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문화 - 법천사지
구룡사를 참배하고 나와서 법천사지까지는 약 한 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가까운 여행거리다.
일반적인 관광객과 불교신자들도 안가는 남한강을 건너면 바로 법천사 폐사지가 드넓게 펼쳐져 보이는데 건축물 없이 한눈에 보이는 부지가 어마어마하다.
시야가 단절되는 건축물이 없어 더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폐사지 입구에 있는 유적전시관으로 먼저 들어가 지광국사 현묘승탑을 먼저 본 후
명봉산 아래 있는 지광국사의 현묘탑비와 느티나무 노거수, 수많은 가람터를 둘러볼것이다.
보명이 추천하는 우리나라 100대 성보문화재 참관지에 드는곳이다.
법천사에는 국보가 두 개가 있다.
지광국사 현묘탑(국보 101호)
현묘탑 비 (국보 59호)다.
고려시대 1085년에 건립 약 오백년간 건재하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며 돌로 된 탑과 탑비, 느티나무만 남았다가 아름답다는 이유로 현묘탑은 온갖 수난을 겪은 후 환지본처 되었다고 한다.
사연을 다 알고 나니 가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쓸쓸하고 황량한 폐사지에는 갈 곳 잃은 유물들이 흩어져 있고 아직도 발굴이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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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유물 중 용도를 알 수 있었던 것과 형태가 잘 유지된 것은 전시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그 외 발굴된 부스러기 들은 야외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법천사지의 넓이뿐 아니라 유물의 수량이 엄청난 걸 보면 사찰이 얼마나 큰 규모였는지를 알 수 있었다.
천년의 시간이 흩뿌려진 듯한 역사 앞에서 인연의 원리로 공이 된 설법을 듣는 듯, 아픔이 서려 있는 빈터에 홀로 터를 지키는 노거수 나무 한 그루가 유난히 눈길을 끈다.
전시관 1,2층에 유물이 전시돼 있고 3층은 비어 있는 것 같았다. 발굴이 진행 중이니 더 채워질 공간확보가 아닐까 싶다.
지광국사 현묘탑, 문종이 내린 시호 (사후에 공적에 따라 임금이 내린 명칭)가 지광이며, 탑호를 현묘라고 내림.
고려시대 불교예술의 극치라고 불리는 현묘탑의 아름다움은 폭격으로 파편이 된 것을 보수해서 겨우 복원했으니 부실해서 다시 뜯어 재보수하면서 고색창연한 모습보다는 보수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으나 예스러운 빛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새것 같거나 시멘트로 덧칠한듯해서 안타까웠다.
지광국사의 사리탑 (불탑이 아닌 승탑) 앞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제행무상이었다.
불교의 삼법인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의 집합체로 보이는 탑이 그 삼법인을 증명해 보려는 국사의 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행무상: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제법무아: 변하지 않고 이것이 나(자아)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일체개고: 사바세계는 모두가
다 고통이라는 뜻.
돌로 탑을 만들 때는 영원불변 할 것 같지만 일제치하에 일본으로 밀반출된 국립박물관의 경천사 10층석탑과 함께 일본으로 빼앗겼다가 수난의 고통을 겪었고
돌아와서도 여기저기로 배회하다가 6.25 사변으로 인해 12,000조각이라는 파편으로 산산이 부서졌다고 하니, 불변하는 자아라고 할 수 없었으며,
고로 세상의 모든 것이 고통이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이 한눈에 보이며 삼법인의 실체를 본 것 같았다.
자광스님은 탑으로 화신 해서 몸소 불법을 설법하신 다음에 원래의 마음자리, 있어야 할 그 자리로 환지본처 하신 것으로 생각되었다.
원주 명봉산 아래 있는 지광국사의 현묘탑비, 현묘탑과 탑비가 나란히 있었던 곳이며
탑은 온갖 수난을 겪은 후 현재는 보존을 위해 유물전시관에 보존 중이다.
탑의 정면과 측면, 탑의 좁은 측면에 용이 승천하는 아름답고 력동적인 모습이 조각되어 있고 거북몸에 용머리를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섬세한 조각이 예술로 평가 밭는 탑비의 아름다움이 위태롭게 보인다.
법천사 폐사지에 홀로 선 느티나무 노거수, 멀리서 보면 하나의 큰 보호수 같이 보이지만 바로 앞에서 보고는 너무 놀라웠다.
법천사의 융성기와 쇠퇴기,
수난의 역사를 다 지켜보셨을 것 같았고 노쇠한 몸체에 살이 말라붙어 법당만 한 구멍을 내고도 자식을 키워내서
마치 온전한 것처럼 독야청청 꿋꿋하시니 절로 고개가 숙여지며 살아 있어서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그 넓은 빈터를 오래도록 지켜내시길 서원한다는 뜻으로 큰 돌에 서원이라는 글자를 새기고 있었다.
법천사의 당간지주
당간지주를 깃발을 꽂았던 것이라고 되어 있는데, 내가 배운 바, 부처님 당시 설법을 할 때(야단법석) 탱화를 걸었다고 하는데
야외에서 법단을 만들어 구름인파를 수용하고 탱화를 내걸었다는 말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
야단법석이란 용어가 바로 야외설법을 들으려고 모여들었던 법석, 즉 법(진리)을 설한 자리에서 유래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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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타리 불자회 지도법사 보명올림.



