죄를 짓는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모든 행위는 생각에서부터 시작된다.

마음속에는 온갖 나쁜 생각이 가득하면서 겉으로 착한 척하는 것을 곧 속과 겉이 다르게 행동하는 이중이격자라고 손가락 질 받게 되듯.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한, 남들이 나를 얼마나 나쁘게 보는지를 제대로 알아차릴 수가 있을까요 ?

나 밖에서 나를 관찰 하려는 노력을 불교에서는 ‘수행’이라 한다.

항상 자신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생각을 살피는 것, 그것이 수행이다.

이천 영원사에 남겨진 조가스님의 법문- 제악막작 중선봉행-------- 모든 악함을 짓지 말고 여러 선함을 행하라.

▮ 모아보는 조가스님

:: 관룡사- 경남 창녕

:: 대관음사- 대구 남구

:: 안국사- 전북 무주

:: 은적사- 대구 남구

:: 해인사- 경남 합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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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미술여행 - 버들가지를 든 관음보살, 양류관음
문화

사찰미술여행 - 버들가지를 든 관음보살, 양류관음

나쁜 기운 물리쳐달라는 기도에 적극 응답 ▲ 양류관음도, 106.8×58.9㎝, 견본채색, 북송(968년),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흔히들 양류관음이니 수월관음이니 하는 그림의 명칭들은 잘 알고 있으면서 왜 관음보살이라는 이름 앞에 양류, 수월, 백의 등의 수식단어가 붙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글을 쓰고 있는 필자 역시 불교미술이라는 학문을 공부하기 이전에는 독자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자비의 화신인 관음보살은 중생의 고통에 따라 33가지의 몸으로 변화하여 구재하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응신하신 모습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불교미술에 표현되는데 대부분 모습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지물이 버들가지와 정병이다. 버들가지를 가진 관음보살을 우리들은 양류관음이라고 부른다. 간혹 험준한 바위 위에 버들가지를 꽂은 정병이 놓여 있고 그 옆에 관음보살이 지긋한 눈길로 아래를 내려 보고 앉아 계신 모습도 양류관음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이 모습은 물 위에 비친 달을 바라본다는 뜻의 수월관음이라는 표현도 함께 사용되고 있다.

질병에 고통받던 바이샬라국 백성들, 관세음보살 이름 부르며 버들가지·청수 바쳐 역병 끝나

인도나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버들가지를 들고 있는 관음보살의 모습은 드물기 때문에 아마도 이런 자세를 취하고 있는 관음은 중국에서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양류관음의 형상과 같이 불교미술의 여러 모티프 가운데는 신앙이 전래되어 자리를 잡으면서 지역적인 특색을 반영하며 변용되어진 예가 드물지 않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는 북송(968년) 때 그린 수월관음도가 있다. 화면을 상하로 나누어 위에는 둥글게 표현된 몸에서 뻗어 나온 신광을 배경으로 오른손에 버들가지를 왼손에 정병을 쥐고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는 보살의 모습이 있고 그 아래는 공양보살과 공양자들이 그려져 있다. 보살의 우측 방기에 쓰인 그림의 제목은 ‘나무대비구고수월관음보살(南無大悲救苦水月觀音菩薩)’이다. 버들가지와 정병을 쥐고 있는 관음에 수월관음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을 보면 아마도 양류관음의 도상은 수월관음과 관련이 있음이 분명한가 보다.

그렇다면 혹시 물가에 앉아 버들가지가 꽂힌 정병을 곁에 두고 물에 비친 달을 보는 수월관음은 진리를 찾는 구도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관음의 모습이고, 정병에 꽂힌 버들가지를 뽑아 손에 들고 서 있는 관음은 적극적으로 대중의 고통을 구제하기 위해 말보다 행동을 몸소 보이는 형상이기에 고통에서 구제한다는 이름이 덧붙은 것일까?

▲ 양류관음도, 144×62.6㎝, 1300년대 전후, 비단채색, 일본 도쿄 센소지(淺草寺).

양류관음도 가운데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물방울과 같은 큰 타원형의 틀 속에 관음보살이 그려진 고려불화 한 점이다. 흐릿한 도판과 함께 말로만 전해지던 이 그림은 일본 학자들도 보기 어려울 만큼 일반인에게 공개가 되지 않았던 작품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박물관 관계자 분들이 작품의 존재 확인만을 조건으로 겨우겨우 허락을 얻어 일본의 센소지를 방문했을 때 그분들이 관음도를 향해 정성 가득한 삼배를 올리는 모습이 센소지 주지스님의 마음을 움직여 불화를 대여받아서 전시를 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불화를 대할 때 심미적인 감흥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종교적인 의미를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남기고 있다. 감사하게도 그분들 덕에 이 작품은 2010년 국립 중앙박물관의 ‘고려불화대전’ 전시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어 필자도 감상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고려시대 혜허 스님이 그리신 이 작품에는 세로로 긴 화면 가득히 떨어지는 물방울 모양의 타원형 광배를 중심에 두고 그 속에 관음보살이 서 있다. 일반적으로 고려 관음보살도라면 보타락가산 물가 바위에 앉아 있는 수월관음보살을 떠올리지만 이 그림에서는 공간적인 배경을 설명할 수 있는 도상의 구성은 과감히 모두 생략하고 그 부분을 크고 기다란 타원으로 메우고 있다. 커다란 물방울 모습과 같은 광배는 관음이 중생을 위해 사용하는 정병 속의 정화수를 나타낸 것 같기도 하고 혹은 손에 들고 있는 버들가지의 잎처럼 보이기도 한다.

간략한 선 하나로만 그려진 하나의 원은 자세한 배경이 친절히 그려진 작품보다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림에서 작가의 탁월한 미의식을 볼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크지 않은 화면공간에 주제를 배치하면서 작가는 과감히 광배의 형상으로 화면을 나누고 서로 다른 공간 속에 관음보살과 선재동자를 그려 넣었다. 그 결과 타원형의 원 내부에 관음보살이 서 있는 공간은 불보살이 계시는 불국토가 되고 선재동자가 서 있는 외부의 공간은 인간들이 사는 사바세계로 구분되었다. 선재를 바라보는 관음의 눈빛은 고요하다 못해 성스럽기까지 하여 정적인 분위기가 화면에 감돈다. 하지만 버들가지를 들고 감로수를 뿌리며 서 있는 관음의 모습은 마치 선지식을 찾아 천하를 떠도는 선재의 애절한 기도에 응답하여 나서는 형상처럼 보여 활력과 운동감을 느낄 수 있다.

▲ 버들가지와 정병, 혜허의 양류관음도 세부.

사바세계에서 고통받는 대중들을 구원하기 위해 모습을 나투신 관음보살의 손에는 방편으로 사용하실 무엇인가가 들려 있는데 자세히 보면 오른손은 버들가지요 왼손은 정병이다. ‘청관음보살소복독해다라니주경(請觀世音菩薩消伏毒害陀羅尼呪經)’에 의하면 바이샬라국에 역병이 돌아 백성들이 질병의 고통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을 때 관음보살에게 ‘버들가지와 깨끗한 물(楊枝淨水)’을 바치고 관음보살의 이름을 불러 역병을 물리쳤다고 한다. 이때 의식에 모셔지는 관음은 버들가지와 병을 가진 형상으로 관음이 버들가지를 떨쳐 흔들어 병자에게 병에 든 물을 뿌리면 아픈 이들이 모두 휴식을 얻고 몸이 청량해져 모든 병이 다 낫는다는 의미를 가진다.

버들가지를 들고 있는 관음이 병을 낫게 해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까닭은 아마도 봄을 알리는 정령이면서 물을 좋아하는 버드나무가 가진 습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둡고 추운 겨울이 지나 따뜻한 봄이 오면 만물이 소생하니 병고에 겨운 육신에 봄의 기운이 가득한 버들가지를 갖다 대면 희망의 기운으로 씻은 듯이 병이 나을 것처럼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맑고 깨끗한 물을 섭취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장수의 비결이다. 실제 버들나무 잎은 고대로부터 사용되어온 의약제로 염증을 가라앉히는 탁월한 소염제인 아스피린의 주원료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버드나무를 진통 소염제로 사용하고 있었고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도 아기를 가진 여인이 통증을 느끼자 버들잎을 씹으라는 처방을 내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청명 한식에 버드나무를 깎아 불을 피워 관청에 나눠주었는데 이는 재생과 벽사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 버드나무로 나쁜 기운을 없애고 새봄을 맞이한다는 뜻이었다.

