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붓끝에 수행을 담는 사람
불화장 임석환 - 붓끝에 수행을 담는 사람
파랑새가 남긴 미완의 눈동자
전남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에는 오래된 전설이 전해진다. 어느 날 허름한 차림의 스님이 찾아와 법당 안에 벽화를 그리겠다며, 49일 동안 절대 문을 열지 말라고 당부했다. 궁금함을 참지 못한 주지스님이 마지막 날 문을 열자, 붓을 문 파랑새 한 마리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파랑새는 관음보살의 눈동자를 채 완성하지 못한 채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절에 걸린 그림 한 점에도 이렇게 정성과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오늘은 그 그림, 불화(佛畵)와 그것을 그리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불화란 무엇인가
불화는 불교의 가르침을 그림으로 압축해 표현한 것으로, 불상이나 불탑처럼 신앙의 대상이 된다. 만드는 방식에 따라 벽에 직접 그리는 벽화, 천이나 종이에 그려 거는 탱화, 경전에 그리는 경화로 나눈다. 우리나라 불화의 대부분은 탱화다.
쓰임새로 보면 크게 세 가지다.
- 장엄용 불화: 단청과 벽화처럼 절의 분위기를 장엄하게 꾸민다.
- 교화용 불화: 부처님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그린 팔상도, 저승의 심판을 그린 시왕도처럼 어려운 가르침을 쉽게 전한다.
- 예배용 불화: 야외 법회 때 높이 거는 괘불이 대표적이다. 절 마당에 서 있는 돌기둥, 당간지주가 바로 이 거대한 괘불을 거는 데 쓰였다.
그림의 주인공에 따라서도 나뉜다. 부처님을 모신 영산회상도와 아미타극락회상도, 관음보살 같은 보살을 그린 보살도, 사천왕처럼 불법을 지키는 신장을 그린 신중도, 부처님의 제자를 그린 나한도가 있다. 고승의 모습을 그린 그림은 따로 영정, 또는 진영이라 부른다.
단청장과 불화장
단청은 건물에 문양을 입혀 장엄하는 일이고, 불화는 가르침을 회화로 풀어내는 일이다. 오랫동안 불화는 단청장이 함께 맡아 왔지만, 두 기술의 목적과 표현 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해 2006년 불화장이 별도의 국가무형유산 종목으로 지정되었다. 예로부터 불화를 그리는 장인은 금어, 화승, 화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불화장 임석환
임석환 선생은 어린 시절 불심 깊은 어머니를 따라 수덕사를 드나들며 불화와 단청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겼다. 스무 살 무렵 서울 진관사에서 혜각 스님을 만나 단청을 배우기 시작했고, 스님을 따라 전국의 사찰을 다녔다. 동료들이 잠든 밤에도 촛불을 켜고 홀로 그림을 그리던 모습을 눈여겨본 하동 쌍계사 혜암 스님의 권유로 본격적인 불화 수련에 들어섰다. 이때 연습한 그림만 3천 장이 넘는다고 한다.
선생은 작업 전 먼저 경전을 읽거나 염불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불심 없이는 불화를 그릴 수 없고, 그림을 그리는 일 자체가 곧 수행이라는 것이다. 제자들에게도 붓질 하나, 선 하나에 정신을 담으라고, 생계가 아닌 수행의 자세로 임하라고 거듭 강조한다.
범어사, 진관사, 전등사, 상원사, 운문사, 통도사 등 국내 여러 사찰은 물론 일본 요코하마 안국사와 하와이 호놀룰루 대원사에도 선생의 손길이 닿아 있다. 2006년 불화장 보유자로 인정받았으며, 원색 위주의 일반적인 불화와 달리 곱고 섬세한 색감으로 평가받는다. 지금은 딸과 아들을 비롯한 제자들이 그 맥을 잇고 있다.
탱화 한 점이 완성되기까지
- 출초: 그림의 내용에 맞게 인물과 배경을 배치해 밑그림을 그린다.
- 배접: 종이나 천을 여러 겹 붙여 바탕을 만든다. 탱화의 수명을 좌우하는 과정이다.
- 아교포수: 물감이 번지지 않도록 바탕에 아교를 칠한다.
- 도채: 바탕에 색을 올린다.
- 바림: 한쪽은 진하게, 다른 쪽은 옅게 칠해 입체감과 생동감을 더한다.
- 끝내림: 여러 번 덧칠한 뒤 다시 선을 또렷하게 긋는다.
- 금니 쫓침: 관이나 옷주름에 금가루로 가늘고 힘 있는 선을 넣는다.
- 금박 붙이기: 보관이나 갑옷 같은 장엄구에 금박을 붙이되, 지나치게 번쩍이지 않도록 절제한다.
- 상호와 개안: 가장 정성을 들여 얼굴을 그리고, 맨 마지막에 눈을 그려 넣는다.
- 틀 싣기: 완성된 그림을 틀에 올리고 한지로 여러 번 바른다.
- 발미: 조성 연도와 참여한 사람, 시주한 사람들을 기록한다.
눈동자는 맨 마지막에 그린다. 무위사의 파랑새가 끝내 완성하지 못한 바로 그 부분이다.
법당에 들어서면 불상 뒤에 걸린 탱화를 잠시 바라보자. 수천 번의 연습과 기도 같은 붓질이 그 한 폭에 담겨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