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염주는 글자 그대로 풀면 생각하는 구슬이란 뜻이 된다. 무엇을 생각하는가. 물론 부처님이 설하신 법을 생각하는 것이다. 염주는 둥근 구슬을 108개, 1080개, 3000 개 꿰어서 만든다. 54개나 27개 혹은 그 이하의 수로 만들어진 짧은 염주도 있다. 이를 단주나 합장주라고도 부른다. 염주의 구슬 수는 108번뇌나 27현성 등 법수와 같이 하여 의미를 더하기도 한다.

부도를 제외한 대개의 탑은 4각이나 8각이 일반적이다. 극히 드물기는 하지만 원형으로 된 탑도 있어 불교에서 원이 상징하는 진리의 의미를 탑에 적용시킨 예로 여겨지고 있다. 전남 화순의 운주사 원형다층석탑(보물 제798호)은 십각의 기단석면을 제외한 모든 부재가 원형을 이루고 있어 흥미롭다. 높이가 5.71m인 이 탑은 **운주사가 창건된 고려시대의 탑으로 보고 있다. 갑석에는

**사찰의 지붕 합각(合角) 벽의 둥근 원 속에 작은 원 3개가 삼각형, 역삼각형 또는 약간 기울어진 삼각형 모양을 이루며 그려진 문양을 볼 수 있다. 이를 원이삼점 또는 이자삼점(伊字三點), 삼보(三寶)라 부른다. 3개의 원은 범어의 ‘이’자가 세점의 역삼각형인데서 비롯됐다. 범어의 ‘이’는 자재천왕의 눈이 생긴 모양을 본뜬 것이라 하여 자재를 의미 하기도 한다. <남본열반견(南本涅槃經)>

**사찰의 벽화나 선화들에서 일원상을 흔히 볼 수 있다. 절대진리를 상징하는 원은 일원상으로 표현된다. 우주만유의 근본자리로 원이 표현되기도 하고 우주 그 자체로도 표현된다. 우주에 원만히 품어진 진리를 하나의 원으로 상징하는 것이다. 또 불보살의 마음자리, 일체 중생이 갖추고 있는 불성의 자리를 원으로 표현한다. 이는 나고 죽는 것, 오고 가는 것, 변화가 없이 여여한 것, 언어가 끊어진

**법륜이란 말 그대로 법의 바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륜성왕(轉輪聖王)이 가지고있는 윤보(輪寶)에 비유한 말이다. 부처님이 법을 설하는 자체를 ‘법의 바퀴를 굴린다(轉法輪)’고 표현하는 것도 이런 의미다. 부처님께서 깨달은 진리, 즉 법은수레의 바퀴처럼 쉼없이 구른다는 의미에서 법륜이라고 말하는데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룬 이후 다섯 비구에게 첫 설법을 한 것을 ‘초전법륜’이라 하는 것도 같

**불화나 조각에서 부처님 혹은 보살의 뒷면에 둥근 빛이 발하는 장면이 묘사된 것을 볼 수 있다. 머리에 이런 표현이 된 것은 두광(頭光), 등 뒤에 표현된 것은 신광(身光)이라 나누어 부르기도 한다. 광배는 두광과 신광을 통칭하는 것이다. 후광(後光) 또는 어광(御光)이라고도 한다. 빛은 상당한 신성을 갖는다. 불보살의 몸체를 표현하는데 있어 광배의 문양을 사용하는 것도 불보살의 신성과 존

대웅보전 대적광전 극락보전 등 법당의 문은 꽃 새 나비 동물 등 갖가지 모양의 문양이나 기하학적 무늬를 정교하게 수놓아 화려하고도 우아하게 장엄했다. 이곳이 불 보살들이 계신 아름다운 극락정토임을 나타내며 동시에 참배하는 이의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 법당에 들어가 삼배를 올리고 부처님을 우러른다. “나를 의지하지 말고 법을 의지하고 스스로를 의지처로 삼으라” 하신 부처님의 설법이 들려온다.

불교에서는 죽음을 끝으로 보지 않는다. 연기실상의 한 부분일 뿐 영원한 소멸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을 열반이라고 이르는 것도 죽음 그 자체로 생명이 끝나 는 것이 아니라 ‘타오르던 번뇌가 끝난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원적이란 모든 무지와 사견을 버리고 깨닫는 것을 말한다. 원래적 고요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님들의 죽음을 이세상의 모든


장항리 5층석탑, 화엄사사사자석탑 등의 우리나라 일부 탑과, 실상사 증각국사부도 등의 부도에는 문짝이 조각되고 중앙에는 거멍쇠자물통과 문고리손잡이가 예쁘게 장식되어 있다. 탑신과 부도에 문을 모각하는 것은 사리의 봉안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이렇게 사리가 봉안된 장소는 신성한 곳이므로 이를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 문짝 좌우에 인왕상이나 보살상을 배치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