혜허 스님이 그리신 고려불화에서 정병에 꽂혀 있는 버들가지를 뽑아서 관음보살님이 손에 들고 서 계신 이유는 바로 병을 낫게 해주고 나쁜 기운을 물리쳐 달라는 발원자의 기도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의미를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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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자장율사와 금개구리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자장율사와 금개구리

신라 때 자장율사라는 고승이 있었습니다. 그는 통도사 산내에 있는 자장암이라는 곳에 머물고 있었는데, 어느 날 자장율사는 공양미를 씻으려 암벽 아래 석간수가 흘러나오는 옹달샘으로 갔습니다. 바가지로 샘물을 뜨려다 물속에 있는 개구리를 보고는 손을 멈췄습니다.

"이 놈들 어디 놀 곳이 없어서 하필이면 부처님 계신 절집 샘물을 흐려놓는고?"

그러면서 자장율사는 샘에서 흙탕물을 일으키며 놀고 있는 개구리 한 쌍을 두 손으로 건져 근처 숲 속으로 옮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또 다시 개구리 두 마리가 샘물에서 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 참, 그 녀석들 말을 안 듣는구먼."

자장율사는 이 번에는 개구리들이 다시 오지 못하도록 아주 멀리 갖다 버리고 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다음 날에도 개구리는 또 와서 샘물을 흐려놓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이상하게 여긴 스님은 개구리를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보통의 개구리와는 달리 입과 눈가에는 금줄이 선명했고, 등에는 거북 모양의 무늬가 있는 것입니다. 필시 부처님과 깊은 인연이 있는 개구리라 생각하여 자장율사는 개구리를 그냥 샘에서 살도록 놔 두었습니다.

어느덧 겨울이 되었습니다. 겨울이면 개구리는 땅을 파고 들어가 겨울잠을 잡니다. 그런데 겨울잠을 자러 갈 것으로 생각했던 개구리는 눈 내리고, 얼음이 얼도록 그 샘물 속에서 놀고 있는 것입니다.

"안 되겠구나. 살 곳을 마련해 줄 터이니 얌전히 있거라."

스님은 절 뒤 깍을 듯 세워진 암벽을 손가락으로 푹 찔러 큰 구멍을 뚫고, 그 안에 개구리를 넣어 주었습니다.

"너희들은 영원히 죽지 말고 이 곳에 살면서 이 자장암을 지켜다오."

스님은 개구리에게 금와金蛙라고 이름을 지어주고 신통력으로 죽지 않고 계속 바위 속에 살아가도록 했습니다. 지금도 통도사 자장암 뒤 금와석굴에는 금와보살이라 불리는 개구리 두 마리가 1,400년 동안 살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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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전통사찰의 구조 - 전각(殿閣)
문화

전통사찰의 구조 - 전각(殿閣)

사찰의 건축물은 안에 모셔진 불상에 따라 그 이름이 다르다. 불보살이 모셔진 곳을 전(殿)이라 하며, 그 외에는 각(閣)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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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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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벽화이야기 - 앙굴리말라
불교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앙굴리말라

부처님 당시 사바티(舍衛城)에는 훌륭한 바라문 학자가 500명의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 가운데 아힝사(不害)라고 하는 제자는 체력도 강하고 지혜도 뛰어날 뿐더러

용모도 아주 단정한 젊은이로서 스승의 두터운 신망을 받고 있었다.

어느 날 바라문이 집을 비우고 나간 사이에

바라문의 아내는 젊고 늠름한 아힝사를 자기 방으로 불러들여 유혹하려고 하였으나

아힝사는 침착하게 말하기를

“스승의 아내는 어머니와 같습니다. 그런 일은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하고 거절하였다.

바라문의 아내는 젊은 제자에게 연정을 품었다가 창피를 당한 것이 분해서

자기 손으로 입고 있던 옷을 찢고 머리카락을 어지러이 하여 자리에 누웠다.

남편인 바라문이 돌아와 이상히 여겨 그 까닭을 물으니

“당신께서 가장 신망하는 제자 아힝사가 당신이 나간 사이에

내 방에 들어와 욕을 보이려다가 내가 반항을 하자 이렇게 옷을 찢고……”

하면서 흐느끼는 것이었다.

바라문은 속으로 분노가 치밀어 아힝사를 파멸시켜 버릴 방법을 생각하고는

자기 방으로 아힝사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너의 학문은 이제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일만 마치면 비법(秘法)을 전해주겠다”

영문을 모르는 아힝사가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스승님께서 시키시는 일은 무슨 일이라도 하겠습니다” 하고 다짐을 하니

바라문은 벽장에서 한자루의 칼을 내어주면서

“지금 당장 거리에 나가서 백명의 사람을 죽이고

한 사람 한테서 손가락 한개씩을 잘라내어 목걸이를 만들어 돌아오너라.

그것으로써 너의 학문은 완성되는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힝사는 칼을 받아 들고 몹시 고뇌했으나 스승의 명령을 절대적인 것으로 믿었던 그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거리로 뛰쳐 나갔다.

그러고 상대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여 손가락을 잘라 모았다.

손가락을 잘라내어 목걸이를 만든다는 뜻에서 사람들은 그 살인마를

“앙굴리말라”라고 불렀다. 앙굴리(Angulli)는 손가락, 말라(Mala)는 목걸이라는 뜻이다

거리에 탁발을 나갔던 비구들이 기원정사로 돌아와 부처님께 그 일을 알렸다.

부처님은 곧 탁발할 준비를 갖추고 거리로 나가셨다.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 그 길로 가시면 안됩니다. 그 길에는 앙굴리말라 라는 무서운 살인마가 있어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입니다”하고 만류하였으나

부처님은

“내게는 두려움이라는 것이 없소”라고 말씀하시면서 살인마가 날뛰는 거리로 나아가셨다.

살인마 앙굴리말라는 드디어 아흔 아홉 사람을 죽이고

한 사람만 더 죽여 목걸이를 완성하기 위해 사람을 찾아 다녔다.

그때 그의 어머니가 소문을 듣고 자기 자식을 찾아왔다.

살인마는 눈이 뒤집힌 나머지 자기 어머니마져 죽이려 달려가는데

저 편에 부처님의 모습이 보였다.

살인마는 어머니를 젖혀두고 부처님을 쫓아가며 부르짖었다.

“꼼짝 말고 거기 섰거라 정반왕의 태자야!

내가 바로 앙굴리말라이니 손가락을 내게 바쳐라”

부처님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앙굴리말라를 바라보셨다.

그는 부처님의 자비스럽고 위엄있는 모습에 조금전까지의 살기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이때 부처님은 조용히 말씀하셨다.

“앙굴리말라 나는 지금 이렇게 서있다.

너는 어리석어 무수한 인간의 생명을 해쳐왔고 나를 해치려 하지만

나는 여기 이렇게 있어도 마음이 평온하다.

너를 가엾이 여겨 여기에 왔다. 내가 이제 너에게 지혜의 칼을 다시 주리라”

이 말을 듣자 앙굴리말라는 문득 악몽에서 깨어나 제 정신으로 돌아왔다.

마치 시원한 물줄기가 치솟아 오르는 불길을 꺼 버리듯이 그는 피묻은 칼을 내던지고

부처님 앞에 꿇어 엎드려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부처님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저를 제자로 받아 주십시오”

그 뒤 그는 부처님을 따라 기원정사에 가서 설법을 듣고 지혜의 눈을 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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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무착스님과 문수보살  - 관습에 대한 집착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무착스님과 문수보살 - 관습에 대한 집착

<해인사- 경남 합천>

공양간에서 한 스님이 솥 위에 있는 문수보살을 요절을 낼 듯이 밥주걱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충격적인 그림이 있다.

▮ 전삼삼 후삼삼

이야기는 과거로 돌아간다.

무착스님은 누구나 자신처럼 정확하고 완전한 수행을 하여야 문수보살을 만날 수 있노라 자랑하고 다니던 스님이 엇다.

이를 증명하려는 듯 때를 잡고 늘 해 왔던 수행방법으로 하루도 거스르지 않는 삼보일배의 오체투지의 원칙을 완전하게 지켜가며 문수보살이 있다는 험난한 오대산에 고생고생 하며 올라 결국 반야사에 다다랐으나

과욕한 집착 때문인지 정녕 문수보살을 만났지만 알아보지 못한 채 자신의 절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고집스럽도록 정확함을 지켜가며 오대산으로 가는 길에서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누었던 그토록 평범하게 보였던 그 노인이 바로

그렇게도 간절히 만나고 싶었던 문수보살임을 뒤늦게 알아차렸지만 이미 때늦은 후회였다.

그때 고집스런 원칙에 매달려있는 자신을 측은지심으로 바라보던 그 노인의 모습을 한 문수보살이 자신에게 던진 화두는 ‘전 삼삼 후 삼삼’ 前三三 後三三 이였다.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이만큼이 옳고 그만큼은 부족하다고 내가 정한 답이 옳다는 논리로,

대립적인 편 가름으로 답을 정하려 했으며 상대에게도 내가 정해놓은 답을 선택 하도록 종용 하고 있었다.

이처럼

모든 것을 많다 작다는 수(數)에 대해서 비교하며 집착 하려 하는데.

문수보살의 화 두 ‘전 삼삼 후 삼삼’이란 ‘앞에도 서너 개 뒤에도 서너 개’란 말로 수에 대한 기준을 완전하게 흩트려 버리고 있다.

▮ 문수보살의 뺨을 때린 무착스님

오대산에서 집착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무착스님이 절로 돌아와 공양간 일을 맡고 있을 때였다.

하루는 죽을 끓이는데 김이 무럭무럭 나는 솥 위로 문수보살의 모습이 함께 피어오르는 게 아닌가.

이 모습을 본 절집의 대중들은 놀라 범종을 치고 향을 피우고 무릎이 닳도록 절을 하느라 난리가 났다.

분주한 모습을 본 무착스님이 그곳으로 달려와.

공양간에 있던 밥주걱으로 문수보살 환영을 후리치며

‘문수는 무슨 문수인가, 석가나 미륵이 나타나도 그들에게 내 밥주걱 맛을 보여주리라’ 라며 호통을 치며 살불살조(殺佛殺祖)의 기상을 보인 것이다,

이 모습으로 집착을 벗어나 진리를 채득한 선사의 안목을 알리고 있다.

‘무착스님과 문수보살’은 숫자에 집착하며 비교하고 분별할수록 그 만큼 문수보살의 마음과도 멀어지게 된다는 뜻을 느끼게 하는 그림이다.

▮ 무착스님의 살불살조(殺佛殺祖)

무착스님이 솥 위에 있는 문수보살을 요절을 낼 듯이 밥주걱을 휘두르며 달려드는 의미는 무엇인가.

현실과 접목되지 못한 불교는 허상만 쫓을 뿐이라며,

내가 붙들고 있는 관습 깨뜨리고 변화해야하기에 지금까지 내가 믿고 있는 모두 죽여 버려라. 는 의미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 며 ‘살불살조(殺佛殺祖)’라는 임제의현 선사가 던진 화두다.

이 화두에서의 살불살조(殺佛殺祖)는 육체적·생명을 죽이는 살인은 물론 아니다.

‘우상’으로 떠받드는 부처와 조사, 라는 정신적·인격적 죽임으로 한. 한마디로 ‘우상 타파’다.

즉 기 존의 관습적 전통에 갇혀 있는 체 지금껏 쫓고 있는 우상들을 과감히 타파하는 노력을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우상’이란 우리가 사실로 믿고 싶은 이미지일 뿐으로 , 실제(實際)를 왜곡시킨다는 것이다.

역대 선사들은 인간의 욕망이 세상을 혼란시키는데, 언어가 그 첨병 역할을 한다고 역설한다.

이들이 사악한 뱀처럼 똬리를 틀고 앉아있으면 깨달음의 실제와 만나기도 어렵고 고요와 평안에도 끝내 도달하지 못하기에 언어의 이 같은 모순적 측면들을 모두 부셔버리라고 외친다.

깨달음이란 자신을 붙들고 있는 우상이라는 껍데기를 부수고 나오는 ‘존재의 변화’다.

현실적인 삶과 구체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불교는 이름일 뿐이고 허상일 뿐이라고.

깨달음을 얻겠다며 형식적으로만 선을 붙들고 앉아있으려는 자세를 떨어내야한다며.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는 선사들의 간곡한 가르침으로 무착스님과 문수보살의 벽화에서 느껴 본다.

▮ 모아보는 무착스님과 문수보살

:: 영화사- 서울 광진

:: 용연사- 대구 달성

:: 은해사- 경북 영천

:: 태고사- 충남 금산

:: 화장사- 대구달성

▮ 동화사 대불 33m의 비밀

대불의 높이는 33m라고 하며 33이란 불교의 우주관으로 보는 도리천(忉利天) 33천을 의미합니다.

불교의 우주관에서는 세계의 중심에는 하늘로 통하는 수미산(須彌山)이 있으며,

그 꼭대기에는 33의 신들이 살고 있는 도리천이 있다고 하여.

결국 육신의 몸으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높이가 도리천이고, 그 이상의 세계는

육신을 떠난 정신의세계로 오를 수 있는 세계라 하여 이곳이 바로 집착의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는 육신을 떠나 대 자유를 찾는 세계라고 합니다.

그렇게 동화사의 대불은 질병으로부터 떠난 대자유(大自由)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오늘 동화사 33m 대불을 만나며 너무도 소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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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아버지가 주신 약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아버지가 주신 약

옛날에 어떤 명의가 있었는데,

집안에는 여러 가지 약초들과 진귀한 명약들이 즐비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많은 자식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집을 비운 사이,

집에 있던 자식들이 약을 잘못 먹고 그만 중독되고 말았습니다.

외출을 다녀 온 아버지가 집안을 보니

아이들이 심하게 앓으며 바닥에 뒹굴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급히 해독약을 지어서 먹이려 하였지만,

이미 약을 먹고 중독이 된 아이들은 마음속에 약에 대한 두려움이 생겨

선뜻 아버지가 지어준 해독약조차도 먹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대로 아이들을 내버려 둘 수 없었던 아버지에게 묘수가 떠 올랐습니다.

일단 약을 병에 잘 담아둔 다음, '해독제'라고 크게 적고

'몸에 좋으니, 안심하고 먹어도 됨'이라고 유의사항까지 자세히 적어 두었습니다.

그렇게 눈에 잘 띄는곳에 놓아두고는 집을 나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보내어 아이들에게 이렇게 전해달라고 합니다.

"아이고, 너희 아버지가 집을 나왔다가 그만 변고를 당했구나. 이를 어쩌면 좋으냐 ..."

이렇게 자식들에게 자신이 죽었다고 거짓으로 소식을 전하게 한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은 그제야 비로소 정신이 차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병은 누가 고쳐줄지 걱정이 다가왔습니다.

그 순간 일전에 아버지가 지어놓은 명약이 떠 올랐습니다.

형제들은 이제 앞 다퉈 그 약을 먹게 되었고,

병은 말끔히 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멀리서 자식들의 병이 나았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의사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것을 방편方便이라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법화경』에 나오는 의사의 비유라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부처님이 항상 머물러 있어 멸하지 않는다면,

중생들은 교만한 생각을 일으키게 된다.

싫증내고 게으른 마음을 품어, 부처님을 만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지않고,

부처님을 공경하는 마음을 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방편으로 열반에 든다."

☞ <여래수량품>

사람들은 흔하면 소중하다는 생각을 미처 안 하게 됩니다.

아쉬운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열반에 드신 것은,

결국 우리 중생들이 정신차려 수행하도록 방편을 쓰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생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익히고 실천한다면,

마치 약을 먹고 병이 낫게 되면 죽은 줄만 알았던

아버지를 다시 만나는 것처럼, 결국 부처님께서도 우리를 찾아오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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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일지두선 (一指頭禪) - 손가락법문
불교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일지두선 (一指頭禪) - 손가락법문

<금산사- 전북 김제>

노스님이 제자의 손가락을 단칼에 잘라버리는 다소 충격적인 그림이다. 그들 사이에는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들여다본다.

▮ 스님에게는 자신의 깨우침은 없습니까.

당나라 에서는 나 따라 올 스님은 없다 라며, 불교 경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하던 구지스님은 어느 날,

대중들에 법문 후, 실제(實際)라고 하는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비구니스님이 찾아와 부처님의 말씀보다 스님의 깨우침을 묻는 질문에

한 마디도 못하는 수모를 당한 후 지금껏 자기의 법은 하나도 없이 앵무새처럼 경전만 달달 외워 떠들어 왔던 자신을 알아차리게 된다,

하지만, 구지스님은 역시도 당대 최고의 스님이었다.

그는 부족한 자신을 알아차리고 자신을 재정비하듯 수행 정진에 몰두하여, 결국 참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 뒤, 스님은 법문을 들으려는 이들 앞에 조용히 손가락 하나만 세울 뿐, 전처럼 어떤 화려한 말은 없었다.

손가락 하나의 무언의 의미는 이러했다..

‘티끌이 하나 일어나니 모든 대지를 거두어들이고, 꽃 한 송이가 피니 온 세계가 열리는 구나’.

어느 날, 멀리서 사람들이 구지스님에게 법문을 들으려 찾아 왔으나,

마침 스님이 계시지 않아 안타까워하는데, 이 모습에 시중드는 동자가 스승의 법문 모습을 멀리서 보아온 터라 사람들 앞으로 나아가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였다.

...

뒤 늦게 도착해 이 광경을 본 구지스님은 손가락을 처 들고 있는 동자승에 다가가 단칼에 그 손가락을 잘라 버린다.

결국 동자승은 손가락 하나를 잃고 나서야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교훈이다.

축구연습생이 공차기 연습보다 세레머니 연습을 더 하고 있는 꼴처럼 동자승 역시 법의 참뜻을 찾기보다 스승의 흉내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 불교는 깨우침의 종교다...

경전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고, 강을 건너는 뗏목과 같아서

달을 찾았으면 더 이상 손가락을 볼 일 없고, 강을 건넜다면 뗏목에서는 내려야 하듯,

경전을 아무리 많이 알고 있다고 남들 향해 떠들고 다녀 보아도

깨우치지 못해 자기소리 하나 없는 그런 법문은 아직도 뗏목에 벗어나지 못한 채 농익은 술 찌꺼기 냄새 나 묻어 나오는 악취풍기는 소음에 불과하다.

‘일지두선’에서는 없어진 손가락 하나를 통해

진리는 글로 말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수행을 통해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나오게 하는 깨우침의 소리라는 걸 느끼게 하는 그림이다.

▮ 모아보는 일지두선

:: 관룡사- 경남 창녕

:: 법주사- 충북 보은

:: 선암사- 부산 진구

:: 영화사- 서울 광진

:: 은적사- 대구 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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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전통사찰의 구조 - 대웅전(大雄殿)
문화

전통사찰의 구조 - 대웅전(大雄殿)

대웅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모신 법당이다. 대웅전은 절의 중심이 되는 전각으로, ‘법력(法力)으로 세상을 밝히는 영웅을 모신 전각’ 이라는 뜻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세상을 법으로 정복한 위대한 영웅인 대웅(大雄)이라 한 데서 유래한다.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의 좌우에 협시 하는 분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또는 십대제자 중 가섭존자와 아난존자를 모신다.

삼세불(三世佛)이나 삼신불(三身佛: 법신불.보신불.화신불)을 모시기도 한다. 삼세를 통하여 불법으로 교화하는 삼세불은 현세의 석가모니불, 과거의 연등불인 제화갈라보살, 그리고 미래불인 미륵보살이다. 삼신불인 경우 석가모니불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봉안하기도 하며 이럴 경우 격을 높여 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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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정토신앙
문화

불교문화 - 정토신앙

보명교수의 한국불교 신앙의 뿌리를 찾아서

  1. 정토신앙.

오늘은 음력으로 10월 보름날. 즉 아미타부처님 재일날로 서방정토 극락으로 가고자 정토사상이나 정토불교라한다. ‘나무아미타불’로 왕생발원. 불교 대중화 기여..

부처님의 가르침은 하나지만 받아들이는 대상과 방식에 따라 신앙의 형태는 많이 다르다.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해 중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시대상황과 지역적 특성이 결합돼 더 체계화되고 교리적으로도 풍부해졌다.

때로는 원래의 의미와 전혀 다르게 변질되기도 했다. 정법(正法)이 사라진다는 우려가 많다.

이 땅에 들어온 수많은 불교신앙의 뿌리를 찾아 부처님의 진정한 가르침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보는 기회를 마련한다.

불보살 서원은 중생의 귀의처 ‘서방정토’바라며 간절한 염불. 한국의 대표적인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daum)에서 가입 회원이 가장 많은 불교 동호회는 사회적 붐까지 일고 있는 간화선이나 친목모임이 아니라 아미타회다. 회원수가 1만7000여명에 이르는 아미타회는 6900명으로 2위를 차지한 친목모임 동호회를 훨씬 능가한다.

이같은 결과는 참선 위주의 한국불교와 많이 차이가 난다.

한국불교에서 스님들이나 불교학자들이 주로 강조하는 불교는 참선수행을 통해 나를 찾는데 있다. 아미타불만 염송하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것은 왠지 낯설기까지 하다. 하지만 인터넷이 보여준 ‘현실’은 한국불교의 현상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간화선 위주의 참선 수행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일 뿐이다.

불교인터넷 사이트 가입회원 가장 많아

정토신앙이 가장 활발한 국가는 한국 일본 중국 등 이른바 동북아 대승불교권이다. 이 중에서 중국 일본은 강력한 종파가 형성돼있지만 한국은 별도의 종파가 없다. 한국불교 장자종단인 조계종은 간화선을 실천수행법으로 삼고 성불(成佛)을 최고의 목적으로 내세운다. 또 정토를 내세우는 사찰도 거의 없다. 겉으로만 보면 한국은 정토신앙이 없거나 비주류인 듯이 보인다.

하지만 한국불교 속을 들여다 보면 다르다. 이 땅만큼 정토신앙이 활발한 곳도 없다. 정토종이 없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정토신앙이 약해서가 아니라 모든 신앙에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거의 모든 사찰에는 정토신앙의 주불인 아미타부처님을 모시는 극락전이 있다.

정토(淨土) 세계란 어떤 곳인가. 깨달은 자인 부처님과 깨닫기 위해 수행하는 보살이 사는 세계다. 맑고 깨끗하기 때문에 아무런 고통도 괴로움도 없이 영원히 평안하고 안락한 곳이다. 이에반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고통과 번뇌로 가득찬 더러운 곳으로 예토(穢土)라 부른다.

예토에서 정토에 이르는 길은 두 가지다. 하나는 혼자 힘으로 열심히 노력해서 어렵게 찾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자동차를 타고 가듯이 남의 힘을 빌어 쉽게 찾는 것이다. 인도에서 가장 먼저 정토사상을 설한 용수(龍樹)는 〈십주비바사론〉에서 난행도(難行道)와 이행도(易行道)로 구별했다.

중국 정토교를 창설한 담란과 선도 등은 이를 자력(自力)과 타력(他力)으로 나눴다. ‘배를 타고 즐겁게 항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믿음‘이라는 쉬운 수행, 곧 제불의 명호를 외워서 그 공덕으로 현생에서 불퇴전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정토신앙의 핵심이다. 일반적으로 정토신앙이라고 하면 아미타불의 극락정토를 말한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정토신앙은 초기 대승불교시대 즉 기원 전후로 출현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정토사상은 서북인도에서 성립하여 중앙아시아에 유포되어 중국을 거쳐 한국 일본 등지로 전해졌다.

성립시기는 인도의 쿠산왕조시대다. 정토사상은 쿠산왕조의 고유종교인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조로아스터교는 불교와 달리 내세가 실재하고 인간은 영혼불멸하다고 보았다. 이세상은 선과 악의 투쟁으로 죽은 후 선인은 마즈다 신이 사는 광명으로 가고 악인은 지옥으로 간다고 보았다. 이 광명의 세계가 무량광 (無量光) 즉 산스크리트어로 ’무한한 광명을 가진자(無量光)라는 뜻의 아미타바(Amitabha)이다.

조르아스터교의 내세와 영혼불멸 사상이 윤회중심의 불교와 결합되어 정토사상이 생겼다는 것이 유럽학계의 주장이다. 정토사상을 조직적으로 설한 세친은 〈정토론〉에서 정토에 왕생하기위한 실천방법으로 예배분 찬탄문 작원문 관찰문 회향문의 오념문(五念門)을 설했다.

그는 예배할 때는 서방정토에 왕생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입으로 아미타불을 외면서 몸으로 예배해야한다고 했다. 그는 정토를 관(觀)하는 위파사나와 사마타 수행을 중시하고 왕생공덕은 대중들에게 회향해야한다고 가르쳤다. 유식사상에 기반을 둔 세친의 정토사상은 중국에 들어가 칭명염불로 변용된다.

“염불 일수 많을수록 상위 극락 왕생” 독특.

중국의 정토신앙은 4세기 말 중국의 혜원(慧遠)이 여산의 동림사(東林寺)에 들어가 동지들과 결사(結社)를 하고 염불을 행한 데서 시작되었다. 그는 본래 〈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에 의해서 반주삼매로써 부처를 보기 위해 미타염불을 하였는데, 이것이 후일 정토왕생을 위한 염불로 바뀌어 갔다. 이후 담란(曇鸞)을 개조로 하는 종파를 이루어 도작(道綽).선도(善導) 등의 노력으로 대다수 중국 민중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졌다.

이처럼 정토신앙은 처음에 아미타불과 정토의 모습을 명상하는 관상(觀想) 염불에서 쉬운 수행(易行)을 강조하는 칭명 염불(南無阿彌陀佛)로 전환됐다. 배경에는 6세기 후반에 중국에서 유행하던 말법사상, 즉 불교가 정법(正法).상법(像法) 시대를 지나 지금은 불타의 올바른 가르침과 수행이 모두 사라져버린 말법(末法)시대가 도래했다는 위기의식이 강하게 작용했다.

선도(善導) 이후 대중적 뿌리를 내린 정토신앙은 이후 선불교의 영향을 받아 염불선이 유행했다. 선수행자들 가운데서도 염불과 정토신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선정(禪定) 융합적 불교가 송대 이후 중국 불교의 주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 풍조는 한국에도 그대로 전해졌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에 들어와 원효(元曉)에 의해 크게 성하였다. 정토신앙은 불교 대중화를 위한 최고의 수단으로, 현재도 가장 대중적이고 서민적인 신앙 형태이다. 정토종(淨土宗)이 성립되지는 않았지만, 미타염불은 한국불교의 보편적 신앙이 되었다.

한국불교의 가장 독특한 모습은 일수염불(日數念佛)이다. 중국과 일본은 염불의 회수를 중시여기는 반면, 한국은 일정한 날짜를 정해두고 이 기간 동안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단기간은 3,5,7일 21일 100일 등이 있으며, 장기로는 1000일 혹은 만일이 있다. 일수염불의 교리적 근거는 주로 〈아미타경〉과 〈반주삼매경〉에 근거한다.

삼국시대부터 민중신앙으로 뿌리 내려져..

〈아미타경〉에는 “하루나 이틀 사흘 닷세 엿세 이렛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아미타불 이름을 외우되 조금도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으면 임종할 때에 아미타불이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반주삼매경〉에도 “칠일 밤낮으로 아미타불을 염송하면 꿈속에라도 친견하게된다”는 구절이 있다.

원효는 〈아미타경소〉에서 “일수가 많을 수록 상위의 극락에 왕생한다”는 전혀 새로운 설을 내놓았다. 신라에서는 전국적으로 일반신도들이 관리하는 만일염불결사가 유행했다. 고려시대에는 타락한 불교를 살리기위한 요세의 백련결사가 유명하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을 맞아 나라가 어렵자 사명대사가 동갑계(同甲契)를 조직, 사찰을 복원하는데 도움을 받았다.

염불만일회가 가장 융성하게 일어난 때는 구한말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찰이 강원도 건봉사(乾鳳寺)로 지금도 한국 정토신앙의 성지로 손꼽힌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고양 흥국사, 울진 불영사, 북한산 화계사, 신촌 봉원사, 안암동 개운사, 청도 운문사, 해인사 원당암, 통도사 극락암, 도봉산 망월사, 강남 봉은사는 한국적 정토 신앙 실천법인 만일염불회가 성황을 이루는 정토의 성지였지만 지금은 정토도량을 표방하는 사찰은 거의 없다.

해방후 간화선 중심의 선불교가 융성하면서 주춤해졌던 염불만일회는 1985년 대구에서 수산스님이 새로 시작하면서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후 동국대 불교대학원장 보광스님이 정토신앙에 대해 체계적인 연구와 더불어 만일회를 조직하면서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청계산 정토사는 한국정토신앙의 새로운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보광스님은 “한국의 염불결사는 신라시대의 귀족화된 불교를 대중불교로 전환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사찰의 경제적 후원 역할도 톡톡히 했다. 무엇보다 국가로부터 불교가 탄압받아 교단이 위축되거나 국가가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는 종교 사회개혁을 주도하는 종교운동이 되었다”고 말했다. 현재 정토신앙은 하나의 조직적 흐름을 형성하기보다 아직은 다른 신앙과 혼재돼 나타나고 있다.

■ 극락전은… 아미타 부처님 모시는 전각.

아미타 부처님을 모시는 전각을 극락전(極樂殿).극락보전(極樂寶殿).아미타전(阿彌陀殿).무량수전(無量壽殿).수광전(壽光殿)으로 부른다.

정토신앙이나 화엄종 계통인 경우에 주불전으로 모시며 이 때는 극락전이라 부른다. 주불전이 아닌 경우에는 미타전 또는 아미타전이라 한다. 아미타불은 설법인을 하는데 구품인(九品印)을 취한다.

아미타부처의 협시보살로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과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 혹은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모신다.

■ 정토삼부경이란… 〈아미타경〉 〈무량수경〉 〈관무량수경>세 경전을 말한다.

불기 2569년 12월4일의 음력 10월15일의 미타재일에

팔공산 감고사지기 보명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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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부처님 제자 2. 천상과 지옥을 다녀오다, 목련존자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부처님 제자 2. 천상과 지옥을 다녀오다, 목련존자

사찰 벽화이야기 부처님 제자 2. 천상과 지옥을 다녀오다, 목련존자

부처님 제자 가운데 목련존자는 이 가장 뛰어나신 분입니다. 부처님은 여섯 가지의 신통력을 두루 갖추신 분이셨습니다. 목련존자도 부처님의 신통력을 그대로 배우셨습니다. 여섯 가지 신통력(六神通 육신통)이란,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천안통天眼通, 먼 곳의 소리까지 모두 듣는 천이통天耳通,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타심통他心通, 사람의 전생을 훤하게 들여다 보는 숙명통宿命通, 어느 곳이든 마음대로 나타날 수 있는 신족통神足通, 모든 번뇌를 끊을 수 있는 누진통漏盡通을 말합니다. 부처님과 보살님들께서 중생을 구제하실 수 있는 것도 이 육신통에 의해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서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누구에게도 말씀 없으신 채 발우와 가사를 가지고 사라지신 적이 있습니다. 수 년간 많은 제자들이 생겼는데, 그 규모가 점차로 커지게 되자 제자들이 부처님의 말씀대로 수행하는 것을 게을리 하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이러한 형태를 꾸짖을 목적으로 부처님께서는 그 해 우기를 도리천으로 올라가 지내신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부처님을 낳아주신 어머니 마야왕비와 천상의 중생들에게 설법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한편 지상에서는 부처님께서 가신 곳을 몰라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지혜의 눈을 갖춘 아나율 존자가 천안으로 살펴보니 부처님께서는 마야왕비, 제석과 함께 도리천에 계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세 달이 다 되도록 내려오시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 대중의 요청으로 목련존자는 천상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우기가 끝날 무렵 도리천으로 올라간 목련존자는 모든 제자들이 반성하고 있으니 부처님께서는 그만 지상으로 내려와 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사찰 벽화이야기 부처님 제자 2. 천상과 지옥을 다녀오다, 목련존자

부처님 제자 가운데 목련존자는 이 가장 뛰어나신 분입니다. 부처님은 여섯 가지의 신통력을 두루 갖추신 분이셨습니다. 목련존자도 부처님의 신통력을 그대로 배우셨습니다. 여섯 가지 신통력(六神通 육신통)이란,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천안통天眼通, 먼 곳의 소리까지 모두 듣는 천이통天耳通,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타심통他心通, 사람의 전생을 훤하게 들여다 보는 숙명통宿命通, 어느 곳이든 마음대로 나타날 수 있는 신족통神足通, 모든 번뇌를 끊을 수 있는 누진통漏盡通을 말합니다. 부처님과 보살님들께서 중생을 구제하실 수 있는 것도 이 육신통에 의해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서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누구에게도 말씀 없으신 채 발우와 가사를 가지고 사라지신 적이 있습니다. 수 년간 많은 제자들이 생겼는데, 그 규모가 점차로 커지게 되자 제자들이 부처님의 말씀대로 수행하는 것을 게을리 하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이러한 형태를 꾸짖을 목적으로 부처님께서는 그 해 우기를 도리천으로 올라가 지내신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부처님을 낳아주신 어머니 마야왕비와 천상의 중생들에게 설법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한편 지상에서는 부처님께서 가신 곳을 몰라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지혜의 눈을 갖춘 아나율 존자가 천안으로 살펴보니 부처님께서는 마야왕비, 제석과 함께 도리천에 계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세 달이 다 되도록 내려오시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 대중의 요청으로 목련존자는 천상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우기가 끝날 무렵 도리천으로 올라간 목련존자는 모든 제자들이 반성하고 있으니 부처님께서는 그만 지상으로 내려와 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부처님, 모든 비구와 비구니들이 자신의 오만과 게으름을 뉘우치고 있습니다. 우바새(출가하지 않고 부처님의 제자가 된 남자)와 우바이(출가하지 않고 부처님 제자가 된 여자)들도 부처님 뵐 날만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부처님께서는 7일 뒤 지상으로 내려오셨습니다. 물론 목련존자가 신통력으로 천상에 다녀오지 않았더라도 때가 되면 부처님께서 돌아오셨겠지만, 여러 제자들이 목련존자에게 하늘 세계에 다녀와 주실 것을 부탁드린 것만 보아도 그의 신통력이 가장 뛰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목련존자는 불교명절 가운데 하나인 백중, 즉 우란분절과도 연관된 분입니다. 하루는 목련존자가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한 마음에 신통력으로 천상을 두루 살펴보았으나 아버지만 천상에 계신 것이 보였습니다. 이 사실을 부처님께 말씀드렸더니, 그의 어머니는 삼보를 믿지 않고 인과를 어긴 죄로 지옥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를 찾지 않을 수 없었던 목련존자는 지옥세상으로 가보았습니다. 지옥의 광경은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모습이었습니다. 목련존자는 부처님께 나아가 어머니를 구할 방법을 간청하였습니다.

이에 부처님께서 염라대왕에 명하여 모든 중생을 놓아주라 하셨고, 이때 지옥고의 중생들은 부처님의 가피를 받아 천상으로 올라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목련의 어머니는 죄가 워낙 무거워 지옥에서 빠져 나오기는 했지만 천상에 태어나지 못하고 아귀의 몸을 다시 받았습니다.

육도를 윤회하는 가운데 가장 나쁜 곳이 지옥이며 그 위의 세상이 아귀, 그리고 그보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은 축생이라 하여 짐승의 몸을 받게 되는 세상입니다. 이 셋을 삼악도라 합니다.

목련존자는 여러 부처님과 보살님을 청하여 어머니를 위해 경전을 독송했고, 그 공덕으로 목련존자의 모친은 이제 개의 몸으로 환생한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그의 주위를 맴돌았습니다. 목련존자는 타심통으로 어머니에게 심정이 어떠한지 물어 보았습니다.

'어머니, 개의 몸으로 환생하였는데, 지옥에 있을 때와 어떠합니까?'

'비록 개의 몸으로 더러운 찌꺼기나 남의 음식을 받아 먹더라도, 지옥의 고통보다 몇 만 배는 더 행복합니다. 고맙습니다, 목련이여'

부처님께서 목련존자에게 다시 알려주셨습니다.

"긴 장마철 동안 한 곳에서 열심히 수행을 하고, 안거를 마치는 칠월 보름에 모든 대중들에게 우란분재를 베풀면 너의 어머니도 개의 몸을 벗어나 천상에 태어나리라."

이후 불교에서는 음력 7월 15일을 백중으로 정하여, 자손들이 부처님의 가피력과 지장보살의 힘으로 여러 부모님을 위해 모든 지옥중생을 구제하려고 함께 천도재를 올리는 날이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길가에 버려진 뼈 무더기를 보고도 어느 생에서는 우리와 인연있는 부모였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목련존자와 같은 신통력을 가졌어도 생전에 스스로의 나쁜 행동의 과보로 지옥에 떨어진 중생은 구제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부처님의 힘으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 나쁜 업보를 쌓아 지옥 세상에 걸어 들어가는 어리석은 행동을 해서도 안 되겠지만, 지옥의 여러 중생을 구해주기 위해서라도 부처님과 지장보살에게 정성껏 기도를 올려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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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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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벽화이야기 - 소아시토 (小兒施土) -보시(2)
불교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소아시토 (小兒施土) -보시(2)

<법주사- 경북 군위> <br><br> 잡아함경(雜阿含經)에 나오는 이야기로 모래밭에서 소꿉장난을 하는 두 아이가 석가모니 일행이 길을 가는 모습을 발견하고 공양을 올린다며 석가모니 앞으로 나아가 자기들이 놀던 모래로 지은 밥을 부처님 발우 안에 담고, 합장하며 기뻐하고 있는 아이들의 그림이다. <br><br> ▮ 보시의 공덕 모래를 석가모니의 바루에 담으려는 아이들을 본 제자 아난 스님은 깜짝 놀라, 아이들을 나무라기 위해 그들 앞으로 나서자 석가모니는 아난을 세워 말하기를 ‘이 아이들은 순수한 마음의 공양을 올린 공덕으로 내가 열반에 든 지 100년 후에 왕으로 태어날 것이다.’ 라며 환한 미소로 아이들이 주는 모래공양을 즐겁게 받았다. 바루에 넣은 보시는 흙장난으로 보이지만 순간 아이들을 나무랐다면 아이들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었겠지만, 순수한 보시를 기쁘게 받음으로 순수한 마음에 부처의 씨앗을 심었던 것이다 보시는 크고 많음으로 보이는 물질적 가치보다 받는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그만큼 이나 놀라운 결과가 나타난다는 의미로 보인다. 한 마음 가득채운 공양을 올린 아이가 그 행복한 공덕으로 훗날 위대한 왕이 되어 인도를 통일시키고 전역에 팔만사천 개의 탑을 세운 그가 바로 '아쇼카왕'이었다. <br><br> ▮ 아쇼카왕 인도가 통일되는 과정에 일어난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고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있던 아쇼카왕은 어느 날 수행자의 설법을 듣게 된다. 그날, 왕이 백성을 위해 추구하는 평화는 무기나 군대의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덕치(德治)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널리 불법을 펼치며. 불교의 진리를 전파해 백성들이 생활 속에서 불교적 삶을 구현할 수 있도록 노력을 다했다. 오늘날 인도 곳곳에서 발견되는 아쇼카왕의 석주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많다. “전쟁에 의한 승리보다 자비에 의한 정복이 훨씬 가치롭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선행만 보려고 하고 자신의 나쁜 점은 보려하지 않는다.” 아쇼카왕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느 정도 실천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소아시토’는 모래공양을 올리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통해 상대의 눈높이에 맞추는 대기설법(對機說法)을 설명 하는 그림이다. <br><br> ▮ 문둥병여인을 도솔천으로 이끈 가섭의 보시 석가모니의 제자 중 가섭은 어느 날 탁발 시간을 놓쳐 공양을 그르치게 되었는데, 마침 그가 지나가는 길에는 어떤 문둥병 여인이 점심으로 준비 한 죽을 막 먹기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가섭은 그 문둥병 여인에게 다가가 ‘그 죽을 나에게 보시 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묻자. 그 여인은 너무 놀라고 당황하였다. 모두가 피하는 문둥병자 자신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와, 그것도 자기가 먹고 있던 그 초라한 죽을 보시 하라니 지금껏 얻어만 먹고 살아왔던 자신도 남에게 보시를 할 수 있다는 기쁜 마음에 가섭스님에게 공양을 올리게 된다는 생각이 더해져 순간 너무도 행복했다. 그런데, 때마침 파리 한 마리가 공양을 준비하던 죽그릇에 빠지자
여인은 다급해진 마음에 그 파리를 급히 건지려다 자신의 썩어 문드러져가는 자신의 손가락 하나를 그만 그 죽그릇에 빠뜨리고 문둥병 여인은 크게 탄식한다. 아- 나는 이마져도 되는 게 하나 없구나. 그녀 앞에 빙그레 웃으며 다가선 가섭은 그 죽을 받아 들고 눈 하나 찡그리지 않고 남김없이 다 먹었다. 그 모습에 문둥병 여인의 얼굴에는 기쁨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려 내렸다. 가섭은 이렇게 문둥병여인이 준비한 죽 한 그릇을 모두 비움으로 그 여인을 극락으로 이끌게 되었다. 남을 위한 보시라는 것은 어떤 물질을 갖고 하는가 보다는, 어떤 마음을 갖고 하는가이다.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밥은 그저 한 끼의 밥에 불가하지만, 지혜와 사랑을 온전히 담은 밥 한 그릇은, 그대로 법(法)이 되어 해탈(解脫)의 양식이 되는 이치다. 가섭이 받아 든 보잘 것 없는 죽 한 그릇에도, 한 사람의 인생이 담기고, 한 사람이 살아 갈 온 우주가 담긴다. 소아시토의 벽화를 통해, 주는 보시만큼이나 받는 보시 또한 얼마나 위대한 자비를 담고 있는지를 깨닫게 한다. <br><br> ▮ 모아보는 소아시토 <br><br> <반룡사-경북 고령>

<br><br> <영화사-서울 광진>

<br><br> <용연사-대구 달성>

<br><br> <운문사-경북 청도>

<br><br> <태고사-충남 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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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내 마음 속이지 않는 것이 계율정신, 우바리존자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내 마음 속이지 않는 것이 계율정신, 우바리존자

사찰 벽화이야기 8. 내 마음 속이지 않는 것이 계율정신, 우바리존자

출가에는 신분의 차이가 없습니다. 누구나 부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 우바리는 이발사 출신의 천민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요즘이야 미용에 종사하는 일은 오히려 전문기술직으로 유망한 직업이지만, 예전에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남의 머리를 자르고 손질해 주는 일은 낮은 신분에 속했고, 본인이 원하지 않더라도 대대로 물려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출가한 이후에는 출가하기 전의 신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수행해서 도를 얻었는지의 여부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고향에 돌아와 설법을 마치자 많은 석가족의 친족들이 부처님을 따라 출가를 결심했습니다. 우바리는 이들이 출가했을 때 그들의 머리를 깎아주면서 내심 마음으로 '나도 출가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우바리의 마음을 읽고는 다른 친족들보다 오히려 우바리의 출가를 먼저 허락하셨습니다. 출가에는 세속에 있을 때의 신분에 차별이 없이 평등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부처님의 배려로 다른 석가족 보다도 먼저 출가할 수 있었던 우바리는 엄격한 수행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특히 그는 계율을 잘 지켰습니다. 다만 스스로에게도 너무나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바람에, 오히려 다른 수행자들 사이에서 불평이 많았다는 하소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늘 계율을 엄격히 지키던 우바리에게 부처님은 이렇게 찬탄하셨습니다.

"나의 비구제자 중에서 율을 가장 잘 지키는 사람은 우바리다."

사찰 벽화이야기 8. 내 마음 속이지 않는 것이 계율정신, 우바리존자

출가에는 신분의 차이가 없습니다. 누구나 부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 우바리는 이발사 출신의 천민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요즘이야 미용에 종사하는 일은 오히려 전문기술직으로 유망한 직업이지만, 예전에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남의 머리를 자르고 손질해 주는 일은 낮은 신분에 속했고, 본인이 원하지 않더라도 대대로 물려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출가한 이후에는 출가하기 전의 신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수행해서 도를 얻었는지의 여부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고향에 돌아와 설법을 마치자 많은 석가족의 친족들이 부처님을 따라 출가를 결심했습니다. 우바리는 이들이 출가했을 때 그들의 머리를 깎아주면서 내심 마음으로 '나도 출가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우바리의 마음을 읽고는 다른 친족들보다 오히려 우바리의 출가를 먼저 허락하셨습니다. 출가에는 세속에 있을 때의 신분에 차별이 없이 평등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부처님의 배려로 다른 석가족 보다도 먼저 출가할 수 있었던 우바리는 엄격한 수행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특히 그는 계율을 잘 지켰습니다. 다만 스스로에게도 너무나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바람에, 오히려 다른 수행자들 사이에서 불평이 많았다는 하소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늘 계율을 엄격히 지키던 우바리에게 부처님은 이렇게 찬탄하셨습니다.

"나의 비구제자 중에서 율을 가장 잘 지키는 사람은 우바리다."

한 번은 어떤 스님이 병에 걸렸는데 6년이 지나도록 병이 낫지 않아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우바리존자가 병문안을 갔습니다.

"얼마나 아프십니까? 혹시 뭐 필요한 거라도 있습니까?"

늘 아픔 속에서 시름하며 지내던 스님은 우바리존자의 병문안이 반가웠습니다. 또 이처럼 필요한 것이 없느냐는 말을 꺼내자 내심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지 입을 열려다 멈칫하는 것입니다. 무언가 필요한 것이 있는데 망설이는 눈치였습니다.

"이는 부처님 가르침을 어기는 일이라 자마 말씀을 못 드리겠습니다."

"괜찮습니다. 무엇이든 필요한 것을 말씀해 보세요."

우바리존자가 다시 한 번 말을 꺼내자, 스님은 머뭇거리다 용기를 내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독한 술을 한 다섯 병을 마시면, 고통도 잊고 금방 병이 나을 것 같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은 부처님 제자들에게 엄격한 규율로 적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병을 낫고자 술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도 계율에 엄격하셨고, 부처님의 계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지계제일持戒第一우바리로서는 당연히 한마디로 거절할 것 같았지만, 우바리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부처님께 가서 여쭤보고 오겠습니다."

그리고 곧 바로 부처님에게 달려갔습니다.

"부처님. 저 스님이 병이 낫는데 술이 약이라고 합니다. 이럴 때 술을 먹어도 괜찮겠습니까?"

그러자 부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내가 법을 제정한 것은 병으로 고생하는 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다."

우바리존자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뜻을 알아차렸습니다. 부처님께서 모든 중생을 구제하시고자 함은 중생의 마음에서 번뇌라는 병을 고치기 위함이고, 그 번뇌를 막기 위해 법을 제정하신 것입니다. 또한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마음이 깃드는 법이므로, 몸에 생긴 병은 우선적으로 치료함이 마땅합니다.

우바리는 술을 구해서 그 스님에게 돌아갔습니다. 얼마 후 그 스님은 오랜 병고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우바리존자는 스님이 병에서 쾌유하자, 이내 마음의 병고를 고쳐주기 위해 법문을 들려주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이 사실을 알고 우바리존자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대가 찾아와 계율에 관해 묻더니 그 비구의 병을 낫게 하였고, 또한 깨달음도 얻게 했구나. 그대가 아니었다면 그 비구는 병으로 목숨을 마치고, 삼악도육도세계 중에서도 살아서 악행을 지은 죄과로 인하여 죽은 뒤에 간다는 지옥도(地獄道)와 축생도(畜生道)와 아귀도(餓鬼道)의 세계에 떨어졌을 것이다. 그대는 게율을 참으로 잘 지켰다. 그러므로 계율을 그대에게 부탁하니 실수가 없도록 하라."

부처님께서 계율을 정하신 것은 모두 그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상황이 지금과 다르고, 문화도 다르기에 모든 계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적용하기에는 어렵습니다. 즉, 계율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를 잘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계율은 무엇보다 엄격했지만, 부처님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예외적으로 허용하기도 하셨습니다. 다만 계율 본래의 정신이 훼손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누구든 스스로 이미 마음속으로는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스스로에게 당당하다면 어떠한 계율이라도 정해진 바를 지키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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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수월관음 (水月觀音) - 관음보살에게 법을 구하다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수월관음 (水月觀音) - 관음보살에게 법을 구하다

수월관음(水月觀音)은 화엄경에 나오는 이야기로 달빛 비치는 바닷가 바위에 앉아있는 관세음보살이 동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림이다.

그들은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일까

선재동자는 빤한 자신의 처지를 벗어나 지혜를 전해 줄 선지식(善知識)을 만나고자 집을 떠나. 결국은 관세음보살을 만나게 되는 장면인데.

선지식 이란 지혜로운 길로 이끌어 주는 사람으로 태어난 참 의미를 깨닫게 해 주는 사람일 것이다.

집을 떠나 이곳까지 오던 내내 동자가 두루 만나보고 대화를 나누어 왔던

뱃사람, 거리의 여인, 저작거리에서 떠들던 사람 강가에서 모래장난 하는 어린이 등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도 각자 삶의 지혜가 있었다는 걸 동자는 관음보살을 통해 깨닫게 된다.

이처럼

내가 그 토록 갈구하던 지혜를 줄 수 있는 선지식인이란 멀고 높은 자리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곁에 지금껏 함께하고 있는 모든 이들이라는 설명이다.

▮ 당신이 있기에 행복합니다.

내손안의 행복이 남의 행복보다 작게 보여 남의 행복을 부러워하며.

지금껏 멀리 그토록 쫓아 다녔었지만,

행복은 항상 내 곁에 함께하고 있었다 하지요

내손 안에 있을 때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나의 행복이지만

대를 놓치고 나서 ‘그때가 얼마나 크고 소중했다고’ 후회 않길 다짐 해 봅니다.

그래서

지난시간 희생만 강요하며 바쁘다는 핑계로 다음으로 미루기만 해 왔던 나와 함께해준 당신들에게 두손모아 3배를 올려야할 나의 이유입니다.

함께 하였고, 함께하며 앞으로도 함께 할 소중한 분들

당신이 있기에 행복합니다.

‘수월관음’은 물을 건너 관세음보살을 찾은 동자를 통해, 행복은 내 곁에 항상 상주하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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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사찰 벽화이야기 - 심우도 [입전수수 (入廛垂手)]
문화

사찰 벽화이야기 - 심우도 [입전수수 (入廛垂手)]

입전수수 (入廛垂手)

< 맨가슴 맨발로 저자에 들어가니 재투성이 흙투성이라도 얼굴가득 함박웃음

신선이 지닌 비법을 쓰지 않아도 당장 마른나무 위에 꽃을 피우는구나.>

지팡이를 짚고, 때로는 커다란 포대를 메고서 깨달음을 얻은 스님께서 거리로 나섭니다. 집집마다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찾아가 자비의 가르침을 실천합니다. 여기서 부처님의 전도선언傳道宣言이 떠오릅니다.

"너희들도 또한 사람과 하늘의 속박을 벗어났으니, 마땅히 인간세상을 돌아다녀라. 많은 사람들을 제도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익을 얻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안락을 얻기 위하여. 두 사람이 함께 가지 말라. 또 비구들아, 만약 다른 지역에 이르면 많은 사람을 가엾게 여기고 그들을 거두어들이기 위해 마땅히 법을 설하라." ☞ 『잡아함경 雜阿含經』 『불본행집경 佛本行集經』 등

이처럼 깨달은 후에는 중생들의 이익과 중생들의 안락을 위해 마땅히 연민과 포용, 그리고 진리의 가르침을 베풀어 마땅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적이 드문 한적한 곳이 아니라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 마을과 거리를 오히려 수행처로 삼아야 합니다.

이는 보살의 수행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보살은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실천하시는 분입니다. 앞서 '심우'에서 시작하여 '반본환원'에 이르는 과정은 상구보리上求菩提, 즉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 과정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그림인 '입전수수'는 중생을 제도하는 하화중생下化衆生의 수행에 해당됩니다​. 여기에 불교의 참된 가치가 잘 드러납니다. 나만이 잘되고자 하는 것은 올바른 수행자세가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혼자 깨닫는 것은 최고의 깨달음이 아닙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위없이 두루 바른 깨달음'인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을 뜻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셨습니다.

깨달은 이에는 세상의 이치를 다 터득한 연각緣覺이라는 분도 있고, 홀로 수행하며 깨닫는 독각獨覺이라는 경지도 있습니다. 그러나 뭇 중생들의 진정한 공양을 받는 분은 '무상정등정각'을 얻으신 부처님 뿐입니다. <br>그래서 깨달은 뒤라도 중생제도라는 다음 단계의 수행과정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법을 깨달은 성인이 되었더라도 중생에게 베풀지 않는다면 우리로서는 그 깨달은 이치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중생을 제도하고자 커다란 원력을 세우고, 중생들이 살아가는 거리로 나와 대자대비의 손길을 내밀어주시는 분이 바로 보살님이십니다. 이 보살도의 수행을 거쳐야 비로소 온전한 깨달음이 완성되는 것이 바로 입전수수의 참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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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
불교문화 - 신묘장구 대다라니 (8일차)
문화

불교문화 - 신묘장구 대다라니 (8일차)

**보명법사의 신묘장구대다라니 3×7=21일기도 8일째.

천수천안 관자재보살 광대원만 무애대비심 대다라니 계청 (1) 千手千眼 觀自在菩薩 廣大圓滿 無碍大悲心 大陀羅尼 啓請

**<천수천안 관자재보살 광대원만 무애대비심 대다라니>**에 '경' 자를 붙인 것이 『천수경』의 구체적인 본래 이름입니다.

오늘부터는 천수경의 본격적인 내용이 시작됩니다. 천수경의 핵심인 대다라니를 읽기위한 앞부분을 펼치는 경문입니다. 여기서<광대원만>이란 『천수경』은 관세음보살의 자비와 지혜가 담겨 있어서 넓고 크고 원만하여 막히는 데가 없이 충만하다는 뜻입니다.

인간적인 정분(情分)에 얽매이면 대가를 바라게 되고 자기도취에 빠지거나 분별심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관세음보살의 자비는 이런 인간적인 사랑이나 정을 뛰어 넘어서 자비로 승화되었기 때문에 아무 걸림이 없는 **<무애대비심>**인 것입니다.

흔히 우리는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 등 불보살님을 항상 높은 곳에 올려놓고 늘 바라보기만 합니다. 보살펴 주기를 바라고 무언가 베풀어 주기만을 간절히 바랍니다.

다시 말하자면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님께 일방적으로 의지하는 소극적인 마음 자세를 가지고 있는 이가 많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불자라면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이처럼 자비롭고 훌륭한 관세음보살의 삶을 본받아서 자기 자신도 관세음보살처럼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불자라면 누구나 개개인이 관세음보살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관세음보살이 우리에게 바라는 진정한 마음입니다.

관세음보살의 마음은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을 자비스러운 어머니라고 하여 '대성자모 (大聖慈母)'라고도 표현합니다. 자식이 어릴 때는 부모가 일일이 보살펴 주지만 어느 정도 성장한 뒤에는 부모와 똑같이 행동해야 하고, 또 그렇게 행동하기를 바라는 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자식이 성장했는데도 불구하고 항상 부모가 자식을 어릴 때처럼 보살핀다면 그것은 잘못된 부모입니다. 부모는 자식이 훗날 부모처럼 어엿하게 자라나고 또 어른답게 행동하라는 뜻에서 보살펴 주고는 가르쳐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관세음보살도 우리가 힘이 없고 부족할 때 자비로써 보살펴 주고, 우리는 그 보살핌을 받습니다. 그러나 철이 들면 누구나 자기 자신도 관세음보살의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근본적인 마음이며, 관세음보살이 우리에게 바라는 바입니다.

관세음보살의 인생을 자신의 인생으로 삼아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관세음보살의 본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관세음보살처럼 자비스럽고 지혜롭게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오히려 부처님을 뛰어넘는 인생을 살도록 노력하라고 당부 말씀하셨습니다.

관세음보살의 인생을 자신의 인생으로 살겠다는 굳은 각오와 용기가 있을 때 우리의 공부는 성큼 한 단계 높이 오를 수 있습니다.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관세음보살을 찾는다면 관세음보살이 참으로 흐뭇하게 볼 것입니다. 자식이 아버지의 흉내를 내려고 포부를 가지고 행동할 때 그 아버지의 마음이 흐뭇해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교육이란 흉내내기에서 시작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흉내가 자꾸 계속되면 그것은 이미 흉내가 아닌 모방에서 응용한 자기 것이 되고 맙니다. 관세음보살의 흉내를 자꾸 내다 보면 우리도 관세음보살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5분간 맹인 흉내를 낸다면 그 사람은 그 5분 동안은 맹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5분간 관세음보살의 흉내를 내었다가 이것이 24시간 계속된다면 바로 우리 자신이 관세음보살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연습이나 흉내를 결코 부끄러워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의 계속되는 보호 안에서 자식이 더 이상 자랄 수 없듯이 관세음보살의 보살핌만을 받는 입장에서만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대다라니>라고 하는 것은 바로 뒤에 나오는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이르는 말인데 자비의 공덕을 담고 있는 『천수경』의 핵심이며 심장부에 해당되는 부분입니다.

다음으로 <계청>이란 '이제부터 다라니 열기를 청한다'는 뜻으로서, 이것은 괄호 안에 넣어서 원칙적으로는 읽지 말아야 하지만, 흔히 관습상 읽고 있습니다. <계청>은 본시 경문이 아닙니다.

불기 2570년 4월 18일 팔공산 감고사지기 보명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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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